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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다시 태어난다 해도 그대
작가 : 장윤봉
작품등록일 : 2017.7.6

여자는 죽어서라도 남자를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다.

남자는 여자의 다음 생 끝까지라도 따라가고 싶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죽는 그 순간 간절히 빌었다.

그 사람을 다시 만나지 않게/만나게 해달라고.

그리고 하늘은 두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www_yppah@naver.com

 
조건이 있습니다 (2)
작성일 : 17-07-25 22:37     조회 : 251     추천 : 1     분량 : 4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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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님이 배우로 출연해주셨으면 합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배우라는 단어에 그녀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가 가볍게 뛰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기대감이었다.

 

 "...왜요?"

 

 "개인적인 팬심이랄까요."

 

 "그 팬심은 뭘 근거로 한 건데요?"

 

 "음... 미라클 엔터에 옛날 오디션 영상들이 많이 남아있더군요."

 

 "설마..."

 

  옛날 오디션 영상이라는 말에 그녀는 오래된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7년 전쯤인가.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스무 살 때였을 것이다.

 

 "물론 감독님 프로필 영상도 남아있었습니다."

 

  지금 정하가 속해있는 기획사에서 배우를 뽑는 오디션을 개최한 적이 있었다. 그때 정하와 함께 1차 연기 영상 프로필을 찍어 보냈었고, 결과는 둘 다 합격이었다. 최종은 그렇지 못했지만.

 

 "프로필 영상 보셨으면 최종 오디션 영상도 보셨을 텐데요."

 

  떨리는 마음으로 오디션장에 들어섰더랬다. 아빠가 사다 준 청심환을 두어 개쯤 씹어먹고도 떨리는 몸을 막을 길이 없었다.

 

  하지만 막상 심사위원들 앞에 섰을 땐 전혀 떨리지 않았다. 다만 그 수많은 눈빛과 웅성거림 속에서 나무토막처럼 굳어버리는 일 말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음... 아쉽게도 탈락자들의 최종 오디션 영상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못 봤으니 이런 제안을 할 수 있는 거겠지.

 

 "반드시 그 조건이어야만 하는 건가요?"

 

 "지금 결정하기 힘드신 거라면 대답 기다리겠습니다."

 

 "전 연기자로 참여할 수 없습니다."

 

  단호한 거절이었다. 투자를 받지 못하는 한이 있어도 그 조건은 수락할 수 없다는.

 

 "...대답 기다리겠습니다."

 

  지언은 더 이상의 거절은 듣지 않겠다는 듯 대답할 새도 없이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꼭 칼에 푸욱 찔렸다가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그가 나가자 밖에서 기다리던 스태프들이 회의실로 뛰어들어와 뭐라 뭐라 하는 것 같았지만 물속에서 듣는 소리처럼 웅웅거릴 뿐이었다. 그 사이에서 비교적 뚜렷한 20살의 기억이 떠올랐다.

 

 "217번 지원자, 올라오세요."

 

  관객석에서 입을 오물거리며 청심환을 씹던 여자가 자신을 호명하는 목소리에 어깨를 흠칫 떨며 일어났다. 무대까지 오르는 길은 멀지 않았다.

 

  세 계단을 오르고 심사위원들과 마주 보았다.

 

 "제일 자신 있는 연기 해보세요."

 

  생애 첫 오디션. 좀 늦은 감도 있었지만, 고등학교는 성실하게 마쳐야 한다는 아빠의 지침을 따라 열심히 공부했고, 드디어 배우의 꿈을 향한 첫걸음을 떼는 순간이었다.

 

  객석에는 자신을 따라 지원한 19살의 정하가 앉아있었고 그는 100번대의 지원자로 이미 차례를 잘 마친 뒤였다. 그를 포함한 많은 지원자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심호흡하고 떨리는 손을 꽉 움켜쥐었다. 손바닥은 식은땀으로 축축했지만 입은 바싹 말라 있었다. 잘할 수 있다, 이소명.

 

  그녀는 수백 번이나 연습한 사랑에 빠진 스무 살 소녀를 연기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어라?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왜 이러지. 입술만 붕어처럼 뻐끔뻐끔. 순간 그녀가 딛고 있는 바닥이 물로 변하면서 늪처럼 그녀를 빨아들였다.

 

  구해줘! 손을 뻗어보지만, 심사위원들이나 지원자들이나 심지어 정하조차도 모두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고만 있었다.

 

  드디어 물이 턱까지 차올랐다. 그리고 코. 눈. 깊은 암흑이었다. 그곳에서의 기억은 여기까지다.

 

  눈을 떴을 땐 병원 천장이었고, 정하의 말에 따르면 내가 무대에 서서 아무것도 못한 채 가만히 서 있기만 하더니 갑자기 쓰러졌다고 했다. 입을 뻐끔거렸다거나, 물에 빠졌다거나 모두 나의 착각과 환각이었다.

 

  그 뒤부터였다. 연기를 하려고만 하면 표정이 일그러지고 턱이 덜덜거렸다. 병원에서는 일종의 공포증 증세라고 했지만, 인지 치료, 약물치료에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 그때를 회상하던 소명은 자신도 모르는 새 회의실에 재선과 둘만 남았음을 깨달았다.

 

 "선배...? 다들 어디...?"

 

  아직도 온전히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 그녀가 멍한 말투로 물었다.

 

 "너 너무 정신이 없는 것 같아서 다 내보냈어."

 

 "아... 그래?"

 

  소명을 보는 그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원 대표한테 얘기 들었어. 연기자로 참여하라고 했다며."

 

  그녀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이참에 병원 다시 다녀보는 게 어때?"

 

  머뭇거리던 재선이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그는 이 회사에서 소명의 공포증에 대해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었다. 대학 시절 술에 취한 그녀가 나불댔기 때문이다.

 

 "시간도 많이 지났고, 지난번이랑 다를지도 모르잖아."

 

  소명이 대꾸 없이 입을 꾹 다물고 있자 그가 명함 한 장을 그녀 앞에 내밀었다.

 

 "유명한 병원이야. 한 번 연락하고 가봐."

 

 

 

  OO 정신건강의학과

 

  그녀는 정말 다시 오고 싶지 않았다. 전처럼 치료를 받으며 나아질 수 없다는 절망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나아질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소명을 여기까지 이끌었다.

 

  연예인도 많이 다닌다는 유명한 병원인 만큼 크고 시설이 잘 갖춰진 병원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선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닌다는 건 꽤 부정적인 의미이기 때문에 아주 프라이빗한 병원이었다.

 

  개인 대기실에 있던 소명이 안내를 받아 진료실에 도착하기까지 아무도 마주치지 않은 것이 그 증거였다.

 

 "최면 요법을 쓸 겁니다. 환자분의 잠재된 무의식으로 들어가 불안의 원인이 뭔지 찾아보도록 합시다."

 

  의사는 특유의 친절한 얼굴로 소명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는 말했다.

 

 "자, 숨을 깊이 쭉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쉽니다."

 "한 번 더, 쭉 들이마시고 천천히 편안하게 내쉽니다."

 "최대한 호흡을 천천히 유지합니다."

 .

 "머리에 힘이 빠지고 편안해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녀는 심호흡 한 두 번까지 이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나, 최면은 TV에서나 봤는데 이게 진짜 걸리긴 하는 건가, 속으로 구시렁구시렁 구시렁구시렁대다가 정말 의사의 말대로 축 늘어져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이다음부터는 거의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자, 당신을 무섭게 하는 게 무엇입니까?"

 

  최면의 단계를 차례차례 밟아가던 의사는 그녀가 완전히 무의식으로 빠져들자 본격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눈... 눈이 무서워요."

 

 "무슨 눈을 말하는 건가요?"

 

  인상을 찌푸린 채 순순히 대답하던 소명이 갑자기 몸을 떨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려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앞에 있는 보이지 않은 무언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손짓이었다.

 

 "시, 싫어..."

 

 "환자분?"

 

 "싫어, 싫어, 싫어!!!"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격렬한 발작을 일으키자 밖에서 대기 중이던 간호사들까지 뛰어들어왔지만, 섣불리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환자분! 진정하세요! 환자분!!"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모자를 깊게 눌러 쓴 누군가가 망설임 없이 문이 열린 진료실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 아무나 들어오시면..."

 

  만류하는 간호사도 제치고 걸어들어온 그는 몸부림치는 소명이를 끌어안았다.

 

 "괜찮다, 소명아. 괜찮아."

 

  그 남자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귀에 속삭이며 진정시키자 몸부림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괜찮아, 괜찮아."

 

 

 

  특별히 공간을 구분해 놓지 않은 허전할 정도로 넓은 집에 햇빛이 통유리를 뚫고 여과 없이 쏟아져 내렸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지언이 그 광경을 보고 리모컨을 눌러 블라인드를 반쯤 내렸다.

 

  어깨에 걸쳐 놓았던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며 진동이 울리는 휴대폰을 들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주기적으로 걸려오는 일종의 확인 전화였다.

 

 [병원은 꾸준히 잘 다니고 있는 거니?]

 

 "예, 어머니."

 

 [그래. 곧 아버지와 약속한 서른이니 조금만 더 힘내렴.]

 

  말하는 내용은 아들을 걱정하는 다정한 어머니 같았지만, 그녀의 말투는 전혀 다정하지 않았다. 형식적이고 무미건조함의 극치. 지언에겐 익숙한 일이었다.

 

  간단하게 통화를 끝낸 그는 평소에 입는 깔끔한 슈트가 아닌 캐주얼한 티에 청바지 차림으로 검정 모자를 눌러 썼다. 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는 옷차림이었지만 모자 아래로 드러나는 턱선과 티셔츠 위로 드러나는 맵시가 존재감을 나타냈다.

 

  그가 직접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은 아주 사적인 공간이라는 듯 경비가 철저한 곳이었다. 주차장을 들어가는 것부터 미리 등록된 차량이 아니면 출입할 수 없었고 예약된 시간을 맞춰 나와 있던 안내인이 전용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싫어!!"

 

  언제나 그렇듯이 진료실로 향하던 그는 돌연 복도를 가득 채운 비명에 발걸음을 멈췄다.

 

 "아, 죄송합니다. 소동이 있나 봅니다."

 

  그 모습을 본 안내인이 말했지만 지언은 그 소리가 거슬려서 멈춰 선 게 아니었다. 아아, 난 아무래도 팔불출을 벗어날 수 없는 모양이야.

 

 "고객님?"

 

  그가 뒤돌아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뛰자 뒤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지금 그런 게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저렇게 큰 소리로 부르고 있지 않은가.

 

 "아아악!"

 

  활짝 열린 문 너머에 그녀가 있었다. 저런 모습은 너무 오랜만이라 어제 본 그녀인데도 아주 오랜만에 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저런 상태의 그녀를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익숙한 동시에 마음이 아팠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기에 차라리 잘 되었다, 생각했는데. 왜 너까지 그 끔찍한 삶에 매여있나.

 

  성큼성큼 걸어간 지언이 그녀의 등 뒤로 팔을 둘러 꽉 끌어안았다. 발버둥 치는 그녀의 힘은 꽤 세기 때문에 힘줘 안아야 했다.

 

 "괜찮다, 소명아. 괜찮아."

 

  그 말을 들은 그녀가 예전처럼 얌전해졌다. 아마 이대로 의식을 잃고 한 시간은 지나야 정신을 차리겠지.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

 

  괜찮다, 소명아. 이제 정말로 다 괜찮다.

 

 

 

  소명이는 휘영궁에 들어온 뒤에도 연극을 그만두지 않았다. 다들 기함하긴 했지만, 정원이 예쁘게 가꿔진 휘영궁 앞마당에서 어린 궁인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고, 시간이 지나자 상궁들까지 정해진 시각이 되면 그곳으로 모이곤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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