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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천사는 울지 않는다
작가 : 소설부부
작품등록일 : 2017.7.15

영겁의 세월동안 고독과 마음의 평온만을 추구하던 천사 프라.
그가 복잡한 관계로 뒤얽힌 지구의 삶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

...팽팽한 긴장의 줄을 싹둑 잘라 먹었다.

모두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라는 잔뜩 힘주어 숨을 참고 있던 참이었었다.

에이씨. 지지려면 빨리 지질 것이지. 할랑 말랑 하는 게 더 고문인 거 모르나.

키가 보통 명마보다 큰 흑마는 구경꾼들을 당당하게 가르고 장교 앞에까지 왔다.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검은 후드망토를 길게 늘어트린 존재가 말 위에 앉아 있었다.

 
이름 부르고 싶어? 조건이 있어.
작성일 : 17-07-22 16:09     조회 : 277     추천 : 0     분량 : 7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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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라스 영주님……이렇게 부를 때마다.”

 

 

 집무실에서 그는 커다란 종이에 시선을 박고 있었다. 세라는 그 맞은 편 소파에 앉아 종이에 낙서를 하고 있었다.

 

 세탁일이 금지당하면서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경호기사 두 명이 따라 다녔고, 그늘 속에서 지켜보는 수많은 감시하는 눈들이 불편했다.

 

 차라리 아카드가 성에 있을 땐, 그의 집무실에 들어와 있는 것이 편했다. 적어도 감시자가 한명으로 줄어드니까.

 

 이제 그의 집무실이 제법 익숙하고 좋았다.

 

 그녀의 가득 찬 낙서들은,

 

 

 아카드 카라스 영주……는 미쳤다.

 

 카라스 영주님……은 미치광이.

 

 미치광이 카라스.

 

 

 “습관적으로 미치광이란 단어가 자꾸 머릿속에 따라 붙어요. 미치광이 카라스 영주님.”

 

 “미친 거 맞는데 뭐 어때서.”

 

 

 아무렇지 않게 스스로 미쳤다고 말하는 그를 올려봤다.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 스며들었다. 슬픔을 감추고 익살스러운 행동으로 웃기려드는 광대를 볼 때처럼.

 

 

 “당신 이름이 맘에 들어요.”

 

 

 무기 전개도만 들여다보던 바쁜 눈동자가 처음으로 멈췄다.

 

 또 새로운 무기들을 구상하는 걸까?

 

 

 “아카드…….”

 

 

 꿈꾸듯 그녀가 허공에 대고 읊조렸다.

 

 아사벨라가 그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얼마나 부러웠던가.

 

 수 주가 지났거만, 그녀에 대한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그러니까……이런 큰 희생을 치른 아카드 앞에서 자존심 챙기고 신분 따질래? 그냥 좋다고 매달리고 응석부리는 게 답이야. 정 귀찮아지면 그가 알아서 피해.’

 

 

 이사벨라의 말에 깊이 공감했던 기억이 났다.

 

 이름을 부르게 해달라고 매달리며 응석부리는 자신을 머릿속에 떠올려 봤다.

 

 소름이 쏵 끼쳤다. 응석이라니! 안 돼. 그것만은.

 

 담담하게 이름을 부르게 해달라고 요구하면 영주님이 들어줄까?

 

 그런 의문을 던진 순간,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사랑에 빠진 연기를 하는 편이 좋겠지?’

 

 ‘내 선에서 적당한 멜로 연기로 넘어가 보려 했는데 생각보다 피곤하고 성가셔.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네가 알아서 해. 장단정도는 맞춰 줄 테니까.’

 

 ‘나한테, 뭔가를 요구해. 들어 줄 수 있는 것은 수락해 줄 테니. 그것만으로도 눈속임정도는 될 거야.’

 

 

 맞아, 사랑에 빠진 연기를 하려면 이름정도는 불러줘야 하지 않겠어?

 

 

 “아카드……아카드……아카드…….”

 

 

 그녀가 다시 읊어대도, 그는 미간에 힘을 준 채, 전개도를 살필 뿐이었다.

 

 

 “거대한 신화가 담긴 고대 왕족과 문명을 담은 이름이잖아요. 부를 때마다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는 느낌이에요.”

 

 “어느 섬나라에선 잔혹한 흡혈귀 이름이라지.”

 

 

 아카드가 초를 쳤다. 침묵으로 일관하다 간간히 내뱉는 말들이 이 모양이었다.

 

 세라가 째려보았다.

 

 그래도 그녀는 행복했다. 둘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가다니.

 

 그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이 상태가 달콤한 꿈처럼 만족스러웠다.

 

 전쟁만을 생각하고 계획하고 준비하는 냉기 가득한 그가, 그의 가시권 안에서 그녀를 봐주는 그의 방식에 흡족했다.

 

 한참 그를 쳐다보고 있으니, 그녀는 실험을 하고 싶었다.

 

 이왕 요구하는 김에 사심을 왕창 넣어 보기로 했다.

 

 상대방이 무방비일 때 공격하고 들어가면 없던 승산이 조금이라도 생긴다고 그가 말하지 않았는가?

 

 

 “아카드?”

 

 

 시작은 아무렇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이름을 불렀다.

 

 

 “주방장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이던데 제가 저녁을 준비해도 될까요?”

 

 “……당신이 먹고 싶은 것을 주방장이 안 해 주나?”

 

 

 터무니없는 그의 반응에 말문이 잠시 꼬였지만 실험의 끝을 봐야하니까.

 

 

 “아니, 그저……나는……당신을 위해 요리 좀 해 볼까 해서…….”

 

 

 아카드의 눈이 도면 위에서 멈췄다. 잠시 후,

 

 

 “좋을 대로 해.”

 

 

 세라의 만면에 기대에 찬 미소가 번졌다가 다음 말에 이내 사라졌다.

 

 

 “냉정한 평가를 받을 준비가 됐다면.”

 

 

 그녀가 요리에 있어선, 남들이 보통으로 지닌 재주를 눈꼽 만큼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하는 소리인지.

 

 

 “알았어요.”

 

 

 심드렁해진 대답이었다.

 

 

 “준비해야 하니까……이따 봐요. 아카드.”

 

 

 풀 죽은 모습으로 일어나 방을 나왔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문을 닫았다. 복도에서 소리 없이 작게 만세를 외치며 기습적으로 한 전초전의 승리감에 도취되었다.

 

 

 ‘영주님’대신에 그의 이름을 두 번이나 불렀다.

 

 

 본격적인 전투를 위해 전의를 불태우며 주방으로 향했다.

 

 대기 중이던 경호기사들이 조용히 그녀를 뒤따랐다.

 

 주방 일꾼들의 도움을 받아 밀가루를 뒤집어쓰면서 준비한 요리는 고기완자를 곁 드린 야채 셀러드와 버섯스프였다.

 

 비장하게 계획한 메뉴였는데 다 완성하고 나니 누구나 할 수 있는 흔한 요리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과정이 복잡하고 까다롭게 느껴지는지. 이런 요리를 매일 같이 해야 하는 사람들이 대단하게 여겨졌다.

 

 맛은 탁월하지 않지만 도움을 받아, 먹을 만했으니 냉정한 비평이 있은 후 배는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개인 소지품을 몇 가지 받았기에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그와 함께하는 식사는 이제 예사로운 일이 되었으나, 그녀가 그만을 위해 요리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한 사람만을 위해 요리한 기억이 없었다. 아론에게도 하지 못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곱게 머리를 빗고, 하사품들 중에서 찾은 작은 호박석 장식의 핀을 꼽았다. 따뜻한 빛깔의 황갈색 벨벳 드레스와 어울리는 장식이었다.

 

 거울 속의 자신에게,

 

 

 “아카드, 오래 기다렸어요? 아카드, 맛이 어때요? 아카드, 당신 이름을 부를 수 있게 해주세요.”

 

 

 세라는 승리감에 키득거리며 진정시키기 위해 달아오르는 얼굴에 손부채질을 했다.

 

 아카드의 허락이 없었지만 이미 두 번이나 이름을 불렀다. 이 정도면 거의 확정인거지.

 

 물론 구렁이 담 넣어가듯 슬쩍 끼워 넣었긴 했지만. 식사를 하면서 좋은 분위기에 다시 한 번 쐐기를 박을 참이다.

 

 

 “카라스 영주님………………은 미치광이.”

 

 

 아무리 불러 봐도 미치광이가 꼬리처럼 입에 따라 붙었다. 고개를 설레설레 저였다.

 

 

 

 

 *

 

 

 

 

 아카드는 영주의 전용 식당에 이미 와 있었다.

 

 늘 그렇듯 그녀의 외모를 꾸미기 위한 수고에 놀라는 기색도, 칭찬하는 말도 없이 앉아서 그녀를 기다릴 뿐이었다.

 

 차분하게 착석하는 세라을 응시하다 머리핀에 시선을 두었다.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눈에 거슬리는 걸까?

 

 말로 하지 않는 이상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물었다.

 

 

 “어울리나요?”

 

 “…….”

 

 “이 핀 말이에요.”

 

 “알아. 뭘 묻는지. 그래, 분명 지금 네 모습과 잘 어울려.”

 

 “고마워요.”

 

 

 세라는 생긋 웃었다.

 

 

 “하지만 우리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아.”

 

 “……네?”

 

 “너나 나나 황제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데 그가 보낸 작은 하사품 하나에 기분 좋아진다는 게 거슬려.”

 

 “……그렇군요.”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핀을 뺄까요 그대로 둘까요?”

 

 

 세라의 질문에 그의 눈이 순간 흔들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까?

 

 절대로 동요를 보이지 않는 저 눈이 무얼 떠 올린 건가?

 

 

 “내가 시키는 대로 할 텐가?”

 

 

 호박석 핀 문제만을 의미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그의 직시하는 눈을 보며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일단 식사부터 하지.”

 

 

 그가 화재를 돌렸다.

 

 식탁에 세라가 요리한 요리들이 세팅되기 시작했다. 맛은 보장할 수 없었지만 보기 좋은 떡이 되게 하는 것은 자신 있었다.

 

 커다란 백색 접시 위에 요리를 담고 주변을 장식하는 허브와 소스가 단순한 풍경화처럼 정교하면서도 시원스럽게 펼쳐졌다.

 

 호수 위해 한가로이 떠 있는 배와 낚시꾼.

 

 

 “누군가 단 한명, 그것도 남자……를 위해서 처음 요리했어요.”

 

 

 이런! 유치한 사랑 고백이 되어 버렸다.

 

 

 “맛있게 드세요.”

 

 

 이사벨라의 조언이 세라에게 무한한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있었다.

 

 

 ‘그러니까……이런 큰 희생을 치른 아카드 앞에서 자존심 챙기고 신분 따질래? 그냥 좋다고 매달리고 응석부리는 게 답이야. 정 귀찮아지면 그가 알아서 피해.’

 

 

 그래도 사랑에 빠진 수줍은 여자의 모습은 스스로도 민망스럽다.

 

 하지만 어찌할 수가 없었다. 제어가 안 되니. 늦사랑이 이리도 철부지 같을 줄이야.

 

 이런 자신을 타박하지 않고 봐주는 아카드가 미치도록 좋았다.

 

 소박한 요리, 그러나 예술이 담긴 접시를 내려 본 후, 그가 포크를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입맛에 맞을까? 바로 뱉어내는 건 아닐까?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것 같아, 잔을 들어 입에 대었다. 톡 쏘는 발효된 과일음료 향이 갈증을 채워주었다.

 

 신선한 과일을 구하기 힘든 곳이라 즙을 짜서 발효된 상태로 본토에서 오고 있었다.

 

 세라는 처음 그것을 경험하고 있었다. 첫 맛에 미간을 찌푸렸지만 입안에 채워지는 향과 목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자기가 먹고 싶은 요리한 거 맞군.”

 

 “……입맛에 안 맞나요?”

 

 “주방장이 완자요리는 손이 많이 가니 잘 하지 않지. 남쪽에서는 흔한 요리겠지만 이곳에선 전쟁터인 만큼 빨리 요리해서 먹고 치우기 바빠. 이런 요리는 사치니까.”

 

 “그래서…… 맛있다는 거예요 없다는 거예요?”

 

 

 세라는 새초롬하게 자신의 요리를 응시했다.

 

 갈수록 태산이었다. 내가 이런 표정을 하다니. 십대들이나 하는 표정을.

 

 금세 입이 말라 버리고 말았다. 잔을 들어 목을 적시는데,

 

 

 “맛있어. 식감, 향, 색. 다 좋아.”

 

 

 그녀의 환한 미소가 번져가는 것을 보면서 그의 칭찬이 계속 되었다.

 

 

  “처음 한 솜씨라고 믿기 힘들 정도.”

 

 

 믿겨지지 않았다. 그한테 이런 칭찬을 듣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특히 요리하는 사람의 요구가 분명해서 마음에 드는군.”

 

 “……?”

 

 “여기 낚시꾼은 당신인가?”

 

 

 세라는 미소를 지었다.

 

 

 “이 요리는 미끼겠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미끼를 물었고. 자 그러면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세라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로서도 뭐가 물려 따라 나올지 알 수가 없었다.

 

 세라는 낚시꾼.

 

 고기 완자는 미끼.

 

 아카드는 미끼를 문 붕어.

 

 

 “작은 피라미나 붕어 따위가 올라 와도 만족할 줄 아는 낚시꾼은, 한 끼 허기진 배만 채우면 된다고 생각 하겠지. 그 낚시꾼이 알기론 그 호수에 붕어가 제법 먹음직스럽지.”

 

 

 그녀의 입은 호선을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축하는 기분으로 잔을 또다시 들이켰다.

 

 그녀가 접시를 꾸미면서 생각한 이미지를 그가 제대로 해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성들인 요리에 그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도록 정식으로 허락해 줄지도 몰랐다.

 

 

 “그런데 말야. 호수에는 붕어만 사는 게 아니지. 어디선가 흘러들어 온 희귀한 종이 커가면서 저보다 몇 배 큰 놈들을 하나씩 하나씩 잡아먹기 시작했어.”

 

 

 세라의 미소가 갑자기 어색하게 걸린 채 정지했다. 세라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제발, 아카드. 좋은 분위기, 망치지 말아요.”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 중요한 말이야.”

 

 

 어련하시겠어요.

 

 

 “희귀종 물고기는 물고기들을 다 잡아먹고 혼자 남았어. 며칠 째 텅 빈 호수를 어슬렁거리는데 낚시꾼이 배를 띄운 거지.”

 

 

 세라의 미간이 구겨졌다. 결국 괴물 고기한테 낚시꾼이 당했다는 결말일 것이다.

 

 젠장. 눈치 빠른 그는 그녀가 이름을 부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참인 것이다.

 

 좀 더 거리를 좁히고 싶던 그녀의 계획이 무산 될 참이었다.

 

 잠깐, 그저 무산되기만 하면 본전이지만 괴물 물고기가 낚시꾼을 잡아먹는 설정이라면?

 

 아카드의 숨은 꿍꿍이가 있는 것이다. 이참에 그녀에게 뭔가 큰 선전포고를 하지 않을까 싶어 기분이 급 하강하였다.

 

 전초전은 좋았는데 적이 수를 꿰뚫고 있다면 전세는 뒤집힐 수밖에.

 

 

 ‘내가 시키는 대로 할 텐가?’

 

 

 식사 전에 했던 그의 질문이 재해석되었다.

 

 불길한 예감에 그녀는 발효음료를 벌컥벌컥 마셨다.

 

 

 “젠장! 아카드. 하다하다 이젠 물고기한테 잡아먹히는 신세까지 돼야 해요?”

 

 

 탕! 잔을 내려놓았다. 알딸딸한 기운을 빌어 따졌다.

 

 

 “제가 물고기 밥이 되는 얘기를 끝까지 듣고 앉아 있을 줄 알아요? 힉끅.”

 

 

 딸꾹질이 났다.

 

 

 “힉끅, 좋아요. 내가 졌어요. 어떻게 할까요? 힉끅, 시키는 대로 할 거냐고 물었죠?”

 

 

 아카드는 입을 다물고 그녀와 잔을 차례로 응시했다.

 

 세라는 머리에 꽂은 호박석 핀을 거칠게 빼어 식탁 위에 내동댕이쳤다. 정성스레 빗은 머릿결이 헝크러졌다.

 

 

 “자, 황제의 하사물인 이 핀 뺐어요. 또 뭐? 말해요. 시키는 대로 한다고 했으니까. 이 핀처럼 당신의 방에서 빠져주는 거? 좋아요. 당장 짐 싸죠. 힉끅, 아니다 내 것인 게 어디 있었나, 빈손으로 나가야 맞는 거지. 그래도 외투 한 벌은 걸치도록 해주겠지. 힉끅.”

 

 

 그녀가 자신 앞에 놓은 요리를 보며 숨을 몰아쉬었다.

 

 

 “빌어먹을 완자 요리. 괜히 낚시질하는 그림을 그려서.”

 

 

 그녀는 접시를 집었다. 엎어버리기 직전이었다.

 

 

 “원래 인내심이 이 정도야? 아니면 더 이상 귀족이 아니라고 막 행동하나?”

 

 

 아카드의 표정 없는 시선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도 아니면, 사랑에 눈 먼 여자의 앙탈인가?”

 

 

 내가 지 좋아하는 거 알면서…… 울고 싶다, 힉끅.

 

 

 “둘 중 하나 선택해. 이대로 저 문을 나가서 내가 하려던 얘기를 영원히 듣지 못하던가, 아니면 내 얘기 끝까지 듣고 내 질문에 답하고 나가든가.”

 

 

 알딸딸한 상태지만 그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중요한 이야기라고 했다.

 

 비련의 여자라도 끝은 추잡스럽지 말아야 하는데 아무래도 이 주스가 화근이었다.

 

 세라는 접시에서 손을 떼고 무릎에 두 손을 모으며 심호흡을 했다. 힉끅.

 

 아카드는 잠시 세라를 살핀 후, 얌전히 앉아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당신의 상태를 봐서 말놀이는 그만 해야겠군. 꽤 흥미로웠는데.”

 

 “힉끅.”

 

 

 절묘한 타이밍에 나온 딸꾹질에 세라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입술을 깨물면서 참았지만 표정 없이 응시해 오는 아카드의 시선에 피식, 피식, 피식 연달아 새어나왔다.

 

 웃기지도 않은데 왜 이렇게 우스운지.

 

 그의 표정은 절대 웃긴 표정이 아닌데.

 

 나 취한거야? 주스 먹고 취한거야?

 

 멀쩡한데.

 

 자꾸 우스운 걸까? 아까는 막 짜증이 나더니 이제 우습다.

 

 간신히 웃음을 가두고.

 

 안 돼! 안 돼!

 

 그녀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뺨을 두드렸다.

 

 

 “들어야 돼. 들어야 돼. 중요하다잖아. 영원히 못 듣는다잖아. 영원히…….”

 

 

  갑자기 가슴을 손바닥으로 지그시 눌렀다.

 

 

 “영원히? 그 말은 내겐 가슴 아픈 말이지. 영원히 못 듣고, 못 보고.”

 

 “세라, 당신 오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느라 아주 바쁜 건 알지만, 나는 말을 끝내야겠어. 다 듣고 이해 못해서 밤새 곱씹어 보든 몇날 며칠 궁리를 하던 그건 당신 몫이야.”

 

 “힉끅.”

 

 

 그의 미간이 구겨졌다. 세라가 스스로 진정시키는 것을 확인하고 말을 다시 시작했다.

 

 

 “당신은 정확히 허락 없이 다섯 번 내 이름을 불렀어. 집무실에서 두 번, 여기서 세 번.”

 

 

 올 것이 왔다. 세라의 몸이 나무토막처럼 굳었다.

 

 다 세고 있었던 거야. 한 번, 두 번……다섯 번, 이렇게 속으로 손가락을 꼽아가며.

 

 

 “날 위해 요리하겠다는 시도가 가상해서 봐주기로 했지. 그리고 요리를 보고 요청을 들어 주기로 했어.”

 

 

 수가 읽혔구나. 역시 아카드는 몸만 빠른 게 아니었어. 눈치도 빨라.

 

 아무렴 어때? 이름을 부르게 해준다잖아. 그걸로 우리 사이는 진일보 아닌가.

 

 세라가 방긋방긋 웃었다.

 

 

 “조건이 있어.”

 

 

 조건?

 

 

 “서로 이름을 부르는 사이라면, 좀 더 친밀하다는 뜻이지. 안 그래?”

 

 

 그의 눈빛이 야릇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세라는 그 눈빛에 홀리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서로의 마음이 친밀해지길 바라지. 나는 서로의 몸이 친밀해지길 바라고.”

 

 “…….”

 

 “낚시꾼이 나를 잡아먹든, 내가 낚시꾼을 잡아먹든. 어느 쪽이라도 난 상관없어.”

 

 “……?”

 

 “둘이 만족할 만한 접점은 합의 된 교합뿐이야.”

 

 

 세라는 멍하니 그의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해가 될 것 같으면서도 안개 속에 나열 된 말처럼 뒤죽박죽 명확하지 않았다.

 

 마음이 친밀해지고 몸이 친밀해지고……나쁜 뜻은 아닌 것 같은데,

 

 낚시꾼? 그건 나잖아. 내가 그를 잡아먹어, 그도 나를 잡아먹고?

 

 이 말은 서로 죽도록 싸우자는 뜻? 싸우면 그가 훨씬 유리하잖아, 나는 검도 들 줄 모른다고!

 

 나는 마음으로만 싸우고 그는 몸으로 싸우겠다는 거야?

 

 우씨! 저는 한 대도 맞지 않고, 나만 실컷 패겠다는 뜻? 이건 완전 불리한 싸움이잖아. 비겁한 쒜끼.

 

 

 “즉시 답을 들으려 했지만 당신 표정 보니……오늘은 안 되겠군.”

 

 

 그가 냅킨에 손을 닦고는 일어섰다.

 

 

 “취하면 멍청해 진다는 사실, 당신의 잠버릇 못지않게 충격적이군.”

 

 

 그가 식당을 나갔다.

 

 문 밖에서 기다리던 경호기사들이 식당 안으로 들어가려하자, 그는 다시 몸을 돌렸다.

 

 제 정신이 아닌 그녀를 다른 남자들 틈에 남겨 둘 수 없었다.

 

 성큼성큼 들어와 여전히 허공을 응시하며 눈을 굴리고 있는 그녀를 번쩍 안아들고 식당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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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회상 - 나, 깨끗한 남자입니다! 2017 / 7 / 24 260 0 6040   
42 회상 - 소년에서 남자로 2017 / 7 / 24 278 0 5749   
41 새로운 신부감을 찾아 줄 텐가? 2017 / 7 / 24 264 0 6785   
40 내 여자 덕에 산 줄 알아 2017 / 7 / 24 261 0 7563   
39 네가 자백하면, 열 한명이 살아 2017 / 7 / 24 265 0 7165   
38 이름 부르고 싶어? 조건이 있어. 2017 / 7 / 22 278 0 7850   
37 걸어다니는 병기도서 2017 / 7 / 22 293 0 6664   
36 똑같이 그려봐. 2017 / 7 / 22 296 0 8073   
35 에라, 꼬추나 떨어져라! 2017 / 7 / 22 258 0 5699   
34 회상 - 늑대가 보여 준 고독의 무게 2017 / 7 / 22 250 0 6090   
33 회상 - 벼랑 끝, 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순간 2017 / 7 / 22 255 0 6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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