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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49일,
작가 : 에스뗄
작품등록일 : 2017.7.20

평탄한 성공 가도를 걷다 한 순간에 실패자로 전락한 승완. 삶을 포기한 그녀 앞에 홀연히 나타나 자신을 악마라 칭하는 남자. 그런데 이 남자, 망자를 앞에 두고 엉뚱한 말만 한다. "새 인생은 즐겨. 날 유혹하는 건 대환영이고." 49일간 같은 이름의 전혀 다른 인물이 된 그녀. 게다가 전생의 인물들까지 엮여버린 상황에서 승완은 자신과 관련된 무서운 비밀을 발견하는데... (autor_ester@naver.com)

 
005. 전 센스있는 신입이니까요
작성일 : 17-07-23 01:26     조회 : 217     추천 : 0     분량 : 6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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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 - 42)

 

 "역시 밥은 동기랑 먹어야지."

 

  승완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하얀 쌀밥을 한 숟가락 가득 퍼서 입에 넣었다. 매끈한 밥알이 혀 위에서 동글동글 춤을 췄다.

  일주일 사이에 구내식당 조리사가 바뀌기라도 했는지, 밥맛이 아주 꿀맛이다.

 

 "내 말이. 이게 얼마 만에 먹는 밥 다운 밥이냐?"

 

  옆에 앉은 동기 유환의 말에 승완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동의했다.

  26살 백승완으로서 살기 시작한 지도 벌써 4일이 지났다.

  29살 백승완일 때는 몰랐던 사실 하나. 입사 동기는 사랑이다.

 

 "어제 부장님 바로 옆자리에서 밥 먹는 데 체하는 줄."

 "난 우리 부장님 자식 자랑에 맞장구쳐주느라 혀가 마비 걸릴 뻔."

 "몰랐어? 점심시간은 부장님 자식 자랑 듣는 시간이래."

 "인정. 짤이 괜히 도는 게 아니더라."

 

  승완의 앞과 옆을 꽉 채운 동기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앓는 소리를 했다.

  승완은 소리 없이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대리 시절의 그녀와 똑같은 고충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녀에게는 지금처럼 고충을 나눌 동기가 없었다.

 

 "세찬이 너는 어때? 연수원에서 걱정 제일 많이 했잖아."

 "나, 나야 뭐..."

 

  유환이 앞에 앉은 세찬에게 물었다. 동기는 동기가 챙긴다고, 연수 때부터 눈에 띈 세찬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다.

  세찬은 큰 키에 비해 작은 얼굴에 동글동글한 눈을 가진 귀여운 강아지상이다.

  부드러운 연갈색 머리카락을 닮은 커다란 고동색 눈은 언제나 초승달처럼 휘어 미소를 짓고 있다.

  게다가 싫은 소리 한 번 못하다 보니, 공연히 마음이 쓰이는 타입이었다.

 

 "세찬이 일 잘해. 내가 옆에서 깜짝깜짝 놀란다니까."

 "아, 아니야! 스, 승완이야말로 한 6년 차 대리님인 줄 알았어. 완전 머, 멋져."

 

  아무 생각 없이 세찬의 편을 들어주던 승완은 깜짝 놀랐다.

  지난 생에서 그녀가 딱 6년 차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청사진에 따라 휴학 한 번 없이,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입사해 또래보다 연차가 높은 편이었다.

 

 "승완이 너는 몸 괜찮은 거야?"

 "중환자실에서 3일이나 누워 있었던 애 맞아? 너무 멀쩡하잖아."

 "솔직히 말해. 너 출근하기 싫어서 꾀병 부린 거지?"

 

  세찬에게 향했던 화제는 자연스럽게 승완에게로 돌아왔다.

  승완은 한숨을 내쉬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벌써 일주일 가까이 지났으니 진실을 말해줄 때가 되었다.

 

 "얘들아, 사실 너희가 보고 있는 나는 내가 아니야."

 "그, 그럼?"

 

  묵직하게 내리깐 승완의 목소리만큼, 동기들의 고개가 아래로 내려갔다.

  마치 비밀 이야기라도 되는 양, 바쁘게 움직이던 손을 멈춘 그들의 눈짓마저 조심스러웠다.

 

 "사실 나는...."

 

  꿀꺽-

  누구보다도 승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세찬의 목울대가 울렁였다.

 

 "유령이야!"

 "으, 으악!!!"

 

  세찬은 그 누구보다도 놀랐다. 하마터면 뒤로 나가떨어질 뻔했다.

  옆에 앉은 철규 덕분에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지는 사나운 꼴을 면한 세찬이 원망이 담긴 눈으로 승완을 바라봤다.

  승완은 그를 향해 슬쩍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 아주 거짓말은 아니니까.

 

 "애도 아니고 무슨 장난이냐?"

 "아무튼, 짹짹이 장난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승완은 동기들 사이에서 짹짹이로 통했다. 이 몸의 주인은 솔직하고 구김살 없는 성격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승완은 자신도 모르게 몸의 원래 성격에 따라 행동할 때가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그런 자신에게 가끔 놀라긴 하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녀가 더 어릴 때 해보지 않은 장난이라 도리어 색달랐다.

 

 "어머, 오늘은 신입 동기들끼리 식사하나 보네요."

 

  그리고 예전에는 몰랐던 사실 하나 더.

  지금 구둣발 소리를 내며 승완의 옆에 선 여수빈 주임은 생각보다 단순한 사람이다.

 

 "백승완 씨."

 "네, 주임님."

 

  수빈은 승완의 직속 후임이었지만, 승완은 그녀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남자친구의 집에서 마주치기 전에는 그저 업무 성향만 파악했을 뿐이다. 그만큼 승완은 회사 사람들에 밝지 못했다.

  설마 남의 남자를 빼앗고, 그 대상의 뒷말을 하는 부류의 여자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물론, 그녀의 경악스러울 만큼 새로운 면모도 겨우 하루밖에 보지 못했지만.

 

 "내가 부탁한 자료 다 뽑아놨어요? 그거 하려면 이렇게 웃고 떠들 시간이 없을 텐데."

 

  수빈이 매끈하고 뽀얀 도자기 피부로 잘 정돈된 얼굴에 싱긋,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을 들은 동기들의 얼굴은 단박에 굳었다. 세찬은 승완의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인간관계에 있어 빠릿빠릿하지 못한 세찬의 눈에도 여수빈 주임은 대놓고 승완을 싫어하고 괴롭혔다.

  달랑 쪽지 하나를 던지며 반나절 안에 관련 자료를 모두 뽑아오라고 하질 않나, 각 팀원의 업무 파악도 못 한 신입사원에게 회의자료 취합을 맡기질 않나.

  여자들 세계의 기싸움을 알지 못하는 세찬에게는 지독한 처사가 한 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세찬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뛰는 여수빈 위에 나는 백승완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이죠. 목차별로 출력해서 주임님 책상에 올려두었습니다."

 

  입사 6년 차인 승완에게 신입사원의 업무는 껌이었다. 루트를 배우는 중학생에게 두 자리 덧셈을 시키는 격이랄까.

  심지어 그녀는 여수빈 주임보다 상사이자, TI 전자의 최연소 대리였다.

  회사 전산 시스템 활용과 보고서 작성의 여왕이라 불리던 그녀의 초고속 승진은 괜히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그, 그래요? 그걸 벌써?"

 

  그럴 리가 없는데, 라고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똑똑히 들은 승완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이번에는 그녀의 차례다.

 

 "아, 그런데 말이에요, 주임님. 그 자료 과장님께 올릴 것, 맞죠?"

 "맞아요. 왜요?"

 "주임님이 주신 초기 자료가 너무 옛날 거라 그런지, 새 자료와 수치도 다르고 목차도 안 맞더라고요."

 

  수빈의 눈이 한순간에 커졌다. 유리구슬을 닮은 눈망울에 잿빛 당혹스러움이 서렸다.

 

 "물론, 제가 수정해드렸습니다. 전 센스있는 신입이니까요."

 

  승완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수빈을 향해 찡긋, 윙크를 날렸다.

  생각지 못한 상황 전개에 수빈이 입술을 깨물었다. 진분홍색 립스틱이 그녀의 하얀 치아에 의해 뭉개졌다.

 

 "아, 그, 그래요? 고마워요. 식사들 맛있게 하세요."

 

  수빈은 서둘러 몸을 돌려세웠다. 이번에는 그녀가 졌다. 인정해야 했다.

  허둥지둥 자리를 뜨는 수빈을 보며 승완의 동기들이 통쾌하다는 듯 입을 가리고 키득거렸다.

  말은 안 해도 같은 처지로서 동기가 부당한 처사를 당하는 게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역시 우리 짹짹. 다시 봤어."

 "연수 때 업무 역량 평가 1등 하더니 역시 실전에서도 빛을 발하는구나."

 

  유환을 위시해 승완의 주위에 앉은 동기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승완은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 국을 떠먹었다. 수빈과 실랑이하느라 조금 식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맛났다.

  승완의 앞에서 마찬가지로 국을 뜨던 세찬이 뭔가 생각난 듯 목소리를 높였다.

 

 "호, 혹시 다, 다른 팀이랑 주고받은 공문 어떻게 찾는지 아, 아는 사람 있어? 2009년 이전 걸로."

 "그건 구 전산 시스템에 따로 로그인해야 해. 그런데 우리는 그 아이디가 없어서 팀별로 할당받은 아이디로만 들어갈 수 있어."

 

  여기저기서 우와, 하는 탄성이 터졌다. 신입들은 아무도 몰랐던 고급 정보였다.

 

 "스, 승완이 넌 그걸 다 어떻게 알아? 수, 수빈 주임님도 모르시던데."

 "어? 아, 그거?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대리 시절에 신입을 교육하던 때처럼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답했던 승완은 당황했다.

  이걸 어떻게 답하지? 교육 담당인 수빈이 몰랐다면 마땅히 핑계 댈 만한 사람이 없었다.

 

 "이, 인턴! 예전에 인턴 했던 회사의 전산 시스템이 비슷했거든. 그, 그래서... 하하하."

 "그런데 왜 그렇게 말을 더듬어? 세찬이랑 다니면서 옮았나 보다."

 

  승완을 놀린 철규가 다시 식판으로 고개를 내렸다. 금쪽같은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들을 향해 바들바들 떨리는 입술을 억지로 끌어올린 승완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입단속부터 해야겠군.'

 

 

 *

 -회사 생활은 어때?

 "할 만해요. 걱정 마세요."

 

  점심시간을 10분 남짓 남겨둔 시간.

  집에서 걸려온 전화에 승완은 옥상에 올라왔다. 탁 트인 옥상에서도 한구석의 쪽그늘은 그녀의 아지트였다.

 

 -무리하지 마. 회복이 빨랐어도 수술까지 한 몸이야.

 "네네."

 -너한테 또 무슨 일 생기면 그땐 엄마도 어떻게 될지 몰라.

 "알았다니까."

 

  승완은 괜히 초록색으로 반질반질하게 칠해진 바닥을 구두 끝으로 긁었다.

  예전에는 들어본 적도, 기대해본 적도 없는 말에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몰랐다.

  오롯이 자신을 향한 조건 없는 애정에 배가 간질간질하고, 얼굴이 뜨끈해졌다.

 

 -그래. 오늘 저녁은 너 좋아하는 불고기로 정했다!

 "정말? 좋아요!"

 -그러니까 합의만 마치고 얼른 들어와.

 

  승완의 기억 속에서 어머니표 불고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단짠단짠한 맛을 지닌 색색의 단백질 덩어리를 보자 입안에 침이 고였다.

  이제 막 식사를 끝냈음에도 뱃속에서 어서 불고기를 내놓으라고 아우성을 쳤다.

 

 "얼른 갈게요."

 -그래. 사랑해, 내 새끼.

 

  언제 들어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사랑이라는 단어에, 제 새끼를 보듬는 어미의 다정한 말투에 그만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코끝에 지르르르 저압의 전기가 올랐다.

 

 '으아, 안 돼!'

 

  눈이 빨개진 채로 사무실에 들어갔다간 세찬이 걱정할 것이 뻔하다.

  연신 눈을 깜빡이며 하늘을 올려다본 승완은 자신을 보며 피식피식 웃고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또 왜?"

 "왜냐니? 난 너 보러 오면 안 돼?"

 

  여수빈 주임 못지않은 도자기 피부를 자랑하는 그가 입을 비죽 내밀고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승완은 아예 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 반갑지 않은 얼굴이었다. 매일 찾아와 승완의 앞에서 실없는 소리를 하며 알짱대다 사라지는 악마 녀석.

  승완도 이제는 반말로 대응한다. 그래도 녀석이 원하는 막말보다는 낫겠지.

 

 "안 돼. 이제 곧 업무 시간이거든."

 "뭐야, 며칠 만에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네?"

 "용건만 말해."

 "너무하네. 하긴, 이게 네 매력이지."

 

  거침없는 승완을 보며 남자는 키득키득 웃음을 참지 않았다.

  승완을 향해 허리를 굽힌 그의 몸에 딱 붙은 검정 와이셔츠가 매끈한 굴곡을 그렸다.

  승완이 움찔, 하고 한 걸음 뒤로 떨어졌다. 그가 다가오는 건 위험 신호였다.

  날카롭게 빛나는 보랏빛 눈동자를 보며 승완은 제 목에 닿았던 촉촉한 감촉을 떠올렸다. 또다시 얼굴이 붉어지려 했다.

 

 "아무튼 인간은 재밌어. 변화가 눈에 확연히 보이잖아."

 

  승완은 아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저 짓궂은 녀석에게 안줏거리만 제공할 뿐이다.

  대신 그녀는 기분 좋게 늘어진 그의 눈 밑에서 작은 점을 발견했다. 예쁜 동그라미 모양의 점은 짙은 눈매의 매력에 방점을 찍었다.

 

 '무슨 악마가 얼굴에 점이 있담.'

 

  승완에게 있어 악마란 머리에 뿔이 달리고, 엉덩이에는 삼각형의 꼬리가 달린, 무시무시한 외계 생명체였다.

  그런데 이 남자는 뭔가? 마력을 사용하는 것 외에는 인간과 똑같다. 길에서 보면 그저 지나칠 것만 같다.

  아니, 그냥 지나치진 못하겠지. 면상이 워낙 잘나셨으니까.

  아무튼 그녀가 상상했던 악마와 이 남자의 공통점은 보라색, 그리고 차가운 인상 둘 뿐이다.

  한편, 승완이 대꾸하지 않자 남자는 흠흠, 주먹을 입가에 가져다 대고 헛기침을 했다.

 

 "용건은..."

 "......"

 "오늘 저녁에 뭐해?"

 "저녁에?"

 

  승완의 눈썹이 비뚜름하니 위로 올라갔다.

  오늘 저녁엔 사고 가해자를 만나 합의하기로 했는데. 그리고 얼른 집에 가서 맛난 불고기를 먹을 거다.

 

 "나 오늘 바쁜데."

 "괜찮아. 넌 너대로 할 일을 하면 돼."

 

  그의 입술이 매력적인 선을 그리며 늘어졌다. 촉촉한 그의 입술은 최신 유행의 틴트를 바른 듯 꽃잎의 색을 띠었다.

  도톰하게 올라온 그의 꽃잎은 바람결에 나풀나풀 날아와 승완의 하얀 손목 위로 떨어졌다.

  승완은 홀리듯,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현력으로는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의 입술이 닿은 순간, 승완의 손목에서 보라색 물보라가 쳤다.

 

 "다만 널 위해 내가 특별히 준비했으니, 충분히 즐겨주길 바라."

 

  이내 허리를 편 남자는 승완을 향해 매력적인 점이 위치한 눈을 찡긋, 감아주고는 사라져버렸다.

  남자가 서 있던 자리에는 보랏빛 바람만이 공중으로 흩어져 '그'라는 존재가 머물다 갔음을 증명했다.

 

 "저놈은 하루라도 뽀뽀를 안 하면 입에 가시가 돋나?"

 

  승완은 남자의 입술이 닿았던 손목을 세게 비비며 몸을 떨었다.

  비록 양갓집 규수는 아니지만, 그에 상응하는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라온 그녀에게 입맞춤은 부끄럽고 이상한 일이었다.

  심지어는 결혼을 약속한 그와도 자주 나누지 못했다. 그는 승완을 향해 조선 시대 여인이라 불렀다.

  그런데 이 악마라는 남자의 입맞춤은 조금 달랐다. 소중한 것을 대하듯 정중한데, 뭐랄까, 야릇했다.

  그의 색처럼 오묘하고 고상하면서 은밀하고도 간지러웠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그 느낌이 이상하거나 나쁘지 않은 자신에게 있었다.

 

 "그나저나 특별히 준비한 일이라니. 뭘까?"

 

  과연 그가 즐길 만 한 일이 과연 자신에게도 같은 의미일지부터 걱정되었다.

  그러나 남자가 남기고 간 수수께끼는 그로부터 반나절이 지나고 나서야 풀렸다.

  합의를 위해 나온 남자가 제 앞에 앉는 순간, 승완은 그제야 그 악마 같은 놈의, 아니, 악마의 의중을 알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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