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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천사는 울지 않는다
작가 : 소설부부
작품등록일 : 2017.7.15

영겁의 세월동안 고독과 마음의 평온만을 추구하던 천사 프라.
그가 복잡한 관계로 뒤얽힌 지구의 삶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

...팽팽한 긴장의 줄을 싹둑 잘라 먹었다.

모두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라는 잔뜩 힘주어 숨을 참고 있던 참이었었다.

에이씨. 지지려면 빨리 지질 것이지. 할랑 말랑 하는 게 더 고문인 거 모르나.

키가 보통 명마보다 큰 흑마는 구경꾼들을 당당하게 가르고 장교 앞에까지 왔다.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검은 후드망토를 길게 늘어트린 존재가 말 위에 앉아 있었다.

 
당할 수 없는 놈을 산 채로 잡는 방법
작성일 : 17-07-25 19:53     조회 : 278     추천 : 0     분량 : 7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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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아 카아아아 드으으으으!!!!!!!!!!”

 

 좁은 밀실을 채우는 물은 빠르게 그녀를 잠식해갔다.

 

 철컹!

 

 소리와 함께 천장에서 한꺼번에 빛다발이 쏟아져 들어왔다. 빛을 등진 검은 실루엣이 작은 네모난 입구를 통해 그녀를 내려 보고 있었다.

 

 외투를 벗어던지고 다리부터 밀어 넣는 모습에 세라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첨벙,

 

 그녀 앞에 아카드가 마주했다. 세라에겐 턱까지 차고 올라온 물이 그에겐 가슴 높이였다. 그의 눈이 세라를 안심시키려는 듯 차분하게 홍안을 잠시 응시했다.

 

 하지만 그것도 말 그대로 잠시일 뿐 그의 움직임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족쇄를 풀기 위해 손으로, 검으로 온 몸을 사용해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수위가 그녀의 입을 막아버리자, 턱을 치켜들고 입으로 들어오는 물들을 뱉어냈다.

 

 물속에서 번쩍이는 섬광이 요란했다. 쿵쿵 거리는 소리가 물에 퍼져 울렸다.

 

 계속해서 철로 된 문을 검으로 발로 가격하는 그의 몸부림이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철컹!

 

 천장의 네모난 입구가 막혀버렸다.

 

 결국, 아카드도 함정에 빠져버렸다.

 

 아카드는 이미 예상했는지,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확인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물이 그녀의 얼굴을 조금씩 덮고 올라왔다. 크게 호흡을 삼킨 그녀는 물속에서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죽음을 초월한 듯 족쇄를 향해 끊임없이 검을 휘두르는 그의 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했다.

 

 꿈쩍도 하지 않는 강철문은 그가 넘을 수 없는 적이라는 것을 세라가 먼저 인정하기 시작했다.

 

 말코족 남자가 괜히 폼 잡았던 게 아니었어.

 

 그 남자는 분명 우리를 무대에 세우겠다고 했잖아.

 

 이렇게 죽이려는 게 그의 계획은 아닐 텐데.

 

 하지만 숨이 막혀 곧 죽을 것만 같아.

 

 그런데……그러기 전에 잠이 들어 버릴 것처럼 정신이 몽롱했다.

 

 아카드가 뒤를 돌아보고 세라가 숨을 참고 있는 것을 보고는 놀라, 다급히 수면 위에서 공기를 들이쉰 후 그녀에게 불어 넣어줬다.

 

 문을 공격하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족쇄를 어찌해보려는 노력을 했다.

 

 그러다가 세라의 숨쉬기가 곤란 해 지기 전에 호흡을 불어넣는 일을 반복했다.

 

 점점 그의 눈에 서린 불안과 다급함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세라의 눈꺼풀이 점점 감겨 들려하자, 빰을 때려 깨워야했다. 힘겹게 전달해 준 숨을 그녀가 놓치기 시작했다.

 

 아카드는 다시 재빨리 올라 숨을 삼켜 그녀에게 전해줬지만 그녀의 입이 벌어지며 공기방울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사라졌다.

 

 숨을 삼키지 못하는 그녀를 위해 포기하지 않고 몇 번이고 공기를 불어넣었다.

 

 결국 의식을 잃어가는 세라를 눈앞에 둔 그의 표정은 두려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어린 아이처럼 굳어갔다.

 

 

 

 

 **

 

 

 

 

 말코족 본영.

 

 

 

 “재투입 된 암살단한테서 아직 인가?”

 

 

 말코족 대장 자히라는 부하들을 닦달했다.

 

 

 ‘암살단 중에 살벌한 놈들이 있습니다.’

 

 

 하며 자신만만하게 추천했던 자들이 함구하고 있었다.

 

 결국, 자히라의 오른팔이 나서서 조급함을 달래기로 했다.

 

 

 “조금만 기다려 보십시오. 새로 온 암살대장이 첫 번 시도는 실패했지만, 원로들이 추천한 자 아닙니까. 지금으로써는 그가 최선책입니다.”

 

 “그렇습니다. 저희 부족의 가장 무서운 적은 사실 사람들이 아니잖습니까. 북쪽에서 시도때도 없이 출몰하는 괴수들이야 말로 적 중에 적이죠. 그런 괴수들을 막아내고 쓰러트리는 전사들 중 단연코 최고라고 합니다. 아스란엔 아카드 카라스가 있다면, 우리에겐 키시쿠멘이 있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입니다.”

 

 

 부하 중 누군가 말했다.

 

 말코족이 남쪽으로 내려오려고 호시탐탐 카라스를 쑤셔대는 이유도 바로 북쪽의 괴수들 때문이었다.

 

 자히라도 키시쿠멘의 명성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남쪽 카라스 국경지대의 난제를 해결해 달라는 원로원의 부탁을 키시쿠멘은 수년간 받아왔지만 좀처럼 자리를 뜰 수 없는 상황에 북쪽에만 머물러 있던 전사였다.

 

 

 “그래도 짐승이 아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인데 그렇게 생각 없이 무대포로…….”

 

 

 다시 생각해도 기가 찼다. 세라 파갈이 탄 마차를 탈취하는 것까지는 나쁘지 않았지만 아카드 카라스와 정면으로 싸우다니. 무식해도 그런 무식한 전술은 처음이었다.

 

 

 “북쪽에서 괴수들만 상대하다가 머리가 완전히 굳어 버린 게 아니길 바란다. 키시쿠멘.”

 

 

 자히라는 중얼거렸다.

 

 

 

 **

 

 

 

 

 “세라 파갈.”

 

 

 세라는 눈을 떴다. 지독한 현기증을 느끼며 정신을 차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흐린 시야 사이로 높은 천정과 기둥들이 들어왔다.

 

 

 “잠꾸러기 아가씨, 이제야 일어났네.”

 

 

 저 조곤거리는 말투에 정신이 후다닥 돌아왔다.

 

 

 “남자 주연 배우는 무대에 선지가 언젠데 상대 여배우가 잠만 쿨쿨 자고 있으니, 쯧쯧. 관객들이 들고 일어서기 전에 무대에 오르는 게 좋지 않을까?”

 

 “아카드는? 아카드를 어떻게 했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다짜고짜 물었다. 어둠과 긴장 속에서 보지 못했던 말코족 납치범의 뚜렷한 모습이 들어왔다.

 

 황금안을 담고 있는 얼굴선이 마치 여자처럼 고왔다. 그렇지만 맹금류의 강렬한 눈빛과 반듯한 콧날, 두툼한 아랫입술은 현란한 문신 속에서도 남성의 매력을 부드럽게 풍기고 있었다.

 

 

 “……이런 목소리였구나, 세라 파갈. 마음에 드는데.”

 

 

 황금빛 눈동자가 햇살에 반짝였다. 눈의 모양대로 그려진 붉은 선이 금색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고 세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런, 이놈의 문신 때문에 내 감정을 숨길수가 없다니까.”

 

 

 그가 눈꼬리에 그려진 작은 둥근 점을 누르자 원래의 붉은 선으로 돌아왔다.

 

 이 남자는 대체 또 뭐야?

 

 세라가 기다리지 못하고 입를 열려하자,

 

 

 “내 이름은 키시쿠멘. 네가 자는 동안 수차례 말해줬지만, 기억 못 하…….”

 

 “아카드…….”

 

 “당신 덕에 몸값 비싼 주연배우 섭외에 성공해서……무대에 올려…….”

 

 “아카드는…….”

 

 “이제 무대를…….”

 

 

 세라는 조급함으로 그의 말을 자르고 키시구멘은 서운함으로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래서 죽었다는 소리야 살아있다는 소리야?”

 

 “어허, 아가씨 성미 하고는……실컷 푹 자고 어제 깨어났으니까 걱정 마.”

 

 

 다행이었다. 아카드가 아직 살아있다니.

 

 그녀의 상체를 훑어 내려가는 눈빛이 수상하여 세라는 자신의 몸을 내려 보았다. 얇은 속옷차림으로 갈색 모피 속에 파묻혀 있었다.

 

 얼른 몸을 가리자, 그가 피식 웃으며 벽난로 옆에 걸어 둔 그녀의 옷을 가져다주었다. 건네주는 손길이 다정스럽기까지 했다.

 

 그에게서 돌아 앉아 옷을 입으며 주변을 살폈다. 무너진 벽의 틈을 통해 꽤 많은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이곳저곳 패이고 내려앉은 계단.

 

 쓰러진 기둥 뒤로 무너져 내린 육중한 문설주.

 

 사지와 목이 절단 된 거대 석상들.

 

 시간과 추위에 낡고 황폐해진 것이 아닌 전쟁의 바람 앞에 빛을 잃은 찬란한 존재의 비참한 종말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거대한 창을 통해 멀리 펼쳐진 웅장한 협곡의 하얀 굴곡들과 층들이 내려다보이고 있었다.

 

 시선을 사로잡는 그 광경으로 인해 이 성이 굉장히 높은 지대에 축성되었음을 짐작케 했다.

 

 

 “꽤 멋진 성이지. 주변 경치도 절경이고.”

 

 

 주변을 살피던 세라는 뒤돌아 그를 마주했다. 그의 손에 은제 쟁반이 들려 있었다. 그 위에 수프를 담은 고급 식기와 은수저가 있었다.

 

 

 “5일간 잠만 잤으니 배고플 거야. 뒤져보니 쓸 만한 것들이 조금 있더군.”

 

 “……대체 원하는 게 뭐야?”

 

 “너랑 소꿉놀이.”

 

 

 그렇지 않아도 굳어 있는 세라의 표정이 더 딱딱해졌다. 그 모습에 그가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섬뜩한 짐승들이랑만 놀다가 모처럼 예쁜 여자랑 있으니 미치겠군, 하하하하하.”

 

 “……?!”

 

 “들짐승들이 별로 없어 날개 달린 놈 하나 잡아 끓였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니 맛은 좋을 거야.”

 

 

 세라의 무릎 위에 놓아주었다.

 

 

 “무대에 오르려면 체력이 뒷받침 돼야하니까 쓸데없이 엎어버릴 생각 따위는 하지 마. 당연히 이번엔……수면제는 타지 않았어.”

 

 “……수면제?”

 

 “근접 할 수도, 정공법으로도 당할 수 없는 놈을 산 채로 잡는 방법 중 하나지. 수면제를 푼 물에 빠트려 버리는 거. 카라스 영주가 주저 없이 함정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어. 짐승과 사람의 차이를 봤다고나 할까.”

 

 “…….”

 

 “짐승들은 새끼든 동료든 짝이든, 함정에 빠져버리면, 망설이며 주변을 서성일 뿐 그렇게 들어가지 않아. 그런데 영주는 함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잠시라도 네 숨을 연장시켜주고 싶은 나머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들어가 버렸지.”

 

 “…….”

 

 “카라스 영주, 아주 볼수록 화족다워. 근데 네가 두 번째 여자라니……뭔가 수상해.”

 

 크크크크. 세라는 키시쿠멘의 웃음소리에 눈을 감았다. 소리를 속으로 삼켜가며 웃는 저 웃음소리는 소름을 돋게 했다.

 

 제 정신이 아닌 자들이 흘리는 웃음소리였다.

 

 뭐하는 놈인 거야. 이놈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문신색깔이 어떻게 저리 변할 수 있는 거지. 어떻게 해야 하나.

 

 세라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떴다. 스프가 먹음직스럽게 그녀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래 일단 먹고 힘을 내자, 분명 무슨 수가 있을 거야.

 

 숟가락을 들어 스프를 뜨기 시작하자, 소름 돋는 웃음소리가 멈추고 조용해졌다. 맛이 좋고 부드러운 식감에 그릇의 바닥이 들어나기 직전이었다.

 

 흐뭇하게 바라보던 그가,

 

 

 “아무래도 매일 밤 널 끌어안고 자는 게 아니었는데.”

 

 

 쨍그랑! 들고 있던 숟가락이 떨어졌다.

 

 

 “……무, 무슨 소리야?”

 

 “뭐야. 벼락이라도 맞은 그 표정. 내가 널 안고 잤다는 게 그리 정색할 만큼 끔찍한가?”

 

 “또, 똑바로 말해.”

 

 “발각되면 안 되니까 밤에는 불을 피울 수 없어서 서로 체온을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잖아. 모피도 저거 하나뿐이고. 나야 좀 덜덜 떨면서 자면 그뿐이지만 보통 체력을 가진 넌 체온이 떨어지면 죽으니까.”

 

 

 마음을 졸이면서 그의 말을 끝까지 들어야 했다.

 

 

 “네 옷은 얇고, 숨을 넣어 주느라 입술이 닿았던 감촉이 떠오르고,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긴 시간 널 지켜보다 보니……점점 나도 모르는 사이 끌려 들어가는 거지.”

 

 “제발, 결론만 말해. 조곤조곤 설명할 필요 없으니까.”

 

 “크크, 너처럼 예쁜 여자를 두고 5일 동안 얌전히 등 돌리고 있었기를 기대하고 있는 거지 지금. 카라스 영주는 그렇게 해 줬나?”

 

 “…….”

 

 “정말? 영주가 그랬어? 결혼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거야?”

 

 

 그는 믿기 힘들다는 듯이 눈썹을 치켜뜨고 장난스럽게 세라를 요리조리 살폈다.

 

 

 “와우! 카라스 영주, 정말 알수록 빠져들게 만드네.”

 

 

 후우~ 미친 놈. 세라는 대답 듣기를 포기했다.

 

 

 “우리를 어쩔 셈이야.”

 

 

 

 **

 

 

 

 시갈은 어둠 속에 숨어 옛 카라스 성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흘 전,

 

 아카드를 폐가에 내려 준 후, 그곳이 보이는 나무 숲에 몸을 숨겼다. 축 쳐진 아카드와 세라를 마차에 실고 있는 말코족 5명이 바쁘게 움직였다.

 

 흠뻑 물에 젖고 의식을 잃은 상태이긴 했지만 죽은 것 같지 않았다.

 

 아카드가 죽었다면 자신의 눈, 코로 확인하지 않아도 그와의 분리를 분명히 느낄 것이라고 확신했다.

 

 마차가 출발하자, 멀찍이 거리를 두고 뒤를 밟았다.

 

 어둑어둑해지고 긴 협곡을 지나간 마차 뒤를 쫓던 발을 멈췄다.

 

 협곡 위에 바위틈새마다 잠복 중인 말코족의 미세한 움직임을 읽었기 때문이다.

 

 시갈은 이 협곡을 자주 와 봤다. 아카드가 이따금 찾는 장소가 이 협곡을 지나 조금만 동쪽으로 움직이면 나왔다.

 

 

 ‘시갈, 여기서 아버지를 만났지. 6개월 동안 함께 있었는데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어. 아버지가 날 알아 보시기엔 무리지. 완전히 엉망진창이었으니까.’

 

 

 주인은 흔들리는 마음을 추스르려 할 때마다 그곳에 갔다. 그곳에서 밤을 새우고 나오는 주인의 눈빛은 혼란을 종식시킨 상태였다.

 

 옛 카라스 성.

 

 옛 카라스성은 600년이 넘는 오래된 성이었다. 무수히 많은 역사가 그 성과 함께 시작되고 사라졌으리라.

 

 지금은 이따금씩 주인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곳이었다.

 

 저 말코족들이 주인과 세라를 그 곳으로 데리고 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숨어 있는 말코족에게 들키지 않고 저 협곡을 지날 수는 없었다. 자신이 이 협곡에서 죽으면 주인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먼 길을 돌아야 했지만 시갈은 조용히 뒷걸음질로 물러서 달리기 시작했다.

 

 돌아서 가면 하루 반나절 거리에 옛 카라스성이 있다. 그 곳에 주인과 세라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왠지 자신의 생각이 맞을 거라는 동물적 감각이었다.

 

 협곡 너머는 말 그대로 온통 눈에 쌓인 거친 계곡과 골짜기뿐이었다. 일반인들은 찾지 않는 곳이었다.

 

 그 동물적 감각은 적중했다.

 

 그의 향이 점차 희미해지기는 했지만 성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나흘이 지나도록 너무나 조용했다. 그러다 미세하게 주인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느꼈던 안도의 기쁨을 뒤로 하고 다시 이틀 반나절거리에 있는 본성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협곡을 지나면 하루면 되겠지만, 주인을 곧바로 죽이지 않고 생포하고 있다면 조금 더 기대해 봐도 되지 않을까?

 

 주인, 조금만 더 견뎌!

 

 

 

 

 **

 

 

 

 

 “한 눈 팔다 넘어질라, 발밑을 잘 봐야지.”

 

 

 납치범 주제에 마음에도 없는 배려심 넘치는 말들을 남발하는 게 거슬렸지만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밝은 회색 화강암 속에 박힌 유리결정들이 끊임없이 반짝이며 세라의 눈을 사로잡았다.

 

 카라스 본성이 검은 야수를 연상케 한다면, 이 거대한 폐성은 겨울을 관장하는 신이 머물었을 것 같은 웅장함과 찬란함이 폐허가 된 지금에도 자연스레 상상이 될 정도였다.

 

 전쟁만이 삶의 전부 같은 카라스 사람들에 의해 지어졌던 성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섬세한 예술적 감각과 표현기술이 뛰어났다.

 

 기둥마다 새겨진 덩굴장식과 꽃.

 

 뛰어난 불세출의 조각가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 수많은 조각상들의 흔적들.

 

 문마다 새겨 넣은 정교한 양각과 음각의 다양한 동물들과 나무들.

 

 혹독한 추위 속에서 볼 수 없는 자연을 대신하려는 듯 곳곳에 식물과 동물들의 모습이 존재했다.

 

 그들은 돔 천정이 절반이상 뚫린 넓은 홀을 지나 깊숙이 들어갔다.

 

 다른 곳과 크게 다를 것 없이 기둥과 석상들의 쓰러짐, 쪼개져 떨어진 문들, 깨지고 널브러진 장식품들이 즐비했다.

 

 널찍한 복도 끝, 불꽃문양의 크고 작은 철장식이 둘러진, 천장까지 이어지는 육중한 문이 보였다.

 

 중앙에는 카라스 가문의 문장인 은빛 늑대 머리가 거대한 불꽃 속에 도사리며 노려보았다.

 

 현재 사용하는 카라스 문장의 포효하는 늑대의 옆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건 늑대수준이 아닌,

 

 마치…… 괴수. 그렇다, 거대한 괴수였다.

 

 

 ‘오직, 괴수의 머리를 반으로 가를 용기 있는 자만이 열어라.’

 

 

 라는 듯 그 문을 향해 오는 자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괴수를 향해 다가가는 발소리가 시간과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그곳에 공명이 되어 울렸다.

 

 

 “자, 이제 무대를 소개해 주지.”

 

 

 키시쿠멘이 각각의 문짝에 손을 대고 힘껏 밀자, 서서히 괴수의 머리가 반으로 갈라지며 안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득히 멀리 보일만큼 넓고 긴 하얀 홀.

 

 무너지고 뚫린 벽을 통해 펼쳐진 또 다른 웅장한 설경.

 

 흰 대리석 바닥에 깔려 맞은 편 끝자락까지 이어진 피 같은 빨간 카펫.

 

 마치 그 큰 홀을 두 개로 나누듯 갈라놓고 있었다.

 

 

 “카펫 위를 걸어, 세라 파갈.”

 

 

 그의 목소리가 날이 선 검처럼 차가웠다. 더 이상 장난스럽지도 다정하지도 않았다.

 

 

 “연극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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