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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반전을 사랑한 남자
작가 : 샤뚜르
작품등록일 : 2017.7.5

강지원, 29살의 젊은 사장은 얼음 왕자라는 별명으로 직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직원들도 피해가는 그에게, 회사의 햇병아리가 어느 날 찾아와 태클을 건다. 그는 그녀가 만만했었다. 이세희, 24살의 인턴 사원. 상상 속 50대 사장과는 다른 조각미남이 나의 상사라니! 사랑 때문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 남자와 귀엽지만 반전 있는 그녀의 좌충우돌 연애 이야기.

 
제 58 화. 그러니까, 못 놔 줘
작성일 : 17-07-20 13:55     조회 : 286     추천 : 0     분량 : 8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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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전을 사랑한 남자

 

 

 

 

 

 제 58 화. 그러니까, 못 놔 줘

 

 

 

 세희가 시은과 얘기를 나누는 사이, 지원은 1층으로 내려왔다. 그는 차를 대기시키고 있는 장 비서에게로 다가가, 오늘은 자신이 세희를 데리고 운전해서 갈 테니 먼저 가 있으라 했다.

 

 “아.”

 

 지원이 택시를 타기 위해 걸어가려던 장 비서의 걸음을 붙잡았다.

 

 “현우야, 민 지수 주변 인물에 대해서 좀 알아봐 줘. 이게 그녀에 대해 조사하는 마지막이 됐으면 좋겠다.”

 

 그는 장 비서에게서 차 키를 받아든 뒤, 차에 올라탔다. 방금 전까지 세희네 집에서 웃으며 밥을 먹던 남자는 어디 가고, 서릿발 같은 차가움만이 가득했다. 세희가 보지 않는 공간에 와서야 비로소 사업가로서의 날카로움을 공기 속에 풀어낼 수 있었다. 그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을 뿐, 내심 초조하고 불안했다.

 

 민 지수가 제 발로 떨어져 나갈 무언가를 찾지 못하면 강 회장을 멈출 패가 사라지는 것과도 같기에, 장 비서가 가지고 올 정보에 사활이 달려 있었다. 그 날까지. 그 날이 오기 전까지만......

 

 문득 혜빈이 생각났다. 왜 아무런 연락이 없지? 지원의 누나 혜빈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강 회장의 협박 아닌 협박으로 인해 강제결혼 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아직 강 회장이 얘기를 꺼내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그녀답지 않게 꼬리를 내리고 순응하려는 것인지 궁금했다.

 

 지원은 양복 재킷 안에서 핸드폰을 꺼내 혜빈에게 전화를 걸었다.

 

 딸깍-

 

 스피커 너머가 무슨 이유에선지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여보......”

 

 「 음...... 아침부터 누구야... 아흣! 쫌! 통화 좀 하자! 여보세요? 」

 

 “......”

 

 지원은 핸드폰을 귀에 댄 상태 그대로 굳어버렸다. 바보가 아닌 이상, 스피커를 넘어 귀에 울려 퍼진 야릇한 색기 어린 목소리가 무슨 상황을 뜻하는지 안 봐도 뻔했다. 목소리는 혜빈이 틀림없었다.

 

 제 혈육이 낸 이질적인 소리는 같은 종류의 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자라면서 부모님이 아닌 누나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따라온 지원이었다. 덕분에 다른 남매들은 절대 가질 수 없는 그들만의 끈끈한 유대감이 존재하는데, 제 누나를 건드린 남자가 있다는 사실에 지원의 눈이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차갑게 굳었다.

 

 남자를 향한 남자의 적대심.

 

 전화를 건 장본인이 한참 동안 대답이 없자, 건너편에서 다시 한 번 그를 불렀다.

 

 「 여보세요? 누구야? ㄴ...... 헙! 」

 

 일 났다.

 

 핸드폰을 귀에서 뗀 뒤, 송신자를 확인한 혜빈은 화면 가득 떠오른 ‘동생’이라는 두 글자를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입을 막았지만, 일은 이미 터진 뒤였다.

 

 아침부터 곤히 자고 있던 혜빈을 깨워 괴롭히던 도진은 전화를 붙든 채, 입을 손으로 가리고 있는 그녀에게 왜 그러냐는 얼굴로 물었다. 놀라서 커진 눈은 딱 봐도 당황해서 어찌해야 할 지 모르는 듯했다.

 

 ‘누군데?’

 

 혜빈이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입모양으로 말했다.

 

 ‘동...생......’

 

 어제까지만 해도 침대에 내리쬐는 햇살은 그들의 정열적인 하루를 시작하는 신호와도 같았으나, 지금 이 순간. 정열적이기는 무슨. 도진의 등 뒤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는 혜빈으로부터 그녀의 동생에 대해 들어 왔기에 동생이 어떤 사람이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우연인지, 그녀에게 동생에 대해서 들을 때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놈과 자꾸 겹쳐졌다.

 

 그런 동생이면 아마 누나 건드렸다고 가만히 안 있을 거야.

 

 지난 번, 인턴 아가씨를 놀리려다 지원에게 걸렸을 때. 서릿발 같던 차가운 음성과 눈빛이 아직도 생생했다. 등 뒤로 소름이 쫘악 퍼졌다.

 

 “......”

 

 스피커 너머로 낮게 가라앉은 남자 목소리가 조금 들려왔다.

 

 지원은 시트에 편안하게 등을 기댔다.

 

 안 그래도 조만간 혜빈을 만나고자 연락을 한 것인데, 잘 됐다. 겸사겸사. 자신의 누나를 데리고 있을 놈이 궁금했다.

 

 그는 한참이 지나서야 스피커 너머로 제 존재를 확인 시켜주었다.

 

 “누나.”

 

 「 어. 오랜만이네? 」

 

 “잘 지내지? 누나는, 아버지 말씀 듣기로 했어?”

 

 「 응? 아아, 아니? 내가 누구니, 이 천하의 강 혜빈이 아버지 말 그대로 들으면 난 아마 그 전에 죽었을 걸? 너는, 어떻게 됐어? 아버지가 너 힘들게 하셔? 」

 

 “그거 때문에 누나랑 할 얘기 있어. 내일이나 모레쯤에 우리 회사 한 번 와.”

 

 「 응. 」

 

 이제 됐다 싶어 조마조마한 가슴을 쓸어내리던 혜빈은 통화를 끝내기 위해 종료 버튼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그러나.

 

 “누나.”

 

 지원이 더 빨랐다. 혜빈은 반사적으로 다시 귓가에 핸드폰을 가져다댔다.

 

 「 ...응? 」

 

 “혼자 오지 말고 옆에 있는 남자랑 같이 와.”

 

 지원은 혜빈의 대답을 듣지 않은 채로 통화를 끝냈다.

 

 

 ***

 

 

 “방금 뭐라고......”

 

 혜빈은 지원이 마지막으로 날린 말 한 마디에 할 말을 잃었다. 어렸을 적, 강 회장의 욕심으로 인해 혹독하게 후계자 교육을 받고 자란 지원은 그 시간 동안 강 회장의 진심어린 정을 받고 자라지 못했다. 홀로 방구석에 틀어박혀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도 강 회장이 집으로 돌아왔다는 소리 하나면 재빨리 눈물을 지우곤 했다. 강 회장은 눈물이나 흘리고 있을 나약한 자식은 원치 않으니. 그래서 그런 걸까, 눈치 하나는 끝내주게 빨랐다.

 

 혜빈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럴 때는 그런 눈치 따위 안 빨랐으면 좋겠다. 지원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 지. 정숙하지 못한 누나로 볼까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정작 지원은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은 부분인데 말이다.

 

 그런데 통화를 끝낸 후부터 어딘가 허전했다. 스으윽. 고개를 올려보았다. 그런 그녀의 위에서, 마음껏 활개 치려는 늑대 한 마리. 그녀가 덮고 있던 이불은 이미 발밑으로 끌어져 내린 상태였다. 맨 살에 차가운 공기가 닿자 소름이 돋았다.

 

 어제 잠도 안 재울 정도로 피 끓는 젊음을 자랑하더니. 틈을 보인 사이, 또 한 번 일을 치르려 한다.

 

 “너, 저리 가.”

 

 거친 맹수로 활약할 것이 분명한데. 도진은 예민해진 혜빈의 목소리에 눈치를 보려는지, 순한 강아지 마냥 얌전히 그녀를 내려다본다. 꼬리를 살랑살랑.

 

 ‘나는 아무 것도 모르오. 내게는 죄가 없소’라는 표정으로 순진하게 묻는다.

 

 “왜?”

 

 혜빈은 상체를 훤히 드러낸 도진을 밀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훤히 드러난 몸을 다시 이불로 칭칭 감은 뒤 자리에 앉았다. 밉지 않게 그를 흘겨보자, 능글능글 웃는다.

 

 “한 번만 더 하자. 응? 그러면 정말 안 괴롭히겠다고 약속할게.”

 

 “저리 가라 했다? 동생이 조만간 한 번 보자는데, 너도 데리고 오래. 안 들키려고 했는데, 내가 하지 말라고 할 때 그만했어야지. 내려가서 무릎 꿇고 두 손 들어.”

 

 혜빈은 손가락으로 침대 옆의 바닥을 가리키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냥 해 본 말인 줄 알았는데, 살벌하기까지 했다. 동생한테 들키면 안 되나?

 

 도진은 물러서야 할 때임을 알고 고분고분 제 잘못을 반성하는 척하며 침대 밑으로 내려가 그녀가 시킨 대로 했다. 들키면 어때, 어차피 언젠가 서로 만나야 할 사이인데. 그리고 그쪽도 남자면 이러고 지낼 거 아냐?

 

 혜빈은 고집을 부리며 힘으로 밀어 붙일 줄 알았던 도진이 얌전히 내려가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얌전하게 있을 놈이 아닌데.

 

 눈 꼬리를 추욱 늘어뜨린 도진은 덩치 큰 강아지 같았다. 그녀의 눈에는.

 

 얇은 슬립을 입고 내려가, 도진과 눈을 맞춘 뒤 줄곧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너, 무슨 일 없지?”

 

 그녀라고 강 회장의 손에서 마냥 자유로울 수만은 없었다. 지원이 민 지수와 만나던 날, 혜빈에게도 강 회장이 보낸 문자가 왔었다.

 

 강 회장이 그녀에게 경고하기를, 그가 조건으로 건 기간 내에 남자를 만나지 못하면 그녀는 강 회장이 시킨 대로 해야 한다는 것. 죽기보다 더 싫은 것이 강 회장의 욕심으로 희생되는 거였다.

 

 하기 싫은 결혼을 막기 위해 억지로 시작한 연애가 아니었다. 도진과 결혼까지 생각했기 때문에 그녀는 둘이 찍은 사진을 강 회장에게 보내며 한 마디 덫 붙였다.

 

 [결혼할 남자에요.]

 

 그녀는 그걸로 더 이상 강 회장이 제게 욕심을 부릴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그녀의 아주 큰 오산이었다.

 

 도진의 눈빛이 잠시 흔들린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 들 정도로, 그의 눈빛은 잔잔한 수면이 일렁이는 것처럼 미세하게 떨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남의 일을 묻듯이 대수롭지 않게 되물었다.

 

 “무슨 일?”

 

 그러나, 그 속에는 혜빈이 절대 몰랐으면 하는 일이 담겨 있었다.

 

 R 그룹의 장남이자 도진의 형과 혜빈을 결혼 시키고자 했던 강 회장은 생각지도 못한 놈이 굴러들어와 제 딸의 옆에 있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일을 처리해 나갈 때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의심부터 하고 봤다.

 

 도진의 뒷조사.

 

 비서가 가져다 준 자료는 뜻밖이었다. 그저 평범한 돌일 줄 알았더니, 잠재적인 가치가 많은 놈이었다. 강 회장은 도진에 관해 보고를 받자마자 그를 불러들였다.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에.

 

 강 회장은 도진을 보고 정말 R 그룹의 아들이 맞느냐고 물어왔다. 처음 만나자 마자 던진 물음이 그거였다.

 

 정보력만큼은 절대 뒤지지 않는 강 회장이 그렇게 묻는 것은 당연했다. 재계에 R 그룹 차남 윤 도진은 이름만 알려져 있을 뿐, 얼굴 없는 인물과도 마찬가지였으니까.

 

 - 우리 딸, 계속 만나고 싶으면 형 대신 그룹을 이어받는 게 좋을 게요.

 

 감정 표현에 솔직하고 자유분방한 혜빈과는 달리, 강 회장의 얼굴에서는 그 어떠한 표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직도 그의 머릿속에 강 회장의 인상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세월을 빗겨가지 못해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지만, 눈빛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차갑기 그지없었다. 바라보기만 해도 상대를 제압해 버릴 듯한 냉기가 가득했다.

 

 도진은 강 회장을 만나기 전까지는 혜빈의 집안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알았더라도, 어떻게 다시 제 품에 안은 첫사랑인데. 놓아줄 리가 없지만 말이다. 혜빈은 가끔 그녀의 아버지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며 마음대로 살고 싶다고 했었다.

 

 그게 그런 의미였구나.

 

 당장이라도 그를 남겨두고 자리를 뜨려는 듯한 강 회장을 붙잡은 것은 도진의 덤덤한 말이었다. 본인 역시 틀에 얽매인 삶이 싫었기 때문에 형에게 모든 것을 떠넘긴 뒤 한량처럼 바람 따라 자유롭게 살아왔다.

 

 아무리 그녀의 아버지가 강요하는 일일지라도, 무조건 따라야 할 이유는 없다. 누군가에게 어떠한 삶을 살라고 강요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삶이란 주체적으로 내가 주인이 되어 결정해 나가야 하는 자신의 길이니까.

 

 - 죄송하지만, 회장님께서 원하시는 답은 해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그럼 답은 나왔네요.

 

 - 아니오. 주제 넘는 말씀이지만, 회장님께서는 무조건 희생하는 것이 혜빈 씨를 위한 것이라고, 지금은 희생일 지라도 나중에 후회 않을 거라 하시겠지요. 하지만, 그 방법이 무조건 옳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저희 부모님도 기업을 위해 정략 결혼한 사이십니다. 두 분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시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십니다. 정략결혼을 하면 불행해진다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적어도 본인의 삶을 선택할 기회는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 주제를 넘은 맹랑함에 대해 책임 질 수 있나? 선택할 기회라... 3개월이 넘는 시간을 주고 그 기간 내에 남자를 만나 볼 기회는 충분히 줬다고 생각하네만.

 

 자신을 후계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강 회장. 결국, 강 회장은 처음부터 혜빈의 결혼상대로 마음속에 두고 있는 사람과 맺어줄 작정이었다. 아무리 도진이 R 그룹의 차남이라도, 회사를 물려받지 않으면 소용없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 없을 정도로 차갑게 등을 돌리는 것이 강 회장의 성격이었다. 사업과 관계된 것이라면 더더욱.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랭한 자신의 앞에서 기죽지 않는 도진의 기상은 높이 살만하여 제안을 해본다. 도진이 쉽게 나가 떨어졌으면 해 볼 이유도 없는 게임이었다. 이 정도 하면 알아듣겠지.

 

 - 한 가지만 묻지. 자네는 우리 딸과 결혼한 뒤 우리 회사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나? 생각할 시간을 주마. 결정이 서거든 최 비서를 통해 연락 주게.

 

 강 회장을 만나고 돌아온 도진은 친구를 만나고 왔다는 핑계로 평소처럼 능글거리며 그녀와 웃고 떠들었다. 그들이 함께 있는 시간에 집중했다. 함께 서로를 나누는 동안 그는 그녀의 몸 곳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절대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진하게. 그렇게 그녀를 향한 소유욕을 띄워 보냈다.

 

 사랑하는 여자를 바보처럼 다시 떠나보내는 일은 이제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것이다.

 

 도진이 눈을 빛내며 그녀를 쳐다봤다. 어느새 올렸던 두 팔은 내린 상태였다.

 

 “뭐 때문에 이렇게 예민한 거야? 안 그래도 예쁜데. 자꾸 그렇게 진지한 표정 짓지 마. 덮치고 싶으니까.”

 

 동이 틀 때까지 그녀를 놔주지 않던 어젯밤의 잔상이 떠오른 혜빈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니, 뭐. 별 일 없다니까 다행이네.”

 

 정말 별 일 없는 건가 싶은 혜빈의 얼굴은 복잡했다. 그런 그녀의 곁에 도진이 다가가 싱긋 웃으며 허리에 팔을 둘렀다. 혜빈의 분위기를 봐서 언제가 됐든 다시 침대로 끌고 갈 요량이었다. 그 전까지는 그녀의 심기가 상하지 않게 비위를 맞춰주는 것이 최고의 대처법이다.

 

 “날씨도 좋은데 우리, 데이트나 나갈까?”

 

 눈치는 보는데, 할 건 다하는 도진이었다.

 

 

 ***

 

 

 카페 거리를 거닐다 달달한 것을 먹고 싶다는 혜빈의 말에, 도진은 그녀와 함께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 앉았다.

 

 “뭐 먹을래?”

 

 “갓 구워서 따끈따끈하면서도 바삭한 와플이랑, 바닐라 아이스크림.”

 

 혜빈은 기분이 안 좋거나, 머리가 복잡은 일이 있으면 고칼로리의 달달한 군것질 거리를 즐겨 먹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알았어.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도진은 특정 메뉴를 콕 집어 얘기해주지 않은 혜빈의 설명에 뭐라 한 마디 하지 않고 카운터로 가서 카드를 내밀며 주문했다. 그 사람을 정말 사랑하고 아끼면,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뭔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 지 정도는 얘기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기에 혜빈의 장황한 설명을 듣고도 그는 메뉴로 번역해 낼 수 있었다.

 

 “와플 하나에, 바닐라 아이스크림 토핑 추가요. 그리고 오곡라떼 한 잔이랑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요.”

 

 메뉴가 나올 동안, 도진은 다음 손님을 위해 카운터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서서 혜빈이 앉아 있는 테라스에 시선을 주었다.

 

 사진기를 대고 찍기만 해도 전부 작품이 되는 동네라, 요즘 푹 빠진 사진 촬영에 집중하고 있는 그녀였다. 그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천천히 눈에 담았다. 예쁘다.

 

 혜빈을 만나기 전, 한량놀이를 하고 다닐 때는 그와 만난 수많은 여자들의 이름도. 그녀들과 보냈던 시간도 그에게는 무의미했다. 어떻게 된 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반대로, 혜빈과 보내는 시간은 하루 종일 있어도 늘 새로웠고 뜨거웠다. 자꾸 괴롭히고 싶을 만큼.

 

 과연 내가 당신을 놔줄 수 있을까?

 

 아니. 절대 그럴 수 없다.

 

 당신의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고, 행복하게 해 줄 남자는 나 밖에 없어. 마찬가지로, 내 시간을 살아있게 해주는 여자도 당신 밖에 없어.

 

 그러니까, 못 놔 줘.

 

 도진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회장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알지만, 기업의 주인이 아니라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그에게 따님을 맡겨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릴 것이다.

 

 나른한 표정으로 혜빈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도진은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는 종업원에 말에 상체를 돌리려다 멈칫하고 말았다. 혜빈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스킨십을 하는 한 외국인이 몹시 거슬렸다.

 

 ***

 

 사진 촬영에 집중하고 있던 혜빈은 한 남자가 여러 번 그녀를 불러대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일이든 취미든 한 번 집중하면 좀처럼 흐트러지지 않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친근하게 말을 거는 한 남자.

 

 “Hey!"

 

 “깜짝이야. 뭐야... 어?!”

 

 도진인 줄 알고 돌아보았더니 금발의 장신남이 서서 혜빈과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상대방을 알아본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 그와 악수를 나누며 웃었다.

 

 “Bonjour! (안녕!)”

 

 “라파엘! 여기는 어쩐 일이에요?”

 

 라파엘은 혜빈이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동안 진심을 다해 조언을 아끼지 않은 그녀의 동료였다. 덕분에 낯선 이국에서 적응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그는 교수로 임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가 한국으로 들어올 때만 해도 좀처럼 얼굴 보기가 쉽지 않았는데.

 

 “한국에 초청특강이 있어서 들렸어. 못 본 사이에 더 예뻐진 거 같은데?”

 

 “칭찬 감사해요.”

 

 “잠시 나갔다 온다더니 아예 안 들어올 생각이야?”

 

 “아... 당분간은 못 들어갈 거 같아요. 조만간 결혼할 예정이라... 그때까지 한국에 있을 거면 축하해주실래요?”

 

 라파엘은 손목에 걸린 시계를 한 번 내려다 본 뒤, 그녀를 쳐다보며 웃어주었다.

 

 “혜빈의 부탁이라면 얼마든지. 아, 내가 이 근처에서 만날 사람이 있거든. 만나자 마자 가봐야 해서 미안. 실례 할게. 나중에 한 번 식사 한 번 하자.”

 

 혜빈은 라파엘에게 손을 흔들어 준 뒤 다시 자리에 앉았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던 사람을 만나는 것 역시 인연이고, 평범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자극제가 된다. 오랜만에 미술과 관련된 지인을 만난 혜빈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미술.

 

 강 회장이 하라는 공부보다 미술이 좋아 그의 말을 듣는 대신 프랑스로 향했던 그녀였다.

 

 강 회장의 부름에 프랑스에서 하던 공부를 대충 마무리 짓고 왔던 터라 언젠가 다시 들어가 봐야 했다. 원래는 한 달 정도 있다 바로 다시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강 회장의 압박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정이었다.

 

 게다가, 도진까지 만나게 됐으니. 말은 안했지만, 의지할 사람이 없는 타지에서 생활해서 그런지. 지금은 프랑스에 남겨두고 온 일보다는 그와 있는 것이 더 좋다. 아니면, 유학을 가기 전 순식간에 뺏겨버린 첫 키스의 추억이 강렬해서 그럴 지도. 기회가 된다면 도진과 함께 프랑스에 가도 좋을 것 같다.

 

 도진과의 미래를 그리는 것은 어느덧 상상을 넘어 현실에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결혼이라는 거, 무조건 싫다고 볼 건 아니구나.

 

 결혼,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을 줄 알았다.

 

 생각만 해도 행복한지, 혜빈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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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제 60 화. 네가 행복하면 그걸로 된 거야 2017 / 7 / 20 303 0 6300   
60 제 59 화.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는 법이 없… 2017 / 7 / 20 304 0 7420   
59 제 58 화. 그러니까, 못 놔 줘 2017 / 7 / 20 287 0 8692   
58 제 57 화. 텅 빈 속을, 마음을, 따뜻하게 가득 … 2017 / 7 / 20 296 0 8089   
57 제 56 화. 사랑 때문에 무릎 꿇은 남자 2017 / 7 / 20 293 0 8720   
56 제 55 화. 그래, 사랑이 뭐 별 거 있나 2017 / 7 / 20 290 0 8629   
55 제 54 화. 허공에 대고 불러보는 간절한 이름 2017 / 7 / 20 307 0 6552   
54 제 53 화. 뜨거운 태양 아래 홀로 싸우려는 남… 2017 / 7 / 19 293 0 7397   
53 제 52 화. 어림도 없지 2017 / 7 / 19 286 0 6555   
52 제 51 화. 덮쳐, 말아? 2017 / 7 / 19 275 0 7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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