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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천사는 울지 않는다
작가 : 소설부부
작품등록일 : 2017.7.15

영겁의 세월동안 고독과 마음의 평온만을 추구하던 천사 프라.
그가 복잡한 관계로 뒤얽힌 지구의 삶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

...팽팽한 긴장의 줄을 싹둑 잘라 먹었다.

모두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라는 잔뜩 힘주어 숨을 참고 있던 참이었었다.

에이씨. 지지려면 빨리 지질 것이지. 할랑 말랑 하는 게 더 고문인 거 모르나.

키가 보통 명마보다 큰 흑마는 구경꾼들을 당당하게 가르고 장교 앞에까지 왔다.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검은 후드망토를 길게 늘어트린 존재가 말 위에 앉아 있었다.

 
내 여자 덕에 산 줄 알아
작성일 : 17-07-24 15:08     조회 : 261     추천 : 0     분량 : 7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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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말코족 대장 자히라도 측근들과 함께 비슷한 보고를 받았다.

 

 

 “카라스 영주가 정말 그 여자를 교수형에 처할까요? 아니면 황제를 잡기 위한 술수일까요?”

 

 “영주를 홀리라고 보낸 여자가 도리어 영주한테 홀려 당하게 생겼네요. 라시스황제가 우습게 됐습니다.”

 

 “화족들은 여자를 미끼로 쓰지 않아. 특히 자기 여자는. 아카드 카라스는 그 여자를 특별히 생각하는 것이 분명해.”

 

 “그럼, 자기 여자라는 것을 알면서 죽인다고요?”

 

 “아카드 카라스는 미친놈이야. 역대 카라스 중에서 그런 놈은 없었어. 죽었어도 벌써 죽었어야 할 나이야.”

 

 “지금 예순 네다섯 정도 되었으니 15년 이상 오래 살고 있는 거죠. 여전히 팔팔하고요.”

 

 “게다가 걔네들한테 두 번째 여자라는 건 존재하지도 않아. 카라스 가문이 늑대 문장을 사용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고. 우두머리는 수컷이지만 그 우두머리를 좌지우지 하는 것이 유일한 반려 암컷이거든. 근데 아카드 카라스는 이미 반려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또 다른 여자를 품고 있잖아. 조상들의 기록 어디에도 이렇게 오래 살면서 두 여자를 품은 화족은 없었어. 무슨 꿍꿍이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군.”

 

 

 자히라가 생각에 잠겼다.

 

 

 “어찌됐든 간에 영주를 처리해야 우리도 패가 풀리니, 이참에 저희도 움직이는 게 어떻습니까? 암살단 중에 살벌한 놈들이 있습니다.”

 

 “…….”

 

 “영주가 그 여자를 이용하든, 죽이든 한 눈 파는 순간에 허를 찌르는 겁니다.”

 

 “좋아, 바로 출발시켜.”

 

 

 

 

 **

 

 

 

 

 

 매일 밤, 차가운 감옥의 돌바닥 위에서 잠이 들면서도 같은 꿈을 꿨다.

 

 

 카라스 본성의 식당.

 

 그의 칭찬들.

 

 

 “특히 요리하는 사람의 요구가 분명해서 마음에 드는군.”

 

 “……그렇죠.”

 

 “근데 또 낚시꾼이네?”

 

 “네.”

 

 “당연히 낚시꾼은 당신?”

 

 

 세라는 미소를 지었다.

 

 

 “이 요리는 미끼고?”

 

 

 그녀는 고개를 끄덖였다.

 

 

 “나는 늘 그렇듯 거침없이, 이백 쉰 네 번 째 미끼를 물었고. 자 그러면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그리고 매번 허탈함으로 눈을 떠야했다.

 

 건너편에 수감되어 있던 아델은 곧바로 다른 곳으로 데려가 버려 이야기 나눌 상대도 없이 세라는 홀로 두려움을 감당해야 했다.

 

 내일이면 긴 두려움, 의문, 추위, 외로움이 끝나려나?

 

 아카드를 기다리고 있지만 브르노와 기사들의 말처럼 그는 내일이나 되어 그녀를 보려나 보았다.

 

 오늘로써 그녀는 황제의 하사품의 신분이 끝났다.

 

 

 

 **

 

 

 

 

 

 야간 경비들이 칠흑 같은 뒷마당을 한 바퀴 훑고 지나가자마자,

 

 카라스 성이 박혀들어 간 바위 산 중턱에서, 검은 형상들이 박쥐처럼 기류를 타고 선회하며 사뿐히 카라스성 안으로 내려앉았다.

 

 검은 복면을 하고 있는 열두 명의 검은 형체들의 몸놀림은 공기처럼 가볍고 유연했다.

 

 그들 중 팔에 붉은 띠를 맨 자가 손짓을 하자 각자 위치와 임무를 위해 순식간에 흩어졌다.

 

 붉은 띠를 맨 자는 지하 감옥을 향해 다른 세 명과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하감옥으로 가는 통로는 오직 하나이기에 정문을 통과 한 후에는 시간 싸움이었다.

 

 그들은 발소리도 내지 않고 춤을 추듯 어둠속에서 팔을 뻗어 경비들을 하나 둘씩 제거해 나갔다.

 

 카라스의 기사들이 눈치를 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근처에 있던 자들이 조용히 사라지는 것을 느낀 그들은 검을 꺼내들고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어둠 속에서 또다시 팔이 뻗어 나오는 순간 그것들을 잡아 당겨 정체를 확인했다.

 

 숨어있던 복면들이 카라스기사들과 맞붙어 싸우기 시작할 때, 붉은 띠는 입구를 트고 부하들과 지하를 향해 재빨리 들어갔다.

 

 그들이 속도를 내기 시작하니 칼바람 소리가 휙휙 공기를 갈랐다.

 

 그들이 지하로 들어서자 다른 복면들이 일제히 입구를 봉쇄해버렸다.

 

 카라스 기사들은 침입자들의 유연하고 생소한 몸놀림에 놀라면서도 자신들의 열세를 쉬이 인정할 수 없어 무섭게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검을 쓰는 방식도 표창도 처음 보는 방식으로 쓰고 있어 예측이 불가했다.

 

 

 

 *

 

 

 

 철컹!

 

 철문이 열리는 소리에 세라는 눈을 떴다.

 

 

 “세라 파갈, 구하러 왔으니 순순히 따르라.”

 

 

 낮게 울리는 다급한 소리와 동시에 그녀는 일으켜졌다.

 

 따라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복면한 자가 그녀를 곧바로 등에 업고는 뛰기 시작했다. 그의 앞에 두 명, 뒤에 한명이 더 있었다.

 

 좁은 계단을 오르는 동안 이미 쓰러져 있는 군사들이 계속 이어져 있었다.

 

 입구로 나오니 기사와 복면을 한 자들의 대치상태를 볼 수 있었다. 그 아래엔 많은 카라스군사들이 쓰러져 있었다.

 

 대치중이던 복면들이 붉은 띠가 세라를 데리고 나온 것을 확인하자,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또다시 격전이 시작되고,

 

 그 사이 붉은 띠가 업고 있던 세라를 내리고, 옆에 있던 복면이 어디선가 끌어 온 가는 줄을 붉은 띠의 허리에 연결했다. 그는 줄이 연결 되자마자 세라의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그와 동시에 세라의 몸이 허공이로 빠르게 올라갔다. 세라는 놀라 눈을 질끈 감고 자신을 안고 있는 정체불명의 남자의 몸통을 와락 끌어안았다.

 

 발아래에서는 무기들이 부딪히는 마찰음이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붉은 띠는 날아오는 활과 수리검, 표창들을 막아내며 그녀를 떨어트리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것이 느껴졌다.

 

 윽!

 

 붉은 띠에게서 짧은 신음소리가 들렸다. 세라는 고개를 들어 그를 살폈고 그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으나, 손놀림이 현저히 느려지고 있었다.

 

 바로 아래 영주의 집무실 창이 눈에 들어왔다. 3층 이상 높이로 올라 온 것을 확인하는 순간,

 

 줄이 뚝 끊어지고 둘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복면의 남자가 그녀를 똑바로 응시한 뒤, 검을 버리고 그녀의 등을 감싸 안았다.

 

 허공에서 그가 몸을 돌렸다.

 

 쿵!

 

 충격에 몸이 굳어버렸다. 세라는 질끈 감은 눈을 서서히 떴다. 자신의 밑에 깔린 남자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 추락의 짧은 순간, 그에게서 느껴진 무엇이 짙은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손을 뻗어 복면 속의 목 동맥을 더듬어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앗!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려는데 손에 느껴진 날카로운 베임에 움찔해야했다. 동시에 남자에게서도 옆은 신음소리가 세어 나왔다. 남자의 뒤쪽 옆구리에 박힌 표창이 달빛에 희번덕거렸다.

 

 다다다다닥! 카라스 기사들이 세라와 마지막 남은 복면의 침입자를 에워쌌다.

 

 뚜벅. 뚜벅. 스르릉. 스르릉.

 

 누군가 검을 바닥에 끌며 다가오고 있었다.

 

 세라는 고개를 들었다. 다가오는 검은 부츠 뒤로 선혈들이 눈 위에 흩뿌려지고 그 위로 널브러진 복면을 쓴 형체들이 보였다.

 

 시선을 옮기니, 부츠의 은빛 늑대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카라스 영주의 검은 부츠.

 

 세라는 아카드를 올려보았다.

 

 이곳에 그가 있었구나. 이곳에 있었으면서도 나를 만나러 오지 않았어.

 

 지친 홍안은 아무것도 묻지도 억울해 하지도 않고 흔들리고 있었다.

 

 아카드는 그런 그녀를 잠시 응시하다 침입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가 검 끝으로 복면을 거둬냈다.

 

 상상하지 못했던 얼굴이 들어나자, 세라는 턱이 벌어지고 말았다.

 

 잠시 후에 겨우 그의 이름을 입 밖으로 뱉어내면서 그녀는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라시스……폐, 폐하!”

 

 

 거친 손길이 그녀를 그에게서 떼어내 버렸다. 세라가 돌바닥에 내동댕이쳐지며 짧은 비명을 질렀다.

 

 

 “으으으흑, 세, 세라.”

 

 

 세라의 비명에 라시스가 정신이 들기 시작하자,

 

 

 “애지중지하던 여자가 죽는다니까, 귀하신 몸이 손수 구하러 왔군.”

 

 “…….”

 

 “그렇게 아까워 할 걸 왜 나한테 보내선 이런 꼴을 당해!”

 

 

 아카드가 라시스의 목을 짓밟고 눌러왔다. 라시스는 신음소리를 삼켰다.

 

 

 “여기가 어디라고 네 멋대로 들어와. 멋대로 들어왔으니 황제라도 대가는 치러야지.”

 

 

 아카드의 검 끝이 라시스의 목 위에 세워졌다.

 

 

 “안 돼! 제발,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갑자기 달려 든 손이 아카드의 검을 쳐버리고 그의 발을 몸으로 밀쳐냈다.

 

 쇠망치로 쳐도 끄떡없을 것 같은 단단한 그의 발이 힘없이 바닥으로 내려졌다.

 

 

 “폐하를 살려 주세요. 죽이면 안 돼요.”

 

 

 기사들이 어이없다는 눈으로 세라를 내려 보았다.

 

 그렇게 꼿꼿하게 자기는 황제의 첩자가 아니라고 일관하더니, 지금 이 모양새는 영락없는 황제의 애첩 같은 꼴이었다.

 

 아카드는 세라가 밀쳐낸 자신의 발을 표정 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라가 몸을 돌려 그의 발아래 엎드렸다.

 

 검을 쳐냈던 그녀의 손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 아카드의 관자놀이가 움찔거렸다.

 

 

 “라시스 황제를 살려 주세요. 이렇게 애원하는 것은…….”

 

 

 그녀가 얼굴을 들어 아카드의 눈을 응시했다.

 

 

 “제가 그의 첩자여서도 그를 사랑해서도 아닙니다. 그의 정책이 이곳 카라스 백성들에겐 받아들여지기 힘든 일이란 것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분명 그는 아스란제국을 위해 필요한 군주입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전쟁을 종식시키고 신분과 국경을 넘어 모두를 포용할 기틀을 마련할 역사적인 인물이 될 것입니다. 이분을 이렇게 잃고 만다면 또 다시 50년, 100년을 기다리며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나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닥쳐! 네가 뭘 안다고.”

 

 “카라스성 사람들에게 또다시 희생을 요구한다는 것이 부당한 것을 알고 있어요. 분명히 황제는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보상할 것입니다. 조금만, 조금만 원망과 복수의 칼을 내리면 다른 것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곁에서 지켜보던 아카드의 수행기사 발락과 야쿠는 금세라도 주군이 검을 들어 세라의 목을 찌를까 조마조마했다.

 

 

 “네가 이곳의 고통을 모르기에 함부로 짓거리는 거야.”

 

 

 사늘한 아카드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당신 말대로 이곳의 고통은 모릅니다. 대신 라시스 황제의 가능성은 잘 압니다. 잘 알기에, 제 가문을 배신했습니다.”

 

 “…….”

 

 “수 천 명의 파갈 남자들이 죽었고. 여자들은 노예가 되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저의 배신으로 파갈 가문은 황좌를 차지할 기회를 세 차례나 잃었습니다.”

 

 

 주변의 비웃음과 조롱의 기운이 사그라지고 있었다.

 

 파갈가문의 위풍당당함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 여자의 선택이 단순히 황제의 사랑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었음이 느껴졌다.

 

 

 “라시스황제에게도 복수하고 싶은 자들이 왜 없겠습니까? 잠시만이라도 그가 한 일들을 돌아 봐 주세요. 그가 뿌린 씨앗들이 열매를 맺기 시작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회를 주면 그 열매로 그가 제왕감임을 알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확실히 지난 수년간 황권이 강화되며, 내분이 잦아들고 노예수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평민들에게 과하게 부과되는 세금이 감면 되었고 부당한 이익을 착취하던 귀족들의 불평불만을 해소시키기 위해 그들의 관심을 대외로 돌려 개발되지 않은 외국의 광산들에 투자하도록 외교의 물고를 텄다.

 

 

 “이곳 백성을 아끼시는 카라스 영주님이시여, 당신 백성들의 후손이 더 이상 전쟁으로 고통 받지 않도록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세라는 상체를 숙여 이마를 아카드의 발아래 대었다. 이제 그의 처분을 기다릴 수밖에.

 

 

 

 

 **

 

 

 

 

 새벽이 오고 있었다.

 

 그녀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이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할까?

 

 누구도 원망하며 보내고 싶지 않았다.

 

 세라는 무릎을 꿇고, 그동안 찾지 않았던 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혹자들은 더 이상 신이 인간을 돌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의 이름을 내세워 돈을 받고 면죄부를 팔고, 신의 이름으로 온갖 간악한 짓을 행하는 이 시대의 사람들은 천둥벌거숭이 고아나 다름없이 제멋대로였다.

 

 

 “제가 뭔가를 많이 잘 못해서 이런 일들을 겪는 것이라면 달게 받아야겠죠.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지금 떨리는 온 몸을 진정시켜주시고 마음에 평안을 허락하소서.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 마음을 허락하소서. 두려움 때문에 양심을 저버리지 않게 하소서.”

 

 

 아델이 했던 말, 쫓아가야 할 빛이 없을 땐, 양심을 따르라는 말이 생각났다. 세라도 그 말이 진리처럼 느껴져 그것을 기도에 넣었다.

 

 철컹! 또다시 문이 열렸다.

 

 이번에는 그녀를 구하러 온 자들이 아니라 형장으로 안내하려고 온 카라스 기사들이었다. 마지막까지 기사들이 그녀를 지키는 이유는 그녀가 걸어 다니는 병기도서라서 일까?

 

 도면을 그려놓고 죽어야 하는 거 아냐?

 

 손과 발에 쇠사슬을 차고 어디론가 끌려가는 중에도, 그것이 걱정이 되는 스스로가 기가 막혔다.

 

 어두운 복도를 지나 계단을 오르고, 밖으로 나왔다. 하얀 설경을 다시 보니 아름답다는 생각부터 떠올랐다. 햇살에 반짝이는 광경이 그녀를 축복해주는 듯 감격스러울 따름이었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떨리는 온 몸을 진정시켜주시고 마음에 평안을 허락하소서.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 마음을 허락하소서.’

 

 

 그녀의 기도를 들어 준 누군가 저 위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죄인 호송용 마차에 올라탔다.

 

 형장으로 가는 거겠지.

 

 그렇다면 죽기전에 열 한명을 살리기 위해 자백을 해야 했다.

 

 창살이 달린 작은 창에 대고,

 

 

 “브르노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요. 아직 자백을 하지 못했어요. 브르노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이미 형장에 가 계신다. 거기서 하도록 해.”

 

 

 창문이 밖에서 닫혔다.

 

 기사의 대답에 그녀는 다시 차분히 자리에 앉았다.

 

 

 산다는 게 무엇일까?

 

 

 귀족으로 태어나 온갖 귀한 대접을 받고 살았지만 노예로 살아보니 그러한 대접은 부질없는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에게 남는 것은 거짓 없이 참된 마음으로 형성된 관계, 그것에 대한 기억들뿐이었다.

 

 부모님과 오빠들에게 받은 짧지만 강렬한 보호와 사랑.

 

 파갈 공작의 냉정함으로 감춘 염려와 애잔한 눈빛.

 

 군주로서 포기한 라시스의 회한의 사랑.

 

 아론, 집착 같은, 오직 한 여자만을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

 

 그리고 아카드.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어도 그녀가 사랑한 남자.

 

 이렇게 빨리 끝나버릴 줄 알았다면 좀 더 매달리고 더 열렬히 사랑할 걸 그랬나?

 

 아쉬움이 남았지만 세라는 그마저도 털어내기로 했다. 다시 기회가 온다 해도 이보다 잘 할 수는 없을 거라며.

 

 

 

 *

 

 

 

 마차 속도가 갑자기 빨라지며 불안정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기사들의 기합소리와 함께 말발굽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한쪽 구석으로 쏠린 그녀는 바닥에 내려 앉아 나무 의자를 부여잡았다.

 

 작은 창은 밖에서만 열 수 있었기에 어떤 상황인지 볼 수 없었다.

 

 쿵! 쿵!

 

 마차 위로 들리는 소리에 세라는 천장을 올려보았다.

 

 으윽!

 

 신음소리와 함께 무언가 마차에서 떨어지며 부딪히는 소리에 세라는 움찔했다.

 

 마차를 따라오는 요란한 마찰음들이 하나둘씩 멀어져갔다.

 

 쿵!

 

 마차 위로 누군가 또 올라탔다. 반복되는 격전에 세라는 피가 마를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마차는 뒤집힐 것처럼 기울어졌다가 다시 자리를 잡아가며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또 누군가 그녀를 구하려고 온 것인지, 머릿속에 든 정보를 탐내서 온 자들인지 그녀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어느 순간, 요란한 칼 부림소리가 사라진 채, 마차는 무서운 속도로 질주만 하고 있었다.

 

 어느 한쪽이 이긴 것이리라.

 

 

 

 **

 

 

 

 근처 계곡 사이에 숨겨 둔 마차 안으로 주변을 경계하며 남자가 들어갔다.

 

 

 “폐하, 말코족이 여자가 탄 마차를 탈취해서 도주하던 중 카라스영주가 막았다고 합니다. 지금 마을 쪽으로 가는 것이 직접 형장으로 데려가려는 것 같습니다.”

 

 “……카라스 영주, 정말 세라를 죽이려는 건가?”

 

 

 누워 있는 라시스의 주먹이 경련을 일으켰다.

 

 

 “마을로 위장 잠입 해 들어간다. 원거리용 무기를 준비하도록. 지켜보다가 여자를 정말 죽이려 한다면 영주를 사살하도록.”

 

 “존명!”

 

 

 지난 밤 차갑고 표정 없는 그 얼굴을 직접 본 순간 망자가 다시 살아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아카드 카라스 영주를 초상화로만 봤을 때는 단순히 아론과 너무 닮았다고만 여겼지만 직접 육안으로 그 눈빛을 보니 소름이 돋았다.

 

 더 이상 그 찬란했던 은빛 머리카락도, 맑은 하늘을 연상케 하는 파란 눈동자는 아니었지만 자신을 내려 보는 그 눈빛은 증오에 찬 아론의 눈빛 그대로였다.

 

 그리고 영주가 그의 귓가에 남긴 말은 아론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과 같은 말이었다.

 

 

 ‘내 여자 덕에 산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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