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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천국을 가리키는 새하얀 나침반
작가 : 소시지
작품등록일 : 2017.6.5

죽은 망자가 범람하는 세계, [저승]
[구원(천국)]과 [심판(지옥)]의 갈림길에서 각자의 방향을 걷는 자들의 이야기.

그 가운데…… 19살 소녀, 한지예는 자신의 방에서 絞死━━목을 매달다.

“아니야! 아니라고, 난 죽지 않았어!”

자살이라는 대죄를 범하고만 한지예는 지옥을 심판받고야 말았다!
천국의 영원한 이별, 확정된 지옥, 그나마 살만한 저승라이프!
사신과 불가촉사망자들을 피해가는 파란만장한 사후세계 생존 판타지!

 
T time. 5
작성일 : 17-07-24 19:16     조회 : 247     추천 : 0     분량 : 8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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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루는 처마 입이 닫혀버렸다. 심장 한 구석을 후벼 파는 발언에 말문이 막힌 까닭이다.

  트루가 죽어버린 가장 큰 이유는 무모함이다. 앞만 바라보았지 옆과 뒤를 보지 못했다. 그 무모함에 이끌린 친구도 봉변을 당해버렸다. 지금 그의 생사가 어떤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만일 죽어버렸다면 트루는 자신을 살인자나 다름없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렇기에 간절히 바란다. 죽지 않았음을.

  “저는 그 녀석을 믿어요. 절대 죽지 않았어요.”

  근거 없는 확신을 듣자 한지예가 키득. 작은 웃음소리를 냈다.

  “대단한 우정이네. 근거는?”

  “허울에 지나치지 않는 대답이라는 건 잘 압니다. 그 녀석은 부족한 저를 대신해서 돛을 펼치고 키를 잡으며 역경을 넘었습니다. 저보다 유능한 녀석이죠. 만약 죽었더라면 이곳 어딘가에서 저를 찾고 있겠지요. 하지만 아직은 만나지 못했으니 살아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저는 희박한 가능성이라도 믿어요. 절대 형편없이 죽을 녀석은 아닙니다.”

  그 말에. 한지예가 비웃듯이 웃음을 흘렸다.

  “바보 같은 확신이네.”

  “바보는 누님 같은 사람에게나 하는 말이죠.”

  공기가 바꿨다.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어느새 긴장으로 둘러싸였다.

  “내가 바보라고?”

  “예, 바보라고요. 그것도 한심한 멍청이죠.”

  트루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첫인상처럼 장난 끼 많아 보이는 남자가 아닌, 진지한 모습으로 한지예를 비판했다.

  “그 말, 책임질 수 있어?”

  “바보같이 죽었다고요? 누님은 겁에 질려 아무것도 도전하지 못하고 죽었지 않습니까? 방면에 저는 좋아하는 걸 하다가 죽었습니다. 바보는 누님 쪽이죠. 제 죽음은 훨씬 의미 있는 죽음이란 말입니다.”

  한지예는 건방진 반항아에게 한방 먹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시작은 한지예가 벌인 일이므로, 부적절한 발언을 꺼낸 것 역시 한지예다. 트루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당연한 사실.

  한지예는 실패한 삶이었다. 행복으로 따지자면 최저였고 마지막의 행동은 최악이었다.

  방면에 트루는 그 사실을 몰랐다. 오늘 처음 보는 생판 남이니깐. 그녀의 삶을 훤히 내다보지는 못했지만 그저 한가지의 이유로 한지예의 삶을 예측했다.

  당당하게.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목에 걸린 건 장식이세요?”

  냉기가 등살을 파고들었다.

  트루의 시선이 닿은 곳은 목에 걸린 굵은 밧줄이었다. 걸리적거리지 않아 신경 밖이었던 존재였지만 지금은 자신에 지적거리가 돼버렸다.

  트루가 사인이라는 존재를 인지할때부터 한지예의 밧줄이 신경 쓰였다. 사인이 존재하는 이곳에서 목에 밧줄이 걸려있다는 말은 즉, 자살 말고는 없었다. 어떤 과거가 있는지 몰라도 우선은 위로해주고픈 심정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게 흘렸다.

  한지예가 트루의 최후를 비웃었다. 친구가 죽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꿋꿋히 참아야만했다.

  내 잘못이니깐. 내가 괜히 나서서 봉변당했으니깐.

  만약 친구가 죽었다면 나는 살인범이니깐.

  사고라고 한들, 트루는 무모한 인간이었다. 마음으로 야망을 품었지만 남이 볼 때 그의 행동은 자살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친구까지 죽일 뻔한 무모한 인간이었다. 욕먹을 만하다.

  그런데.

  너는 아니야. 너는 나를 비웃을 자격이 없어.

  자살한 주제에.

  “하, 하하…….”

  약점을 잡혀버린 한지예가 커피 잔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잡았다. 자신의 분노가 까발려질까봐, 아닌 척 남몰래 애꿎은 커피 잔에게 분노를 표출하였다.

  모래시계에 눈을 때지 않고 집중하는 것처럼 몇 초간 긴 정막이 흐르는 가운데 화를 가라앉히던 한지예가 진정된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 맞아. 한심한 쪽은 나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너는 틀리지 않았어.”

  “그렇게까지 수긍하실 건 없는 데요…….”

  “아니.”

  한지예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바보같이 죽었어. 하지만 너는 바보같이 죽지 않았어. 네 말은 홀로 죽는 것보다 남에게 피해주면서 죽는 것이 현명하다는 거잖아.”

  “……그런 뜻이 아닙니다.”

  “아니라고?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나는 아무에게도 피해않고 죽어버렸는데 말이야. 나 때문에 슬퍼하거나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은 없어.”

  “…….”

  “그럼 질문 하나만 던져줄까? 너. 만약에 너 혼자 살아남고 친구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어?”

  절망.

  소중한 이를 죽음으로 몰아붙인, 자신에게 배신감.

  친구의 뒤를 따라갈까 하는 고민들. 미안함과 고독함이 한 대 섞여 다시는 경험하기 싫은 절망을 느끼게 해주었다.

  “의미 있는 죽음? 꿈을 이루는 도중에?”

  한지예는 깊은 탄식을 뱉어냈다.

  “꿈도 이루지 못하고 소중한 친구를 잃어버린 채 결국 자신도 비참하게 죽어버린 쪽과 매일매일 지옥을 경험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한 가지 희망에만 기댄 채, 결국은 실패하고 죽어버린 쪽. 네가 보기에는 그나마 어느 쪽이 의미 있는 삶이라 생각해?”

  전자의 경우는 자신을 빗대어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분명 의미 있는 죽음이 아닐 터, 그러면 후자의 경우. 한지예 자신을 빗대어낸 삶은 실패한 삶이다.

  트루가 말했다.

  “……어느 쪽도 값지지 않아요.”

  “현명한 대답이야. 두 쪽 전부 한심하기 짝이 없지. 하지만 대부분 너희들은 스스로 목숨을 끓은 쪽을 한심하다고 생각하잖아. 그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조차하지 않으려하고.”

  한지예는 거듭 말했다.

  “만약 네가 꿈을 이루고 죽어버렸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아. 우리들은 해피엔딩이 아니야.”

  나른한 오후. 점심의 티타임을 방불케 하던 카페 안은 어느새 불결한 공기가 맴돌았다. 잠자코 향기에 취하던 이들은 긴장에 주눅 들어야만 했고 그렇지 않은 이는 어른들의 대화에 얌전히 눈치만 봐야만 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말을 꺼낸 사람은 김지용이었다.

  “아가씨 말이 맞아. 우리는 부실하고 허점이 많지. 서로가 받쳐주지 못하면 또다시 넘어질게 뻔해.”

  한지예가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의미는 중요하지 않아. 결국은 옛일이야. 이곳에서 다시 찾으면 돼. 하지만…….”

  김지용은 낮아진 음색으로 말을 이어갔다.

  “남겨진 사람에게는 사죄해야겠지. 빈자리를 만들어버린 죄로써.”

  “어르신께서는 정말 미안해하고 계시네요.”

  “그것 밖에 할 수 없어 나도 빈자리의 쓸쓸함을 느껴봤으니깐.”

  “아련하시겠어요.”

  김지용이 이마를 짚었다.

  “……그러니 청년의 친구를 맘대로 죽이지 말게나. 아직은 살아있을지 모르잖아.”

  한지예는 잠자코 순응하였다. 아직 생사도 불분명한 사람을 죽였다고 했으니 미안할 만도 했다.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자는 저승에서 다시 시작한다. 저승의 주민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건너온 이상 새로운 인생이 맞이하는 것이다.

  트루 역시 똑같은 입장이다. 비록 이승에서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저승은 충분히 탐험할 가치가 있는 공간이다. 친구의 생사가 묘호한 것이 화근이지만, 트루에게 죽음이란 또 다른 탐험의 알림이다.

  의자에 등을 기댄 한지예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웃겨.”

  비웃음 비슷한 소리가 김지용의 귓구멍을 파고들었다. 눈썹이 살짝 위로 들썩였다.

  “사죄라고?”

  눈을 치켜세웠다. 찌릿한 눈빛이 몸을 관통했다.

  “나랑 똑같은 죄일 뿐이야.”

  한지예는 커피 잔을 놓았다.

  “변명이지.”

  이윽고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집중한다.

  “아가씨…… 그만하시게.”

  김지용은 개운하지 못한 목소리로 한지예를 말렸다. 하지만 한지예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어르신. 어르신은 누구에게 사죄하는 건가요. 이곳에 그들은 없어요. 없는 이들에게 말을 거는 행위는 멍청한 짓이에요. 아니면 그분에게 빌고 있는 거에요? 신이라는 분.”

  “이제 그만…….”

  “사죄해야할 사람은 없다고요.”

  김지용은 두 주먹을 허벅지에 얹었다.

  “지금 이곳에는.”

  두 주먹이 꽈악 쥐어졌다.

  “아직 그곳에서 어르신을 원망하고 있을지 몰라요.”

  “…….”

  “어르신이 떠나던 날을 기억하고.”

  “…….”

  “증오하겠죠.”

  “…….”

  “그러면서도 사죄로 끝날 것 같아요?”

  “…….”

  “저라면 용서하지 못할 거에요.”

  “…….”

  “사랑을 배신당하고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당신을.”

  호흡이 멈췄다.

  서슴없이 말하는 한지예와 반대로, 김지용의 머릿속은 온갖 생각이 뇌리를 교차하면서 정신을 헤집어놓았다. 모래바람에 휘말린 사막처럼. 황폐해진 머릿속은 김지용의 의지를 꺾어버리기 충분했다. 굳어버린 몸은 송장처럼 말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반박을 해주어야하는데 어째서인지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잔혹한 사실에 정곡이 찔려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아니야…….”

  무너져버린 그를 대변해준 사람은 어느 누구도 아니라 11년간 함께해온 윈디라는 아이였다.

  “아니라고…….”

  윈디는 아이스초코가 반쯤 남은 유리컵을 거머쥐었다. 불게 달아오른 눈시울에서 잘못 건드리면 무수한 이슬들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윈디, 라고 했지. 뭐가 아니라는 거니?”

  “아저씨는 나쁘지 않아…….”

  조금 누그러진 표정으로. 한지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르신은 선한 분이셔. 얼굴도 모르는 나를 위험한 순간에 홀로 도와주셨고 모르는 질문에도 상냥히 대답해주었어. 내가 혼자라는 걸 알아차리고는 사람들을 소개해주었지. 당장 구원받으셔도 합당한 분이야.”

  응응. 하고 자신에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상쾌하게 끄덕였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착해서 바보 같다는 거야. 가족을 잊지 못하고 또 다른 아이를 보살펴주었어. 자기도 피해볼지 모르는 싸움에 끼어들었어. 나라는 여자를 이곳으로 소개해주었어.”

  이번에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무모해. 미래를 생각하지 않아. 당장에 상황만 받아드려. 이러면 되는 구나하고 과한 욕심에 취해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희생하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정작 행복을 챙기지 못하는 바보.”

  윈디는 뚝뚝 구슬 같은 작은 눈물을 떨궜다.

  “윈디는 행복했니? 어저씨랑 함께 라서? 그럼 아저씨께 물어볼까.”

  시선이 김지용에게로 옮겨졌다. 흠칫 몸을 떨던 김지용이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뚜렷한 눈빛이 시신경에서까지 느껴졌다.

  “행복, 했나요? 죽고 난 뒤로 윈디를 만나고 행복해질 수 있었나요?”

  “……나는. 윈디 덕분에 구원받았어.”

  “그렇군요.”

  시시한 대답이었는지 한지예는 졸린 눈으로 하품을 크게 했다.

  “남겨진 가족도 잊을 만큼 행복했나 봐요. 윈디가 저 정도로 따를 정도라면 많은 사랑을 나눠준 것 같은데.”

  “그렇게 판단하지 마.”

  “알겠어요. 어르신은 가족들을 잊지 않고 윈디를 보살펴주었군요. 혹시 이러면 용서받을 꺼라 생각한 걸까요. 아니면 과거를 묻어줄 대용품이 필요했던 걸까요. 결국은 욕심이군요. 당신은 위로받길 원하는 어린아이인가요?”

  “그만 좀 하세요!”

  천장이 무너질라. 트루는 목청껏 소리 질렸다. 귀가 맹맹해졌는지 한지예는 눈살을 찌푸렸다.

  “넌 좀, 여물지?”

  한지예의 말투는 변함없이 삐딱했다.

  “유감이지만 너에게 볼일은 끝났어. 마시던 거 마저 마시고 먼저 가던가. 끝날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라고.”

  “아니요. 제가 바보였어요. 괜히 쓸데없는 걸 물어봤네요.”

  “그걸 이제야 알아차렸구나. 왠지 뿌듯해지는 걸?”

  “누님은 악마에요.”

  “살아생전에는 악귀의 새끼라고 불렸는데.”

  “정정할게요, 누님. 그러니깐 부탁할게요. 이곳을 떠나주세요.”

  한지예가 싫은 기색을 티내며 콧방귀를 뀌었다.

  “싫은데. 아직 할 말이 산더미처럼 쌓여서 말이지.”

  “이 여자가 정말……!”

  트루가 의자를 내팽겨 치고 벌떡 일어섰다. 바닥에 널 부러진 의자는 처량하게 뒤집어졌다. 김지용은 머리를 감싸고 고개를 들지 못하였고 윈디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트루를 말렸다.

  “그만해……! 그만! 오빠도 언니도 그만해……!”

  한 아이의 서러운 울음이 묵직한 공기를 짓누르고 방안을 에워쌌다.

  “애당초! 뭐가 재시작이야! 이건 악몽이라고. 현실에서도 감당하지 못할 고통을 꿈에서도 느끼게 해주는 거야! 거짓말에 속아서 사죄 같은 거 할 필요는 없다고!”

  한지예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구원 좋아하시네! 보잘것없이 쓸데없는데 힘 빼지 말고 좋은 꿈이라도 꾸도록 노력이나 해……. 휴지통에 던져버릴 꿈 따위 찢어버리고!”

  표정이 일그러진 트루가 비로소 참지 못하고 한지예의 멱살을 잡아들었다.

  “비웃지 마!!! 네가 뭘 안다고 나불거리는 거야!! 내 인생에 관련해준 적 있냐고!”

  “뻔하지. 자만이 앞서 마을에 굴러다니는 구멍 난 낚싯배나 주워 탔겠지. 네 친구도 참 불쌍하다. 어지간히 불안할 만도 할 텐데 말이야!”

  “닥쳐……. 닥치라고!”

  “그만해……. 그만……!”

  윈디는 자기가 눈물범벅이 된 거라는 사실도 모른 채 둘을 말리려고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뭐? 이곳에서 꿈을 찾기 위해 탐험을 계속할거라고? 멍청한 것도 유분수지! 또 그 실수를 반복할 생각이야?”

  “당신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야. 나는 탐험을 계속할 거야. 그 녀석에게 자랑해줄 만큼 많은 걸 발견하고는 알려줄 거라고!”

  “죽으면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고?”

  “아니. 우리의 꿈은 끝나지 않는다고!”

  우스갯소리마냥 한지예가 키득키득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였다. 악몽 뒤에는 또 다른 악몽은 없다고 한지에는 단호하게 단정지어주고 싶었다.

  “한심해!!!”

  한지예가 자신의 멱살을 잡은 트루의 손아귀를 뿌리쳤다.

  “그래. 알려줄게. 내가 이렇게까지 말해주는 이유를.”

  “그럴 필요는 없어. 당신의 말은 허언된 덩어리야!”

  “네 친구는 말이야. 너를 꿈에서 끄집어내주고 싶은 심정일 거야. 탐험에 목숨도 거는 바보가 죽어서도 탐험을 멈추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으니깐.”

  “입 닥쳐!”

  “그래도 너를 믿었어. 당당한 모습에 넘어간 거겠지. 그런데 어쩐담, 정말 죽어버렸네. 그런데도 너는 계속 탐험할 거야? 친구가 그토록 말렸는데도 멈추지 않을 거냐고!”

  “으아아아아!!!!”

  이번에도 한지예의 멱살을 잡아 틀었다. 한지예는 아까보다 더욱 불쾌해지고 아파오는 통증으로 트루가 얼마나 분노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험악해진 얼굴을 향해 한지예는 또박또박 외쳤다.

  “바보!”

  “…….”

  “멍청이!!”

  “…….”

  “살인범!!!”

  “……!”

  손아귀의 힘이 쭉 빠지기 시작했다. 트루는 계속 씩씩 거려 분노를 억제하지 못했지만 그다지 다른 말이 튀어나오지는 않았다. 잔혹한 사실에 정곡이 찔려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윈디는 주저앉아 오열했다. 하늘을 떠올리게 하는 구름 잠옷이 눈물 때문에 쉽게 얼룩지고 말았다. 어린아이의 서러운 울음소리가 폐부를 찔렸다.

  그만…… 더 이상 싸우지 마…….

  윈디가 그런 말만 반복하고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손아귀의 힘은 아까처럼 되돌아왔지만 트루는 상실에 빠져버려 멱살을 놓아주지 못하고 얼굴을 푹 숙였다. 콸콸해진 목소리로 한지예에게 물었다.

  “아픈 곳을 찌르는 게 그리도 재밌어……?”

  “설마. 나도 싫어해.”

  “그럼 왜!”

  “거짓말을 싫어하거든.”

  한지예가 모두에게 눈짓했다.

  “사죄하면 모든지 용서되는 곳이라며, 이곳은. 그럼 거짓말로 위안 삼으면 안 돼지.”

  “받아드리는 건 힘든 일이에요. 나도 그렇고 누님도 그렇고.”

  “윈디도 그렇고 아저씨도 그렇고.”

  가르다란 한지예의 팔이 트루의 머리언저리에 얹혀졌다. 10센티도 넘는 차이였지만 트루의 구부러진 몸이 눈높이를 맞춰주었었다. 멱살을 풀어주자 한지예는 가슴을 내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트루는 힘없이 머리를 내어주었다.

  “거짓말쟁이잖아.”

  트루는 작게 소곤거렸다.

  “위로해줄 방법도 알면서.”

  한지예가 차분하게 말했다.

  “네가 싫으니깐 그렇지.”

  “나도 누님만큼 싫어요.”

  한동안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던 둘은 발걸음을 맞췄다.

  고통을 안겨주는 치료법처럼 증오 섞인 위로로 달래주며 이 둘은 서서히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벙어리가 되어버린 김지용은 병석에서 일어나는 병자처럼 탁자를 벗어났다. 그가 발길이 닫는 곳은 언제나 윈디가 있는 곳이다. 홀로 주저앉아 딸꾹질을 반복하는 윈디에게 김지용은 감싸 앉았다. 기계가 정상적으로 정지되는 듯이 윈디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한지예가 말했다.

  “그럼 이만.”

  트루는 그다지 말리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에게서 떠난다. 자신과 얼굴 마주칠 일이 없기만을 바라는 그녀와 더 이상 마주볼 일없다고 짐작했으니깐.

  더 이상 말릴 필요는 없었다. 만일 함께해야한다 하더라도 좋은 만남을 가질 거라 확신할 수 없으니깐.

  그때, 한지예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뭔가 빼먹은 것 같은 한지예가 아차하고 시선을 옮겼다.

  “아참. 어르신의 가장 바보 같은 점이 뭔지 깨달을 셨나요?”

  김지용은 고개를 옆으로 기우리고 의아한 모습을 보였다. 또 듣기 거북한 말이 튀어나올까봐 두려움도 있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달랐다.

  “무슨 말인지 물어봐도 괜찮겠나?”

  “당연하죠.”

  한지예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바로 가족 분들이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을지 의심조차하지 않는 다는 점이에요.”

  김지용은 과묵하게 그 말을 경청하였다.

  “아직 만나지 못했다고 하셨죠? 그럼 한 가지 분명한 걸 알려드릴게요. 그분은 머지않아 어르신을 만나려 오실 거에요.”

  “어떻게 확증할 수 있지?”

  “아마 뒤틀어버린 이곳의 시간에서 나는 한참후의 시간대에서 죽어버렸다. 랄까?”

  한지예는 그쯤에서 말을 끊었다. 김지용은 더욱더 머리가 뒤죽박죽 꼬여버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저처럼 바보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건 확신할게요.”

  그리고 말했다.

  “혹시 모르죠. 정말 행복한 삶을 사셨는지.”

  그렇게.

  한지예는 출구로, 밑으로 향하는 계단을 향했다.

  “잠깐!”

  그때였다.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환청이길 간절히 바라는 한지예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다. 더 이상 말한 껀덕지도 없다고 판단한 트루의 목소리였다.

  “자기소개도 안 했잖아요.”

  한지예는 어이가 없었다. 이미 떠난 사람에게 정을 붙이려는 행동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무슨 친목을 다지는 기회인가. 그저 한지예는 귀찮을 뿐이다. 간단하게 끝내자.

  “이름은 한지예, 24살.”

  그녀가 옆모습을 비추듯이 살짝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목에 걸린 밧줄을 치켜들어 모두에게 환히 보여주었다.

 

  “사인은 자살.”

 

  이후. 창가에서 불어오는 시원함 바람이 빈자리 하나와 빈 찻잔에 미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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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 삶, 이후의 삶. 2 2017 / 7 / 5 262 0 4817   
3 이 삶, 이후의 삶 2017 / 7 / 3 279 0 4008   
2 의미. 2017 / 7 / 3 271 0 5579   
1 프롤로그 2017 / 6 / 5 421 0 5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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