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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나를 구원해줘
작가 : 꿀크리스마스
작품등록일 : 2017.7.13

“방금 개새끼, 라고 저한테 욕을 한 것 같아서 묻는 겁니다.”
“미친. 저기요, 피해망상 있으세요?”
두 사람의 첫 만남부터 심상치가 않다.

정솔, 이 세상의 정의는 자본뿐이라 믿는 기업 사냥꾼.
절대 인간을 믿지 않는다.
인간이란 나약하고, 이해타산적이며, 배반적인 동물이니까.

하리안, 강자에게는 아주 강하고 약자에게는 한 없이 약한,
사회에서 소외받는 약자들과 정의를 위해 싸우는 서하일보 사회부 기자.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이 엮어가는 알콩달콩 로맨스!

#사이다여주 #차도남남주 #스윗남서브남주

 
11 한 여름 밤의 꿈 (2)
작성일 : 17-07-24 23:07     조회 : 306     추천 : 0     분량 : 7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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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한 여름 밤의 꿈 (2)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리안은 후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신은 날 증오하는 게 틀림없어.’

  리안은 온갖 신세한탄을 하며 시선을 회피하다가 슬쩍, 솔이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솔도 보연시의 날씨가 무척이나 더웠던지 수트의 자켓을 벗어 한쪽 팔에 걸치고 있었다. 입고 있는 흰 셔츠는 팔을 접어 팔꿈치 정도까지 걷어 올린 채였다. 하루의 일과를 마친 개인적인 시간이어서 그런지 솔은, 언제나 목까지 꽉 채워 입던 셔츠의 단추를 두어개 푸르고 있었다. 그 안으로 솔의 도드라진 쇄골 뼈가 드러났다.

  ‘골격이 꽤나 입체적이네, 조금 섹시한 것 같기도 하고……’

  리안은 순간 쓸데없는 생각에 사로잡혔다가 이내 머리를 세게 좌우로 가로저었다. 이런 망상은, 지금의 상황에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리안은 곧, 나라 잃은 본래의 표정을 되찾았다.

  “네, 그럼 연락주세요.”

  얼룩덜룩해진 옷을 입고 있는 한 젊은 남자의 이야기를 경청하듯 듣던 솔은 곧 연락을 주시라며 명함을 내밀었다. 젊은 남자는 이내 솔을 등지고 돌아서며 하루, 이틀은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서 커다란 몸집의 차에 몸을 실었고, 차를 출발시켜 떠났다.

  그 뒤에 리안의 퍼져버린 똥차를 달고서.

  볼일을 마친 솔은 성큼성큼 리안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약자들을 위해서는 목숨까지 받칠 각오로 못하는 게 없으시더니, 자기 차는 관수도 못하십니까?”

  가소롭다는 듯이, 쌤통이라는 듯이, 이 상황이 아주 유쾌하다는 듯이. 리안을 약올렸다. 평소의 리안이었다면 내 차를 내가 관수를 하던말던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며 노발대발을 했겠지만, 현재의 리안은

  “그러게요, 허허. 제가 인생을 헛살았네요, 하하."

  예의 그 가식적인 웃음을 지어보이며 머쓱하게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솔은 그런 리안의 모습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리안의 오랜 연식을 가진 차는 그 먼 길을 달려오는데 고생을 해도 너무 했던 것이다. 그 고생을 이기지 못하고 GG를 쳐버린 것. 더 이상은 못해 먹겠다, 이거였다. 그대로 펑, 요란한 굉음을 내며 터져버렸으니.

  차에 대해 어느 정도 기본 지식이라도 있는 리안이었다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솔의 도움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공계 쪽으로는 관심이 없어도 너무 없는 리안이었다. 그런 리안은 자동차에 관해서도 당연히 문외한이었다.

  걸리지 않는 시동을 걸어보겠다며 차에 키를 빼고, 꽂고, 돌리고를 반복하고 있으니 답답했던 솔은 천천히 리안에게 다가왔다. 도대체 뭐하는 짓이냐는 표정으로 리안을 바라보고 있었으니, 그런 솔을 올려다보던 리안의 표정은 마치,

  “나 좀 살려줘.”

  라고 얼굴로 외치고 있었다. 그 얼굴의 말을 읽은 솔은 견인차를 부르고, 퍼져버린 차 수리를 맡기는 친절을 베풀었던 것이다.

  “돈도 없으신 분이 어딜 가십니까?”

  이 모든 상황들이 민망했던 리안은 솔에게 어색하게 허리를 굽혀 정중한 인사를 하고는 돌아섰다. 일 분 일 초가 지옥 같은 이곳에서 최대한 빨리 도망가려 했다. 차는 견인차가 가져갔으니, 택시라도 잡아탈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흠흠, 죄송하지만. 저…… 돈 좀 꿔주시겠어요?”

  불행하게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리안에게는 돈이 없었다.

  요약하자면 이랬다. 보연시로 출발하기 위해 차에 올라탄 리안. 순간 집에 지갑을 놓고 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급히 집으로 올라가 지갑을 챙겨 출발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보연시에 오는 동안 사용해야 했던 통행료, 간단한 요깃거리, 필요 물품 등 큰돈이 나갈 일이 없어 가지고 있던 현금으로 계산을 해왔다.

  그런데, 견인차가 오고 차 수리를 맡겨야 했던 리안은 현금이 부족했다. 그래서 카드로 계산을 하려 했는데,

  카드가 없었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지난 밤, 야식이 땡겼던 리안이 치킨을 시켜먹었고,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계산했으며, 그대로 그 카드를 식탁에 올려둔 채로 오늘, 집을 나섰던 것이다.

  “언제 갚으실 건데요?”

  한마디로 리안은 현재 빈털터리 신세였다. 차를 수리 맡기는 데 신세를 지고 나서도 솔에게 돈을 꿔달라고 할 수밖에 없는 리안이었다. 죽으면 죽었지 그런 말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사람이 살려면 또 못할 짓도 없지 싶었다. 하지만, 돈을 꿔달라고 애원하는 리안에게 솔은 우선적으로 대출 상환 날짜부터 받으려 했다. 리안은 정말이지 더럽고 치사했다.

  “서울 올라가는 대로 바로, 단 1분도 지체하지 않고 쏴 드릴게요.”

  “그래요. 대신,”

  “?”

  “조건이 있습니다.”

  리안은 솔이 눈치 채지 못하기를 바라며 인상을 구겼다. 하, 거, 자식 참. 투자자라 그런지 그 놈의 조건은 드럽게도 따졌다.

  “뭔데요?”

  속으로는 솔을 있는 힘껏 비난하면서도 겉으로는 무슨 조건이든 말만 하라는 긍정적인 얼굴을 선보이는 리안이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현재로써는 저 자식, 그러니까 솔밖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었다.

  리안이 맘 속 우여곡절 끝에 그 조건에 대해서 묻자 솔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같이 먹죠, 밥.”

  정말이지 솔이 제안하는 조건은 언제나 예측불가하다는 생각이 드는 리안이었다.

  ‘당신과 나. 물과 기름, 혹은 개와 고양이 같은 당신과 내가 밥을 같이 먹는다? 혹시라도 그 식사의 주요 메뉴가 하리안인 건 아니겠지. 정말 저 자식은 내가 본 또라이 중 상 또라이야……’

  리안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웃으며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 그러죠!”

 

 

 *

 

 

  솔이 리안을 데려온 식당은 호화스러운 호텔의 라운지 레스토랑이었다. 굳이 리안에게 대접할 생각에 이곳까지 데려왔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오늘부터 솔이 며칠 간 묵어야 하는 케리아 호텔에, 그것도 라운지에, 레스토랑이 있었을 뿐이었다. 솔은 몸도 피곤하고, 빨리 쉬어야 하니까 자신에게 이로운 장소를 선점했던 것이다.

  “주문하시죠.”

  솔은 리안에게 메뉴판을 내밀며 말했다. 리안은 입을 헤, 벌린 채로 멍하니 있다가 솔이 내민 메뉴판을 보고 나서야 차츰 정신을 차렸다. 어쨌든 배가 고프긴 고팠다.

  차가 퍼진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 모든 상황이 얼떨떨하기만 한 리안은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에 눈에 힘을 풀고 멍하니 있던 중이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싶었다. 보연시에서 저 자식을 만난 것도 열이 뻗치는 데, 도움을 받고, 돈까지 꾸고, 하물며 지금은 밥까지 같이 먹는 꼴이라니.

  다른 상황들이야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고 치더라도, 같이 밥까지 먹는 것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저 자식은 왜 나한테 밥을 같이 먹자고 한 거지? 우리가 그럴 만한 사이였나?’

  리안은 메뉴판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도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솔의 그 시커먼 속내가 무엇인지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생각.

  ‘내가 저 여자를 왜 여기까지 데려온 거지?’

  한편, 솔 역시 리안과 같은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도대체 왜 저 여자를 도와주었는지, 이곳에는 왜 데려왔는지, 그러니까 왜…… 같이 밥을 먹자고 조건을 걸었는지.

  아마도 리안은 솔이 왜 같이 밥을 먹자고 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말을 내뱉은 솔 본인조차, 그 이유에 대해서 알지 못했으니까.

  “주문할까요?”

  “네.”

  솔은 곧 웨이터를 호출했다. 리안 쪽을 가리키며 먼저 주문하라 했다. 리안은 메뉴판을 보며 능숙하게 주문을 시작했다.

  “음…… C 코스로 할까요? 에피타이져는 그냥 가볍게 브로콜리 스프로 주시고요, 후추는 너무 무겁지 않게요. 사이드는 무난하게 추천해주시는 걸로 할게요. 메인 스테이크는 레어-미디움으로 너무 굽지 않게 해주시고, 후식은…… 메인요리 식사 후 주문할게요. 솔씨는요?”

  “같은 걸로.”

  무겁고도 차가운 솔의 답변에 리안은 조금 당황했다. 메뉴판이 아닌 자신이 주문하는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하는 말이 ‘같은 걸로’라니. 뭔가 관찰을 당하거나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을 들킨 기분이었다. 주문을 받은 웨이터는 곧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돌아오는 솔의 질문.

  “주문하는 게 굉장히, 능숙하시네요. 이런 곳에 많이 와보셨나 봐요, 사회부 기자답지 않으시게.”

  리안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나 들키고 싶지 않은 치부를 들킨 것에 틀림없었다. 도움을 받고, 돈을 빌렸으니 지금까지 잘 참았다 싶었지만, 리안의 인내심은 이제 한계점에 도달하고야 말았다.

  “도대체 의도가 뭐예요?”

  “뭐가요?”

  “서로 뜯어먹어 죽여도 모자를 사람한테 같이 밥을 먹자고 하더니, 주문하는 게 능숙하다느니, 사회부 기자답지 않다느니, 말하는 저의가 뭐냐고요. 사람 홧병 나서 죽으면 그대로 구워 먹으려고 데려왔어요?!”

  리안은 참지 못하고 다다다, 마음 속의 말을 전부 뱉어버렸다. 그 목소리가 너무 커서 레스토랑 안의 사람들이 전부 리안과 솔을 쳐다 볼 지경이었다.

  조용한 한 호텔 라운지의 레스토랑. 은은한 조명에 다닥다닥 붙어있지 않고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할 만한 거리를 유지한 채 놓여있는 적은 수의 테이블. 그 안의 사람들 역시 고급진 옷을 입거나, 진한 향수 냄새, 유명 브랜드의 백을 매고 있었다. 조곤조곤 은밀한 대화를 나누던 레스토랑 안의 사람들은 리안의 큰 목소리에 일제히 두 사람에게 이런 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을 보듯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리안, 하물며 솔까지 그런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 적어도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에 있어서는 두 사람은 닮아 있었다.

  “밥은, 당신에게 돈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제안했던 것이고. 왜 하필 밥이냐면 그냥 제가 배가 많이 고파서, 다른 조건을 걸면 귀찮아지니까, 밥을 먹을 시간이 지체되니까. 그리고 왜 그런 질문을 던졌냐면,”

  “?”

  “그건 그냥, 입니다. 능숙해 보이길래 물어봤고, 물어보다 보니 사회부 기자랑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사족을 좀 덧붙였고요. 그게 그렇게 발끈할 일입니까?”

  솔이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발끈할 일이 아닐지도 몰랐다. ‘원래 사회부 기자들이 이런 곳에 더 자주 옵니다, 윗사람들 어르고 달래며 정보 얻어 내려면요.’ 라고 대답해 버리면 그만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리안이 그 질문에 발끈했던 이유는,

  “맞아요, 당신 말. 제가 발끈했죠. 그건, 저도 제 발이 저렸기 때문이에요.”

  그랬다. 그리고 곧 리안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순전히, 제 발이 저렸다는 사실로 솔에게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비꼬아 대는데, 차라리 솔직히 말해버리자는 마음이었다.

  “기업의 비리도 마음만 먹으면 빼내시는 분이신데. 한낱 저 같은 사람 뒷배경 알아내는건 식은 죽 먹기겠죠. 네, 당신 말대로 저는 약자였던 적이 없어요. 대기업 부장까지 달고 있는 아버지에, 명성이 자자한 대학교의 교수를 달고 있는 어머니까지. 하물며 그런 집에 외동딸이네요, 내가. 돈 많은 부모님 둔 덕에 가난이라고는, 돈에 대한 걱정이라고는 없이 살아왔고요, 대학까지 좋은 곳에 갔죠. 돈을 퍼부어가며 사교육을 시켜댔으니. 그렇게 탄탄대로였어요, 제 과거가요."

  리안이 그렇게 이야기를 쏟아내는 와중에 주문한 음식이 하나씩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배가 몹시도 고팠던 리안과 솔은 음식을 조금씩 맛보며 말을 이어갔다. 누군가 이 두 사람을 본다면, 어느 연인들이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는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상황을 연출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서하일보에는 왜 들어간 겁니까? 그렇게 대단하신 분이.”

  이번에도 솔은 비꼬듯, 조소를 담듯, 혹은 순수하게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원망스러웠거든요, 그런 대단한 부모님들이.”

  솔은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을 뱉은 리안이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오기로 시작했던 과거의 이야기는 점점 리안을 회상에 젖게 했다. 숨기느니 솔직하게 말해버리는 게 이기는 것이라고 판단했던 리안의 생각이라면 여기서 그쳐도 됐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 말을 튼 리안은 그 이야기를 끊을 수가 없었다. 그저 그렇게 물 흐르듯이 말을 이어갔다.

  “저한테는 할머니가 있었어요.”

  “친할머니요, 외할머니요?”

  “음…… 그냥, 나의 할머니요.”

  솔은 뭔가 점점 재밌어진다는 듯 의자 뒤로 등을 기대고 팔짱을 낀 채, 리안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엄마, 아빠는 언제나 바빴거든요. 오늘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들은 알고 싶어 하지 않아 했어요. 그들의 일이 바빴으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부모님의 애정이 너무나도 필요한, 어린 아이였거든요. 참…… 그래요. 외로웠어요. 그 어린 나이에 나는 많이 외로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할머니가.”

  “?”

  “나의 할머니가, 그런 나를 알아봐줬어요. 다가와줬고, 말을 걸어줬고, 나에게 관심을 가져줬어요. 할머니는, 내 하루를 유일하게 궁금해주는 사람이었어요.”

  “……”

  “나와 너무 다른 환경의 할머니였지만, 나는 할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했어요. 맹세코 우리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많이요. 그래서 할머니의 환경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내가 할머니의 환경에 처해보지는 못했어도, 나는 할머니에게 진심으로 공감했어요. 그녀의 아픔과 슬픔과 기쁨까지도, 모두요. 그래서 나는 할머니를 위해 살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할머니는 소위 말하는 이 사회의 최하위 계층, 내가 그렇게 지키고자 하는 약자였어요.”

  리안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음식들을 조금씩 입에 담으며 조근조근 말을 이었다. 솔은 리안이 이런 나긋한 목소리로도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흥미로웠다.

  “할머니가 좋아하시겠네요. 당신이 사회부 기자가 된 것을 보면.”

  “아마도 그렇겠죠? 아마도, 저…… 위에서. 좋아하고 계시겠죠?”

  리안은 씁쓸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리안이 덧붙이지 않아도 솔은 그 뜻을 단 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리안의 눈빛. 솔은 그 눈빛을 그 누구보다 철저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가장 소중한 사람을 영영 잃어버린,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그 슬픈 눈빛. 솔의 어렸을 적 언제나 지니고 있었던 그 눈빛이었다.

  그래서, 그 눈빛을 알아채 버린 솔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에서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는 부모님이 없어요. 당신의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다들 돌아가셨거든요.”

  “아……”

  “돈 때문에요.”

  솔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의식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리안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버리고 말았다. 그 누구에게도 단 한 번도 말한 적 없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아마도 솔이 이런 이야기를 리안에게 했다는 것을 서준이나 하나가 알게 된다면 그 큰 충격에 심장마비를 일으킬지도 몰랐다. 그만큼 절대 자신의 개인적인 사생활에 대해서는 아무리 몇 년간을 알아온 파트너라고 할지라도 발설하지 않는 솔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은 자신이 왜, 리안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는 것인지 본인조차 알 수 없었다. 하물며 터져버린 입을 스스로 막을 수도 없었다.

  “가장 소중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이라는 게. 이렇게 공감이 될 때도 있네요, 신기하게도.”

  “그러게요.”

  솔과 리안은 센치한 표정으로 서로를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솔은 왠지 이 대화를 깨고 싶지 않았다. 평생 동안, 어쩌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대화를, 이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맨 정신으로 이야기하기가 좀. 와인 한 잔 할까요?”

  와인을 권했다.

  리안은 잠시 망설였다. 리안이 유일하게 약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약자와, 술이었다. 더군다나 와인이라면, 2잔이면 취사량이었다. 하지만 낯설지만 익숙한, 어딘지 모르게 슬픈 솔의 눈을 보니 리안은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럼…… 뭐. 한 잔만요?”

  그리고 리안의 성격상 곧 죽어도 술은 못한다고 말할 성격도 아니었다.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니 한 잔이었던 와인은 두 잔이 되고, 세 잔이 되고…… 그 이후의 일은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리안이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땐, 햇빛이 은은하게 스며드는 어느 호텔 룸의 킹 사이즈의 침대 위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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