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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황혼에서 여명까지
작가 : 암달구
작품등록일 : 2016.8.15

(제목 변경합니다)
저주받은 꼬마 스케빈져 성장물.판타지.로맨스

 
돗가비와 꼬마 스케빈져
작성일 : 16-08-20 02:02     조회 : 301     추천 : 0     분량 : 8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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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마 스케빈져는 미간을 좁히며 존의 뒤를 밟았다. 그리곤 그가 오두막에 들어가는 걸 먼발치서 바라봤다.

 

 존의 심란함은 수많은 매듭으로 얽히고설켜 커다란 실타래가 되었다. 그의 머릿속에 꼬마 스케빈져의 거죽만 남은 몸과 그 몸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그려진다.

 

 새끼가 태어나 처음 보는 것을 어미라고 인식하고 따라다니는 것처럼 꼬마 스케빈져는 처음 느끼는 유착에 뚜렷하게 형용할 수 없는 것을 갈망하게 되었다. 값싼 동정이나 기만일지도 모르건만. 꼬마 스케빈져는 처음 성공한 사냥감을 존에게 보은했다. 꼬마 스케빈져는 물량 공세를 퍼부었다. 문제는 그 후에 어찌해야 하는지, 어떤 결과를 원하는 것인지 저조차도 알 수 없었다.

 

 꼬마 스케빈져는 늘 존의 시야에 맴돌았다. 존은 아침마다 문을 여는 게 곤혹이었다.

 

 ‘이상한 것만 안 놓고 가면 좋겠는데.’

 

 무엇보다 암기처럼 날아와 박히는 기대감과 부담스러울 정도로 열렬한 눈빛이 신경이 쓰여 견딜 수가 없었다.

 

 "젠장. 결정 고자 새끼. 뭘 고민해."

 

 존은 두피를 벅벅 긁었다. 그는 몸을 낮게 굽히고 앉아 눈을 감았다.

 

 "이리 오렴."

 

 알아들었을까? 인간의 언어를 모르는 꼬마 스케빈져가, 인간의 지적 수준과 의사소통을 이해할 수 있을까? 존은 초조함에 입술에 침을 묻혔다. 자신 있게 뻗었던 손이 움츠러든다.

 

 땀에 젖은 손바닥에 따스한 체온이 닿았다. 꼬마 스케빈져가 존의 커다란 손에 제 얼굴을 묻고 눈을 감았다. 갈피를 못 잡던 마음이 확고해졌다.

 

 “넌 내가 마음으로 낳은 자식이다. 더는 돗가비도, 스케빈져도 아니야. 앞으론 굶지도, 싸우지도, 누군가에게 맞지도 마. 내가 널 지켜줄 거다.”

 

 숨소리를 들으며 존은 꼬마와 뺨을 대고 볼키스를 했다. 아이의 긴장과 심장 소리가 느껴진다. 낯간지러운 발언에 기름 둥둥 뜬 국물을 한 국자 먹은 것처럼 손발이 오그라들고 속이 매스꺼웠다.

 

 “큼큼. 조금 부끄럽군.”

 

 품 안에 안긴 작은 몸이 들뜸을 감추지 않았다. 존의 옷깃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붙들었다. 말뚝을 뽑고 빗장을 푼 문이 열리면서 감동의 해일이 물밀 듯 밀려온다.

 

 “음?”

 

 존은 물씬 올라오는 냄새에 코 평수를 넓히며 꼬마의 정수리에 얼굴을 묻었다.

 

 ‘누가 여기에 똥을 쌌나? 내가 지금 똥을 만지고 있는 건가?’

 

 존의 섬세한 마음이 거미줄처럼 금이 갔다. 감동이 해저까지 떨어지고 이탈한 영혼이 황천에서 백골 사공을 만나고 되돌아왔다. 존은 소매로 오른쪽 뺨을 닦았다. 존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꼬마의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집어넣은 후 일어섰다. 꼬마는 두 발이 허공에 뜬 채 상황파악이 안 되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다.

 

 "똥이 묻었으면 씻으면 되지."

 

 바야흐로 전투 육아의 시작이다. 존은 눈에 불을 켜고 개울가를 찾아다녔다. 꼬마는 꽥꽥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발버둥 쳤다. 존의 팔뚝엔 손톱으로 할퀸 자국과 송곳니 자국으로 성한 곳이 없었다.

 

 존은 달아나려는 꼬마의 몸을 단단히 붙들고 깊이가 무릎까지 오는 곳으로 걸어갔다. 존은 꼬마를 공처럼 던져 개울가에 빠트렸다.

 

 전기에 감염된 것처럼 몸을 털던 꼬마가 꼴깍이며 개울물을 삼켰다. 배가 올챙이처럼 빵빵해지자 그지없이 만족스러운지 입고 있던 넝마를 허물인 양 벗어던졌다.

 

 "너, 너…?"

 

 개울 속에 살아 숨 쉬는 물고기처럼 꼬마는 물살을 가르며 날아오르고 헤엄쳤다. 물장구에 튀어 오른 물방울이 존의 수염을 적셨다. 돼지 꼬리 모양으로 말린 수염 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존의 동공은 지진을 겪은 사람처럼 경악에 휩싸였다.

 

 그는 수세미처럼 억세고 부드러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꼬마의 머리털에 두 손을 넣고 잡아당겼다.

 

 "여자아이였냐?"

 

 "칵-!"

 

 아마도 응이라고 하는 것 같다. 존은 말문이 막히는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쉬며 관자놀이를 손으로 눌렀다.

 

 "성교육부터 필요하겠군."

 

 그의 주변에서 낮고 음울한 기온이 발산됐다. 굳은 다짐은 시작하자마자 바닥에 눌어붙었다

 

 '내 딸에 대한 환상이……'

 

 정신적 충격은 상당했지만, 회복은 빨랐다. 존은 꼬마의 묵은 때에 뒤덮였던 뽀얀 속살이 보이자 성취감을 느꼈다. 어린아이의 옷은 없는지라, 존은 꼬마에게 자신의 윗옷을 입혔다.

 

 "이제 제법 사람 같구나. 깨끗하게 다시 태어났으니 그 누더기 같은 털북숭이도 잘라야겠다."

 

 존은 한 뭉텅이 두 뭉텅이 손가락에 꽈배기처럼 달라붙는 머리털을 잘랐다. 왜 머리털에서 생선 가시며 씨앗이 나오는지는 논외로 하고.

 

 "움직이면 안 돼!"

 

 존은 단전에서 끓어오르는 신음을 삼켰다. 꼬마는 눈썹 위로 껑충 올라간 앞머리로 고개를 기울였다. 표정은 참 해맑았다.

 

 "에라 모르겠다."

 

 꼬마의 머리카락은 귓불 아래까지 잘렸다. 이럴 거면 바가지를 뒤집어쓴 채 그 밑 둘레를 따라 자르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꼬마는 가벼워진 머리와 확 트인 시야가 어색한지 계속 손으로 얼굴을 가렸는데 존이 벙거지를 선물하자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존은 꼬마와 눈을 마주치거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걸 회피했다. 그 묘한 시선에 꼬마가 집착할 때면 그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을 표정을 지었다.

 

 “그, 그래도 나름 귀여운 맛이 있어."

 

 전투 육아는 끝나지 않았다. 존은 호된 신고식을 마치고 산나물과 고기를 넣어 국을 끓였다. 탁자가 없으니 아쉬운 대로 나무 밑동을 가져와 국그릇 두 개, 수저 두 개를 놓았다.

 

 꼬마가 짐승처럼 국그릇에 얼굴을 처박았다. 존은 황급히 국그릇을 빼앗았다. 존이 수저를 손에 쥐여주자 손가락을 깨물고 수저를 집어던졌다.

 

 “아우우-!”

 

 “넌 짐승도 아니고 농아도 아니야. 사람이라면 도구를 사용하고 말을 해야 한다.”

 

 치열한 기 싸움과 공방을 지속했다. 존은 날마다.전쟁을 치르며 자기 잔에 육아 일기를 썼다.

 

 『

 

 506.M2 :

 

 어른은 아이의 거울이다. 꼬마는 제대로 된 관계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 판단능력이 없기에 타인을 관찰하고 모방해 왔고 유년기를 방치와 학대 속에 길들었다. 그래서 폭력이 아닌 방식으로 대화하는 건 낯선 것이다.

 

 꼬마를 키우면서 가장 놀랐던 건 방어할 의지도 없는 죽은 벌레의 다리와 날개를 뜯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점이다. 꼬마는 자신보다 작고 약한 희생충을 제물의 삼아 폭력성을 분출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폭력에 노출되어왔는지 꼬마의 행동은 지금까지 피해자로 살아왔다는 방증이다. 상식적으로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있었는지 믿을 수 없다. 아직 개죽음을 당하지 않은 게 용한 격. 물론 이 부분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있다. 그건 차차 알아볼 생각이다.

 

 인간의 인격은 아동기에 결정된다. 추측해 본 지금의 나이는 6살. 질책과 매질은 좋은 훈육이 아니다. 어떤 경우라도 욕설과 폭력은 정당해질 수 없다. 원칙과 기준을 세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

 

 507.M2 :

 

 꼬마가 도구를 사용하면 상으로 같이 사냥을 했다. 꼬마는 뭐가 됐건 사소한 거라도 나와 함께 하는 것을 좋아했다. 합의로 세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객관적인 설명을 통해 잘못된 행동을 일깨워줬다.

 

 .

 .

 .

 

 509.M2 :

 

 아이는 묘목이다. 어떤 꽃을 피울지 어떤 열매가 맺힐지 관여할 수 없다. 부모가 할 일은 잡초를 뽑고 비료와 물을 주고 가지와 뿌리를 솎아주는 것. 병충해를 이기는 것은 아이의 몫이다. 나는 꼬마의 가능성을 믿고 어떤 고목으로 성장할지 기대한다.

 

 510.M2 :

 

 스스-

 

 …그것은 대체 뭘까?』

 

 * * *

 

 도끼날이 장작을 단숨에 쪼갠다. 새치에 맺힌 땀을 닦던 존은 살그머니 다가오는 기척에 눈을 반달로 접었다.

 

 "엘가 늦었구나."

 

 "아버지!"

 

 엘가가 가볍게 뛰어올라 존의 너른 품에 안겼다.

 

 "읔."

 

 존은 부러 무거운 척 비틀거렸다. 엘가의 눈동자엔 총기가 흘렀고 머리카락은 찰랑거렸다. 이젠 정수리가 그의 골반에 닿을 정도로 자랐다. 어느새 이렇게 훌쩍 커버린 걸까.

 

 '좀 더 어린아이로 있어 주면 좋을 텐데….'

 

 존의 왼쪽 가슴에서 고장 난 시계 초침소리가 들렸다. 그는 움푹 팬 볼로 웃으며 엘가의 머리를 마구 문질렀다.

 

 "꼬맹아. 어서 빨리 어른이 되렴."

 

 "나는 꼬맹이가 아니야! 키도 이만큼이나 컸다고."

 

 "쓴 걸 못 먹는 얘를 꼬맹이라고 한단다."

 

 엘가가 존의 배를 주먹으로 때리자 존은 휘청이는 척하며 엘가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존은 엘가의 엉덩이에 깔고 앉아 발바닥을 간지럽혔다.

 

 “꺄핳핳-! 하, 항복!”

 

 "아버지를 이기려면 10년은 멀었다. 꼬맹아."

 

 서로의 얼굴이 보이지 않자 두 사람은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마침 떼가 낀 것처럼 하늘도 우중충하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다.

 

 "에취- 할 말 있냐? 왜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거리냐."

 

 존의 앙상한 손이 가슴을 긁적인다. 장작을 패던 그는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엘가와 눈을 마주쳤다. 엘가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흠칫거렸다. 어쭈. 수상쩍은걸. 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아버지 덥지 않아? 등목해줄게."

 

 “됐다. 이열치열 모르느냐.”

 

 존은 검은색 긴 팔 긴바지에 면장갑까지 끼고 몸에서 육수를 흘렸다. 덥수룩한 머리카락과 수염의 경계는 사라진 지 오래.

 

 "그럼 목욕이라도 해."

 

 "… 냄새나냐?"

 

 "아주 고약해. 더러워. 좀 씻어.”

 

 “알았다 알았어. 혹여나 그저께처럼 훔쳐볼 생각은 말아라. 엉큼한 녀석. 바가지만 늘었어.”

 

 존은 투덜거리며 개울가로 향했다. 엘가는 그 틈에 오두막 귀퉁이 바닥을 팠다. 4년 전. 엘가와 존은 이곳에 타임캡슐을 묻었다.

 

 “있다.”

 

 빛이 바랜 함이 나왔다. 엘가는 팬 땅을 원상복귀 시키고 함을 자신의 은신처로 옮겼다.

 

 존은 잦은 두통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한번 잠들면 온몸이 가려운지 피가 나도록 긁었다. 붉은 꽃이 만개할수록 발작은 심해졌다.

 

 엘가는 녹음을 머금은 존의 녹안을, 그의 서툰 애정 표현을 사랑한다. 묻고 싶은 게 산더미처럼 많다. 뇌리에 풀리지 않는 난제가 수십 갈래로 엉켜 풀수록 꼬이기만 하는 기분이다.

 

 올리버 크로겐.

 

 ‘그 외지인의 말이 사실이야?’

 

 엘가는 물기를 털며 다가오는 존을 심란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밥 먹자."

 

 목장갑을 낀 손이 엘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를 처음 본건 사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긴급상황! 긴급상황! 외지인 발견. 정찰병을 투입한다. 가서 적의 동태를 살펴라. 러스트와 앤비는 엄호하라."

 

 나뭇가지를 귀에 건 프라이드가 포복했다. 얇은 나무기둥에 몸을 숨긴 앤비는 새총을 조준하며 매의 눈으로 외지인을 살폈다.

 

 "현재까지 이상 무. 앗, 외지인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뭔가를 찾고 있어. 프라이드! 프라이드!! 무기를 꺼낼지도 모르니 조심해!!!"

 

 앤비가 매우, 큰 소리로 말했다. 그리드는 탄식하며 자신의 이마를 때렸다.

 

 앤비의 푸근한 등에 숨어 있던 러스트가 살을 꼬집어 비틀었다.

 

 "이 바보야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면 어떡해!"

 

 "아야, 아파. 프라이드가 못들을 수도 있잖아. 연극을 할 땐 크게 말해야 한다면서."

 

 “지금은 실전이란 말이얏!”

 

 투덕거리는 러스트와 앤비를 외면한 채 그리드는 나무 위를 믿음직한 눈으로 응시했다.

 

 '엘가! 믿을 건 너뿐이다!'

 

 나무 위에서 숨죽인 채 외지인을 주시하고 있던 엘가는 그리드의 수신호에 행동을 개시했다.

 

 프라이드는 외지인이 앉아있는 붉은 바위 뒤로 기어갔다. 외지인은 피곤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로 꼬리를 팔딱이는 물고기의 얼굴을 뜯어먹었다. 흙을 씹는 것처럼 무미건조한 태도와 표정.

 

 외지인이 생선 눈알을 우물거리며 바닥에 뱉었다. 정확히 프라이드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프라이드는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으며 고개를 들었다. 남자가 히죽 웃으며 프라이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프라이드는 남자의 한쪽 동공이 세 갈래로 갈라져 있는 걸 보고 고함을 질렀다. 외지인은 사고뭉치 4인방의 정신없이 달아나는 소리가 즐거운지 간헐적인 신음을 흘렸다. 그는 곧, 나무 위를 바라보았다.

 

 가벼운 바람결에 이파리가 나부낀다. 엘가는 깃털처럼 땅으로 내려왔다. 숨 쉬는 걸 기억하는 순간부터 죽지 않기 위해 몸에 익혀온 본능이 위험을 경고한다.

 

 "당신, 아버지의 친구야?"

 

 '친구'라. 세상에 그렇게 웃긴 말이 또 있을까. 올리버는 가래가 들끓는 목소리로 웃었다. 엘가의 먹빛 눈동자에 세속에 찌든 올리버의 모습이 담겼다.

 

 ‘그자에게 딸이 있다니. 그가 반란죄로 추방당했을 때만큼이나 기가 막힌 사실이다.’

 

 존은 생각보다 로맨틱한 남자였고 한 번의 실수로 빠르게 추락했다.

 

 존은 콧노래를 부르며 죽은 새의 깃털을 뽑고 있었다. 올리버가 존을 보는 건 25년 만이다. 피 칠갑을 하고 뼈와 살을 도륙하던 악귀는 모든 걸 잊어버린 것처럼 평범한 남자가 되어 있었다. 가증스럽게도. 올리버는 그 비현실적인 모습에 이가 갈렸다.

 

 "대학살부대 소속 중사 올리버 크로겐. 대대장님께 인사드립니다. 낙원이여 영원하여라 아르콘에 영광을."

 

 올리버가 입은 군복에는 일월(日月, 해와 달)의 상징이 그려져 있었다. 그의 존재는 존의 상흔을 헤집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학살에는 이념도 사상도 없다. 대대장님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씀이시죠.”

 

 얼굴에 훅 끼쳐오는 해바라기 냄새는 존의 시간을 회귀시킨다. 존은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감추며 주변 상황을 판단했다. 곧 엘가가 밥을 먹으러 돌아올 시간이었다. 자신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다가오는 상대가 엘가를 해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너무하십니다. 인사도 받아주지 않는 겁니까. 보아하니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시는군요. 하긴, 난 당신의 부하 중 한 명일 뿐이니. 전장의 악귀. 철혈의 소년, 대대장님은 제 우상입니다. 낙원에서 대대장님의 위명은 군의 훈장이었습니다. 아, 비록 지금은 양날의 검이 됐지만.”

 

 대아르콘은 힘을 숭상하고 담대한 자를 좋아했다. 노예들은 오만하지만 포악하고 잔인한 존을 동경했다. 하계인 중 전후 세대를 합쳐 가장 빠른 출세의 가도를 달린 인물이 아닌가.

 

 “셋 센다. 돌아가.”

 

 “은원을 갚으러 왔습니다.”

 

 비뚤어진 욕망이 고개를 쳐든다. 올리버가 사특하게 웃었다. 입꼬리를 핀셋에 꽂아 억지로 끌어올린 것처럼.

 

 “하나.”

 

 "혹시나 했는데 대대장님도 발할라 숙청 때 무혈충(無血蟲)에게 물리셨군요. 크큭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부대만 사전에 백신 접종을 받지 못했습니다. 공문이 안 왔던 겁니까? 앞으로 몇 년, 아니 며칠 남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살고 싶지 않습니까? 제 밑으로 들어오면 낙원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치료제를 구하는 것도, 당신을 버린 연인의 복수도 이뤄드리죠. 비비안이라고 했던가요. 아주 아름다운 인어였죠."

 

 존의 견고한 심지가 흔들렸다. 흉부에서 통증을 호소한다.

 

 ‘옳지. 내게 목숨을 구걸해라. 네 구질구질한 모습을 내게 보여봐.’ 올리버가 혀로 인중을 할짝댔다.

 

 “둘”

 

 올리버의 눈길이 빨랫줄에 걸린 엘가의 옷을 훑었다.

 

 “설마 자식이 있는 겁니까? 희대의 살인광이? 아, 노예를 키우고 있는 건가요? 대아르콘처럼!?”

 

 “셋. 입 닥쳐.”

 

 존은 올리버의 목을 비틀어버리려다 멈칫했다. 핏줄처럼 피부 위에 돋아난 흉터와 꿰맨 자국, 신체 일부는 살점이 떨어져 나갔고 이종족의 손가락과 한쪽 눈알이 이식되어있다. 군복에 가려져 있지만 등은 욕창으로 엉망이었다.

 

 “알아보는 겁니까? 대대장님이 이곳에서 범인(凡人)인척할 때 우리 부대는 닥터 카이만의 실험실로 끌려가 모르모트가 되었습니다. 당신의 공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딱 일주일 기다리겠습니다. 저 붉은 바위에서. 마음이 바뀌면 찾아오십시오 대대장님.”

 

 충성의 대가는 가혹하고 소모품은 쓸모가 없으면 버려질 뿐.

 

 ‘설마 그때 누군가 엿듣고 있었을 줄이야.'

 

 엘가는 올리버가 손아귀를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다가왔다.

 

 "아버지가 죽는 거야?"

 

 올리버는 헛구역질이 하고 싶어졌다. 의심 한 점 없는 맹목적인 눈동자가 지날 날의 자신을 떠올리는 것 같아서 속이 얹힌 것처럼 답답했다.

 

 "그래. 하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

 

 그는 눈짓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나는 저곳에서 왔다. 하계인들이 낙원이라고 부르는 곳."

 

 엘가는 하늘에서 눈을 떼고 올리버를 바라봤다. 올리버는 외모, 억양, 분위기 모든 게 불순물에 범벅된 것 같다. 낙원이란 곳은 저런 사람들이 사는 곳인가. 가늠할 수 없다.

 

 “어깨를 올릴 수가 없군. 이 군복을 벗을 수 있게 도와주겠나.”

 

 엘가는 침을 삼키며 올리버의 상의를 벗겼다. 눈살을 찌푸릴 만큼 참담한 흔적이 드러났다. 그는 손에 칼을 묶어달라는 말과 왼쪽 어깨를 들고 있어 달란 말도 했다. 그리곤 어깨에 새겨진 상징의 껍질을 벗겼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건지 무뎌진 건지 올리버는 홀가분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오랜 염원을 이룬 것처럼.

 

 엘가의 유년기는 암흑이었다. 밀어내고 떠밀려 결국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침전물과 같은 신세.

 

 ‘아버지라고 부르렴. 자 따라 해봐. 아.버.지.‘

 

 ‘아직 네 이름이 없구나. 수수한 이름이 좋겠다. 꽃님이가 어떠하냐? 노, 농담이다. 그렇게 노려보지 말래도.’

 

 ‘내 이름은 존 윅. 네 이름은 엘가. 알겠니? 넌 인간이야.’

 

 ‘아무 이유 없이 죽였다고? 살생은 인과가 된다. 이제 저 어린 새는 둥지에서 굶어 죽거나 천적에게 잡아먹힐 거다. 앞으로 네 결정과 결과엔 직접 책임을 져라.’

 

 ‘또 다친 거니? 자신을 좀 더 소중하게 여기렴.’

 

 ‘널 죽음보다 사랑해주는 사람이 생기면 좋겠구나.’

 ‘난 죽음보다 아버지를 사랑해! 아버지랑 결혼할 거야.’

 ‘그건 범죄야. 첫눈에 보자마자 네 짝을 알 수 있을 거다. 그 기회를 놓치면 안 돼.’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기억을 더듬는다. 너무 소중해서 깨질까 봐 두려운 추억. 엘가는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불길한 안갯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낙원의 제물이 될지 하계의 샛별이 될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시발점이 지금 시작된다. 아득히 먼 시간을 거슬러 그대를 만나러 간다. 낙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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