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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너와 나의 세상
작가 : 은아린
작품등록일 : 2017.7.19

이제는 없는 그 아이를 찾아야해.


인간의 노예화를 추진 중인 뱀파이어와 인간과의 공존을 꿈꾸는 뱀파이어 사이에 서게 되었다.




어느새 내 지척에 다가온 라무엘이 한 손은 쇼파를 짚고 한 손으로는 내 턱을 잡아 자신에게로 돌렸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까만 눈동자가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달큰한 냄새가 훅 풍겨왔다.

"겉보기와 다르게 눈물 많고 여리다는거."

라무엘의 기다란 손가락이 내 눈매를 매만졌다. 차가운 손끝이 피부로 느껴졌다.

"뭔 개소리야."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는데 무슨 소리신지. 손을 탁 쳐내자 라무엘은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그를 흘겨보며 술병을 들어 안의 내용물을 입 안에 쏟아부었다.

 
너와 나의 그 아이 3
작성일 : 17-07-20 21:15     조회 : 233     추천 : 0     분량 : 4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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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너와 나의 그 아이(3)

 

 

 

 오늘 처음 본 남자가 내 이름을 망설임없이 부르자 몹시 기분이 언짢아졌다.

 

 "누구?"

 

 자연스럽게 남자를 경계하며 뒤로 물러섰다. 우산 밖으로 나가자마자 거세진 빗방울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조차 없었다. 남자가 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물의 가닥이 우산의 표면을 때리는 소리가 퉁퉁 들려왔다. 그게 마치 아득한 곳에서 나는 소리같았다. 우산 안쪽의 세계만이 유일하게 소리에 색채를 가지고 있었다. 남자가 나에게 내밀었던 손을 내리는 소리, 내가 주춤대며 우산의 경계로 다가서는 소리, 내 품에 안긴 비닐 봉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남자가 천천히 나를 따라 시선을 옮기는 소리. 이상할 정도로 소리들이 선명했다.

 

 "나는 라무엘."

 

 남자가 입을 달싹였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아무리 기억을 뒤적여도 라무엘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생소했다. 그것을 읽었는지 남자, 라무엘이 슬쩍 웃더니 다시 손을 내게 내밀었다.

 

 "너를 찾고 있었어."

 

 다정한 투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위험한 분위기를 풍겼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느낌에 찝찝한 기분이 되었다.

 

 "나를 왜?"

 

 나도 모르게 날선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너를 찾으라고 했으니까."

 

 라무엘이 미동도 않고 내 말에 대답했다.

 

 "누가?"

 "글쎄."

 

 희미하게 고개를 기울인 라무엘이 의뭉스런 미소를 얼굴에 덧씌웠다. 예의 그가 풍기는 향기가 좀 더 짙어진 것 같았다. 내리고 있는 비냄새와 섞여 난데없이 여름의 향기 같다고 생각했다.

 

 "계속 이러고 있다간 감기 걸리겠어."

 

 라무엘의 말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홀렸다, 홀렸어. 저 남자에게 단단히 홀린거야.

 

 "갈 길 가. 난 나대로 갈테니까."

 

 거침없이 몸을 돌려 폭우 속으로 걸어가는데 라무엘이 금새 따라붙었다.

 

 "난 너와 같이 갈거야."

 "누구 마음대로?"

 

 라무엘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으며 쏘아붙였다.

 

 "내가 있을 곳은 네 옆이니까."

 

 거참, 낯간지러운 말을 참으로 담백하게도 하시네. 귓바퀴에 소름이 돋는것 같았다.

 

 "그러니까 누구 마음대로."

 

 걷는 속도를 높이며 집을 향해 걸었다. 어느새 바람까지 정면에서 불어와 바지가 빗물에 흠뻑 젖어버렸다. 제법 물기를 많이 먹었는지 다리에 끈적하게 달라붙은 바지가 거추장스러웠고 거슬렸다. 물론 옆에서 소리없이 웃고있는 작자도 거슬렸고. 그 모습이 꽤나 보기 싫어 검은 봉지 하나를 그의 품에 퍽 소리가 날 정도로 던지듯 안겼다.

 

 "다 맡겨도 되는데."

 

 가슴팍이 아플정도로 세게 쳤는데 라무엘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여전히 웃는 얼굴로 내 손에 들린 것도 달라고 하고 있었다. 이 인간은 또 뭐하는 작자야. 대표님같은 괴물인가?

 

 "됐어."

 

 쌀쌀맞게 말을 내뱉으며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더 재촉했다. 라무엘은 그런 나를 여유롭게 따라오고 있었다.

 

 "PIL에 들어가고 싶어?"

 

 집 앞에서 열쇠를 찾고 있을 때 라무엘이 불쑥 말했다.

 

 "왜?"

 

 꿍꿍이는 차치하더라도 라무엘이 그일을 어찌 알았는지 궁금했다. 주머니에서 열쇠를 끄집어내 손가락에 고리를 걸고 라무엘을 빤히 보았다.

 

 "내가 널 도와줄 수 있어."

 

 우산을 막 접은 라무엘이 자연스럽게 내 손에서 열쇠를 집어들어 문의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내가 막을 새도 없이 집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라무엘이 멋대로 내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뒤늦게 그를 따라가 어깨를 붙잡았다.

 

 "이봐. 뭐하는거야? 누구 마음대로 들어가래?"

 

 라무엘이 내가 잡자 걸음을 멈추더니 천천히 몸을 돌려 나를 봤다.

 

 "내 이름은 이봐가 아니라 라무엘이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종잡을 수 없는 검은 눈동자가 날 지긋이 응시하고 있었다.

 

 "당신 이름따위 상관없어."

 

 도대체 저 남자가 나에게 뭘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에게 이름을 불러달라는 건가? 아니면 신종 사기수법인가? 아무래도 나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상관없다. 더이상 저 남자와 엮이면 안된다고 나의 감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여기서 당장 나가."

 

 막 그와 내가 들어온 현관문을 가리키며 단호하게 말했다. 라무엘의 시선이 내 손가락을 따라 문으로 옮겼다가 다시 천천히 나에게 꽂혔다. 그 일련의 행동들은 느긋하고 여유로웠다. 나 따위의 명령은 귓등으로도 안들어 주겠다는 속마음이 그 몸짓으로 인해 확연히 내게 전달됐다.

 

 "PIL에 들어가게 해줄게."

 

 라무엘이 느릿하게 말을 하면서 내 품에 안긴 봉투를 슬쩍 가져갔다.

 

 "뭐? 아니 당신이 어떻게 그걸 알았지? 당신 누구야? 나한테 원하는게 뭐야?"

 

 바닥에 널부러진 술병들과 쓰레기들을 대충 구둣발로 슥슥 밀어내면서 거실 한가운데 있는 테이블에 다가간 라무엘이 들고있던 우산으로 지저분한 테이블 위의 반을 밀어냈다. 그러자 밀려난 쓰레기들이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졌다. 치워낸 곳에 들고 있던 검은 비닐 봉지들를 올려놓은 라무엘이 다시 몸을 돌려 내게 다가왔다.

 

 "당신이 아니라 라무엘. 라무엘이라고 불러줘."

 

 어느덧 내 바로 앞에 라무엘이 섰다. 그의 향기가 은은하게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달짝지근한 그 향기를 어디선가 맡아 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 남자와 마주친적이 있단건가.

 

 "나와 계약을 해."

 

 멍하니 라무엘을 보며 생각에 빠져들다가 그의 말에 퍼뜩 정신이 돌아왔다. 계약이라니.

 

 "당신이 뭔데? 뭘 믿고…. 아니, 그 전에 난 당신과 할 말 없어."

 

 경계가 잔뜩 들어간 눈초리로 그를 보자 라무엘이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할 말은 생길거야. 난 천사니까."

 

 맙소사. 천사가 왜? 미심쩍은 눈으로 그를 훑어봤다. 들리는 소문대로 정말 인간과 똑같은 외형이라 구분이 안갔다.

 

 "나를 네 옆에 머물 수 있게 해줘. 그럼 잭한테 너와 함께 PIL에 들어가겠다고 하겠어."

 

 라무엘의 제안은 상당히 솔깃했다. 인간이든 뱀파이어든 천사와 악마를 영입하지 못해서 안달이 난 상태였다. 그들은 뱀파이어와 동등하게 싸울 수 있는 존재들이니 인간에게는 구원자나 다름없었고 뱀파이어는 자신들에게 껄끄럽고 성가신 존재들이라 적으로 만드느니 아군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니 그 존재들이 그들 단체에 들어가겠다고 하면 어떤 조건이든 대부분 맞춰주는 편이었다.

 

 처음 골목에서 라무엘을 마주쳤을 때 가게 쪽에서 걸어오고 있었으니 이미 잭을 만났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는건 의심많은 잭이 충분한 검증을 거쳐 라무엘과 대면했다는 거겠지.

 

 "도대체 왜?"

 

 내 물음에 싱긋 웃어보인 라무엘이 나를 이끌어 대충 치운 쇼파에 앉혔다.

 

 "상처를 보여줘."

 

 내 말을 무시한 라무엘이 내 옆에 앉아 붕대와 약이 들어있는 봉지를 부스럭거리며 뒤집었다. 그러자 안의 내용물이 두서없이 테이블 위로 쏟아졌다.

 

 "대답해. 왜 날 도와준다는거지?"

 "말했잖아. 계약이라고. 나는 머물곳이 필요하고 넌 PIL에 들어가야하니 서로에게 딱 좋은 조건 아니야?"

 

 내용물 중에서 약과 붕대를 대번에 찾은 라무엘이 손에 들린 약을 들어올려보였다. 어서 상처를 보이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절로 못마땅하다는 표정이 되어 그를 보자 라무엘이 작게 미안, 이라고 말하고는 빠르게 내 옆구리를 들췄다. 막을 새도 없었다.

 

 "상태가 꽤 심각한데."

 

 미간을 좁힌 라무엘이 심각한 표정이 되어 내 상처를 덮고 있는 거즈를 봤다. 아니, 거즈 위로 상처가 보이십니까? 어이가 없어서 허탈하게 라무엘이 잡고 있는 내 옷자락과 그 손을 보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병원에 가는게 좋겠어."

 "됐어. 그렇게 심각한거 아냐."

 

 금방이라도 나를 데리고 나가려는 라무엘의 손을 탁 쳐 내 옷을 빼냈다.

 

 "오늘 무리해서 외출한거라 그래. 쉬면 괜찮아져."

 

 라무엘의 손에서 약을 빼앗듯이 가져오면서 답지도 않게 설명을 덧붙였다.

 

 "그래도……."

 "아니, 난 병원에 안갈거야."

 

 다시 한번 설득하려는 라무엘의 말을 재빨리 툭 끊어버렸다. 그러자 라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포기 한번 빠르네.

 

 "그래, 알았어. 대신 내가 붕대 감아줄게."

 

 손바닥을 펼쳐보인 라무엘이 내가 들고 있는 약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그것을 라무엘에게 아무렇게나 툭 던지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좀 씻고."

 

 쇼파 위에 아무렇게나 걸쳐진 옷과 수건을 집어들어 냄새를 맡아봤다. 딱히 별 냄새가 안나는 거 보니까 빨아놓고 개켜놓지 않았던 것들이지 싶었다. 그걸 그대로 가지고 욕실로 들어갔다. 대충 마른 곳을 찾아 수건과 옷을 올려놓고 젖어서 온몸에 엉킨 옷들을 힘겹게 벗어내 욕실 바닥에 툭툭 떨구었다. 샤워부스로 들어가기 전에 왼쪽 옆구리를 봤다. 흰 곳은 하나도 안보이고 온통 검붉은 색인 거즈가 보였다. 고정하고 있던 반창고를 떼어내자 거즈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흉측하게 패인 세줄기의 상처가 보였다. 상처에 피딱지가 앉았지만 물이 닿으면 아플 것이 분명했다. 아까는 술에 취해 아픈지도 몰랐다만.

 

 "젠장. 망할 늑대새끼들."

 

 신경질적으로 욕설을 내뱉고 샤워부스로 들어갔다. 대충 비 비린내를 씻어내고 욕실을 나오자 대충 멀끔해진 거실에서 라무엘이 나를 맞이했다.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꾹꾹 쥐어짜자 바닥으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라무엘이 물에 젖은 바닥을 보다가 나를 보다가 한숨을 작게 쉬더니 티슈를 몇장 뽑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쇼파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졌고 라무엘은 손에 들린 티슈로 내가 바닥에 떨어뜨린 물을 닦아냈다.

 

 "난 당신과 계약하겠다고 말한 적 없는데 아주 자연스럽게 당신 집에 있는 것처럼 굴고 있네."

 

 쓰레기통에 던지나 바닥에 던지나 별 상관없는데 굳이 쓰레기통을 찾아내 휴지를 버리던 라무엘이 나를 보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분명히 수락할테니까, 너는."

 

 어느새 내 옆에 앉은 라무엘이 거침없이 내 옆구리를 들춰내더니 미간을 좁히고 조심스런 손길로 상처에 약을 발랐다.

 

 "무슨 근거로?"

 

 상처에 라무엘의 손이 닿을 때마다 아픔에 눈썹이 절로 꿈틀거렸다.

 

 "내가 찾는 것을 너도 찾고 있으니까."

 

 붕대를 감기 위해 나를 끌어안은 모양새가 되어버린 라무엘이 내 귓가에서 속삭이듯 말했다.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 쓴 듯이 목덜미가 쭈뼛 섰다.

 

 "너…, 그 아이…, 재희를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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