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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반전을 사랑한 남자
작가 : 샤뚜르
작품등록일 : 2017.7.5

강지원, 29살의 젊은 사장은 얼음 왕자라는 별명으로 직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직원들도 피해가는 그에게, 회사의 햇병아리가 어느 날 찾아와 태클을 건다. 그는 그녀가 만만했었다. 이세희, 24살의 인턴 사원. 상상 속 50대 사장과는 다른 조각미남이 나의 상사라니! 사랑 때문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 남자와 귀엽지만 반전 있는 그녀의 좌충우돌 연애 이야기.

 
제 75 화. 서로 아끼며 사랑해 나가겠습니다
작성일 : 17-07-26 15:25     조회 : 302     추천 : 0     분량 : 9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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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전을 사랑한 남자

 

 

 

 

 

 제 75 화. 서로 아끼며 사랑해나가겠습니다

 

 

 

 지원은 민 회장을 직접 찾아뵙기 위해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이 비서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민 회장의 집무실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깍듯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한 뒤, 그를 바라보자 민 회장이 인자하게 웃으며 지원을 반겼다.

 

 “어서 와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 연락도 없이 찾아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얘기가 조금 길어질 것 같군요. 앉아요.”

 

 지원이 그의 뒤에 위치한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자, 민 회장이 그 맞은편으로 걸어와 앉았다.

 

 

 

 “할 얘기가.......?”

 

 지원을 바라본 민 회장은 그가 왔을 때부터 집무실 내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음을 느끼고 있었다.

 

 지원은 깍듯하게 고개를 숙여 죄송하다 사과한 뒤 입을 열었다.

 

 “회장님 따님과의 결혼, 없던 걸로 하고 싶습니다.”

 

 민 회장은 대충 지원의 할 말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의외로 담담했다.

 

 “강 회장님의 뜻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민 회장의 질문에, 지원은 잠시 난감해하더니 곧바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저희 쪽에서 없던 걸로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깔끔하게 끝내려는 지원의 의도는 알겠으나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공식적으로 결혼 발표가 난 것도 아니고, 단지 현실성이 꽤 높아 보이는 정도의 소문만 무성한 터라 당사자들이 아니면 아닌 것이니 말이다.

 

 “하나만 물을게요. 굳이 내 딸을 배려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따님께서 제게 주신 마음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민 회장은 지원의 진심을 간파하기 위해 그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자신을 바라보며 피하지 않는 눈빛에는,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그랬었군.

 

 정말 맞는 인연은 나를 더 나은 나로 만들게 한다 했던가. 강 사장이 진심을 다해 누군가를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몰랐더라면 지금의 배려 역시 없었으리라.

 

 불안했던 마음대로, 딸과는 이어지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걸로 됐다.

 

 상대방에게 제 딸이 거절당했는데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저 역시 억지스러운 사랑은 원치 않으니. 남은 건 이제 이번을 계기로 딸이 얼마나 더 발전하느냐다.

 

 민 회장은 눈을 감으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래요........ 그래, 가보도록 해요. 회장님께 앞으로도 좋은 동반자로 남으면 좋겠다고 전해주세요.”

 

 “네. 안녕히 계십시오.”

 

 

 

 이 비서로부터 지원이 왔다는 말을 들은 민 지수는 이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민 회장의 집무실 밖을 서성이며 희미하지만 간간히 들려오는 지원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러다 문득 들려오는 자신과의 결혼 이야기를 파하겠다는 목소리에, 복도를 서성이던 민 지수의 몸이 흠칫하며 굳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원이 집무실의 문을 열고 나왔고, 그녀는 반사적으로 지원에게 걸어가 말을 걸었다.

 

 “없던 걸로, 하자구요.......”

 

 “저는 제가 했던 말에 책임을 지러 온 거 뿐입니다. 처음부터 우리가 이어질 확률 같은 건 없었습니다. 1분기 인턴을 마치면 바로 M 호텔로 돌아가십시오. 회장님의 경영을 승계하는데 차질이 없도록 이전 일에 대해서는 아무 말 하지 않겠습니다.”

 

 복도를 지나 아래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몸을 돌린 지원을 붙잡아 세운 것은 충동적이었다. 민 지수는 자신이 충동적으로 그랬다는 사실을 알 지 못했다.

 

 지원과는 인연이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왜, 왜 나는 안 되는 건가요? 사랑한다구요. 우리 둘이서 회사를 더 크게 키워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이었다. 지켜왔던 자존심마저 다 내던지고 누군가에게 이렇게 매달린 것은.

 

 하지만.

 

 

 

 지원은 제 팔을 붙잡고 있는 민 지수의 손을 떼어냈다. 그러고서는 민 지수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거, 사랑 아니야.”

 

 사랑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지만 민 지수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눈빛은 사랑을 한다고 말하는 여자의 것이 아니었다.

 

 “너는 나를 동경의 대상으로 보고 있어. 충분히 매력 있는 여자니까 자신을 더 아끼고 사랑하며, 사랑 받을 수 있는 여자가 될 수 있게 자신을 지켜.”

 

 끝난 관계를 억지로 이으려 매달리는 그녀의 행동에 기분 나쁠 수도 있으나, 나쁘지 않다. 민 지수는 그저, 사랑에 서툰 것뿐이다. 언젠가, 그녀의 진짜 인연을 만나면 지금과는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자신이 그랬듯.

 

 “다음에는 지금보다 더 발전해 있는 사업 동료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민 회장은 지원이 가고 나서도 한참 동안 집무실에 틀어박혀 있다 나왔다. 그는 딸의 방으로 가 노크를 한 뒤, 들어갔다. 지원을 봤던 시선이 사랑이 아니라는 말에 충격 받아 멍하게 앉아 있는 딸의 모습에 한없이 마음이 약해지려다가도, 딸의 미래를 위해 내려야할 결정이라 조금 모질게 마음먹었다.

 

 “당분간 한국에 돌아오고 싶을 때까지는 네가 있고 싶은데 가 있도록 해. 이 비서가 생활하는 데 힘들지 않게 곁에서 잘해줄 거다.”

 

 딸을 한참이나 말없이 바라보고 또 바라보던 민 회장은 거실로 이 비서를 불러들였다.

 

 “지수한테 당분간 해외로 가 있으라고 했다.”

 

 항상 민 회장의 말을 아무 말 없이 따라왔던 이 비서였지만, 이번만큼은 놀라며 민 회장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거짓말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어떻게 지켜봐왔던 아가씨인데, 민 회장이 끔찍하게 아끼는 딸을 해외로 보내려는 결정이 과연 옳은 선택인가 싶었다.

 

 욕심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녀가 간다면, 자신도 따라 가고 싶었다.

 

 “......”

 

 “네가 없으면 적적하겠지만, 지금 넌 내 딸 곁에 있는 게 맞을 거 같구나. 선우 너만 믿으마. 너 만한 비서는 못 구하겠지만, 내 딸 잘 부탁한다.”

 

 민 회장이 딸을 위해 처음으로 저를 그의 곁에서 떼어내려 한다. 비록 한낱 보잘 것 없는 비서지만, 자신을 아가씨의 곁으로 보내주려는 민 회장에게 감사하다. 아가씨가 끝까지 한국에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의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이게 제게 생긴 기회는 아닐까, 민 회장이 은연중에 저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바보 같이 기대하게 된다.

 

 제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민 회장의 온기가 한없이 따뜻하다.

 

 “자주 연락드리겠습니다.”

 

 인연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 수 있다.

 

 

 

 

 

 ***

 

 

 

 

 

 지원은 기자회견 장으로 이어지는 문 뒤에 서서 슈트의 각을 다시 매만졌다.

 

 “이거, 생각보다 너무 떨리네.”

 

 그러자 세희가 그의 앞으로 다가와 넥타이를 마무리 해주며 싱긋 웃는다.

 

 “괜찮을 거예요. 멋지다. 우리 오빠.”

 

 “아버지가 이거 보실까?”

 

 “어머님께 부탁드려 놨으니까 아마도요.”

 

 지원이 세희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예쁘다, 우리 아내. 그럼 갈까?”

 

 

 

 지원과 세희가 함께 한 걸음씩 내딛으며 서서히 열리는 문을 향해 나아갔다. 수많은 플래시 세례들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떨지 않았고, 피하지도 않았다.

 

 혼자라면 절대 못했을 것이다.

 

 함께 했기에 더 나은 내가 되었고, 더 사랑할 용기도 생겼다.

 

 지원과 세희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행복하게 웃는다. 그들을 보는 사람마저 흐뭇해지게 만드는 얼굴로.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아끼는지,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미리 준비해온 말들은 오히려 사치였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것처럼 너무 익숙하면서도 잘 어울렸기에 국민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향간의 소문들은 소리 새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K 그룹 사내 식당.

 

 직원들은 식사 도중 한 쪽 벽을 차지하고 있는 대형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전부 고개가 돌아갔다.

 

 [저희를 아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앞서 퍼진 소문들은 그저 소문에 불과했으며, 그때부터 제게는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옆에 계신 분이 강 사장님과 결혼하실 분이신가요?]

 

 [네. 미리 말씀드리지만 곤란한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평범하다는 이유로 저 때문에 아파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이 제 곁에 올 때, 당당하게 왔으면 좋겠습니다. 결혼이라는 일을, 엄두조차 못 냈던 제게 사랑을 가르쳐주고 곁에서 힘이 되어준 사람입니다. 서로 좋아 예쁘고 곱게 사랑하기 바빠 이제야 그간의 오해들을 풀어 내립니다. 앞으로도 서로 아끼며 사랑해나가겠습니다.]

 

 밥 먹던 사람들 중 남자 임원 중 한 명은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기 위해 입을 벌렸다가 툭하고 떨어뜨려버렸고. 식당 안에 있던 직원들의 대부분은 드디어 얼음 사장의 종식과도 다름없는 기자회견을 보게 되어 전부 만세를 외쳤다.

 

 그들 중 가장 놀란 직원들은 기획팀 식구들이었다.

 

 “대박....... 우리 사장님 알고 보니 사랑꾼이셨네요?! 세희 씨 부럽다. 사랑받는 것만큼 여자로 태어나서 받을 수 있는 복 중에 큰 게 어디 있을까.”

 

 “그럼 세희 씨 이제 뭐라고 불러야 돼? 호칭이 애매해지잖아.”

 

 남이 잘 되는 꼴을 보면 배가 아파 동동 구르는 여직원 하나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숟가락을 내려놨다.

 

 “사모님이죠. 뭐가 더 있어요.”

 

 

 

 한편, 아무 생각 없이 거실로 나온 시은은 드라마 다시 보기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텔레비전을 켰고 그녀 역시 지원과 세희의 기자회견을 보게 되었다.

 

 시은은 놀랐다는 목소리와는 반대로 그들을 보며 흐뭇해했다.

 

 “어머, 강 서방!”

 

 그녀는 성환에게로 전화를 걸어 은근히 약 올렸다.

 

 “여보, 지금 텔레비전 틀어 봐요. 보면 놀랄걸요? 당신 이제 어떡해요? 빼도 박도 못하고 허락해주게 생겼네요.”

 

 

 

 강 회장은 병실에 앉아 문 여사가 틀어준 기자회견 영상을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묵묵히 보고만 있었다.

 

 그의 곁에 있는 문 여사는 보지 못했지만, 강 회장은 기자회견 영상이 다 끝난 뒤 알게 모르게 한숨을 팍 내쉬었다.

 

 

 

 

 

 ***

 

 

 

 

 

 성환과 약속했던 대로, 지원은 그가 근무하고 있는 부대로 찾아갔다.

 

 “잘 지내셨어요, 장인어른?”

 

 지원이 먼저 다가가 인사하자, 성환이 고개를 홱 돌리며 본체만체 했다.

 

 “아직 허락 안 해줬네. 그런데도 자네는 전 국민 앞에서 결혼하겠다고 쐐기를 박아 버렸더군. 내가 허락 안 해주면 어쩌려고 그런 건가?”

 

 정말 허락 안 해주면 어떡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지원은 세희가 해줬던 말이 생각나 이윽고 해맑게 웃었다.

 

 ‘우리 아빠, 지금 삐졌어. 오빠가 먼저 선수 쳐서.’

 

 

 

 “괜찮습니다. 당장 허락 받기 위해 온 건 아니니까요. 그나저나 왜 여기로 오라 하셨습니까?”

 

 오늘 하루 종일 세희의 남편감은 힘이 좋아야 한다는 핑계로 괴롭혀 먹을 생각이던 성환은 예상외로 덤덤한 지원의 반응에 살짝 당황했다.

 

 게다가, 저 녀석.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더 얼굴이 좋아졌다.

 

 아내 다음으로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딸의 사랑을 듬뿍 받으니 날이 갈수록 얼굴이 피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왠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딸이 바라보는 세상의 남자가 제게서 저 놈으로 옮겨 가는 것 같으니까. 뺏기는 기분이다.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시킬 일이 있었으니 성환은 무표정한 얼굴로 지원에게 따라오라 했다.

 

 

 

 어딘가로 향하면서도 성환은 속으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이미 제 마음에서는 강 지원이 강 서방이 되어 버렸으니, 이렇게 어린 아이처럼 딸 뺏어가는 놈한테 투정부리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든든한 놈에게 딸을 주는 것은 정말 감사할 일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아쉽기는 했다.

 

 “내가 자네를 여기로 부른 것은 이거 때문이네.”

 

 성환의 말과 함께 그의 손을 따라가자, 지원의 눈앞에는 광활한 연병장이 펼쳐져 있었다. 축구장 크기는 되고도 남을 만큼 제법 큰데, 아무 것도 없이 휑해서 모래바람만 거칠게 휘날리는 그런 곳이었다.

 

 “뭐 하는가?”

 

 “네.......?”

 

 “자네가 얼마나 끈기 있고 체력이 좋은 지 확인하고 싶네. 남자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족들을 이끌어가려면 체력도, 정신력도 튼튼해야한다고. 그러니 이번 기회에 한 번 보여주게. 지금 입고 있는 그 양복은 어울리지 않으니 이거. 이 옷으로 환복하고 오게. 자네는 특별히 1분으로 늘여 주겠네.”

 

 

 

 지원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몰라 멍하게 서 있었다.

 

 자신은 분명 세희와의 결혼을 허락 받기 위해 왔는데, 성환의 말을 무조건 믿고 따라와 보니 어느새 군인 체험을 하게 생겼다.

 

 군대는 이미 7년 전에 제대했는데 말이다.

 

 호랑이 교관이라 불리던 성환의 스파르타식 갈구기가 시작됐다.

 

 “뭐하나! 1분 안에 여기로 오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나올지 나도 모르네!”

 

 “예, 예!!”

 

 군대식 체력 단련은 절대 받기가 싫어 성환이 갈아입으라고 가르쳐준 곳으로 얼른 뛰어갔다. 살기 위해서는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사람으로 행동해야 했다.

 

 지금 입고 입는 양복쯤이야 빨리 벗어버리고 성환이 준 체육복으로 갈아입는 시간은 1분도 많다고 자만하며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콧대 높은 자만이었다.

 

 군대를 갔으나 힘들게 훈련 받은 적 없는 그가 스파르타식에 익숙할 리 없으니 말이다.

 

 

 

 성환이 제시한 시간에서 한참을 벗어났다는 사실을 모르는 지원은 성환의 벌을 면했다는 생각에 혼자 착각하고 좋아했다.

 

 “자네, 늦었네.”

 

 지원이 환복을 끝냈을 때는 시작했던 시점에서 1분 47초가 지난 시점이었다.

 

 “47초 지났군.”

 

 그럴 리 없는데. 지원은 당황해서 눈만 여러 번 깜박이며 억울하다는 눈빛을 했다.

 

 성환은 지원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군대는, 봐주는 법이 없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하라 하면 해야 하고 말라면 말아야 한다.

 

 “엎드려 뻗게.”

 

 억울하기는 했지만, 저항 같은 건 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성환의 눈에 차지 않으면 안 되니까.

 

 “약속한 시간에서 47초가 지난만큼 내려갔다가 올라오도록 하게. 내려갈 때는 약속을, 올라올 때는 지키자 외치도록. 알겠나?”

 

 “네.”

 

 “실시!”

 

 지원의 탄탄한 몸매는 평소에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은 덕분에 얻은 성과였다. 그렇다 보니 47회에 달하는 팔굽혀 펴기는 힘들지 않았다.

 

 문제는 다음 단계였다.

 

 

 

 “살면서 매번 안정적으로 평탄한 길만을 걸을 수는 없네. 가족들도 있는데 자네가 얼마나 끝까지 버틸 수 있을지 보고 싶네. 지금부터 저 연병장을 1시간은 걷고, 2시간은 뛰도록 하게.”

 

 성환은 몸의 한계가 와도 얼마나 버틸 수 있는 지를 보고 싶었다. 조금 힘들다고 바로 포기한다면 바로 탈락 시킬 작정이었다.

 

 지원은, 아무 조건 따지지 않고 세희를 제 곁에 데려오겠다는 일념으로 연병장에 발을 들였다.

 

 

 

 성환은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 지원이 있는 연병장은 신경도 쓰지 않고 묵묵히 할 일만 했다.

 

 그러다 시계를 보고서는 연병장이 보이는 창문으로 고개를 슬쩍 돌렸다.

 

 “아직도 하고 있나?”

 

 고개를 길게 빼는 성환을 보고 연대장이 다가왔다.

 

 “뭘 그렇게 보십니까?”

 

 “아, 제 사윗감 보고 있습니다. 일부러 말도 안 되는 시간을 제시하며 힘들게 했는데 싫다는 소리 한번 안 하고 해내려고 합디다. 저런 남자가 잘 없음을 아는지라, 딸과 이어주는 것은 아깝지 않으나, 딸과 헤어질 생각을 하니 섭섭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저기서 혼자 뛰고 있는 남자가 이 준위님 사윗감입니까?”

 

 “네.”

 

 “우리 부대 연병장이 축구장 맞먹을 만큼 커서 힘들 텐데. 이 준위님은 좋겠습니다. 보니까 곱게 자란 것 같은데 끈기가 보통이 아닌 것 같습니다.”

 

 “허허, 감사합니다.”

 

 성환은 복잡한 눈빛으로 연병장을 쳐다보았다. 그는 한숨을 픽 쉬다 연병장으로 나갔다.

 

 지원이 뛰기 시작한 지 2시간이 조금 넘었다.

 

 

 

 약속한 시간은 3시간이었지만, 지원이 직업 군인도 아닌데 무리하게 괴롭혀서 어디 쓰겠나.

 

 “동작 그만.”

 

 하지만, 지원은 성환보다 더 독한 놈이었다.

 

 그만하라는 그의 말에도 불구하고 3시간을 다 채우기 위해 작정한 사람처럼 계속 뛰었다.

 

 “그만하게.”

 

 “헉, 헉. 아닙니다. 장인어른께서 뛰라고 하신 만큼 다 하겠습니다. 헉, 헉.”

 

 성환은 정말 난감해졌다.

 

 조금 있다가 세희 오기로 했는데.

 

 사위를 괴롭히는 것은 좋아도, 딸에게 미움 받기는 죽어도 싫다.

 

 “그만. 그만하라 하질 않나! 자네 내가 난감해지는 꼴 보기 싫으면 그만해.”

 

 성환은 부대 내에서 처음으로 쩔쩔 매는 모습을 보였다. 호랑이 교관의 그런 모습은 절대 보지 못할 진귀한 구경 거리여서, 잠시 휴식 시간을 갖고 있는 병사들 몇몇이 술렁거리며 그 주위로 모여들었다.

 

 성환은 지원을 뜯어말리기 위해 주변을 신경 쓸 여유 같은 건 없었다. 그래서 병사들이 포진해 있는 주위가 모세의 기적처럼 좌우로 갈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빠!”

 

 세희가 그 정중앙에 서서 팔짱을 낀 채 지원과 성환을 번갈아보며 짐짓 화난 표정을 지었다.

 

 “어, 어?”

 

 “오빠 지금 뭐하는 거야?”

 

 세희가 나타나자 성환은 눈에 띌 정도로 크게 당황했다.

 

 “아니. 저 녀석이 계속 말을 안 듣네.”

 

 지원을 말리기 위해 세희가 직접 나섰다. 그녀는 연병장으로 내려가 지원을 따라 뛰었다.

 

 “언제까지 뛰려고?”

 

 “응? 넌 또 언제 왔어. 헉, 헉. 장인어른이 3시간 채우라고 그러셨어.”

 

 “헐, 3시간?! 누구 죽이려고 작정했나. 오빠, 나 힘들어. 그만 뛰자. 아빠가 뛰지 말라고 하셨잖아. 내가 온 이상 아빠도 더 시키지는 못하실 거야. 내일 출근해야지. 응?”

 

 “힘들면 넌 저기서 기다리고 있어. 이제 30분 정도 남았을 거야.”

 

 “왜 미련하게 그래. 그만하라니까.”

 

 

 

 위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성환은 딸이 지원을 따라 뛰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딸이 지원을 말리기 위해 간 것 같아 지켜보고만 있었으나, 지원과 같이 뛰며 끝까지 가려는 딸의 의도를 눈치 채고 기겁했다.

 

 성환이 급한 마음에 빨리 뛰어 내려가 지원의 앞에 팔을 벌리고 섰다.

 

 “거기까지만 하도록. 허락하마. 강 서방. 뭔 놈이 그렇게 독한 건가? 졌네, 졌어.”

 

 지원이 뚝 멈춰 섰다.

 

 “정말입니까?”

 

 “그럼! 남자가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거 봤나?”

 

 지원은 씨익 웃으며 세희의 허리에 팔을 감고 그녀의 품에 무너지듯 안겨 끙끙 앓기 시작했다.

 

 “아.......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 세희야, 나 아파.”

 

 “어디? 어떡해!”

 

 성환은 그 모습을 보며 허탈하게 피식 웃었다. 어이고, 독하게 할 때는 언제고. 딸 오니까 강아지처럼 끙끙 매달린다.

 

 

 

 성환은 혀를 쯧쯧 차며 지원을 자리에 앉게 한 뒤, 그의 다리를 만져주었다.

 

 “자네, 평소에 운동 얼마나 하나?”

 

 “매일 2시간씩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이 생겨 매일은 못하고 있습니다.”

 

 “자네, 군대는 다녀왔지?”

 

 “네.”

 

 “보직은 어디로 받았나?”

 

 성환의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직렬은 아니었기에 조금 망설였다.

 

 “아....... 행정병으로 갔다 왔습니다.”

 

 “빽을 썼군.”

 

 맞는 말이었다.

 

 “......”

 

 “원래라면 조금 더 늦게까지 허락 않는 게 맞지만. 자네는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서 허락한 거네. 앞으로도 우리 딸, 잘 부탁하마.”

 

 “장인어른! 감사합니다.”

 

 성환이 손을 뻗어 지원을 일으켜 세웠다.

 

 “가지. 저녁은 내가 사주마. 메뉴는 세희가 먹고 싶은 걸로 먹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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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제 71 화. 구슬픈 진동소리 2017 / 7 / 26 303 0 10599   
71 제 70 화. 폭풍전야 2017 / 7 / 24 304 0 9231   
70 제 69 화. 이 남자와 행복하게 살고 싶다 2017 / 7 / 24 314 0 12421   
69 제 68 화. 사랑은 성숙하게 만든다 2017 / 7 / 24 292 0 10196   
68 제 67 화. 성숙함을 위한 기다림 2017 / 7 / 24 296 0 8136   
67 제 66 화. 방아쇠를 당기다 2017 / 7 / 24 280 0 7235   
66 제 65 화. 오늘 밤은 안 재울거니까 각오해 2017 / 7 / 24 293 0 10142   
65 제 64 화. 딸 주기 싫은 아버지의 밀당 2017 / 7 / 21 298 0 7785   
64 제 63 화. 무섭다고 겁먹지 말고. 망설이지도 … 2017 / 7 / 21 310 0 8261   
63 제 62 화. 아련한 불빛이 흩어진 밤, 넘어가다 2017 / 7 / 21 312 0 9973   
62 제 61 화. 본능과 끊임없이 싸우며 노력하는 … 2017 / 7 / 21 288 0 6519   
61 제 60 화. 네가 행복하면 그걸로 된 거야 2017 / 7 / 20 303 0 6300   
60 제 59 화.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는 법이 없… 2017 / 7 / 20 304 0 7420   
59 제 58 화. 그러니까, 못 놔 줘 2017 / 7 / 20 286 0 8692   
58 제 57 화. 텅 빈 속을, 마음을, 따뜻하게 가득 … 2017 / 7 / 20 296 0 8089   
57 제 56 화. 사랑 때문에 무릎 꿇은 남자 2017 / 7 / 20 293 0 8720   
56 제 55 화. 그래, 사랑이 뭐 별 거 있나 2017 / 7 / 20 290 0 8629   
55 제 54 화. 허공에 대고 불러보는 간절한 이름 2017 / 7 / 20 307 0 6552   
54 제 53 화. 뜨거운 태양 아래 홀로 싸우려는 남… 2017 / 7 / 19 293 0 7397   
53 제 52 화. 어림도 없지 2017 / 7 / 19 286 0 6555   
52 제 51 화. 덮쳐, 말아? 2017 / 7 / 19 274 0 7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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