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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반전을 사랑한 남자
작가 : 샤뚜르
작품등록일 : 2017.7.5

강지원, 29살의 젊은 사장은 얼음 왕자라는 별명으로 직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직원들도 피해가는 그에게, 회사의 햇병아리가 어느 날 찾아와 태클을 건다. 그는 그녀가 만만했었다. 이세희, 24살의 인턴 사원. 상상 속 50대 사장과는 다른 조각미남이 나의 상사라니! 사랑 때문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 남자와 귀엽지만 반전 있는 그녀의 좌충우돌 연애 이야기.

 
제 71 화. 구슬픈 진동소리
작성일 : 17-07-26 15:20     조회 : 303     추천 : 0     분량 : 10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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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전을 사랑한 남자

 

 

 

 

 

 제 71 화. 구슬픈 진동소리

 

 

 

 민 회장은 며칠 전 나누었던 강 회장과의 통화를 상기 시켰다.

 

 강 회장은 확실히 제 딸을 마음에 들어 하며 예뻐하고 있었다. 시어른에게 사랑 받는 것 또한 남편에게 사랑받고 사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기에 다행이었다.

 

 하지만.

 

 제 딸이 강 사장과 결혼하고 싶어 한다는 것은 알겠으나, 이게 과연 자식을 위한 옳은 선택인지 모르겠다.

 

 허락해줘서 고맙다면서 식장과 다른 세부적인 일들은 다 준비가 되어 있다며 호탕하게 웃던 강 회장의 추진력에, 이상하게 자꾸만 ‘왜’라는 의문이 피어올랐다.

 

 한 번 피어오른 불안한 상념은 그의 발목을 타고 스멀스멀. 민 회장의 다리를 끈적하게 타고 올라와 그를 붙들어 잡았다.

 

 사위 될 사람으로서 응당 취해야 할 강 사장의 반응 또한 너무 미지근했다.

 

 혹시라도 내 딸이 사랑 받지 못하고 살면 어쩌나.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사업으로 다져진 연륜의 촉이었다.

 

 

 

 

 

 ***

 

 

 

 

 

 브리핑 심사 당일.

 

 위잉.

 

 지원은 진동이 울리는 핸드폰을 집어 들고 화면을 내려다봤다.

 

 [매형]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다. 제 앞에 닥친 일을 헤쳐 나가는 게 우선이여서 먼저 전화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지원은 속으로 내심 미안해하며 액정으로 손을 가져가 통화 기능을 활성화 시키려 했으나.

 

 똑. 똑.

 

 노크 소리에 문을 쳐다보며 고개를 들었다.

 

 

 

 “지원아, 심사 준비 다 됐대.”

 

 “아.”

 

 그의 손에 들린 핸드폰의 진동이 멈췄다.

 

 지원은 핸드폰을 책상 위에 올려놓은 뒤, 장 비서와 함께 심사를 진행할 소강당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위잉. 위잉.

 

 [매형]

 

 현석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는 그치지 않았다.

 

 애타게 그를 찾는 것처럼, 진동 소리가 유난히 구슬펐다.

 

 

 

 

 

 ***

 

 

 

 

 

 K 그룹의 1분기 인턴 입사 이후, 지원이 예고했던 브리핑 심사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K 그룹의 독자적인 채용 방식 중 하나인 브리핑 심사.

 

 새내기 인턴들은 저마다 원하는 주제를 골라 각자의 개성을 살려 PPT(파워포인트)를 이용한 5분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심사위원들에게 부여 받는 점수가 좌우된다.

 

 브리핑 심사의 원래 목적은, 최소한의 인턴을 채용하기 위해 그들을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입사 이후 갈고 닦은 실무 능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렇게 일 해왔노라, 선배들에게 선보이며 인정받는 자리였다.

 

 쉽게 말해, 단체 여행의 꽃과도 다름없는 레크리에이션처럼. 그들만의 축제인 것이다.

 

 

 

 사회자로 나선 인사팀 나 허당 팀장이 브리핑 심사의 시작을 알렸다.

 

 “저희 K 그룹이 주최하는 1분기 브리핑 심사를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다들 아시고 있다시피, 이번에는 사장님께서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셨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각 팀의 팀장님들께서 심사위원석에 앉아계시는데요, 저는 특별히. 사장님께서 참여하셨으므로 이번 심사는 빠지겠습니다. 사장님께서 인사팀 팀장인 저보다 직원들을 더 잘 알고 계시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 아무리 저라도 사장님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하하하.”

 

 뭔가 한 말이 있는 듯, 지원은 잠시 생긴 공백기에 손을 들어 인사팀장을 불렀다.

 

 그러자 나 팀장이 지원에게 마이크를 넘겨준 뒤, 제 자리로 들어가 앉았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저희 회사에서 일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부담드릴 생각으로 마련한 자리가 아니니, 자유롭게. 여러분들의 숨겨진 개성과 능력을 최대한 많이 발휘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지원이 사회자석에서 물러나자, 나 팀장이 다시 자리를 이어받으며 진행했다.

 

 “먼저, 발표 순서를 정해야 합니다. 공정한 진행을 위해 저희는 자동 추첨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한 분씩 앞으로 나와서 번호를 뽑아주세요.”

 

 번호를 뽑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앉은 인턴들은 자신들이 뽑은 번호를 보고 희비가 엇갈렸다.

 

 뭐든지 가장 먼저 하게 되는 사람이 제일 부담이 많이 되는 법이다. 좋은 쪽으로 생각해서, 잘만 발표한다면 인상을 깊게 심어줄 수 있어 좋은 기회이기도 한데. 운이 좋다해야 할 지, 나쁘다 해야 할 지. 첫 번째로 발표하게 된 준후가 소리 없는 절규를 하며 자신이 준비해온 자료들을 내려다봤다.

 

 첫 발표자가 처음이라 떨린다면 반대로, 발표가 진행 될수록 상대적으로 좋거나 부족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자료가 많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발표자는 이전의 발표자들과는 달리, 현저히 두드러지는 개성을 가지고 있어야 심사위원들에게 발표 내용을 부각시킬 수가 있다.

 

 발표를 늦게 할수록, 길게 확보된 대기 시간 동안 긴장을 추스르며 심사장 내의 분위기 흐름을 읽을 수 있기도 하기에, 청취자들의 반응을 고려하여 발표자의 재량에 따라 유동적으로 준비해온 각본을 조금씩 수정할 수도 있다.

 

 잘 이끌어만 준다면, 피날레처럼 끝맺을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 또한 마지막 발표자였다.

 

 

 

 준후가 궁금한 얼굴로 세희가 준비해온 자료들을 구경했다.

 

 “와, 세희 씨. 이거 뭐야? 나는 심사 위원님들께 참고 자료로 보여드릴 PPT 인쇄물 밖에 없는데. 내가 너무 준비에 소홀히 했나?”

 

 세희가 아니라고 팔을 저었다.

 

 “아니에요. 사람마다 준비하는 게 차이가 있는 법이잖아요. 준후 씨 나름대로 준비해온 거에 자부심을 가져요. 힘내요!”

 

 “응.”

 

 심호흡을 크게 들였다 내쉰 뒤, 앞으로 걸어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처음으로 발표하게 된 재무팀 박 준후라고 합니다. 저는 고대 이집트의 ‘죽음’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이집트는 지리적으로, 대서양에 위치한 아프리카 반도에 있는 국가입니다. 이집트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십니까?”

 

 누군가가 대답하자 준후가 맞장구 쳤다.

 

 “네, 스핑크스와 피라미드가 유명하죠.”

 

 또 한 명이 대답하자 준후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네. 하늘 높이 솟아오른 오벨리스크도 빼놓을 수가 없죠.”

 

 준후는 뒤의 스크린에 손을 갖다 대어 화면을 전환 시켰다.

 

 

 

 화면 속에는 준후가 발표할 내용과 대응하는 사진 자료들이 각각 준비되어 있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특이하게도, 죽은 후에 또 다른 세상, 즉 사후 세계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죽은 뒤, 몸이 상한다면 사후 세계에서 다시 부활이 불가능할 거라 여긴 이집트인들은 망자(亡者)의 시체를 잘 보존하기 위해 70여 일에 걸쳐 미라를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미라를 영화에서 몇 번 보며 접할 수 있었기 때문에 꽤 익숙하죠. 어떻게 생긴 건지 잘 아실 겁니다. 하얀 붕대를 칭칭 감은, 흡사 말라비틀어진 번데기처럼 생겼죠?”

 

 준후의 위트에 청중들이 웃었다.

 

 “여러 과정들을 거쳐 제작된 미라는 미리 제작된 관에 담기게 됩니다. 관을 제작하는 재료는 계급에 따라 달라지는데, 황금 관은 오직 왕이나 왕실귀족만이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관에 미라를 보관하는 것으로 매장 절차가 끝났다면 미라가 현재까지 잘 보존되지는 못할 겁니다. 습도와 온도를 적절하게 조절한 곳에 미라를 담은 관과 후세에서도 잘 살라는 의미로 준비한 부장품들을 한 곳에 모은 뒤 무덤을 마무리하여 입구를 막는데요, 대표적인 무덤 양식이 바로. 피라미드입니다.”

 

 “옛날의 우리 선조들을 보면 신분과 지위에 따라 가옥의 크기나 종류가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죠? 그것처럼,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피라미드는 권력의 상징이자 이집트의 왕, 파라오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무덤인 동시에 상징적인 건축물이었던 셈이죠.”

 

 “여러분들은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섭기만 한 순간인가요? 아니면 새로운 시작일까요?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은 후, 저승사자라 불리는 아누비스의 안내 아래 죽음의 신 오시리스에게로 가 심판을 받는다고 합니다. 선하게 살았는지, 악하게 살았는지를 말이죠. 어른들이 말하시는 ‘너 그렇게 살다가는 벌 받는다’는 말처럼, 인과응보에 따라 다시 부활할 지 말 지가 결정되는데요, 망자(亡者)의 심장을 심판 저울 위에 올려 악하게 살았다는 판결이 나면 아누비스가 부리는 개에게 잡혀 먹힌다고 합니다.”

 

 “죽음 후에 어떤 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후회 없이 살다가 가려면 매 순간 주위도 돌아보며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청중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자리로 돌아온 준후는 이제 한숨 돌렸다며 어깨의 긴장을 풀며 세희가 앉아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후, 심장 떨려 죽는 줄 알았네. 괜찮았어? 처음부터 죽음에 대해 얘기나 하고. 주제가 어두워서 재미없었지?”

 

 “괜찮았어요. 스토리텔링 식으로 재밌게 얘기해줘서 한 편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어요.”

 

 세희가 엄지를 척하고 치켜 올렸다.

 

 

 

 다음 발표자가 차례로 나와 순서대로 진행해 갔다.

 

 .

 .

 

 “사랑이란 뭘까요?”

 

 .

 .

 

 “저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얘기해드리겠습니다.”

 

 .

 .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은 생각보다 꽤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

 .

 

 저마다 그동안 준비해왔던 것들은 뽐내는 가운데.

 

 

 

 다음 발표자가 나설 차례였다.

 

 “민 지수 씨.”

 

 “......”

 

 나 팀장이 민 지수를 불렀지만, 민 지수는 심사장에 없었다.

 

 “서 이사님, 민 지수 씨는 참여 안하는 겁니까? 참가자 명단에는 분명히 기재가 되어 있습니다만.”

 

 “저도 자세한 사정은 모릅니다. 며칠 전부터 몸이 안 좋다며 일주일 정도, 죄송하다는 연락만 받았습니다.”

 

 직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참여하지 않아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본인의 결정으로 참여하지 않은 것이기에 지원은 묵묵히 심사를 진행시켰다.

 

 조만간 민 회장을 찾아가 마무리 지을 생각이다.

 

 “계속 진행하세요. 마지막 발표자는 누굽니까?”

 

 “제 차례입니다.”

 

 세희였다.

 

 

 

 그녀가 중앙으로 걸어 나오기 전, 세희와 눈을 마주친 지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옅게 웃어주었다. 잘할 거라고. 내가 곁에 있다고.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하고 있었다.

 

 떨리는 순간이 분명하지만, 지원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된 것인지. 든든했고, 청중들 앞에 선 순간부터 더 이상 떨리지가 않았다.

 

 “안녕하십니까. 기획팀 이 세희입니다. 저는 제가 정말 해보고 싶었던 주제로 이야기를 진행해나가겠습니다. 나눠드린 자료를 한 장 넘겨주십시오. 여자들의 1일 N식. 먹는 행복 또한 살아있어야 느낄 수 있는 감사한 것 중에 하나라, 저도 참 먹는 걸 좋아하는데요. 오늘은 여성들이 먹는 다양한 행복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세희가 스크린 화면을 만져 PPT를 한 장 넘기자,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하게 만드는 디저트며 다양한 먹 거리 사진이 띄워졌다.

 

 

 

 “조선시대에만 해도 굶어죽는 사람이 많이 있었을 정도로 우리가 당연하다 생각하는 하루 세 끼는 왕과 양반들에게만 한정되어 있을 정도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사회가 발전하고 경제가 성장하자 비로소, 사람들은 아침, 점심, 저녁. 누구든 상관없이 이렇게 하루 세끼를 먹으며 살아가게 되었죠.”

 

 “하지만, 세상은 한 번 더 바뀌었습니다. 서양 왕실에서만 향유하던 디저트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물론이고, 사람들의 눈과 혀를 자극할 만한 국민 음식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죠.”

 

 “여러분들은 하루에 군것질을 얼마나, 또 어떤 음식들을 즐겨하십니까? 우리들이 즐겨 먹는 군것질 거리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합니다. 저를 포함한 여성들은 남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간식을 즐겨 먹습니다. 커피, 와플, 빵, 떡볶이, 초콜릿, 아이스크림, 케이크, 고구마, 감자 등등. 이러한 메뉴들 중 야식의 대표 주자 족발, 치킨은 정식(正食)과 맞먹을 만큼 고칼로리를 자랑하여 또 한 끼의 식사가 됩니다.”

 

 세희가 다음 화면을 띄우자, 거기에는 원형 차트가 작성되어 있었다.

 

 “나눠드린 PPT 자료 제일 마지막장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께 드린 자료는 제가 심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유동인구가 많은 대학가를 다니며 설문 조사한 결과의 사본이며, 그 결과를 토대로 지금 여기. 보시는 화면처럼 간단히 정리해봤습니다.”

 

 

 

 < 간식을 먹었던 경험이 있습니까? >

 

 - 여대생 대상 설문 결과

 

 ☑ 하루에 한 번 또는 두 번 (55%)

 

 ☑ 매 끼마다 즐겨 먹는다 (25.8%)

 

 ☑ 가끔 생각날 때 먹는다 (10.2%)

 

 ☑ 즐겨 먹지 않는다 (5%)

 

 ☑ 기타(4%)

 

 “제가 설문 조사한 인원은 정확히 100명입니다. 남성분들은 여성분들이 소식(小食) 한다고 알고 계신 분도 있을 텐데요. 보시는 결과처럼. 대부분의 여성들이 간식을 즐겨 찾는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침을 삼키는 것도 잊을 만큼 흥미롭고 독특한 주제였다. 귀를 기울이고 있던 청중들 중 여성 참가자들은 세희의 설문 조사에 응답한 사람이 자신인 것 마냥, 뜨끔하여 어색하게 웃었다.

 

 “사람에 따라 사정이 다양한 것처럼 여기에 얽힌 이야기도 정말 다양했습니다. 제 설문에 응해준 대학생들 중 몇 명을 밀착 취재해봤습니다. 동영상 한 번 보고 가겠습니다.”

 

 대학가답게 주변이 시끌벅적한 가운데, 인터뷰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Q. 제 주변에도 더 먹을 수 있는 게 분명한데 적게 먹으려는 지인들이 있어요. 왜 그런 걸까요?

 

 시원시원한 대답이 돌아왔다.

 

 A. 아, 그거요? 그거다 뻥이에요. 다이어트다, 몸매 관리다 하는데 남자들이랑 있을 때 그래요. 근데 여자 동기들끼리 있을 때는 얼마나 잘 먹는데요. 제가 남자 동기랑 먹는지 여자 동기랑 먹는지 모를 때가 많아요. 안 그러세요?

 

 다음 사람이 나왔다.

 

 Q. 간식을 즐겨 먹는 편이라고 답하셨네요. 남자 친구랑 같이 있을 때도 잘 챙겨먹는 편이신가요?

 

 A1. 네. 저희는 뭘 만들어 먹길 좋아해서 서로 만들어 주고 같이 해먹어요.

 

 A2. 남자 친구랑 데이트 다니며 밖에 있는 시간이 길다보니 외식을 즐겨 하게 돼요. 배가 고프면 돌아다닐 힘이 안 나잖아요.

 

 Q. 남자 친구 분은 ‘여자는 적게 먹는다.’라는 환상 같은 건 없나요?

 

 그러자, 질문을 받은 A1 여학생이 수줍게 웃으며 아니라 고개를 내저었다.

 

 A1. 제 남자 친구한테 여동생이 한 명 있거든요. 남매라 서로 볼 거 못 볼 거 다 보고 자랐다면서 그런 거 없대요. 오히려 잘 먹는다고 좋아해요.

 

 A2. 그게....... 제가 남자 친구랑 크게 한 번 싸운 적이 있거든요. 화가 나서 스트레스 풀려고 맥주 한 잔에 치킨 한 마리를 시켜 남자 친구 앞에서 폭풍 흡입했었는데. 화해하려고 절 따라온 남자 친구한테 제 진짜 먹는 양을 들켜버린 날이 되어버렸어요.

 

 또 다른 여학생이 나왔는데, 이번에는 무리들이었다.

 

 Q. 학생들은 잘 먹는 거랑 깨작거리며 소식(小食) 하는 것 중 어느 쪽이 좋다고 생각 하나요?

 

 A1. 어....... 저는 밥상머리 앞에서 투정 부리거나 남기면 엄마한테 잔소리 들어서 한 번도 깨작거린 적은 없어요. 등짝에 불내는 것보다는 주시는 것만큼 다 먹는 게 낫거든요. 굳이 선택하라 한다면 잘 먹는 게 좋죠. 건강에도 좋고.

 

 A2. 저는 소화기관이 예민하고 작아서 많이 못 먹어요. 저 혼자 그런 줄 알고 문제인가 싶었는데 체질 때문에, 몸이 안 따라줘서 못 먹는 사람도 많아요.

 

 A3. 저는 소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너무 많이 먹으면 배도 부르고, 이미지 관리, 몸매 관리가 안 되잖아요?

 

 A3 여학생의 말이 끝나자 그녀의 뒤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어후, 저거 또 내숭 떤다.”

 

 그러자 A3 여학생이 그녀들을 살짝 흘겨보며 눈치를 준다.

 

 “야! 누가 자꾸 사기치래! 너 그러는 거 네 남친은 아냐? 어제만 해도 네가 먹은 게 몇 가지냐. 족발, 파스타, 프라푸치노에 초코 칩 많이 올려 휘핑크림 가득. 속일 걸 속여야지 이년아!”

 

 카메라 화면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주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얼핏 들려왔다.

 

 짐작하건대, 막역한 사이에서만 가능하다는 여러 언어들인 것 같다.

 

 

 

 서로의 목소리를 높이기만 하던 소리가 점점 줄어들며 준비해둔 영상이 종료되자 세희가 입을 열었다.

 

 “시간 관계상, 제가 인터뷰한 학생들을 전부 보여드리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잘 먹는 편이지만 어쩔 수 없이 적게 먹는 학생들도 꽤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본인들이 말하길, 남자 친구가 신경 쓰인다거나 아까 마지막 여학생처럼 몸매 관리를 위해 그렇다는 의견이 많았는데요. 남자들의 속마음은 어떨까요? 마지막 영상입니다.”

 

 Q. 여자가 어느 정도 먹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하세요?

 

 A. 음... 남자들도 여자가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거든요. 배가 고프지 않을 정도로, 내가 음식을 먹었구나 하는 정도는 먹어줘야죠. 제 여친도 많이 먹는 편은 아닌데 그렇게 먹으면 안 배고픈가요?

 

 다음 남학생이 나왔다.

 

 Q. 잘 먹는 여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A1. 저는 잘 먹어주는, 그러니까 복스럽게 먹는 게 예뻐 보이더라구요. 나는 맛있게 먹는데 옆에서 깨작거리고 있으면 밥이 안 넘어가요. 같이 어울려주면 좋겠어요.

 

 A2. 남자들도 여자들이 잘 먹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어요. 페이스책만 봐도 뭐 먹었다면서 음식 사진이 여러 장 올라오는 게 뜨잖아요. 거짓말하는 것보다는 사실대로 잘 먹는 게 좋아요.

 

 

 

 “네. 이제 제가 준비한 게 모두 끝났습니다. 저는 적게 먹어 아픈 것보다는 잘 먹고 건강 관리를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과한 것은 못한 것보다 못하지만 한번 균형이 깨지면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것이 우리 몸입니다. 건강이 먼저 있어야 다음 할 일을 할 수 있는 거니까요. 개같이 벌어 정승 같이 쓰자는 말이 있듯이, 저는 이 말을 ‘정승 같이 먹고 개같이 운동하자’는 말로 바꿔서 얘기해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이번 분기 인턴들은 전부 누구 하나 빠지는 것 없이 독특하고 참신하다는 평을 받았고 그동안 쏟아 부었던 열정이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브리핑 심사가 종료 되었다.

 

 

 

 

 

 ***

 

 

 

 

 

 직원들이 다 나가버린 텅 빈 강당.

 

 지원은 끝까지 남아있다 밖으로 나가려던 세희를 잡아 세운 뒤 문을 잠그고, 눈에 들어온 자리에 살포시 앉혔다. 그러고서는 저 역시 그녀의 옆에 앉아 뿌듯한 얼굴로 눈을 마주했다.

 

 “언제 그렇게 많이 준비했어?”

 

 “음....... 오빠 만나기 전에 틈틈이.”

 

 “생각했던 거보다 더 잘해줘서 놀랐어.”

 

 “뭐? 그럼 오빠는 내가 이거보다 덜 잘할 것 같았단 말이야?”

 

 발끈하며 약이 오른 세희가 귀엽다는 생각을 한 지원은 그녀의 볼에 뽀뽀한 뒤 귓가에 속삭였다.

 

 “누구 애인인데. 우리 색시가 맡은 일은 똑 부러지게 잘하잖아. 내가 이러니 반하지.”

 

 살랑거리며 귓가를 파고드는 그의 목소리가 간지럽다.

 

 게다가, 이제는 여.. ‘여보야’도 모자라 ‘색시’라니.

 

 지원의 애교를 따라가려면 멀어도 한참 멀었다.

 

 

 

 “세희야, 한 번 불러봐. 네 목소리로 불러주는 ‘여보야’ 들으면 좋을 것 같다.”

 

 “오빠라고 불러보래서 불러드렸는데.......”

 

 ‘오빠’라 했으니 그걸로 은근슬쩍 퉁 치려는 세희는 또 다시 대두된 호칭 문제에 지원과 눈을 마주하며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No'라는 대답에 알았다며 응해주기 싫은 것은 당연했다. 남자는 죽을 때까지 애라고, 서른 먹은 남자나 어린 아이나 똑같다.

 

 “부부가 괜히 부부야? 결혼할 사이답게 부를 호칭 정도는 있어야지. 오빠는 여동생이 불러도 오빠고, 여자 친구가 불러도 오빠잖아. 난 우리만의 특별한 걸 원해.”

 

 피.

 

 세희는 입을 삐죽이며 양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딱 봐도 지난번에 내가 곤란해 하던 모습 보고 또 놀려 먹으려나 본데.

 

 사람이 늘 같을 수는 없지.

 

 세희는 철없는 아이 같은 지원에게 반격하기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은 뒤, 입을 열었다.

 

 

 

 반격이 시작됐다.

 

 “여보야.”

 

 “됐죠? 나 돌아가 봐야 해요. 너무 늦게 가면 이상하게 생각할거야.”

 

 “......”

 

 지원은 눈만 연신 깜박거리며 멍한 표정으로 세희의 말을 되짚어 보았다.

 

 이렇게까지 빨리 해주리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는데.

 

 이번에는 지원이 더 당황했다.

 

 살살 녹는 애교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쑥스러움 가득 묻어나는 세희 만의 ‘여보야’였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해줘.”

 

 “나 배고파요. 곧 퇴근 시간인데 있다가 저녁 근사한 걸로 사줘요.”

 

 “응. 그럴게. 그러니까 한 번만 더.”

 

 애교를 타고난 성격도 아닌데. 자꾸 부탁해오니 속에서 격하게 거부 반응을 보이며 웨이브를 춘다. 강하게 한 번 더 하는 것으로 끝낼 생각인 세희는 지원의 눈치를 살폈다. 아주 좋아 죽는다.

 

 

 

 허탈한 게, 처음에는 안 될 거 같았던 애교가 지금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지원을 향해 넘쳐나는 제 마음을 더 이상 숨기지 말자 다짐한 마음의 변화 때문이었고.

 

 그에게 ‘여보야’ 소리를 들었던 며칠 전부터 그가 곁에 없을 때마다 몰래. 동영상을 보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성과이기도 했다.

 

 ‘얍.......!’

 

 “여보야아아, 나 넘무 배고빠. 우리 언제 밤 머그러 갈꾸야? (나 너무 배고파. 우리 언제 밥 먹으러 갈 거야?)”

 

 “......”

 

 < System : 강 지원님께서 이 세희님으로부터 치명타를 입으셨습니다. 얼굴 붉어짐 +1. +2, +3....... >

 

 지원은 주체할 수 없는 감정 때문에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부들부들 떨었다.

 

 “하....... 내가... 졌다.”

 

 한 손을 들어 마른세수를 하던 지원은 세희와 눈을 마주보지 못해 그저 허공을 바라봤다.

 

 “.......왜 이렇게 귀여워. 이러면 가기 싫어지잖아.”

 

 “으, 응?”

 

 열심히 노력해서 해줬는데, 밥 사줘야 할 사람이 어딜 간다는 건지.

 

 “이제 말해서 미안. 조금 있다 가봐야 해. 3일 동안 출장 가야 해서 식사는 다녀와서 하자. 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

 

 “....... 빨리 올 거야?”

 

 “응. 금방. 다녀올게.”

 

 지원은 세희의 앙증맞은 입술에 입맞춤 하고 싶어 근질거리는 감정을 애써 자제하며 그녀를 품에 살포시 안았다 놔주었다.

 

 “먼저 가 봐.”

 

 세희가 나가 적막함이 강당에 내려앉아 조용해졌다.

 

 그곳에는.

 

 냉철한 사업가 강 지원이 있었다.

 

 

 

 

 

 ***

 

 

 

 

 

 탁한 공기가 쫙 깔린 K 그룹 사옥 내 지하 주차장.

 

 한 남자가 걸음을 떼었다, 멈췄다 여러 번 반복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혹시라도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사소한 행동 하나 하나 신중에 신중을 가했다.

 

 남자의 걸음은 조심스러웠으며, 이리저리 흔들리는 눈빛은 그가 불안하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들켜서는 절대 안 된다.

 

 남자는 이 메일로 통보 받은 장소로 가기 위해 자신의 차를 타고 시내로 이동한 뒤, 택시로 갈아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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