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
반전을 사랑한 남자
작가 : 샤뚜르
작품등록일 : 2017.7.5

강지원, 29살의 젊은 사장은 얼음 왕자라는 별명으로 직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직원들도 피해가는 그에게, 회사의 햇병아리가 어느 날 찾아와 태클을 건다. 그는 그녀가 만만했었다. 이세희, 24살의 인턴 사원. 상상 속 50대 사장과는 다른 조각미남이 나의 상사라니! 사랑 때문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 남자와 귀엽지만 반전 있는 그녀의 좌충우돌 연애 이야기.

 
제 63 화. 무섭다고 겁먹지 말고. 망설이지도 않겠다고 약속해
작성일 : 17-07-21 13:37     조회 : 309     추천 : 0     분량 : 8261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반전을 사랑한 남자

 

 

 

 

 

 제 63 화. 무섭다고 겁먹지 말고. 망설이지도 않겠다고 약속해

 

 

 

 침대와 마주보고 있는 전면 창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서로를 놓지 않은 채로 잠들어 있는 연인을 포근하게 비춰주었다.

 

 햇살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잠에서 깨어난 것은 지원이었다.

 

 그는 자신의 팔을 베고 옆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세희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쌔근쌔근. 욕심 많은 그에게 시달린 지난밤 때문인지, 누가 보쌈해가도 모를 정도로 깊게 잠들어 있었다.

 

 지원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걸렸다. 그가 사랑하는 여자는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사랑스러울 것 같아서 큰일이다.

 

 좋다.

 

 너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이 순간이.

 

 

 

 그는 입가에 나른하게 떠오른 미소를 굳이 지울 생각이 없었다. 시트를 걷고 침대를 벗어났다.

 

 그러면서도 미련이 많이 남는지, 잠든 세희에게 준 시선은 떠나갈 줄 몰랐다. 커다란 손을 들어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정리해주었다.

 

 그때, 떠나간 온기에 대한 허전함 때문인지 옆구리가 시려서 그런 건지. 지원이 자리에서 뜨기 무섭게 세희가 폭 덮고 있던 시트 밖으로 팔을 뺐다. 그러고서는 본능적으로 온기의 주인을 찾으며 뒤척였다.

 

 잠결을 통해 드러난 무의식은 이성의 지배를 벗어나게 된다.

 

 

 

 지난밤 몰아쳤던 순간을 지나, 지원이 애써 세희의 몸을 꽁꽁 싸놓았던 시트가 그녀의 뒤척임과 함께 착하게도 몸에서 조금 멀어지며 새하얀 속살이 조금 드러났다.

 

 끄응.

 

 지원은 마른세수를 하며 다른 쪽으로 눈길을 돌려버렸다.

 

 그렇게 갖고 싶던 것을 가졌으니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자극 받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건만. 남자의 본능을 가소롭게 여긴 그의 오만을 비웃기라도 하듯, 어째 하나의 산을 넘으니 또 다른 산이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는 욕실로 걸어가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으면서 거품을 푼 뒤, 입욕제를 넣었다.

 

 그러고서는 성큼성큼.

 

 시트를 온몸에 돌돌 감은 채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순진한 양님을 번쩍 들어올렸다.

 

 포근하게 그녀를 재워주던 땅이 붕하고 떠올랐다.

 

 “?!!!!”

 

 갑자기 닥쳐온 위치 변화는 아주 심하게 가출해 있던 정신을 순식간에 현실로 끌어올리고도 남았다.

 

 

 

 세희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자신을 안고서 욕실로 향하는 지원을 올려다보았다.

 

 끔뻑끔뻑.

 

 놀라서 커진 눈동자며, 그녀의 어느 것 하나 지원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이렇게 끙끙거리며 참느니 차라리 정말 수행이라도 하며 사리를 만드는 것이 낫겠다 싶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난감하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한 그 말을 끝으로, 지원은 품에 안고 있던 세희를 아무 미련 없이 욕조 안으로 넣었다. 끓는 물에 닭 넣듯.

 

 빠른 손놀림으로 그녀를 둘러싼 껍질 분리에 성공하여 시트가 젖을 일은 없었다.

 

 

 

 “다 씻으면 나와.”

 

 세희는 그제야 지원이 자신을 내려두고 간 곳이 욕실임을 알아차리고 이미 닫혀 버린 문을 쳐다본 뒤, 따뜻한 물에 몸을 깊이 묻었다. 뭉친 근육이 풀리며 나른해졌다.

 

 잠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자 정신이 맑아지며 절대 잊을 수 없을 장면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전날 밤, 지원의 고질적인 외로움이 완전히 사라지길 바랐는데.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온기에 대한 허기짐을 채우려고 작정을 한 것처럼. 지원은 그녀를 놓지 않았다. 몸짓 하나 하나, 애절하지 않은 것이 없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젖어들어 갔다. 그를 통해 충만해진 것은 오히려 자신이었다.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외로움은 이제 사랑이라는 온기에 완전히 눌려 그의 마음에서 사라질 준비를 시작했다. 다만, 외로움의 자리를 들끓는 피가 대신하여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임을.

 

 지난밤의 장면들이 세희의 머릿속을 빠르게 휘젓고 지나갔다. 그녀의 양 볼 가득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한참 동안 물에서 다리로 참방참방 장난을 치며 앉아 있던 그녀는 푹 자지 못해 굳은 근육들을 풀어주고서 욕조에서 나와 몸에 묻은 거품을 씻어냈다.

 

 

 

 샤워를 마치고 다시 침실로 돌아왔을 때,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던 지원이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거리며 응접실로 넘어가니, 언제 준비했는지 그는 룸서비스를 받아놓은 상태였다. 솔직한 그녀의 위는 테이블 위에 한상 차려놓은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의 빛깔에 바로 반응을 보였다.

 

 세희가 도톰하게 잘 발려져 있는 광어회 한 점을 테이블로 다가와 젓가락으로 집어 들자, 지원이 그녀의 앞으로 초고추장 종지를 내밀며 말했다.

 

 “앉아. 특별히 주문했어. 서울 올라가면 이렇게 싱싱한 회는 못 먹으니까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 둬.”

 

 “오빠야 말로 많이 먹어요. 나 어제 혜빈 언니랑 많이 먹고 와서 괜찮아요. 자, 아.”

 

 입을 오물오물 거리면서도 지원에게 맛 보여주기 위해 회 한 점을 집어 양념을 찍은 뒤, 흐르지 않게 한 손을 받친 채 그의 앞으로 내미는 세희였다.

 

 싱싱한 회를 바로잡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이곳만의 특징이자 좋은 점이다. 세희라면 모를까 지원에게는 별 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지만.

 

 

 

 그녀가 내민 회를 받아먹으면서도 눈은 음식이 아닌 전혀 다른 곳에 관심이 쏠렸다.

 

 샤워를 마치고 바로 나온 터라, 세희는 목욕 가운 하나만 달랑 걸치고 있는 상태였다.

 

 저 요망한 가운 같으니.

 

 그는 몰래 한숨을 내쉬며 입기만 해도 야릇해지는 애꿎은 가운 탓을 했다.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살랑살랑 움직이는 저 가운의 움직임을 따라 지원의 눈도 움직인다.

 

 원래 저렇게 섹시한 가운이었나?

 

 다른 사람도 아닌, 세희가 입고 있으니 미칠 지경이다.

 

 더 이상은 안 되겠는지, 지원은 탁. 세희의 손목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

 

 거부는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린다.

 

 “내가 먹을게. 옷, 입자.”

 

 “이거 다 먹고요. 입는 시간 얼마 안 걸리잖아요.”

 

 회에 푹 빠져버린 순진한 아가씨는 지원 한 입, 저 한 입 챙기며 그의 애타는 마음을 몰라준다.

 

 하아.

 

 

 

 오늘따라 그의 날숨을 통해 흘러나온 한숨의 무게가 유난히 무겁다.

 

 “그래, 시간 별로 안 걸려. 그러니까 얼른 입자.”

 

 지원의 고집 역시 만만치 않았다. 여기서 물러났다가는 음식이 배로 들어가는지 공기 중으로 증발해버리는지 모를 정도로 엉뚱한데 신경이 쏠릴 것이 분명했기에 미리 막아야 했다.

 

 “안 그럼, 내가 너 잡아먹을 지도 몰라.”

 

 “쿨럭...!”

 

 오물거리며 열심히 잘 먹다 그가 날린 마지막 한 마디에 세희의 입에서 미약한 화산이 튀어 올랐다. 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얼굴을 붉히며 후다닥 침실로 들어간 세희는 아침부터 침대 위에서 회를 대신할 먹잇감이 될 자신이 없는 탓에 빠른 동작으로 옷을 갈아입고, 기본 화장까지 마무리 한 뒤 지원에게로 돌아왔다.

 

 그제야 지원은 세희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싱긋 웃어준다.

 

 “예쁘다. 어서 먹자.”

 

 

 

 

 

 ***

 

 

 

 

 

 “이봐요, 전에 얘기했던 거랑은 말이 다르잖아요.”

 

 순진하군. 자신의 힘으로 들어온 회사를 내 덕에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사실대로 얘기 안 한 내 탓도 있겠지만 처음부터 우리의 거래는 성립되지 않는 거였어.

 

 「 아가씨. 아가씨야 말로 뭘 모르나 본데 전혀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나는 이득이 될 만한 일이 아니면 안 움직여. 내 나름대로 또 다른 길을 찾는 건데 무슨 문제 있나? 」

 

 “아직 약혼 얘기도 제대로 오고 가지 않는데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하라는 거죠?”

 

 「 쯧쯧. 일이 어찌됐든 우리의 거래는 없었던 걸로 하지. 회사 밖을 포함해서 내게 연락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 아, 아가씨에 대한 건 비밀로 해줄 테니 인턴 경력이나 쌓아서 나가도록 해. 」

 

 희박한 확률이지만, 내게도 기회가 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달칵.

 

 

 

 

 

 ***

 

 

 

 

 

 [화요일, 시간 괜찮죠? 뮤지컬 보러 가기로 한 약속, 썼으면 하는데. 화요일 7시에 아트홀에서 만나요.]

 

 지원은 민 지수로부터 온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핸드폰을 종료 시켰다.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한창 좋았던 기분에 찬 물을 끼얹은 기분이다.

 

 세희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뒤 호텔 로비를 걸어 밖으로 나온 그는 그녀를 데리고 어딘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객실에서 같이 있고 싶었다. 세희와 하루 종일 있을 수만 있다면 그는 기꺼이 그 하루를 그녀를 위해 바칠 수 있었다. 하지만,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같이 놀다 가자는 그녀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는 없었다.

 

 

 

 지원은 광안대교와 푸른 바다가 옆으로 펼쳐져 있는 방파제 길을 걸으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기, 어제 누나랑 갔다 오지 않았어?”

 

 “아니요? 언니랑은 바다 구경만 하고 호텔에서 뒹굴 거리며 노느라 못 가봤어요.”

 

 “나무 많으면 산이랑 같잖아. 뭘 보고 싶다는 거야? 바다도 지금 여기 걸어가면서 보고 있으면서.”

 

 못마땅한 얼굴로 투덜투덜. 세희는 잡고 있던 지원의 손을 놓았다. 노는 것을 그렇게 즐기는 성격이 아니라서 피곤한 그녀였지만, 지금 이렇게 가는 이유는 지원과 함께 걷고 싶어서였다.

 

 자신이 저곳에 가면 안 될 이유를 늘어놓는 지원을 보아하니, 수십 가지는 더 늘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소에는 자로 잰 듯, 너무나도 반듯하게 자신을 향한 배려를 내어주는 그가 오늘만큼은 걷기 싫어하는 아이 같다. 어떨 때는 속이 깊어 좋다가도, 이럴 때는 여자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몰라주니 섭섭했다.

 

 흥하고 콧바람을 뿜어낸 세희는 꾸물거리는 지원을 내버려둔 채, 먼저 걸어갔다.

 

 싫으면 오지 말던가.

 

 

 

 .......그럴 리가 있나.

 

 지원은 쌀쌀맞은 세희의 걸음을 쫒으며 뒤에서 마지못해 따르는 척, 천천히 걸어갔다.

 

 세희가 지원과 가고자 한 곳은 동백섬이었다. 아직 호텔의 체크아웃을 하지 않아, 돌아가 봐야 했기 때문에 해운대 바다에 들러 시원한 바다 바람을 즐긴 뒤 동백섬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갔다.

 

 지원이 서울로 올라가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고 생각한 그녀는 부드럽게 그를 달랬다.

 

 “오빠, 동백섬 구경만 끝나면 서울로 돌아가요.”

 

 세희가 어서 구경하러 가자며 손을 내밀었다.

 

 지원은, 망설임 없이 그 손을 잡았다.

 

 마주잡은 두 손은 처음부터 그렇게 이어져 있는 것처럼, 따뜻하고 든든하다.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하늘 가득,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맑은 날 왔더라면 푸른 풍경들 더 예쁜 모습으로 볼 수 있었을 텐데. 비가 오려나 보다.

 

 

 

 동백섬의 산책로를 따라 해안가를 구경하며 조금 더 걷다보면 누리마루로 넘어가기 위한 흔들다리가 나온다.

 

 “다리 길이 너무 길다......”

 

 세희는 허공에 붕 떠 있는 긴 다리를 겁에 질린 얼굴로 보았다. 고소공포증까지는 아니었지만 발밑에 지지할만한 뭔가가 없다는 것은 한 걸음을 내딛기도 전부터 발을 무겁게 했다.

 

 “뭐가 그렇게 무서워, 내가 있는데.”

 

 지원이 먼저 다리 입구로 걸어가 어깨를 웅크리고 제자리에 서서 꿈쩍도 않는 세희에게 손을 내밀었다. 걱정 말고 따라오라는 듯.

 

 갑자기 멀쩡한 다리가 뚝하고 끊길 확률은 낮았지만, 그래도 지원의 말 한 마디에 용기가 난다. 그녀는 콩알 만해진 심장을 부여잡고서 다리 위에 발을 내딛었다.

 

 흔들흔들.

 

 지원이 뒤에서 그녀를 지켜주고 있다는 것과는 별개로, 생생하게 흔들리는 다리는 세희의 걸음을 주춤. 평소대로 시원스럽게 걷지 못하고 있었다.

 

 “앞만 보고 밑에는 내려다보지 마.”

 

 “오빠.......”

 

 “이거 넘어가서 나머지도 구경해야지.”

 

 

 

 평소처럼 씩씩하게 건너갈 줄 알았는데 거북이걸음으로 쩔쩔 매는 세희를 달래면서 지원의 머릿속으로 좋은. 한편으로는 조금 짓궂다고 생각될 수도 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다리를 건너기 시작하면서 절대 흔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세희였지만, 이 방법만큼 그녀의 걸음을 재촉할 수 있는 것은 아마 없을 것이다.

 

 돌아가자고 하는 나약한 말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단호하게 결정한 것이기도 했다.

 

 좋아하는 여자를 놀리고픈 유치한 소년처럼 몸의 반동을 이용하여 다리를 흔들었다.

 

 세희가 어쩔 줄 몰라 쩔쩔 맨다.

 

 “꺅! 흔들지 말라니까요?”

 

 능청스러움까지 곁들였다.

 

 “나 아니야, 이게 바람 때문에 알게 모르게 흔들리나 봐. 세희야, 이제 반도 안 남았어. 빨리 가자.”

 

 그는 속으로 다리의 줄을 잡고 꼭 붙어있는 세희를 보며 귀여워 어쩔 줄 몰랐다. 간질거리는 가슴을 느끼며 그렇게 그녀가 먼저 건너기만을 기다리자, 도도도 아주 빠른 걸음으로 다리를 건너버리는 세희가 아닌가.

 

 어지간히도 무섭긴 무서웠나 보다.

 

 

 

 

 

 ***

 

 

 

 

 

 흔들다리를 건너온 그들은 하얀 등대가 있는 전망대에 올랐다.

 

 지원은 시원한 바닷바람을 들이마시며 눈을 감고 있는 세희를 불렀다. 바람에 흩날리는 부드러운 머릿결을 조심스레 손에 담는다.

 

 “세희야.”

 

 그러자 세희가 그를 돌아본다.

 

 

 

 인생을 살다보면 내가 아는 일들, 아는 순간들은 너무 익숙해서 그게 어떤지도 모르고 지나쳐버리는데. 반대로 처음 만나는 순간들, 내가 못할 거라며 해보지도 않고 겁부터 먹고 좌절하려 하는 순간들도 있다.

 

 하지만, 하늘은 내가 견뎌낼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준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처음에는 좀 겁먹더라도 꿋꿋하게 그 순간을 져버리지 않으면 그 노력은 언젠가 반드시 보답해 줄 것이다.

 

 세상은 생각보다 노력을 빨리 알아봐준다.

 

 그러니까.

 

 “아까처럼, 무섭다고 겁먹지 말고. 망설이지도 않겠다고 약속해. 내가 있잖아. 그렇게 해내면 되는 거야. 내가 곁에서 지켜줄게.”

 

 

 

 세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흐린 날씨에 더불어 부는 바람은 차가웠다. 지원은 세희를 제 쪽으로 당겨 안았다.

 

 “안 추워?”

 

 “괜찮아요. 우리 마지막으로 누리마루만 구경하고 돌아가요.”

 

 누리마루를 돌아본 지원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그냥 회의실인데?”

 

 “그래도 이 회의장이 경관 예쁘기로 알려진 건물이래요.”

 

 회의실에서 내다본 바깥 풍경에서 무엇을 본 것인지 몰라도, 지원의 표정이 아까와는 달리 조금 가라앉았다.

 

 “내려가서 바깥도 보고 돌아가자.”

 

 지원은 세희의 손을 잡고 회의실이 위치한 2층을 내려와 해안가를 볼 수 있는 펜스로 걸어갔다.

 

 지원은 바위를 쓸며 오고 가는 파도를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무슨 이유에선지, 한동안 그는 아무 말이 없었고. 어깨 위로 많은 것들을 지고 있는 듯했다.

 

 길게 이어질 것 같던 침묵은 지원에 의해 생각보다 쉽게 깨졌다.

 

 

 

 “이틀 뒤에, 민 지수랑 약속이 있어.”

 

 꺼내기 힘든 말이었다.

 

 “무슨......”

 

 “뮤지컬 보러 가야 돼.”

 

 지원은 몸을 돌려 그의 뒤에 서서 가만히 있는 세희를 보았다.

 

 “왜 가지 말라고 하지 않는 거지?”

 

 “......오빠가 아무 이유 없이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닌 거 아니까요.”

 

 맞는 말이었다. 민 지수에 의해 세희가 강 회장에게 노출되는 일은 막아야 했기에 무리하면서까지 일시적으로 민 지수의 분위기를 맞춰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듣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었다.

 

 “나보고 가지 말라고 해. 네가 가지 말라고 하면 나는 안 가.”

 

 

 

 투둑.

 

 투두둑.

 

 하늘에서 무거운 몸으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던 먹구름은 무게를 견디지 못했는지 기어코 빗방울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걸어 다니던 사람들은 후다닥 빠른 걸음으로 저마다 비를 피해 달려갔다.

 

 

 

 마음 같아서는 수십 번 넘게 민 지수로 인해 더 이상 불안하게 하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하고 싶은 세희였다. 하지만 민 지수를 멈출 방법도, 지원이 무슨 이유 때문에 민 지수와 만나려 하는지도. 전부 알 수 없는 것들이었기에 지켜보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저 옆에서 곁을 지키며 민 지수와의 관계가 정리되는 날을 기다리는 것만큼 속이 타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속마음과는 다르게,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만큼 아픈 것도 없을 것이다.

 

 그걸 다 알면서도 대답을 강요하는 마음 역시 소리 없는 눈물로 젖어든다.

 

 

 

 투두둑.

 

 투두두둑.

 

 쏴아아-

 

 빗줄기가 거세졌다.

 

 참다못한 지원은 세희의 허리를 당겨 안으면서 거칠게 입술을 찾았다.

 

 배려 없이 몰아붙이는 그는 지금 현실에 화가 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속마음은 현실을 어떻게 하지 못해 불안해하고 있을 세희에게 그저 미안했다. 그러면서도 여태껏 강 회장에게 끌려 다니기만 했던, 주체적이지 못한 자신이 미웠다.

 

 집어 삼킬 듯 그녀에게 모든 것들을 퍼붓는다.

 

 내가 내 삶을 살았더라면 지금 덜 힘들지 않았을까.

 

 그동안의 행동이 지금의 그를 만든 것이다. 여태껏 끌려 다니기만 했고, 강 회장에 의해 회사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희생되어 왔던 날들도 숱하게 많았던 지원이었다.

 

 그러니, 그동안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책임져야만 한다.

 

 이제는, 아프지 말자.

 

 

 

 지원이 이끄는 대로 그의 가슴팍에 안긴 세희는 두 손을 단단한 가슴 위에 올린 채, 그에게 모든 것을 내맡겼다.

 

 두 사람의 옷이 비에 젖어들고, 머리카락이 축축하게 내려앉았을 때.

 

 지원은 세희에게서 떨어지며 엄지로 그녀의 눈가를 조심스럽게 쓸었다.

 

 “...다 젖었네. 감기 들겠다.”

 

 그와의 입맞춤이 여전히 부끄러운지, 세희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인다.

 

 “괜찮아요. 가요.”

 

 

 

 한 걸음을 내딛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세희와 함께 더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지원의 목소리가 조금 상기됐다.

 

 “...돌아가서 씻고, 머리도 말려야겠지?”

 

 “......”

 

 “따뜻한 물에 물도 담그고.”

 

 또 한 걸음을 내딛었다.

 

 지원은 천천히 걸어가던 세희의 허리를 낚아챈 뒤, 번쩍 들어 위로 올렸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내일 출근하지 말까, 우리?”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공지 반전을 사랑한 남자 완결 안내 2017 / 7 / 28 580 0 -
81 제 80 화. 외전(2) - 그대를 바라다 (完) 2017 / 7 / 28 367 0 12984   
80 제 79 화. 외전(2) - 그대를 바라다 2017 / 7 / 28 309 0 8901   
79 제 78 화. 외전(1) - Love in France 2017 / 7 / 28 287 0 7659   
78 제 77 화. 그대가 있어 행복하다 2017 / 7 / 28 308 0 10895   
77 제 76 화. 해후(邂逅). 사랑합니다 2017 / 7 / 26 287 0 12784   
76 제 75 화. 서로 아끼며 사랑해 나가겠습니다 2017 / 7 / 26 302 0 9029   
75 제 74 화. 사랑해서 그런가 보다 2017 / 7 / 26 325 0 12591   
74 제 73 화. 사필귀정(事必歸正) 2017 / 7 / 26 292 0 8661   
73 제 72 화. 날아간 총알의 끝에는 2017 / 7 / 26 308 0 7440   
72 제 71 화. 구슬픈 진동소리 2017 / 7 / 26 303 0 10599   
71 제 70 화. 폭풍전야 2017 / 7 / 24 304 0 9231   
70 제 69 화. 이 남자와 행복하게 살고 싶다 2017 / 7 / 24 313 0 12421   
69 제 68 화. 사랑은 성숙하게 만든다 2017 / 7 / 24 292 0 10196   
68 제 67 화. 성숙함을 위한 기다림 2017 / 7 / 24 295 0 8136   
67 제 66 화. 방아쇠를 당기다 2017 / 7 / 24 279 0 7235   
66 제 65 화. 오늘 밤은 안 재울거니까 각오해 2017 / 7 / 24 293 0 10142   
65 제 64 화. 딸 주기 싫은 아버지의 밀당 2017 / 7 / 21 298 0 7785   
64 제 63 화. 무섭다고 겁먹지 말고. 망설이지도 … 2017 / 7 / 21 310 0 8261   
63 제 62 화. 아련한 불빛이 흩어진 밤, 넘어가다 2017 / 7 / 21 312 0 9973   
62 제 61 화. 본능과 끊임없이 싸우며 노력하는 … 2017 / 7 / 21 288 0 6519   
61 제 60 화. 네가 행복하면 그걸로 된 거야 2017 / 7 / 20 302 0 6300   
60 제 59 화.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는 법이 없… 2017 / 7 / 20 304 0 7420   
59 제 58 화. 그러니까, 못 놔 줘 2017 / 7 / 20 286 0 8692   
58 제 57 화. 텅 빈 속을, 마음을, 따뜻하게 가득 … 2017 / 7 / 20 296 0 8089   
57 제 56 화. 사랑 때문에 무릎 꿇은 남자 2017 / 7 / 20 292 0 8720   
56 제 55 화. 그래, 사랑이 뭐 별 거 있나 2017 / 7 / 20 289 0 8629   
55 제 54 화. 허공에 대고 불러보는 간절한 이름 2017 / 7 / 20 307 0 6552   
54 제 53 화. 뜨거운 태양 아래 홀로 싸우려는 남… 2017 / 7 / 19 292 0 7397   
53 제 52 화. 어림도 없지 2017 / 7 / 19 285 0 6555   
52 제 51 화. 덮쳐, 말아? 2017 / 7 / 19 274 0 7095   
 1  2  3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콩깍지라는 마법
샤뚜르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