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련이 지하궁전에 도착했을 때 지하궁전 입구에서 부터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지체가 높은 사람이 지하궁전에 와 있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호기심 많은 기련이 궁금함을 못 참고 지하궁전으로 뛸 듯이 내려가자 설이가 미간을 찌푸리며 따라 내려갔다.
“천천히 가세요. 왜 이리 서두르세요.”
“설아, 어떤 분이 와 계실까? 아버지를 만나고 계시겠지?"
지하궁전 안에서는 장파형이 어떤 여인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수은광산을 운영하는 무녀, 청부인이었다. 여인의 몸으로 하루아침에 가업을 물려받아 크게 성장시킨 것도 놀라운데 진시황제에게 인정받는 사업가이자 황제에게 조언도 서슴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알려진 여인이었다. 너무 무서워 신하들 조차 황제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다는 그 진시황에게 조언을 하는 사람이라니 세상 사람들은 그 사실 만으로도 놀라워했다.
무엇보다 청부인이 무녀라는 소문은 사람들을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청부인은 영험한 힘이 있다는 붉은 광물로 만든 커다란 목걸이와 귀고리를 하고 다녔다. 지하에서도 반짝반짝 빛이 난다는 붉은 광물 덕분에 청부인의 하얀 얼굴이 더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장파형에게 이야기를 마친 청부인이 돌아섰다. 청부인은 뒤에서 보고 있던 기련과 눈이 마주쳤다. 옆에 있던 설이가 깜짝 놀라 기련의 팔을 잡아끌었다. 기련은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은 채 청부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청부인이 걸고 있는 붉은 목걸이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청부인이 기련에게 다가갔다.
“고운 얼굴에, 눈빛이 당돌하구나.”
기련은 그제서야 청부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너는 나를 보고 있던 게 아니구나. 아, 이 목걸이. 이게 무엇인지 아느냐?”
“먹으면 신선이 된다는 신비로운 광물, 단사인 줄 압니다.”
청부인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래? 영특하구나. 한눈에 단사를 알아보다니.
단사는 불로장생의 명약이지”
청부인은 잠시 말없이 기련을 쳐다보았다. 무안해진 기련은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청부인의 시선을 피했다.
“이름이 무엇이냐?”
“장 기련이라고 합니다.”
“그 이름을 기억하마.”
청부인은 잠시 기련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 기련을 뒤로하고 지하궁전을 나갔다.
조마조마해 하며 기련을 보고 있던 장파형이 달려왔다.
“아가, 얘야, 괜찮느냐. 괜찮아?”
“아버지, 방금 저 분은 누구십니까?”
“무녀 청부인이시다. 황제폐하와 사업을 논하시는 높으신 분.”
“예? 무녀 청부인이라구요?”
기련도 청부인에 대한 소문은 들어 알고 있었다. 함양 사람 중에 청부인의 얼굴은 몰라도 그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었다.
“사업을 잘해서 황제의 눈에 들었다는데 여기 지하궁전에 까지 손을 대다니, 소문대로 수완이 대단하네. 근데 너한테는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
“이름을 물어봤어요. 제 이름을 기억하겠다고...”
“뭐라고?”
“아, 아니에요. 아버지. 그냥 예쁘다고 하시고 가셨어요.”
기련이 자신이 한 말을 수습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기련의 아버지 장파형은 입이 귀에 걸릴 만큼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이 무슨 상서로운 일이냐. 내가 네 덕분에 말년에 운이 트이겠구나. 으하하하하”
기련은 아차 싶었다. 아버지가 또 무슨 말을 하고 다닐지 걱정스러웠다. 기련은 급히 화제를 돌렸다.
“아버지, 집에는 언제 다니러 오십니까. 어머니도 걱정 많이 하고 계세요.”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니 쉽게 짬이 나질 않는구나.
일간 집에 들를 것이니 네 어머니께 걱정 마시라고 말씀 드려라.”
장파형은 연신 싱글벙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지하궁전을 나서며 기련은 괜히 수선스런 일만 만들었다 싶어 마음이 언짢아졌다. 설이는 그런 기련을 위로했다.
“어르신이 그러시는 거 어디 한 두 번입니까.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아가씨.”
“한 두 번이 아니니 이러는 것 아니니. 그런 대단한 분과 말을 섞었으니 그것 가지고 또 무슨 이야기를 지어내실지.”
“그야 뭐, 이번엔 우리 딸이 무녀 청의 수제자가 되어 큰 사업가가 될거다, 이 정도 아니겠어요?”
“사업가는 무슨, 그 단사 목걸이나 한번 걸어봤으면 좋겠다. 너도 보았지? 참 예쁘지않니?"
기련은 설이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갔다.
*****
청부인은 지하궁전에서 나와 황궁으로 향했다. 처음부터 황제가 순행에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황제를 만나기 위해 나선 길이었다. 함양에는 여러 개의 궁전이 있었는데 황제가 실제로 살고 있는 궁전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황제가 먼저 부르지 않아도 자유롭게 황제의 거처에 드나들 수 있는 사람. 그것만으로도 황제가 청부인을 얼마나 아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번 순행은 어떠셨는지요.”
“갈수록 순탄치를 못하고 거칠어지는 것 같소. 꿈자리도 그렇고”
“박랑사의 변고 이후로 보안을 더 철저히 하고 계시질 않습니까.”
“황제가 되어 제 나라를 순행하는 일 조차 숨어서 해야 하다니.”
“통일의 대업을 이루신지 이제 겨우 10년입니다. 도처에 성난 기운도 차츰 가라앉겠지요.”
“함양엔 어쩐 일이오. 순행 떠나기 전에 들어오라 일러도 그리 오지 않더니.”
황제는 서슴없이 서운한 기색을 내비쳤다. 청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황제를 달래듯 말했다.
“이리 갑자기 오면 더 반기실까 하여.”
“그대가 나를 쥐었다 놓았다 하는구려.”
황제가 웃었다.
“지하궁전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강과 바다길이 만들어졌더이다. 이제 물길을 채우셔야지요.”
“사방에 황제를 해치려는 이들만 득시글거리는데 영생은 무슨 소용이며 지하궁전은 또 무슨 의미가 있겠소.”
“태자 부소의 일로 여태 상심해 계십니까?”
순간 황제의 표정이 굳어졌다.
“황제의 일을 가로막는 자, 그것이 아들이고 태자라 할지라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요.”
“그래서 북쪽 변방을 지키라 황명을 내리셨고 태자 또한 벌을 달게 받고 있지 않습니까.”
“벌이라는 것이 달기야 하겠소.”
“부소 태자의 성정을 모르십니까. 태자 중에 누구보다 온순하고 정직한 성정이 아닙니까.”
“그렇지. 부소의 성정이야 그러하지.”
그때, 가구처럼 방 한 켠에 서있던 환관 조고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청부인은 환관 조고가 서 있는 곳에서부터 미세하게 일렁이는 공기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청부인이 목에 걸고 있던 붉은 목걸이를 풀러 자신의 손에 올려 놓으며 말했다.
“지하궁전의 물길은 이 단사로 채울까 합니다.”
“귀한 불로장생의 명약으로 지하궁전을 채울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그 큰 물길을 어떻게 다 채우겠단 말인가.”
“연금술사 갈홍의 기록에 이 단사에 열을 가하면 은색의 액체가 된다고 말씀 드렸었지요. 진작 그 방법은 알았으나 많은 양을 얻는 데는 이르지 못하여 고심을 하였었는데 이번에 그 방법을 알았지요.”
“그 방법이란 게 무엇이오?”
“온도였습니다. 아주 높은 온도로 오랫동안 열을 가하면 가능도 하겠더이다.”
“온도라. 진정 그대는 해내지 못하는 게 무엇이오.”
황제가 기뻐하며 웃었다. 무녀 청은 황제를 진심으로 웃게 할 수 있는 여인이었다.
청부인이 황제를 알현하고 나오는 길에 환관 조고가 배웅을 위해 따라 나왔다. 청부인과 환관 조고는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청부인이 먼저 침묵을 깼다.
“오늘따라 배웅이 깁니다. 할 말이라도 있으신 게요?”
환관 조고가 입을 열었다.
“황제께서 요즘 도통 황비들을 찾으시질 않으시어...”
“환관은 참으로 뻔뻔하십니다. 황제의 침수 문제까지 내 손을 빌리겠다 이 말씀이오?”
“황제께서 유독 청부인께만 마음을 여시니 드리는 말씀이지요.”
“답답하십니다. 제게 그러실 것 없습니다. 황제 곁에 늘 계시는 분은 환관이십니다. 제가 아니구요.”
황궁을 나서는 청부인은 언짢았다. 속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데도 매번 대놓고 자신을 경계하는 환관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황제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없도록 만드는 이가 환관 조고 같기도 하였다.
환관 조고는 황궁문을 나서는 청부인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그 일이 청부인을 보면 떠오르곤 했다. 과부의 처지인 청부인이 황제에게 더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오랜 세월 황제와 가깝게 지내고는 있지만 황제와 청부인은 늘 최소한의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였다. 청부인은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어 가업을 이어받아 일구면서 황제를 알게 되었다. 청부인의 광산에서 단사가 다량으로 발견 되었고 불로장생의 명약을 원하는 황제에게 단사가 들어간 약을 바치면서 신임을 얻었다. 그 후 황제는 물심양면으로 무녀 청의 사업을 도왔다. 황제의 보살핌으로 여러 이권을 얻을 수 있었고 그 덕에 청부인은 손을 대는 사업마다 날로 번성해 갔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면서 청부인은 알게 되었다. 황제의 청부인을 향한 관심과 배려가 불로장생의 약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전쟁이 계속되던 중에도 전투가 끝나면 황제는 어김없이 청부인을 찾아왔다. 청부인의 사업이 잘 되고 있는지를 물었고 때론 심신의 고단함을 토로하며 잠을 청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청부인은 진심으로 황제의 평안함을 위해 애썼다.
어느 날은 짧게 단잠을 자고 일어난 황제가 황제의 약을 만들고 있는 청부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의 말없음이 가장 큰 위로였구나.”
“무슨 말씀이신지요.”
“무엇을 바란다 청하는 법이 없고, 언제 오라고 말하는 법도 없으니. 그대의 있는 듯 없는 듯 함이 나에게 더없는 평안이다.”
그날, 청부인은 자신의 마음을 알았다. 황제가 돌아간 후 황제가 남긴 말을 두고두고 곱씹고 생각했다. 황제가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