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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울지말아요, 그대.
작가 : 백설기공주
작품등록일 : 2017.7.23

오늘따라 달빛이 유난히도 고와 세상에 빛을 뿌릴 때, 영롱하게 빛나는 달빛의 정기로 가득 찬 여인의 주변. 고운 달빛을 병풍 삼아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들이 적막함을 달래준다.

“됐어요…….”

광활히 펼쳐진 아름다운 은빛바다와 다르게 몹시도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집하나. 그런 그곳에 비단같이 매끄럽고 칠흑(漆黑)을 품은 머리칼을 가진 여인.

구름자락을 뚫고 내려온 달빛이 그런 여인의 뺨을 타고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비춘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번뜩이는 눈으로, 쏘아보는 수많은 눈빛들이 애석하기만 하다.

“입고 갈게요… 아버지….”

악문 입술 사이로 비집고 흘러나온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애야….”

밤과 더불어 창호지에 스며든 은은한 달빛에 비치는 수많은 횃불이 오늘의 슬픈 날을 예고하고 있었다.

 
@5.
작성일 : 17-07-25 22:21     조회 : 268     추천 : 0     분량 : 7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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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반 시진 가까이 이런 상황이 몹시도 자연스러운 듯! 연오는 주위 꽃들과 나무를 여유롭게 구경 한 번 하고 차에 입 한 번 대고 있고, 려원도 덩달아 나뭇잎 개수나 세고 앉아 있으니.

 

 그 앞에 있던 나는 주위 풍경에 정신 팔린 두 용족을 보며 눈치만 살피니 절로 피로해지는 것만 같았다.

 

 눈을 쉴 새 없이 좌우를 왔다 갔다 수시로 움직이니 눈이 피곤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일어나자마자 적응도 안 된 곳에서! 그것도 사람이 아닌 용족과 한적하게 차를 마시는 것은 상상이상으로 힘에 부쳤다.

 

 수만 개의 가늘고 긴 가시방석에 도를 쌓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어색과 불편이라는 기로의 영역에 한발씩 걸쳐 좌불안석(坐不安席)이란 상황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했다.

 

 상황을 보자니 결국 이 분위기를 불편해하는 것은 나밖에 없다는 소리다.

 

 “아 그러고 보니 내 소개를 여태껏 안 하고 있었네.”

 

 “아…….”

 

 “아까부터 뭔가 빠진 듯 부족한 게 있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이거였군.”

 

 불현 듯 떠올랐던지 차를 마시다 눈을 크게 뜨며 혼잣말을 하는 연오였다. 아니, 혼잣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소리가 커 다 들렸다.

 

 그러고 보니 이름을 제외하고는 그 의외의 것은 알지 못했다.

 

 너무 정신없이 끌려 다니다 다과(茶菓)실까지 오니 물어볼 겨를도 없거니와 정신도 없었다.

 

 분명 하서빈이랑은 아는 사이가 분명한데, 라고 생각을 아까부터 하긴 했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낮에 이리 큰 전각에서, 딱 봐도 까칠함과 냉기를 날리는 서빈의 전각에, 여유롭게 지붕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그의 모습은 서빈의 언행을 봤을 때 예사롭지 않은 행동이었다.

 

 거기에 ‘서빈’이라고 무리 없이 언급한 것만 봐도 알고 있는 사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서빈에 몇 안 되는 친우야. 또한…… 너를 구한 도란의 친우이기도 한 연오. 천연오인데. 이게 내 이름이야.”

 

 간략하게 자기소개를 하며 차를 다시 입에 대는 그였다. 서빈과 도란의 친우?

 

 그러면 셋 다 다 친구인가? 그럼 도란은 지금 어디 있을까. 또 갑자기 드는 물음이었다.

 

 “전 진여월이라 해요.”

 

 “아하, 진여월이라…….”

 

 “저…… 근데 도란님은 왜 안 보이시나요?”

 

 “아~ 그 녀석?”

 

 무언가 할 말이 많은 듯 말이 술술 터져 나왔다.

 

 “그니까! 그 녀석은 평소에 좀 나를 본 좀 받으라니까. 평소 사고를 자주 쳐줘야 용왕님께서도…… 아~ 이 녀석은 원래 이런 녀석이었지 하면서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겠지.

 

 그러니 나처럼 사고를 자잘하게, 잊을만하면 한 번씩 쳐줘야 인생 살기가 편하지.

 

 이런 밋밋한 용천에 나 같은 인재도 필요한 법이거늘.”

 

 “…….”

 

 “도란처럼 조용하고 사고 안치다 치면 이렇게 홍역을 치르니……. 하하.”

 

 장난스러운 말투로 혼자 말하고 혼자 웃는 연오였다. 그의 말처럼 도란은 평소 행실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아 자잘한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나를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어디 갔냐는 말에 어디 있는지는 말은 안 하고, 그냥 자신을 좀 본받아야 한다는 그의 말을 들으니 괜히 죄를 지은 것처럼 얼굴이 화끈해졌다.

 

 “연오님. 그건 자랑이 아니지요.”

 

 내가 얼굴을 들 수 없자 나를 위해 한말인지 자랑스럽게 말하는 연오를 향해 비수를 날리는 목소리는 다름 아닌 려원.

 

 려원을 보면서 알 수 있는 연오의 모습은 용과 이무기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친해 보였다는 것이다.

 

 오히려 려원이 연오를 구박하는 모습이랄까. 그것만 봐도 얼마나 연오가 이무기랑 차이 없이, 허울 없이 지내는 유쾌한 사람, 아니 용인지 나타나는 대목이다.

 

 “칫. 내가 뭐 어때서.”

 

 입을 삐쭉 내밀며 부정의 뜻을 내비친다.

 

 “정말 모르십니까?”

 

 려원의 추궁 같은 말에 과자와 차를 다시 한입 물더니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더니 자신의 볼일은 끝났다며, 갑자기 일이 있다며 일어난 그였다.

 

 *

 

 화려한 꽃들의 무늬가 새겨진 바닥과 화려하게 꾸며진 내부와 다르게 무거운 공기가 주위를 가득 메운다.

 

 몇 명의 인파(人波)가 모여 시끄러울 법도 하 것만, 오히려 질서 정연하게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열을 맞춰 한 곳에 시선을 보내고 있다.

 

 각각의 의미를 담은 눈빛들이 한 사내만을 위해 끊임없이 보내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정숙하다 못해 조용하기까지 한 공기만 그 주위를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이 공간에는 숨소리만 조용히 흘러나온다.

 

 반항하냐?

 

 한참의 침묵을 깬 용왕이 도란을 보고 대뜸 한말은 그것이었다.

 

 위엄과 존엄의 말투가 아닌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말이 용왕의 입을 통해서 나온 것이다.

 

 도란은 그저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이윽고 용왕이 얼굴을 험상궂게 찡그리며 말했다.

 

 “미친놈이구나. 용이 알면서도 인간세계에 내려가 음식을 먹고, 관여까지 해?”

 

 “…….”

 

 “네가 한 행동이 지금 어떤 행동인지 알고 한 것인지 알고 있는 게냐?! 아니면 죽고 싶은 것이냐?”

 

 “면목 없습니다.”

 

 도란은 용왕을 볼 면목이 없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목소리에서는 어떠한 떨림과 지체함이 없는, 오히려 담담한 목소리로 무엇이든지 받아들이겠다는 의지까지 보였다.

 

 이런 도란의 모습에 용왕은 얼굴을 더욱더 일그러졌다.

 

 네가 정말 미쳤구나. 네가 눈에 뵈는 게 없나 보구나, 라는 표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용왕은 믿고 믿었던…… 도란에게서 큰 실망감을 받았다.

 

 도란은 용들이 지켜야 할 금기(禁忌)를 어긴 것이다.

 

 아마 자신이 저지른 행동으로 용천은 요 근래 가장 시끄러웠을 것이고, 여러 용들의 입에 오르내리라 했을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또한 그 밑의 용들과 이무기들은 얼마나 바삐 움직여야 할꼬. 눈으로 보지 않아도 선견지명(先見之明)처럼 앞날이 선명히 그려졌다.

 

 도란은 자신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여러 명의 앞날을 생각하니 고개가 숙여졌다.

 

 “왜…… 왜! 살려준 게냐. 내가 아는 네놈은 이유 없이 그러지 않는다. 뭐냐? 왜 살려준 게야? 대답해봐라.”

 

 찰나의 시간이 지난 후. 묵묵히 서있기만 하는 도란을 보며 용왕이 내뱉은 말이었다.

 

 도란은 잠시 머뭇거리다 이윽고 침착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한다.

 

 “그냥…….”

 

 “그냥?”

 

 “그냥, 닮아서였습니다.”

 

 “닮아서라?”

 

 “용왕님도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그 외, 다른 이유는 없었습니다.”

 

 “갈수록 태산이군!”

 

 용왕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일단 네놈은 근신이다. 알겠느냐?”

 

 “어떤 처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달게라, 달게?!”

 

 “…….”

 

 “다른 녀석도 아니고. 차기 용왕 후계자라는 녀석이 이런 분란거리를 만들며 잘하는 짓이다!"

 

 “송구하옵니다. 허나, 용왕께서 잘 살펴주시리라 믿습니다. 만약 그 아이로 인해 잘못이 생긴다면…….”

 

 제게서 두 번이나 심장을 도려내는 것입니다.

 

 “지금 협박하는 게냐?”

 

 “아닙니다, 다만, 제게 꼭 알려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도란이 엎드리며 청을 하자 용왕이 그것을 지긋이 바라보다 말한다.

 

 “…… 노력해보마.”

 

 확답은 아니었지만 그 긍정적인 대답에 도란은 머리를 크게 조아리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

 

 용왕의 서무실에서 도란이 나오자마자. 용천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여월이라는 계집의 처분 문제부터. 생사 관련된 회의와 도란의 근신 여부까지.

 

 상당히 폭넓은 주제가 오랫동안 논의되었지만, 확실하게 결론 내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정처 없이 흘렀다.

 

 용왕의 말에 따라 칩거하며 조용히 지내기를, 벌써 그 여월을 데려온 열흘째가 되는 날이었다.

 

 그동안 도란의 징계 여부와 근신은 풀리지 않았다. 그때마다 불현 듯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낭자는 어떻게 지낼까? 한두 번 떠오른 문구가 아니었다.

 

 “장군입니다. 나리.”

 

 도란은 용왕에 위치한 자신의 저택에서 덕춘과 함께 장기를 두고 있었다.

 

 덕춘의 ‘차’가 도란의 진영을 헤집고 들어와 장군을 놓자. 도란은 ‘사’를 움직여 진로를 막고선 말한다.

 

 “멍군이다. 덕춘아.”

 

 그렇게 덕춘이 다음 수를 궁리할 동안 도란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색깔이 다채로운 창문 밖의 풍경은 마음을 달래주었다. 열흘 동안 같은 장소에서, 같은 위치에 보면 지루할 법도 하지만. 도란은 그 창문 밖의 모습을 그대로 기억하려는 듯 한없이 바라보았다.

 

 물론, 마음 같아선 이곳을 단번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열흘 동안 집에만 있는 경우도 처음이었지만, 손에서 일을 놓고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너무 낯선 경험이었다.

 

 또한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어도 용왕의 명을 받은 사병이 자신의 집을 빼곡히 지키고 있으니, 도란으로써는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밖으로 벗어날 방법은 많았다.

 

 분명 빠져나갈 방법은 많았지만 도란은 그러지 않았다. 빠져나간다면 더욱더 용왕에게 미안한 일을 만드는 것이기에, 그저 덕춘과 함께 장기와 바둑을 하며 무료함을 보낼 뿐이었다.

 

 “아, 아하!”

 

 덕춘이 참지 못하고 ‘마’를 움직이자 도란이 끌끌하고 혀를 차며 ‘상’을 움직여 ‘마’를 잡아먹고는 말았다.

 

 “무사는 되어도 장수는 못되겠구나. 그리 성정이 급하여 어디 쓰겠느냐?”

 

 “으으…… 두고 보십쇼! 이번에는 제가 이길 겁니다!”

 

 “그래, 어디 한 번 두고 보마.”

 

 간단한 도발에 바로 반응을 보이는 덕춘을 보며 도란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계속 진행되는 장기, 장기는 도란의 ‘포’가 사정없이 덕춘의 ‘마’와 ‘상’을 유린할 때 절정에 달했다.

 

  그때 누군가가 도란의 방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갑옷을 입은 장수가 숨을 헐떡거리는 게 다급해 보였다.

 

 콰당탕-!

 

 “아!!! 씨…… 깜짝 놀랐네.”

 

 “무슨 일이냐. 허랑”

 

 깜짝 놀란 덕춘과 다르게 도란은 침착한 표정으로 장기 말을 어디다 놓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윽고 좋은 자리를 발견한 듯 그곳에 장기 말을 두려 했으나. 도란의 손을 가로막은 건 허랑의 말이다.

 

 “감축드리옵니다. 나리.”

 

 “감축드린다?”

 

 “네, 나리! 용왕님께서 나리의 인품과 그동안의 일을 생각하여 근신이 오늘부로 풀리셨습니다. 어쨌든 축하드리옵니다!”

 

 “그 애는 어떻게 되었느냐?”

 

 자신이 어떻게 되든 궁금하지 않다는 듯 도란이 급하게 허랑을 추궁했다.

 

 허랑이 예? 하고 되묻자. 도란은 그 답지 않게 조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용왕께서 그 아이를 어떻게 했냐는 대도?”

 

 “아…… 예…… 저, 으흠. 그, 그러니까…… 역시 도린님의 해명이 크게 작용한 듯하옵니다. 아직까지 그 아이를 죽이겠다는 말은 흘러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 그 문제는 계속적으로 논의를 거칠 듯하옵니다.”

 

 되었다.

 

 도란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묘하게도 자기 자신이 근신이 풀린 것보다 그 아이가 살수 있다는 것이 도란의 얼어붙은 마음을 들뜨게 하는 것 같았다.

 

 이내 도란이 장기말을 두며 말했다.

 

 “자! 덕춘아!! 네가 놓을 차례다.”

 

 묘하게 톤이 올라간 목소리에 덕춘이 눈꼬리를 치켜뜨며 물었다.

 

 “나리, 목소리가 많이 들떠계십니다. 설마 저를 이겼다고 그리 좋아하시는 겁니까?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경기에서 끝났다고 생각할 때 정말 끝난 것이라고요. 그러므로 전 아직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 어서 해 보거라.”

 

 “이익!”

 

 도란의 도발에 곧바로 상을 움직이는 덕춘,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도란의 ‘차’가 ‘상’을 잡아먹어 버린다.

 

 “으아아아아아악!”

 

 괴성을 지르며 쓰러지는 덕춘을 보며 허랑과 도란은 크게 웃었다.

 

 덕춘이 웃긴 건지. 근신이 풀려서 기쁜 건지. 그 낭자가 죽지 않았다는게 기쁜 건지. 아무것도 도란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기쁠 뿐이었다. 그렇게 세 명의 사내는 도란의 집에서 크게 웃었다.

 

 *

 

 하루의 끝을 알려오는 어둠이 내려쳐진 지금. 지친 몸을 이끌고 방으로 돌아왔다. 서빈이 소유하고 있는 전각을 다 구경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간이 지난 하루.

 

 려원이 일부로 그랬는지 아니었는지는 몰라도…… 부리나케 내 손을 잡고 전각을 제집마냥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니, 잠시나마 아버지의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얼마나 두발을 동동거리며 돌아다녔는지 다리가 수시로 아팠다.

 

 휴…… 내 다리야, 몸과 마음이 아우성 치는 게 이런 걸까. 나름 힘이 넘친다고 자부했지만…… 우물 안 개구리였다.

 

 역시 이무기는 사람과 체력부터 다른가 보다. 하루 동안 려원은 나를 이끌고도 저리 생생한 것 보니, 라고 생각한 게 한두 번 아니었을 정도니.

 

 생각보다 날이 일찍 저물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려원이 이끄는 대로 끌려 다녔음이 뻔했다.

 

 그니까. 아까전의 일이 떠오른다. 길고도 긴 하루는 해가 지평선 중간 자락에 걸쳐 짙은 붉은 석양빛을 뿌릴 때, 뉘엿뉘엿해져 전각 구경은 끝이 났다.

 

 시간이 어찌 되든 간에 조금만 더 보자며 다른 전각으로 데리고 가려는 려원에게 애원하다시피하고 나서야 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다고 달라진 것은 없다.

 

 여전히 입에서 크나큰 한숨이 나오고 좌불안석(坐不安席)이었다. 마음과 정신이 온전치 못함이다.

 

 시간을 붙잡고 싶어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렀다.

 

 생각보다 일찍 찾아와 잠을 청해야 하는 어둠이 드리우고 억지로 누워 잠을 자려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 밤.

 

 다시 주위를 한번 쓰윽 쳐다본다.

 

 보기에도 값비싼 화려한 장식과 파란색으로 치장되어있는 방안에 멍하니 있으니 역시 아버지 생각이 또 스멀스멀 올라온다. 정말로 여기서 있어야 하는 걸까.

 

 누군가 그랬던가 멍하니 있으면 생각이 많아진다고. 상념(想念)에 잠긴다고 말이다.

 

 아버지는 지금 잘 계실까? 마음속에 있던 고민이 떠오르는 것은 괜한 말이 아닌가 보다. 벌써부터 떠오르는 것 보니 말이다.

 

 더군다나 삼 일 동안 의식을 잃어서, 아니면 감당하지 못하는 일들의 후유증 때문인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생각에 생각이 겹치니 머릿속이 온통 복잡하게 뒤엉켜버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내가 정신을 차리고 건강해야 아버지를 다시 볼 텐데.

 

 오늘 자야 내일 서빈에게 용기를 내서 아버지에 대해 물어볼 텐데…… 말이다.

 

 안 그래도 그의 분위기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억누르는 무언가가 있었기에 물어보기도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이럴 때 도란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지금은 없다.

 

 “자자! 자야 돼.”

 

 억지로라도 잠을 자기 위해 이불을 얼굴을 뒤덮고 눈을 감았다.

 

 어둠은 깊어져 빛을 간직한 달빛이 내게 잠을 강요하고 있지만 잠을 청하기 편치 않은 밤.

 

 찰나 동안 지금이 꿈이라고 굳게 믿으며 눈을 감은 것이다.

 

 정말 꿈이었으면 좋겠다. 모든 게 거짓이라고, 일어나면 아버지가 서 있을 것 같은…… 그런 바람을 간직한 채 잠에 들었다.

 

 *

 

 하늘에서 비추는 달빛 아래 수많은 불빛의 무리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밤하늘인데 왠지 모르게 슬프다. 어디서 봤더라?

 

 기억을 더듬어 보니 바늘로 머리를 찌르듯 아파 왔다. 머리라는 녀석은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게 분명하다.

 

 왜일까. 주위를 둘러본다. 정면에 검은 그림자가 수십 개가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명확히 잘 보이지가 않는다.

 

 이윽고 뒤쪽에서 손으로 추정되는 무언가가 내 어깨를 짓누른다.

 

 서서히 고개를 돌려 어깨에 얹어진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어, 어…… 꺄!!!”

 

 나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놀라, 가슴이 진정되질 않았다.

 

 바로 어깨에 올려진 그 무언가는…… 다름 아닌 손이었다.

 

 그것도 보통의 사람의 손이 아닌, 활활 타오르는 손이 내 어깨를 붙잡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를 금방이라도 태워버릴 것처럼!

 

 “허억…… 헉…….”

 

 이부자리에서 상체를 급히 일으켜 거친 숨을 내쉬었다. 끔찍한 악몽이다.

 

 등골에서 축축한 느낌이 피부를 통해 전해져 온다. 손으로 등을 만지니 물먹은 듯 옷은 축 늘어져 있었다.

 

 너무나 익숙한 축축함. 한 방울씩 등골을 타고내리는 액체, 땀이다. 그것도 식은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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