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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와 그 수하들이 자취를 감추자. 난 다시 한 번 그녀에게 나의 절친인 땅과 키스를 나눌 정도로 허리를 깊이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영애. 손목은 괜찮으신가요?”
“아, 네! 괜찮아요! 원래 몸이 좀 오크처럼 튼튼해서! 하하. 그런데 황후마마가 보내셨다고요?”
“네. 혹시 아실지 모르겠지만 전 공국 최고의 기사단 중 하나인 ‘포레인 기사단’의 기사 단장이자, 황후마마의 오른팔이신 시자리스 스테인 백작의 딸. 에이필 스테인 입니다.”
“아! 이야기는 익히 들었어요! 미래의 공국 기사 단장 후보라는 말이 거론 될 정도의 젊은 천재 기사!”
“제 분수에 맞지 않는 소문이죠.”
나는 조심스럽게 일어나서, 내 앞의 이 기사님을 제대로 보았다. 아름다운 흑진주를 연상케 하는 검은 머리카락과 푸른 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끌리는 매력이 있었다. 물론, 기본 본판이 아름답기에 그런 거겠지만. 윽, 이런 여리 여리한 미모에 검까지 잘 쓰다니, 나의 소심병도 치유된다. 하아. 정말 딱 소설에 나올 여주 같은 언니네.
“근데 절 어디서 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까 영애가 한 말을 들어보니, 전에 절 본적이 있는 듯이 말씀을 하시던데.”
“물론이죠. 아! 이러면 아실 겁니다.”
우리 멋진 언니는 끈을 이용해서 머리를 틀어 올리더니 품에서 하늘색 가면을 꺼내 착용했다. 나는 눈을 크게 뜨며, 손뼉을 짝 쳤다.
“아! 진짜 하늘 가면님이시구나! 몰라 봤어요!”
“네, 맞아요. 항상 대화 없이 책만 사갔는데, 드디어 이야기를 해보네요. 대사제님”
크으, 이 언니도 정말 황후마마 뒤지지 않는 천사네. 이 미소가 정녕 사람의 미소입니까! 저 윙크가 사람의 윙크 입니까! 본래라면 이 책방의 절대적인 룰 중 하나인 나와 동지들 사이에는 마음의 교류만 있을 뿐은 오늘 부로 폐점합니다. 애초에, 황후마마에게 들킨 후로 유명무실해진 규칙이지만...
“아, 저.. 그럼, 혹시 기사님도 그 신도분이신가요? GL쪽?”
“하하, 아니에요. 황후님의 추천으로 몇 권 읽어는 봤는데, 취향에는 맞지 않더군요.”
“아 그러시군요. 사람마다 취향은 있으니까 존중해요!”
“그래도 전 저쪽에 있는 책들은 취향에 맞더군요.”
나는 그녀가 가리킨 책장 쪽으로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하늘 가면님이 종종 사간 순애물 19딱지에 관련된 책들이 연이어 놓여 있었다.
“아! 그래서 두 가지 종류의 책을 사가셨군요!”
“네. 확실히 취향에도 맞고, 남자친구들을 만나는데 많은 도움이 되더군요.”
“그렇죠? 아무래도 순애물 쪽은 그런 곳에 도움이, 네?”
어이, 언니 남자친구들이라고? 들?! 잠시만 내 뇌가 따라가질 못하겠는데. 혹시 양다리? 엔조이? 뭐 그런 거니? 순애물 19딱지를 그런 곳에 쓴다고? 어디를 어떻게 쓰기 시작하면 거기로 흘러가는 거죠 언니?
“종종 만나던 애들이 질리던 차에 이런저런 플레이를 해보니 나름 신선하기도 했고 재미있더군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두, 세 명과 같이 하는 건 꽤 좋은 경험이었죠.”
“아... 네.”
그.. 그래 언니 취향이겠지? 난 도저히 순애물이 왜 그리로 가는지 정말 모르겠지만. 뭐 사람이 남자 많이 만날 수도 있지. 여러 명이서 하는 게 죄도 아니고 그치? 하하. 그래도 난 망상만 해서 이해는 하겠지만, 공감은 못하겠다. 언니 꽤 재미있게 사는구나. 하하하.
“그럼 영애 오늘은 황후마마의 명으로 ‘거래’를 마치러 왔는데. 책을 받을 수 있을까요?”
“아! 네! 잠시 만요!”
나는 계산대로 후다닥 뛰어가서, GL계의 악마라 불리는 작가의 책을 꺼내 건넸다. 언니는 만족한다는 듯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책을 품속에 넣었다. 그리고 이만 가보겠다는 말과 함께 몸을 돌리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아, 영애의 호위는 어디까지나 테인 황태자님이 영애에게 접근할 경우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저도 제 기사단에서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그래도 황태자님이 영애에게 다가갈 때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보호할 것을 약속하죠.”
“아! 네.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 내 인생에서 최고의 위험분자는 황태자 단 한명! 그 미친놈만 막아 주신다면,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어요!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언니를 마중했다. 곧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다른 책방과 마찬가지로 나는 우리의 동지들을 맞이하기 위해, 열심히 남은 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좋아! 오늘도 힘차게! 꼴릿하게! 발기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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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에 갇혀 있던 시간동안 피가 마르도록 긴장했기 때문인지. 시간은 평소보다 빠르게 흘러 갔다. 하루, 이틀, 삼일. 평범한 일상이 정말로 행복한 것을 깨닫게 된 나는 모든 것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예정된 7일 째, 여전히 나는 책을 빼내지 못했고. 책도 아무런 이상 없이 그 날을 지나갔다. 태자도 우리 언니도 그 날 이후로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고, 뭔가 그들과 연관 되었던 날이 마치 꿈과 같이 느껴졌다.
“그래, 이게 최고지. 신간이 나온 성물들과 그 속에 파묻혀 있는 나. 완벽해!”
나는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다보니. 속으로 책에 걸린 마법에 마나가 고갈 된 것으로 치부하기 시작했다. 이 손목에 감긴 흰 띠는 한 여름 밤의 꿈처럼 겪은 태자와 오닐의 키스를 본 기념품으로 치부했다. 그렇게 보름이 지나간 어느 날, 한 통의 편지가 우리 가문에 도착했다.
난 이 때 몰랐다. 챕터 1의 이야기는 프롤로그였으며, 게임 속의 듀토리얼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내 생각보다 이 마법은 꽤나 지독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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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정말이세요?!”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이 편지를 봐라.”
난 내 아비가 넘겨준 편지를 보면서, 점점 얼굴이 굳어갔다. 그것은 봄이 지나며, 여름이 되어가는 날에 열리는 공국 최고의 이벤트 중 하나인, ‘초여름의 무도회’의 초대장이었다. 뭐, 원래 이 파티의 초대장은 황궁에서 일괄로 발송하기 때문에 가고 싶지 않다면 안가도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 많고, 생판 처음 보면서 아는 척 해대는 곳에는 절대로 가기 싫었기 때문에,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말입니까? 신이시여. 황후마마가 직접 초대장을 써서 보내시다니요! 천사님 혹시 저 싫어하시나요? 왜 그러시나요? 이 초대장은 대체 뭔가요!
“황후님이 직접 네게 보내신 초대장이다. 후우. 나도 네가 그런 곳을 병적으로 싫어한다는 것은 안다만. 아무래도 이 초대장을 받고 가지 않는다는 것은...”
“네. 엄청 곤란하시겠죠. 저도 굉장히 곤란한데 아버지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겠죠?”
우리 아비는 골치가 아픈지 책상에 앉아 이마를 짚었다. 아비의 상황을 빼고 보더라도, 둘째 오라비도 기사단에서 중요한 시기고, 첫 째 오라비도 인사과에 제대로 자리 잡은 지 얼마 안 되니. 여러모로 거절하기 곤란한 초대였다.
“네가 알아준다니 다행이구나. 그럼...”
“아버지.”
“응?”
“제가 얼마 전에 기가 막힌 진리를 하나 깨달았거든요?”
“진리?”
“네. 바로 사람은 ‘거래’라는 걸 잘해야 한다는 사실이죠.”
“!”
“자 그럼.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사랑하는 아버지?”
흥! 그래도 맨입으로는 안 된다고! 가족은 가족! 일은 일! 성물은 성물! 슬슬 확장 공사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나쁘지 않은 기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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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아가씨가 초여름의 무도회에 가시다니!”
“유리카 지금 굉장히 눈이 무서워. 부탁인데 전처럼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게 하겠어요! 라는 마음은 먹지마. 내가 못 버텨.”
“당연하죠! 우리 아가씨가 어떤 분이신데, 세상에서라뇨!”
“뭐?”
“전 우주에서 입니다!”
나는 우리 아비와의 거래로 자금을 뜯어 낸 뒤, 확장 공사를 위해 여러 인테리어 담당자를 만나기 위해 한동안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내가 무도회 당일인 오늘도 집을 탈주하려하자, 나의 전속 시녀 유리카는 집 안에 있는 사용인이라는 사용인들은 다 모아서 내 방문 앞에 농성을 벌였다. 나는 꼼짝없이 그들에게 붙잡혀, 방안에 감금 되어 보기에도 헉 소리 나는 옷, 장식품, 화장품, 심지어 팩과 전문 마사지사까지 보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유리카를 말리기 위해, 방금 전 말을 했지만. 아무래도 나의 시녀는 이미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다.
“그래. 우주에서지. 자 얘들아 드루와. 드루와.”
나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눈을 붉히고 있는 모든 시녀와 하녀들에게 손짓했다. 그래. 확장 공사를 위해서 내가 뭔들 못하겠니. 그리고 난 이 생각을 딱 10분 만에 후회했다.
“아파!”
“배를 좀 더 집어넣으세요! 뭐해! 좀 더 당겨!”
“아프다고 이 년들아! 살살해!”
“원래 아름다움은 멀고도 먼 길이랍니다. 배를 더! 더! 더! 아니 무도회가 코앞인데 다이어트도 안하신거예요. 분명히 식단 조절 했을 텐데?”
“아, 그랬어? 난 양이 원래 적은 줄 알고 밖에 나가서, 악! 야!”
“하아. 아가씨를 믿은 제가 바보죠. 이건 벌이예요! 더 집어넣어요.”
코르셋 고문부터 시작으로 온갖 옷 입히기 인형이 되었다가 전문 마사지사의 고문과 같은 미친 마사지에 얼굴을 갈아엎으려는 듯 들어오는 화장품의 퍼레이드는 끔찍했다. 분명 무도회는 초저녁일 텐데, 왜 이 백주대낮도 아닌 아침부터 난리인지. 거기다 귀에 거는 귀걸이는 무겁고 목걸이는 누군가 나한테 목줄을 메어서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나는 정말 더 이상 계속 했다가 진심으로 쓰러질 것 같아서 한 손을 들어 아이들을 멈췄다.
“좀 쉬자. 나 진지하다. 숨 좀 돌리자 이것들아.”
시녀와 하녀들은 입맛을 다셨다. 그들은 여기서 좀만 더하면 창문 밖으로 뛰어내릴 듯한, 나의 눈빛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쇼파에 앉아 한 숨을 쉬고는 완전히 쇼파와 일체화가 되기 위해 몸에서 힘을 뺐다.
“많이 힘드시죠? 이거 좀 마시세요. 물도 살찌니까. 조금 씩 머금고 오래 입안에서 헹구신 다음 삼키세요.”
“유리카. 물은 제대로 먹게 해죠. 나 굉장히 지금 참고 있단다.”
“알죠! 우리 아가씨 기특하시네요. 그래도 참아 주세요. 겨우 코르셋 입혔는데 터지는 건 못 본답니다.”
“하아. 알겠다. 알겠어.”
나는 물 잔을 받은 뒤 조금 씩 삼켰다. 유리카는 내 옆에 서있으면서 머리가 망가지지 않도록 들어 올려, 땀이 난 뒷목에 후후 바람을 불었다.
“고마워. 유리카.”
“뭘요? 크크. 아 그러고보니 무도회 가시면 보시겠네요. 그 입에 달고 사시던 태자 전하와 오닐 기사단장이요.”
“아? 그다지 보고 싶지 않지만. 아 오닐은 제외. 태자는 찢어 죽여도 보고 싶지 않아.”
“어? 왜요? 항상 내 인생 BL의 영원한 남주는 태자 전하 라면서요.”
“그땐 내가 뭘 몰랐어. 에휴. 요즘 내가 취향이 바뀌었나봐.”
“크크크. 그럼 다행이네요. 안 그래도 태자 전하께서 이 무도회에서 약혼을 하신다는 소문이 돌던데요?”
“뭐?! 진짜? 누가 그래?”
난 그동안 아무리 바빴어도, 이런 큰 이슈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 크게 자신을 책망했다. 성물의 트렌드는 곧 공국의 이슈에서 나온다. 그런 걸 놓치다니, 성지의 대사제로써 실격이다.
“어머, 모르셨어요? 저희 공국의 드리엄 공작가의 따님이랑 약혼하신다고 쉬쉬하면서 말하지만, 거의 공론화 되었다는 데요.”
“헐. 드리엄 공녀라고? 그 인형 같은 여자랑 태자가? 약혼? 완전 매칭이 안 되는데.”
“그래도 무도회나 파티에 가면 춤은 꼭 그분하고만 춰서, 이러니저러니 해도 황태자비로는 제일 유력하셨잖아요.”
“그건 그래도. 보여주기 식이 아니면, 절대 안 만난다는 이야기가 많았잖아?”
“그래도 남녀사이는 모르는 거죠. 히히.”
“뭐 그렇지. 그래도 놀랍네. 그 둘이 약혼을?”
나는 고개를 젓고는 보름 전에 테인과 오닐이 하던 이야기를 생각했다. 황후마마도 테인이 여자들과 잘 논다는 것을 알았고, 그 둘도 딱히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 보였는데 약혼이라니. 역시 정략혼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또, 그 때 생각하니 우리 태자 전하의 발연기가 생각나네. 약혼도 연기라면 잘하려나. 에휴, 우리 오닐은 태자가 약혼해서 맘 상하지 않을까. 크크.’
이런 쓸모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난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 미친년은 잊고 있었다. 나란 년은 지금 상상조차 깊이 생각하고 해야 한다는 걸, 그리고 이미 그 생각을 한 순간 늦었다.
“잠깐만 방금 전은! 취소야! 실수야!”
나의 손목의 흰 띠는 하얗게 빛났고.
“어머, 아가씨 왜 그러세요!”
이내 책이 되어 내 무릎 앞에 책이 놓여졌다.
“아니야! 제발!”
그리고 펼쳐진 페이지에는 챕터 2의 제목이 써져 있었다.
“질투와 배덕감의 사이.”
이 챕터는 이름부터 심상치 않았다.
젠장. 다시 마법 속으로
이번에는 대체 무슨 짓을 해야 하는 거지!
잠깐, 나 이 고문들을 며칠 동안 계속 겪어야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