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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싸우는 개와 과거의 소녀
작가 : Nine
작품등록일 : 2017.7.8

미신, 전설, 설화, 민담, 소설.
형체 없이 떠돌던 것들이 허구의 장막을 헤치고 인류 앞에 형상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점을 정확히 짚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인류의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던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은 분명했다. 과거였다면 ‘취객이나 광인의 횡설수설’ 정도로 여겨지고 소리 없이 사라지거나 잠깐 떠돌다 사라졌을 사건들이 명확한 증거와 함께 각국 국가기관에 제출되었다.
인류는 ‘점잖게’ 양립할 수 없는 존재들과 너무나도 오래, 거의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어왔고 그러면서도 그 사실을 억지로 외면해 왔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하지만 인류가 공포를 공포로, 경악을 경악으로 영원히 남겨두는 존재였다면 현재에 이르지 못했으리라.
잘 알려져 있지만 공포스러운 소설적 산물로 여겨지던 흡혈귀 정도에서, 기괴하게 비틀린 종교적 광신의 초현실적인 결과물, 생물학적으로 인간이지만 초인적인 능력을 갖추고 그 힘을 파괴와 혼란 조장에 사용하는 인간 등, 정확히 추산할 수 조차 없는 숫자와 종류의 위협요소들, 과거의 기준으로는 초현실적이지만 실제로 존재하고, 인간에게 위협적이기까지 한 수많은 것들이 ‘특이 위협체’라는 이름으로 통칭됐다. 그리고 인류는 이 새로 떠오른 위협에 질병, 스스로의 무지, 실패한 정치 및 경제체제 등과 같은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 방식이란, ‘해당 위협의 존재 말살 위한 노력의 경주’였다.

 
챕터3. 리빙 데드(2)
작성일 : 17-07-20 19:18     조회 : 278     추천 : 0     분량 : 8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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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련장은 크게 세 구획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평범한 공원처럼 조성된 대기 구역과 최대 2 킬로미터 까지 훈련할 수 있는 야외 사격장, 그리고 자동화 통제실이 딸린 시뮬레이션 훈련장이었다.

  정말 평범하게 소풍 나온 사람들처럼 평온한 점심을 마친 일행은 잠시간의 휴식 후 야외 사격장으로 향했다.

  지체 없이 2 킬로미터 사로(射路)로 들어서는 인호의 행동은 뒤에서 구경하던 지수가 작은 의문을 띄게 만들었다. 인호의 코트 안, 양쪽 허벅지에 두 자루의 USP가 매여 있다는 사실은 경험으로 알 고 있었다. 하지만 이 킬로미터의 표적을 쏘는 것은 권총에게도, 그 사용탄인 .45ACP탄에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최대 사거리가 1.6 킬로미터에 불과한 탄으로는 어떤 기예를 부려도 물리적으로 도달 자체가 불가능한 거리인데.

  하지만 의문은 곧 깨어졌다.

 

  [전술 지성 탐색 ─ 완료. 접속 권한 인증 절차로 이양]

  [접속 권한 인증 ─ C급 권한 확인]

  [프로토콜 ─ 화기 구체화(Arms materialization)]

  [M-200 셰이택 인터벤션 /.408 전용탄 (M-200 CheyTac Intervention/.408 CheyTac)]

 

  지향 사격자세를 취한 인호의 전방 허공에 무수히 집결해 작지만 발작적으로 조합되던 입방체들은 금세 저격총의 형태를 갖춰 인호의 손 위에 안착했다.

  유도 총탄을 사용하는 ‘EXACTO’라는 총기를 제외하면 최고의 정밀도를 갖췄지만, 비싼 자체 가격과 마찬가지로 비싼 전용탄을 사용하는 탓에 많이 팔리지는 못한 비운의 저격총이었다.

  “…….”

  단단하게 쥐어진 총기를 내려다보는 인호의 흉흉하게 푸른 안광이 작은 웃음을 머금었다. 설령 가격이 스텔스 폭격기와 같더라도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사격.

  무성의해 보이기까지 한 태도로 표적을 향해 한 탄창을 비운 인호가 총기를 놓자 저격총은 나타났을 때와 같은 입방체의 덩어리로 변했다가 이내 흩어졌다.

  [전술 지성 접속 해제]

  잠시 감았다 뜬 눈은 ‘통증’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경미한 이물감과 함께 본래의 검은색으로 되돌아 와 있었다.

  화기 구체화 프로토콜. 로레인이 말했던, 무기 설계의 ‘사상’을 전술회랑에서 가져와 현현하는 프로토콜.

  분명히, 작동한다.

  뒤돌아 본 곳에 서있는 지수는 청아와 인호를 번갈아 보며 혼란스러운 표정이었으나 물어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입을 닫았다.

  사실 물어본다고 해도 대답할 수 있는 부분이 마땅치 않았다. 전술지성을 사용할 때의 인호는 그저 해일처럼 밀려드는 사고의 폭풍을 억지로 받아내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자유 의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떠오르는 수많은 전술 행동 중 어느 것이 그 자신의 것인지, 어느 것이 전술 지성의 제안인지 구별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DOGS대원의 특이특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SOG요원을 상대로도 기밀로 취급되고 있었다.

  DOSG와 SOG는 기본적으로 함께 특이 위협체를 상대하는 입장인 만큼, 특이 특성의 사용을 보는 것 까지 막을 수는 없었지만 DOSG 대원의 능력이 닿는 한계, 구체적인 이론적 기반은 철저히 기밀에 싸여 있었던 것이다.

  “…….”

  그런 지수의 옆에서 연한 벽안으로 인호를 쳐다보고 있는 청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럼 끝난 거야? 이제 집으로 가?”

  “본격적인 훈련은 시뮬레이션 훈련장에서 합니다.”

  무뚝뚝한 목소리 아래에서 아직 시작도 안했다는 뜻을 제대로 이해한 지수는 태블릿 컴퓨터가 든 핸드백을 내려다보며 십년감수한 사람처럼 가슴을 쓸어 내렸다.

  “안 가져 왔으면 큰일 날 뻔 했다.”

  거의 소리도 나지 않는 한숨을 내쉰 인호는 청아와 지수를 시뮬레이션 훈련장의 통제실로 이끌었다. 커다란 여섯 개의 디스플레이가 분할되어 정면에 설치되어 있고 큼직한 패널이 그 아래에 배치된 열 평 가량의 방이었다.

  여덟 개의 의자중 하나에 적당히 걸터앉은 지수에게 인호가 말했다.

  “훈련 통제는 훈련장 내에서도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아무것도 조작할 필요가 없습니다.”

  “응? 뭐라고?”

  짓궂은 얼굴로 뒤를 돌아보는 지수는 난생 처음 보는 콘솔을 조작해 통제실 전면의 디스플레이를 켜고 있었다. 처음 보는 콘솔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는 사람의 사용을 목적으로 제작된 기계였다. 대중을 상대로 한 장비가 아닌 만큼, 직관성이 최우선시 되진 않지만 가능한 한도 내에서는 직관성을 띄도록 설계 하는 게 당연했다. 게다가 지수는 국립 과학 수사 연구원 출신이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연구실의 초분도 마이크로 분광계를 가지고 장난을 치던 여성이 윤지수였다.

  “…….”

  말없이 침음성만 삼키는 인호를 놀리기라도 하듯, 금세 훈련장 내에 설치된 여섯 개의 카메라와 여섯 개의 디스플레이를 일 대 일로 연동시킨 지수가 다시 인호를 돌아보며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

  “잘 못 들었어. 다시 말해 줄래?”

  “아니… 아닙니다.”

  청강검을 잡은 채 오도카니 서있는 청아를 옆에 척 앉힌 지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지으며 나가는 인호의 등에 대고 신뢰성이 의심되는 약속을 던졌다.

 “이제 정말 안 만질게! 정말이야!”

  인호가 나간 후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훈련장은 가로 세로 백 미터 정도의 넓이에, 모든 벽면에는 도탄(탄체가 물체를 관통하지 못하고 튕겨 나오는 현상)방지를 위한 특수 처리가 되어 있는 장소였다.

  곧 훈련장 안에 나타난 인호가 디지털 홀로그램 기술로 구현된 특이 위협체들을 상대로 훈련을 개시하는 모습이 보였다. 컴퓨터가 무작위 적으로 조합한 상황, 상대, 장소를 디지털 홀로그램 기술로 투영해 진행하는 훈련 방식이었다.

  푸른 안광의 잔상을 뿌리며 달리고, 피하고 쏘면서 ‘적’을 침묵시키는데 몰두하는 인호의 모습은 카메라라는 필터를 한 꺼풀 거쳐도 여전히 경이롭고, 또 으스스했다.

  왼손에는 이전의 USP. 오른손에는 지수로서도 처음 보는 커다란 리볼버식 권총을 든 채 확인사살 중인 인호는 평소와는 다른 사람 같기도 했다.

  “으음…….”

  침을 삼켜도 텁텁한 입 안을 느끼며 지수의 시선이 디스플레이에 오래 붙어 있지 못하고 옆 자리의 청아를 향했다. 청아는 화면 속 인호를 보며 뭔가를 가만히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청아의 의식이 내면으로 구겨져 들어가기 시작한 순간, 손뼉을 쳐 주의를 환기한 지수가 좋지 않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자, 이런 건 지루하니까 이만 꺼버리자.”

  청아의 표정이 평소와는 또 다르다는 것을 날카롭게 읽어낸 지수가 디스플레이들을 잽싸게 꺼버렸다. 몸은 컸지만 기억하는 삶의 길이로 따지면 열흘도 살지 않은 청아였다. 너무 잔인한 영상은 정신 건강에 해로울 게 분명했다.

  “드라마라도 볼까!”

  왠지 기합이 들어간 목소리로 태블릿 컴퓨터를 꺼낸 지수는 드라마 폴더에서 멜로드라마 1화를 실행시켰다. 별 저항 없이 액정에 시선을 주는 청아의 옆모습을 보며 한숨을 돌린 지수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 번, 두 번씩 힐끔힐끔 액정에 시선을 빼앗기더니 오래지 않아 청아와 함께 몰입하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인호는 훈련을 멈추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통제실과 연결된 관측 카메라가 어느새 꺼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두며 땀을 닦은 그가 훈련으로 확인된 사실을 재점검했다.

  분명 D급 권한 때에 비해 전술 지성 사용시의 부담은 덜했다. 화기 구체화 프로토콜까지 사용하며 훈련했지만 십 분 정도는 큰 무리가 없었다. 무리를 하면 이십 분 까지도 가능 하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구체화 해 사용하는 화기와 사고 부담의 상관관계에 관해서라면 더 크고 복잡한 화기가 작고 간단한 화기보다 부담이 큰 건 분명해 보였다. 단 십분의 시간 사이에 그의 손을 거쳐 간 이십여종의 화기는 구조가 극한까지 간단해서 육 점 육 초 만에 한 자루를 생산할 수 있었다는 리버레이터(Liberator. 해방자)권총에서부터, 이십오 킬로그램 무게의 러시아제 중(重)기관총 까지 다양했다.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뒤로 드러누운 인호가 가까운 카메라 하나를 가만히 들여다 봤다. 작동중이 아님을 뜻하는 빨간 불이 들어와 있었다. 두 사람은 통제실에서 뭘 하고 있는지.

 

  “저, 저런 X년!”

  “……?”

  지수는 드라마의 등장인물에게 치솟은 분노를 액정에게 터트리고 있었다. 청아의 시선이 그건 무슨 소리냐는 뜻을 담고 날아왔다.

  “어머, 애 앞에서 무슨 소릴…….”

  지수가 겸연쩍게 웃으며 입을 가리는 동안, 드라마는 남녀 간의 진한 키스신을 보여주고 있었다. 잠깐 드라마를 향했던 청아의 시선이 다시 지수를 향했다.

  “저건 서로 많이 좋아하는 남자랑 여자가 하는… 행동이야.”

  청아는 알 듯 모를 듯 한 표정이었다.

  ‘나도 해본 적은 없지만…’ 이라는 말을 목구멍으로 꿀꺽 삼키며 턱을 괸 지수가 머뭇거렸다.

  “음… 어떻게 할까. 좀 더 심화과정으로 들어가 볼까. 딱히 청소년 성교육 자료 같은 건 안 들어 있는데.”

  고심 끝에 지수가 택한 것은 외국산 ‘예술 영화’였다.

  너무 말초적인 자극에 익숙해 진 사람이라면 ‘재미없다’고 말하며 꺼버릴 만큼 담백하면서도 아름다운 영상미를 보여주는, 성애 장면에서 어떤 예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듯한 ‘느낌’을 ‘어쨌든 주는’영상이었다.

  사실 ‘그냥 안 본다’라는 합리적이고 건전한 선택지가 있었지만 이미 이상한 방향으로 불이 붙은 지수의 생각은 거기에 미치지 못했다.

  “나는 더 어릴 때부터 봤는데 훌륭하게 컸으니까.”

  지수가 과연 ‘훌륭한 어른’인가 하는 의문을 세상에 던진 채 그녀는 숨겨뒀던 폴더를 열었다.

 

  그리고 약 두 시간 후.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훈련장 밖으로 나온 인호가 때 맞춰 통제실에서 나오는 지수와 청아를 발견했다. 어째서인지 둘 모두 새빨개진 얼굴에 이마위엔 작은 땀방울을 매달고 있었다.

  “……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렇게 묻는 인호의 표정은 놀랍게도 걱정이라는 감정에 근접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둘의 얼굴은 사우나라도 들어갔다 나온 얼굴이었다. 하지만 훈련 통제실에 사우나 설비 따위가 있을 리는 분명 없으니, 무슨 일이 있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것도 꽤 열이 날 만한 일이.

  “아냐! 아무것도!”

  지수는 매끄러운 콧날 아래에 작게 자리 잡은 콧구멍을 벌름거리고, 눈에 보이기라도 할 것 같은 콧김을 뿜으면서도 격렬히 손사래 쳤다.

  작게 고개를 갸웃거린 인호의 시선이 청아를 향했다. 지수와 마찬가지로, 아니, 더 새빨갛게 달아오른 청아는 지수와 같이 수상한 행동을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그 표정은 뭔가…

  정신적으로 어른이 된 표정이었다.

 

 

  * * *

 

 

  “아, 이건 아무리 봐도 모르겠네. 뭔 마법이나 주술적인 나부랭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 어떻게 이 꼴이 돼서 움직이지?”

  SOG산하 위협개체 분석 연구소 3번 연구동의 밀폐 실험실에서 한 연구원의 목소리가 곤혹감을 띈 채 퍼지고 있었다. 그 옆에 있던 다른 연구원이 어깨를 으쓱였다.

  “단일 세포 단위로 잘라놔도 움직이는 거 봤잖아. 좀비야 좀비.”

  “아아, 좀 방향성 있는 연구를 하고 싶다.”

  마지막 세 번째 연구원이 조금 멀리 나간 불평을 터트렸다.

  “응용 개발 연구로 보내 달라고 해보지?”

  응용 개발 연구소란 위협개체 분석 연구소와 함께 SOG산하에 놓여 있는 두 연구소 중 하나였다. 수집된 위협개체에 대한 조사나 분석을 수행하고 대응책을 개발하는 분석 연구소와는 달리, 응용 개발 연구소는 그렇게 수집된 결과를 바탕으로 더욱 발전시키고 응용해 ‘하나의 사용 가능한 기술’로 만들어내는데 목적이 있는 기관이었다. 단, 그곳에서 개발된 기술이 아직 외부로 공개된 사례는 없었다. 냉소적인 사람들은 성과가 없기 때문에 조용한 게 아니냐고 비꼬기도 했지만 응용 연구소는 일체의 대응도 취하지 않았다.

  “그건 좀 그렇네. 걔들은 진짜 매드 사이언티스트 같다고.”

  “우리도 밖에서 보면 똑같아. 지금도 움직이는 시체를 주무르고 있잖아. 하던 일이나 마저 하자.”

  첫 번째 연구원이 약간의 하품을 섞어 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재료 HRE-107-32 라 명명된 ‘산송장’은 처참했다. 누구 솜씨인지 미간에 깔끔하게 구멍 하나 뚫리고 만 머리는 그나마 양반이었지만 그 아래가 문제였다. 중기관총으로 잘랐는지 두 다리는 끊어져 있었고 양 팔 역시 수 센티미터 정도의 근육층과 피부를 빼면 거의 절단돼 있었다. 몸통 역시 당연하다는 듯 벌집이 따로 없어서 내장이 삐질삐질 흘러 나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트에 결속된 이 시신에는 약물이 통하지 않았다. 연구를 위해 고정하는 방법은 물리적으로 묶어놓는 방법뿐이었다.

  몇 장인가의 사진을 찍고 차트에 뭔가를 기록한 첫 번째 연구원이 천장에 반 고정된 녹화 장비를 작동시켰다. 지금부터 진행되는 모든 연구는 낱낱이 기록되는 것이다.

  연구 대상은 노년 슬라브 인종 남자의 움직이는 시신.

  하얀 마스크 안쪽에서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며 수술도를 들어 올리던 첫 번째 연구원이 불현 듯 뭔가가 떠올랐는지 손을 멈췄다.

  “피부 색이 이상하지만 나 이 얼굴 어디서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어디서 봤더라.”

  곁에서 지켜보던 두 번째 연구원이 대수롭지 않은 듯 혀를 찼다.

  “외국인 얼굴이 다 비슷한 거 아냐?”

  그러자 세 번 째 연구원이 딴죽을 걸었다.

  “그런 놈이 보스턴에서 학위는 어떻게 땄냐?”

  발목을 잡힌 두 번째 연구원은 ‘흐음’하는 신음을 내며 턱을 쓰다듬었다.

  “인종차별적으로 들릴까 싶어서 조심스럽긴 한데, 박사학위 딸 때 지도 교수가 혼자 흑인이라서 편했다.”

  “그렇게 조심해서 말 할 거 있냐? ‘정치적 올바름(Politically correct)’인가 뭔가 하는 그거냐?”

  “비꼬냐?”

  “오호호오오, You're so Politically correct(당신 무지 꼰대같아요).”

  학문적 성취와 인격적 완성도는 별개임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증거들의 저질스런 대화를 무시한 채 생각에 빠져 있던 첫 번째 연구원이 소리쳤다.

  “아! 생각났다! 펠릭스 유슈포프 공작!”

  “공작? 슬라브 인인데 공작이면 제정 러시아?”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기색이 다분했지만 첫 번째 연구원은 무시했다.

  “맞아! 괴승(怪僧) 라스푸틴을 죽였던 유슈포프 공작!”

  “확실하냐?”

  “확실하다니까!”

  옆에 있던 태블릿 컴퓨터로 급히 전자 도서 하나를 검색한 그가 약간의 시간을 들여 사진 하나를 찾아 내밀었다.

  “사진보다 더 늙긴 했는데 동일인물 맞는 것 같네.”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 세 번째 연구원이 어처구니가 더 없어진 표정으로 시신을 쳐다봤다.

  “이 양반이 여기서 왜 이러고 있냐?”

  세 연구원의 시선이 시신으로 집중된 순간이었다.

  “으어어어어억────!”

  벨트 안에서 꿈틀거리기만 할 뿐 조용하던 시신이 소름끼치는 고함을 질러댔다. 소리의 크기와 거기에 섞여 나온 진동만으로 세 명의 장정을 압도한 시체는 수 초간 계속된 고함의 마지막에 이르러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해 흘러 내렸다.

  “일단 피해!”

  누군가의 고함에 잽싸게 밀폐 연구실 밖으로 뛰쳐나온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강화 유리 너머로 보이는 잿더미를 재확인 했다. 다행히 그저 잿더미로 변했을 뿐인 듯, 잿더미가 저 혼자 날아다닌다든가 나갈 구멍을 뚫기 시작 했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다.

  “…… 이걸 어떻게 받아 들여야 되나.”

  심경이 그대로 드러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동료에 비해 빨리 이성을 회복한 첫 번째 연구원이 지금 해야 될 일을 분배했다.

  “일단 넌 지금까지 연구한 거 취합해서 보고서 만들어 올려. 난 의견서 하나 써야겠다. 그리고 넌 밀폐 방호복 세 벌 가지고 와 줘.”

  “무슨 의견서?”

  “다른 인물도 아니고 라스푸틴이랑 관련된 인물이 한국 땅에서 특이 위협체로 발견 됐어. 찝찝해서 똥 싸고 안 닦은 것 같아.”

  첫 번째 연구원의 단어 선정에 세 번째 연구원은 진심으로 기쁜 듯 양 주먹을 쥐어 올렸다.

  “난 그런 싸구려 화법이 너무 좋더라. 알겠어. 보고서는 내가 만들게.”

  등을 돌린 세 번째 연구원이 걸음을 옮기며 뒤늦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불길한 인물이긴 했다.

  라스푸틴.

  떠돌이 승려 출신으로 황제 내외의 눈에 들어 제정 러시아의 몰락에 크게 일조한 괴승이었다. 거기까지만 보면 어느 시대, 어느 왕국에나 있었을 법한 간신에 불과했지만 사람들이 불길하게 기억하는 것은 그의 죽음에 얽힌 괴담과 그가 남긴 제정러시아 붕괴의 예언이었다.

  그는 암살자에 의해 청산가리가 든 음식을 먹고도 두 시간 동안 죽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유슈포프 공작이 총을 쏴 쓰러트렸으나 그가 나갔다가 돌아왔을 때 까지 죽지 않고 있었다. 아니, 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돌아온 공작의 목을 조를 정도로 멀쩡했다. 놀란 유슈포프의 공모자들이 수차례 총을 쐈지만 역시 라스푸틴을 죽일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는 수많은 총탄을 맞고도 뛰어서 도망치다 붙잡혀 두개골이 으스러지도록 강도 높은 폭행을 당했다. 그 폭행으로도 라스푸틴을 죽일 수 없자 유슈포프 공작은 라스푸틴을 얼음이 언 강 바닥에 가라앉힌 끝에야 간신히 죽일 수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당시 경찰의 조사에 따르면 얼음의 아랫면에서는 무수히 많은 손톱자국이 발견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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