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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소희유희
작가 : 미루하
작품등록일 : 2017.6.24

완벽쟁이 까탈스러운 상사/덜렁거리는 평범한 여직원 부하/
둘이 함께 이계 이동하는 로맨스판타지.

 
그 여자의 거래 (5)
작성일 : 17-07-20 12:02     조회 : 281     추천 : 0     분량 : 4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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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잠에서 깨어난 소희는 뭔가 허전해서 눈을 껌뻑거렸다. 방에 아무 것도 없었다. 정확히는 잠들기 전 누워 있던 침대 빼고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벽을 가리던 아름다운 태피스트리부터 바닥에 깔렸던 양탄자까지 사라졌다. 드러난 벽돌 바닥을 멀뚱히 보던 소희는 침착하게 침대 커튼에 달린 종을 울렸다.

  곧 나타난 시녀장이 어머 하고 놀랐다. 

 “아직 옷을 입지 않으셨습니까?!”

 “맨날 일어나던 시간에 일어났는데요….”

   내 가구들이 다 어디 갔냐고 따져보려고 했는데 그럴 분위기가 아니다. 언제나 완벽하게 금발 머리를 틀어올려 옥비녀를 꽂았던 시녀장의 머리가 두 가닥 빠져나와 있다. 마치 팀장님이 소맷자락에 커피 얼룩을 묻히고 다니는 것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시녀장은 다른 종을 울려 시녀들을 불렀다. 새 옷을 가져오라 하고 시중을 들며 분주하게 다른 임무를 내린다. 몸이 세 개는 되어도 모자랄 듯 바빠 보였다. 온몸에 향유를 바르고 약간 시간을 두었는데 오늘은 바로 비단 수건으로 닦아낸다. 눈썹이 짙어 보이게 강조하고 눈가에 반짝이는 가루를 발라주었다. 평소에는 진줏빛 가루를 얼굴에 바르는 걸로 마무리했는데 오늘은 끈적한 크림을 덧발라주었다. 뭔가 다르다 싶었는데 그 위에 꽃잎을 한 장씩 붙였다. 뺨에는 장미같은 붉은 꽃잎을 한 장씩 붙이니 간지러웠다. 소희가 키득키득 웃자 화장을 담당한 시녀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말하거나 웃으시면 부크라흐 장미가 떨어져요!”

 “왜 뺨에 꽃을 붙여요?”

  난 사람이지 꽃이 아닌데. 입을 삐죽 내밀자 꽃잎이 다시 움직였다. 시녀는 다시 꽃잎의 위치를 잡아 주었다. 전통혼례를 할 때 연지곤지 찍는 것 같다. 소희는 조그맣고 불투명한 유리 거울을 힐끗 보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은 생각만큼 웃기지는 않았다. 말하느라 뺨을 움직였더니 꽃잎이 움직여 턱까지 내려갔다. 시녀가 다시 새 꽃잎을 꺼내어 붙여 주었다. 부크라흐 장미는 여분이 그리 많지 않으니 챙겨 가셔야 해요, 하며 조그만 자개 상자도 건네 준다. 콤팩트파우더나 립스틱이 아니라 붙일 장미잎이 가지런히 담긴 상자를 보고 있노라니 너무 웃겨서 큭큭 웃음이 났다. 이게 정식 화장인가 싶기도 했다.

 “오늘 바로 입궁하십니다!”

 “정식으로 청혼서를 보내셨습니다. 오늘이 출발하는 날이세요.”

 “축하드립니다!”

 “저희도 같이 갑니다.” 

 시녀장과 시녀 여럿이 흥분해서 떠드는 소리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입을 다시 벙긋하려 했더니 시녀장이 손을 들어 막는다. 졸지에 벙어리가 된 소희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까, 오늘 왕궁에 간다고…?’

 정식으로 왕궁에 다시 부른다고?! 이 결혼식 절차는 자신이 동의하지 않았는데도 멋대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소희는 얼마 전에 배웠던 왕족의 결혼 예법을 떠올렸다. 왕비가 될 여자가 궁에 들어오는 것은 결혼식의 첫 번째 절차다. 물론 프롤로그로 그 전에 간택령이 내리면 혼기가 찬 미혼 여자는 모두 결혼이 금지된다거나 선택받은 여자의 집에 선물을 보낸다거나 여자가 감사하다는 편지를 보낸다거나 하는 전례가 있다.

 아, 맙소사. 내가 어제 쓴 편지가 그 뜻이었구나. 벼루 필요 없어요 하고 싸가지없는 내용으로 썼어야 하는 건데. 어쩐지 시녀장이 편지 잘 쓰라고 계속 옆에 붙어 있었다.

 예법 공부 안하고 편지 베껴 쓰기만 해서 깜지 베끼듯 노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간만에 머리를 좀 쉬는 느낌이어서 좋았는데! 계속 계속 베껴 쓰느라 손은 좀 아팠지만 재밌었는데! 소희는 속은 기분이 들어 시녀장을 흘겨보았다. 시녀장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도망치고 싶다. 은비녀를 두 개, 나비옥잠같이 화려한 머리꽂이를 양쪽에 하나씩 꽂아 머리를 틀어올렸더니 꽤 무거웠다. 보니까 제 머리만이 아니라 은사를 섞어 땋아내려 머리가 더 무거웠다. 목에는 네모난 비취를 꿰어 만든 무거운 목걸이를 걸었다. 공작가의 색깔처럼 깊고 푸른 주먹만한 바닷빛 비취로 시작해서 양쪽으로 올라오며 비취 크기는 점점 더 줄어들고 빛깔이 밝아진다. 은사슬로 매듭지어져서 소희의 목에 딱 맞게 걸었다. 원래 하고 있던 붉은 목걸이를 뺄 수가 없어 그걸 비취 목걸이 위에 올려 두었다. 목걸이가 위에 얹혀도 전혀 불편하거나 걸리적거리지 않았다. 시녀가 붉은 구슬 목걸이를 비취 위에 장식하듯 올려놓고서 탄성을 질렀다.

 “소이님 너무 아름다우세요!”

 “왕가의 보배가 공작가의 목걸이 위에 있으니 법도에 맞습니다.”

 흐뭇한 듯 색깔을 잘 맞추었다며 시녀장이 손뼉을 쳤다. 귀에 뭔가를 달아주는 걸로 마무리한 후 바깥으로 안내되었다. 공작가와 왕성은 멀지 않다. 서 있는 마차는 전에 탔던 화려한 것이었다. 소희는 무어라 거절도 못하고 꽃잎 때문에 말도 못하고 그대로 꽃잎 곽만 손에 쥔 채 마차에 탔다. 곁에 있던 시녀가 꽃잎 상자를 받아들며 웃었다.

 “기쁜 날이에요! 웃으세요!”

  말 네 마리가 끄는 마차는 섬뜩하게 낯이 익었다. 저번에 미로에서 타고 돌아왔던 것이다. 그때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색깔이 다르다. 공작가의 색인 남색이 아니라 왕가의 색인 자주색을 바탕으로 장식되어 있다. 거기에 검은색과 은색의 문양이 수놓여 있다. 전에는 이게 무슨 모양인가 싶었는데 이제는 이게 재에서 불타오르며 살아나는 불사조라는 사실을 안다. 왕국의 상징이다. 벨벳 쿠션은 전과 다르지 않게 푹신해 몸은 편했으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소희의 곁에 함께 탄 시녀가 소희의 옷자락을 들어 주었다. 스무살이나 되었을까, 앳된 얼굴로 구김살없이 밝게 웃으며 소희를 올려다본다. 갈색 눈에 갈색 머리에 동양인도 서양인도 아닌 독특한 얼굴이다. 그 얼굴에도 이제 익숙해졌다. 소희는 입을 벌리지 않고 시녀를 응시했다. 꽃잎 상자를 들어 보이며 소녀가 웃었다.

 “말씀하셔도 괜찮아요, 소이님. 제가 꽃잎 봐드릴 수 있어요.”

 나 때문에 죽은 여자애들도 이 애 또래였다. 현실감이 다가와 소희의 어깨를 짓눌렀다. 죄책감은 씁쓸하고 불쾌했다.

 

  새벽부터 준비한 덕분에 멀지 않은 왕궁에 곧 도착했다. 하지만 해가 뜬 시간에 들어가는 것이 법도에 맞다고 하여 한참 기다려야 했다. 소희는 옆에서 시녀가 옷자락을 매만져 주는 동안 마차의 커튼 너머로 궁전을 엿보았다.

  드높이 선 궁전은 63빌딩보다 낮다. 강남의 빌딩숲을 겪었던 소희에게 크고 높은 건물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괜찮다, 긴장할 필요가 없다. 긴장하면 실수를 할 뿐이다. 처음 왔을 때에는 건물까지 일일이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점점 더 짓눌리는 것 같다. 번쩍이는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수십 명 늘어서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곧 해가 올랐다.

 

  마차에서 내린 소희는 줄줄이 늘어선 기사들의 인사를 받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마치 백화점 오픈 시간에 들어가는 VIP 같다. 애써 텔레비전 속에서만 보았던 광경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스리려 하는데 걸음걸이가 불안정했다. 손끝이 떨린다. 가까이에서 보니 벽에 새겨진 양각은 하나하나가 불국사를 뺨칠만큼 공들여 세공한 조각이었다. 때가 타기 쉬운 단단한 흰색 돌이 이리도 깨끗하다는 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정성들여 돌보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당당하고 우아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저번의 간단한 왕궁 나들이가 아니다. 정식으로 궁에 맞아들여지는 첫 자리다. 옆에서 시녀장이 두루마리를 펼쳐들고 무어라 이야기하는데 집중이 되지 않았다.

  

 어젯밤에 그를 만났다. 꿈 속에서.

 

 소희는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팀장님은 지치고 피곤해 보였다. 중요한 계약을 달성하기 위해 몇날 며칠이고 밤새고 나서 다크 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왔을 때와 비슷헀다. 그는 양복이 아닌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절대로 결혼해서는 안된다고 목에 핏발을 세우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다. 그건 정말 팀장님 같지 않았다. 내가 팀장님을 그렇게 보고 싶어했나? 여기 옷을 입혀놓고 구박하고 싶었나.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무슨 옷을 입어도 잘 어울렸던 남자였다. 그런데 헐렁한 푸댓자루 같은 옷은 지독하게 어울리지 않았다. 차라리 좀더 도움이 되는 꿈이라도 꾸었으면 좋았을텐데 쓸데없이 팀장님을 만나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올가의 일기장은 공작이 돌려받아 갔다. 왕궁의 귀중한 보물을 마법으로 복사한 것이라 했다. 혹시 신의 사도께서는 보시고 읽으실 수 있었냐고 공작이 물었을 때 그녀는 웃으며 아니라 잘라 말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돌아갈 수 있다. 그 희망은 작은 불씨처럼 가슴 속 깊숙이 숨겨 두어야 했다. 여기서 머물러야 할 이유가 없다. 당장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이런 곳에 있고 싶지 않다. 아버지처럼 아껴준다고 해도 당신도 결국 살인자일 뿐이다. 언제 나에게 칼을 들이밀지 모른다.

 도망치면 안 된다.  

 이곳에 들어오는 일은 꼭 필요하다. 올가의 일기장에 따르면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좌표와 댓가였다. 그리고 그 좌표는 왕궁 안에 들어가야만 얻을 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 왕비의 자리를 원치 않는다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봤자 맘대로 되지 않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된다. 결혼식 하기 전에 돌아가면 되지.

 도망치고 싶다.

 전부 그만두어버리고 싶다. 제 목에 칼을 가져다댄 것은 농담이 아니었다. 정말 죽어버려도 좋다고 생각했다. 싫은 것을 억지로 강요당하는 것은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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