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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왕의 앙칼진 토끼
작가 : 새콤달콤78
작품등록일 : 2017.7.11

왕비는 토끼로 태어났다. 라벨라는 600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미래(2016년)로 왔다. 그녀가 환생한곳은 궁전이다. 운이 좋았구나 생각도 잠시 그는 자신의 몸을 보며 비명을 내질렀다. 인간이 아니었다. 토끼였다.

게다가 이 궁의 주인인 왕은 사자에게 살아있는 토끼를 먹이로 주는 인간이다. 언젠가 라벨라토끼도 사자의 먹이가 될 것이다. 그것도 산채로 말이다.


왕비의 영혼을 가진 토끼. 다시금 인간이 되고 싶은 토끼. 말하는 토끼. 맹수 같고 약간 돌끼있는 남주. 현시대의 몇 안되는 권력을 가진 왕인 남주.

 
15.토끼로 환생한 왕비
작성일 : 17-07-25 21:16     조회 : 223     추천 : 0     분량 : 7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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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끼는 가끔 카시안과 함께 집무실로 향했다. 카시안은 집무실에서 일하고 토끼는 그 방에 연결된 도서관을 이용했다.

 토끼는 책에서 눈을 떼질 못했다. 전생에도 책을 그리 좋아하진 않았지만 이 세계의 책은 참 흥미로웠다. 지나간 600년이라는 시간을 알 수 도 있고 온갖 재밌는 이야기로 넘쳐났다.

 다만 손이 섬세하지 못해 스스로 책을 꺼내서 읽을 수 없다는게 아쉬웠다. 그래도 카시안이 미리 읽고 싶어하는 것들을 꺼내어 책상에 쫙 펼쳐놓은 덕분에 나름 수월했다.

 그렇게 하루는 빨리도 지나갔다.

 

 

 *

 성내는 분주해졌다. 곧 있을 카시안의 생일준비로 바빠져서였다. 각국에서 사절단이 선물을 보내왔다. 초대된 의원들은 부인 딸들과 함께 왔다.

 사실 왕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것은 명목일 뿐이고 자신의 딸을 왕에게 들이밀려는 수작을 부리는 자들도 있었다.

 아직 30대 초반의 미혼 왕. 잘생기고 능력도 많은 이 나라의 최고의 군주를 거부할 자는 없었다. 말 그대로 왕의 시선을 사로잡으면 하루아침에 신데렐라가 되는 것이었다.

 카시안은 그런 것을 알기에 생일파티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결국 이런 것도 다 사교활동이기에 신경 쓰이고 피곤한 건 똑같았다. 매년 맞이하고 딱히 새로울 것도 없는 지루한 연례행사 중 하나였다.

 카시안은 나른한 표정으로 토끼와 티비를 시청하고 있었다.

 토끼는 어느새 티비라는 것에도 별 괴리감을 두지 않았다. 처음에 토끼가그것을 보았을때 이리저리 보더니 괜스레 이상하다며 툭툭 쳐보곤 했었다.

 카시안이 티비가 어떤 것인지 설명하자 토끼는 이내 수긍했고 어느새 티비보는 것을 즐겼다.

 그는 턱을 괸 채 힐끗 토끼를 보았다. 토끼는 티비에 초집중을 하고있는 상태였다.

 그때 카시안은 별안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 지겨운 행사를 흥미롭게 만들 방법을 말이다. 카시안은 토끼에게 말했다.

 

 “루아~ 너도 생일파티에 가자꾸나”

 

 카시안은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의 눈처럼 빛났다.

 

 “웅? 뭐라고?”

 토끼는 무슨 소리인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시대의 사람들과 어울려 있다보니 토끼는 어느새 말투가 조금씩 달라졌다.

 라벨라가 그다지 궁중 문화에 적응을 못 한 탓에 궁중말투가 원래 서툴렀던 탓도 있었고 현대식 말투를 자주 듣다보니 자신도 어느새 그말에 익숙해지기도 했다.

 카시안은 개인적으론 하대 말투가 더욱 좋다고 했었다. 현대식말을 쓰면 놀리는 재미가 떨어진다고 말이다.

 어쨌든 토끼는 너무나 당황해 카시안의 말을 다시 물어보았다.

 당황한 토끼표정을 보더니 카시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의 생일이니 네가 함께 축하를 해줘야지 않겠느냐.”

 “음..”

 

 토끼는 자신이 인간 생일파티에 가는 것을 상상해보았다. 연회에 왕이 토끼를 데리고 등장하는 것을 상상하니 생각만 해도 우스꽝스러웠다. 하지만 카시안의 고집을 어떻게 막으리.

 이미 카시안은 비서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토끼 옷 잘 만드는 사람에게 시켜 토끼에게 가장 귀엽고 화려하고 예쁜 옷을 만들라고 한 뒤였다.

 추진력 하나는 지나치게 빨랐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다는 말로 통화를 끝냈다.

 카시안은 멍하니 어떤 토끼 옷이 만들어 질까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깜찍하고 귀여운 벌꿀모양 옷도 괜찮겠고 나름 연회이니 드레스도 괜찮을 것 같았다. 카시안은 그걸 생각하니 어느새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그런 상상을 하며 그는 티비를 무심히 쳐다봤다. 티비속에는 여러명의 여자들이 춤을 추고있었다.

 

 카시안은 쉬는 것도 잠시 비서의 전화를 받고 자리를 비웠다. 생일 파티로 여러 가지 준비할게 많았다.

 

 토끼는 혼자 남아 여전히 티비속 여자들은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티비를 향해 궁딩이를 흔들다가 몸을 이리저리 베베 꼬는 것을 반복했다.

 

 ‘에휴.. 하여간 요새 것들은..’

 

  짧은 치마와 상당히 야한 차림의 그녀들은 섹시함을 뽐내는데에 일가견이 있는 듯했다.

 토끼는 카시안이 그 여자들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보고있던것을 떠올렸다. 그것이 못내 질투가 났다.

 

 토끼는 쯧쯧거리며 티비에서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어느새 시선은 티비에 사로잡혀 있었다.

 토끼는 그녀들의 동작들을 유심히 살폈다. 다리에서 머리까지 물결치는 자연스럽게 흐르는 몸짓과 요염하게 엉덩이를 살짝씩 흔드는 것까지 눈이 떼지질 않았다.

 그러더니 토끼의 발이 살며시 리듬을 타는가 싶더니 요망한 흰꼬리가 위아래, 좌우로 들썩거렸다.

 토끼는 티비를 더 자세히 보기위해 소파에서 탁상위로 올라갔다. 이번엔 아예 앞발을 들고 일어서서 그녀들이 하는 동작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내가 한때 춤으로 좀 날렸지.’

 

 토끼는 자신감 넘치게 그녀들의 동작을 따라했다. 여자가 팔을 올리며 골반을 살랑살랑 흔들자 토끼도 그것을 따라했다.

 분명 섹시한 동작이건만 토끼가 하니 귀여운 율동이 되었다. 요리보고 조리봐도 도리도리 짝짜꿍이었다.

 웨이브랍시고 다리에서부터 얼굴까지 그루브를 탔지만 몸이 짧아 웨이브가 아니라 몸부림이 되어 버렸다.

 한참을 토끼가 섹시춤 삼매경에 빠져 있을 때 카시안은 일을 마무리하고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방안을 들어가지 못하고 멈칫했다. 그의 토끼가 이상했다. 이리저리 요망한 하얀 궁디를 흔들다가 이리저리 몸을 훌라훌라 꿈틀대는 것을 반복했다.

 

 ‘뭐 하는 거지?’

 

 토끼를 보곤 팔불출처럼 짐의 토끼는 춤도 출 줄 안다며 칭찬할 줄 알았지만 이상하게 그의 안색은 급격히 나빠졌다.

 

 ‘......발정인것인가..’

 

 발정이 심하면 고통스럽다고 들은 카시안은 토끼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섹시한 춤이 한순간에 구애하는 현장으로 탈바꿈되었다.

 카시안의 이런 생각을 모르는 토끼는 여전히 춤 삼매경에 빠졌다. 짝짓기 춤을.

 꿀렁 꿀렁.

 

 

 *

 카시안은 익숙하게 토끼방에 들렀다. 그는 뒤에 뭔가를 감추고 있는 듯 한 손을 등 뒤로 돌리고 있었다.

 그는 토끼를 깜짝 놀래 켜 줄 생각에 살짝 들떠있었다. 그의 토끼는 그를 보더니 그에게 폴짝폴짝 뛰어 다가왔다.

 

 “루아야~내가 뭘 가지고 왔는지 아느냐.”

 

 그는 수줍은 듯이 웃었다. 그러더니 뒤쪽에 감춰 둔 물건을 토끼앞으로 내밀었다. 그것은 네모나고 얇고 검을뿐 별 특이한 건 없어 보였다.

 

 “이게 무엇이냐.”

 

 토끼는 귀를 펄럭이며 양쪽으로 한 번씩 갸우뚱 거렸다.

 

 “핸드폰이라는 것이다”

 “핸드폰? 그게 무엇이냐.”

 “아무리 멀리있어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해주는 것이지. 성안에 있든 밖에 있든. 심지어 외국에서도 가능하다.”

 “그게 진짜냐.”

 토끼는 차 티비 그리고 세번째로 핸드폰이라는 물건에 심히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편리한게 있었다니.

 

 “한번 사용해보겠느냐.”

 

 충격도 잠시 토끼는 열심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카시안은 바닥에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토끼가 들기엔 무거워서였다.

 토끼가 간단히 전화정도만 할 수 있게 그는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그에 맞춰 토끼도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궁금한것은 질문을 했다.

 

 “자 이제 실제로 해보자꾸나. 아까 가르쳐준 대로 해보면 되느니라.”

 

 그러더니 카시안은 방을 잠시 나갔다. 토끼는 두근두근 설렜다. 살짝 떨리는 손으로 버튼을 눌렀다.

 손이 그다지 섬세하지 못해 잘 눌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몇번 시도를 하니 신호가 조금 간다 싶더니 휴대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들리느냐. 루아야~”

 “헉. 진짜 카시안이냐.”

 

 카시안이 다시 방문을 통해 등장했다. 웃음을 한껏 머금은 채였다.

 

 “언제든지 목소리가 듣고 싶으면 연락하거라.”

 

 카시안은 화사하게 웃었다. 카시안은 토끼가 말도 하고 티비도 볼줄 아니 핸드폰 사용도 어느정도는 가능할 거라 여겼다. 자신이 외국같이 먼 곳에 갈 때 그럴 때 사용하라고 마련한 것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그의 토끼는 너무나도 영특하게 신문물 사용법을 잘 받아들였다. 그는 흐뭇한 미소를 짓더니 덧붙여 말했다.

 

 “단축번호를 눌러도 되지만 말로 해도 된단다.”

 “말로 어떻게?”

 

 카시안은 토끼의 호기심 어린 모습에 웃음을 잠시 참으며 말했다.

 

 “이 버튼을 누른 후 ‘카시안에게 전화걸어죠’ 라고 해보거라.”

 카시안의 말대로 하니 카시안의 휴대폰이 울렸다.

 “오호”

 토끼는 실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몇백 년이라는 시간은 그저 아무 이유없이 흐른 게 아니었나보다.

 라벨라는 신문물의 재롱에 신이 나서 그 물건 주위를 한바퀴 후두두 거리며 돌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공중에서 한번 몸을 꿈틀 거려 주었다.

 

 

 *

 생일 파티 당일이 되었다. 창가로 보니 성내로 사람들이 차를 타고 하나둘씩 도착하는 것이 보였다. 나빈은 토끼에게 옷을 입혀주고 있었다.

 토끼에게 이상한 옷을 만들어준 적이 있는 나빈이 토끼를 관리하는 새로운 하녀로 뽑혔다.

 궁밖에서 새로운 하녀를 뽑는다는 공지도 내려서 여러사람이 후보자가 되었었다. 하지만 딱히 적당한 사람도 없고 기존에 있던 사람이 나을 것이란 판단에 원래 궁내 하녀였던 그녀가 뽑혔다.

 그녀가 레리안 강아지 옷을 잘 만들어줬다는 것이 큰 이점으로 작용했다. 물론 변태스런 옷을 만들었던 것은 감정 요인이었지만 동물을 좋아하고 알레르기가 없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나빈은 금발을 하나로 단정히 묶고 있었다. 토끼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인간이었을 때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도 금발의 긴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를 계속 보다보니 자신과 닮은것도 같았다.

 나빈은 혼잣말로 장인이 몇날 며칠을 고생해서 만든 것이라며 말을 덧붙였다. 그말을 들은 토끼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여 결혼이나 해서 애한테 이러지. 이게 다 뭔 부질 없는 짓이랴. 좋은 색싯감 만나서 결혼이나 하면 좋으련만.’

 

 라벨라 토끼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20대 초반의 영혼이지만 카시안이 몇백년에 걸친 후손이라는 것을 알아서 인지 자꾸 할머니처럼 그를 걱정하게 됐다.

 물론 이칸과는 자식이 없긴 했지만 자신이 앞선 시간을 살았다고 자꾸 할머니에 빙의했다.

 거울 앞에 서니 벨벳 소재의 빨간드레스가 눈에 띄었다. 사람에게 입혔으면 치명치명했을 빨간색과 디자인이었다.

 

 ‘카시안이 이런 취향이었군. 저번 부터 알아 봤어야 했는데..’

 

 카시안이 자신에게 입히려 마련한 옷은 참으로 희한했다. 그옷은 동물의 옷이라기엔 요염했다.

 카시안은 저번 다이닝룸에서 이젠이 공모해서 그런 섹시한 옷이 생긴것이라고 이젠을 몰아가려 했었다.

 하지만 사실 그 일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이젠이 한 일이라는 것은 처음에는 흥미로웠지만 왕이 변태라는 것에 버금가는 획기적인 사실은 아니었다. 비서가 변태라는 것보다는 왕이 변태라는 것이 고용인들 사이에서 더 흥미로웠다.

 거기에 그쳤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왕과 비서 둘이 같이 그런쪽 취미라는 소문이 퍼져버렸다. 왕도 변태, 그의 부하 비서도 변태. 이두명은 변태에서 최고의 쌍두마차가 되어버렸다.

 토끼는 이젠의 실수로 인한것인 것을 몰랐다. 그랬기에 그저 카시안의 성적 취향을 또 한번 확신하는 계기가 되어버렸다.

 

 ‘그나저나 내춤을 보고 왜 그런 반응을 한것이지.’

 

 카시안은 토끼의 춤을 보고 발정을 심해진 것 같다며 하루빨리 짝짓기를 시켜주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 바람에 토끼는 그를 말리느라 진땀을 뺐다.

 토끼는 괜찮다며 자신이 견디기 힘들 정도가 되면 그때 짝짓기든 중성화를 하자고 했다.

 에휴 토끼인생,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다시는 카시안 앞에서 춤을 추지 않겠다며 토끼는 굳은 다짐을 했었다.

 

 토끼는 킁 거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빨간 리본을 귀앞 머리에 꽂으니 말광량이 같이 보였다.

 적당히 올라간 까만 속눈썹에 눈주위는 갈색 아이쉐도우를 바른듯했다. 앙증맞은 분홍코와 하늘높이 솟아오른 갈색귀가 오늘따라 더욱 깜찍해보였다.

 옷을 입혀주던 하녀는 연신 귀엽다는 말을 연발했다. 토끼는 속으로 어쩔수없다는 듯 그녀의 말을 인정했다. 자신이 봐도 인형 같던걸 뭐.

 내심 의기 양양해진 토끼는 직접 카시안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깜짝 놀래켜주자.’

 

 연회준비로 바쁜 그는 의상실에서 옷을 입어보고 있다고 했다. 궁내를 잘 아는 토끼는 하녀가 다른 것을 정리하는 사이 몰래 문을 나섰다. 카시안 집무실 근처 복도는 조용했다. 전부 연회장에 가 있는 듯했다.

 

 복도를 열심히 뜀박질하던 토끼는 갑작스러운 장애물에 끼익하고 멈춰섰다.

 

 위를 올려다보니 갈색머리를 허리까지 흐트러뜨린 여자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짧은 하얀 옷이 여자의 몸라인을 따라 자연스럽게 내려왔다. 연회장 손님인 듯 했다.

 

 “왜 이런데 있어.. 길을 잃은 거야?”

 “...”

 여자는 친절이 몸에 밴 듯 조심스레 토끼를 들어올렸다.

 

 ‘그런데 웬 손님이 왕 전용 방들이 있는 곳에 있는 거지..’

 

 2층은 왕을 위해 마련한 공간들이다. 일부 고용인들을 빼고는 잘 드나들 수가 없었다. 하물며 외부인은 말할 것도 없었다.

 

 ‘카시안의 손님인가..’

 

 2층 접대실은 일부 카시안과 친밀한 사람만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다. 보통은 1층 접대실과 알현실을 이용했다.

 토끼를 두 손으로 든 채 여자는 뚜벅뚜벅 복도를 걸었다. 어느새 방앞에 멈춰서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이젠?’

 

 그녀가 간 곳은 왕의 접대실이었다. 비서는 토끼를 보더니 잠시 멈칫하는가 싶더니 보고를 한 뒤 문을 열어주었다.

 

 카시안은 텅 빈 방안에서 불안하리만큼 서성거리고 있었다. 3년만에 보던 얼굴인가. 이제 곧 그녀가 올 것이다. 첫사랑을 보는 기분은 이상하게 초조하고 불안했다.

 처음으로 진심으로 좋아했던 여자였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과 레리안을 저울질하다가 자신을 버리고 레리안에게 가버렸다.

 그 후로 얼굴을 보이지 않던 그녀는 3년만에 카시안의 생일을 축하한다며 보기를 요청했다. 카시안은 단칼에 거부하지 못했다.

 이제 곧 저 문으로 그녀가 올텐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리가 뒤죽 박죽이었다.

 비서의 손님이 도착했다는 알림과 함께 문이 열리고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여전히 청순한고 매력적이었다. 시간이 그녀만 비껴간 듯 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우아해 보였다.

 그리고 카시안은 자신이 사랑한 여자가 누구보다 매력적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그의 눈엔 그녀의 손에 들린 하얀 토끼는 보이지 않았다. 토끼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한참 후였다.

 여자는 어설프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야. 시안.”

 

 애정을 듬뿍 얻은 카시안의 애칭. 시안. 그것을 들은 카시안은 다시금 떠오르는 아픈 추억을 떠올렸다.

 어설프게 인사한 카시안이 토끼에게 시선을 돌리자 여자는 복도에 있던 것을 들고 왔노라 말했다.

 카시안은 자신의 토끼라며 단단으로 말한뒤 어설프게 차가운 남자 흉내를 내었다. 여자는 그런 카시안을 잘 안다는 듯 피식 웃으며 토끼를 건네주었다.

 토끼는 두사람 가운데에 있는 테이블로 폴짝 뛰었다. 토끼는 연인들 가운데에 어설프게 끼였다. 토끼는 엉덩이를 깔고 그들을 번갈아 보았다.

 

 ‘이것들 분위기가 왜이래. 딱 헤어진 옛날 연인 만나는 느낌이네..’

 

 날선 감각으로 토끼는 그들의 관계를 알아차렸다. 카시안을 보니 자신 덕분에 애써 환하게 풀린 얼굴이 석고상처럼 굳어 버렸다.

 그의 표정을 보니 토끼는 확신했다. 그리고 이 여자가 레리안과 카시안을 저울질하던 여자라는 것도 직감적으로 알았다.

 

 ‘헤어지면 헤어진거지 다시 왜 만나니.. 이 바보야.’

 

 어쩐지 미련이 뚝뚝 흘러내리는 카시안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답답함이 치밀어 올랐다. 그래도 이번을 마지막으로 잘 정리하면 좋겠다는 바램을 담아 한편의 연인극을 볼 준비를 마쳤다.

 

 “잘 지냈어?”

 

 여자가 먼저 헤어진 연인의 단골 멘트를 날렸다.

 그 말을 들은 카시안은 주억 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치를 잘하면 뭐하냐고. 사랑 정치엔 저렇게 쑥맥인데..’

 토끼는 혀를 끌끌 찼다.

 

 ‘요즘말로하면 딱 호구네.’

 

 레번을 통해 호구란 말을 배웠다. 라벨라 왕비님은 요즘말로 치면 딱 호구였다고. 남자가 필요한건 다해주고 이용만 당하다가 버려지는걸 요샌 그렇게 말한다고 했다.

 배운 말은 찰떡같은 써먹는 토끼가 아니던가.

 그는 카시안을 호구라고 칭했다. 왕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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