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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반전을 사랑한 남자
작가 : 샤뚜르
작품등록일 : 2017.7.5

강지원, 29살의 젊은 사장은 얼음 왕자라는 별명으로 직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직원들도 피해가는 그에게, 회사의 햇병아리가 어느 날 찾아와 태클을 건다. 그는 그녀가 만만했었다. 이세희, 24살의 인턴 사원. 상상 속 50대 사장과는 다른 조각미남이 나의 상사라니! 사랑 때문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 남자와 귀엽지만 반전 있는 그녀의 좌충우돌 연애 이야기.

 
제 55 화. 그래, 사랑이 뭐 별 거 있나
작성일 : 17-07-20 13:51     조회 : 289     추천 : 0     분량 : 8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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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전을 사랑한 남자

 

 

 

 

 

 제 55 화. 그래, 사랑이 뭐 별 거 있나

 

 

 

 욕 한바탕 날린 뒤 쫒아낼 생각으로 입구로 나오신 할머니는 뜻밖의 방문객에 할 말을 잃었다.

 

 “잉? 저번에 왔던 그 아가씨네?! 에구머니나, 이게 무슨 일인 겨! 처자! 뭔 일이래? 울지 말고 이리 와서 앉아.”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저녁, 느닷없이 찾아온 여린 아가씨는 비에 홀딱 젖은 강아지 같았다. 쫓아내고 싶지만 다독여 주고 싶어 그럴 수 없는.

 

 이 아가씨는 자꾸 눈이 가.

 

 할머니께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세월을 타서 주름진 손을 뻗어 세희를 식당 건너편에 있는 자신의 집 안으로 조심스레 안내했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저리도 가슴 아프게 우는지. 토닥토닥. 할머니께서 어린 손녀를 보듬어주듯 등을 두드려주며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또르르 흘리는 세희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여...? 배고파서 우는 겨? 내 특별히 처자 밥 챙겨줄 테니까 울지 말어. 아, 저번에 그놈은 혼자 와서 온갖 궁상떨다 가더니 같이 오라는 말은 귓등으로 흘려들었나? 내 보니 저번에 반찬도 제대로 가져다주지는 못했을 거여. 이렇게 예쁜 아가씨 혼자 울게 놔두고 지랄이여!”

 

 눈가에 맺혀 한동안 떨어질 줄 모르던 눈물은 지원이 혼자 다녀갔다는 그 말에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투둑. 투두둑. 흘러내렸다.

 

 “할머니이...”

 

 세희의 부름에 할머니께서 얼굴을 바싹 당겨 앉으셨다. 지금의 할머니라면 뭐든지 다 들어줄 것 같았다.

 

 “응, 그려. 말 해 봐. 뭐가 먹고 싶은 건데?”

 

 “흑...”

 

 

 

 어린 아가씨가 무슨 사연이 있어서 저리도 서럽게 우는고.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에, 보는 사람마저 코끝이 찡해졌다.

 

 “처자, 예쁜 얼굴 상하겠어. 답답한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들어줄게.”

 

 “그 사람... 전에 혼자 다녀간 적, 있어요?”

 

 “전에 처자랑 같이 왔던 겉만 멀쩡한 놈? 그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세상 끝난 사람처럼 넋이 나갔던데 그래서 내가 한 마디 해줬지. 그 놈 밥 먹는 게 신경 쓰여서 반찬도 조금 넉넉하게 싸줬어.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라 왠지 나눠줄 사람이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아가씨 아니었남?”

 

 “......”

 

 세희는 할머니의 이야기에, 그제야 알게 되었다. 워크숍이 열리기 바로 얼마 전, 무리한 탓에 몸살을 앓느라 하루 종일 집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집에 누군가 놓고 간 보자기 꾸러미.

 

 그리고 보자기 안에 반듯하게 접혀 있던 쪽지. 그 안에 적힌 내용은 분명 어른의 말투였으나, 글씨는 삐뚤빼뚤. 어린 아이의 장난인 줄 알고 웃으며 보자기 꾸러미를 들였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아직 세상 살만 하다고. 반찬에 담긴 사연은 모른 채, 그저 맛있게만 먹었었다.

 

 시은이 다녀간 지 얼마 안 된 시간이여서 그녀를 제외하고 자신의 집에 찾아올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재희인가 싶어 골똘히 생각해보니, 그는 온다면 미리 얘기를 해주는 성격이었다. 게다가, 아직 재희에게 주소를 가르쳐준 적도 없었으니. 도대체 누구일까 했었다.

 

 

 

 그게 지원이었다니.

 

 평소 그의 행동으로 보아, 그렇게 자신의 집에 다녀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지금은 그녀와 함께하며 조금 부드러워지기는 했지만, 늘 그녀를 못 마땅하게 여기던. 정이 없는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차갑고 자존심 세던 남자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쉽게 인정할 리가 없지 않은가.

 

 증권가에 저렇게 소문이 돌 정도면 그의 아버지 강 회장으로부터 미리 언질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을 져버리지 않은 지원의 용기에 가라앉으려던 눈물샘이 또 펑펑 터져버렸다.

 

 “아효~ 자꾸 그렇게 울면 힘들어. 내 따뜻한 국이랑 밥, 그리고 요즘 유행한다는 통통한 계란말이에 매콤한 삼겹살 볶음 내왔으니 어여 먹어.”

 

 일류 셰프가 예쁘게 말아낸 모양은 아니지만, 노란 계란말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만든 이의 정성이 느껴졌다.

 

 정성스레 지어주신 밥을 눈물 젖은 입으로 한 숟갈씩 비워나갔다. 따뜻한 식사 한 끼를 얻어먹는 동안 좀처럼 가라앉지 않던 감정이 차츰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운 세희를 바라보시는 할머니께서는 아무 말이 없으셨다. 우는 사람 앞에서 대답을 종용하기 보다는, 기다림의 미덕으로 배려해주시려는 연장자의 지혜가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할머니...”

 

 “응, 그려. 나 여기 있어. 저번에 그 놈 때문에 우는 겨? 고 놈 그거 못 쓸 놈이네. 이렇게 예쁜 처자를 울리다니.”

 

 비록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지만, 자신의 편을 들어주며 아무 잘못 없는 지원을 나무라시는 할머니의 말씀에 기운이 났다. 그래서 속에 있던 말을 용기 내어 뱉어본다.

 

 울적했던 마음, 그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해 속상한 마음. 훨훨 털어버리고 한 걸음 더 성장하기 위해.

 

 

 

 아무 것도 못하는 무능함을 탓하며 울고 있기 보다는,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주기 위해 기운 차리고 일어서는 것이 훨씬 나다운 거니까. 씩씩하게.

 

 세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저 그 사람 정말 많이 사랑해요. 처음 해 본 사랑이지만, 그 남자는 남들이 보는 것과 달라요. 제 마음을 다 줘도 아깝지 않을 만큼 진실 되고 든든해요. 그런데 제가 힘이 되어주지 못해 속상한 거 있죠..”

 

 “이리 예쁘고 사랑스러운 처자가 힘이 되어주지 못한 게 뭐가 있길래 그러누?”

 

 “오늘, 오..빠가 한 번도 자신의 의지로 싸워본 적 없던 그의 세상과 싸우러 갔어요. 저를 지키기 위해서. 철없이 굴었던 것에 미안하고, 부끄럽고. 혼자 싸우러 가서 힘들까봐 걱정되고 그래요...”

 

 덥썩.

 

 할머니께서 가만히 세희의 말을 듣고 계시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으로 부드럽고 하얀 손을 두 손에 꼬옥 쥐셨다. 세월에 많이 바란 손길이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온기는 그 어떤 것보다도 따뜻했다.

 

 손녀가 없어 적적하던 차에 들러준 세희와 지원. 자신의 음식이 뭐가 그리 맛있다고 자주 찾아오는 지 알 길이 없었지만, 이들 덕분에 다 져 가던 늘그막. 외롭지 않을 수 있었다.

 

 

 

 선남선녀처럼 잘 어울리는 한 폭의 그림 같은 그들을 보며 속으로 내심 잘 되길 바라고 있었다. 요즘 젊은이들답지 않게, 이리도 예쁜 사랑을 하는데. 그동안의 연륜과 지혜를 다 끌어 모아 마지막 힘까지 다 주고 싶었다.

 

 “내가 얘기한 말 기억나는 감?”

 

 - 그 놈, 겉으로 생긴 거랑은 다르게 엄청 여리고 외로움이 많은 놈이여. 보니까 아가씨 좋아하는 마음이, 그게 눈으로 보일 정도던데. 푹 빠지면 장난 아니것어~ 둘이 정말 잘 어울려!

 

 할머니께서 세희를 바라보시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가씨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 너무 힘들어 하지 말고, 그냥 그 놈한테 맡겨봐. 이건 아가씨 무시하는 말이 아니라, 아가씨 나이 아직 어린데 뭘 더 어떻게 해주려고 그래. 나이보다 더 많은 짐을 지려하지 말고. 지금 아가씨가 할 수 있는, 해줄 수 있는 것을 해주면 그 놈은 그거만으로도 기쁠 거야. 대신, 안아주고 등 두드려주며 고생했다는 말 한 마디는 꼭 해 줘.”

 

 할머니의 눈빛에 수많은 감정들이 담겨있었다. 젊음을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그 말에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할머니 정말 감사해요. 다음에는 오빠랑 꼭 같이, 다시 찾아올게요.”

 

 식사 값을 지불하고 가려던 세희와 옥신각신하시던 할머니께서는 결국 돈을 받지 않기로 하셨다. 할머니께서 느린 걸음으로 걸어오시더니 가게의 문을 열고 막 나가려던 세희를 포근한 품으로 따뜻하게 안아주셨다.

 

 “처자, 그 놈 옆에 꼭 붙어 있어야 된다잉?”

 

 세희도 그런 할머니의 허리를 부드럽게 안아드리며 방긋 웃었다.

 

 “네. 식사 감사해요.”

 

 할머니께서 세희가 골목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셨다.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고도 남을 때까지.

 

 

 

 그래, 사랑 뭐 별 거 있나.

 

 힘들 때는 서로 의지하면서 같이 걷는 거지.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해하고 아파하는 것도 사랑해서 그런 거다.

 

 그래, 그런 마음이면 충분하다.

 

 앞으로 다가올 날에 겁먹지 말고, 그렇게 서로의 옆에 있어 주거라. 뜨거움이 충만한 감정의 벽으로 태풍이 휘몰아치지 못하게.

 

 “......갑자기 우리 영감 보고 싶으이.”

 

 할머니께서 저녁 하늘을 곱게 수놓은 별들을 올려다보시더니, 발걸음을 돌려 가게로 돌아가셨다.

 

 

 

 드르륵- 탁.

 

 할매국밥 집의 무거운 철제 문이 닫혔다. 영업이 끝이 났다.

 

 고단했던 몸의 긴장이 풀리며 피곤이 몰려왔다.

 

 

 

 꿈에서라도 내 님 볼 수 있을까.

 

 만난다면 그리웠던 얼굴 마주하며 두 손 꼬옥 붙잡고 그리웠노라, 얘기해줘야지.

 

 

 

 

 

 ***

 

 

 

 

 

 세희는 그가 갈 때까지는 그녀의 집에 가 있으라는 지원의 말대로, 자신의 집으로 갔다. 디지털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와, 적막함을 뚫고 조심스레 발을 내딛어 욕실로 들어섰다.

 

 지원이 욕실에서 그녀를 옆에서 부축해주며 씻겨주던 요 며칠 동안은 그의 보살핌을 받느라 발목에 붕대를 감고 있다는 것이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었는데, 제 손으로 씻는 일을 다해내야 하는 지금은 여간 힘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후아...”

 

 씻고 나오니 시계는 어느덧 9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도, 다 씻고 나와 그를 기다리고 있는 지금도. 그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걱정이 되는 한 편으로는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자는 마음이 팽팽하게 대립 했다. 핸드폰을 들었다 놓은 것이 여러 번.

 

 

 

 “음. 음.”

 

 제 눈으로 지원이 저녁 약속을 무사히 끝내고 왔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좀처럼 다른 일에는 눈길도 가지 않고, 신경도 쏟기가 싫어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일만 생각하기로 했다.

 

 막상 그의 앞에서 불러보려니 쑥스럽기만 해, 잠겨있던 목을 풀며 한참을 뜸을 들였다.

 

 “지원... ...오빠.”

 

 

 

 사장님 호칭만 익숙하게 써왔던 터라,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는 공간이지만 귓가에 흩어지는 단어가 어색했다.

 

 다른 여자들은 콧소리도 섞어가며 갖은 아양이란 아양은 넘치도록 들려준다는데. 남자 하나 제대로 잡고 사는 진짜 여성스러운 성격이 못 되는 지라, 여성스러운 세계는 어색하기만 했다. 세희는 머리를 헤집었다.

 

 나도 한 번...?

 

 “지원 옵↘빠↗?”

 

 우웩.

 

 제 귀로 선명하게 들어온 이질적인 목소리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평소에 애교와 그리 거리가 먼 성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콧소리에 톡톡 튀는 여시 같은 목소리는 아무리 제 목소리라도 못 들어주겠다.

 

 

 

 30분 넘게 호칭을 어떤 말투로 불러야 하나 씨름하는 사이, 초인종이 울렸다.

 

 띵동-

 

 “누구세요?”

 

 “나야.”

 

 지원이었다.

 

 철컥.

 

 “잘 다녀왔어... 엇!”

 

 문이 열리자마자, 지원은 쓰러지듯 세희의 품에 안겼다.

 

 자신의 부탁을 어기고, 제게 장 비서가 온 것까지는 대충 기억이 나는데. M 호텔에서 신경을 바짝 쓰며 온몸 가득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던 터라.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가물가물했다. 따뜻했다. 그를 반겨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다.

 

 힘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기 시작한 만큼 홀로 있을 자신이 없었다. 오늘 하루 고생 많았다고 따뜻하게 맞이해줄 세희가 얼른 보고 싶었다. 굳게 닫혀있던 현관문이 열리면서 그 틈으로 언뜻 비친 세희의 얼굴과, 그녀의 향기에. 지원은 마지막으로 잡고 있던 긴장의 끈을 놓아버렸다.

 

 

 

 커다란 손으로 세희의 여린 몸을 제 너른 품에 가득 안고, 저녁 내내 그리웠던 향기를 듬뿍 들이마셨다.

 

 “다녀왔어.”

 

 “어서 와요.”

 

 토닥토닥.

 

 말을 하지 않아도 귓가에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수고했다고. 고생 많았다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녀의 손길에 갑갑했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차갑게 둘러맸던 두꺼운 가면조차 그녀의 앞에선 속절없이 무너졌다.

 

 지원은 그녀의 온기를 느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아, 나 할 말 있는데......”

 

 “무슨 말?”

 

 할 말이 있다며 제 품에서 떨어지는 세희를 아쉬운 눈으로 내려다보며, 기다려주는 지원이었다.

 

 입술을 오물거리며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는 그녀의 얼굴에, 지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양 따위 안하면 어때. 나는 내 식대로 간다!

 

 “사랑해요...... 지원 오빠.”

 

 “......뭐?!”

 

 뿅망치로 뒤통수를 가격 당한 사람처럼, 한동안 얼빠진 얼굴로 멍하니 있는 그의 얼굴에 세희의 얼굴은 아까보다 더 붉어졌다. 확실히 본인 앞에서 불러보는 것이 더 쑥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지금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이 말 뿐이라 꿋꿋하게 참아냈다.

 

 “지원 오빠.”

 

 “......”

 

 

 

 “오빠......?”

 

 세희가 지원의 얼굴 앞에서 손을 휙휙 저어댔다.

 

 지원은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며 정지 화면처럼 서 있었다. 오빠라는 말은 예고하고 듣는 것도 아닌데. 그토록 듣고 싶어 했던 그 말을 오늘 들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사랑하는 여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오빠’라는 단어는 그 어떠한 말보다 달콤했고 기분이 좋았다.

 

 지원은 굳이 기분 좋다는 얼굴을 숨기지 않은 채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M 호텔에서의 시간 동안 얻어온 피로감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것 같았다.

 

 “전에는 해달라고 해도 안 해주더니, 웬일이야?”

 

 “그냥... 오늘 철없이 굴었던 거 미안해서. 오늘이 수요일인 것도 잊고 있었거든. 그것도 모르고... 나한테는 아무 말도 없이 오빠 혼자 거기 간 게 신경 쓰여서, 무사히 돌아와 줘서 고마워요.”

 

 지원이 자신을 ‘오빠’라고 불러준 세희의 사랑스러운 입술에 시선을 주었다. 어떻게 저 입술에서는 예쁜 말만 나오는 걸까.

 

 “나야 말로. 넌 그저 너답게 있어주기만 하면 돼. 나는 그거로도 충분해. 미안해하지 마.”

 

 

 

 세희를 바라보는 그의 눈길이 집요했다. 어딘가에 계속 집중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시선을 따라가니 도달하는 것은 자신의 입술.

 

 집요하다 못해 발톱을 숨긴 야수처럼 어둡기까지 했다.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모르지 않는 그녀였기에, 어색한 분위기를 느끼며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려버렸다.

 

 “아... 오빠, 시간도 늦었는데 이제 그만 돌아가시는 게...”

 

 살짝 피하려던 세희를 붙잡는 지원의 손길이 더 빨랐다.

 

 어딜 가냐고. 그와 아침밥을 같이 먹기로 했던 약속, 잊었냐고. 많은 말이 담겨있는 눈빛에 애써 외면하고 싶었지만 약속을 지켜야 하는 양심은 팔딱팔딱 살아 있는지라, 그녀는 제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무엇보다, 지원의 눈빛에 사고 회로가 정지해 버릴 것 같다. 낮게 가라앉기 시작한 눈빛은 서서히 그녀의 눈을 어둠 속에 옭아매고 있었다.

 

 

 

 꿀꺽.

 

 “이제 제 발, 괜찮아요.”

 

 

 

 한 걸음.

 

 지원이 계속 해보라는 식의 여유로운 몸짓으로 그녀의 앞으로 걸어왔다. 절로 뒤로 밀려나는 걸음.

 

 “그러니까... 내일 아침에 제가 오빠 집에 찾아갈게요.”

 

 

 

 두 걸음.

 

 여전히 그의 얼굴에서는 어떠한 표정 변화를 찾아볼 수가 없다. 세희는 점점 벽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오빠도 피곤하실 텐데 돌아가셔서 쉬.... 읍!”

 

 세 걸음 째 되던 그때. 세희는 완벽하게 벽과 지원의 사이에 갇히게 되었다.

 

 

 

 “하던 거, 마저 하지.”

 

 어떻게 그가 민 지수의 만남을 버텨왔는데. 그걸 모르냐고 투정 부리듯. 그를 쫒아낼 생각은 하지 마라는 속삭임을 얽히는 숨을 통해 풀어내었다.

 

 눈앞에 있는 탐스런 먹잇감을 탐하기 시작하자, 그 동안 그녀를 배려해 억눌러 놓았던 가느다란 끈이 툭하고 끊기는 기분이었다. 세희를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런 그의 절박한 마음은 행동으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맞닿은 입술에 또 다른 입술이 부딪히며 조심스럽게 그 사이를 뚫고 들어왔다. 평소와는 다른 섬세함에, 다리의 힘이 스르륵 풀리는 것은 물론이고. 온몸에 화르륵 열기까지 오르기 시작했다.

 

 척추를 관통하는 짜릿함과는 다른 생소한 느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손에 잡히는 지원의 팔을 꽈악 잡았다. 몸이 녹아내릴 것 같다.

 

 

 

 그들이 서서히 뜨거운 공기를 만들어 나가며 서로에게 집중하고 있을 사이.

 

 지잉-

 

 세희의 핸드폰으로 문자가 왔다는 진동이 울렸다.

 

 [딸, 아직 자는 거 아니지? 엄마 이제 곧 네 집에 도착해. 전날 꿈자리가 별로여서 그런가, 딸이랑 같이 자고 싶은 거 있지.]

 

 세희의 엄마, 시은이었다.

 

 생소한 감정에 정신을 못 차리며 지원을 받아내고 있는 세희와, 간절했던 그녀를 앞에 두고 온 신경을 집중하는 지원에게 그 작은 울림이 들릴 리 만무했다.

 

 

 

 탁하고 뜨거운 한숨을 내뱉으며, 지원은 세희에게서 떨어졌다.

 

 세희가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을 때는 엄마와 떨어지기 싫은 아이의 몇 십 배는 되는 심정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싫었다. 모든 일이 해결이 되고, 세희가 제 아내가 되기까지. 그 사이의 무슨 일이 생길까봐 불안했다. 그녀가 어디로 가버릴까 봐.

 

 품에 가둬두고 싶었다. 이제는 알 수 있다. 세희를 향해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갈증은, 그녀의 입술을 탐할 때마다 더 깊은 것을 원하는 본능의 외침은.

 

 결코 동물적인 것이 아니라, 사랑 때문임을.

 

 한 순간의 장난이 아니었다.

 

 세희가 한 순간의 사랑으로 끝낼 여자였더라면 이 싸움, 시작할 생각도 안 했겠지.

 

 

 

 “하... 세희야. ......그래도 될까?”

 

 가라앉은 눈빛으로 애절하게 저를 바라보며 말하는 지원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녀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혼전순결에 대해 부모님 못지않게 보수적인 사고를 고집하던 터라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여기서 끝내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설이던 눈빛은 흔들림을 뒤로 하고 단단해졌다.

 

 세희가 지원을 바라보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것을 신호로 배려로 시작했던 조심스러운 움직임이, 야수의 움직임으로. 거칠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관자놀이에 한 번, 양 쪽 눈두덩이에 한 번. 그리고 한 번 더 그녀의 입술을 짧게 훑고 간 그는 서서히 보드라운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짙은 흔적을 남기기기 시작했다.

 

 점차 농밀해지고 야릇해지기 시작하는 움직임에 그의 흔적이 남지 않은 곳이 없었다. 점점 그들의 체온은 올라가기 시작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딸?”

 

 언제 들어왔는지, 시은은 야릇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피 끓는 남녀를 놀랜 얼굴로 쳐다보며 현관에서 신발을 신은 채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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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제 66 화. 방아쇠를 당기다 2017 / 7 / 24 280 0 7235   
66 제 65 화. 오늘 밤은 안 재울거니까 각오해 2017 / 7 / 24 293 0 10142   
65 제 64 화. 딸 주기 싫은 아버지의 밀당 2017 / 7 / 21 298 0 7785   
64 제 63 화. 무섭다고 겁먹지 말고. 망설이지도 … 2017 / 7 / 21 310 0 8261   
63 제 62 화. 아련한 불빛이 흩어진 밤, 넘어가다 2017 / 7 / 21 312 0 9973   
62 제 61 화. 본능과 끊임없이 싸우며 노력하는 … 2017 / 7 / 21 288 0 6519   
61 제 60 화. 네가 행복하면 그걸로 된 거야 2017 / 7 / 20 303 0 6300   
60 제 59 화.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는 법이 없… 2017 / 7 / 20 304 0 7420   
59 제 58 화. 그러니까, 못 놔 줘 2017 / 7 / 20 286 0 8692   
58 제 57 화. 텅 빈 속을, 마음을, 따뜻하게 가득 … 2017 / 7 / 20 296 0 8089   
57 제 56 화. 사랑 때문에 무릎 꿇은 남자 2017 / 7 / 20 293 0 8720   
56 제 55 화. 그래, 사랑이 뭐 별 거 있나 2017 / 7 / 20 290 0 8629   
55 제 54 화. 허공에 대고 불러보는 간절한 이름 2017 / 7 / 20 307 0 6552   
54 제 53 화. 뜨거운 태양 아래 홀로 싸우려는 남… 2017 / 7 / 19 293 0 7397   
53 제 52 화. 어림도 없지 2017 / 7 / 19 286 0 6555   
52 제 51 화. 덮쳐, 말아? 2017 / 7 / 19 274 0 7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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