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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반전을 사랑한 남자
작가 : 샤뚜르
작품등록일 : 2017.7.5

강지원, 29살의 젊은 사장은 얼음 왕자라는 별명으로 직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직원들도 피해가는 그에게, 회사의 햇병아리가 어느 날 찾아와 태클을 건다. 그는 그녀가 만만했었다. 이세희, 24살의 인턴 사원. 상상 속 50대 사장과는 다른 조각미남이 나의 상사라니! 사랑 때문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 남자와 귀엽지만 반전 있는 그녀의 좌충우돌 연애 이야기.

 
제 56 화. 사랑 때문에 무릎 꿇은 남자
작성일 : 17-07-20 13:52     조회 : 293     추천 : 0     분량 : 8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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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전을 사랑한 남자

 

 

 

 

 

 제 56 화. 사랑 때문에 무릎 꿇은 남자

 

 

 

 “딸?”

 

 둘 만의 정적을 깨는 목소리에, 종이 한 장 들어갈 틈도 없이 딱 붙어 있던 남녀가 정지화면처럼 굳었다.

 

 목소리로 짐작하건대, 30대라 해도 무방할 만큼 엄청 젊었기에 잠시 들른 아는 언니인가 싶어 지원은 무시했다. 타오르기 시작한 뜨거운 불이 서서히 도화선을 따라 퍼지기 시작했다.

 

 점점 옅어져 가는 이성의 끈. 세희의 몸이 뻣뻣하게 굳기 시작한 것도 모르고 그냥 밀어 붙이려 했다. 어쩌겠나, 영겁의 세월 동안 눌러왔던 남자의 본능이 깨어난 것인데.

 

 남자의 본능은 이성의 제어를 잃는 순간, 그것은 마치 잘 흘러가던 물이 흐름을 방해 받아 수도관 안에서 팽창된 상태에서 다시 원활해진 흐름을 타고, 압력에 의해 순식간에 터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얼굴을 묻은 세희의 목덜미에서 향긋한 향이 났다. 지원은 아직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런 그의 얼굴을 저 멀리 밀쳐버리는 세희의 손길. 여린 손에 담긴 힘이 제법 강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귓속말로 물었다.

 

 ‘왜?’

 

 ‘오빠 뒤에...... 우리 엄마...’

 

 “......”

 

 그제야 지원은 서서히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지원의 얼굴이 서서히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

 

 청천벽력도 이런 청천벽력이 없다. 하나를 처리해도 완벽하고 똑 부러지게 해내는 성격 때문에, 세희의 부모님. 만나 뵐 때 깔끔하게 차려입고서 한 방에 결혼승낙까지 얻어낼 계획이었다. 이런 모습으로가 아니라.

 

 예비 장모님께서 끔찍하게 아끼시는 예쁜 딸을 이렇게 허락도 없이 낼름 잡아먹으려한 외간 남자를 보고서 가만히 계실 어른이 없지 싶다. 만약 그에게 딸이 있었더라도 그건 용서 못 할 짓이지.

 

 매는 맞을 때 맞더라도, 인사는 제대로 하자.

 

 지원은 잔뜩 굳은 얼굴로 자세를 바로 하고 섰다.

 

 

 

 그 뒤를 따라 세희가 구겨진 옷을 바로 한 뒤, 시은을 맞이해주었다.

 

 “어, 엄마 왔어?”

 

 평소 자신이 알고 있는 시은과 달리, 잔뜩 굳어있는 얼굴. 심상치 않다.

 

 시은은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세희를 쳐다보며 냉기가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 너, 이리 와서 앉아.”

 

 그러고서 시은은 세희의 맞은편에 앉으며 지원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이름을 몰라서 이해해줘요. 앉아요.”

 

 “......”

 

 

 

 얼굴을 잔뜩 굳히고 앉아 있는 시은의 속마음은 겉과는 달리, 바람에 나부끼는 여린 갈대 같았다.

 

 남편 성환에게 딸의 집을 급습하고 온다며 자신만만하게 작별인사를 날리고 올 때만 해도 세희의 남자친구에 대한 작은 거 한 가지 정도는 알아낼 수 있겠지 싶었다.

 

 그런 은밀한 마음은 접어두고. 딸이 독립 해나가기 전에 늘 함께 옆에 누워 오순도순 수다를 떨던 그 시절처럼, 오랜만에 같이 잘 생각에 들떠 처음 세희의 집 현관에 발을 들였을 때. 당연히 세희가 저를 기다리며 있을 줄 알았다. 일을 치르기 직전의 그 말로 못할 장면이 아니라.

 

 저도 컸다고 그런 야릇한 짓을 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기에 충격 받은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순 거짓말이지.

 

 

 

 지원의 세희를 바라보던 눈빛을 목전에서 보게 됐던 시은은 그를 곱게 봐줄 수가 없었다.

 

 아직 시집도 안 간 딸, 곱게 키워 놓자마자 낼름 잡아먹으려던 늑대 놈. 그 놈에게 자신의 남편도 모르는 냉기 서린 목소리로 무섭게 한 마디 해주려 했었다. 아무리 요즘 사람들이 개방적이라지만, 자신의 딸이 그런 대열에 동참한다는 것은 부모로서 쉽게 허락을 하기가 힘드니까.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자신을 마주하며 딸과 함께 선 그 남자, 도둑 놈. 그 놈 얼굴 보는 순간, 제 마음은 생각보다 빨리 저 놈이 원하는 대로 들어줄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여자의 감으로.

 

 어이구야, 자신의 남편도 어디 가서 지지 않은 얼굴인데. 내 남편 보다 더 잘 생겼어!

 

 잘생긴 얼굴은 그 얼굴을 무기로 여자 꼬시러 다니기 바쁘다는 옛 어른들의 가르침이 있으셨으나, 보기 좋은 떡이 그 속도 좋은 지라. 그 잘생긴 얼굴에 홀딱 넘어가는 것이 여자 마음이니라.

 

 얼굴은 일단 세희의 짝으로 합격.

 

 연예인을 텔레비전으로 접하는 것과 실물로 보는 것은 완전 천지 차이란다.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어쩜 콧날이 저렇게 우뚝하고 피부가 뽀얗니. 눈매도 단정하고. 감탄을 아낄 부분이 없다. 일명 ‘만.찢.남.’ 요즘 애들은 이런 스타일을 보고 저렇게 부르던데. 만화를 찢고 나온 것처럼 완벽하게 잘생겼다.

 

 지원의 얼굴을 보던 시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그러고 보니 텔레비전에 종종 나오던 K 그룹 강 사장이랑 좀 닮았는데...?

 

 에이, 설마.

 

 

 

 한동안 지원의 외모를 찬찬히 뜯어보고 있던 시은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불장난 하려던 젊은이들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아까 하던 그 짓은 절대 용납 못 한다는 얼굴로, 본인들이 양심에 팍팍 찔리게 만들려는 의도였다.

 

 시은은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 남편을 떠올렸다. 자신보다 세희를 더 끔찍이 아끼는 성환에게 이놈에 대해 얘기해주려면 적어도 자신이 먼저, 알아 가야 할 것이 많았다.

 

 그런 그녀가 처음 던진 질문은.

 

 “둘이, 잤어?”

 

 혼이 날 거라 생각했는데, 돌직구 중에 최고의 돌직구였다.

 

 아무런 감정이 드러나지 않은 얼굴로 파격적인 공을 던져오는 시은에, 두 남녀의 얼굴이 동시에 번쩍 들리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입만 뻥긋거리며, 아무도 그 공을 받아치지 못했다.

 

 남편 성환은 항상 제게 과하게 솔직하지 마라며 핀잔을 주곤 했지만 어쩌겠나. 이게 제 성격인 걸. 그리고 그 성격이 좋은 역할을 해줄 때도 있으니 화끈함은 역시 나의 매력이다.

 

 시은은 새빨개진 세희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양심에 찔리는 거짓말은 좀체 하지 못하는 세희니, 아직은 아니고. 아까 침대까지 갈 뻔했는데 내가 온 거네.

 

 그럼 다음.

 

 

 

 시은은 지원을 쳐다보며 물었다. 이제부터 질문 세례가 시작 되었다.

 

 “우리 딸, 왜 만나요?”

 

 자신의 남편이 공직생활에 몸담고 있는 지라, 화려한 사치품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시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방면으로는 전혀 모르는 자신이 봐도 지원의 몸을 휘감고 있는 것들은 딱 봐도 풍채가 달랐다.

 

 돈 많은 남자가 우리 딸을 만날 이유,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렇다면, 부모 입장에서는 당연히 안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데. 당사자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쓸데없는 장식멘트는 전부 생략했다.

 

 시은의 물음에, 지원은 그녀가 코앞에서 바라보고 있음에도. 일상처럼. 늘 그렇듯이, 세희를 향해 날 믿으라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시은의 허락을 받아낼 자신이 있었다. 옅은 미소가 감돌았다.

 

 “사랑합니다.”

 

 시은은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지원의 모습으로 보아, 한 치의 거짓됨 없이. 영락없는 콩깍지 제대로 씐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했으나, 더 확실한 것이 필요했다. 만약 저 남자가 자신의 딸을 그저 한순간의 사랑으로 여긴다면, 이 관계는 더 이어질 이유도 없고 성환에게 얘기할 필요도 없다.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다지만 우리 세희. 어리다는 이유로 그렇게 함부로 할 여자, 아니에요. 그쪽은 연애가 장난으로 보여요?”

 

 “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말씀 한 마디 올리고 시작하겠습니다. 아까 보여드렸던 모습은... 죄송합니다. 그리고 제 이름은 강 지원입니다. 소개가 늦었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지원이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 세희의 엄마라는 이유에도 좀처럼 기죽지 않고 온몸에서 자신감이 뿜어져 나왔다. 남편이 오랜 세월 군인이라는 직업에 종사하며 몸에 익힌 자신감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아까 보였던 그 민망한 장면을 연출한 장본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는 전혀 눈치를 보지 않고, 거리낌도 없었다.

 

 역시. 처음 그를 마주했을 때 느낀 예상대로, 강 지원이라는 남자는 자신이 일부러 세게 몰고 나간 말에 절대 기죽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상황을 이끌어나가려 했다.

 

 

 

 뭐 하는 놈이지?

 

 저 모습이 어른 앞에서 오만하게 구는 행동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데, 문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시은은 성환이 아무리 반대를 하더라도, 저 남자가 싫지는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원에게는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힘이 있었다.

 

 시은의 침묵을 계속하라는 말로 알아들은 지원은 흘러가는 분위기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시은이 완전히 지원을 예비 사위로 인정해버리게 되는 말이었다.

 

 “저, 세희 씨 사랑합니다. 처음 뵙는 자리에서 이런 말 꺼내기가 힘들지만 저, 세희 씨와 결혼하고 싶습니다. 제가 가진 게 많다는 이유로 결혼 상대를 찾을 거였다면 말씀대로 세희 씨, 만나지 않았을 겁니다. 아까 보신 장면도 그렇게 쉽게 결정한 일이 아닙니다.”

 

 “......”

 

 “말로 제 마음을 다 보여드리기 힘이 들어 아쉽지만, 제가 세희 씨를 만나고 사랑하며 결혼까지 결심한 이유는. 세희 씨가 가진 것이 제가 가진 것보다 더 크고 소중한 보물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말, 편하게 놓아도 되죠?”

 

 “네. 편하게 대해주세요.”

 

 “우리 딸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지? 그리고 그 소중한 보물이라는 게,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게 마음을 굳힐 정도로 중요한 거라 할 수 있을까?”

 

 

 

 지원이 편하게 양반 다리로 앉아 있던 자세를 바로하고, 무릎을 꿇었다. 남자들의 세계에는 이런 말이 있다. 남자 무릎, 그거 쉽게 꿇는 거 아니라고. 무릎을 꿇는 것은 자존심을 내려놓는 것과도 같다.

 

 지원은 살면서 한 번도 굽혀본 적 없는 자존심을 세희를 위해 내려놓았다.

 

 그만큼 그는 세희를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하기도 싫었다. 반드시 허락을 받아 내야하는 간절함이 그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제가 그리 살가운 성격이 아니라 휘황찬란한 말로는 대답을 못 드리겠습니다. 마음을 쉽게 털어놓는 성격도 아니라 죄송합니다. 다만, 세희 씨의 웃는 얼굴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고 알면 알수록 제가 모르고 살았던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가진 게 돈 뿐이라 죄송하지만, 저는 그 어느 것보다 세희 씨가 가진 것이 더 소중합니다. 따님 눈에서 눈물 나면 뺏어간다는 말, 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미리 말씀드립니다. 울리는 만큼 행복하게, 세희 씨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들 잃지 않게 곁에 있어주겠습니다.”

 

 “......”

 

 

 

 ......졌다.

 

 시은은 지원의 말에 어깨 가득 주고 있던 힘이 스르륵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제 앞에서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꼭 허락을 받고 말겠다는 자세로 꿇어 앉아 있는 지원을 여러 감정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았다.

 

 겉이 화려하고 잘 생겨서, 당연히 말 주변 역시 화려하고 허세가 있을 줄 알았다. 남자는 한두 가지 정도라도 허세를 떨고 싶어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으니까.

 

 당연히 저 나이 대답게 말에 살을 붙이고 붙여 듣는 이를 현혹 시키게 하겠지 생각했다. 세희가 데려온 첫 남자인 만큼 그를 향한 선입견이자 자신의 고집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건 다 ‘겉’만 보고 판단한 자신의 실수였다.

 

 사람 볼 때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더니. 사윗감을 볼 때도 그 원칙은 변하지 않는데 말이다.

 

 진심이 느껴지다 못해 그 진심을 의지로 절절하게 내보이는 남자를 딸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쉽게 허락해주지 않으려던 자신의 마음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나는 일단 여기까지. 마지막 남은 ‘진짜’는 남편에게 맡기기로 해야지.

 

 저 놈에게 무슨 사정이 있길래 우리 딸 눈에서 눈물 안 나오겠다 하는지 모르겠지만, 눈빛가득 담긴 힘에, 왠지 자신의 한 말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지켜낼 것 같아 보인다.

 

 그래, 믿어보마.

 

 재희를 제외한 남자는 절대 허락 않겠다는 쇠고집의 우리 남편도 꼭 사로잡기를.

 

 딸의 첫 연애라 신경 써 주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괜한 생각이었나 보다. 자신들의 귀여웠던 꼬꼬마 아가씨는 남편과 자신의 품을 벗어나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남자 보는 눈 하나 끝내준다, 우리 딸!

 

 

 

 한동안 생각에 잠겨 아무 말 없는 시은을 바라보는 세희와 지원은 그녀의 행동을 반대의 뜻으로 해석하고서 낙담했다.

 

 짧지만 길었던 침묵을 깨고 드디어 시은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 다시 와. ......강 서방.”

 

 “네. 잠깐...... 네?!”

 

 지원의 단정한 얼굴 위로 드러난 놀라운 표정에 시은은 속으로 쿡, 웃었다.

 

 내가 허락 안 해주면 절대 자리를 안 뜰 것처럼 보였는데, 생각보다 무른 구석도 있는 것 같다. 방금 전 지원에게 질문을 쏟아내던 무표정한 얼굴로 시은이 다시 얘기해주었다. 예비 사위에게 장모로서의 체면은 서야 하니 표정을 쉽게 바꾸면 안 되지.

 

 “우리 딸, 약속대로 믿고 있겠어.”

 

 지원이 진심으로 기뻐하며 자리에서 일어서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장모님! 내일 아침에 세희 씨 데리러 오면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시은은 지원이 현관을 나서며 내민 명함을 받아들었다.

 

 닮은 놈이 아니라, 같은 놈이었네.

 

 시은의 얼굴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우리야 우리 딸 좋다는 남자면 괜찮지만 어린 나이에 결혼을 결심한 세희가 상처 받는 일만큼은 없었으면 좋겠다.

 

 시은은 입술 안쪽의 여린 살을 깨물었다. 그러고 보니...

 

 “기집애, 어디 간 거야? 세희야?”

 

 “응~? 나, 지금 욕실에 있어!”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너무 생각만 깊게 파느라 세희가 자신이 눈치 못 채게 재빨리 욕실로 모습을 감춘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숨길 거라도 있나?

 

 있지! 시은의 속 깊은 딸은 그녀가 세희의 다친 발을 보고 속상해 하는 것을 최대한 숨기기 위해 욕실로 숨어버리는 잔머리를 굴렸다.

 

 

 

 

 

 ***

 

 

 

 

 

 깜깜한 어둠이 내려앉은 세희의 방 안에서, 시은과 세희는 천장을 쳐다본 채 그렇게 가만히 누워있었다. 좀처럼 잠이 들지 않는 밤.

 

 딸의 연애 문제가 바로 결혼으로 직결될 줄은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터라, 기분이 묘한 탓에 잠이 오지 않는 중년의 여인과. 지원이 다녀간 이후로 그에 대해 한 마디도 없는 엄마의 생각이 궁금한 딸.

 

 아무 말 없이 그렇게 밤을 흘려보내나 싶었는데, 깨질 것 같지 않던 정적을 뚫고 시은이 세희에게 말했다.

 

 “잘 생겼더라.”

 

 “응? 응.”

 

 “너도 그 남자가 그렇게 좋아? 첫 연애를 결혼으로 연결시키고 싶을 만큼?”

 

 세희는 아주 잠시였지만 골똘히 생각한 뒤 바로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결혼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생각 안 해봤어. 막연하게 때가 되면 해야지 하며 그냥 그렇게 있었는데.”

 

 “그랬는데?”

 

 

 

 “첫 연애면 어때. 사람들이 자기 배우자를 보고 ‘이 사람이다’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갈 때가 있다고 하잖아. 아직 나이가 어려서 엄마만큼 세상을 알지는 못하지만, 나도 그래. 오빠가 내 인연인 것 같아.”

 

 “그래......”

 

 그렇게도 그 남자가 좋니. 시은은 어둠 속에서 눈을 빛내며 얘기하는 딸을 바라보았다. 사랑은 여자를 행복하게, 그리고 예쁘게 만들어 준다더니. 자신의 딸은 여태껏 보아온 모습 중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로 지원을 그리고 있었다.

 

 네 아빠랑 연애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그래도.

 

 지금은 서로 좋아 들뜬 마음에 인연이니 뭐니 하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면 변하기 마련인 것이 사랑이다. 지금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 다는 법도 없고, 그 마음을 굳게 마지막까지 가져갈 수 있다고 해도.

 

 결혼만큼은 신중했으면 하는 것이 제 마음이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첫 연애라는 것은 다 제쳐두고,

 

 “......”

 

 “한 가지만 물어봐도 돼?”

 

 “응?”

 

 “엄마는 그 남자가 왜 너 아니면 안 된다는 지 아직 이해를 못하겠어. 하고 싶은 얘기가 더 있는 사람처럼 보였는데... 아무리 내가 네 엄마라도 남이라서 더 깊은 얘기까지는 무리였나......”

 

 

 

 시은의 물음에, 세희는 잠시 고민했다. 당사자가 아니라서 그에 관한 전부를 얘기해 줄 수는 없지만 그냥 모른척 하는 것보다, 지금 이 얘기를 해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아...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나봐. 나도 처음에는 완전 단단하고 틈도 없이 일 잘하는 사이보그 사장님인줄 알았는데, 겉과는 다르게 속은 엄청 깊고 자상하고 또... ...오빠가 얘기 안 해준 걸 이렇게 얘기해도 되나 모르겠는데... 혼자 밥 먹는 거에 익숙하고 정(情)에 목마르신 분이더라. 내가 웃는 모습에 끌렸대. 반전이지?”

 

 “응.”

 

 시은은 자리에서 상체를 조금 일으켜 세희가 누워있는 자리로 옮겨갔다. 그러고서는 그녀의 여리고 가는 어깨를 엄마의 따스한 체온으로 꼬옥 안아주었다.

 

 “우리 딸, 혹시라도 강 서방 때문에 힘들어지면 어떡하지?”

 

 당연히 부모 입장에서 딸의 행복을 빌어주고 응원해주는 것이 옳은 거지만, 마냥 그럴 수 없는 것이 지금 세희가 처한 현실이었다.

 

 전날 꿨던 시은의 꿈자리가 자꾸 눈에 밟히는 이유도 있었던 탓에 쉽게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음...... 괜찮을 거야 엄마. 오빠, 그렇게 줏대 없거나 가벼운 사람 아니야. 그런 사람이었으면 안 만났어. 만약 회장님이 우리가 만나는 거 반대하시면 그때는... 또 나만의 특별한 방법으로 한 방 먹이고 올게. 오빠 그만 괴롭히라고. 그만 외롭게 하라고.”

 

 그러면서 그 나이 또래답게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회장급이면 남들은 어려워서 쩔쩔 매는데 우리 딸은 그저 게임 속 대장을 무찌르러 간다는 듯이 단순하게 말한다.

 

 

 

 그러나.

 

 세희의 웃음은 그저 지금 시은의 마음을 짐작하여 그녀를 달래주기 위한 가면에 불과한 것이었다. 솔직히 회장님께서 그녀와 지원의 관계를 반대하시면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 지 모르겠다. 까마득하다.

 

 “...혹시라도, 그쪽에서 너 힘들게 하면 얘기해.”

 

 “어? 응.”

 

 두 모녀는 저 마다의 심란한 마음을 숨긴 채, 딱 달라붙어 따뜻한 잠을 청했다. 외로움 따위는 절대 비집고 들어갈 틈 없는 견고한 벽이 세희네 모녀에게는 존재하고 있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세희가 지원과 함께 걷고 있는 길은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는 검은 터널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위한 도약 단계임을.

 

 

 

 Give and Take.

 

 지원이 비즈니스를 하며 항상 입에 달고 사는 말.

 

 이 말처럼, 아니 보다 더. 인생은 내가 원하는 한 가지를 주는 대신, 더 큰 인내와 노력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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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제 62 화. 아련한 불빛이 흩어진 밤, 넘어가다 2017 / 7 / 21 315 0 9973   
62 제 61 화. 본능과 끊임없이 싸우며 노력하는 … 2017 / 7 / 21 291 0 6519   
61 제 60 화. 네가 행복하면 그걸로 된 거야 2017 / 7 / 20 304 0 6300   
60 제 59 화.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는 법이 없… 2017 / 7 / 20 306 0 7420   
59 제 58 화. 그러니까, 못 놔 줘 2017 / 7 / 20 288 0 8692   
58 제 57 화. 텅 빈 속을, 마음을, 따뜻하게 가득 … 2017 / 7 / 20 298 0 8089   
57 제 56 화. 사랑 때문에 무릎 꿇은 남자 2017 / 7 / 20 294 0 8720   
56 제 55 화. 그래, 사랑이 뭐 별 거 있나 2017 / 7 / 20 291 0 8629   
55 제 54 화. 허공에 대고 불러보는 간절한 이름 2017 / 7 / 20 309 0 6552   
54 제 53 화. 뜨거운 태양 아래 홀로 싸우려는 남… 2017 / 7 / 19 294 0 7397   
53 제 52 화. 어림도 없지 2017 / 7 / 19 287 0 6555   
52 제 51 화. 덮쳐, 말아? 2017 / 7 / 19 276 0 7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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