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그 정신없던 가족 모임에서 결혼식을 어찌할 것인지 열띤 토론을 벌였다.
기원과 선수가 서로 먼저 할 거라며 으르렁 댔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가수가 자신을 먼저 결혼시켜 주지 않으면 자신의 병원에 모두 출입금지령을 내리겠다고 선언해버렸다.
그런 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해서 아름마저도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안 간다고 했다.
아버지는 웃으며 가수를 제일 먼저 결혼시키고, 그 다음 달에 기원이 가고, 그 다음 달에 선수 가라고 결정을 내렸다.
다들 가족들만 모시고 결혼식을 할 거라고 해서 다달이 결혼식이 있어도 큰 무리는 가지 않을 터였다.
수철이 자기만 죽어나겠다며 죽는 소리를 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시인은 동원과 통화를 하며 그날을 전하느라 바빴다.
“말도 마요! 은화랑 영현이를 보는데 진짜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니까요.”
“......”
“왜요? 작가님도 너무 놀랐어요?”
“너무 아쉽네요. 내가 그 때 갔어야 했는데......”
“왜요?”
“시인이도 달라고..”
“어머머, 이 아저씨 좀 봐요. 내가 물건이예요? 달라고 하게!”
“우리도 합시다. 결혼.”
“......”
시인의 심장이 쿵 소리를 하며 떨어졌다.
“시인씨? 너무 놀랬어요?”
"당.. 당연하죠. 전화로 청혼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다시 해요."
"하하하하. 네, 마음의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어요."
전화를 끊은 시인은 생각에 잠겼다.
준성이 청혼할 때가 떠올랐다.
그 때까지 완벽히 행복했었는데....
그 이후에 있었던 이별이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동원의 입에서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 설레는 맘 반, 두려운 맘 반. 가슴 속이 어지러웠다.
이대로 행복이 지속되기를, 동원은 자신이 본 그대로의 사람이기를.. 시인은 눈을 꼭 감고 잠시 기도를 했다.
‘하느님, 부처님.. 나도 계속 사랑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작가님을 나한테 주세요.’
**
추석연휴를 끝내고 해랑도로 돌아왔다.
마치 해랑도에 처음 왔던 2월의 어느 날처럼,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배가 많이 흔들렸다.
작은 배와 접안 하면서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천둥 번개를 무서워하는 시인은 바람이 세게 느껴지자 긴장이 되었다.
저 멀리 선착장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동원이었다.
동원이 어떻게 해랑도에 와 있지 하는 생각보다 동원을 보자마자 불안했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잔잔해졌다.
동원이 손을 흔들며 시인을 반겨 주었다.
시인도 반갑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곧 배가 도착하고 동원이 내리는 시인의 손을 잡아 주었다.
“어떻게 여기 있어요? 미국에 2주나 있는다고 했잖아요."
“그 쪽 스케줄이 안 맞아서 다시 왔어요. 다음 달에 다시 가야해요. 내일 다른 감독하고 미팅이 있어서 좀 있다가 동해랑도 가서 마지막 배 타고 다시 서울 가야 해요.”
“그러면 굳이 여기 왜 왔어요?”
“굳이 시인씨 얼굴 보려고 내려 왔죠. 배 없었으면 배 살 뻔 했다니까요. 하하하.”
“맨날 다 살 뻔 했대요. 치.”
시인은 이렇게까지 자신을 보러와 준 동원이 너무 고마웠다.
“작가님, 나 보러 이렇게 멀리 와 줘서 너무 고마워요. 그래도 너무 무리 하지는 마요. 한 번 보고 헤어질 사이도 아니잖아요. 우리. 너무 고생하다가 싫증나면 어쩌려고 그래요?”
동원은 시인의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시인씨 만나고부터는 적당한 게 어떤 건지 모르겠네요. 언제나 모자란데 무슨 싫증? 그나저나 계속 작가님이라고 부를 거예요?”
“그럼 뭐라고 불러요. 작가님이 제일 좋아요. 호호호. 작가님도 나한테 언제까지 그렇게 공손한 높임말 쓸 거예요? 내가 말 편하게 해도 된다고 계속 그랬는데..”
“그럼, 오늘부터 나는 말 편하게 놓고, 시인ㅆ.. 이 너는! 아하하. 넌 나한테 자기라고 부른다. 알았지?”
“말 놓으라고 했지 그렇게 군대 말투 쓰래요? 도대체 드라마에서는 남주가 어떻게 그렇게 부드럽게 말 하게 쓰는 거예요?”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나도 쉽게 말이 안 놔지네요. 하하하.”
이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짐을 푼 시인은 곧장 동원을 따라 동원의 집으로 향했다.
동원이 짐을 가지고 바로 출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날씨는 더 안 좋아졌고, 바람은 거세졌다.
두려운 듯 움츠리는 시인 때문에 동원은 걱정이 되었다.
“오늘도 비 올 것 같은데.. 혼자 잘 때 무서우면 어떻게 합니까?”
“이불 덥고 귀 막고 그래요. 집 안에서는 그렇게 안 무서워요. 근데 작가님 걱정이예요. 이런 날씨에도 배가 뜨는 거예요?”
시인은 폰으로 날씨를 검색했다.
“봐봐, 비바람이 세질 거라고 하는데요? 안 위험해요?”
“내일 꼭 나가야 하는 자리라서.. 파도가 세면 항구에서 출항 하지 않을 겁니다. 너무 걱정말고.. 시인씨가 걱정입니다.”
동원이 시인을 따뜻하게 안고 등을 토닥였다.
“천둥 번개 칠 때 이 손을 기억해요. 내 손 따뜻한 거 알죠? 이 손이 옆에 있다. 내가 옆에 있다. 이렇게 계속 생각해요. 알았죠?”
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곧 동원이 집에 들어가서 가방을 들고 나왔다.
다시 선착장 쪽으로 걸어 내려오며 택시를 불렀다.
둘은 잠시 길가에 서서 바다를 보고 있었다.
시인은 아무 말이 없었다.
동원은 시인이 걱정이 되었다.
시인이 갑자기 동원을 쳐다 보며 말했다.
“가지 말아요. 작가님. 오늘 안 갔으면 좋겠어요.”
“......”
“가끔 그런 날 있잖아요. 꼭 해야 할 일 있는 것 같은 날. 오늘 작가님 못 가게 잡고 싶어요. 가지 말아요.”
동원은 난감한 듯 어쩔 줄 몰라 했다.
차 소리가 들리더니 저 멀리 ‘예약’ 글자가 보이는 택시가 보였다.
“배가 출발 안 하면 바로 전화 할게요. 그러니까 걱정 말아요. 서울 갔다가 바로 올게요. 알았죠? 시인씨, 얼른 들어가서 오늘은 일찍 자요. 갑니다.”
시인의 손을 놓은 동원이 택시를 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이 시인을 감쌌다.
시인은 동원이 탄 택시가 출발한 후에도 한참을 택시가 사라진 방향으로 시선을 두고 있었다.
터벅터벅 집으로 들어오는 시인에게 이장님이 말을 건넸다.
“동원이 갔나? 우리 정선생 오늘따라 왜이리 낯빛이 어두울꼬?”
“이장님, 오늘 같은 날씨도 배가 출항해요? 위험할 것 같아서..”
“풍랑 주의보가 아직 뜨지는 않으니 출항을 할 긴데.. 정선생 말대로 오늘 바다가 좀 성나 보이긴 하네. 그래도 별일 없을기라. 얼른 들어가서 맘 편히 쉬라.”
시인은 왠지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불을 펴고 동원의 말대로 일찍 자리라 마음을 먹었다.
얼른 내일 아침이 와서 동원이 잘 도착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이 기분은 다 사라질 것이었다.
시인은 억지로 잠이 들었다.
**
“젊은 여자가 똥도에 뭘 잃어버리고 오면 그 때 좋아하는 사람이랑은 반드시 헤어진대요.”
“그니까 쌤은 믿네 안믿네 그러지 말고 그냥 가지마요. 알았죠?”
“내 머리핀이 어디 갔지?”
“작가님.. 흑.. 나 머리핀이 없어졌어요. 흑.. 똥도에서 잃어버렸나 봐요. 엉엉엉.”
“나 또 사랑이 안 이루어지려나 봐요. 흑흑흑.”
**
쏴쏴 우르르르릉
갑작스런 큰 비였다.
낮게 깔리는 천둥소리에 시인이 잠에서 깼다.
시끄러운 빗소리 때문이었을까..
악몽을 꾼 것 같지도 않은데 식은땀을 다 흘렸다.
핀 잃어버렸던 게 갑자기 왜 꿈에 나올까..
마당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시인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이장님과 경철이가 비옷을 입고 서둘러 나가고 있었다.
“아이구, 시끄러워서 깼는갑다. 시인이 얼른 다시 자라.”
“어머니, 이장님이랑 경철이 어디 가요?”
“좀 전에 풍랑 경보가 내려서 배 잘 묶여 있나 확인하러 안 갔나. 아까 밤 되자 마자 주의보 떠서 다들 배 안쪽으로 대 놔서 망정이지.. 태풍도 아닌데 갑자기 웬 날씨가..”
“어머니, 동해랑도 마지막 배가 몇 시죠?”
“9시까지 배가 있는데.. 아까 풍랑 주의보가 그 쯤 내려서 출항 했을라나.. 했으면 위험 할낀데..”
시인은 빨리 방으로 들어왔다.
동원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지금 시각은 11시, 부산에 닿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심장이 뛰었다.
온 몸에 소름이 올라와 옷을 입고 있는데도 추웠다.
빨리 오늘 동해랑도 배 출항이라고 검색했다.
“하아악!”
시인은 폰을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우산도 없이 동원의 집을 향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시인의 폰 화면 가득 속보 기사가 떠 있었다.
「속보, 동해랑도→부산, 블루씨호, 연락 두절(1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