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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내가 나를 죽였다
작가 : 휘닛
작품등록일 : 2017.7.9

 
15.자살
작성일 : 17-07-26 08:51     조회 : 338     추천 : 0     분량 : 2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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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민재는 문고리를 마구 돌려보았지만 굳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자꾸만 은아의 얼굴에 민재는 어머니의 얼굴이 겹쳐져 잔상이 맴돌았다.

 

  피로 붉게 물든 욕조 안에 팔을 넣은 채 쓰러져 계신 어머니.

 

  뜨거운 열기가 온몸에 들러붙어 끈적끈적한 피처럼 느껴지는 식은땀.

 

  목을 누가 조이는 듯 목구멍은 숨이 막히고 입안은 바싹 말라버려 아무런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던 그 순간.

 

  그것이 민재에게 각인된 어머니가 처음 병원 수술실을 찾던 그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끔찍한 광경이 악몽처럼 되풀이되려고 하고 있었다.

 

  민재는 베란다로 뛰쳐나가 방안 창문을 거칠게 밀었다.

 

  다행히 창문은 잠겨있지 않아 쉽게 열렸다.

 

  민재는 창문을 타넘어 들어와 곧장 방안 화장실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뜨거운 김이 민재를 집어삼킬 듯 덮쳐왔다.

 

  그 다음엔 자욱한 수증기가 그의 눈을 가려버렸다.

 

  간신히 한쪽 눈을 뜨고 바라본 평면의 세상에 그가 찾던 그녀가 있었다.

 

  욕조 안으로 떨어지는 물소리가 이어지는 곳에는 그녀의 자그마한 발이 욕조 밖으로 나와 있었고 그 위로 늘씬한 각선미를 자랑하듯 새하얀 다리가 쭉 뻗어...

 

  [짝]

 

  민재는 멍하니 서 있다가 물기를 머금어 무거워진 샤워 타올을 얼굴에 정통으로 맞았다.

 

  “나가!!!”

 

  은아의 집안 전체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버럭 소리에 민재는 앞이 보이지 않는 와중에 뒤로 자빠졌다.

 

  민재는 아파할 새도 없이 은아의 방을 뛰쳐나왔다.

 

  거실로 나온 민재는 비어있던 구석의 작은 방으로 피신했다.

 

  문을 닫고 그 앞에 민재는 쓰러졌다.

 

  거칠게 숨이 헐떡였고 다리는 풀릴 대로 풀려서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민재는 정신 줄을 놓고 망창하게 뻗었다.

 

  그리 오래지않아 뒤에서 쿵쾅대는 진동이 그의 온몸에 전해졌다.

 

  그리고 문하나 사이를 두고서야 몸에 전해지는 떨림은 멈추었다.

 

  문은 너무나도 얇아서 문 밖의 살기가 그대로 민재의 몸에 전달되어 전율이 올랐다.

 

  “나와”

 

  낮게 깔린 목소리는 바닥의 문틈 사이로 민재에게 전해졌다.

 

  민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오라고!”

 

  은아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르며 문을 마구 잡아당겼다.

 

  갑작스런 물리적인 힘에 문이 열릴 뻔 했지만 민재는 가까스로 몸을 밀어 대참사를 막았다.

 

  “못나가요!”

 

  민재는 필사적으로 문을 사수하며 고함쳤다.

 

  “내가. 널. 왜. 내 집에. 들였는데. 네가 그걸 배신할 수 있어? 네가 어떻게!”

 

  “그러니까 오해에요. 진짜 사고였다고요”

 

  “오해는 무슨 오해! 여자 방안 화장실에 무슨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냐고! 이래서 검은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었는데”

 

  “그게..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나서 그런 거예요.”

 

  “뭐? 그게 더 이상하잖아 이 자식아!”

 

  은아의 말에 민재는 머리를 벅벅 긁고는 말했다.

 

  “들어봐요. 제발 제 말 좀 들어봐요.”

 

  “그래. 들어줄 테니까 일단 거기서 나오라고!”

 

  민재는 뒤에서 마구잡이로 들려오는 온갖 동물을 찾는 육두문자 소리에 결국 폭발했다.

 

  “들어!”

 

  동재의 짧은 말에 비로소 은아는 모든 행동을 멈추었다.

 

  “우리 어머니 얘기는 그게 아니라고요.”

 

  “그 그럼 뭐?”

 

  은아는 당황한 나머지 급격히 톤이 내려갔다.

 

  “그날 우리 어머니도 그랬어요. 내가 아무리 찾아도 안계셨고 물소리만 들려왔어요. 문을 열고 들어선 화장실은 뜨거운 온기가 가득했고 욕조엔 어머니의 손목에서 새어나온 피로 가득했어요. 흡 흑 흡”

 

  민재는 힘겹게 울음을 참아가며 이야기했다.

 

  은아는 충격을 받아 자리에 주저 앉았다.

 

  “저는 몰랐어요. 흡 어머니가 그렇게 힘드셨는지... 매일 같이 드시던 약이 신경안정제인지도 몰랐어요. 흡 어머니한테 그런 병이 있었는지도 흡 몰랐어요. 몰랐다고요.”

 

  “...”

 

  은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듣기만 했다.

 

  “어머니가 수술실에 들어가신 날. 흡 형이 도와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저 역시 기꺼이 그러겠다고 했고 그래서 학교도 그만뒀어요. 일 시작하고는 집에 들어가지도 않고 커피숍과 병원만 반복했어요. 흡 모든 건 돈 때문이었어요. 어머니도 수술비 걱정에 그러셨겠죠... 흡 흡 흑”

 

  민재의 말에 일목요연한 두서는 없었지만 은아의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드는 데는 문제없었다.

 

  “흡... 죄송해요. 자꾸 핀트에 엇나간 말만 주저리 주저리해서... 아무튼 약봉지를 사들고 누나의 방문이 잠겨있을 때 갑자기 누나의 얼굴에 어머니의 얼굴이 겹쳐지는 바람에... 아무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어요. 죄송해요. 엿보거나 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흑 그냥 혹시라도 그 피비린내 나던 장면이 제 기억 속에 되풀이될까봐서... 그랬어요. 흡 흡”

 

  은아는 민재의 말이 다 끝나고도 한동안 아무런 언행을 취할 수 없었다.

 

  문틈사이로 미약하게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래... 울어... 울어서 좀 후련해진다면 울어... 누군가 들어줄 때 울어... 모두 떠나고 곁에 아무도 없으면 웃게 될지도 모르니까”

 

  은아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며 떠올렸다.

 

  아무도 곁에 없다는 것을 실감하던 날. 약에 취해 울음대신 웃음으로 보내버렸던 지난 날.

 

  은아는 목욕을 하며 말끔하게 벗겨냈다고 생각했던 우울한 상실감이 스멀스멀 잠식해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은아는 일어서서 민재가 떨어뜨린 약봉지를 주워들었다.

 

  약을 잊기 위해 약을 야기하는 아이러니한 나 약함을 한 입에 삼켜버렸다.

 

  ‘미안하지만 나는 달라... 주어진 상황에 슬퍼하거나 노여워하긴 해도 절대로 좌절하거나 포기하지는 않아. 내가 바라던 것은 모두 이루어야하니까. 그래서 난 결코 내가 나를 죽이는 행위는 하지 않아. 내가 죽을 바에 남을 죽이고 그 시체를 밟고 올라서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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