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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싸우는 개와 과거의 소녀
작가 : Nine
작품등록일 : 2017.7.8

미신, 전설, 설화, 민담, 소설.
형체 없이 떠돌던 것들이 허구의 장막을 헤치고 인류 앞에 형상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점을 정확히 짚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인류의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던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은 분명했다. 과거였다면 ‘취객이나 광인의 횡설수설’ 정도로 여겨지고 소리 없이 사라지거나 잠깐 떠돌다 사라졌을 사건들이 명확한 증거와 함께 각국 국가기관에 제출되었다.
인류는 ‘점잖게’ 양립할 수 없는 존재들과 너무나도 오래, 거의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어왔고 그러면서도 그 사실을 억지로 외면해 왔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하지만 인류가 공포를 공포로, 경악을 경악으로 영원히 남겨두는 존재였다면 현재에 이르지 못했으리라.
잘 알려져 있지만 공포스러운 소설적 산물로 여겨지던 흡혈귀 정도에서, 기괴하게 비틀린 종교적 광신의 초현실적인 결과물, 생물학적으로 인간이지만 초인적인 능력을 갖추고 그 힘을 파괴와 혼란 조장에 사용하는 인간 등, 정확히 추산할 수 조차 없는 숫자와 종류의 위협요소들, 과거의 기준으로는 초현실적이지만 실제로 존재하고, 인간에게 위협적이기까지 한 수많은 것들이 ‘특이 위협체’라는 이름으로 통칭됐다. 그리고 인류는 이 새로 떠오른 위협에 질병, 스스로의 무지, 실패한 정치 및 경제체제 등과 같은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 방식이란, ‘해당 위협의 존재 말살 위한 노력의 경주’였다.

 
챕터3. 리빙 데드(3)
작성일 : 17-07-21 23:50     조회 : 275     추천 : 0     분량 : 6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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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흐으… 지친다.”

  밤이 다 돼서야 집으로 돌아온 지수는 신발을 대충 벗으며 중얼거렸다. 너무 빠르고 과격하게 운전을 해 대는 인호에 대한 반발심을 조금 섞어서, 마치 도로 위의 도덕군자같이 차를 모는 일은 지수 자신에게도 피곤한 일이었다. 게다가 운전 하는 한 시간 내내, 중간에 들른 식당에서까지 과속 운전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설교를 해댔더니 혀까지 아픈 것 같았다.

  “마음을 고쳐 먹었으려나… 진짜 위험하니까 그렇게 빨리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사실 인호가 교통법규를 어긴 부분은 없었다. 그가 속도를 시속 백 킬로미터 이상으로 내는 구간은 국도에서 빠져나와 훈련장으로 가는 도로, 다른 차량이 들어올 이유도 없고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도로이니 제한 속도도 없는 십 분 정도의 구간뿐이었다.

  “하지만 위험한 건 위험한 거야. 바로잡아 줘야겠어.”

  소파에 앉아 스스로 다리를 주무르던 지수가 욕실 앞에서 겉옷을 벗고 있는 청아를 발견했다.

  “샤워 하려고? 나도 좀 찝찝하긴 한데… 뭐, 먼저 해.”

  인호가 과속을 하던 십분 사이에 흘린 땀이 적어도 이백 밀리리터 우유 한 팩은 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니다운 아량으로 샤워실을 양보하는 스스로가 기특해지려던 참이었다.

  “……?”

  청아는 같이 하면 안 되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지수는 한 순간 표정만으로 꽤 고등한 의사를 이해해버린 스스로를 원망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 아냐. 하하. 언니가 양보 할게. 천천히 씻고 나와.”

  “……?”

  평소에도 맑은 청아의 벽안이 순진무구한 궁금증을 띄었다. 그 눈 앞에서 지수는 자신이 대단히 옹졸한 언니가 된 것 같은 느낌을 강요받았다. 잠시 쓸모없는 고민을 하던 그녀는 소파 팔걸이를 팡 내리치며 일어났다.

  “크으… 알겠다!”

  ‘그래! 물러서지 마 윤지수! 여기까지 오면 싸움이야! 동생에게 꼬리를 말고 도망 칠 셈이냐!’

  뭔지 잘 모르겠지만 굉장한 결심을 한 듯 보이는 지수에게 희미하게 웃어 보인 청아가 마저 옷을 벗었다. 청아의 몸을 덮은 옷이 하나씩 벗겨지는 모습을 공포 섞인 눈으로 쳐다보던 지수가 브래지어 단계에서 결국 울상을 지었다.

  그 크기에도 불구하고 무시무시한 탄력으로 중력을 거부하는 가슴은 속옷을 사 줄 때도 얼핏 본 것이었지만 정면에서 이렇게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데도 머릿속을 점거한 청아의 스리 사이즈들과, 당장 눈앞을 가득 채운 위압감은, 이전까지 나름대로 균형 잡힌 몸매를 자부하던 지수를 잔인하게 짓눌렀다.

  ‘패배를… 인정합니다.’

  마음속으로 무릎을 꿇으며 처연한 미소를 머금은 지수가 브래지어 끈을 풀었다.

 

  그로부터 이십 분 정도 흘렀을까.

  아파트 복도로 나온 인호의 손에는 방금 씻은 듯 물방울이 맺혀 있는 도시락 통 하나가 들려 있었다. 지수가 깜빡했는지 차 안에 두고 내린 도시락 통이었다. 별 감흥 없이 지수와 청아의 집 앞에 선 인호는 초인종을 눌렀다.

  “도시락 통 돌려드리겠습니다.”

  말이 끝나고 몇 초 되지 않아 잠금 쇠가 풀리고 문 고리를 돌리는 금속성의 소음이 들려왔다.

  ─────.

  하지만 무심결에 열리기 시작한 문이 반 정도 개방됐을 즈음, 지수의 찢어지는 고음은 문제의 가능성을 경고했다.

  “아, 아직 열지 마! 청아야!”

  조금 늦지 않았나.

  “꺄아아아아아악!”

  아파트를 통째로 날려버릴 듯 날카로운 비명의 중심엔 젖은 수건 한 장으로 가슴부터 허벅지 근처 까지만 겨우 가린 지수가 서 있었다.

  따뜻하게 달궈진 몸에서는 아직도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중이었고, 채 닦지 못한 물방울은 탄력 있는 몸매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눈물 맺힌 눈은 혼자 이미 잠옷을 입고 있는 청아와 벌써 두어 걸음 뒷걸음질 친 인호를 급박하게 오가고 있었다.

  현관 안의 상황을 뒤늦게 인식한 인호의 머리가 재빨리 긴급 경보를 발령하고 문을 닫을 것을 지시했다. 세차게 철문을 닫는 소리가 또 한 번 아파트를 흔들었다

  이런 경우, 가장 잘못한 것은 잘못한 쪽은 누구인가?

 

  그리고 십여 분 후.

  굳이 표현하자면 사고 최대의 피해자라 할 수 있는 지수는 현관 앞에서 또 다른 방문자에게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경찰입니다. 여기서 무슨 비명이 들렸다는 신고가 들어와서요.”

  “아, 그… 바, 바퀴벌레가 나와서…….”

  인호가 바퀴벌레였나.

  무덤덤하던 경찰의 얼굴에 허탈함이 슬쩍 떠올랐다.

  “크흠, 이해 못하는 건 아닌데 동네 사람들 다 놀라게 그러시면 안 되죠. 멀쩡하게 생긴 처녀가.”

  “예, 예, 죄송합니다…….”

  “아무튼 주의해주십쇼.”

  “예…….”

  돌아가는 두 명의 경찰관에게서 문을 닫고 뒤돌아서자 잠옷을 입은 채 서있는 청아가 보였다. 그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간단히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으나, 지수에게는 왜인지 ‘괜찮아, 자연스러웠어.’로 보였다.

 

 

 

 * * *

 

 

  “…….”

  “…….”

  서류 가방을 든 회사원과 안경을 낀 대학생이 삼십 미터 정도의 거리를 둔 채 시선을 교환했다. 아무런 공통점도 보이지 않는 두 남자가 어둠이 그늘진 인천 남동공업단지에서 서로의 무관계를 가장(假裝)한 채 시선을 주고받는 모습은 유심히 보면 충분히 의심할 만한 모습이었지만, 겉으로 보이는 그들의 외양과 행동은 애초에 누구의 주의라도 끌기에는 너무 평범했다.

  그리고 그러한 은밀성을 갖춘 그들의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한 명의 남자를 쫓고 있다는 것이었다.

  난처한 얼굴로 전화를 받고 있던 회사원이 눈동자만으로 추적 대상을 쫓으며 전화기에 대고 ‘예, 지금 가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굽신거리는듯한 목소리였지만 그 목소리의 상대자는 전화기도, 그 너머에 존재하는 가상의 상사도 아니었다.

  조용히 움직임을 취한 쪽은 이어폰을 낀 대학생, 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인물이었다. 인적 드문 공단 거리를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걸어가는 그의 시선은 스마트폰에 꽂혀 있었지만 감각만은 앞에 있는 남자를 향해 있었다.

  한택수.

  서른여섯 살. 미혼에, 다른 가족들과도 만나지 않은 지 육 년 째. 주식회사 한정 정밀의 생산 직원. 그리고 뚜렷한 이유도 없이, 문제의 인천 물류 창고 근처에서 몇 번이나 CCTV에 잡힌 인물이었다.

  재산 추적과 조사 결과 육 년 전 카지노에서 집안의 전 재산을 탕진한 경위가 발견되어 SOG에서는 ‘패가망신’이라는 장난스럽지만 뼈있는 암호명으로 부르고 있었다.

  “크흠.”

  대학생은 추적 대상이 꺾인 골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의심을 피하며 동시에 적당한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잠시 멈춰서 기다렸다. 추적 대상의 신발에 부착된 GPS 발신기 덕분에 잠깐 정도 시야에서 사라지는 정도는 허용 범위 이내였다.

  감각으로 삼십 초 정도를 센 그가 의미도 없이 손 안에 펼쳐놓은 인터넷 신문을 뒤적이며 골목으로 들어선 순간이었다.

  “끄아아아아아악─!”

  상황의 이해보다 빨리 터져 나온 비명이 어둡고 삭막한 밤공기를 찢었다. 가늘게 떨리는 대학생의 눈이 도착한 곳에서는 자신의 왼쪽 어깨에 박힌 작은 손도끼가 보였다.

  “해골 옥좌에 숭배를… 불사의 신께 피를…….”

  넋이 나간 듯한 맥없고 음침한 목소리가 대학생의 고통에 압도된 신경을 사정 없이 두들겼다.

  “젠자…….”

  불완전한 상소리를 뱉고 뒤로 물러서며 품속의 LH9권총을 뒤지는 오른쪽 어깨에 다시 한 번 핏빛 섬광의 틀어박혔다.

  “아아아아악─!”

  너무나도 충격적인 고통이었다. 아무것도 쥐지 못한 오른손이 공허하게 미끄러져 땅을 향했다. 양 팔의 자유를 모두 빼앗긴 대학생은 허물어지듯 무릎을 꿇으며 공포와 고통으로 점철된 얼굴을 들었다.

  “숭배를…….”

  중얼거리는 한택수의 얼굴은 최면에 걸린 사람─ 아니, 최면 같은 물렁한 개념은 적합하지 않았다. 세뇌나 그 이상의 직접적이고 견고한 무언가에 완전히 경도되어 타성, 타의에 지배당하는 얼굴이었다. 지금까지 봐 왔던, 어둡지만 적어도 사람의 꼴을 하고 있던 한택수가 아니었다.

  박살난 오른쪽 어깨에서 미련 없이 빠져 나가는 도끼날의 소름 끼치는 감각, 칠척거리는 소리가 티끌만큼의 필터링도 없이 생생했다.

  “아… 아…….”

  천천히, 너무나도 실감나는 속도와 형상으로 올라가는 손도끼 앞에서는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다음은 두피, 두개골, 뇌. 순서대로 파괴당해서 분명히 죽는다. 실체가 존재할 리 없는 개념인 ‘죽음’이 무게와 형체를 견고히 하며 마비된 사고를 걷어차고 있었다.

  최고조.

  더 이상 올라갈 곳을 찾지 못한 도끼가 정지했다. ‘대학생’이 자신의 마지막을 차마 마주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한택수! 무기 버리……!”

  어디다 내다 버렸는지, 서류가방 대신 LH9 권총을 들고 비명소리를 따라 급히 달려온 ‘회사원’은 예상보다 훨씬 안 좋은 상황에 말을 계속 잇는 대신 방아쇠를 당기는 쪽을 택했다.

  총탄에 관통된 대퇴부가 뒤로 밀려나며 주인의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무너트렸다.

  “다시 말한다! 무기 버려! 불응시 사살한다!”

  거칠어진 목소리가 심각한 위협을 담고 골목을 울렸다.

  “불사의 신께 피를…….”

  하지만 이지를 잃은 누군가의 꼭두각시는 광신도 같은 소리를 중얼거리며 손에 쥔 도끼의 날이 자신을 향하도록 고쳐 잡을 뿐이었다.

  “도끼 버리라고 새끼야!”

  쓰러진 동료를 왼손으로 붙잡고 당기며 오른손으로는 한택수를 조준하고 있던 회사원이 욕설까지 섞어 마지막으로 외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둔탁한 파열음이었다.

  “미친……!”

  아무리 자살이 하고 싶었다지만 자기 자신의 이마에 지체 없이 도끼를 박아 자살할 수 있는 자가 있을까. 목격자 없이 시체만 덩그러니 발견된다면 타살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자살법이었다.

  ‘회사원’은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운 그 시체를 찌푸린 눈으로 노려보며, 셔츠의 칼라 부분 안에 감춰뒀던 성대 마이크에 소리쳤다.

  “‘패가망신’은 자살로 사망! 우리 요원 한명 중상이다!”

 

 

 * * *

 

 

  아침부터 자신의 널찍하지만 간소한 청장실에 눌러 앉은 SOG의 청장은 골치가 아픈 기색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견고해 보이는 나무 책상 위에 놓인 명패의 앞면에는 청장의 이름이, 뒷면에는 ‘The buck stops here(책임은 여기서 멈춘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버릇처럼 청장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위치한 그것은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2차 세계대전의 종지부를 찍은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좌우명이기도 했다.

  “으음…….”

  청장의 시선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공허감을 띄고 그 명패를 향해 있었지만 그의 신경은 앞에 놓인 세 건의 문서를 향하고 있었다.

  등받이에 기대 길게 한숨을 뿜은 그는 오래된 버릇대로 노트 한 권을 꺼내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보기관에서 15년, 이후 15년간 위협개체를 상대하며 SOG라는 대응 조직의 정점까지 오른 그였지만 위협개체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간단히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알고 있다고 여기지만 막상 말로 표현하려면 말문이 막히는, 그런 종류의 개념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청장이 단 하나 장담하는 것이 있었다. 놈들은 두루뭉술한 ‘위험’이 아니라 분명한 방향성을 갖추고 행동하는, 인류에 대한 ‘위협’이라는 것이었다.

  가령, 핵탄두 하나가 있다고 가정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핵무기는 인류가 지금까지 빚어낸 수많은 무기 중 단연코 가장 지독하고 무시무시한 파괴병기이지만, 그 자체로는 신중한 취급이 필요한 ‘위험’물에 불과하다. 최고 수준의 적절한 통제 하에 있다면 오히려 ‘안전’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핵무기가 ‘적’의 손에 들어가 내 머리 위를 노린다면, 그 때부터 핵무기는 ‘위협’으로 기능한다.

  핵탄두를 손에 쥔 ‘적’

  대화도 타협도 교화도 통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불확정성과 위험성만은 지독히도 높아 나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는 쓰러트리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는 ‘적’.

  그것이 현 SOG청장 손영준이 위협개체를 이해하는 방법이었다.

  감았던 눈을 뜬 청장의 무거운 시선이 책상 위에서 시치미를 떼고 있는 서류들을 향했다. 뻔뻔하게 입을 다물고들 있었지만, 청장의 누적된 경험과 날카롭게 벼려진 직감은 지금 대한민국 위에 떠있는 먹구름의 윤곽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더욱 구체적인 그림이 필요했고 그를 위해서는 정보가 더 필요했다.

  이번에도 또 청장의 부하들은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져 바쁘게 뛰어다녀야 할 모양이었다.

  “나라고 이런 게 즐겁진 않아…….”

  담배 연기와 함께 허공으로 피어오르는 목소리는 그의 부하 수천 명 중 누구도 듣는 이가 없었다.

  잠시 후, 담배를 지긋이 눌러 끈 그는 수화기를 들어 말했다.

  “러시아 FSB(Federal Security Service)에 연결시켜줘.”

  정보원 한둘쯤은 소리도 없이 죽어나가던 냉전 말기의 모스크바. 그곳이 젊었던 시절 그의 전장이었고 그 때 얻은 것들은 아직도 그의 경험과 기억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 * *

 

 

  강원도의 산골에 자리 잡은 한 기숙사식 외국어 고등학교.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는 태양의 몸부림 같은 노을이 그 붉은 빛으로 사위를 뒤덮고 있었다.

  아마도 ‘면학 분위기 조성에 유리’라는 이유를 들먹이며 그곳에 터를 닦았을 외국어 고등학교는 지가가 싼 덕분이었는지 꽤 커다란 규모를 자랑했다.

  삼 층 높이의 하얀색 본관과 사 층 높이의 남 녀 기숙사가 따로 하나씩. 모든 학생을 수용하고도 공간이 남을 법 한 강당, 체육관 하나, 도서관 하나가 운동장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었다.

  학업적 성취를 최우선 목표로 하는 건물답게 경직된 공기가 감돌았지만, 적어도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의 부분부분에서 각자의 일을 하고 있는 칠백 여명의 사람 들이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학교 주변을 감싼 잡목림에 몸을 숨긴 채 학교를 바라보고 있는 눈의 존재였다.

  복장만 놓고 봤을 때는 그다지 특이할 것이 없는 인물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뒷모습만 봤다면 교직원으로도 볼 수 있을 법한 행색. 하지만 정면에 서서 마주한 사람이라면 괴인의 얼굴을 보며 기묘한 공포감을 느끼고 뒷걸음질 칠 만한 모습이기도 했다.

  그 소름끼치도록 무표정한 얼굴은 단순히 무덤덤한 얼굴이 아니었다. ‘표정’이라는 요소를 완전히 박탈당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런 얼굴의 정점은 자기 스스로의 의지가 말소된 탁한 눈이었다.

  멍하니, 묘하게 꼿꼿한 자세로 서있는 그의 눈. 정확히는 그 눈을 통해 멀리서 학교를 살펴보고 있는 남자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걸렸다.

  “적당하군, 밤나무를 흔들기 위한 장대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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