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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반전을 사랑한 남자
작가 : 샤뚜르
작품등록일 : 2017.7.5

강지원, 29살의 젊은 사장은 얼음 왕자라는 별명으로 직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직원들도 피해가는 그에게, 회사의 햇병아리가 어느 날 찾아와 태클을 건다. 그는 그녀가 만만했었다. 이세희, 24살의 인턴 사원. 상상 속 50대 사장과는 다른 조각미남이 나의 상사라니! 사랑 때문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 남자와 귀엽지만 반전 있는 그녀의 좌충우돌 연애 이야기.

 
제 62 화. 아련한 불빛이 흩어진 밤, 넘어가다
작성일 : 17-07-21 13:37     조회 : 312     추천 : 0     분량 : 9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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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전을 사랑한 남자

 

 

 

 

 

 제 62 화. 아련한 불빛이 흩어진 밤, 넘어가다

 

 

 

 한편, 세희와 혜빈은 길어지는 이야기를 더 분위기 좋은 곳에서 나누기 위해 지원의 회사 근처에 있는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악수를 나눈 이후부터 점점 분위기가 냉랭해지기 시작하던 남자들은 사나이들끼리 할 얘기가 있다며 그녀들을 먼저 보냈더랬다.

 

 그렇다면 아직 레스토랑에 남아 있을 것이다.

 

 반면, 여자들은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워낙 서로의 취향이 비슷한지라. 남자들의 분위기 따위 신경 쓸 틈도 없었다.

 

 혜빈은 앞에 놓인 케이크를 포크로 한 입 잘라먹으며 말했다. 그녀의 눈이 짓궂게 빛났다.

 

 예술가들은 사실적인 작품의 표현을 위해 관찰력을 기르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미술을 전공한 탓인지, 혜빈의 관찰력은 빛의 속도만큼이나 빨랐다.

 

 순식간에 그녀의 눈에 잡힌 장면들을 포착할 수 있었던 덕분에 레스토랑에서부터 세희와 얘기를 나눌 때, 그녀에게서 보게 된 붉은 자국 하나가 흥미를 끌었다.

 

 말 안 해도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지만, 제 동생이 사랑에 그렇게 적극적일 줄은 몰랐다. 강 회장의 엄격한 교육 탓에 그의 눈치를 보면서 자라온 지원의 삶은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언니 희연과 자신이 부모님에게서 채우지 못한 부분들을, 그가 부모님에게 진심어린 관심을 받으며 자라지 못해 구멍 난 부분들을 곁에서 여느 남매들 보다 더 챙겨주었다.

 

 그녀들마저 없었더라면 지금의 그가 얼마나 더 외로울지 상상이 가지 않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속에 자리한 고질적인 외로움은 좀처럼 사라질 줄 몰랐다.

 

 그렇게 그는 대한민국 재계에서 손꼽히는 인물로 거듭 났다.

 

 외로움을 바탕으로 표정 하나 쉽게 내비치는 법 없는 냉철한 사업가로.

 

 

 

 지원을 그렇게 만든 것이 강 회장의 그릇된 욕심이라는 것을 알기에 지켜보는 내내 안타까웠지만 이제 그런 그의 곁을 지켜줄 이가 생겼다는 사실에 조금 마음이 놓인다.

 

 “세희씨, 내가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네.”

 

 “우리 동생, 내가 봐도 엄청 무뚝뚝하고 차가워 보일 때가 많거든? 근데 그런 애가 네가 엄청 좋은가 보다.”

 

 “무슨...”

 

 만난 지 얼마 안 된 혜빈과 아무리 대화가 잘 통한다 해도 그녀는 엄연히 지원의 누나였다. 게다가 처음 만난 사이였고, 항상 사이가 좋던 지원과 도진의 분위기마저 싸늘했다.

 

 지원이 대놓고 혜빈의 앞에서 그녀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적은 없었는데. 세희는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세희를 바라보고 있는 혜빈은 속으로 씨익 웃었다.

 

 아까 지원의 사무실 앞에서 처음 세희를 만났을 때 그녀를 보고 강아지 같다는 생각을 한 것처럼, 자신의 짓궂은 장난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몹시 궁금했다.

 

 

 

 그래서 굳이 얘기 안 해도 될 문제를 아무 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물어본다.

 

 혜빈은 세희의 목덜미에 자리한, 정면에서 45도 빗겨나간 위치의 붉은 자국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거, 너무 진하게 새겨놓은 거 같은데?”

 

 사랑하면 서로 닮는다더니. 도진의 능글거림이 제게로 옮겨왔나 보다. 원래 그녀의 성격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도 있지만 말이다.

 

 아니야. 저렇게 잘 보이는 위치에 떡하니 있는데 회사에서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나중에 곤란해지는 것보다는 지금 잠깐 그러는 게 나아라며 합리화를 가장한 변명으로 장난의 명분을 세운다.

 

 “......”

 

 세희의 얼굴이 건드리면 톡하고 터져버릴 잘 익은 홍시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지원은 세희에게 사장실 옆의 사무실을 내준 뒤로 거의 그곳에 출석 도장을 찍다시피 하며 자주 출몰했었는데, 가끔 이렇게 장난 아닌 자극을 해올 때가 있었다.

 

 세희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귀여워 죽겠다나 뭐라나.

 

 이씨, 오늘은 좀 하지 말라니까.

 

 

 

 세희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슬며시 머리카락을 끌어와 붉은 자국을 가려버렸다.

 

 ‘ㄱ.. 귀엽다.’

 

 혜빈의 속마음에서는 그런 세희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건드리면 바로 반응하고, 귀엽게 얼굴도 붉게 달아오르는 저 아가씨. 그녀 역시 세희처럼 귀여움에 사족을 못 썼다.

 

 보면 볼수록 여동생 삼고 싶을 만큼 정말 사랑스러운 여자였다.

 

 지원의 왜 이 아가씨에게 목을 매는 지, 짐작이 갔다.

 

 그런데 귀여운 아가씨가, 창밖을 한 번 내다보더니 갑자기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얼굴 가득 근심을 채워 넣는다.

 

 세희의 시선을 따라 밖을 내다보니, 그들의 옆으로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여자가 당당한 걸음걸이로 지나가고 있었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모양인지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왜 저 여자를 보고 저럴까?

 

 “세희씨, 왜 그래?”

 

 세희가 본 여자는, 민 지수였다.

 

 자신과는 전혀 다른 당당함을 가지고 있는 그녀에게, 웬만한 일에 대해 쉽게 기운이 없어지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지원과 관련 있는 사람이어서 자꾸 신경이 쓰인 세희였다.

 

 

 

 “언니.”

 

 “응?”

 

 지원의 마음과는 달리, 혜빈 역시 그의 아버지처럼 회사를 우선시하는 독단적인 사람일까 봐 선뜻 이런 말을 꺼내기가 망설여졌지만 평소에 지원에게서 누나들의 이야기를 몇 번 들은 적 있는 세희는 그녀의 자유분방하고 솔직한 성격을 믿어보기로 했다.

 

 “언니도 오빠에 관한 소문 알고 계세요?”

 

 “아......”

 

 무슨 일인가 했더니, 아까 본 여자가 세희의 상태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혜빈은 홍차를 한 입 마시며 세희의 손을 잡아주었다.

 

 자신 역시 인생 경험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제 동생의 인연에 대해 뭐라 말할 수도 없지만.

 

 그거 아니.

 

 인생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게 나름의 매력이라는 걸.

 

 생각과는 다른 풍경에 실망하고 좌절하며 여러 번 깨지기도 하지만, 그러면서 우리는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한다는 걸.

 

 내 동생, 아버지와 싸우려고 마음먹으면서까지 널 지키려고 마음먹었으니 괜찮을 거야.

 

 우리 아버지, 그렇게 호락호락하신 분은 아니지만 내 동생 곁에서 있어줘.

 

 절대 안 될 것 같은 일들도 틈이 보일 때가 있으니. 포기하지만 마라.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이것뿐이라서 미안한데, 나는 내 동생을 믿어. 그러니 세희 씨도 내 동생 쉽게 포기하지 마. 걔, 세희 씨 없으면 안 돼.”

 

 해줄 수 있는 말이 고작 이거 뿐이여서 답답한 혜빈이었지만, 그녀가 세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에너지 충전.

 

 “우리 예비 올케, 코에 바람 좀 넣어줘야겠는데? 주말에 이 언니랑 놀러 가자.”

 

 “네?!”

 

 “1박 2일 정도는 지원이랑 떨어져 있어도 괜찮잖아. 언니가 남친 차 빌려서 데리러 갈게.”

 

 그리하여, 그녀들의 여행이 결정 되었다.

 

 

 

 

 

 ***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절대 그녀들이 어디로 향하는 지에 대해 한 마디도 않던 혜빈이 세희를 데리고 간 곳은 바다 앞에 있는, 광안대교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최고급 호텔의 스위트룸이었다.

 

 “구경 좀 하고 있어.”

 

 인상적인 붉은 소파가 위치하고 있는 응접실을 지나 한 쪽 면이 푸르게 뚫려 있는 침실로 들어갔다. 그들이 묵게 된 객실의 침실 구조는 특이했다. 보통, 창문의 측면에 침대를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인 배치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창문과 정면으로 마주보는 위치에 침대 헤드가 배치되어 있었다. 덕분에 푸른 바다와 광안대교를 침대에 누워서도 한 눈에 마주할 수 있었다.

 

 게다가 층도 높지도 낮지도 않은, 바다를 전면에 두고 볼 수 있는 위치여서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세희가 짐을 내려놓으며 객실을 둘러볼 동안 혜빈은 핸드폰을 꺼내 남자 둘에게 문자를 보냈다. 여자들만의 비밀 여행이니 당분간 찾지 말라는.

 

 [자기야, 어제 얘기한대로 잘 부탁해. 연락 금지.]

 

 [네 애인은 내가 인질로 잡고 있으니 찾을 생각 마. 당연히 세희 씨, 집에 없을 거야.]

 

 그녀가 날린 폭탄이 남자들에게 어떠한 파장을 가지고 올 지,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혜빈은 놀 생각에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짐을 풀기 위해 침실로 돌아왔다.

 

 세희 역시 오랜만에 놀러온 것이어서 목소리가 들떴다.

 

 “언니, 경치가 너무 멋져요.”

 

 “어때, 이제 좀 덜 답답하지? 내가 우리 올케 숨 좀 트이라고 제일 좋은 방 잡았잖아. 아, 그리고.”

 

 혜빈이 세희의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네?”

 

 “핸드폰 줘. 내일까지 지원이랑 통화 금지야. 모처럼 놀러왔는데 이왕 즐기는 거, 확실하게 즐겨야지. 현실과는 잠시 안녕 하고. 나도 방금 핸드폰 끄고 온 참이야. 문자는 미리 보내뒀으니 걱정 말고.”

 

 잠시 망설이던 세희는, 고작 하루 정도 가지고 별 일 있겠나 싶어 흔쾌히 핸드폰을 넘겨주었다.

 

 

 

 그녀 역시 아무런 예상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큰 태풍이 몰아치리라고는.

 

 “이제부터는 이 언니만 따라 와.”

 

 

 

 

 

 ***

 

 

 

 

 

 혜빈이 세희를 데리고 다니며 보여준 것들은 세희의 마음속에 자리한 걱정과 불안을 잠시 잠재울 만큼 즐길 거리가 가득했다.

 

 탁 트인 바다 전경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답답했던 기분이 확 트이는 느낌이었는데, 찰랑거리는 파도 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오는 해운대 백사장에서 바다공기를 만끽하고. 점심으로 광안리로 넘어가 배가 터질 만큼 회도 먹고. 호텔로 돌아와서는 전신 마사지까지 받으니 온 몸이 노곤노곤 했다.

 

 신선한 바다 공기와 갓 잡아서 먹었던 회는 스트레스는 물론, 회사 업무로 지쳐 있던 몸을 에너지로 가득 차게 했다.

 

 

 

 혜빈은 백사장에서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호텔 옆에 위치한 푸드 마켓에서 사온 안주와 함께 객실 내에 있는 바에서 작은 병의 술을 몇 병 꺼내왔다.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워낙 털털한 성격이라 기분이 좋을 때면 조금 마시곤 했다.

 

 카운터에 부탁해 받은 얼음을 각자의 잔에 채워 넣은 뒤 하얀 액체를 따라 넣었다.

 

 “건배!”

 

 각자 잔을 기울이며 창밖을 바라보니, 불빛이 가득한 광안대교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풍경에 시선이 빼앗겨 버린 그들이었다.

 

 “언니.”

 

 “응?”

 

 세희가 비어버린 잔에 술을 따르며 혜빈에게 물어왔다. 혜빈은 술이 잘 맞는 체질이라 좀처럼 취할 줄 몰랐는데, 몇 마디 주고받는 사이 몇 잔을 비워버린 세희의 얼굴에 점점 붉은 기가 돌기 시작했다.

 

 “언니는 윤 도진 씨랑 어떻게 만나셨어요?”

 

 “아, 그러고 보니까 걔들이 친구 사인 줄은 꿈에도 몰랐네. 나? 그게......”

 

 혜빈의 이야기를 들으며 술잔을 기울이던 세희는 이제 완전히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그런 이야기, 드라마에서나 볼 것 같은데. 실제로도 있는 이야기네요... 히끅!”

 

 “세희 씨? 이제 그만 마셔야 할 것 같은데......”

 

 세희가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을 길게 늘어뜨린다.

 

 “무슨 소리에요오~ 아직 시작도 안 했다구요오...... 나 오늘 실컷 놀다 갈끄야아......”

 

 취해도 너무 취했다.

 

 혜빈은 난감했다. 취하려고 마시기 위해 마련한 자리가 아닌 만큼. 여행의 여흥을 즐기려고 한 잔만 마시려고 했는데.

 

 세희의 물음에 도진과의 만남을 되돌아보느라 그녀가 계속 잔에 술을 따라 마신다는 것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지 않았다.

 

 이 아가씨는 술을 마시면 더 귀여워 지는구나 생각하며 혜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세희의 어깨를 부축하여 침대로 데려갔다.

 

 “세희 씨, 먹긴 뭘 더 먹으려고 그래. 그러다 숙취 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이제 막 세희를 침대에 눕힌 뒤 이불을 덮어준 혜빈은 진땀을 흘리며 숨을 내쉬었다.

 

 

 

 그때.

 

 쾅쾅!

 

 그녀들이 묵고 있는 객실의 문을 다급하게, 무게감이 느껴지는 힘으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올 사람 없는데.’

 

 “누나!”

 

 지원이었다.

 

 뭐야. 저 놈이 왜 여길 와.

 

 전날 믿었던 도진에게 자신의 행방을 상세하게 흘려버린 혜빈의 여행은 처음부터 비밀 여행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지원의 협박 아닌 냉랭한 말에 도진은 어쩔 수 없이 꼬리를 내리며 사실대로 털어놔야 했으니 말이다.

 

 

 

 달칵-

 

 문을 열어주니 남자 둘이가 다짜고짜 얼굴을 밀며 들어오려 했다.

 

 “누나, 세희는?”

 

 “미안. 내가 둘이 여행할 수 있게 비밀 지키려 했는데 못 당하겠더라. 자기야, 우리는 우리 길을 가자.”

 

 혜빈의 의해 한 걸음도 못 들였지만 말이다. 그녀는 객실 문 앞에 딱 버티고 섰다.

 

 “지금 세희 씨, 자고 있으니까 일단 나가.”

 

 지원은 혜빈에 의해 도진과 객실 밖으로 끌려 나가면서도 시선은 세희가 이곳 어딘가에 잠들어 있다는 생각에 눈을 뗄 줄을 몰랐다.

 

 혜빈의 청천벽력과도 같은 문자를 받은 그는 누나의 말대로 하루 정도는 기다려줄 생각이었지만, 눈앞에 일거리가 있어도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세희 없이는 하루라도 못 참는 자신에게 욕을 날린 그는 집에서 나와, 혜빈에 관해 할 얘기가 있다는 핑계로 도진을 자신의 차에 태운 뒤. 그 길로 곧장 부산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통해 달려왔더랬다.

 

 도진이 안전벨트를 맨 채 손잡이까지 부여잡으며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지원을 보고 ‘미친 놈’ 소리를 할 정도로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세희 밖에 없었다.

 

 자신은 세희의 애인이니 혜빈이 막아설 이유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 그는 혜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세희가 잠들어 있는 객실로 들어가 버렸다. 뒷일은 도진의 몫이니.

 

 ‘아씨, 항상 곤란한 건 나한테 맡기고.’

 

 지원은 그의 누나 혜빈과 도진이 만나는 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상태였다. 문제는, 아버지를 속이기 위해 혜빈을 제외한 여자들에게만 한량 끼를 보인 도진 임에도 불구하고. 지원은 그게 그의 성격이라 생각한 나머지 그 부분을 곱게 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눈치가 보이는 도진은 지원의 ‘매형 소리는 기대하지 마’란 말에도 아무런 말을 못했다는 후문이다.

 

 그래, 내가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으로 처남 한 번 구해주는 셈 치지.

 

 

 

 도진은 지원을 따라 다시 객실로 들어가려는 혜빈을 막아 세우며 그녀의 뒤에 위치한 벽에 한 팔을 턱하고 짚었다.

 

 “야, 이거 놔. 쟤 쫒아내러 가야 된다고.”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는 도진의 그윽한 눈빛.

 

 자신을 내버려두고 가지 말라고 얘기하는 듯한 눈빛에 그녀는 갑자기 얘가 왜 이러나 싶어 입만 뻥끗거렸다.

 

 어째 분위기가 묘하게 야릇해져 가는 것 같다.

 

 그의 촉촉한 눈빛에 침이 꿀꺽 넘어갔다. 혜빈은 그런 도진을 내버려두고 다시 돌아갈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박력분 뿌리고 왔나, 얘가 갑자기 왜 이래?

 

 

 

 “누나 들어가고 나면, 나는?”

 

 “응?”

 

 “나는 누구랑 있어?”

 

 “너.. 너는 방 하나 따로 잡아서 있어. 지원이 보내줄게.”

 

 이게 아닌데.

 

 도진은 속으로, 이제 넘어오나 싶던 혜빈이 꼿꼿하게 버티고 있자 당황했다.

 

 그는 얼굴을 숙여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친구야, 이번마저 안 통하면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냥 남자 둘이 자야지.

 

 “누나, 지원이 한창 좋을 때야. 왜 굳이 사이에 끼어들어 분위기를 깨려 그래? 나랑 가자.”

 

 마치 혜빈이 그를 두고 들어갔다간, 훼방꾼 소리 밖에 못 듣는다는 듯.

 

 낮게 깔린 목소리는 애절한 눈빛과 함께 그녀의 배려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혜빈은 그윽한, 유혹의 색이 짙게 깔린 목소리에 홀라당 넘어가버렸다. 지원의 누나니까. 나이를 헛 먹은 건 아니니 배려해줘야지.

 

 “그런가? 그렇지? 쟤네 좋을 때지?”

 

 “가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민 도진의 웃음은 얼마 가지 못했다.

 

 “빨리 방에 들어가서 자자. 오랜만에 실컷 놀아서 피곤하네.”

 

 도진 역시 한창 좋을 때인데 말이다. 늑대의 엉큼한 속도 몰라주는 혜빈을 바라보던 그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에휴, 오늘은 나도 그냥 편하게 자련다.

 

 지원의 사고 한 번 안내던 살인적인 운전 실력에 기겁한 근육들이 피곤하다며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

 

 

 

 

 

 도진에게 혜빈을 맡기고 세희가 잠들어 있는 객실로 들어와 침실로 넘어온 지원은 혹시라도 그녀가 깰세라, 발소리를 죽이며 정면 창(窓)과 마주보고 침대로 올라왔다.

 

 술을 먹고 싶으면 자신이 보는 앞에서만 먹으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했건만. 간만에 놀러온 탓에 기분이 좋았는지, 아니면 그의 누나와 있었던 게 편했던 건지. 독한 술을 먹고도 쌔근쌔근 얌전히 자고 있는 세희였다.

 

 

 

 곤란한데.

 

 처음으로 세희와 단 둘이 남았을 때의 그는 서툰 마음을 표현하기에 급급했고,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단계였다.

 

 세희를 생각하는 감정은 그녀를 만나며 날이 갈수록 더욱 깊어만 갔다. 그녀의 모든 것을 제 것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낯선 욕심이 싹 트기 시작한 상태였다.

 

 이제 어느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오롯이 단 둘이 묵게 된 방.

 

 그런 그에게 닥쳐온 수십 번의 유혹을 뿌리쳐온 지원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쉽게 넘길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시야에, 야경이 만들어낸 빛을 통해 희미하게 비춰진 세희의 잠든 모습이 들어왔다.

 

 정확히는 남자들의 갑작스런 방문 탓에 혜빈이 미처 덮어주지 못해 드러난 하얀 살결이.

 

 혜빈과 얘기를 나누는 사이 몸을 조금 뒤척인 것인지, 새하얀 목욕 가운은 살짝 벌어져 있었고. 무릎 위로 올라간 끝자락은 다리의 아찔한 곡선을 가리는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원은 모든 감각들을 차단한 채, 뜨거워진 몸을 식히기 위해 욕실로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샤워를 마친 지원은 욕실에서 나와 잠이든 세희의 허리를 껴안은 채로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

 

 

 

 

 

 잠이든 지원의 곁에서 얌전히 자고 있던 세희는 잠결에 벌떡 일어나 화장실에 다녀왔다.

 

 끔뻑끔뻑.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잠이 든 터라, 뻑뻑한 눈은 잘 떠지지 않았다.

 

 세희가 다시 잠자리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몸을 꼼지락 거리자, 익숙한 체향이 가득 풍겨오며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고개를 돌리자, 방금까지 잠들어 있던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또렷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든 지원과 마주했다.

 

 

 

 혜빈이 아닌 지원이 자신의 옆에 있다는 사실에, 잠이 확 달아났다. 세희는 상체를 일으켜 세운 뒤 누워있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오... 오빠?!”

 

 그녀의 부름에 답하는 지원의 목소리는 무슨 이유에선지 낮게 가라 앉아 있었다.

 

 “움직이지 마. 그냥 얌전히 누워서 자.”

 

 “언니는 어쩌고 여기 있어요? 설마 내가 술김에 오빠한테 연락했어요?”

 

 순진한 눈빛과, 놀란 목소리로 자꾸만 물어오는 세희를 바라보던 지원은 탁한 한숨을 내쉬었다. 잠에 들긴 했었지만, 그녀의 내쉬는 숨소리. 사락거리는 시트 자락. 어느 것 하나 그의 귀를 자극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지원은 상체를 일으킨 뒤, 어둠 속에 익숙해진 눈으로 세희를 바라보며 그녀를 붙잡았다.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하느라, 여린 팔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단 둘이 있게 된 완벽한 상황에서 미친척하고 밀어붙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제게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술이 아직 덜 깼을 세희니, 그녀가 거부한다면 더 진행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렇게 그녀의 처음을 망치기는 싫었다.

 

 

 

 지원의 단호한 목소리가 밤공기를 통해 그들의 주변으로 낮게 깔렸다.

 

 “거부하려면, 지금 뿐이야.”

 

 “......”

 

 세희의 맑은 눈빛과 지원의 풍랑처럼 흔들리는 눈빛이 어둠 속에서 교차했다.

 

 잠시 동안 지원을 바라만 보고 있던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스르륵.

 

 지원이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잠도, 술기운도. 사라진 지 오래여서 결코 충동적으로 판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보았다.

 

 지원의 일렁이는 눈빛 깊은 곳에 자리한 외로움을. 그것은 너무 오랜 세월 동안 방치된 채 그렇게 쓸쓸히 묵혀만 두고 있었기에, 지나온 시간만큼이나 단단하게 그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녀는 보았다.

 

 배려가 가득 넘치는 지원이었지만 그런 그의 깊은 마음속에는 거절당하기 싫은 어린 아이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지원이 그녀에 대한 감정 표현에 있어서 어느 순간부터 거리낌이 없는 한편으로는, 뭔가를 억누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 적이 몇 번 있었다. 그저 느낌이려니, 늘 자신을 생각해 배려해주는 그가 고맙기만 했었는데.

 

 늘 받기만 해서 미안해요.

 

 당신의 그 아픔도, 외로움도.

 

 내가 할 수만 있다면 다 가져갈게요. 따뜻하게 안아줄게요.

 

 

 

 세희의 눈빛이 감기는 것을 확인한 지원은 그것을 신호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그동안 눌러왔던 남자의 욕망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다급하게 세희의 입술을 찾았다. 점점 더 깊어져 가는 분위기에, 그녀는 지원의 단단한 등을 꽉 껴안았다.

 

 온기를 맛보면 볼수록, 뭔가를 보상 받으려는 사람처럼. 지원은 필사적으로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입술을 베어 물고 그 속을 한참이나 탐하던 그는 세희를 조심스레 눕혔다.

 

 하얀 시트 위로 흩어진 풍성한 머릿결은 달빛을 받아 관능적으로 빛났다.

 

 

 

 거친 폭풍처럼 쉬지 않고 몰아치던 탓에, 세희의 입에서 마침내. 그녀가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커다란 손이 세희의 손에 깍지를 껴왔다. 서로의 손을 통해 전해져 오는 온기에, 가슴이 충만하게 차오른다.

 

 천천히 내려앉는 지원의 입술을 느끼며 그녀는 눈을 감았다.

 

 마치 소중한 것을 다루듯, 거칠기만 했던 아까와는 전혀 다른 입맞춤을 통해 그가 얼마나 자신을 아끼는지 느낄 수 있었다.

 

 

 

 광안대교의 야경이 찬란히 빛나는 침실.

 

 달빛이 휘영청, 밝게 내리 뜬 밤.

 

 그 빛에 비친 두 개의 인영이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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