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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염라와 함께 춤을
작가 : REIRAI
작품등록일 : 2017.7.2

저승의 왕 염라대왕인 이현은 저승으로 잘 못 떨어진 혜율에게 자신의 충신을 다치게 한 벌로 대신 일을 하라 명하는데 "나 일 못해요!"라며 당당하게 말하는 혜율의 모습에 어이가 없다. 자신에게“...머리 풀어헤친 모양이 처녀귀신인가 보군. 아니면 미친년이던가.”라고 말하는 촌철살인의 귀재이자 근엄하고 위엄있는 이현의 임시 신하가 된 혜율. 젠장할, 얼떨결에 "지상으로 올려보내주면 되잖아!"라고 약조하는 바람에 안그래도 복잡한 저승의 왕 노릇이 그 여자 때문에 더 복잡해져 버렸다!!

촌철살인의 귀재이자 자기애가 흐르다 못해 철철 넘치는 염라대왕, 이 현과 막말과 즉답의 대가 혜율의 좌충우돌 사랑이야기!

 
왕을 대하는 예우부터 배우도록!
작성일 : 17-07-20 21:35     조회 : 222     추천 : 0     분량 : 7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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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아 씨, 지상으로 올려 보내준다 약조하면 되잖아!! 비월, 종이와 먹을 가지고 오거라. 계약서를 쓸 것이다!”

 

 

 왕이다. 그것도 이 저승을 다스리는 염라대왕. 거짓말을 판별하고 죄를 측량하는 자신의 앞에서 자신을 믿지 못하는 저 여자에게 매우 짜증이 났다. 본인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여자가 머무는 동안엔 곁에 두어 괴롭혀 주리라. 또한 자신을 믿게 하여 올려 보낼 때 반드시 ‘염라대왕님, 이렇게나 잘 해주셨는데 못 믿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굴복하게 만들 것이리라. 기세등등한 다짐을 마음 깊숙한 곳에 꾹 꾹 눌러 담아 새겨본다. 어느새 준비된 종이엔 염라대왕인 자신이 친히 자신의 본명까지 써가며 계약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다 쓰인 계약서의 내용은 대략 이러하였다.

 

 

 

 [저승의 왕인 염라대왕 ‘이 현’은 산 자인 ‘신 혜율’을 지상으로 반드시 올려 보내주겠다는 것을 약조한다. 약조를 이행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사항을 지킬 것을 요구하는 바이다.

 

 첫 째, 다친 홍내관이 복직할 때까지 그의 업무를 대신한다.

 

 둘 째, 염라대왕의 허락 없이 궁궐을 나가지 말 것.

 

 셋 째, 위험한 사항을 직시할 경우 주저하지 말고 도망칠 것.

 

 산 자인 ‘신 혜율’은 저승의 왕인 염라대왕 ‘이 현’의 옆에서 업무를 보겠다는 말을 이행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조건을 요구하는 바이다.

 

 첫 째, 홍내관이 복직하면 업무를 시키지 말 것.

 

 둘 째, 사후 죄는 특별히 감면해 줄 것.

 

 셋 째, 홍내관의 업무와는 상관없이 1년 안에 지상으로 반.드.시 올려 보내 줄 것.

 

 위의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계약 하는 바 아래에 서명할 것을 요합니다.]

 

 

 “흠.. 이 곳에 서명 하거라.”

 

 

 

 계약서 아래에 혜율의 이름을 가리키며 서명할 것을 말하는 염라였다. 서로에게 피해주지 않는 선에서 이행된 계약은 신과 인간의 약조이기에 인간의 경우 약조를 어기면 소멸되고 신의 경우 신의 자격을 박탈한다는 잠재적 위험성에 대한 부분을 혜율은 알지 못했다. 만약 그 내용을 알게 된다면 계약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 당장 지상으로 올려 보내 달라 소리 질렀을 것이다. 그런 혜율의 모습을 짐짓 짐작하고 있던 염라는 잠재적 위험성의 부분은 배제하고 계약서를 작성한 것이다.

 

 “이제 계약은 성립하였으니 당분간 잘 부탁하마. 일의 업무는 신월이 너에게 알려주며 지켜줄 것이다. 조만간 내려진 오색실과 명실은 꼭 차고 다니도록 하라.”

 

 “에...-”

 

 “또한 너는 임시 신하이지만 짐의 신하이니 왕을 대하는 예우부터 배우도록!”

 

 ‘....무언가 낚인 기분인데, 이거 내 착각인가.’ 혜율은 속으로 작게 웅얼거렸다. 생각해보니 염라대왕이 직속상사가 된 것이 아닌가. 지상으로 올려 보내 주고 사후의 죄를 감면해준다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것을 뒤늦게 깨달아 보았자 이미 계약서를 쓰지 않았던가. 희미하게 미소 짓는 염라의 모습을 본 혜율이 불길함을 느꼈는지 입술을 깨물었다. 왠지 고생길이 훤할 것 같다. 차라리 떨어질 때 어딘가 부딪혀 죽는 것이 나을 뻔 했다. 그러면 이 복잡하고 미묘한 짜증과 불길함이 없었을 텐데. 아, 그래도 고통보다는 나을 것 같기는 하지만-.

 

 “뭣 하느냐. 짐이 이야기를 끝냈으면 다음 해야 할 말이 있지 않은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마지못해 중얼거리는 입모양을 보던 염라는 속으로 ‘고소하다’ 거리며 내리 슬쩍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내가 이겼고 앞으로도 이길 것이다. 옆에 두어 괴롭혀 줄 것이다. 그 방정맞고 시끄러운 입이 꼬리를 내리고 자신에게 굴복할 때 까지 굴려 줄 테다. 그리 생각하고 혜율을 방에 놔둔 채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랬다. 염라는 매우 속이 좁은 사내였고 뒤끝이 깊은 남자였다. 그래서 다들 홍내관의 빈자리를 메우려 하지 않았고 비월 자신도 혜율에게 그 업무를 대신 떠넘기는 것을 볼 때, 매우 극한 직업임이 틀림없었다. 그것을 덜컥 받아버린 혜율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비월은 혜율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음. 혜율님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아, 네... 뭐-”

 

 

 염라와는 달리 친근하게 다가오는 비월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화들짝 놀라고 만다. 저승 주제에 잘생긴 사람이 너무 많다. 그래서 혜율은 자신이 이 곳에 있는 동안은 저 잘생긴 얼굴들을 매일 볼 터인데 지상으로 올라가 보게 될 남자들이 불쌍하기 시작했다. 잘 생겼는데 맘씨도 곱다니 이 얼마나 멋진 신랑감인가. 근데, 상대는 저승사자임이 문제였다. ‘쳇, 아깝다. 왜 잘생긴 사람들만 모여 있는 것일까.’ 저런 사람들이 환생해서 지상에 넘쳐나야 여자들이 좋아하지 않겠는가. 정말 속으로 한탄을 하고 있던 혜율이 황급히 비월을 보며 자신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였는지 되물었다.

 

 

 “헌데, 왜 그러십니까?”

 

 “...많이 힘드시겠지만 저래 뵈도 마음 쓰시고 계시는 겁니다.”

 

 

 ‘저게요? 어딜 봐서?’라는 말이 입술까지 올라왔지만 이내 꾹 다물곤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혜율이었다. 앞으로의 생활을 편하게 보낼 방법은 하루 빨리 일을 터득해서 잔소리를 안 듣고 얼른 홍내관이 복직하길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왜 그 때 깔아뭉개가지고...! 그리고 무슨 사내가 뭐가 그리 연약해. 여자가 깔아뭉갰다고 허리가 나가다니!!’

 

 

 홍내관의 부재로 일을 떠맡게 된 혜율은 이윽고 홍내관을 탓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새어머니 욕까지 가게 되면 정말, 끝없이 한탄만 하다가 하루가 지날 것만 같아 그 이상은 그만두기로 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디 한 번 나 없이 못 살게 해주마! 일을 너무 잘해서 지상으로 올려줄 때 “혜율님, 부디 이곳에 남아주세요.” 라는 말을 하게 할 것이야!’

 

 

 자신의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어서는 혜율의 모습에 다행이라는 듯 웃는 비월이었다. 혹시나 상처받진 않았을까 염려했는데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주군을 저리도 당당하게 대하는 모습에 진심으로 비월은 고마워하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홍내관님은 어떤 일을 하신 분입니까?”

 

 

 혜율의 질문에 답을 하는 대신 자신의 품에서 무언가 길다란 종이 같은 것을 꺼내는 비월. 그리고 그 길다란 종이가 설마..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아니겠지? 라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쓸데없이 들어맞는 예감은 이럴 때만 꼭 발휘하는 것이 짜증난다.

 

 

 “대외적으론 외교관의 역할이지만 염라전에선 ...음, 도승지와 같은 역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혜율이 이해하기 쉽게 현세의 직책으로 비유하여 설명하는 비월이었다. 그리고 ‘도승지’라는 말에 혜율의 얼굴이 짐짓 찌푸려지는 것은 자신이 떨어질 때 우물로 ‘쳐’민 사내가 도승지임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도승지라면 왕명을 전달하거나 왕에게 올리는 글들인 상소를 상달하는 사람이 아닌가. 진심으로 한 숨이 절로 나왔다. 잘생긴 얼굴을 매일 보는 것은 분명 좋은 일임에도 그것이 눈치 없고 촌철살인의 귀재인 고급관료상사라면 절대로 싫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눈치 없고 촌철살인의 귀재인 고급관료상사가 아니라 이 저승의 왕이자 근엄하고 위엄 있는 염라대왕이지 않은가. 게다가 신하로서 왕을 대하는 예우를 다해야한다니!

 

 

 “젠장, 그냥 얌전히 떨어질 걸. 왜 갓은 잡아가지고...”

 

 

 혜율은 비월이 듣지 못 할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지상으로 올라간다면 기필코 자신을 여기로 보내버린 새어머니도 왕도 저주하리라.

 

 

 

 

 “일단 제일 먼저 시급한 일은 대대적으로 날뛰고 있는 악귀들과 중죄인들의 포박입니다. 혜율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몇 주 전 누군가 일부 중죄인들의 구속구를 해제시켜 민가에 난동을 부리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일로 인해 제 2옥의 명부소와 관리소의 4분의 1정도가 불에 연소되어 저승사자들이 영혼을 데리고 오는 일에 큰 자질을 빗고 있습니다.”

 

 “설마 그 중죄인들을 저보고 잡으라는 건 아니죠?”

 

 

 임시로 신하가 된 혜율은 아직 이 곳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보고되는지도 모르는데 다짜고짜 큰일을 줄까 싶어 가슴이 조마조마 했다. 애초에 산 자인 혜율이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적었다. 염라가 말한 오색실의 팔찌와 명실의 머리끈이 도착하기 전까진 이 궐, 이 방에서 나가는 것조차도 위험한 일이었다. 해서 비월은 팔찌와 머리끈이 구해질 때 까지 이 방에서 서책이라도 읽어 보고 양식이나 현재 굴러가고 있는 저승의 상태에 대한 보고서들을 읽으라 말하곤 사라졌다.

 

 

 비월이 사라지고 덩그러니 남은 혜율은 비월이 던지다시피 한 수많은 서책들과 보고서들의 더미를 보고 자신이 18년 인생 읽은 책보다 더 많은 분량이라며 투덜거렸다. 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였다. 그런데 이 글들은 도통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모르는 것을 물어볼 사람이 없다는 것이 속상했고 한탄스러웠다. 염라에게 묻기엔 왠지 놀림 받을 것 같았다. ‘이런 것도 몰라서 어디다 써 먹겠느냐’부터 시작해서 ‘얼굴도 못생겨가지고 할 줄 아는 것이 무엇이냐.’로 끝날 것 같다.

 

 사실 혜율은 지상에 있을 때도 그리 못생긴 얼굴이 아니었다. 자택에서 나가지 못해 정원을 산책할 때면 적게는 4~5명의 사내가 많게는 8~9명 정도의 사내들이 찾아와 담 넘어 산책하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해서 미모에 자신 있었는데 염라가 계속 못 생겼다고 하니 울화가 치밀다가도 이 곳 염라전에 있는 궁녀나 저승사자들의 얼굴을 보니 자신은 그냥 평범한 것 이였구나 싶어서 더 속상했다. 무엇보다 그들의 왕이 너무 잘생겼기에 그냥 입 다물기로 했다.

 

 

  “끄응.. 그래서 저승은 9옥까지 있고... 1옥엔 염라전이랑 내관들이 머물 처소.... 2옥엔 명부소랑.... 뭐가 이렇게 외울 게 많아.”

 

 

 아무리 읽어도 외어지지 않는 자신의 머리를 탓하며 한 숨을 쉬다가도 머릿속에 그려진 염라가 놀리는 모습에 ‘우 씨’ 거리며 다시금 외우던 보고서들을 손에 들었다.

 

 

 

 ***

 

 

 집무실로 돌아온 염라는 내관들이 올린 상소들을 읽고 있었다. 신의에 관한 내용만 즐비해서 지루했다. ‘전야제는 성대하게 하셔서 저승의 위엄을 보여야 한다.’부터 시작해서 ‘저승을 방문할 11명의 신들에게 줄 선물들을 준비해야 한다.’, ‘민간에 거두어드리는 공물들의 양을 늘려야 한다.’ 등등... 세세하게 올려 진 상소들이 어이가 없다. 죄다 민가들을 약탈하고 공격하고 있는 중죄인에 대한 처벌관련 서류는 없었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신의 따위가 아니라 중죄인과 악귀들을 잡는 것임에도 대신들은 그런 것들에 눈길 하나 안준다는 것이 매우 짜증스럽던 염라는 이윽고 고개를 내리 저었다. 권력이란 것은 가지고 있음 참 좋은 것이나 다른 것들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염라는 그러한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사내였다. 해서 염라는 앞서 올라온 저 상소들을 찢어버릴까 싶었지만 이내 한 숨을 쉬며 한 쪽을 치우고야 만다.

 

 

 

 “..분명 구속수를 해제한 것은 저승사자임이 틀림없는데.”

 

 

 신의와 관련된 상소들을 한편으로 치우고 좌식에 앉아 손가락으로 탁상을 두드리는 속도를 보니 그가 매우 불안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점점 빨라지던 손가락은 아무도 없는 집무실에 메아리처럼 그 소리만 방안을 에워싸 듯 울렸다. 내부의 소행인 것은 알고 있으나 흔적이 없었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었고 잡을 방도도 왜 이러한 일을 벌였는지도, 동기를 알지 못했기에 붙잡아서 심문을 할 수도 없었다. 인간의 죄를 측량하고 거짓말을 판별하는 것이 자신의 일임에도 이상하게 의사봉 없이는 죄인의 거짓말을 판단하거나 죄의 형량을 측정할 수 없었다. 해서 염라는 재판소 이외의 장소에선 거짓말을 판단하거나 죄를 측량하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왕인지라 내관들의 눈속임이나 대신들의 정치적 파벌은 잘 파악했다.

 

 

 그렇다고 저승사자 한 명 한 명을 다 재판소에 세워 의사봉을 휘두를 수도 없는 노릇이니 확실한 증거와 물증이 있어야 했다.

 

 

 “끄응...”

 

 

 그렇게 고민만 몇 시간째 하던 그가 자리를 벅차고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이렇게 갑자기 일어나 산책을 할 때면 모든 궁인들과 내관들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염라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산책을 하러 나가선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트집 잡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속 좁은 자신의 상관은 잔소리를 안 하는 대신에 다음날이면 주변 사람들이 한 둘 사라지고 없었다. 대부분 어떻게 된 연유인지는 알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며칠 뒤 다시 나타난 주변 사람들의 모습은 밤새 야근과 과도한 업무량으로 모습이 초췌해서 돌아오지만 죽지 아니하면 다행이라 생각했다.

 

 

 옷을 차려 입고 방을 나서 정원 산책이라도 하려던 그가 불이 꺼진 복도 한편 유일하게 불이 켜진 방을 확인 했다.

 

 

 “저기는 무얼 하는 곳이기에 아직도 불이 켜져 있지. 원래 빈방이 아니더냐.”

 

 “아 그것이...”

 

 그를 곁에서 모시는 상궁 한 명이 그의 곁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본래는 빈방이오나 오늘 아침 당도한 어떠한 여인이 저 방에 묵기로 하였습니다.”

 

 

 염라는 상궁의 말에 잊고 있던 한 인물을 떠올렸다. ‘아침에 당도한 어떠한 여인’. 자신이 임시직으로 일하라 명한 혜율이 아니던가. 그러고 보니 고민하는 사이 시간이 훌쩍 지나 혜율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던 그는 그녀가 묵고 있다던 방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잠들어있으면 깨워서 야근이라도 시킬 심산이었다. 아침에 그녀가 보인 불쾌하고 예의 없는 그 행위들을 생각하고 곱씹어보니 야근이라도 안 시키면 성이 안 풀릴 것 같았다.

 

 새어나오는 빛에 그림자가 짙게 지었다. 소리 없이 문을 살짝 열고 방안을 보니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다. 널브러진 보고서들과 서류들. 읽다만 서책들이 수두룩했고 무언가를 필기하다가 맘에 안 들었는지 제 손으로 구겨 버린 종이들부터 시작해 같은 단어들이 수백 개나 나열되어 있는 종이들 중 일부는 닳고 헤져 읽지도 못할 정도로 먹칠을 해놓았다. 염라는 문을 활짝 열고 잠든 혜율을 깨워 지금 당장 방을 치우라 닦달하려 했으나 그러지 못 했다.

 

 

 손에 서책을 들고 중얼거리며 무언가를 열심히 암기하고 있는 혜율을 발견했기 때문이리라. 아직까지 공부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분명 어렵다며 때려치우고 잠들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때려치우진 않았더라도 장작 몇 시간째인가. 보통의 인간이라면 지치고 힘들어 쉬고 있을 것이고 지금 시각은 축시(새벽1~3시 사이)에서 인시(새벽3~5시 사이)로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멀쩡한 사람도 잠들 그 시간에 혜율은 아직도 서책을 읽으며 자신이 숙지하지 못했던 단어들과 저승 조직관계도와 구성요소들을 외우고 있었다.

 

 

 “하...!”

 

 

 그런 혜율의 모습에 기가 찬 듯 짧게 탄성을 지르던 그가 이내 살짝 열었던 문을 다시 닫았다. 옆에 있던 궁녀가 문을 열어 아뢸 것을 여쭈었지만 그는 고개를 돌리며 ‘되었다.’라고 말한 뒤 “다과상이라도 주거라. 당 떨어지면 일 못한다고 떽떽 거릴 것이 선하다.”라 명하곤 궐 안쪽에 위치한 연못으로 향했다.

 

 

 

 

 “아니, 그래서. 죄의 측량에 따라 5옥~9옥으로 나뉘는데... 중죄인들은 5옥에 있단 말이잖아.”

 

 

 혜율은 어느 정도의 조직관계와 저승의 기본 순리를 익히고 난 뒤 각 옥들의 역할을 숙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비월이 낮에 해준 말을 기억해낸 혜율은 곰곰이 생각했다. ‘자신이 미끼가 되어 달려드는 중죄인들을 붙잡아 배후를 밝히면 되지 않을까?’라고. 그러나 이내 자신의 목숨이 날아 갈 일인데 섣불리 해서는 안 될 행동이란 것을 알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저승이라도 자신은 산 자이지 않은가. 죽고 싶지 않았다. 살아서 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특히 새어머니와 왕을 엿먹여야하므로. 그녀는 반드시 살아서 지상으로 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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