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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너와 나의 세상
작가 : 은아린
작품등록일 : 2017.7.19

이제는 없는 그 아이를 찾아야해.


인간의 노예화를 추진 중인 뱀파이어와 인간과의 공존을 꿈꾸는 뱀파이어 사이에 서게 되었다.




어느새 내 지척에 다가온 라무엘이 한 손은 쇼파를 짚고 한 손으로는 내 턱을 잡아 자신에게로 돌렸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까만 눈동자가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달큰한 냄새가 훅 풍겨왔다.

"겉보기와 다르게 눈물 많고 여리다는거."

라무엘의 기다란 손가락이 내 눈매를 매만졌다. 차가운 손끝이 피부로 느껴졌다.

"뭔 개소리야."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는데 무슨 소리신지. 손을 탁 쳐내자 라무엘은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그를 흘겨보며 술병을 들어 안의 내용물을 입 안에 쏟아부었다.

 
너와 나의 이미 시작된 시간 3
작성일 : 17-07-21 13:01     조회 : 228     추천 : 0     분량 : 4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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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너와 나의 이미 시작된 시간(3)

 

 

 

 "크르릉-."

 

 난 그런 생각만하면 신이 엿먹으라고 시련을 내려주시는건가. 아, 신은 없으니 운명인가, 젠장. 거대한 변이 늑대가 새빨간 눈을 번뜩이며 우리의 지척에서 털을 곧추세우고 있었다. 그 거대한 변이 늑대의 뒤로 거짓말 조금 보태서 바글바글할 정도로 많은 변이 늑대가 침을 뚝뚝 흘리며 언제든지 뛰어오를 준비를 한 채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 뭐 개같은 경우가. 경계를 넘자마자 변이 늑대 떼가 몰려들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더군다나 필드보스몹같은 거대 변이 늑대를 떡하니 맞딱뜨리다니. 평생 한번 볼까 말까한 변이 늑대를 봤는데 운이 좋은건지 없는건지 모르겠네.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진 어이없는 상황을 변이 늑대 무리가 눈치채지 못하게 살펴보면서 상의 안쪽에 고이 모셔뒀던 단검 한쌍을 손에 움켜쥐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손님의 조직원들도 손님의 지시로 조심스럽게 자신들의 무기를 고쳐쥐고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변이 늑대들이 모르기를 바라면서 한 행동이기에 소리도 없이 아주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라무엘을 흘긋 보니 그는 태연한 얼굴로 양손을 늘어뜨린채 전방을 주시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라무엘이 나를 향해 슬쩍 웃어보였다. 역시 인간이 아니라서 그런건가 그에게서 긴장감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이 신호였는지 변이 늑대와 사람들이 한꺼번에 서로에게로 달려들었다. 짐승과 인간이 이리저리 뒤엉키고 피가 튀는 한가운데서 라무엘만이 고고하게 관망자의 입장인채로 있었다. 달려드는 변이 늑대를 가벼운 몸놀림으로 슬쩍슬쩍 피하기만 하고 제대로 공격은 하지 않는 라무엘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도대체가 뭐하는 작자길래 괴물을 살려두는건지.

 

 회갈색과 은색 털들이 사방에 날리고 있었다. 양손에 쥔 단검의 날을 세우고 나를 향해 달려오는 변이 늑대의 발톱을 막아내자 '카강'이라는 금속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순간적으로 불티가 허공에 흩어졌다.

 

 "젠장."

 

 엄청난 변이 늑대의 힘에 뒤로 주르륵 밀리면서 땅바닥에 길게 족적을 남겼다. 질척한 땅이 내 발을 움켜쥐고 있는 느낌이었다. 부딪힌 순간의 반동을 이용해 뒤로 훌쩍 물러났던 변이 늑대가 털을 세우고 재차 달려들었다. 밀릴 때 자세를 낮췄던 몸이 그대로 진흙 위를 굴렀다.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찰나 라무엘과 눈이 마주쳤다. 전혀 흐트러짐 없이 요리조리 싸움판을 피해다니는 라무엘이 나를 보며 웃었다. 저런 썩을! 난 이렇게 구르고 있는데!

 

 "라무엘! 어떻게 좀 해봐!"

 

 라무엘을 향해 소리를 냅다 지르며 일어나 나에게 달려드는 변이 늑대의 콧등부터 턱까지 단검을 쭉 내리 그었다. 괴성을 지르며 아가리를 쩍 벌리는 변이 늑대로부터 검붉은 피가 터져나와 내 얼굴 위로 후두둑 떨어져내렸다. 시뻘건 아가리 안에는 날카로운 이빨들이 험상궃게 나를 위협하고 있었다. 오른쪽 단검으로는 변이 늑대의 이빨을, 왼쪽 단검으로는 발톱을 막고 있었는데 비어있는 오른쪽 옆구리로 다른 변이 늑대가 입을 쩍 벌리고 달려오고 있었다. 젠장, 망했다.

 

 "드디어 내 이름을 불러줬네."

 

 온화하기까지한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내 오른쪽으로 달려들던 변이 늑대의 머리가 퍽소리와 함께 터지며 검붉은 핏물을 사방으로 뿌렸다. 피웅덩이 위로 라무엘이 찰박거리며 나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전에 보지 못했던 거대한 검이 들려있었다. 흰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는 검은 핏방울 하나 묻어있지 않았다.

 

 "정말 마음에 안들어!"

 

 있는 힘껏 변이 늑대 발톱을 밀어내며 몸을 왼쪽으로 빼자 네조각이 나 덜렁거리는 주둥이가 퍽 소리와 함께 진흙바닥에 쑤셔박혔다. 재빨리 몸을 돌려 변이 늑대의 몸뚱이 위로 올라타 목을 그어버리자 피가 라무엘을 향해 터져나갔다.

 

 "그렇다고 날 향해 피를 뿌리는건 좀 그런데."

 

 검을 휘둘러 피를 쳐낸 라무엘의 말투는 싸움 한복판에 있는 것 같지 않게 평온했다. 피한방울 튀지 않은 그 모습마저 마음에 안들었다.

 

 "일부러 그런건 아닌데 미안하게 됐네."

 

 톡 쏘아붙였지만 라무엘은 별로 게의치않는 듯 여전히 웃는 상으로 나에게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목의 동맥이 거의 다 잘려나간 변이 늑대는 아직도 꿈틀거리며 일어나려고 했다. 그것의 머리를 꾹 짓밟고 일어나 지척에 다가선 라무엘의 얼굴을 빤히 봤다. 그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변이 늑대의 허리를 아무렇지 않게 두동강내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것 참 고맙다고 해야하나."

 "그럴것까지야."

 

 라무엘에 의해 허리가 동강난 변이 늑대가 죽지도 않고 움직이며 그에게로 바득바득 기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흘긋 보다가 라무엘이 그 변이 늑대의 머리를 박살내는 것을 보며 혀를 쯧 찼다. 역시 평상시와 미묘하게 달랐다. 검을 든 그는, 안지 하루도 되지 않았지만 그 동안 봐온 것과는 상당히 다르게 느껴졌다. 검은 눈이 위험할 정도로 반질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당신, 괜찮은거야?"

 "아아, 뭐."

 

 어깨를 으쓱해보인 라무엘이 기울였던 고개를 다시 바로하고 나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그보다 내 단검이 빨랐다. 검이 내 옆을 스치기 바로 직전 몸을 돌려 손에 들린 단검을 던지자 허공에 뛰어오른 변이 늑대가 붉은 빛이 감도는 갈색 털을 펄럭이며 나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변이 늑대의 미간에는 내 단검이 꽂혀있었다.

 

 "실력은 뭐 나쁘지 않네."

 

 내 옆을 스쳐가며 흘린 나직한 라무엘의 말에 발끈할 새도 없이 그가 그대로 떨어져내리는 변이 늑대의 뱃가죽을 뻥 차서 날려버렸다. 철벅 소리와 함께 한창 싸움이 벌어지는 곳의 한가운데 떨어진 변이 늑대에 눈길을 줬던 사람들 몇몇이 변이 늑대의 발톱과 이빨에 상처를 입었다.

 

 "누가 멋대로 평가하래."

 

 뒤늦게 화를 내며 다친 사람들 틈으로 끼어들어 변이 늑대의 공격을 막아냈다. 변이 늑대것인지 사람것인지 모를 피가 만든 웅덩이에 발이 푹 빠졌다. 질척한 느낌에 인상을 찌푸리며 옆사람과 함께 변이 늑대를 피죽으로 만들어놨다. 나보다는 옆사람이 난도질 했다는 것이 맞겠지.

 

 어느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고 상황도 어느정도 수습이 되어가고 있었다. 숨을 껄떡거리며 시뻘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변이 늑대의 목을 단검으로 끊어버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손님의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다친 사람은 있었지만 죽은 사람은 없다.

 

 "망할, 이게 어딜 봐서 간단한 일이라는 거야. 처음부터 내키지 않았어."

 

 중얼거리며 변이 늑대의 목에 박혀있던 단검을 뽑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쓸만한 배달꾼이었군."

 

 옆에 다가온 손님이 자신의 목언저리에 묻은 피를 훔치며 내게 말했다.

 

 "뭐, 그쪽도 허튼 소리하는 사람은 아니었네요."

 

 내 말에 손님이 씩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내가 단검을 집어넣고 손을 맞잡자 손님이 두어번 흔들었다.

 

 "E구역에 도착하면 돈을 더 주도록하지."

 

 거참 나쁘지 않은 손님이었군.

 

 "당연히 받아야하는 돈이죠."

 

 어떻게든 깍기 바쁜 여타 손님들과는 다른 그 인성에 감탄하고 있을 때였다.

 

 "난 조달천이라고 하네. 자네는?"

 "이제이."

 "우리 조직에 들어올 생각없나? 저치와 함께."

 

 달천이 턱짓으로 마지막 남은 변이 늑대의 머리를 짓이기고 있는 라무엘을 가리켰다.

 

 "그럴 생각없어요."

 

 단칼에 제의를 거절하며 달천의 손을 놓으려했지만 그가 내 손을 도로 꽉 쥐었다. 엄청난 악력이군.

 

 "그러지말고 제대로 생각해보고 대답해줬으면 좋겠는데."

 "생각할 건덕지도 없어요."

 

 번뜩이는 달천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다시 한번 내 의사를 말했다.

 

 "이자의 의견도 들어보고 싶군."

 

 언제 온건지 내 곁에 선 라무엘이 흰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웃고 있었지만 그것은 웃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내 손을 꽉 잡고 있던 달천의 손목을 잡아채 내게서 손쉽게 떼어냈다.

 

 "들을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그것 참 아쉽군."

 

 달천이 입맛을 쩝 다시며 뒤로 한발자국 물러섰다.

 

 "그럼 E구역까지 잘 부탁하지."

 

 그렇게 말한 달천이 다친 사람을 모아놓은 곳으로 가버렸다.

 

 "제이야, 괜찮아?"

 

 라무엘이 달천에게 잡혀있던 내 손을 살폈다.

 

 "보다시피."

 

 그에게서 손을 빼내자 라무엘이 순순히 내 손을 놓아주었다. 가만히 보니 어느샌가 그는 검을 들고 있지 않았다.

 

 "그 검은 뭐야?"

 "영업비밀."

 

 라무엘이 씩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말하기 싫으면 말고."

 

 별로 궁금하지 않다는 듯이 말하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적당한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두사람이 앉을 만한 넓이는 아니었기에 라무엘은 내 곁에 섰다. 바위가 젖어서 엉덩이가 축축했지만 일어나지는 않았다.

 

 "무슨 생각으로 자기 조직에 들어오라고 한거지?"

 

 달천이 조직원들을 추스르고 있는 모습을 보며 말하자 옆에서 라무엘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너와 나만한 인재가 조직에 없거나,"

 

 잠시 말을 끊은 라무엘이 웃음기 없는 얼굴로 달천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목적이 있거나."

 

 이상한 말이었다. 조달천과 언제 만났다고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무슨 목적?"

 "그건 나도 알 수 없지."

 

 라무엘이 고개를 돌려 나를 지긋이 보고 말했다.

 

 "일단 조심하라는 말로 알아들을게."

 "똑똑하네."

 

 내 머리를 쓰다듬는 라무엘을 째려보았지만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기에 그의 손을 탁 쳐냈다.

 

 "이딴짓, 다시는 하지마."

 

 날카롭게 쏘아붙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 정도 수습이 되어보이는 주변 상황에 달천에게 갔다.

 

 "이딴짓?"

 

 뒤에서 중얼거리는 라무엘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달천에게 말을 걸었다.

 

 "조달천씨, 이제 출발해야겠어요. 여기 더 머물렀다가는 또 변이 늑대 떼에게 습격당할거에요. 거대 변이 늑대가 도망갔잖아요."

 

 내 말에 달천이 조금 착잡한 낯으로 부상자들을 둘러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람들을 다시 불러모아 출발 준비를 서두르는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점점 굵어지던 빗줄기가 다시 가늘어지고 있었다. 언제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을 하늘에 욕지기를 내뱉으려다 속으로 삼켰다. 하늘보다는 마스터한테 욕해야지. 이런 날, 이런 곳으로 배달을 보내다니,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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