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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그녀가 어제 죽었다
작가 : 미루하
작품등록일 : 2017.6.25

제국력 하얀 달의 해 여섯 번째 보름날, 흐라드차 영주의 외동딸 실비아 흐라드차리가 죽었다. 지난 초승달에 17세의 생일이 지난 흐라드차 영애는 돌아오는 보름에 바출라 영주의 아들 카를 바출라프와 약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죽은 장소는 영주의 마을, 흐라드차의 유일한 여관 <흑사슴>의 이층 두 번째 방이었다.

평소 모험 소설을 즐겨 읽으며 모험을 꿈꾸던 영주의 딸은 생일 기념으로 모험을 떠나고 싶다고 졸랐다. 영주는 모험은 승낙하지 않았으나 대신 마을의 여관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것을 허락했다. 영주는 딸이 머무는 만 하루 동안 여관의 직원을 전부 성의 시종과 시녀로 대치하는 조건으로 딸을 내보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싸늘하게 식은 시체였다.

분노한 영주는 범인을 찾지 못한다면 여관의 숙박객 전부를 교수형시키겠다고 선언했다.

 
화요일. 02
작성일 : 17-07-23 11:54     조회 : 288     추천 : 1     분량 : 5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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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

 치안 대원이 주방 안쪽으로 안내했다. 자그마한 쪽문 아래 계단이 줄지어 이어져 있다.유진이 앞서나가는데 이본느가 황급히 뒤따랐다. 나무계단을 내려가는 소녀의 발걸음은 무도회장을 걷는 부인처럼 사뿐하고 가벼워서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귀부인이라기보다 암살자의 것에 가까운 발걸음이다. 억지로 소리를 내는 걸음이다. 이본느는 소녀의 발걸음을 살피며 조심조심 걸었다.

 

 계단은 길지 않았다. 탁한 공기가 감싼 그늘진 공간에서 먼저 들어선 치안대원이 초를 하나 켰다. 조그마한 불빛 아래 서늘한 창고가 보였다. 양옆에는 술통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흰 천으로 덮인 것이 보인다. 음식물 사이에 놓인 그것은 초라했다.

  

 “영주님 딸이라고 오냐오냐 하더니 지하 창고에 있어?”

 

 유진이 물었다.

 

 “저주나 전염병임을 우려하셨습니다.”

 “잘도 하네.”

  

 웃기지도 않는다. 귀한 딸이 죽었으니 범인일지 모르는 사람을 다 죽이겠다더니, 정작 그 딸의 시체는 여관에 처박아둬? 귀족이라 말할 가치도 없다. 영주의 딸이라면 당연히 다 저따위다. 유진은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치안대원이 멍청하게 서 있자 나지막하게 한 마디 했다.

  

 “장갑.”

 “아, 자… 장갑….”

 “가죽 장갑. 없으면 위에 올라가서 달라고 해. ㅇ…호위가 갖고 있다.”

  

  맨손으로 시체를 뒤적일 생각은 없다. 성급하게 흰 천을 걷어내자 고운 얼굴이 드러났다. 흐트러진 금발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유진은 다른 손을 펴서 가볍게 주언을 중얼거렸다. 조그만 빛조각들이 하나 둘씩 둥실둥실 떠올라 천장에 가서 박혔다.

  

  아까도 한 번 보았던 광경에 이본느가 실실 웃음을 흘렸다. 이 아가씨는 진짜다.

  

  그림자 없이 천장에서 내리쬐는 빛은 궁중의 무도회장처럼 호화로우나 그 아래 있는 광경은 차분한 시체뿐이다. 벽에 붙어서 숙성을 기다리는 술통과 말린 야채, 육포와 잘린 고깃덩이가 시체와 섞여 유쾌하지 않은 향을 풍겼다.

  

  흐라드차는 오폴레와 브제크 연방의 6공 중 하나다. 오폴레의 트르데지비치, 프로스테요프와 흐라드차. 브제크의 리베레츠, 바우즈브흐, 크워즈크, 여섯 영주가 모여 단 한 명의 왕을 선출한다. 같은 영주라도 선출권이 없는 니사의 영주와는 다르다. 살아있을 때에는 6공 중 하나인 영주의 딸로써 온갖 부귀 영화를 누렸을 터다. 지금은 고작 이곳에서 드러누워 있다.

 

  그 무참함에 이본느는 조심스레 무릎을 꿇었다.

  

 “내가 먼저 볼게.”

  

 전쟁터에서는 맨손으로 시체를 헤집는 검사다. 어린 여자아이를 지켜주고 싶었다. 그녀가 먼저 손을 뻗자 유진이 의아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잠시 뭔가 생각하는 듯 하더니 말을 꺼냈다.

  

 “장갑이 오면, 같이 보지.”

  

 먼저 보겠다고 고집을 부릴지도 모르겠다 싶었는데 이럴 때는 또 얌전한 소녀 같다. 이본느는 흐뭇한 웃음을 흘렸다.

  

 죽은 여자는 살아있었을 때는 분명 꽤 미인이었을 것이다.

  

 유진은 장갑이 도착하자마자 능숙하게 시체를 더듬었다. 양갈래로 묶은 금발머리가 흘러내려 귓가에 찰랑이는데 얇은 가죽장갑을 낀 작은 손가락은 눈까풀을 뒤집어보고 입술을 벌려 혀밑을 살핀다. 목을 눌러보고 단추를 풀어 가슴을 꾹꾹 누른다. 수십번은 해본 것 같은 자연스러운 행동에 놀라 이본느가 응시하자 유진이 물었다.

  

 “본다며.”

  

 이본느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비단 양말을 벗기고 리넨 속옷을 내렸다. 이것까지 어린 소녀에게 시킬 수는 없다. 굳어가는 몸을 더듬은 이본느는 시체의 다리 사이를 살폈다. 장갑을 낀 손가락을 깊숙이 밀어넣자 아직 존재하는 막이 느껴졌다.

 

 “처녀의 몸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끄러움 한 점 없이 냉정하게 그녀가 물었다.

 

 “항문은?”

 

 아. 이본느는 황급히 시체를 살폈다. 힘을 잃은 괄약근은 다치거나 상처 입은 흔적이 없었다. 비단 속옷을 다시 입히고 허벅지와 무릎, 무릎 뒤와 종아리, 정강이와 발목을 꼼꼼히 살폈다. 발가락 사이사이와 발톱에도 찔리거나 베인 상처는 없다. 단지 종아리의 팔, 등 쪽에 푸른 멍이 있을 뿐이다.

 

 “상처가 전혀 없는데…이 푸른 멍 때문인가?”

 

 의아해 하는 이본느의 말에 유진이 한숨을 쉬었다.

 

 “멍청이. 원래 죽으면 생기는 거다. 누워 죽은 시체 처음 보나?”

 

 소녀가 말했다.

 

 “잠깐 내부를 들여다볼 테니까 놀라지 마.”

 

 말투는 거칠었다. 소녀가 불러낸 영상은 신체 내부의 장기였다. 처음에는 피부와 근육, 한 겹 한 겹이 드러났으나 곧 소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옹골찬 흰 뼈가 사라지고 흉곽 아래 숨겨졌던 장기들이 한 점 한 점 드러났다. 검게 탁해져 순환이 멈춘 혈관을 지나 간장 아래 위장이 보인다. 멈춰있는 붉은 근육 덩어리- 심장이다. 그 옆에 허파, 폐까지-

 

 소녀는 정말로 뛰어난 마법사였다. 이 정도로 섬세하게 조절해서 영상을 불러낼 수 있는 자는 전쟁터에서도 보지 못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마법사가 나타난 거지? 이런 재능이라면 마탑에서 놓칠 리가 없다.

 

 이본느는 소녀를 다시 바라보았다. 십오 세가 맞나? 사실은 어린아이의 몸을 뒤집어쓰고 있는 자일지도 모른다.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악독한 마녀이거나, 인간이 아닌 이형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저 평범한, 아니 아름다운 귀족 아가씨처럼 보이는데…하는 짓은 십년차 용병보다 노련하다.

 

 “아가씨, 정체가 뭐야?”

 

 유진은 조심스레 살피는 그 시선도 신경쓰지 못할 정도로 피곤해 보였다.

 

 “그런 쓸모없는 데에 쓸 호기심이 있으면 이 여자가 왜 죽었는지나 알아내.”

 “그렇게 똑똑하면 네가 알아내지 그래.”

 

 유진은 다시 한숨을 쉬었다.

 

 “돌아가지. 더이상 여기서 알아낼 것은 없어.”

 

 이본느는 시체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엄지손가락과 둘째손가락에 박힌 굳은살이 도톰했다. 이본느가 나지막이 유진에게 속삭였다.

 

 “…. 눈치 못 챈 건가?”

 “조용해.”

 

 경비병에게 들리지 않도록 조그마한 목소리로 유진이 대답했다.

 

 이토록 총명한 마법사다. 이본느가 눈치챈 것을 유진이 눈치채지 못했을리가 없다. 이본느는 만족하고 물러났다.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

 

 “뭔가 좀 알아냈어?”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던 카민이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돌아온 두 여자는 약속이나 한 듯 서로를 마주보았다. 이본느가 무어라 말하려 하는데 유진이 한 손을 들었다.

 

 “손부터 씻고 이야기하지.”

 “…아.”

 

 정말로 공주님이구만. 이본느는 어깨를 으쓱하고 함께 손을 씻으러 갔다. 귀족 소녀가 아무렇지 않게 도르래를 움직여 우물에서 갓 길어올린 물을 퍼냈다. 그 물을 손 씻는 데에 쓰려고 하는데 이본느가 제지했다.

 

 “어이, 어이. 이건 손 씻는 물이 아냐. 마시는 물이라고.”

 “내겐 손 씻는 물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씻고 난 후 유진이 남은 물을 넘겼다. 이본느는 눈살을 찌푸렸다.

 

 깨끗한 물은 귀하다. 농민들이라면 이런 물은 마시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 여관은 우물이 있기 때문에 여관으로 영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본느의 고향에선 물은 피와도 같이 귀중한 것으로 취급했다. ‘손 씻는 물’ 이란 개념 자체가 없다. 먼지와 흙에 더러워진 몸은 수건에 문질러 씻는 것이 당연하다.

 

 이본느는 바구니에 담긴 물을 그대로 벌컥 마셔버렸다. 유진이 손을 씻고 남긴 물은 약간 비린내가 났다. 이본느는 그 비린내가 어디서 왔는지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저 멍청이한테 얘기해줄 것 없어.”

 “우리는 억울하게 갇혀 있는 거라고.”

 “그게 아니야.”

 

  유진이 찬찬히 말했다.

 

  “굳은살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영주의 딸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고 주장하겠지. 지금 그들을 추궁하는 건 오히려 우리 무덤을 파는 짓이다.”

 “흐라드차의 하나뿐인 보석이 손에 굳은살이 생길 일이 대체 뭐가 있는데? 우물에서 물 기르기?”

 “자수 놓기, 칠현금 타기, 승마, 더 읊어줄까?”

 “….”

 

  이본느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최소한 승마는 아냐. 내가 말 좀 타 봤지.”

 

  어리석은 몸종을 보듯 유진이 혀를 찼다.

 

 “네가 탄 건 낙타겠지.”

 “…!”

 

 이번에야말로 진짜로 입을 다문 이본느였다. 유진이 바보를 가르치듯 다정하게 말했다.

 

 “딸을 빼돌리고 죽었다고 소문낸건 우리 때문이 아니다.”

 “그럼…?”

 “바츨라프의 대공자와 결혼하고 싶지 않았던 거지. 딸이든, 영주든.”

 

  유진의 눈빛이 위험하게 빛났다.

 

 “처음부터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 귀족가의 딸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이 고작, 여관방에서 하루 머물기라고?”

 “그런 게 꿈인 소녀가 있을 수도 있지….”

 “여관방, 수십 수백 명의 남자가 자고 갔을 수 있는 더러운 방에서 자고 싶어하는 공주가 어디 있나.”

 “….”

 

  여관방에 대한 비정상적인 정의에 이본느는 기분이 나빠졌다. 아니, 그럼 지금 내가 자는 방은 뭐야? 나는 남자가 자던 방에서 자는 이상한 용병 여자냐? 뭐라고 따지려던 이본느의 말을 유진이 막았다.

 

 “자신만을 위한 건물을 한 채 지어서 거기서 잔다면 모를까.”

 “아니….”

 “귀족이란 놈들은 돼지보다 더 더러운 주제에 깨끗하고 순수한 것을, 순결한 것을 원한다. 이 공주는 조금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니야.”

 

 마치 자신은 귀족이 아닌 것처럼 맹렬하게 귀족을 비난했다.

 

 “그 시체는 공주가 아니다. 영주가 힘을 썼겠지. 그리고 그 죽음의 책임은 여행자 몇 명 따위에게 묻는다.”

 

 유진이 생긋 웃었다. 만드라고라의 꽃잎처럼 위험하고 아름다운 미소였다. 이본느가 곰곰이 생각하다 물었다.

 

 “그 식물사를 불러다가, 공주가 아니라고 증언을 시키면….”

 “영주의 명령이다. 식물사 따위가 거부할 리가 없지.”

 

  내 직업은 검사다! 이런 식으로 고민하는 것은 나같은 애들이 할 노릇이 아니야! 끙끙대던 이본느가 다시 질문했다.

 

 “공주의 시녀는?”

 “진실을 말하게 하는 마법을 쓴 법정에 불러낼 수는 있겠지. 거기 도착하기도 전에 죽어버릴 거다.”

 “…너 이런 일을 많이 겪어 봤구나?”

 

  유진은 말없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붉은 머리의 여검사는 호탕하게 유진의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걱정하지마, 너같이 조그만 여자애까지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테니까.”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냐?”

 

  유진은 바로 손을 쳐냈다. 대비하고 있던 이본느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씩 웃었다.

 

 “너. 너. 세상 물정을 너무 잘 아는 꼬맹이 마법사님. 귀족한테 물먹은 일이 많은 모양인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무릎을 굽히고 수그려 유진과 똑바로 얼굴을 마주한다. 이본느의 붉은 눈동자가 타오르는 듯이 빛났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너만은 도망치게 해줄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유진이 고운 이마를 찌푸렸다. 가까이서 다가오는 이본느의 숨결이 불쾌했다. 뒤로 한 걸음 물러나려는 유진을 덥석 잡아 이본느가 꽉 껴안았다. 덩치 큰 이본느가 껴안자 조그마한 유진은 마치 소녀에게 안긴 곰인형처럼 폭 파묻혀 버렸다.

 

 “읍읍…!”

 “내가 혼자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면 된다. 그럼 넌 살 수 있어.”

 “멍청한 소리 하지 마라! 이 근육 뇌 용병 검사야!”

 “나 이본느, 어린 여자아이까지 함께 죽게 내버려두는 것보다는 거짓말을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손 씻으러 간 후 나타나지 않는 여자들을 찾으러 온 카민이, 기절하기 직전의 유진을 구출한 것은 조금 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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