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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반전을 사랑한 남자
작가 : 샤뚜르
작품등록일 : 2017.7.5

강지원, 29살의 젊은 사장은 얼음 왕자라는 별명으로 직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직원들도 피해가는 그에게, 회사의 햇병아리가 어느 날 찾아와 태클을 건다. 그는 그녀가 만만했었다. 이세희, 24살의 인턴 사원. 상상 속 50대 사장과는 다른 조각미남이 나의 상사라니! 사랑 때문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 남자와 귀엽지만 반전 있는 그녀의 좌충우돌 연애 이야기.

 
제 70 화. 폭풍전야
작성일 : 17-07-24 13:01     조회 : 304     추천 : 0     분량 : 9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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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전을 사랑한 남자

 

 

 

 

 

 제 70 화. 폭풍전야

 

 

 

 동이 트지 않은 새벽.

 

 선잠에 들었던 세희는 자신의 허리에 둘러진 지원의 팔을 풀어 살포시 내려놓은 후, 엎드려 누운 채로 옆에 있는 지원의 얼굴을 하염없이 눈에 담았다.

 

 자신을 얼마나 몰아친 건지, 예전 같았으면 세희의 뒤척임에도 곧장 반응했을 텐데. 너무 곤하게 잠이 들어 있었다.

 

 여러 번 눈에 담아도 질리지 않는 순간처럼, 세희에게 지원은 그런 존재였다. 자신을 설레게 하는 그가 곁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만지고 싶다는 이유로 겨우 잠든 사람을 깨우는 것도 좀 아닌 것 같아 그의 얼굴을 허공에서 쓸어보았다.

 

 다시 이렇게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처음 그와 만났을 때만 해도, 냉랭하게 자신을 쏘아보던 눈빛에 황당하기만 했고 자꾸 자신을 못살게 굴던 그가 미워죽겠었는데. 지원과 밥 친구를 하고 나서부터는 어느 순간, 그가 더 이상 밉지도 않았고 싫지도 않았다.

 

 몰랐던 그의 부드러운 분위기와 웃을 때 곱게 휘는 눈빛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뻔했던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저 혼자의 감정이겠거니, 끙끙 앓으며 흔한 말처럼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는데.

 

 그래서 세희에게 지원은 여전히. 꿈만 같기만 하다.

 

 사람 인연이라는 게 정말 정해져 있는 걸까?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지금이 너무 소중하여 지나왔던 순간들을 되돌아볼 시간도 없었다. 괴롭히려 들던 사람과 지지 않기 위해 오기로 버텨 내던 자신이 어쩌다 서로를 마음에 담게 되었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이런 게 운명이라면 운명 아닐까.

 

 세희는 지원의 이마에 뽀뽀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했다.

 

 그때.

 

 

 

 휙-.

 

 “ㅁ... 뭐.......”

 

 분명히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갑자기 눈앞의 장면들이 순식간에 바뀌어버렸다.

 

 눈을 깜박이며 앞을 보자, 어느새 다시 지원의 위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엎드려 있었다.

 

 “어디 가려고.”

 

 잠에 취해 몽롱하게 가라앉아 있는 지원의 목소리.

 

 “아... 오빠가 너무 곤하게 자는 거 같아서 레온이랑 거실에서 자려고. 피곤할 텐데 푹 자요.”

 

 “.......지금 몇 시야.”

 

 “새벽 2시.”

 

 지원이 세희를 품에 더 꽉 안았다.

 

 “이리와. 그냥 같이 자.”

 

 어미 새에게 아기 새가 매달리듯 지원이 세희를 놓아주질 않는다. 아직 피곤이 덜 풀렸는지, 지원이 미동도 앉고 가만히 눈만 깜고 있자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지원의 위에 있는 자세가 뭐라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야릇하면서도 묘해서 세희는 혼자 얼굴을 붉히며 잠자코 가만히 있었다.

 

 적응해야 할 텐데, 뭔 놈의 신경이 이리도 둔한지. 할머니 돼서야 적응하려나 싶다.

 

 

 

 호랑이는 떡 줄 생각도 않는데 혼자 설레발치며 야한 상상이나 한 것 같은 기분. 그래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방황하는데, 문자가 왔다며 환해졌다 흐려지는 지원의 핸드폰이 보였다.

 

 “오빠 이거. 문자 왔나봐.”

 

 지원은 잠이 덜 깬 얼굴로 눈을 몇 번 깜박이다, 세희에게서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지원아, 아까 거짓말해서 미안하다. 레온, 건강해. 아무리 생각해봐도 널 세희 씨랑 다시 만나게 하는 방법은 이거 밖에 없는 거 같아서.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거짓말 했어. 넌 세희 씨랑 있을 때가 가장 너답다. 그러니까, 아파하지 마라.]

 

 지원이 핸드폰을 다시 탁자에 내려놓은 뒤 세희를 올려다보았다.

 

 “?”

 

 문득 드는 아쉬움.

 

 내가 네 전화 안 받을 남자도 아니고. 그냥 나한테 바로 연락 줬으면 달려왔을 텐데. 뭐가 널 그렇게 망설이게 만들었어.

 

 세희가 완전히 제 곁으로 왔음을 알지만, 왠지 2% 부족한 기분.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 이상의 것을 욕심내지 말자면서도 막상, 부분이 채워지면 또 다른 것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순진한 눈망울. 세희에게서 그리웠던 것 중 한 부분.

 

 지원은 속으로 짓궂으면서도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아쉬우면 어떻고, 완벽하지 않아도 어때. 지금 서로의 곁에 서로가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한데.

 

 놀리기 위해 한번 쿡 찌르면 되돌아오는 반응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여 장난 좀 쳐볼 생각이다.

 

 세희를 놀릴 때만 되면 언제나, 지원은 순수한 아이 같다.

 

 

 

 “현우가 보냈어. 이렇게 늦은 시간에는 절대 연락할 성격이 아닌데........ 자세한 건 너한테 물어보래. 뭐 아는 거 없어?”

 

 그러자 세희가 움찔한다.

 

 별로 찔리는 건 없지만, 왠지 모르게 찔리는 이 기분.

 

 아까 장 비서에게 전화하여 울며불며 난리쳤던 게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진지한 얼굴로, 뭔가 문제가 있다는 듯이 물어오자 세희가 눈을 슬쩍 피하며 말을 돌린다.

 

 “ㄱ... 글쎄? 오빠랑 떨어져 있어서 장 비서님도 못 만나 뵈었는걸.”

 

 쪽.

 

 지원이 세희를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로 올려다보며 입을 맞췄다.

 

 “못 본 동안 귀여워지는 약이라도 먹은 거야? 왜 이렇게 예뻐. 미치겠다.”

 

 잠이 다 깼는지, 지원의 눈빛이 또렷하게 바뀌어 있었다.

 

 그는 상체를 살짝 일으켜 한 팔로는 상체를 지탱한 뒤, 다른 한 팔로는 세희의 뒷목을 부드럽게 제 쪽으로 당겨왔다. 눈을 지그시 감으며 세희의 입술을 부드럽게 머금자, 세희가 지원의 셔츠 자락을 동아줄 마냥 꼭 붙들었다.

 

 미끄러져오는 움직임과 얽혀드는 숨결이 달콤했고, 점점 달아올라갔다. 지원은 세희를 탐하며 서서히 상체를 내려 몸을 뉘였다. 등과 허리로 단단히 둘러져 오는 팔을 느끼며 세희는 그의 가슴팍에 두 손을 가지런히 올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와 함께하는 매 순간이 떨림의 연속이었다.

 

 서서히. 입술에만 머물러 있던 그의 입술이 거친 숨을 뱉으며 그녀의 목으로. 쇄골로 뜨겁게 내려오자 세희가 정장 와이셔츠를 밀어내려는 그의 팔을 잡아 세운다.

 

 “하....... 오빠, 피곤하잖아. 쉬어야지.”

 

 

 

 흐름이 원활했던 상황이라 속도를 내며 달려왔는데. 텅텅 비어있던 도로에 장애물이 가득 생긴 상황이었다.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지원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녀가 적극적으로 다가온 순간부터 지원은 세희가 간절했다. 기회가 왔음에도 날려버렸던 제 자신에게 짜증이 나는 와중에 세희까지 합세하니 더 절박해졌다.

 

 “제발........”

 

 간절한 눈빛으로 애타게 호소하며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자, 세희는 한숨을 쉬면서도 여전히 단호했다.

 

 “나 때문에 오빠가 못 잤는데. 오빠 쓰러지는 거 보기 싫어.”

 

 “네 탓 아니야. 내가 바빠서 그랬어. 괜찮아. 그러니까, 제발.......”

 

 밤하늘의 별빛을 전부 쏟아 부은 것처럼 촉촉하게 젖어있는 그의 눈빛.

 

 여자의 마음을 흔들기에는 충분했다.

 

 그가 지금 피곤하다는 걸 알지만, 살짝 흐트러진 상태로 자신을 바라보며 차마 거절 할 수 없게 만드는 얼굴이 마음에 걸린다.

 

 지금의 그는....... 치명적일 만큼 자극적이었다.

 

 세희는 눈을 한번 감았다 뜨며 갈등을 내려놓기로 했다. 오늘 하루. 겪었던 일들에 저 역시 지쳐 그에게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준다면.......

 

 스르륵.

 

 세희가 와이셔츠를 쥐고 있던 손을 풀자.

 

 기다렸다는 듯이 지원이 달려들며 투둑. 투둑.

 

 다시, 잘 끼워놓았던 와이셔츠의 단추를 한 개씩, 한 개씩.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보름달 보다 더 환한 새하얀 피부가 드러나기 시작하자 열기로 들끓던 지원의 눈빛이 차분해졌다. 어둠만이 그의 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자신과 결혼을 결심하면서 마음의 또 다른 변화가 있었던 건지, 전보다 적극적인 세희의 행동 덕분에 심장이 파도가 몰아치듯 요동치며 온몸이 타들어 갈 것 같았다. 그는 지금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단지, 제 욕심대로 몰아쳤다가 세희가 힘들어할까 속에서 끓어오르는 것을 누르고 누르며 인내할 뿐이다. 기다림. 세희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지원은 드러난 어깨에 자잘한 키스를 퍼부으며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하읏.......!”

 

 그는 쉼 없이 움직이면서도 세희의 허리에 팔을 둘러 그녀를 제 아래에 눕히자, 세희가 눈을 마주하며 그의 커다란 손에 깍지를 껴왔다.

 

 지원은 세희와 눈을 맞추며 희미하게 웃어주었다. 그러고서는 세희의 여리고 작은 손을 부드럽게, 하지만 단단하게. 꽉 잡았다.

 

 “밤은 길어. 걱정 마.”

 

 

 

 

 

 ***

 

 

 

 

 

 다음 날 아침.

 

 주말이니 어디 가지 말고 같이 있자는 지원의 눈빛에 또 넘어가버린 세희는 그와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끝낸 참이었다.

 

 “자기야, 나 물 좀 줘.”

 

 사과를 깎고 있던 세희는 방금 들은 게 잘못 들은 것이 아닌지, 맞은편에 앉아 싱글벙글 웃고 있는 지원을 쳐다봤다.

 

 툭.

 

 세희의 손끝에 매달려있는 사과껍질이, 놀란 그녀의 심경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끊겨 떨어졌다.

 

 “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살살 녹는 목소리로 눈 꼬리를 곱게 접어 싱긋 웃는 지원의 애교는 치명적이었다.

 

 지원은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며 소리가 새어나갈까 꾹 참았다. 왜 이렇게 사랑스러운 건지. 끅끅 거리며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 배가 아프다.

 

 

 

 어제 조깅을 하고 집에 들어오는 길에 손을 꼭 잡은 채로 걸어가던 젊은 커플 하나가 눈에 들어왔었다. 어찌나 사이가 좋은지, 한시라도 떨어질 생각을 안 하며 난생 처음 들어보는 언어를 구사하던 것이 지원에게는 새롭게 다가왔었다.

 

 처음에는 자신도 반신반의 했다. 연애를 하기 시작하면서 세희와 겨우 말을 놓게 되었고 ‘오빠’라는 소리도 한참을 기다려서 가능했던 거라 세희에게 거는 기대는 별로 없었는데.

 

 굳이 안 해도 상관은 없지만 왠지 이렇게 부르면 사이가 더 가깝게 느껴질 것 같았다.

 

 결혼 후, 서로를 부르는 호칭을 바꿔야 한다면 지금부터 그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래, 호칭 한 번 바꾸기 힘든 아가씨가 적응할 시간을 주려면 지금 하는 게 맞다. 자신이 먼저 용기 내어 불러보니 저 역시 너무 쑥스러웠다.

 

 하지만, 그게 세희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만큼은 아니었다.

 

 이거, 꽤 할만하다.

 

 ‘당신’이라 부르려니 뭔가 남처럼 느껴지는 데다 설렘이 없어서 싫었고, ‘여보’라 부르자니 뭔가 남자로서의 체면이 서지 않는 거 같아 탈락.

 

 신혼은 신혼답게.

 

 

 

 이렇게 정감 넘치는 말이 있다는 것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뭐가 그리도 좋은지 이제는 두 손을 들어 얼굴에 갖다 대며 잔잔하게 웃는다. 잘생긴 꽃받침이 따로 없다.

 

 “우리 사랑스런 자기야아아.”

 

 놀리는 재미가 있어서 그런지, 여러 번 말하다 보니 어색하다는 생각이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나 물 달라니까?”

 

 부끄럽게.

 

 세희는 얼굴을 붉히며 손으로 연신 부채질 해댔다.

 

 “저기 물 있잖아. 오빠가 갖다 마셔. 사과마저 깎아야 돼.”

 

 

 

 .

 .

 .

 

 

 

 다시 새벽으로 돌아가 보자.

 

 지원은 돌아누워 있는 세희를 당겨 안으며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비볐다. 행복함 가득, 곧 세희와 한 집에서 살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아까워 발을 동동 구르던 그였으니 말이다.

 

 그는 팔베개를 해주고 있지 않아 자유로운 왼손을 들어 세희에게 보여줬다.

 

 “세희야, 이거.”

 

 “응?”

 

 나른해진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려 지원의 목소리를 따라 가자, 지원의 왼손에는 세희의 왼손에 있는 반지와 똑같은 디자인의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어? 이거 언제 했어요?”

 

 “너한테 줄 반지하면서. 난 그날부터 줄곧 끼고 있었거든.”

 

 그가 어떤 마음으로 이 반지를 준비하고, 또 이 반지를 끼고 자신을 기다려왔을지. 감히 상상도 할 수가 없다. 세희의 눈빛에서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그녀는 젖어드는 눈시울을 숨기려 지원의 팔에 얼굴을 비비다, 지원의 얼굴을 보기 위해 돌아누웠다. 그러고서는 그에게 안겨왔다.

 

 

 

 빼꼼.

 

 올려다보는 동그란 눈망울.

 

 “오빠, 우리 이 반지. 프러포즈 반지 겸 결혼반지로 하면 안돼요?”

 

 ‘후.......’

 

 지원의 눈빛이 흐트러졌다.

 

 끄응.

 

 피부로 전해져오는 굴곡과 여린 감촉에 지원은 속으로 끙끙 앓았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짐승의 본능을 숨기기 위한 노력은 오늘도 여전했다.

 

 “마음대로.”

 

 세희는 지원의 마음은 꿈에도 모른 채, 그의 왼손을 애틋하게 쓸며 중얼거렸다.

 

 “오빠... 이거 끼고 있는 내내 내 생각했어?”

 

 “응.”

 

 “미안하게. 왜 그랬어.......”

 

 “난... 너밖에 없으니까. 네가 꼭 돌아 올 거라고. 믿고 있었거든.”

 

 “......”

 

 

 

 세희가 이렇게 왔으니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왠지 그냥 물어보고 싶었다. 우리가 헤어져 있었던 그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이 다시 어려운 사람으로 바뀐 건 아닐까 싶어 그랬다.

 

 “넌. 왜 나한테 바로 연락 안 했어?”

 

 한동안 그들은 말이 없었다. 그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세희가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 입술에 호선을 그리며 말했다.

 

 “우리 일인데. 누구를 통해서가 아니라 바로 오빠 얼굴 보고 싶어서요. 나 돌아왔다고, 바로 보여주려고.”

 

 “......”

 

 지원은 됐다는 듯, 온몸의 긴장을 내려놓으며 나른하게 눈을 감았다.

 

 “음....... 그럼 나도 오빠를 너무 사랑하니까 소원 하나 들어줄게요. 말해 봐요.”

 

 세희는 지원이 씩 웃는 것을 보지 못했다.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 해도 괜찮은 거지?”

 

 세희가 어서 말해보라고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다.

 

 “응.”

 

 살짝 생긴 틈은 늑대에게 아주 달콤한 식량이었다.

 

 아아, 순진한 양이여!

 

 능글맞은 늑대 한 마리가 세희의 위로 체중을 실었다.

 

 세희가 아프지 않게 지원의 어깨를 주먹으로 팡팡 두드렸다.

 

 “이건 아니잖아아아~!!!”

 

 지원은 세희가 때리든 말든 모른 척하며 제 갈 길을 갔다.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며. 그리고 아직 내 소원 얘기 안했어.”

 

 

 

 .

 .

 .

 

 

 

 그리하여 지금의 ‘자기야’하는 지원이 있는 것이다.

 

 “그럼 물은 내가 가져다 마실 테니까, 사과는 네가 직접 먹여주기다?”

 

 지원에게 말한 것은 분명 한 가지였는데, 사과를 깎다 손을 베이지 않기 위해 집중한 탓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세희는 입술을 삐죽이며 지원을 쳐다봤다.

 

 “소원 하나 다 썼잖아.”

 

 지원은 어깨를 으쓱이며 덤덤하게 말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하고자 하는 늑대는 얼굴을 철로 칠갑한 듯. 뻔뻔해도 정말 뻔뻔했다.

 

 “아닌데? 네가 사과까지 먹여주는 게 소원 하나지.”

 

 “그런 억지가 어디 있어요. 괜히 얘기했어. 좋은 의도로 말한 건데 왠지 사기 당한 느낌이야.”

 

 

 

 지원이 토라진 세희를 귀엽다는 듯이 내려다보며 곁으로 다가왔다.

 

 “내가 사기 당했다는 생각 안 들게 해줄게.”

 

 “몰라!”

 

 세희가 고개를 홱 돌리자, 지원이 다시 그녀의 얼굴을 바로 하며 짓궂게 씨익 웃어보였다.

 

 그가 저렇게 웃을 때는 매번 자신이 당하는 순간이라 왠지 불안하다.

 

 맞다.

 

 지원은 컵에 따라둔 물을 세희가 보는 앞에서 한 입 머금었다.

 

 그러고서는.

 

 “읍!”

 

 방심하고 있던 세희의 얼굴을 한 손으로 잡고 손가락의 힘을 이용해 입술을 살짝 벌렸다.

 

 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세희의 입술에 제 입술을 포개더니, 입 안에 머금은 물을 그녀에게로 넘겨주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반사적으로 지원이 넘겨준 물을 꼴깍 삼킨 세희였다.

 

 “됐지?”

 

 “......”

 

 세희의 얼굴은 붉게 물들다 못해 새하얀 김이 올라올 정도로 달아올랐다.

 

 그녀는 깎고 있던 사과를 마저 깎아낸 뒤, 접시에 잘라놓고서 거실로 도망치다시피 도도도. 걸어 가버렸다.

 

 지원은 세희가 깎아둔 사과를 하나 집어 들어 한입 베어 문 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맛있다. 오늘따라 참 맛있다. 여. 보. 야.”

 

 

 

 

 

 ***

 

 

 

 

 

 얼굴을 식히기 위해 거실로 도망쳐온 세희는 제 다리에 얼굴을 비벼오는 레온을 번쩍 안아 들었다.

 

 레온을 안아든 상태에서 소파로 걸어가 앉자, 레온이 그녀의 허벅지 위를 한 바퀴 돌다 기지개를 쭉 편 뒤 몸을 둥글게 말고 누웠다.

 

 위잉.

 

 자신의 핸드폰에 전화가 왔다는 진동 소리에, 세희는 레온을 허벅지에 올려둔 상태에서 팔을 뻗어 집어 들었다.

 

 [혜빈 언니]

 

 “네, 언니.”

 

 「 아무래도 이건 지원이랑 같이 살 세희 씨한테 물어보는 게 좋을 거 같아서. 레온 말이야, 발정난 거 같던데. 세희 씨만 괜찮으면 고양이 한 마리 더 데려오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어때? 」

 

 “아....... 저는 괜찮아요. 오빠한테 물어보고 결정할게요.”

 

 「 그래~. 우리 다음에 한 번 또 놀러가자. 지난번에 재밌었어. 지원이는 내가 아무리 잘 해줘도 시큰둥해서 싫거든. 여동생 하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조만간 내가 회사 앞으로 한 번 놀러가도 돼지? 저녁 한 번 같이 먹자. 」

 

 세희가 웃으며 대답했다.

 

 “네.”

 

 

 

 세희가 통화를 끝내자, 지원이 그녀의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누구, 우리 누나?”

 

 “응. 레온이 여자 친구 필요한 거 같다고 하시던데. 우리 한 마리 더 데려올까요?”

 

 지원의 시선이 세희의 허벅지를 쿠션 삼아 잠들어 있는 레온에게 닿았다. 레온에게 둔 지원의 눈길은 한참 동안이나 거둬질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런가? 저 녀석도 외로울 테니까, 그러자 그럼.”

 

 걱정해주는 주인의 목소리라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무미건조했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레온을 내려다보다, 잘 자고 있는 새하얀 솜 뭉탱이를 인형 뽑기 하듯 한 손으로 쑥 들어올렸다.

 

 “잘 자고 있는 애를 왜.......”

 

 그는 레온을 원래 있어야 할 집에 넣어준 뒤, 쪼르르 달려가 세희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그제야 지원이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세희의 허벅지에 볼을 비볐다.

 

 “쟤는 곧 애인 생길 거잖아. 좋다. 우리 여보야가 베개도 해주고.”

 

 세희는 유치한 그의 질투에 속으로 웃었다. 뭐 때문에 그러나 했더니.

 

 

 

 좀처럼 적응되질 않는 그 호칭에 멋쩍어하면서도 그의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쓸어주었다. 저 역시 그와 다시 함께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으니까.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것만큼 행복한 게 어디 있을까. 포근하다.

 

 “세희야.”

 

 “응.”

 

 “다음 주에 있을 브리핑 심사, 응원할게.”

 

 “응.”

 

 함께하는 이 순간을 즐기며, 아무런 말이 오고가지 않아도 행복했다.

 

 그렇게.

 

 폭풍전야의 날이 흘러갔다.

 

 

 

 

 

 ***

 

 

 

 

 

 모두가 잠이 든 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아 어둠으로 가득 둘러싸인 방에서 한 남자가 노트북의 화면을 바라보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타닥. 타닥.

 

 

 

 <새 메일 1통>

 

 

 

 딸깍. 딸깍.

 

 “호오.”

 

 딸깍.

 

 

 

 - Thank you for contact our company. We checked your mail and decided to accept your proposal. I am a member of the company, code name 'J', taking charge of the head affair. Coincidentally, in Korea. Requested from our employee, I will contact with you soon.

 

 We hope see you as soon as possible.

 

 Here is the date information : March, 27, 2015.

 

 (저희 회사에 연락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희 회사는 귀하의 메일을 확인했으며,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헤드(인력) 담당 코드네임 ‘J' 입니다. 공교롭게도 한국에 있습니다. 대표님의 부탁으로,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만나길 바랍니다. 날짜에 대해 안내드립니다.)

 

 

 

 남자는 노트북 화면을 계속해서 들여다보고 있다가 책상 서랍에 넣어둔 USB를 꺼내 만지작거렸다.

 

 이제 남의 눈치나 보며 밑에 있어야 하는 이 지긋지긋한 삶도 끝이겠군.

 

 폭풍이 몰아쳐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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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반전을 사랑한 남자 완결 안내 2017 / 7 / 28 581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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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제 79 화. 외전(2) - 그대를 바라다 2017 / 7 / 28 310 0 8901   
79 제 78 화. 외전(1) - Love in France 2017 / 7 / 28 288 0 7659   
78 제 77 화. 그대가 있어 행복하다 2017 / 7 / 28 309 0 10895   
77 제 76 화. 해후(邂逅). 사랑합니다 2017 / 7 / 26 288 0 12784   
76 제 75 화. 서로 아끼며 사랑해 나가겠습니다 2017 / 7 / 26 303 0 9029   
75 제 74 화. 사랑해서 그런가 보다 2017 / 7 / 26 325 0 12591   
74 제 73 화. 사필귀정(事必歸正) 2017 / 7 / 26 293 0 8661   
73 제 72 화. 날아간 총알의 끝에는 2017 / 7 / 26 309 0 7440   
72 제 71 화. 구슬픈 진동소리 2017 / 7 / 26 303 0 10599   
71 제 70 화. 폭풍전야 2017 / 7 / 24 305 0 9231   
70 제 69 화. 이 남자와 행복하게 살고 싶다 2017 / 7 / 24 314 0 12421   
69 제 68 화. 사랑은 성숙하게 만든다 2017 / 7 / 24 292 0 10196   
68 제 67 화. 성숙함을 위한 기다림 2017 / 7 / 24 296 0 8136   
67 제 66 화. 방아쇠를 당기다 2017 / 7 / 24 280 0 7235   
66 제 65 화. 오늘 밤은 안 재울거니까 각오해 2017 / 7 / 24 294 0 10142   
65 제 64 화. 딸 주기 싫은 아버지의 밀당 2017 / 7 / 21 299 0 7785   
64 제 63 화. 무섭다고 겁먹지 말고. 망설이지도 … 2017 / 7 / 21 310 0 8261   
63 제 62 화. 아련한 불빛이 흩어진 밤, 넘어가다 2017 / 7 / 21 312 0 9973   
62 제 61 화. 본능과 끊임없이 싸우며 노력하는 … 2017 / 7 / 21 288 0 6519   
61 제 60 화. 네가 행복하면 그걸로 된 거야 2017 / 7 / 20 303 0 6300   
60 제 59 화.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는 법이 없… 2017 / 7 / 20 304 0 7420   
59 제 58 화. 그러니까, 못 놔 줘 2017 / 7 / 20 287 0 8692   
58 제 57 화. 텅 빈 속을, 마음을, 따뜻하게 가득 … 2017 / 7 / 20 296 0 8089   
57 제 56 화. 사랑 때문에 무릎 꿇은 남자 2017 / 7 / 20 293 0 8720   
56 제 55 화. 그래, 사랑이 뭐 별 거 있나 2017 / 7 / 20 290 0 8629   
55 제 54 화. 허공에 대고 불러보는 간절한 이름 2017 / 7 / 20 307 0 6552   
54 제 53 화. 뜨거운 태양 아래 홀로 싸우려는 남… 2017 / 7 / 19 293 0 7397   
53 제 52 화. 어림도 없지 2017 / 7 / 19 286 0 6555   
52 제 51 화. 덮쳐, 말아? 2017 / 7 / 19 275 0 7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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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깍지라는 마법
샤뚜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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