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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여왕 수호 기사단
작가 : 지니2
작품등록일 : 2017.7.18

“주인이다……”

황갈색 눈의 집시들 사이에서, 자그맣게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집시들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로웬과- 불타오르는 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들 사이에서 산발적인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유리가시가 주인을 스스로 선택했다!”

로웬은 바들바들 떨다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들의 노란 눈이 로웬에게 꽂혔다.

“자격이 없는자- 날카로운 유리 조각 위에서도 무사하리라. 유리 가시는 스스로 선택하는 검. 맨발로 바닥을 뛰어라, 유리 조각을 밟아라. 너의 피가 네 자격을 증명할 것이다. 유리 가시는 선택하는 검.”

집시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간간히 시리어스 주의][생각보다 안진지함 주의][주인공 2명][기사단물][정통(?) 판타지]
[천재검사, 얼굴이 열일하는 주인공1][잔머리대왕, 그냥 일 안하는 주인공2]

 
Episode 1. 잠입 (3)
작성일 : 17-07-25 23:31     조회 : 256     추천 : 0     분량 : 4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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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웬 아일체스트와 유비 이그렛은, 여왕수호기사단에 입단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병아리 기사다. 사실 그들은 기사라고 불릴 자격도 아직 갖추지 못했다. 정식으로 기사 임명장을 받은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둘이 처음 기사단에 입단했을 때- 여왕수호기사단 기사단장 술란 마르모넷사는 가차 없이 둘을 '견습 기사'로 임명해줬다. 유비의 경우 몹시 부족한 검술 실력을 이유로, 로웬의 경우 인성테스트 불합격을 이유로였다. 물론 둘 다 명백한 팩트였으므로, 두 새내기 기사들은 할 말이 없었다.

 

 어쨌든 왕국에서 제일 간다는 여왕수호기사단에서 견습기사들이 생겨난 건 창단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고... 그 귀하고도 유일한 견습기사 둘은 한 조가 되었다.

 

 그 귀하고 특별한 견습기사 조에게 드디어 임무가 내려왔다. 왕국 유일의 고등교육기관 '하멜른 대학'에서 '이력(異力)'이 관측되었다는 첩보가 들어왔는데- 그 건을 조사하라는 거였다. 유비와 로웬은 곧장 눈치챘다. 이 임무 수행 결과에 따라 둘의 승급 여부가 결정된다는 걸.

 

 

 "로웬, 우리랑 같이 밥 먹을래?"

 

 "아니, 로웬은 나랑 먹을건데!"

 

 

 유비 이그렛은 아주 아주 멀리서, 자기 파트너가 여자애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다지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었다. 유비는 이미 저 잘난 파트너와 대학에 잠입 수사를 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부터, 이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번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고. 저 여자애들의 대단한 공세는 두 사람이 대학에 온 첫날부터 며칠간 질리지도 않고 이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유비는 자기 몫의 버거를 받아와서 적당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하멜른 대학이 많은 장점 중 하나는, 음식이 맛있다는 거였다. 왕국의 머리가 될 사람들을 키우는 교육기관이라더니- 그 말 답게 학생들을 아주 잘 대접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유비는 아앙 버거를 깨물며, 다시 인구가 집중되어 있는 로웬쪽을 바라보았다.

 

 여자들 사이에서 로웬 아일체스트는 아주 우아하게 서 있었다. 그 모습이 정말 어딘가의 왕자님 같이 아름답고 고귀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표정은 아주 차갑고도 무표정해서- 주변의 여자들에게서 어떠한 감흥을 느끼지 못해하는 것 같았다.

 

 물론 유비 이그렛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저 로웬 아일체스트가 그저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몰라서 곤란해하고 있다는 걸. 로웬 아일체스트는 완벽한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사회성이 좀 많이 부족했다. 위기 대처능력 같은 것도. 유비는 그가 이 곤란한 순간을 오늘도 제대로 헤쳐나가지 못할 거라는 데 그의 전 재산을 걸 수도 있었다.

 

 유비가 두번째로 버거를 깨물 때쯤, 로웬의 무표정한 눈이 천천히 돌아갔다. 여자들은 그 눈이 저마자 자기를 훑었다며 소곤대었다. 그 눈동자는 무언가를 찾는 것 같이, 차근차근 주변을 훑었다. 그리고 마침내- 로웬의 눈이 고정되었다.

 

 

 "......."

 

 

 유비에게였다. 유비는 정확히 자신과 마주친 그 눈동자를 보고서, 그저 씩 웃었다. 그리고서 급하게 시선을 돌렸다. 설마. 이쪽으로 오려는 건 아니지. 저 여자들 무리를 이끌고.

 

 '...정답이네.'

 

 로웬 아일체스트가 유비가 받은 것과 똑같은 버거를 받아서 그의 앞에 앉았다. 어미 닭을 따라다니는 병아리처럼 졸졸 로웬을 쫒았던 여자들의 얼굴 표정이 잠시 일그러졌다. 그러나 곧 그녀들은 재빠르게- 유일하게 남은 로웬의 옆자리에 시선을 빼앗겼다. 서로 눈빛을 교환하는 꼴이 마치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지 눈치를 보고 있는 듯도 했다.

 

 그 사이 좀 더 직접적인 여자들은 유비에게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알 만 했다. 당장 그 자리를 자기에게 내 놓고 꺼지라는 거겠지.

 

 유비는 애써 미소지으면서 로웬에게 속삭였다.

 

 

 "지금 나한테 웬 엿을 먹이는거야?"

 

 

 로웬의 눈동자가 슬쩍 돌아갔다. 그는 잠시 동공을 떨다가 이내 고개를 숙였다.

 

 

 "-미안."

 

 

 유비는 한숨을 푹 쉬고 고개를 돌렸다. 내가 이해해야지. 정말로 로웬 아일체스트는 저 순간에- 달리 여자들에게 대처할 방법이 없어서 이쪽으로 끌고 온 거일 거였다. 겉보기에 차가운 왕자님인 놈이지만, 사실 그냥 사회성 부족한 검술바보일뿐이니까. 적어도 지난 한 달 간 기숙사 숙소에서 붙어 지내며 관찰했던 그는 그랬다.

 

 게다가 저 도련님은 사람들이 와글거리며 소란스러운 걸 질색하는 성격이었다. 그런 도련님이 저렇게 여자가 와글와글 몰려들어서 그를 둘러싼 상황들에 원활한 대처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문제는- 유비 이그렛ㄷ도 일평생 여자에게 인기라고는 있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도통 모른다는데 있었다. 심지어 유비의 입장은 더 가혹했다. 대부분의 로웬 팬들은 유비에게 그다지 좋은 감정을 품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로웬이 같은 날 편입해온 유비와 학교생활 대부분을 함께했기 때문에, 본인들의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로웬- 버거 먹으려고? 나도 그거 먹을까."

 

 "아, 로웬이 먹으려는 거 맛있겠다."

 

 

 살짝 질다. 가증스럽게 로웬의 옆에서 아양을 떨고 있는 여자들 꼴이 우습기 짝이없었다. 심지어 허락해주지도 않았는데 다짜고짜 이름으로 부르다니. 분명 고향에서 나올 때 그의 엄마가 신신당부 했었는데. 수도 사람들은 이런 촌구석보다 예의따위를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왠만큼 친한 경우가 아니면 반드시 성을 붙이라고.

 

 유비는 답답해서 남몰래 가슴을 퍽퍽 쳤다. 저 완벽한 외모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별다른 능력이 없으면 그냥 무용지물인가보다. 아니 오히려 패널티같기도 했다.

 

 로웬의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이 유비에게 와 닿았다. 유비는 그 눈빛을 모른척하면서 와앙 다시한번 버거를 깨물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데, 자기는 그걸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절대로 수업시간 도움을 요청했을 때 마다 저 재수없는 자식이 그를 무시해서가 아니다.

 

 로웬은, 잠시 난감하게 눈가를 찡그렸다. 물론 남들 눈에는 그저 차갑게 눈가를 굳히는 표정이었을 뿐이다. 그 표정이 우수에 차 아름다워 보인다며, 여자들이 소곤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 표정이 무얼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던 유비는 그저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을 뿐이다.

 

 

 “유비랑 점심을 같이 하기로 해서.”

 

 

 로웬이 억지로 말을 뱉어냈다. 이렇게 수많은 여자들에게 말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목소리가 몹시 어색하게 흘러나왔다. 곧장 여자들의 무시무시한 시선이 유비에게 와 닿았다. 유비는 하마터면 씹던 버거를 앞으로 뱉어버릴 뻔 했다.

 

 

 “그럼- 로웬 나랑도 약속 잡자.”

 

 

 맹랑한 여자애가 불쑥 튀어나왔다. 로웬은 자기의 떨리는 동공을 감추려, 일부러 시선을 옆으로 휙 돌렸다.

 

 

 “계속- 선약이 있습…니다.”

 

 

 그게 아마도 유비 이그렛이겠지. 모든 여자들에게 공통적인 답이 스쳐지나갔다. 그녀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자기에게 다시금 꽂힌 눈빛을 보고 알아차린 유비는… 그저 그의 일생 동안 단 한번도 자기를 도와준 적이 없는 신을 또 욕했다.

 

 그리고 각종 위기를 그에게 대령하고 있는 자기 파트너도 함께 욕했다.

 

 

 “그, 그렇지. 그렇긴 한데……”

 

 

 유비가 눈을 데구르르 굴렸다.

 

 

 “저녁 때는… 각자 알아서 먹는게 어떨까?”

 

 

 환희의 눈빛과 원망의 눈빛이 동시에 유비 이그렛에게로 꽂혔다. 전자는 여자들, 후자는 로웬 아일체스트였다. 여자들은 유비가 로웬의 동의 없이 내놓은 보완책에 만족해하면서 흩어졌다. 그녀들의 머릿속에는 아마- 로웬이 저녁을 먹으러 왔을때를 꼭 노릴 거라는 생각이 가득할 게 분명했다.

 

 

 “로웬 난 저 여자애들 다 적으로 돌릴 자신 없어.”

 

 

 로웬이 유비에게 무어라 불만을 말하기 전에 그가 먼저 선수를 쳤다. 그는 말문이 막혀버린 자기 파트너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그냥 네가 이미지 관리를 안하면 될 일이잖아. 턱 관절이 고장난 애 처럼 줄줄 흘리면서 밥을 먹어보라고.”

 

 

 로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 도련님은 또 그런 더럽고 교양없는 짓을 어떻게 하느냐고 생각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유비는 속으로 쯧, 하고 혀를 찼다.

 

 

 “-실수로 흘렸을때… 손가락으로 닦아서 자기 입에 넣었어.”

 

 

 나온 대답은 전혀 다른 종류였지만. 유비는 삐긋해서 의자에서 굴러떨어질 뻔 했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로웬을 바라보자- 로웬은 참담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떨리는 동공에는 저 정체불명의 기이한 여자떼들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다.

 

 

 “어, 음 그… 애들이 네가 잠복 중인 기사란 걸 알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아마 로웬이 그 유명한 아일체스트 가의 외동아들이라는 사실과… 왕국에서 가장 강력한 기사단이라는 ‘여왕수호기사단’ 소속이라는 걸 알게되면. 유비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아마도 전국구 규모의 대단한 팬클럽이 만들어 질지도 모른다. 여왕수호기사단 기숙사 앞은 여자무리들의 텐트로 가득 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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