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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반전을 사랑한 남자
작가 : 샤뚜르
작품등록일 : 2017.7.5

강지원, 29살의 젊은 사장은 얼음 왕자라는 별명으로 직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직원들도 피해가는 그에게, 회사의 햇병아리가 어느 날 찾아와 태클을 건다. 그는 그녀가 만만했었다. 이세희, 24살의 인턴 사원. 상상 속 50대 사장과는 다른 조각미남이 나의 상사라니! 사랑 때문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 남자와 귀엽지만 반전 있는 그녀의 좌충우돌 연애 이야기.

 
제 65 화. 오늘 밤은 안 재울거니까 각오해
작성일 : 17-07-24 12:57     조회 : 293     추천 : 0     분량 : 1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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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전을 사랑한 남자

 

 

 

 

 

 제 65 화. 오늘 밤은 안 재울 거니까 각오해

 

 

 

 평소와는 달리, 좀처럼 잠을 청할 수 없는 밤이었다.

 

 성환은 바로 뉘인 몸을 오른쪽으로 한 번 뒤척였다가, 그래도 뭔가 성에 안 차는지 왼쪽으로도 한 번 움직였다.

 

 “잠이 안 와요?”

 

 시은이 그런 성환을 보며 몸을 일으켰다. 함께한 세월이 오래인지라, 남편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신경이 쓰였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낮의 일이 신경 쓰이나 보다.

 

 “아까 강 서방 만났을 때, 별로였어요?”

 

 척하면 척이라고. 성환이 시은의 물음에, 슬쩍 눈을 피하더니 끄응. 상체를 일으켜 침대 헤드에 기대고 앉았다.

 

 “아니.”

 

 요즘 사람처럼, 결코 가볍지 만은 않아 마음에 들었다.

 

 ‘신념 뚜렷한, 강한 놈이었어.’

 

 

 

 하지만, 성환은 속마음 다 터놓는다는 아내에게 이 얘기만큼은 삼키고 싶었다.

 

 “그럼 뭐가 마음에 걸려서 그래요?”

 

 “......”

 

 강 지원이 자신의 부대로 찾아오는 날. 그 날은 지원이 떳떳하게, 성환의 사위가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을 거치게 될 테니 그게 끝나면 허락해 줄 생각이다.

 

 어차피 허락해줄 생각인데, 미리 ‘나도 그 놈 마음에 들어.’라고 얘기해 뭐하겠는가.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사위 될 놈을 결정하는 문제인 만큼 같은 편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젊은 시절에는 무뚝뚝해서 아내를 고생시켰지만, 표현을 잘하지 않는 성격이 도움이 될 때가 있네.

 

 “세희가, 그 놈한테 달려가서 안기더라.”

 

 “......”

 

 

 

 아.......

 

 시은은 잠시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었다.

 

 이 못 말리는 양반 같으니.

 

 아버지는 딸의 첫사랑이길 원한다고.

 

 자신과는 달리 강 서방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가 싶어 내심 걱정하고 있었는데. 사위될 사람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 안하던 남편의 머릿속에는 온통 예비 사위에 대한 질투심으로 가득 차 있었던 거였다.

 

 시은은 딸을 뺏긴 남편이 조금은 쓸쓸해 보여 가만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손을 내밀어 토닥여 주는 대신, 바라보는 눈빛은 세상을 통달한 연장자의 그것처럼. 애정 가득, 따스하게 그를 쓸어내렸다.

 

 어떡하나, 우리 남편.

 

 하나밖에 없는 딸 다른 남자한테 주게 생겨서.

 

 

 

 “예쁘지 않던가요, 그 아이들,”

 

 “세희는 언제나 예뻐.”

 

 철없이 동문서답하는 남편의 손 등을 아프지 않게 살짝 때렸다.

 

 “오빠, 그러지 말고. 나는 서로 챙겨주며 떨어져 있어야 하는 시간조차 아까워하는 거보면 빨리 결혼 허락 해주고 싶어. 강 서방, 나도 처음에는 오빠처럼 나쁜 쪽으로만 생각했는데 겉이 멀쩡하다 해서 속까지 멀쩡한 것은 아니었어. 자꾸 지켜봐 봐요. 뭔가 보일 거야. ........둘이 계속 같이 있게 해주고 싶은 것도 있지만, 우리 집에 와서 그 부족함, 더는 안 느꼈으면 좋겠어.”

 

 “.......사람 인연, 함부로 욕심내면 안 되는 거야. 기다려 주자. 나는 그게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해.”

 

 

 

 

 

 ***

 

 

 

 

 

 세희는 사장실로 올라가야 할 보고서들을 품에 안고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 세희 씨.”

 

 “?”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자, 무슨 이유에선지 민 지수가 반가워하는 눈빛으로 그녀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잘됐네. 사장실로 가는 거, 맞지?”

 

 첫 만남부터 날을 바짝 세우던 그녀가 갑자기 사근거리며 다가오자, 좋게 보일 리 없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방법으로 사람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 생각인지. 상대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뻔히 아는 상황에서, 어색하기 짝이 없는 억지웃음을 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네.”

 

 대답하기가 무섭게, 민 지수는 싱긋 웃으며 그녀가 들고 있던 두꺼운 책 한 권 분량의 서류 뭉치들을 세희의 품에 안겨주었다.

 

 “그럼 이것도 좀 부탁해. 어차피 세희 씨 가는 길이잖아. 서로 시간도 아끼고 얼마나 좋아?”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물건 강매 받듯 받아들자, 세희의 몸이 무게를 못 견디고 휘청거린다. 중심을 다시 잡고 서서 뒤를 돌아본 세희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당당한 걸음으로 사무실로 돌아가는 민 지수의 뒷모습이었다.

 

 

 

 띵동-.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세희는 그 무거운 서류를 든 채로 낑낑거리며 몸을 실었다.

 

 어서 빨리 사장실이 있는 층에 도착하기를 기다리는데.

 

 팔이 끊길 것만 같은 아릿한 고통이 거짓말처럼 싹 사라졌다.

 

 “?”

 

 “무겁잖아. 들어줄게.”

 

 

 

 재희였다.

 

 “오빠.......”

 

 자칫하면 어색해질 수 있는 공기를, 재희는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상냥하게 물었다.

 

 “사장실 가는 거지?”

 

 “응.”

 

 “빔 프로젝터가 고장 났는지 잠시 봐 달라 그래서 직원 회의실에 잠시 들렀다가 사장실에 갈 예정인데. 이거, 내가 가져다 줘도 될까?”

 

 세희는 재희의 눈을 바라보았다. 부드럽게 물어오는 물음은 상대의 의사를 묻고 있었지만, 온전히 그에게 맡겨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세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고마워...”

 

 

 

 

 

 ***

 

 

 

 

 

 지원은 재킷 안에 넣어둔 핸드폰을 꺼내 민 지수에게 문자를 보냈다.

 

 상대가 누구든 약속을 재차 확인하여 완벽히 해두는 것이 습관이었기에 민 지수와의 약속이라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뭔가 찝찝했다.

 

 [강 지원입니다. 약속대로 아트홀에서 7시에 만납시다. 티켓은 미리 구해뒀으니 바로 들어가는 걸로 하죠.]

 

 

 

 똑. 똑. 똑.

 

 노크 소리에 무표정했던 지원의 얼굴 가득 화색이 돌았다. 이 시간에 찾아올 사람은 세희 밖에 없었기 때문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성큼 성큼 걸어가 한참 떨어져 있다 만난 사람처럼 사장실 문을 손수 열어주고서는 반겨주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기다렸잖.......아.”

 

 

 

 세희가 아님을 확인한 지원의 얼굴이 무서운 속도로 확 굳어버렸다.

 

 “......”

 

 “......”

 

 얼굴을 마주한 두 남자 사이의 분위기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문 밖의 상대가 누군지조차 확인하지 않고 너무 스스럼없이 행동한 것에 민망했는지, 지원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들어오라는 뜻으로 옆으로 조금 비켜섰다.

 

 

 

 “세희가 아니라서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예의상 아니라고 했지만, 세희가 아니라서 정말 실망한 눈치다.

 

 지원이 재희에게 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으나, 재희는 거부했다.

 

 “오늘은 사장님 보려고 세희한테서 이거 받아왔습니다.”

 

 재희가 들고 있던 서류 뭉치들을 지원의 책상 위에 가득 올려두자, 지원이 눈살을 찌푸리며 무슨 뜻이냐는 얼굴로 재희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러자 재희가 씨익 웃는다.

 

 “사장님 얼굴 보고 싶어서 온 건 아니니까 그런 얼굴로 보지 마시죠.”

 

 어느새 절대 그럴 일 없을 사이 같던 지원에게 농을 던질 수 있게 된 재희였다. 오히려 전보다 더 편했다.

 

 재희가 책상에 쌓여있는 서류들 쪽으로 시선을 주며 말했다.

 

 “어디서 이렇게 많이 들고 왔는지는 몰라도, 여자가 들기에는 무겁잖습니까.”

 

 지원이 재희의 말에 피식 웃는다.

 

 “고집이 좀 세야죠. 하지 말라고 해도 할 일이니까 꼭 하겠답니다.”

 

 그나마 있는 그 둘의 접점이라고는 세희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이어나갈 이야기가 없었다.

 

 

 

 여기까지인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내쉬며 지원을 돌아보았다. 그러고서는 입을 열었는데, 결코 짧지도 길지도 않은 그 말을 들은 지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왜 저한테 그 말을 해주신 건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속사정까지는 굳이 말 안하겠습니다. 다만, 세희가 절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의남매 맺었거든요. 강 사장님이 우리 세희 힘들게 하면 언제든지 달려오겠다는 말입니다. ‘오빠’니까.”

 

 재희는 일부러 오빠라는 말을 강조하여 얘기했다. 친오빠가 제 여동생의 남자친구에게 경고하는 듯한 말처럼.

 

 이제는 정말 완전히 마음이 정리 되어 오빠로서의 역할을 해주고 싶다.

 

 지원은 팔짱을 끼며 답했다. 마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러 가는 사람처럼 비장했다. 세희의 친오빠 같은 존재로 곁에 남겠다는 재희의 선택을 존중하기에, 그런 그의 앞에서 굳이 제 마음을 숨길 필요는 없었다.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릴 각오를 하고서라도 세희, 절대 안 놓을 겁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지원은 사장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재희를 불렀다.

 

 “박 재희 씨.”

 

 재희가 지원을 돌아보았다.

 

 “?”

 

 “지금 이건, 박 재희 씨가 아닌 세희의 오빠에게 드리는 부탁입니다.”

 

 

 

 

 

 ***

 

 

 

 

 

 세희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니, 시간은 6시 40분이 조금 넘어 있었다. 지원을 만나기 시작한 이후로는 줄곧 회사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만나 그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고는 했는데. 꽤 오랜만에 홀로 돌아가는 귀가 길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지원이 지금 왜 자신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지 알기에 철없이 굴지 말자고 여러 번 다짐한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신호에 걸릴 때마다 제 손을 잡고 놓지 않던 그 따뜻함이 생각나 이토록 짧은 순간에도 그리움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그런 그녀의 옆으로.

 

 “세희야.”

 

 재희가 조용히 다가왔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는 듯. 그는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세희를 내려다보며 안타까워했다.

 

 “우리 동생, 뭐가 그렇게 힘들어?”

 

 늘 그렇듯, 그 자리에서 한없이 다정한 손길로 제 어깨를 보듬는 그의 말에 세희의 목이 메였다.

 

 “오빠.......”

 

 “응.”

 

 세희가 재희의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늘 그랬듯, 친오빠, 친동생처럼 지내자는 재희의 부탁이 있긴 했지만 그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차라리 조금 더 어렸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면 금방 털어버리고 예전처럼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었을 것을.

 

 재희에게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미안하지만, 자신이 힘들 때 늘 곁에 있어주었던 사람 또한 재희라서. 그랬던 시간만큼이나 그의 앞에서 속마음을 털어내고 싶어 하는 나약한 자신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이러면 안 되는 거, 잘 알지만.......

 

 

 

 너무 많이 익숙해져 버렸다.

 

 “.......나, 사장님 보고 싶어. 나 때문에 그러는 거 아는데,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랑 사장님 같이 있는 거 싫어.”

 

 “그럼 가면 되잖아.”

 

 “.......뭐?!”

 

 재희는 지원으로부터 건네받은 티켓 봉투를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눈치 볼 게 뭐가 있어. 단 몇 분이라도, 네가 가고 싶으면 갈 수 있어. 내가 데려다줄게.”

 

 

 

 재희는 지원이 세희를 부탁하던 사장실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 세희가 오늘 저 때문에 아플 일이 있을 겁니다. 혹시라도, 제가 없는 시간 동안 세희가 힘들어 한다면 여기로 데려다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절대 남 앞에서 숙이는 법 없던 지원이 세희가 걱정되어 고개를 숙이면서까지 정중하게 부탁해왔다.

 

 자신이 세희를 사랑했듯. 아니, 그보다 더 함부로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그녀를 깊이 사랑하는 지원의 마음이 저렇게 훤히 보이는데 쉽게 거절할 수 있을까.

 

 입을 앙 다물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는 세희의 뜻을 확인하자마자, 그 길로 곧장 택시를 잡아탔다.

 

 

 

 공연 시작 10분 전.

 

 아직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

 

 

 

 

 

 지원은 아트홀 안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민 지수를 발견하여 그녀에게로 걸어갔다.

 

 “정말 오셨네요?”

 

 마치 안 올 것 같던 사람의 등장에 꽤 놀란 듯한 민 지수는 지원을 신기하다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한 번 뱉은 말이면 책임을 지라고 있는 것이 사람의 말입니다.”

 

 그러고서는 손목시계를 한 번 내려다본 후 입장 시간이 되었으니 들어가자는 말 한 마디를 남기고서 먼저 앞으로 걸어가 버렸다.

 

 그의 뒷모습에 냉랭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더 이상은 민 지수와 엮이기 싫다는 분명한 의사 표시였다.

 

 지원의 분위기가 어떠하든, 민 지수는 그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와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늘 멀게만 느껴지던 대상을 이렇게 가까이 할 수 있다는 사실은 꿈을 꾸는 것처럼, 기분을 들뜨게 했다.

 

 

 

 좌석에 앉은 지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공연 책자를 읽기 시작했다.

 

 민 지수는 그런 지원의 행동 하나 하나 놓치지 않았다.

 

 민 지수와 말을 나누는 것을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 책자를 방패삼다시피 한 지원이었다. 좋아서 보러 온 공연이 아니었기에, 책자에 소개된 내용이 제대로 눈에 들어올 리도 없었다.

 

 그는 책자에서 눈을 떼지 않고 곁 눈짓으로 텅텅 비어있는 옆 좌석들을 쳐다봤다. 세희가 아파할까, 오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가득했지만 한 편으로는 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언제든 세희가 제 곁에 올 수 있도록 좌석 한 줄을 통째로 구입한 것이었다.

 

 네가 곁에 있어주면 시간이 빨리 흘러갈 것 같거든.

 

 그 이후의 시간을. 아니, 공연 시간 역시 온전히 세희를 위해 에너지를 쏟고 싶었다.

 

 

 

 지속되는 침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민 지수가 지원에게 한 마디라도 더 붙여보기 위해 상체를 조금 숙였다. 지금 그들이 보려는 공연은 세계적으로 꽤 유명한 작품이기 때문에 좌석이 하나라도 비어있는 게 이상한 것이었다.

 

 민 지수는 지원과 함께 뭔가를 한다는 사실에 너무 들떠 신경 쓸 여유가 없었지만 말이다.

 

 “강 사장님.”

 

 “......”

 

 지원이 자신을 쳐다보거나 말거나, 제 말을 듣고 있을 거라 확신한 민 지수는 꿋꿋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원래는 바로 아버지 회사로 들어가 아버지 밑에서 배울 생각이었어요. K 그룹에서 시작을 하게 돼서 개인적으로 기뻐요.”

 

 멈칫.

 

 민 지수의 말에 아무 의미 없이 책자를 뒤적이던 지원의 움직임이 굳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의 말을 되짚어 보았다. 그녀가 왜 저 말을 했는지는 몰라도, 보통 마음에 드는 상대가 있으면 전혀 반대되는 표현을 쓰지 않나?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로, 실내 등이 다 꺼지기 직전의 민 지수를 한 번 쳐다보았다.

 

 다른 건 차차하더라도, 방금 그 말은 마치 민 지수가 자신의 회사를 오래 전부터 동경하고 있었다는 뜻으로 들렸다. 게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에 이채 역시. 이제야 왜 그런 눈으로 자신을 보는 건지 어느 정도 감이 왔다.

 

 

 

 

 

 ***

 

 

 

 

 

 “들어가 봐.”

 

 재희가 등을 살짝 떠밀었다. 세희는 재희에게 할 말이 있어서 그가 있는 쪽을 돌아보았는데, 이미 그는 타고온 택시를 다시 타고 가버렸다.

 

 세희는 티켓에 적힌 공연장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원래 공연이 시작되면 입장이 불가능했지만, 공연 시작 20분 내로 도착하는 사람이 있다는 반드시 들여보내 달라는 지원의 철저한 사전 준비로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관객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티켓에 표기된 좌석을 향해 걸어갔다.

 

 지원이 보였다.

 

 세희는 숨을 잠시 고르다 그와 한 칸 떨어진 왼쪽 좌석에 앉았다.

 

 민 지수는 공연이 전개되어 갈수록 점점 집중하기 시작했는데, 지원은 전혀 그러질 못했는지 따분한 표정으로 주위를 훑다 세희를 발견하고는 천천히. 그녀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공연의 어느 것 하나 지원의 관심을 끌지 못했으나, 세희의 등장으로 인해 지원의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세희가 고개를 홱 돌려버린다.

 

 지원의 신경이 온통 세희에게로 쏠렸다.

 

 시선은 여전히 민 지수를 의식하여 정면에 둔 채, 세희와의 사이에 있는 좌석으로 팔을 조금 뻗었다. 손을 달라는 뜻이었다.

 

 그들 사이에 놓인 빈 좌석 위에서, 머뭇거리던 손과 흔들리지 않게 단단히 잡아줄 손이 만났다.

 

 지원이 세희의 손바닥 위에 왼손검지로 뭔가를 천천히 써내려간다.

 

 

 

 오른손이 아니라서 쓰는 데 시간은 걸렸지만 그에게는 공연보다 더 소중한 시간이었다.

 

 ‘사랑해.’

 

 ‘걱정하지 마.’

 

 ‘괜찮아.’

 

 ‘잘 왔어.’

 

 지원이 세희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공연 시작 1시간.

 

 세희가 지원의 손을 뿌리치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세상의 전부인 그녀가 사라지자, 지원은 세희에 대한 걱정으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세희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원은 자리에서 일어서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공연장을 벗어났다. 사랑하는 여자를 잡기 위해.

 

 

 

 

 

 ***

 

 

 

 

 

 지원은 공연장을 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저 멀리, 세희의 뒷모습이 보인다.

 

 띠링-.

 

 문자가 왔다는 알림을 들었지만 그는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어디 가시는 거죠?]

 

 [미안합니다. 갑자기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민 지수로부터 답장이 왔다. 아무 말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지원으로 인해 자존심이 많이 상해 있었다.

 

 [퇴근 이후의 시간은 온전히 제게 내주시는 줄 알았는데. 강 사장님, 일에 대한 열정이 보통이 아니라는 소문은 들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어요. 정말 대단하네요.]

 

 아주 잠시. 지원은 계획을 앞당겨야 할 지 말지를 망설였다.

 

 

 

 하지만, 오늘만 해도 세희가 자신으로 인해 아파하는 것을 지켜보기가 힘든데 앞으로 얼마나 더 그래야 할 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말인데, 내일 강 회장님과 식사 자리를 마련해도 되겠습니까?]

 

 [좋아요.]

 

 

 

 

 

 ***

 

 

 

 

 

 탁-.

 

 세희는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않고서 숨을 돌리기 위해 빈 공연장 내부로 들어왔다.

 

 다른 여자가 지원의 곁에 있는 모습은 생각한 것만큼이나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만의 기우라는 듯. 지원은 그런 그녀보다 한 발 더 앞서 있었다.

 

 재희가 자신을 데리고 어딘가로 향할 때만 해도 눈앞에 놓인 현실이 믿기지 않았는데, 지원은 민 지수와의 약속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와중에도 꿋꿋하게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히 제가 있어야 할 곳은 그의 옆자리라는 듯.

 

 

 

 망설임 없이 제게 커다란 손을 내미니, 잡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손바닥을 통해 전해져 온 절절한 밀어에, 속삭임에. 이 사람은 절대 나를 놓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섰다.

 

 숨이 막힐 듯 아려오는 가슴의 통증에, 눈물이 핑 돌았다.

 

 “지원 오빠.......”

 

 벌컥-.

 

 듣는 이 없는 허공으로 퍼진 부름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지원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

 

 조명 하나 없는, 어두운 내부였다.

 

 잠시 어둠에 시야가 적응될 때까지 멈추어 서 있던 지원은 어렵지 않게 문에 등을 대고 서 있는 세희를 찾아낼 수 있었다.

 

 세희와 지원의 눈이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서로를 옭아맸다.

 

 지원이 세희에게로 천천히 다가가, 그녀의 여린 뺨 위에 손을 올려 조심스레 보듬었다.

 

 “왜 여기에 있어.”

 

 애틋하게 내려앉은 그 눈빛에, 좁게만 생각했던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이 부끄러워 시선을 피한다.

 

 “세희야.”

 

 

 

 지원이 눈을 감고서 세희의 이마 위로 입술을 내렸다.

 

 이마에 한 번.

 

 콧잔등에 한 번.

 

 잔잔한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는 그의 입술은 이윽고, 세희의 도톰한 입술에 머물더니 그대로 살짝 베어 물었다.

 

 새들이 부리를 지저귀는 것처럼 가볍게. 입술을 간질이며 애를 태우던 그의 움직임에 세희의 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이내 감겼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진전 시키지 않고 멈췄다.

 

 

 

 “세희야, 날 봐.”

 

 내가 이런 널 두고 어딜 가.

 

 그는 세희의 손을 잡아 단단한 제 가슴팍 위에 올렸다.

 

 손바닥 아래로 느껴지는 지원의 가슴이 쿵쿵쿵. 세차게 뛴다. 뜨거웠다.

 

 그제야 세희가 그에게 시선을 준다.

 

 “내 심장은 너한테만 반응해. 그러니까 절대 네 손 안 놔.”

 

 그 말을 끝으로 지원이 다시 입술을 겹쳐왔다. 솜사탕 같이 가볍고 달짝지근했던 조금 전과는 달리, 세희의 입술을 집어삼킬 것처럼 강하게 몰아 붙였다.

 

 걱정 따위 이제부터는 하지 말라고.

 

 마음 속 깊이 자리한 걱정, 다 가져가겠다는 듯.

 

 

 

 그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처럼 집요하게 움직이던 지원은 아직 세희로부터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했음을 떠올리고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탁-.

 

 결국, 이성의 문턱 앞에서 다시 한 번 세희를 잠시 밀어낸다.

 

 그 어느 누구도 숨이 거칠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지원은 탁해진 목소리로 세희를 타이르며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마음에 있는 거, 안 숨겨도 돼. 얘기해 줘. 듣고 싶어.”

 

 한동안 앙 다문 고집스러운 입술은 열리지 않았다.

 

 지원은 언제가 됐든, 그녀에게 그 말 한 마디만 들으면 됐기에. 느긋하게 기다려줄 생각으로 다시 한 번 잔잔한 키스를 퍼부었다.

 

 그제야 세희가 지원을 밀어내며 입을 열었다.

 

 투둑.

 

 세희의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 또르르 흘러내린다.

 

 그녀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제게 매달려 온다.

 

 “.......싫어. 오빠가 다른 여자랑 있는 거 싫어.”

 

 

 

 그래.

 

 “그거야.”

 

 내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한 마디.

 

 평소에는 ‘질투’라는 감정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고 있던 지원이었지만, 세희를 통해 들은 저 한 마디는 기분을 묘하게 했다.

 

 지원은 세희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가자.”

 

 

 

 

 

 ***

 

 

 

 

 

 어떻게 차를 몰고 집까지 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마주잡은 두 손, 놓지 않고 무사고로 달려오는 데만 집중한 지원이었다.

 

 

 

 띵.

 

 지원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내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세희를 태운 뒤, 따라 타자마자 집이 있는 층의 버튼을 누르고서 그녀를 구석으로 몰았다.

 

 지원은 벽에 등을 부딪치면서 살짝 벌어진 세희의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이성의 지배를 벗어난 입맞춤이 이어졌다. 부드러운 머릿결을 헤집던 한 손은 벽에 짚고, 다른 한 손은 미끄러지듯 허리를 타고 올라와 세희의 뒷목을 받친 채로 모든 것을 퍼부으며 허벅지로 그녀의 다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 사이, 엘리베이터가 도착을 알리며 문이 활짝 열렸다.

 

 거칠어진 숨결이 세희의 귓가를 자극하며 내려앉는다.

 

 “오늘 밤은 안 재울 거니까 각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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