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그녀가 어제 죽었다
작가 : 미루하
작품등록일 : 2017.6.25

제국력 하얀 달의 해 여섯 번째 보름날, 흐라드차 영주의 외동딸 실비아 흐라드차리가 죽었다. 지난 초승달에 17세의 생일이 지난 흐라드차 영애는 돌아오는 보름에 바출라 영주의 아들 카를 바출라프와 약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죽은 장소는 영주의 마을, 흐라드차의 유일한 여관 <흑사슴>의 이층 두 번째 방이었다.

평소 모험 소설을 즐겨 읽으며 모험을 꿈꾸던 영주의 딸은 생일 기념으로 모험을 떠나고 싶다고 졸랐다. 영주는 모험은 승낙하지 않았으나 대신 마을의 여관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것을 허락했다. 영주는 딸이 머무는 만 하루 동안 여관의 직원을 전부 성의 시종과 시녀로 대치하는 조건으로 딸을 내보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싸늘하게 식은 시체였다.

분노한 영주는 범인을 찾지 못한다면 여관의 숙박객 전부를 교수형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월요일. 02
작성일 : 17-07-20 12:18     조회 : 284     추천 : 1     분량 : 7800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짙은 남색 로브를 입고 후드로 얼굴까지 가린 남자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느릿하게 말을 시작했다.

 

 “영광이 함께하며 정의를 수호하는 오폴레의 수호자들이여….”

 

 왕실에서나 시작할 정중하고 거창한 인사말이다. 머리에 쓰고 있는 투구는 전장의 신이 돌보며 발끝까지 걸친 거친 사슬갑옷은 험난한 업무끝에 얻은 고단한 시련? 뭐? 그가 줄줄이 늘어놓는 말은 여기저기 헤매면서 꽤 이런저런 이야길 들어본 이본느가 난생 처음 보는 말이었다. 그가 하는 말이 비단두루마리처럼 줄줄 흘러 끝이 없이 이어질 것 같자 치안대장이 말을 끊었다.

 

 “뭐, 뭐라구요.”

 

 카민은 웃음을 애써 참았다. 이것도 동대륙의 예의범절이다. 가끔 카민이 말하는 방식도 이런 식이라고 유진에게 혼나곤 하는데 이 정도는 아니다. 결국 말이 잘린 남자는 결론을 이야기했다.

 

 “나는 수행을 하는 구도자로 이 곳을 나가서 갈 곳이 있습니다….”

 

 그가 살짝 들춘 후드 아래로 얼굴 절반에 있는 문신이 설핏 드러났다. 금빛으로 빛나는 그 문신은 중앙대륙에서는 어린아이라도 아는 유명한 것이었다.

 진실과 거짓을 가르는 자, 정의를 소환하며 거짓을 심판하는 자. 악을 처단하기 위해 자신을 신에게 바친 자. 그의 손톱 한 조각까지 전부 신의 것이며 그에게 자신이라는 것은 없다. 그에 비하면 동대륙 소영주의 딸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이 문신이 정말로 중앙대륙의 문신이라면 그렇다.

 

 동대륙에서는 금빛 문신이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한다. 카민이 물었다.

 

 “그러니까 결국 내보내 달라는 거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신께서 안배하신 길을 인도하기를 요청합니다.”

 

 그러니까 뭐?. 카민은 잠시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녀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녀가 호위보다 판단이 빨랐다. 소녀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여기 치안대장…정말로 전부 죽일 생각이군.”

 “그렇습니다.”

 

 범인을 찾지 못하면 방랑 신관마저 죽일 셈이다. 그 말뜻을 이제서야 눈치챈 카민이 뻣뻣하게 굳었다. 유진의 손을 잡은 카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유진은 신호를 보내듯 호위의 손을 꽉 잡았다가 뗐다. 이놈, 정신 차려라.

 

 “저희와 함께 범인을 찾아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무뚝뚝한 신관은 고개를 숙이지도 손을 내밀지도 않았다. 그는 오직 그의 신에게만 경배한다. 아주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를 본 소녀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어렸다.

 

 ***

 

 “사건 현장을 보여 달라고 하죠.”

 “범인을 알아보려면 당연하지.”

  

 기묘한 일행이었다. 붉은 머리의 여검사에 검은 로브를 입은 금발 소녀, 얼굴도 보이지 않게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에 초라한 옷을 걸친 제빵사. 거기에 용병인 자신까지. 카민은 머리를 긁적였다.

  

 ‘정 안 되면 교수형 당하기 전에 몰래 이 여관을 도망친다는 선택지도 있는데….’

  

 그러면 꿈자리가 뒤숭숭해지겠지. 이 여검사나 유진, 저 로브를 입은 남자 같은 경우에는 탈출하기 어렵지 않다. 솔직히 유진같은 실력의 마법사는 호위가 필요없다. 자신은 ‘빠르게 움직이며 길을 안내하는 것’이 전문인만큼 어딜 가도 꼬리는 뿌리쳐버릴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저 마르코라는 남자는 여기서 달아날 수 없다.

   

 데려갈 수도 없다.

 

 만드라고라는 처음 뿌리내린 곳에서만 자라며, 다른 곳으로 옮기면 말라 죽는다.

 영지민은 영지를 벗어날 수 없다. 갈데가 없는 것이다. 새로운 신분패와 신분, 집과 직장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두고 가면 반드시 죽는다. 그렇다고 이 남자가 달아나서 새로운 곳에서 모든 인연을 끊고 살아나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카민은 남자를 훑어보며 계단을 올라갔다. 그는 사흘 굶은 고블린처럼 풀이 죽어 있었다. 저 남자를 어떻게 하지, 하고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늘빛 눈썹이 찌푸려졌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그리 높지 않아 다섯 명이 줄줄이 늘어서니 꽉 찼다. 치안 대원은 창을 깃대처럼 세워서 안내했다. 낡은 나무문이 삐걱이며 열렸다.

  

 문안에 있는 방은 다른 방보다 조금 더 넓었다.

  

 치안대원이 따라올라오던 유진을 보고 곤란한 표정을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열다섯 정도로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다.

  

 “이런 아가씨가 보실만한 광경이 아닙니다.”

 “이래뵈도 혼의 조례를 통과한 마법사입니다.”

  

 카민이 잡고 있던 손을 들어 유진이 차고 있던 팔찌를 보여 주었다. 은방울이 딸랑거리며 빛을 냈다. 소리없는 은방울은 누구나 아는대로 마법사의 자격을 증명한다. 늙수그레한 치안대원이 놀란 표정을 하더니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마법사님이시군요. 실례했습니다.”

  

 재능있는 마법사는 희귀한 자원이며 특별 취급을 받는다. 혼의 조례는 기본적인 사대계열 마법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며 미성년자더라도 이를 통과하면 성인취급을 받는다. 번번이 어린애 취급을 받는데에 질려있던 유진은 이를 으득 갈았다. 귀족가의 어린 소녀가 할만한 행동은 아니다. 이본느는 흐음 하고 금발 소녀를 내려다보았다가 시선을 피했다. 소녀가 노려보고 있었다. ‘뭘 봐?’

  

 ***

 

 방 앞에는 메이드복을 입은 여자가 한 명 서 있었다. 여관의 종업원치곤 지나치게 곱상하다. 메이드는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와 동대륙식 복장을 한 소녀, 중앙 대륙의 사복을 입은 남자 세 명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들어가시겠습니까.”

 “들어가도 괜찮아요?”

 “증거를 훼손하시는 건 안됩니다.”

 

 소녀가 앞섰다. 방 안에 들어간 셋이 동시에 말했다.

 

 “다르네….”

 “방이 다르네요.”

 “다르군.”

  

 이부자리부터 달랐다.

  

 보통 서민이라면 바닥에서 냉기가 올라오지 않게 흙을 여러 겹 쌓고 그 위에 흙이 묻지 않게 거친 천을 깐다. 부유한 자라면 짚을 잠자리에 사용할만한 여유가 있다. 왕족이나 귀족이라면 나무를 짜서 만든 틀을 얹고 그 위에 거위나 오리의 털을 넣어 부풀려 따뜻하게 한다. 옷으로 만들기에도 모자라는 고급스러운 천을 여러 겹 겹쳐 까는 경우도 있다.

  

 유진과 카민이 머무는 방은 짚을 여러겹 짠 짚자리가 놓여 있고 그 위에 깨끗한 하얀 리넨이 두 겹 깔려 있었다. 나무 틀이 짜인 격자 창문에는 놀랍게도 불투명한 유리가 끼워져 있다.

  

 즉 이 여관은 수도에 가까운 흐라드차 지방에서 최고로 좋은 여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방은 짚자리가 아니었다. 방 가운데에는 나무로 된 상자 모양의 틀이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리넨이 여러 겹 겹쳐져 있다. 네 겹? 다섯 겹? 귀족의 방과도 같은 그 호화스러움에 마르코가 놀라워하며 감탄했다.

  

 “이게 귀족의 방이군요….”

 “흐라드차 가문이 명문이긴 명문인가봐.”

 유진도 감탄하는 말을 흘렸다.

  

 카민은 별다른 반응 없이 방안을 살폈다.

 

 무엇부터 봐야 할지 모르겠다. 그가 멍청하니 서서 창문에 손을 뻗었다. 그동안 유진은 스커트가 더러워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닥을 기어다니더니 나무 판자가 깔린 바닥을 작은 손으로 탕탕 두드려 보았다. 내려다보던 이본느가 감탄하며 옆에 무릎을 꿇었다.

  

 “뭐하는 거지, 꼬마아가씨?”

 “닥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태도에도 기죽지 않고 이본느는 유진을 따라서 나무 판자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작은 주먹이 두드리는 탕탕 소리와 달리 쿵, 쿵, 쿵, 하고 육중하게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비밀통로라도 찾고있는건가?”

  

 옆에서 눈치를 보며 기웃거리던 마르코도 함께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세 명이 번갈아서 판자를 두드리자 시끄러워졌다. 무명과 카민은 벽 쪽으로 물러나서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곧 유진이 벌떡 일어나서 짜증을 냈다.

  

 “안 들리잖아! 조용히좀 하라고!”

  

 이본느와 마르코가 두드리던 것을 멈추고 자리에 서자 유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같은 힘으로 두드려야 소리를 비교하지.”

  

 유진이 하는 노릇을 지켜보던 카민은 혼자 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한쪽부터 벽을 눌러 보고 있었다. 두드리는 것은 조금 후에 바닥 두드리기가 멈출 때 하면 된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노릇을 본 유진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저놈처럼만 하면 돼.”

  

 일단 한 사람이 일정한 힘으로 두드려야 밑에 뭐가 있는지 없는지, 벽이나 바닥 재질이 다른지 알 수 있다고. 그러니 거기 발이나 좀 비켜. 중얼거리는 유진의 말에 마르코와 무명, 이본느는 완전히 방 밖으로 나가야 했다. 제일 어린 소녀가 완벽하게 주도권을 잡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멍청이들.”

  

 그녀가 중얼거리는 말에 이본느는 발끈했지만 무어라 말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몇 번이나 전쟁에 참여했지만 이런 식의 살인 사건을 경험한 적은 없었다. 이본느가 얼굴을 들어 치안대원을 보고 물었다.

  

 “보통 살인 사건을 수사할 때 이렇게 하나요? 저 처음인데.”

 경어는 경어지만 말투가 껄렁껄렁하다. 굳은 표정의 치안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탐문부터 시작하지만 지금은 밀실 살인이니까요?”

 “밀실?”

  

 마르코가 입을 벌렸다.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새벽시중을 드는 하녀가 아무리 두드려도 문이 열리지 않아서 치안대원 세 명이 억지로 문을 잡아 뜯었지요. 저도 어깨에 멍이 들었습니다.”

 “제일 먼저 들어간 치안대원 세 명은 누구누구에요? 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나요?”

 “음, 제일 먼저 들어간 건 하녀에요. 아가씨가 벗고 있거나, 뭐 그럴 수 있으니까요.”

 

 잠시 생각하던 치안대원이 손가락을 튕겼다.

 

 “일단 저하고. 하블리츠, 그리고 대장님이죠.”

  

 만나고 싶어하지 않아도 만나게 될 겁니다. 오늘 내일 번갈아서 경비를 서거든요, 친절하게 치안대원이 덧붙인 말에 이본느가 과장되게 이마를 찌푸렸다.

  

 “이 여관에서 나가야 그, 뭐야, 탐문조사라는걸 우리가 할거 아니에요?”

 “그건 우리가 한다.”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이본느는 낯선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키가 큰 편인 이본느도 올려다보아야 하는 남자였다. 치안대원과 같은 사슬갑옷을 걸쳤는데 문양이 새겨진 투구를 썼다. 사슬갑옷에 어울리지 않게 눈만 내놓고 콧대까지 가리는 이흘라바형 투구였다.

  

 “당신이 치안대장?”

 “그렇다.”

  

 모두 이쪽으로 오도록, 영주님의 지시 사항을 알리겠다, 하고 치안대장이 말을 이었다. 팔짱을 끼고 바라보고만 있던 무명이 잠시 손을 들었다.

  

 “제가 무언가 해보아도 되겠습니까?”

  

 치안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목소리를 듣고 바닥을 두드리던 유진도 행동을 멈추고 올려다보았다. 이제 바닥의 2/3정도를 두드려 본 것 같다. 그는 품안에 손을 집어넣더니 주머니에서 하얀 돌처럼 보이는 것을 꺼냈다. 손톱보다 작은 그것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서 그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카민이 모르는 언어였다.

  

 그는 중앙대륙언어라면 오폴레어와 브제크어를 할 수 있었으며 서대륙어 중에서는 보통 지겐어에 능통했다. 북대륙 언어라면 미르니어와 왕궁 아이할어, 미르니어의 우다치니 방언과 크리스노야 방언을 비롯하여 카라간다어도 가능하다. 동대륙의 알라하바드어는 간신히 인사를 할 수 있을 정도다. 그가 모르는 언어는 많지 않았다.

  

 ‘노아이으어인가...? 그러기엔 지나치게 리듬이 있는데. 천진어?’

  

 천진어는 여섯 가지 성조가 있어 처음 듣는 사람도 구분하기 쉽다고 들었다. 그런데 성조는 없고.

 

 니사어는 중앙대륙에서 지겹도록 들었으니 니사어같지는 않다. 남자의 출신이 궁금했던 카민은 머릿속으로 몇 가지 언어를 헤아려 보았으나 전혀 알 수 없었다. 이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말은 최소한 한 번씩은 들어보았던 카민이니 이렇게 들어본 적 없다는 것 자체가 단서가 된다.

  

 ‘내가 모르는 말이라면 신전내에서 쓰는 특수한 고대어라든가...?’

  

 찬송할때만 쓰는 말이라면 신관들만 접근할 수 있으므로 그가 알 수 없다. 그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앞을 바라보았다.

  

 하얀 돌은 중력을 거슬러 물처럼 흘러올랐다. 연기보다 뚜렷하고 물처럼 명확한 형태로 돌은 한 바퀴 방안을 휘돌았다. 무명이 곤란한 듯 말을 꺼냈다.

  

 “살의가 없군요.”

 “뭐?”

  

 유진이 반문했다.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는 신관이 웃지 않고 대답했다.

  

 “인간이 누군가를 죽이려고 한다면 살의를 갖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방안에서는 그 감정적인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군요.”

 “그, 그럼, 귀신입니까...”

  

 마르코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얇은 갈색 눈썹이 일그러지며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귀, 귀신이 우리 아가씨를 죽인 겁니까.”

  

 항상 자신만만하게 앞장서던 이본느도 핏기를 잃었다. 주근깨서린 뺨에 혈색을 잃고 그녀는 조용히 벽에 기댔다. 유진만 아무렇지 않게 마저 바닥을 두드렸다.

 

 바닥 두드리기를 마치고 그녀는 구석에 돌돌 말려서 세워져 있던 양탄자를 폈다. 불사조와 왕자가 수놓인 양탄자를 죽 펴서 흔들어 보았다. 카민이 받아서 바닥에 펴 주었다.

 

 “원래 이렇게?”

 

 하녀가 허리를 숙이며 다시 원래 위치대로 잡아 주었다. 침대 앞에 깔아두자 정말로 왕궁의 접견실처럼 화려해졌다.

 

 그 양탄자를 살펴보던 카민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일주일이 지나기 전, 범인을 밝히지 못하면 탈출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침묵의 결계를 시전하고 이런 값진 양탄자를 여관방에 갖다놓을 정도로 딸을 아꼈다라…거기에 권력과 돈까지 있다고? 도망치지 못할 수도 있다.

 

 “아가씨…라면, 아가씨의 메이드였어요?”

 

 카민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려다보며 물었다. 하녀는 침대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예.”

 

 어쩐지 다들 여관 종업원치고 정중하고 친절했다. 수도에 가까워져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식당 종업원이라면 능숙하게 접시를 나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부르지도 않았는데 다가와서 메뉴판을 내밀거나 하는 정도로 섬세하게 시중을 드는 것이 가능한 것은 귀족가의 시종이나 시녀들이다. 유진이 한숨쉬듯 말했다.

 

 “여관의 고용인은 전부 영주 성의 사람들이었군.”

 “예.”

 

 그래서 고용인 중 범인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군. 소리내어 하지 않은 그 말에 하녀가 대답했다.

 

 “저희들 중에 범인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십니다.”

 “뭐?”

 “저희들도, 일주일이 지나면 죽습니다.”

 “….”

 

 이 미친 영주 새끼. 이본느가 메이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부디 범인을 꼭 밝혀내 주십시오.”

 

 신관은 무릎을 꿇고 바닥을 살피고 있었다. 유진이 확언했다.

 

 “비밀통로 같은건 없다. 바닥은 멀쩡해.”

 

 유진은 창문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낯익은 동대륙식 창문이었다.

 

 “이 창문은….”

 

 카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소녀의 얼굴처럼 동그란 창문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창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예?”

 

 하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시는군요. 치안대원이 놀라 물었다.

 

 “하지만 문은 잠겨 있었습니다. 고리만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빗장도 걸려 있었어요.”

 “이건 아예 열리지 않게 박혀 있는 창문이에요. 이걸 열려면 깨버려야해요.”

 

 신관도 다가와 함꼐 창문 앞에 섰다. 유진이 창문 앞에 도드라진 갈색 격자를 가리켰다. 손끝이 닿은 격자 위에는 진주가 하나, 둘, 셋 박혀 있었다. 먼지가 앉은 흰 구슬을 손끝으로 톡톡 건드리며 그가 말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여자의 창문에는 진주를 세 개 박아요. 순결을 상징하는 거예요.”

 

 진주만이 아니라 격자에도 의미가 있다. 카민은 왜 어머니와 아버지 방의 창문은 열리는데 내 방의 유리창은 아예 열리지 않는지 물어보던 어린 소녀를 떠올렸다. 깨뜨리면 새것을 사주는지 물어보았으나 어머니께서는 웃으며 절대로 깨면 안된다고 하셨다.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유리 장인을 불러서 둥근 유리창을 만들어요. 결혼할 때 깨서 그 조각을 다시 녹여서 유리잔을 만들거든요. 그 유리잔에 세 개의 진주를 박아서 신랑이랑 나눠 마시는 거예요.”

 “…그게 왜 여관방에 있어요?”

 

 이본느가 궁금해 했다. 아가씨가 가져온 창문이 아닌가? 하긴, 하루 잠드는데 여관 창문까지 갈아 끼울 이유는 없다. 카민이 갸웃거리며 말했다.

 

 “음, 아마, 옛날에 동대륙에서 온 사람이 지은 건물 아닐까요? 결혼 못 해서 평생 안 열리는 유리창을 갖고 사는 여자들도 있거든요….”

 

 그건 좀 불쌍하다. 메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택의 아가씨 방은 평범한 창문이에요. 그냥 이 방이 신기하다고 이 방에서 묵고 싶어하셨어요.”

 

 그냥 덧문이 뻑뻑하거나, 창문이 잘 열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아예 안 열리는 건 줄 몰랐어요. 그녀가 덧붙이는 말에 다른 남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거참 희한한 풍습이 다 있네.

 

 “즉 이건 밀실 살인이군요.”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6 화요일. 02 2017 / 7 / 23 288 1 5371   
5 화요일. 01 2017 / 7 / 20 295 1 5664   
4 월요일. 03 2017 / 7 / 20 273 1 6042   
3 월요일. 02 2017 / 7 / 20 285 1 7800   
2 월요일. 01 2017 / 6 / 25 304 2 5189   
1 프롤로그 2017 / 6 / 25 535 2 423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산촌의녀
미루하
소희유희
미루하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