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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반전을 사랑한 남자
작가 : 샤뚜르
작품등록일 : 2017.7.5

강지원, 29살의 젊은 사장은 얼음 왕자라는 별명으로 직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직원들도 피해가는 그에게, 회사의 햇병아리가 어느 날 찾아와 태클을 건다. 그는 그녀가 만만했었다. 이세희, 24살의 인턴 사원. 상상 속 50대 사장과는 다른 조각미남이 나의 상사라니! 사랑 때문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 남자와 귀엽지만 반전 있는 그녀의 좌충우돌 연애 이야기.

 
제 73 화. 사필귀정(事必歸正)
작성일 : 17-07-26 15:22     조회 : 293     추천 : 0     분량 : 8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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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전을 사랑한 남자

 

 

 

 

 

 제 73 화. 사필귀정(事必歸正)

 

 

 

 지원은 세희가 납치당할 뻔했다는 도진의 연락을 받고 차에서 내리려다 멈칫했다.

 

 자신은 더 이상 끌려 다니지 않을 거라고, 강 회장이 이제 그만 욕심을 접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세희와의 결혼 이야기를 꺼낸 것인데 강 회장은 본질을 보지 않고 다르게 해석한 것 같다.

 

 하지만 강 회장은 사람을 풀어 누군가를 납치하도록 사주할 만큼 악하지 않았다.

 

 자신이 곁에서 그를 지켜본 바로는 그랬다.

 

 지원은 뒷좌석에서 초점 없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서 이사에게 나가자는 말을 끝으로 차에서 먼저 내렸다.

 

 

 

 

 

 ***

 

 

 

 

 

 강 회장을 만나기 위해 걸음 한 본가였으나, 지원이 본가의 문을 열고 들어가 먼저 마주하게 된 것은 생각지도 못한 장면이었다.

 

 “아버지, 제발 이혼하게 해주세요. 으흐흑........”

 

 지원은 강 회장의 발치 앞에 무릎 꿇고 앉아 고개를 바닥에 묻은 채 오열하고 있는 큰 누나, 희연을 보고 응접실로 들어오려다 굳어버렸다.

 

 지금 강 회장과 희연에게 지원을 비롯한 방문객들은 투명인간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와 다름이 없었다.

 

 “네가 네 입으로 하겠다고 했던 결혼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혼이라니! 더 이상 들어줄 얘기는 없을 것 같구나. 돌아가거라.”

 

 강 회장은 고집스레 입을 일자로 꽉 다물며 희연에게서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처음이었다. 혜빈과 자신에게 항상 웃어주고 감정 표현 않던 희연이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은.

 

 “아버지! 이제는 더 이상 못 견디겠어요. 흑....... 행복하지도 않은데 남들 보기 좋으라고 억지로 웃는 것도, 절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사랑 받기를 바라며 하루하루 말라가는 제 자신도 너무 비참해요. 제발.......”

 

 줄곧 희연을 보고 있던 강 회장이 이번에는 희연을 투명인간 취급을 하고 지원과 서 이사가 있는 쪽을 쳐다보며 아는 척했다.

 

 “지원이 넌 어쩐 일이냐. 종배 자네는 또 웬일인가?”

 

 “아버지.......”

 

 지원은 강 회장의 옆에서 온몸으로 흐느끼고 있는 희연을 안쓰럽게 쳐다보다, 곁으로 가 그녀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서는 힐끗, 서 이사에게 눈짓했다.

 

 강 회장의 반기는 눈빛을 당당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서 이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무릎 꿇었다. 정말, 모든 게 끝났다.

 

 남을 잘 맞추기는 했어도 그것은 전부 욕심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지, 자존심이 센 성격이라 한 번도 무릎 꿇어본 적 없는 서 이사였다.

 

 “자네한테 미안하네. 용서해주게.”

 

 

 

 서 이사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저자세로 나오자 강 회장은 당황했다.

 

 “종배 자네 갑자기 왜 이러나. 장난치지 말게. 아, 이 사람. 자네가 잘 맞춰주는 성격인 거 아네. 아까 내가 우리 딸아이한테 소리 좀 친 거 가지고 그런다면 신경 쓰지 말고 얼른 일어나.”

 

 “내가....... 내가 자네를 배신했네. 미안하이. 정말.......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네........”

 

 이어져 나올 서 이사의 대답이 좋은 내용이 아니란 것을 짐작 한 것인지, 강 회장의 눈빛이 불안하게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게 무슨........”

 

 “자네가 엄청 공 들여 준비하고 있는 신기술 개발 프로젝트. 내가 욕심 부렸네. 그동안 자네와 함께한 세월, 쉽게 무시하면 안 되는 것인데. 경쟁사에 팔아넘기려 했어. 용서해주게.”

 

 

 

 “......”

 

 지원의 사장 취임 이후, 강 회장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영에 개입하여 막대한 투자 금을 끌어 모은 이유는 전부 신기술 개발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이후의 일은 전부 지원에게 맡겨놓고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기는 했었지만 그래도 지원이 일을 허투루 처리하는 성격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 그럴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생긴 빈틈이든, 자신이 개발 완성 단계까지 개입했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인데.

 

 아들의 능력과 가족으로서의 유대감도, 친구의 배신도 강 회장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자네가 어떻게........”

 

 

 

 서 이사는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둔기로 뒤통수를 가격 당한 사람처럼 멍하게 서 있는 강 회장을 힐끗, 바라보며 씁쓸하게 말했다.

 

 “아직 해야 할 말이 더 있네. 자네가 그렇게 아끼는 M 호텔 민 지수. 그 아가씨 역시 내가 손 써둔 패였네. 본인은 그걸 모르고 내 힘을 빌려 입사한 줄 알지만 말일세.”

 

 희연을 소파에 앉혀준 뒤, 그녀의 곁에서 잠자코 서 이사의 말을 듣고 있던 지원이 서 이사를 바라보았다.

 

 지원이 장 비서를 통해 보고받은 통화기록을 통해 드러난 민 지수.

 

 멘토와 멘티 관계라 정의하기에는 기록의 빈도가 잦았다.

 

 브리핑 심사가 가까워져 올 즈음, 각 팀별 팀장들을 만나 1분기 인턴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그거 자체만으로도 강 회장을 멈출만한 동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민 지수의 보고서에 대해 그거 자체로도 괜찮았지만, 이번 보고서가 참신한 게 많아서 떨어뜨리려던 차에 서 이사가 심사위원의 재량으로 한 번만 기회 줘보자 해서 합격 시킨 거라고 그랬다.

 

 낙하산 따위는 없다는 강 회장의 철저한 인생철학 속에서 길들여져 온 지원이었다. 아들을 그렇게 가르친 강 회장이었기에 민 지수의 입사 배경은 서 이사의 배신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거친 해일처럼 강하게 몰아쳤다.

 

 

 

 강 회장의, 견고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자네가 내게 사장직의 기회를 주지 않으니 나는 나대로 살 길을 마련해야 했네. 옛날부터 자네와 쌓아온 시간이 많다보니, 어렵지 않게 자네의 최근 관심사가 호텔 경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 자네는 회사 키우는 것에 재미를 보는 치니까. 민 지수와 거래를 했네. 민 지수를 K 그룹 공모전에 당선 시켜 입사하게만 해준다면 사장직을 주겠다고 그러더군. 나쁘지 않았지. 그런데, 강 사장과 약혼할 거라 당당하던 민 지수의 말과는 달리 강 사장은 다른 여자에게 빠지기 시작했고 민 지수는 강 사장을 잡지 못했어. 또 다른 살 길을 만들어야 해서 선택한 것이 기술을 팔아넘기는 거였네.”

 

 “어... 어떻게....... 내가 자네는 끝까지 봐준다 하지 않았나.”

 

 서 이사가 자조 섞인 웃음을 비릿하게 흘리며 씁쓸하게 말했다.

 

 “그래. 하지만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이 자리에 오래 머무른 것 같네. 물이 순환하지 않고 고이게 되니 썩었어.”

 

 M 호텔 민 회장 딸과 아들의 결혼 문제야 민 지수가 자신의 힘으로 입사한 것이니 문제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들여 키워온 회사에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들어온 이가 있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게 제가 예뻐했던 아이라 배신감이 컸다.

 

 체온이 상승하고, 얼굴로 열이 쏠리기 시작했다.

 

 

 

 강 회장은 서 이사를 부릅뜬 눈으로 날카롭게 노려보며 손사래 쳤다.

 

 “나가! 나가게! 내 회사에서도, 이 집에서도. 그동안의 정을 생각해 기회를 주겠네. 해외로 가버리든 안 보이는 데로 숨든, 다시는 내 눈 앞에 띄지 마!”

 

 감정 제어가 힘들어 등을 들썩거리며 서 있는 강 회장을 쳐다보고 있던 서 이사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 뒤, 지원에게 USB를 던져 넘겨주었다.

 

 “고맙네. 내가 이럴 처지는 아니지만 충고 하나만 하지. 자네도 욕심을 버리는 게 좋겠네. 자네는 너무 많이 가졌다는 게 문제야.”

 

 그러고서는 바지주머니에 한 손을 찔러 넣은 채로 몸을 돌린 뒤, 뚜벅뚜벅. 현관문을 열고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이... 이........!!!”

 

 서 이사가 나간 지 한참이 지나서도 강 회장은 분노를 이기지 못해 씩씩거리며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사람 좋은 줄 알고, 권력에는 욕심 없는 줄 알고 이 사람은 끝까지 가도 될 사람이구나 싶어 안정적인 보직을 약속했던 것인데. 왜.

 

 

 

 갑자기 목 쪽의 혈류가 꽉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목이 빳빳해져 오고, 혈류가 잘 돌지 않아 묵직했다. 강 회장은 눈을 한두 번 깜빡이며 초점을 바로 잡은 뒤, 뒷목을 잡으며 지원을 쳐다봤다.

 

 “서 이사 감시 잘 하고, M 호텔 민 회장과의 혼사는 없던 걸로 해야겠구나. 오늘은 일단 둘 다 물러가....... 윽!”

 

 “아버지!”

 

 “.......!!!”

 

 희연은 한동안 초점 없이 소파에 앉아 있다, 다급하게 소리치는 지원의 외침에 고개를 들어 정면을 쳐다보았다.

 

 지원이 바닥으로 무너지려는 강 회장의 상체를 부축하여 품에 받아들었다. 희연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녀는 너무 놀라 자리에서도 일어서지 못하고 무릎으로 기다시피 해서 강 회장의 곁으로 다가갔다.

 

 “아버지! 아버지! 눈 좀 떠보세요. 죄송해요....... 흑... 이혼한다는 말 안 할 테니 눈 좀 떠보세요.......”

 

 지원은 강 회장의 손을 두 손으로 꽉 잡아주는 희연을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119에 신고했다.

 

 

 

 

 

 ***

 

 

 

 

 

 도진의 차를 타고 지원의 본가에 도착한 혜빈과 세희는 대문 앞을 가로막고 있는 구급차를 보고 멈칫했다.

 

 들것에 실려 나오는 강 회장은 혜빈에게 놀라움 그 자체였다. 혜빈은 한 손으로 입을 막으며 구급차로 달려갔다.

 

 “아빠!”

 

 이어서 지원과 희연이 따라 나오자, 혜빈은 힘이 빠져 휘청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지원에게 가 그의 팔을 붙잡고 매달렸다.

 

 “아빠....... 갑자기 왜 이러셔?”

 

 “누나... 일단 병원부터 빨리 가야해.”

 

 이러는 사이에도 강 회장의 상태는 점점 나빠질 수 있었기 때문에 빨리 움직여야 했다.

 

 혜빈은 대답 해주지 않는 지원의 옷자락에 매달려 뒤에 있는 희연을 다급하게 찾았다.

 

 “언니, 형부는? 형부한테 연락해봤어?”

 

 “어? 아니.......”

 

 혹시라도 희연이 곤란해 할까, 지원은 혜빈의 말을 자르며 구급차에 올라탈 것을 재촉했다.

 

 “누나, 얘기는 나중에 하고 가자.”

 

 

 

 지원과 그의 누나들은 강 회장의 보호자 자격으로 구급차에 동승하여 병원으로 출발했고, 도진과 세희는 급박하게 움직이는 상황 속에서 구급차가 점이 되어서야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세희가 겪은 일도 있고, 섣불리 같이 가자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도진은 다시 차에 시동을 건 뒤 핸들을 잡으며 창 문 밖에 서있는 세희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세희 씨, 가실래요?”

 

 그 물음에 처음 든 생각은 망설임이었다. 지원을 따라 가는 것이 맞았지만, 강 회장이 언제 다시 깨어나 자신을 보자마자 ‘너는 안 된다’라고 모질게 가슴을 쑤실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웠다.

 

 하지만 세희는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며 흔들리려는 마음을 다시 바로 잡았다.

 

 “갈래요.”

 

 

 

 

 

 ***

 

 

 

 

 

 119 구조대원들의 연락을 받고 응급실 밖에 베드를 가지고 나와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들은 강 회장을 실은 구급차가 도착하자 신속하게 그를 준비해온 베드로 옮겨 응급실로 들였다.

 

 “바이탈(Vital) 체크해.”

 

 “혈압 떨어집니다.”

 

 “산소 포화도 떨어집니다. 호흡 정지했습니다.”

 

 강 회장의 장인, 박 원장은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하고 나서 내려왔다. 아들에게 같이 가자 여러 번 타일렀건만, 무슨 이유에선지 현석은 망설이고 있었다.

 

 

 

 환자의 의식도 없고 호흡조차 불분명한 상태여서 긴장을 늦출 수 없을 만큼 위태로웠다.

 

 “암부백(Ambu bag : 호흡 정지 시에 사용되는 구급 소생 펌프)! CPR 실시한다!”

 

 지원은 혜빈과 희연을 다독이며 죽은 사람처럼 침상에 맥없이 누워만 있는 강 회장을 보며 복잡한 눈빛을 했다.

 

 의사들은 강 회장을 살리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다 쏟아 붙고 있는데, 강 회장은 정작. 철인이라 불릴 정도로 꿋꿋했던 사람이 무색할 만큼 응급실에서는 다른 환자들과 다름이 없었다.

 

 한동안 죽음과 생의 경계에서 헤매던 강 회장의 바이탈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그제야 의료진들은 한시름 놓으며 강 회장의 입원수속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시사항을 전달한 박 원장은 지원과 누나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아버지는요?”

 

 “아버지께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요?”

 

 좀처럼 불안함이 가시질 않는 남매였다.

 

 “조금 기다리면 사돈께서 깨어나실 겁니다. 음....... 보아하니 사돈께서 아무 말 안 하신 것 같군요. 나이도 있고, 예전부터 고혈압이 조금 있었는데 요즘 들어 수치가 조금 올라갔습니다. 위험 단계까지는 아니라도 내가 조심해야 한다고 일러드렸건만. 고혈압 환자가 조심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순간적인 감정 조절입니다. 사돈은 그래도 운이 좋았어요. 조금만 더 늦었으면 뇌에 혈류가 공급되지 않아 문제가 더 커질 뻔했거든요. 그리고........ 실어증 증세가 보일 수도 있습니다.”

 

 “실어증이요?”

 

 “아무리 고혈압 증세가 있다지만, 강 회장님이 쓰러질 정도였다는 건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는 뜻이거든요. 실어증이라는 게 보통은 뇌졸중이나 뇌종양과 함께 동반되는 언어 문제인데, 가끔 충격적인 일을 경험한 사람들에게서도 관찰이 되는 현상입니다. 이런 경우는 아주 더디더라도 시간을 두고 조금씩 회복이 가능합니다. 다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니 이 점 유의하시고요. 당분간은 입원을 통해 관리를 받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설명을 마친 박 원장은 며느리 희연을 한동안 가만히 바라만 보다 이내 등을 돌려 강 회장의 입원실로 올라갔다. 아들 내외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희연의 낯빛이 너무 어두워 섣불리 물어볼 수가 없었다.

 

 

 

 혜빈은 강 회장이 괜찮다는 말에 안도하며 속으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녀는 옆에 앉아있는 희연의 품에 안기며 한숨 쉬었다.

 

 “아버지 잘못되시는 게 아닌가 하고, 집 앞에 들어섰을 때부터 너무 무서웠어.”

 

 “......”

 

 희연은 그저 말없이, 동생의 손을 잡아주며 토닥거려 줄 뿐이었다.

 

 “언니, 형부 오늘 수술 있으셔? 큰 사위잖아. 한번 와봐야 하는 거 아니야?”

 

 “누나. 큰 누나 오늘 너무 놀라서 그런 부분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어.”

 

 “사돈어른께서는 다녀가셨잖아. 형부한테 연락이 안 갔을 이유도 없어.”

 

 혜빈은 그저 형부인 현석을 만나 확실히 하고 싶은 마음에 그러는 것이다. 박 원장의 설명으로도 충분히 강 회장의 상태를 이해했으나, 그래도. 형부는 다를까 싶어, 언제 강 회장이 침상을 벗어날 수 있을지 그를 붙잡고 묻고 싶을 뿐이다.

 

 우리 아버지는 저런 식으로 누워 있는 거, 어울리는 분이 아니시잖아.

 

 

 

 혜빈을 안아주던 희연이 이번에는 혜빈의 등에 팔을 두르며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동안 누르고 눌러왔던 답답한 마음을 어디 하소연 할 데도 없었다. 견디다 못해 뛰쳐나와 손을 뻗은 사람이 아버지였는데, 아버지는 너무 매정했다.

 

 강 회장이 쓰러지는 장면을 고스란히 눈에 담아내느라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던 희연이었다. 긴장이 빠져나가자 기운마저 소진하여 더 이상 견뎌낼 힘이 나질 않는다.

 

 누군가를 원망할 힘도 나지 않는다.

 

 끝내고 싶다.

 

 “언니.......?”

 

 “흑....... 혜빈아.........”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희연의 물기어린 목소리에 혜빈은 당황하며 눈을 두어 번 깜박였다.

 

 “언니, 왜 그래. 응?”

 

 “나 그 사람이랑 이혼할래. 힘들어.”

 

 오늘, 도대체 무슨 날인 건지, 충격적인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혜빈은 그녀들의 곁에 서서 푸석한 얼굴을 하고 있는 지원을 바라보며 그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을 했다.

 

 큰 언니는 믿기 어려울 만큼 한 번도 부부 관계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어 사이가 엄청 좋은가보다 싶었다. 희연이 시집을 가게 되다보니 예전처럼 가깝지는 못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이 있듯, 언니는 변함없는 제 피붙이였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 희연의 상처를 알기 어려웠다.

 

 현석이 바쁜 것도 수술이 너무 많이 잡혀있어서 그런가보다, 희연의 둘러대는 핑계를 거짓말이라 생각지도 못했다.

 

 

 

 “그 사람은 날 사랑하지 않아. 매일 달라질 관계를 희망하며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척 하는 것도, 돌아오지 않을 사랑을 갈구하며 말라가는 것도. 이제는 지긋지긋해.”

 

 “......”

 

 지원은 제 피붙이를 상처로 물들인 상대를 향해 속으로 분노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바라보는 그 외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독한 외로움의 시간이었기에. 누나들은 그런 삶을 살지 않길 바랐었다.

 

 그는 자매들의 대화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켜주기 위해 강 회장이 있는 VIP실로 올라왔다.

 

 그리고 그곳에는.

 

 

 

 세희가 있었다. 그녀는 강 회장이 누워 있는 침상 곁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지원은 입원실 안으로 들어오려다, 그녀를 발견하고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그저 가만히 그녀의 뒷모습을 눈에 담기만 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세희가 지원이 서 있는 뒤로 고개를 돌렸다.

 

 “왔어요?”

 

 지원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본인 역시 강 회장의 지시였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납치를 사주한 사람의 곁에서 간호를 자처한다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네가 왜 거기 있어.”

 

 마음 정리도 안 됐을 텐데,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한다.

 

 “오빠 따라 왔어.”

 

 눈가가 시큰해졌다.

 

 “무리할 필요 없어. 이리와.”

 

 손을 내미는 지원의 손길에도, 세희는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이 없어보였다.

 

 “내가 간호할 수 있게, 허락해줘요. 그러고 싶어.”

 

 

 

 세희를 바라보기만 하던 지원은 끝내, 가슴에서 울컥하고 뭔가가 올라와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성큼성큼 다가섰다. 그러고서는 그녀를 힘껏 품에 안았다.

 

 “왜 그렇게 무모해.”

 

 세희가 희미하게 웃으며 지원의 어깨에 볼을 비빈다.

 

 “오빠도 행복해져야지. 그리고 나 씩씩한 거 오빠도 알잖아. 나 자꾸 보다보면 내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실 걸?”

 

 자신은 세희 앞에만 서면 사랑에 한없이 약해서 무너져 내렸고, 이렇게 씩씩하게 제 등을 껴안아주는 손길 안에서는 그녀보다 더 작은 남자에 불과했다.

 

 “내 곁에 와줘서 고마워. 정말....... 힘들면, 언제든 얘기해.”

 

 “응.”

 

 

 

 갑자기 뭔가 떠올랐다는 듯, 세희가 눈을 깜빡이며 지원의 품에서 떨어졌다.

 

 “아, 아까 여기 다녀가신 선생님 한 분 계셨는데.”

 

 당연히 문진 돌기 위해 찾아온 전공의겠지 했다.

 

 “오빠 찾는 거 갔더라구요. 그리고, 의사지만 왠지 모르게 눈치 본다는 느낌도 들었어. 잘못한 거 있나? 여기 아는 사람 있어요?”

 

 이어진 세희의 말에 지원은 그제야, 그 의사가 현석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위잉.

 

 [만났으면 하는데....... 8층 휴게실에서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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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제 63 화. 무섭다고 겁먹지 말고. 망설이지도 … 2017 / 7 / 21 311 0 8261   
63 제 62 화. 아련한 불빛이 흩어진 밤, 넘어가다 2017 / 7 / 21 313 0 9973   
62 제 61 화. 본능과 끊임없이 싸우며 노력하는 … 2017 / 7 / 21 290 0 6519   
61 제 60 화. 네가 행복하면 그걸로 된 거야 2017 / 7 / 20 303 0 6300   
60 제 59 화.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는 법이 없… 2017 / 7 / 20 306 0 7420   
59 제 58 화. 그러니까, 못 놔 줘 2017 / 7 / 20 288 0 8692   
58 제 57 화. 텅 빈 속을, 마음을, 따뜻하게 가득 … 2017 / 7 / 20 297 0 8089   
57 제 56 화. 사랑 때문에 무릎 꿇은 남자 2017 / 7 / 20 293 0 8720   
56 제 55 화. 그래, 사랑이 뭐 별 거 있나 2017 / 7 / 20 291 0 8629   
55 제 54 화. 허공에 대고 불러보는 간절한 이름 2017 / 7 / 20 308 0 6552   
54 제 53 화. 뜨거운 태양 아래 홀로 싸우려는 남… 2017 / 7 / 19 293 0 7397   
53 제 52 화. 어림도 없지 2017 / 7 / 19 287 0 6555   
52 제 51 화. 덮쳐, 말아? 2017 / 7 / 19 276 0 7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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