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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천사는 울지 않는다
작가 : 소설부부
작품등록일 : 2017.7.15

영겁의 세월동안 고독과 마음의 평온만을 추구하던 천사 프라.
그가 복잡한 관계로 뒤얽힌 지구의 삶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

...팽팽한 긴장의 줄을 싹둑 잘라 먹었다.

모두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라는 잔뜩 힘주어 숨을 참고 있던 참이었었다.

에이씨. 지지려면 빨리 지질 것이지. 할랑 말랑 하는 게 더 고문인 거 모르나.

키가 보통 명마보다 큰 흑마는 구경꾼들을 당당하게 가르고 장교 앞에까지 왔다.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검은 후드망토를 길게 늘어트린 존재가 말 위에 앉아 있었다.

 
똑같이 그려봐.
작성일 : 17-07-22 16:08     조회 : 295     추천 : 0     분량 : 8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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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같이 그려봐.”

 

 

 할리 부인을 따라 영주의 집무실에 불려간 세라에게 이사벨라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사벨라의 적의에 찬 눈이 세라를 면밀히 훑고 있었다.

 

 

 ‘겨우 이정도야?’라는 냉소가 그녀의 입가에 걸렸다.

 

 

 아가야, 너 같으면 벌써 폭삭 삭았단다. 나나 되니까 이정도 유지한 거야.

 

 세라는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표독스런 이사벨라의 눈을 피하지 않고 받아냈다.

 

 그렇다고 상상했던 것처럼 여우상은 아니었다. 여우상 하면 오히려 세라가 더 가까웠다.

 

 이사벨라는 집시의 자유분방한 몸놀림과 귀족의 이지적인 눈빛을 가진 강인한 영혼의 소유자임을 세라는 느낄 수 있었다.

 

 아카드의 강한 기운에도 기죽지 않는 당찬 여전사 같은 매력이 세라의 상상과 많이 달랐다.

 

 어떻게 해서 아카드의 독을 견뎌낼 수 있게 된 걸까?

 

 어제 그에게 묻고 싶었지만 자존심에 충분히 금이 간 상태였기에 더 이상 비참해 지기 싫어 이사벨라에 대한 질문은 일체 하지 않았다.

 

 아카드는 책상 위의 도면들을 살피고 있었고, 그의 수행기사 두 명, 다른 기사 세 명이 지켜보고 있었다.

 

 

 “너도 한 때 귀족이었으니, 그림교육정도는 받았겠지? 어서 시작해.”

 

 

 이사벨라의 요구에 아카드를 쳐다보니, 그가 세라를 보고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라는 테이블 끝 쪽에 자리를 잡고 도면을 살폈다. 흔한 철제 석궁을 그린 설계도였다.

 

 책상위에 놓여 있는 종이와 펜을 들어 그것을 똑같이 그려내기 시작했다.

 

 그가 허락한 일이니 나중에 이일로 그녀의 뒤통수를 치진 않겠지.

 

 회의용 긴 테이블에 모여 있는 그들은 긴 실랑이를 벌인 뒤인지, 아침인데도 표정들이 지쳐있었다.

 

 특히 아카드는 밤새 한 숨도 못 잔 것 마냥, 눈에 핏발이 서 있고 평소보다 더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

 

 항상 세라보다 먼저 일어나 사라지고 말아서 늦잠 자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밤에도 내가 먼저 곯아떨어지니 잠든 모습 자체를 본 적이 없네.

 

 

 “주군, 벨루스 성주의 방문 요청을 계속 무시하실 작정입니까?”

 

 “엄살이 심하긴 해도 주군 말이라면 죽는 시늉도 하지 않습니까.”

 

 “왜들 이래요? 영주께서 가지 않는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요.”

 

 

 이사벨라가 나섰다.

 

 

 “그자는 뭔가 꺼림 찍한 구석이 있다고요.”

 

 “그렇다고 계속 무시하면 황제 쪽으로 돌아서면 어쩌려고요. 벌써 네 명의 성주들의 목을 직접 베셨습니다. 더 이상의 손실을 막으셔야 합니다.”

 

 

 성주들의 목을 베었다고?

 

 세라는 그 말에 잠시 펜을 멈추고 그를 봤다.

 

 그래, 그는 사람을 죽이는 무서운 사람이었지.

 

 내 목도 상황에 따라 충분히 베고도 남겠지.

 

 세라는 자신의 목을 어루만졌다.

 

 이 목이 오래오래 붙어 있으려면 조심 또 조심 해야겠지.

 

 다시 한 번 그가 얼마나 잔혹한 존재인지 되뇌는 순간, 아카드가 그녀의 시선을 느꼈는지, 눈을 들어 홍안을 응시했다.

 

 피로한 눈이, 목을 더듬고 있는 그녀에게 뭔가를 갈망하듯 강렬했다.

 

 감정 같은 것 못 느낀다고 했으면서…… 왜 저런 눈빛을?

 

 세라는 후끈, 올라오는 열기에 당황해서 그의 눈을 피해 도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내가 요상하게 생각을 하는 걸까, 저 사람이 요상한 걸까?

 

 생각를 털고, 다시 복사에 집중했다.

 

 

 “이번 병기도서가 완성 되는대로 전해 줄 겸, 다녀오도록 하지.”

 

 

 정확하고 깔끔한 중저음에 세라의 심장이 부르르르 진동했다.

 

 그녀의 심장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아카드라면 좋아 죽나보았다.

 

 

 

 *

 

 

 

 “세상에!”

 

 

 집무실에 모인 사람들은 세라가 그려낸 도면을 보고 하나같이 같은 반응이었다.

 

 

 “완전 똑같습니다. 주군.”

 

 “게다가 속도도 빠릅니다. 익숙해지면 더 빨라지겠는데요.”

 

 

 아카드의 수행기사 야쿠와 발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사벨라는 그런 반응들이 탐탁지 않은 표정이지만, 기사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아까도 말씀 드린 것처럼, 비밀 유지가 관건인지라, 다시 한 번 검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발도르, 이미 결정 한 사항이니 계속 진행한다. 이만 해산.”

 

 

 기사단장인 발도르는 여전히 석연치 않은 듯 미간을 구긴 채로 명을 받아들였다.

 

 기사들이 움직이자 세라도 일어섰다.

 

 

 “하사품, 너는 얘기 안 끝났어.”

 

 

 이사벨라의 말에 세라가 아카드를 쳐다보니,

 

 

 “앉아.”

 

 “제법이네. 귀족영애라 해도 건성인 애들이 대부분인데 악착같이 했나봐?”

 

 

 세라의 그림을 보며 이사벨라 말했다.

 

 악착같이?

 

 

 “악착같이 한 기억은 없고……열심히, 꾸준히, 공들여, 정성을 다해, 집중적으로 했습니다.”

 

 

 좋은 표현도 많은데, 어휘력이 딸리니?

 

 도로 앉으며 내뱉는 세라의 대답에 그녀의 한 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마치 ‘요것 봐라.’라는 듯.

 

 

 “이것들은 새로 개발 될 신무기 5개의 도면이다.”

 

 아카드가 바로 끼어들어 도면들을 세라 앞에 펼쳤다. 언뜻 봐도,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형태들이었다.

 

 

 “각각 50부가 필요해. 총 250장을 그려야 한다. 얼마나 걸리겠는가?”

 

 “저 혼자서요?”

 

 “보안 유지를 위해서 어쩔 수 없어.”

 

 “첩자로 몰리는 마당에, 저한테 시킬 일은 아니지 싶은데요.”

 

 “야! 하사품. 영주님이 시키면 할 것이지. 어디서 건방 떨고 있어!”

 

 

 예절교육을 받지도 못한 개망나니처럼 한 대 쳐 올리기라도 할 듯, 이사벨라가 손을 치켜 들었다.

 

 

 “이사벨라!”

 

 

 아카드가 저지했다. 묵직한 강철 검처럼, 목소리만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듯 찍어 눌렀다.

 

 이사벨라가 씩씩대며 의자에 등을 기대는 순간,

 

 

 “이미 넌 도면을 봤다. 못하겠다면 이 자리에서 죽는다.”

 

 “……네?!”

 

 

 봤으면 얼마나 봤다고. 걸핏하면 죽인다고 협박이나 하고. 그녀보고 살 궁리하라고 한 게 바로 어제, 만 하루도 안 되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이사벨라가 득의양양해서 히죽거리며 세라를 노려보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술, 음악, 문학, 다 때려치우고 싸움이나 악착같이 배울 걸.

 

 잘 못 덤볐다가 뼈도 못 추릴 것 같은 드센 이사벨라 보다, 당장 죽이겠다고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아카드 머리를 쥐어 박아줬으면 싶었다.

 

 

 “그려봐야 알 것 같습니다.”

 

 

 화를 내봐야 먹히지도 않는 상대를 대상으로 무슨 소용일까. 세라는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대답했다.

 

 몇 분전 까지만도 야릇한 눈으로 응시하던 그가 지금은 차갑게 그녀를 읽고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해.”

 

 “250장 다 그리고 나면, 저는 죽는 건가요?”

 

 

 세라가 도면을 응시한 채 물었다.

 

 꼴도 보기 싫은 얼굴!

 

 

 “무기완성까지 비밀유지가 된다면 널 첩자로 확신하던 자들이 재고해 볼 여지가 생기지.”

 

 “감시자는 하나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집중에 방해될 것 같은데.”

 

 

 세라는 이사벨라를 쳐다봤다.

 

 

 “그 요청은 불가 한다. 이사벨라는 이 무기들의 개발자로, 네가 그린 도면에 오차여부를 검열해야 하니까.”

 

 “그래, 내가 혼자 다 만들었어. 네가 팔자 좋게 그림이나 끄적거리는 동안, 어떻게 하면 한꺼번에 많이 죽일까만 연구했지. 열심히, 꾸준히, 공들여, 정성을 다해, 집중적으로.”

 

 

 세라가 사용한 표현을 그대로 인용했다.

 

 얘가 무기 개발자?

 

 이 신무기들을 혼자서?

 

 

 세라는 이사벨라를 다시 봤다. 몸 쓰는 거에만 특출 날 것 같은 외모를 재평가해야 했다.

 

 

 “여기서 사람들이 죽고 사느냐의 문제로 매순간 고민할 때, 너는 마사지 받고, 차 마시고, 춤추고 어떻게 하면 예뻐 보일까나 신경 쓰며 살았겠지. 그렇게 사는 게 사람다운 건가, 짐승들도 그런 건 할 수 있잖아.”

 

 “생명을 죽이는 일엔 관심 없어서. 차라리 먹고 자고 딩굴며 사는 게 백배 천배 낫지, 죽일 연구만 하면서 살바엔.”

 

 “터진 입이라고 막 놀려!”

 

 

 쿵! 아카드가 책상을 내리쳤다.

 

 

 “이사벨라, 너 나가 있어. 다 되면 부를 테니까.”

 

 “조용할게요.”

 

 

 바로 꽁지를 내리는 모습이 그의 말이라면 자존심이고 뭐고 없는 얘였다.

 

 

 

 *

 

 

 

 5시간 경과.

 

 점점 속도가 늘 긴 했으나 지금까지 2장을 그려냈다.

 

 긴 관이 앞쪽에 3열로 10개씩 박혀 있는 상자형태 모양이었다. 안의 내부형태와 세밀한 부품들도 따로 그려내고 있었기에 시간이 예상보다 더 소요되고 있었다.

 

 아카드가 자리를 비울 땐 수행기사 중 한 명이 들어왔다.

 

 첩자짓을 할까봐 세라를 감시하는 걸까, 세라한테 해코지할까봐 이사벨라를 감시하는 걸까?

 

 이사벨라는 다혈질 치고는 또 진득한 구석도 있었다. 세라가 그리는 동안은 일체 시비를 걸지 않았다.

 

 간단한 샌드위치가 수행기사 발락의 손에 들려왔다.

 

 

 “먹고 합시다. 숙녀분들.”

 

 

 세라는 그제야 펜을 놓았다.

 

 발락이 세라의 집중력에 혀를 내두르는 표정이었다.

 

 아카드는 계속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10시간이 지났을 때 같은 도면 6장이 완성되었고 이사벨라가 두 개의 오류를 지적하여 수정했다.

 

 뻐근한 목과 어깨를 돌리고 있으니, 아카드가 그제야 코빼기를 보였다.

 

 

 “아카드, 어디 갔다 이제 와요.”

 

 

 이사벨라가 쪼르르 달려가 그에게 매달렸다.

 

 살벌한 여전사의 포스는 어디가고. 그녀는 순간순간 자기가 내키는 대로 행동하며 다른 눈들이 있든 없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단칼에 쳐내지 않는 그의 저의는 뭘까? 무기 개발자라 참아주는 건가? 그럭저럭 마음이 동하는 걸까?

 

 저렇게 달라붙어 있으니 신경 쓰일 수밖에 없잖아.

 

 이사벨라를 붙여 둔 채로 아카드가 세라가 그린 도면을 확인했다.

 

 

 “오늘은 이쯤해서 마무리 한다.”

 

 “아카드.”

 

 

 이사벨라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러면서 세라를 응시하는 눈이 가증스러웠다.

 

 이사벨라의 속삭임을 듣고 그는 잠시 들고 있던 도면에서 눈을 떼어 허공에 머물더니,

 

 

 “발락, 세라 파갈을 방에 데려다 줘라.”

 

 

 둘이 뭐하려고?

 

 

 

 *

 

 

 

 머리만 대면 잠에 빠져드는 세라였지만, 그가 아직도 이사벨라와 함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정신이 말똥말똥해져 갔다.

 

 밤이 깊어 가는데 대체 둘이 뭘 하는 거야?

 

 결국 그녀도 모르게 내려온 눈꺼풀을 뜨니 아침이 되고 말았다. 그의 침대는 사용한 흔적 없이 말끔하기만 해서 세라는 도로 베개에 얼굴을 묻어 버렸다.

 

 사랑에 빠진 척 하자면서 다른 여자와 외박이나 하고!

 

 

 

 **

 

 

 

 아카드는 그녀를 집무실에 이사벨라와 발락을 함께 박아 두고 둘째 날부터 카라스 성을 떠나 있었다.

 

 그녀한테 어디 간다 언제 온다라는 말도 없이, 외박한 채로 가버려 마음이 더 심란했다.

 

 이럴 때일수록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빨래는 단지 몸을 사용하는 일이라 문득문득 상념들이 비집고 들어올 수 있지만, 지금하는 작업은 완벽하게 딴 생각들을 차단시켜 주웠다.

 

 세라가 잠시 쉬는 틈을 타 ,

 

 

 “하사품, 너 머리 진짜야? 다른 색으로 염색해!”

 

 

 이사벨라가 도발해 들어올라치면, 바로 도면으로 시선을 옮기고 일을 시작해 버렸다.

 

 

 

 복사 6일째,

 

 

 

 첫 번째 도면 50장을 끝내고 나니, 눈 감고도 그려낼 정도로 머릿속에 박혀 들어갔다.

 

 새로운 도면을 받고 보니 이것 또한 관이 장착 된 무기였다. 이전 것과는 달리 굵고 긴 관은 크기가 굉장한 것이었다. 대체 어떻게 작동 되는 무기들일까?

 

 식사 때,

 

 

 “하사품, 넌 어디까지 갔어?”

 

 “가다니 어딜요?”

 

 “몰라서 물어? 영주님이랑 어디까지 했냐고!”

 

 

 세라는 다시 도면을 앞으로 당겨 펜을 들었다.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니구나! 그럴 줄 알았어.”

 

 

 저 짜증나는 질문들 지긋지긋하다. 빨리 끝내고 세탁방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그래……아무사이도 아닌 게 짜증나.

 

 약혼자나 남편이라면 손톱이라도 세워 자존심이고 뭐고 팽개치고 확 달려들 텐데.

 

 

 23일 경과.

 

 

 이사벨라의 막무가내씩 질문도 조금씩 대화라는 형태로 진일보 했다.

 

 

 “너, 여기 오기 전에 뭐 했어? 내 말은 단순히 띵가띵가만한 귀족영애는 아닌 것 같은데.”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전쟁으로 혼자가 된 아이들.”

 

 

 이사벨라도 세라를 재평가하는 눈이었다.

 

 

 “여기만 전쟁이 난무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사품, 어떻게 해서 독에 내성을 가진 거야?”

 

 “첫 제자를 지키려고 같이 독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은요?”

 

 “몰라서 물어? 아카드의 여자가 되기 위해 5년 전부터 시작했어.”

 

 “왜 아무도 모르게 했나요? 황제가 알았다면 나도 여기 올 필요 없었을 텐데.”

 

 “그러게 말야. 젠장! 아카드가 발설하면 날 죽이려는 자들이 몰려들거라고 하는 바람에. 그의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어.”

 

 “…….”

 

 “나 말고도 꽤 될 거야. 여기 카라스에 사는 여자들이 좀 적극적인편이지.”

 

 “수동적이지 않고 좋아 보여요. 개인적으로 부럽기도 하고.”

 

 “부러워? 자존심 때문에 감정을 숨기는 것이 숨막힐 노릇이지?”

 

 “예전엔 자존심이 족쇄였지만 지금은 신분이 족쇄가 됐죠.”

 

 “아카드는 신분 안 따져. 기사단장 발도르, 약방 책임자 브르노, 할리. 모두 여기로 끌려온 노예들이었어.”

 

 

 세라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노예였다니.

 

 

 “카라스 사람 대다수가 노예로 끌려 온 선조를 두고 있어. 나 역시 그렇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이 순탄했을까? 원하지 않는 곳에 끌려와 무시무시하고 잔혹한 족속을 상대로 끊임없이 싸워야 했지.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생존해가며 겨우 일군 터전을 황제는 저들과 나눠 가지라는데 누가 받아들일 수 있겠어. 공생? 공존? 그것은 황제의 머릿속에만 있는 환상이고 꿈일 뿐이야. 말코족들을 몰라서 그렇지.”

 

 

 둘의 마음은 숙연해졌다.

 

 

 

 

 **

 

 

 

 

 29일 경과. 복사 마지막 날.

 

 

 

 250장. 다섯 가지 신무기 도면의 복사본을 다 그렸다. 형태, 수치, 부품들에 이르기까지 고스란히 암기되고 말았다.

 

 손가락 마디마디 작은 관절부터 해서 온 몸이 쑤셔왔다. 눈의 피로가 가장 커서 한참을 손바닥으로 누르고 있었다.

 

 이사벨라는 세라가 그린 마지막 도면을 검토하고는 내려놓았다.

 

 

 “여기 사람들이 카라스 가문을 신처럼 섬기는 이유가 뭔지 알아?”

 

 

 센 기운이 사그라진 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지친 듯 늘어졌다.

 

 

 “그들은 자기가 가진 최강의 힘을, 스스로를 위해 사용한 적이 없어. 오로지 여기 갇혀 사는, 황제에 의해 죄인이 되어 노예로 온, 우리들을 지키기 위해서만 사용하지.”

 

 “…….”

 

 “그들이 싸워주지 않으면 우리가 죽으니까.”

 

 “…….”

 

 “화족이라며 여자가 시키는 대로, 말 잘 듣는 전투병기로 전락하게 만든 건 황제들의 농간일 뿐이야. 아카드도 사랑하는 여자를 포기했어, 여기를 지키려고. 그런데 사람들의 표현이 어떻게 맞다 할 수 있어. 그 여자는 임신까지 했었는데.”

 

 

 세라의 얼굴이 납덩이처럼 굳었다.

 

 

 “아카드의 부탁으로, 우리 아버지가 마차사고로 가장해서, 그 여자를 그 지옥 같은 곳에서 탈출시켰어. 거의 30년 전 일이지.”

 

 

 바네사의 말이 떠올랐다.

 

 

 ‘한 명 있었다고 들었어. 35살쯤 되었을 때 드디어 하나 만났는데 얼마가지 않고 죽었다나봐.’

 

 

 “뱃속의 아기가 아들일 확률이 컸지. 아내도 화족이었거든. 화족여자들과 결혼하면 첫 아이를 대부분 아들을 보게 돼. 아카드의 부인은 자기 아들이 남편처럼 전쟁에 찌들어 사는 것을 바라지 않았겠지. 아카드도 어린 시절을 용병들에게 훈련 받으며 지낸 과거가 있으니, 아들은 다른 삶을 살게 하고 싶었을 거야.”

 

 “그럼 부인과 아들은 지금 어디에?”

 

 “둘 다 죽었어.”

 

 “말코족과 격전 중에 아카드가 갑자기 폭주를 했어. 그때 그는 느낀 거야. 그들의 생명이 꺼져 버린 것을. 우리 아버지 왈, 화족부부라서 영혼이 서로 묶여 있다고 하더군. 그래서 아내와 아들의 분리를 느낀 것이라고. 그때 아카드는 수천의 말코족을 한 순간에 치워 버렸어.”

 

 “…….”

 

 “그 이후로 그는 달라졌고. 아내와 아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상실감으로 미쳐가고 있었지. 은둔해 있다가 살육의 현장에만 모습을 드러내 광기를 뿜어내며 말코족을 쳐나갔어. 그러다 전투가 끝나면 또다시 어둠 속으로 기어 들어가 혼자 웃고, 울고, 말하고.”

 

 “…….”

 

  그러면서도 이곳을 버리지 못하고 지켜내는 모습이, 상상이 가?”

 

 

 또르륵.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렸다.

 

 

 “그러니까……이런 큰 희생을 치른 아카드 앞에서 자존심 챙기고 신분 따질래? 그냥 좋다고 매달리고 응석부리는 게 답이야. 정 귀찮아지면 그가 알아서 피해. 나봐!”

 

 

 아카드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가 이사벨라를 피하려고?

 

 

 “내 머리, 염색이야.”

 

 

 눈물이 맺힌 홍안이 커졌다.

 

 

 “3년 전, 어디서, 아카드가 빨강머리를 좋아한다는 소문을 듣고 무작정 염색했어. 나야 아카드가 좋아하는 거라면 무조건 하고 보는 성미라서.”

 

 

 둘 다 피식 웃었다. 독까지 먹는 판에 염색이 대수일까.

 

 

 “근데 소문이 가짜가 아니라는 걸 알겠더라고. 빨강머리를 하고 턱 하니 그 앞에 나타나니까, 한 참을 뚫어져라 바라보는데 그런 강렬한 눈빛을 그에게서 받아 본 적이 없었거든.”

 

 “화족여자에서 빨강머리로 이상형이 바뀌었나 보네요.”

 

 “그러니까! 화족은 한 여자만 품는다는 거 다 헛소문이야. 화족남자는 남자 아닌가?”

 

 “키스도 여기 와서 처음 받아 본 거야. 키스 동기야 어찌 됐든 난 상관없어. 좋았으니까…….”

 

 

 둘의 키스를 지켜본 세라는 좋을 리 없었다.

 

 근 한 달 동안 이사벨라는 서서히 세라에 대한 적대감을 풀고 그녀 안에 세라를 들어오게 하고 있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아카드에 대한 이야기들을 서서히 풀어 놓으며.

 

 

 왜일까?

 

 

 2주 후, 세라는 이사벨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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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아론과 카라스 영주의 조우 2017 / 7 / 25 294 0 6239   
45 관객과 배우를 속인 연극 2017 / 7 / 25 272 0 5304   
44 회상 - 잘 가라 아론 2017 / 7 / 24 252 0 5689   
43 회상 - 나, 깨끗한 남자입니다! 2017 / 7 / 24 260 0 6040   
42 회상 - 소년에서 남자로 2017 / 7 / 24 277 0 5749   
41 새로운 신부감을 찾아 줄 텐가? 2017 / 7 / 24 263 0 6785   
40 내 여자 덕에 산 줄 알아 2017 / 7 / 24 261 0 7563   
39 네가 자백하면, 열 한명이 살아 2017 / 7 / 24 264 0 7165   
38 이름 부르고 싶어? 조건이 있어. 2017 / 7 / 22 277 0 7850   
37 걸어다니는 병기도서 2017 / 7 / 22 293 0 6664   
36 똑같이 그려봐. 2017 / 7 / 22 296 0 8073   
35 에라, 꼬추나 떨어져라! 2017 / 7 / 22 258 0 5699   
34 회상 - 늑대가 보여 준 고독의 무게 2017 / 7 / 22 250 0 6090   
33 회상 - 벼랑 끝, 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순간 2017 / 7 / 22 255 0 6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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