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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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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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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
 
작가연재 > 일반/역사
책사
작가 : 권오단
작품등록일 : 20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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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책사』는 명나라의 시조인 홍무제가 명을 건국한 이후, 제2대 황제 건문제가 천자가 된 1399년(건문 1년 6월)부터 제5대 황제 선덕제가 한왕 주고후의 반란을 평정하는 1426년(선덕 1년 8월)까지, 27년간의 역사가 배경이 된다. 후일 영락제가 되는 연왕이 조카인 건문제의 견제로 자신의 지위가 점점 위태로워지고 있음을 깨닫고 3년간의 내란(정난의 변) 끝에 황제의 자리에 오른 후, 영락제의 아들인 홍희제가 치열한 권력다툼 끝에 황태자의 자리에 오르고, 손자인 선덕제가 한왕의 반란을 평정하며 권력을 잡기까지 명나라 역사상의 부흥기인 인선의 치세를 주도했던 책사 목풍아의 활약상을 다룬 작품이다.

 
책사 1 - 복수전 - 1
작성일 : 16-04-22 14:31     조회 : 508     추천 : 0     분량 : 1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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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풍아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술병을 들었다.

  “이게 뭐야? 이걸로 뭘 하란 말이야?”

  “수면제가 든 것은 이 오디주 하나 밖에 없다는데 어쩝니까?”

  마갑보의 가게에서 수면제가 든 술을 잔득 가져오라는 목풍아의 명령을 받은 일도가 가져온 것은 술 병 하나가 고작이었다.

  “너 사실대로 말해. 겁이 나서 한 병만 가져온 거지?”

  “대장도 잘 아시잖아요. 마갑보가 하도 장사가 안 되서 빚 갚으려고 어제 처음으로 개시를 한 거라구 말입니다. 그냥 포기하십니다. 대장.”

  “난 그렇게는 못해.”

  “그럼 어쩌자구요? 이 오디주 한 병으로 삼십여명이 넘는 무사들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니 수면제를 많이 가져오라 하지 않더냐?”

  “난 몰라요.”

  “으이그. 이걸 부하라고…. 해독약은?”

  일도가 품속에서 작은 호리병 하나를 꺼내었다.

  목풍아가 호리병을 낚아챈 후에 말했다.

  “나에게 찾아온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좋아. 한 병으로 수를 내는 수 밖에. 내키지 않는다면 너는 그대로 돌아가도 좋다.”

  반짝이는 눈망울을 이리저리 굴리는 목풍아의 머릿속에 이중삼중으로 무슨 생각인가 들어 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자신의 머리로는 파악이 안 되는 일도였다. 분명이 무엇인가 깊이 계산한 일일 것이다.

  일도가 그동안 겪어본 경험을 비추어 볼 때에 목풍아는 다소 엉뚱한 점은 있지만 승산 없는 일은 벌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상대방이 너무 어마어마한 인물이었다. 마치 거대한 말벌집을 건드리는 것처럼 말이다.

 일도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 쉬었다.

 “대장이 생각이 있다면 저도 대장을 돕겠습니다. 사나이 인생. 죽기 아니면 살기 아니겠습니까?”

  “좋아. 좋아. 너도 사나이였군. 약을 더 가져오지 않은 것은 안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일도야. 분명히 말하지만 이것은 나에게 일생일대의 기회다. 그러니 나를 믿어 보거라.”

  분명히 뭔가 생각이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일도가 아는 목풍아는 빈말을 떠벌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목풍아의 한마디에 일도는 알 수는 없지만 자신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 생겨났다. 이제까지 그가 벌였던 일에 실패란 없었으므로……

 

  하루종일 대지를 달구었던 해가 지평선에 걸려 보랏빛 노을이 장관을 이루었다. 목풍아는 일도에게 말고삐를 잡게 하여 어슬렁거리며 객잔으로 다시 돌아왔다. 객잔 앞에서 어기적거리며 걷는 모습과 이곳에서 한바탕 곤욕을 치른 탓에 무사들은 한 번에 목풍아를 알아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욕을 당하고 여길 다시 왔단 말이오?”

 호위무사들이 목풍아에게 책하듯 말했다.

 “내가 죄 지은 것도 아니고 못 올 곳에 온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날도 저물어가고 쉴 곳도 없소. 나는 다만 조용히 쉬러 온 것 뿐이니 신경 쓰지 마시오.”

 목풍아는 객점 모퉁이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엉덩이가 따끔따끔 하였다. 아마도 엉덩이에 붉은 줄이 섰을 것이었다.

 ‘못된 것. 내가 가만두지 않을테다.’

 목풍아는 이를 갈았다.

 객잔 안에 있던 점원 하나가 목풍아에게 달려왔다.

 “나리. 무엇을 시키실 건가요?”

 “수육하고 국수 두 그릇 가져와. 만두도 있으면 푸짐하게 가져오구.”

 점원이 꾸벅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바로 그때였다. 머리 위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밤송이.”

 목풍아는 머리를 들었다. 아리따운 미모의 공주가 난간에 기댄 채 목풍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만큼 혼이 나고도 부족했나? 무슨 일로 다시 온 거지?”

 “요기도 할 겸 하룻밤 쉬려고 왔습니다.”

 공주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다른 곳을 알아봐.”

 목풍아는 노기를 참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옛부터 미녀의 마음은 종잡을 수 없다고 하더니 과연 그렇군요.”

 공주의 아미가 올라갔다.

 “뭐라고?”

 “옛날 주나라 절세미녀 포사(褒姒)가 그랬다지요? 포사는 천하제일미녀였지만 웃음이 없었다지요. 오직 비단 찢기는 소릴 들을 때마다 미소를 지었는데 임금이 포사의 웃는 모습을 보려고 천하의 비단을 소진했다지요. 공주께서는 포사처럼 제가 눈앞에서 없어져야 마음이 즐거우신 모양입니다.”

 공주의 입가에서 미소가 피어올랐다.

 “내가 포사같아?”

 “포사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것은 확실합니다.”

 “호호호.”

 공주가 쾌활하게 웃었다. 일도가 목풍아와 공주를 번갈아 살피며 눈치를 보았다.

 공주가 턱을 괴고 호기심어린 눈망울로 목풍아를 내려다보았다.

 “네 이름이 뭐지?”

 “목풍아라고 합니다.”

 “집은 어디냐?”

 “바람에게 집이 있을리 있겠습니까? 온 세상이 집이지요.”

 “재미있는 아이로구나.”

 “감사합니다.”

 목풍아가 포권을 취하곤 다시 자리에 앉았다.

 “송구스러운 말씀입니다만 공주님의 존성대명은 어찌되시는지요?”

 “존성대명? 호호호. 난 주소천(朱小天)이라고 한다.”

 “아! 소천이라. 얼굴처럼 아름다운 이름이군요.”

 그때, 점원이 국수와 수육을 가지고 나왔다.

 “공주님. 저는 이만 식사를 해야 할 것 같네요. 이야기 즐거웠습니다.”

 목풍아가 젓가락을 들어 허겁지겁 국수를 먹었다. 말상대가 없어진 공주의 얼굴에서 아쉬움이 묻어나왔다.

  이내, 이층 누각과 연결된 층계로 여종하나가 내려와 목풍아에게 말했다.

  “저희 아가씨께서 공자님을 뵙고 싶다하는군요.”

  “저를 말입니까?”

  “저녁을 같이 드시고 싶다고 하십니다.”

  “가기 싫다면 공주께서 볼기를 때리시겠죠?”

  여종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아마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럼 가야죠. 엉덩이가 죄없이 화를 입게 할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목풍아가 일도에게 눈을 찡긋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여종을 따라 갔다. 계단을 따라 누각으로 올라가니 층계 바로 앞에서 험상궂은 무장들이 시퍼런 장검을 꺼내든 채 엄중한 호위를 하고 있었다.

  연왕의 딸이 잠시 쉬어 가는 탓인지 2층에서도 일반인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사방의 탁자에 고수인 듯한 호위무사들이 장검을 탁자 위에 꺼내 놓고 앉아있는데 경관이 좋은 난간의 탁자 바로 앞에 주소천이 앉아 있었다.

  주소천이 손짓으로 앉으라 하였다. 목풍아가 의자에 앉아 헛기침을 몇 번 하다가 들고 있던 부채를 쫙-하고 펼쳤다. 주소천의 뒤편에 있던 호위무사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목풍아가 놀란 토끼 마냥 두 눈을 뜨고 소리쳤다.

  “에구. 무서워라.”

  “호호호호.”

  주소천이 자지러지게 웃었다. 시녀도 입을 가리고 웃었다. 목풍아가 주소천을 보고 웃었다. 주소천이 정색을 하고 목풍아에게 말했다.

  “너는 나에게 혼이 나고도 내가 무섭지 않느냐?”

  “무섭지요. 저는 정말 괴팍한 미인이 무섭습니다.”

  “괴팍한 미인? 호호호. 너는 정말 웃기는 아이로구나.”

  “뭐가 웃기다는 말씀입니까?”

  “너는 참 말을 재미있게 하는구나.”

  “제가요? 하하하. 그렇게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이 나와서 그런데 제게 신기한 술이 하나 있는데 한번 드셔보시겠습니까?”

  “신기한 술?”

  “며칠 전에 제가 승평현의 객점에서 술장수 하나를 만났습니다. 날도 덥고 목이 말라 술 한잔을 달라하니 그 술장수가 저에게 말하길 ‘이 술은 아무에게나 드릴 수 없는 술이다.’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소천은 머리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어째서?”

  “저도 이유가 궁금해서 물었지요. 그 술장수가 말하길 ‘이 술은 멀리 고려국의 장백산이라는 곳에서 가져온 것인데 귀하기가 이를 데 없어서 아무에게나 드릴 수 없다.’는 것이 아니겠습니다. ‘어째서 귀한 술이라고 하는 것이냐?’ 하고 물어보니 그 대답이 이러하더군요. ‘장백산 꼭대기에는 이슬처럼 맑고 깨끗한 호수가 있는데 그 호수 가운데에 뽕나무 하나가 있다 하더군요. 옛날 사람들은 이 뽕나무에서 해가 떴다고 부상(扶桑)이라 불렀다 하더군요.”

  주소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려땅의 장백산은 몽고족들까지 신성시 여기는 산이고, 부상이라는 나무에서 해가 뜬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부상에는 일백년마다 오디가 열리는데 자기가 가진 술이 바로 그 오디로 담근 술이라는 겁니다. 그 때문에 극락주(極樂酒)라는 별칭이 있는데 한잔을 마시면 눈이 맑아지고, 두 잔을 마시면 피부가 고와지고, 세 잔을 마시면 몸 속에 온갖 병이 사라져서 오래 오래 살 수 있는 술이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호호호. 거짓말.”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거짓말이라 생각했지만 호기심이 동해서 참을 수 있어야죠. 그래 돈은 얼마든 줄테니 한잔만 마셔보자 하였습니다. 그러자 술장수가 하는 말이 극락주는 처음에 한잔을 마시면 잠이 쏟아지듯 밀려오는 명현(明玄) 현상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제가 호기심을 참을 수 없어서 먹자고 조르니 술장수가 일백냥을 달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술 한잔에 말입니다.”

  주소천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한잔에 일백냥?”

  “그러게 말입니다. 대체 얼마나 좋은 술이기에 한잔에 일백냥이나 한단 말입니까?”

  “그래서 어떻게 되었지?”

  “일백냥을 주고 마셨지요. 저는 호기심을 참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네가 정말 일백냥을 주고 마셨다고?”

  “저를 못믿으시나본데 정말입니다.”

  목풍아는 품속에서 일백냥짜지 지전(紙錢) 수십 여장을 꺼내놓았다. 지전을 본 주소천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목풍아에게 말했다.

  “돈이 많네.”

  “조상을 잘 만나서 집안에 가산은 넉넉한 편입니다요.”

  “그래서? 한잔 마셔보니 어땠지?”

  “장백산의 부상에서 따온 오디로 만든 술이라서 그런지 정말로 맛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갑자기 정신이 띵-하고 하늘이 빙글빙글 도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만 맥없이 잠이 들고 말았지요. 얼마나 있었을까? 번쩍 눈을 떠서 일어나 보니 그 술장수가 내 앞에 그대로 앉아있더군요. 내가 가만히 일어나 이리저리 살펴보니 술장수 말마따나 정신이 샘물처럼 맑아지고 눈앞이 밝아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날아가는 참새의 암수를 구별할 정도로 말입니다.”

  주소천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목풍아의 말에 귀기울여 듣고 있던 하녀와 호위무사들까지 목풍아의 마지막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려 누각 안이 웃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목풍아가 웃으며 말했다.

  “제 말을 믿지 못하시나 본데 눈이 밝아진 것은 농담이 약간 섞인 말이라 하더라도 머리는 정말 좋아지더군요. 사실 저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술을 한잔 마신 후에 머리가 맑아지면서 그동안 읽은 책들이 모두 기억이 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피. 거짓말.”

  “정말입니다.”

  “호호호. 그래? 그럼 한번 시험해보지. 맹자(孟子) 진심편(眞心篇)을 한번 외워보거라.”

  목풍아는 잔득 인상을 찌푸리곤 눈을 들어 천정을 바라보다가 머리를 지끈 누르며 입을 열었다.

  “맹자가 말하기를 ‘자기의 마음을 다하는 자는 자기의 진심을 알게되며, 자기의 근본 마음을 알게 되면 하늘을 알게 된다. 그 마음을……”

  목풍아는 한마디도 틀리지 않고 마치 눈앞에 책이 있는 사람처럼 맹자 진심편을 줄줄 외웠다. 듣고 있던 사람들의 눈이 커지고 입이 쩌억 벌어졌다.

 호위하는 무사들의 대부분은 글을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주소천은 어려서부터 학식이 높은 선생에게 공부를 배운 까닭에 어느 부분까지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정확하게 외우는 것을 본 적은 없었다.

  진심편을 끝까지 외우고 난 목풍아는 자신도 못 믿겠다는 듯이 소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보십시오 공주님. 제 말이 틀렸습니까?”

  주소천은 부럽다는 듯이 물었다.

  “어떻게 그것을 모두 외울 수가 있지?”

  “그러게 말입니다. 책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글자가 막 보입니다. 술 한잔을 먹었을 뿐인데 말입니다.”

  “그럼 한번 더 시험해 봐도 되겠나?”

  “그럼요, 저는 소저의 시험을 더 받아 보고 싶은 걸요?”

  “그렇다면 춘추(春秋) 장공(莊公)편을 외울 수 있겠나?”

  “예?”

  “어렵겠지?”

  “춘추는 하도 오래 전에 딱 한번 건성으로 읽어본 적이 있을 뿐이지만 한번 기억을 되돌려 보겠습니다.”

  목풍아는 눈을 감고 머리를 짜내듯이 생각하는 척 하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원년 봄 천자가 쓰는 역으로 정월.

  3월에 부인이 제나라로 피해갔다.

  여름에 선백이 왕녀의 시집가는 길을 모셨다.

  가을에 왕녀가 머무를 집을 성 밖에 지었다.

  겨울 10월 을해날에 진나라 군주인 후작 임이 세상을 떠났다.

  천자께서 영숙으로 하여……

 

  시경을 이미 여섯 살 때 사서삼경을 달달 외우던 목풍아였다. 춘추를 외우는 것 쯤은 일도 아니었다. 목풍아는 눈앞에 책을 두고 읽는 것처럼 줄줄줄 외워나갔다.

  주소천과 그 하녀, 그리고 둘러앉아 있는 호위무사들은 목풍아가 어려운 춘추를 외우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줄 몰랐다. 좋은 약술 탓이 아니라면 누구나 천재라고 인정할 만큼 목풍아의 암기력은 일품이었다.

 ‘이 소년의 말이 사실이 아닐까?’

 주소천은 연왕부에 들어가 하기 싫은 공부를 할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리던 참이라 목풍아의 모습을 보자 부러운 마음이 솟았다.

 “나도 그 술을 한번 먹어보고 싶은걸?”

 목풍아가 시를 멈추고 주소천이 말했다.

 “와하하하. 그렇지 않아도 제가 다시 온 이유가 그 때문이었습니다. 공주님께 극락주를 맛보여 주려고 말입니다. 천하에 이렇게 귀한 것을 맛볼 수 있는 것은 전생의 인연(因緣)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따지고 보면 오늘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 제가 며칠 전 우연하게 천하에 다시없는 극락주를 사게 된 것도 인연. 그리보자면 세상에 인연이 아닌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지. 세상은 인연인게지. 그런데 그런 술이라면 가격이 참 비쌌겠군.”

  “당연한 말씀입죠. 제가 가져온 술 한 병이 일천냥입니다.”

  “그렇게나 많이?”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 돈이 아까울 턱이 없지요.”

  “그런 귀한 것을 왜 나에게 주려는 거지?”

  “그러게 말입니다. 공주님께 볼기를 맞고 돌아가는 길에 문득 시경의 시 한편이 생각나지 뭡니까?”

  “어떤 시지?”

  “들려드릴테니 음미하며 들어보십시오.”

  목풍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검은 옷이 잘도 어울리네

  헤지면 내가 다시 지어주리

  그대 숙소 몸소 찾아갔다가 돌아와

  그대 슬기 더할 음식 내리리

 

  검은 옷이 좋기도 하네

  헤지면 내가 다시 지어주리

  그대 숙소 몸소 찾아갔다가 돌아와

  그대 슬기 더할 음식 내리리

 

  검은 옷이 편안해 보이네

  헤지면 내가 다시 지어주리

  그대 숙소 몸소 찾아갔다가 돌아와

  그대 슬기 더할 음식 내리리.

 

  목풍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시경(詩經) 정풍(鄭風)편의 시입니다. 돌아가는 길에 문득 소저가 생각났습니다. 저 혼자 먹기에는 너무나도 귀한 술이니 만큼 태어나 처음 만나보는 아름다운 분과 함께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입니다.”

  주소천은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었다.

  확실히 시경 정풍편의 시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슬기를 돕는 음식을 준다는 내용이니 목풍아가 술을 가져온 내용과 부합되는 시였다. 주소천은 자신을 위해 좋은 술을 가져온 목풍아가 고맙게 느껴졌다.

  “내가 그대에게 못되게 대했는데도 나를 위해 다시 돌아온거로군.”

  “그거야 공주께서 워낙 미인이시다보니…. 하하하. 남자들이란 미인에 약한 법이지요. 초나라 항우도 우미인 앞에서는 힘을 못 썼고, 한나라 고조도 여황후 앞에서 기를 못 펴셨다지 않습니까? 하하하.”

  “넌 참 말도 재미있게 잘 하는구나.”

  주소천이 흡족하게 웃었다.

  “극락주가 어디있더라?”

  목풍아가 소매 속을 뒤적거렸다. 넓은 소매 속에서 하얀 자기로 만든 작은 술병이 하나 나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들 그 하얀 자기로 집중되었다. 한잔에 일 백냥, 한 병에 일 천냥짜리 희대의 명주에 사람들의 시선이 쏠릴 수 밖에 없었다. 목풍아가 워낙 교묘하게 사람들을 홀려놓아서 설령 술이 거짓이라 할지라도 한번 마셔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심(人心)이었다.

 술병의 마개를 뽑은 목풍아가 자기를 기울여 극락주를 부었다. 붉은 빛이 은은한 극락주가 술잔에 가득찼다.

 “자, 공주님. 한잔 드시죠.”

 목풍아가 잔을 권할 때에 뒤편에 있던 호위무사가 일어났다.

 “잠깐.”

 “왜 그러십니까? 제가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슨 짓이라도 할 것 같습니까? 저를 못 믿겠다면 제가 먼저 한잔 마시겠습니다.”

 목풍아는 들었던 술잔을 입에 대고 마셨다.

 “카! 정말 기가 막힌 맛이군.”

 목풍아는 손가락으로 술잔의 오디주 방울을 닦아 빨면서 말했다.

  “아! 일백냥이 뱃속으로 들어갔네요. 정말 이 술을 먹고 나면 아까운 생각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주소천이 눈을 흘기며 호위무사를 노려보았다.

  호위무사가 고개를 돌리며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나도 한 잔 줘.”

  “예. 공주님.”

  목풍아가 새잔에 술을 따러 주소천에게 건넸다.

  “이걸 먹으면 똑똑해진단 말이지?”

  입맛을 다시던 주소천이 주저없이 술잔을 비웠다.

  “어떻습니까?”

  “맛있네. 향도 독특하고 참 맛있어. 어, 그런데 어지러워…. 내, 내가 왜 이러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소천의 머리가 맥없이 탁자에 기울었다. 곁에 있던 하녀와 호위무사들이 걱정스런 얼굴로 다가왔다.

  “걱정 마십시오. 명현 현상입니다.”

  호위 무사가 다가와 목풍아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냐? 너는 어째서 괜찮은 거지?”

  목풍아가 머리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저는 며칠 전에 명현 현상을 겪어서 괜찮은 모양입니다. 공주님은 처음이니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도 그렇군.”

  하녀들이 주소천을 이층 처소에 옮겨놓으러 가는 동안 호위무사의 눈이 극락주가 든 사기병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다. 그도 사람이니 좋은 술에 욕심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 그러나 그것이 또한 목풍아가 바라는 것이었다.

  “무사나리도 한잔 드시고 싶으시죠?”

  “나, 나야 그럼 좋지.”

  호위무사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돌리자 뒤편에 있는 호위무사들이 차례로 일어났다.

  “이 작은 병의 술이 다 돌아가겠습니까?”

  목풍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객점 주변을 휘둘러보다가 호위무사에게 말했다.

  “사람이 많으니 일일이 한잔씩 돌리지는 못하겠네요.”

  “그, 그럼 할 수 없지.”

  “아닙니다. 아까 볼기를 때릴 때 사정을 봐 주신 것도 고맙고……. 제가 여러분께 신세를 갚지 않을 수 없지요. 제게 좋은 수가 있는데 말입니다.”

  “무슨 수가 있단 말이오?”

  “이 술을 보통의 술에 타서 마시면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 그거 묘수요.”

  “그럼 딱 한잔씩만 마실 수 있도록 술을 준비하도록 하지요.”

  “목공자. 우리는 무사들이라 참새처럼 맛만 보지는 못하는 성격이오. 이왕이면 큰 술항아리에 그것을 부어 양껏 마신다면 약효는 보지 못하더라도 좋은 술맛이라 보았다는 기분은 나지 않겠소?”

  목풍아는 자신이 생각했던 말을 대신해서 해주는 무사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술잔을 탁자에 내려놓고 손뼉을 쳤다.

  “내가 그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좋은 생각입니다.”

  목풍아는 큰 술항아리를 가져오게 하였다. 점원 세 사람이 낑낑거리며 술항아리를 가져왔다. 엄청나게 큰 술항아리였다. 그동안 객잔아래에 있던 호위무사들까지 이층으로 모여들었다.

  목풍아가 술잔을 따러 항아리에 부었다. 독한 화주에 극락주가 붉게 퍼져갔다.

  ‘화주가 너무 많아서 극락주의 약효가 있을지 모르겠군.’

  목풍아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한잔을 더 부어 술항아리에 넣어 섞었다.

  “한잔을 부으면 매정하다는 소릴 들을 것 같아 일백냥짜리 술 한잔을 더 붓습니다.”

  약효가 더 있으라는 속뜻도 모르고 무사들은 목풍아의 도량에 감탄하여 저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목풍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하였다.

  “오!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저는 도저히 의리를 저버릴 수가 없군요.”

  목풍아는 감동한 사람처럼 술병을 들어 술항아리에 극락주를 모조리 따러버렸다.

 호위무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목공자. 이럴 것까지는 없는데…….”

  “아닙니다. 그까짓 돈이야 다시 벌면 되는 것이지만 무사님들과의 의리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주쪼록 맛있게 먹어주십시오.”

  호위무사들이 감격한 얼굴로 고마움을 표했다. 목풍아는 큰 잔을 항아리에 담아 잔을 채웠다.

  “자. 한잔씩 드십시오.”

  무사들이 큰 대접에 든 술을 받아 가져갔다. 목풍아는 하녀들에게도 작은 잔에 술을 따러주었다.

  “누구는 입이고 누구는 입이 아닙니까? 모두 한잔씩 마시는 거죠.”

  하녀들도 저마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였다.

  마지막으로 목풍아도 큰 잔에 술을 채웠다.

  호위무사의 우두머리쯤 되는 이가 술잔을 들고 말했다.

  “자. 우리를 위해 극락주를 기꺼이 희생한 목공자의 찬란한 미래를 위하여 건배합시다.”

  무사들이 소리를 지르며 술잔의 술을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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