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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최초의 기억
작가 : 루룰루
작품등록일 : 2017.6.6

"난 죽으면 4년 후에 이름 모를 아이로 다시 살게 돼."
9번째 인생을 살고 있는 소녀, 소녀를 통해 음모를 파헤치려는 괴짜 청년.
소녀가 잊어버린 최초의 기억을 찾고자 한다.

 
2-5화. I Know
작성일 : 17-07-19 19:37     조회 : 332     추천 : 1     분량 : 4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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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어설픈 발악은 늪의 바닥에 닿는 지름길이다. 유리문에 어렴풋이 비친 그림자 주인은 자세히 보니 키가 꽤 컸다. 저렇게 덩치가 있었나? 그가 벌린 양손에 특별한 무기는 없었다. 승산은 모르겠지만 덤벼들지 않을 이유도 없다.

 "아저씨, 제가 그냥 평범한 애로 보여요?"

 나는 차갑게 낮은 어조로 말했다. 그는 살려주라는 간청이 아닌 뜬금없는 질문에 잠시 움칫했다. 말 한마디에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전문가는 아니다. 미숙한 풋내기? 어쩌면 이런 일을 해 본 적도 없을 것이다. 어설프면, 더더욱 승산이 있다. 이런 사람에게 빈틈이 곧 약점이다.

 "이상한 소리를..."

 "저도 남자로 살아봐서 알아요!"

 그의 방심이 입으로 흘러나오자마자 나는 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꽉 쥐어 팔을 쭉 뻗었다. 어렴풋이 본 대로 그의 급소와 내 팔의 위치가 정확하게 맞았다. 지저분하게 말캉말캉한 촉감이 주먹 끝에 닿자 더욱 팔꿈치를 쭉 폈다. 그는 목에 음식물이 걸린 것처럼 추하게 기침하더니 자신의 가랑이에 손을 댔다. 쉬가 마려운 것처럼 다리를 구부리며 얼굴은 세상의 모든 고통을 다 껴안았다.

 나는 손을 털며 "저도 맞아봐서 알아요."라고 말한 후 자리를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자 그는 "이 개 같은 꼬마가!"라고 외치며 한 손을 뻗어 내 등에 달린 백팩을 잡았다. 방심했다. 순식간에 뒤로 몸이 쏠리더니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바닥이 카펫 재질이어서 그렇게 아프지 않았다. 나는 엉덩이를 털기도 전에 손을 가위 모양으로 바꿔 내 뒤를 잡은 그의 눈을 푹 찔렀다. 그는 내 가방을 놓더니 양손으로 눈을 가리며 대걸레처럼 바닥에 뒹굴었다. 손끝에 끈적한 액체가 묻은 것만 같아 바지에 손을 훔쳤다. 영사기가 놓인 테이블로 재빨리 이동하여 빔을 그를 향해 쏘았다. 그는 자신의 안구를 뽑아내고 싶은지 두 눈을 붙잡고 허우적거렸다. 나는 테이블에 있는 1인 의자를 집어 들어 올렸다. 의자에 달린 네 다리가 쇠로 만들어져 무게가 있었다. 진짜 이럴 때 어른의 몸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후들거리는 팔에 한탄과 분노까지 담아, 있는 힘껏 유리 벽으로 의자를 내리찍었다.

 팅! 유리는 시원하게 깨지지 않고 꽉 막힌 실패가 담긴 소리를 냈다. 대각선으로 금만 살짝 생겼을 뿐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있었다. 멀쩡한 유리를 본 나는 잠시 당황하더니 손이 저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진동이 부딪힌 충격만큼 내 손에 다가와 고통을 줬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기합 소리에 놀라 옆을 보니 그가 한 손으로 빔을 가린 채 내 쪽으로 돌진했다. 그 모습을 보자 반사적으로 그를 향해 상체를 비틀며 저린 손을 참지 못해 의자를 손에서 놓아 던졌다. 그는 의도치 않게 설치된 함정에 걸려 몇 초 동안 몸이 공중에 떴다. 놀랄 틈도 없이 몸은 영사기가 놓인 테이블로 그대로 곤두박질했다. TV로 보면 훌륭한 슬랩스틱 코미디지만 내가 봐도 저건 너무 아파 보였다. 그는 눈을 질끈 감고 한쪽 발목을 손에 쥐며 욕설을 남발했다. 더는 몸으로 무언가를 할 수 없어 언어폭력이라도 하는 것일까. 나는 곧장 비어있는 가게 정문으로 달려가 의자 하나를 문 앞에 가져왔다. 의자를 밟고 올라가 문 위에 있는 잠금장치에 손을 뻗었다. 닿을락 말락 한 손을 보며 뭐라도 조금만 더 길었으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했다. 뒤꿈치를 올리자 의자도 내 마음처럼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이 개 같은 꼬맹이. 내가 순순히 나가게 해줄 것 같애?"

 쓰러진 영사기 쪽 바닥을 보니 그가 애벌레처럼 엉금엉금 내게 기어왔다. 끈덕진 그의 모습이 가상하게 느껴졌지만, 한편으로는 추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모습을 보니 빠질 것 같은 어깨 통증이 잠시 잊혀져 잠금장치가 손에 닿았다.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의자에서 내려와 오른쪽 어깨를 두세 번 돌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내가 다가오는 것을 보자 움직임을 멈추고 "뭐, 뭐야"라고 했다.

 나는 한쪽 다리를 무릎이 90도가 넘을 때까지 들어 올려 뒤꿈치로 그의 손등에 꽂았다.

 "이거다!"

 그는 밟힌 손을 부여자고 곡소리를 내며 남은 고통을 목으로 쥐어 짜냈다. 나는 엉덩이를 한 번 털어주고 유유히 카페를 빠져나왔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경찰이 오기 전에 아라와 나루를 만나 도망쳐야 한다. 도로를 건너 오메가타워로 달렸다. 아무도 없는 검은 SUV형 자가부상차를 지나쳐 나루 집 베란다 방향 쪽에 멈춰 섰다. 아라와 나루는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 동안 왜 아직도 안 내려왔는지 의문이었다. 설마 그들한테 잡히지는 않았겠지. 나는 상황을 알기 위해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액션캠 화면을 켜자 아까 봤던 괴한이 나루 집 현관에서 아라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하나, 둘, 세..., 다시. 하나, 둘, 세... 다시. 하나, 둘, 세..."

 아라는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숫자를 '셋'까지 외치다 말았다.

 "다시. 하나, 둘, 세..."

 "셋! 병신아, 셋! 안 뛰고 뭐 해! 머저리야!"

 아라는 내 목소리에 놀라 "셋!"이라고 외치더니 카메라 시야를 하늘로 바꾸었다. 이윽고 고정되어있던 액션캠이 추락하는 속력을 이기지 못해 휙 떨어져 나가 뱅글뱅글 돌았다. 노트북을 닫고 가방에 넣으니 하늘에서 거친 비명소리가 들렸다. 천상의 아이를 훔친 도둑이 눈을 크게 뜬 채 낙하하는 것 같았다. 하강 로프는 탄력을 받아 한 번 튕기더니 바닥에 닿지 않은 채 멈췄다. 아라는 참았던 숨을 헐떡거리며 "세, 세, 셋, 셋.."하며 입을 덜덜 떨었다. 뒤늦게 바닥에 추락한 액션캠과 아라의 안경이 퍼석 소리를 내며 떨어지자 아라는 또다시 화들짝 놀랐다. 나루는 기절했는지 눈을 감은 채 아무 미동도 없었다.

 "병신, 머저리라니. 그, 그렇게까지 말해야 해요?"

 "닥쳐! 그걸 못 뛰니까 욕한 거지! 그리고 애 앞에서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나는 아라의 로프 장치를 풀어준 후 뒤이어 나루 것까지 풀어줬다. 아라는 숨 챙길 여유도 없이 기절한 나루를 등에 업었다. 그 사이에 경찰들이 도착했는지 타워로 들어가며 둔탁한 기동화 소리를 냈다.

 "이, 이제 어떡해요?"

 "우선 어디로라도 대피를 해야지. 괴한은 경찰들이 알아서 할 거야."

 "나루는 어떡하죠? 트뤼포로 대피할까요?"

 "안돼, 거기는. 거기도 그 괴한들과 한통..."

 말을 하던 중에 붉은 자가부상차가 우리 앞에 멈추더니 천천히 착륙했다. 날렵한 꼬리 날개를 뽐내는 것을 보자 단박에 누구의 차량인지 알 수 있었다.

 "나루 어머니!"

 아라는 내 말에 놀라 "나루 어머니라고요?" 하더니 나루를 흔들어 깨우려 했다. 창문을 내린 그녀는 붉은 단발을 흔들며 푸른 선글라스를 벗었다.

 "얘들아! 어서 타!"

 나는 그녀의 말을 듣자 왠지 모르게 경계심이 생겨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어떻게 여기 있는 것을..."

 "그건 이따 설명할게! 시간이 없어! 거기 땀 흘리는 청년! 어서 내 딸부터 조수석에 태워줘!"

 그녀는 운전석에서 팔을 뻗어 조수석 문을 열었다. 아라는 생각할 틈도 없이 열린 문을 잡고 기절한 나루를 조심스레 앉혔다.

 "어서 너희들도 타!"

 또다시 차에 타라는 다급한 그녀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쇠 냄새를 풍겼다. 고소한 치즈 향에 가려진 쇠 냄새, 쥐덫과 같았다. 나루 어머니는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지?

 "지금 씨! 어서 타요!"

 누가 SUV에 경적으로 신호를 알렸지? 트뤼포 가게 주인은 왜 그랬지?

 아라는 황급히 뒷문을 열고 차에 오르려 했다.

 "안돼! 타지마! 멈춰!"

 나는 다급하게 차에 오르려는 아라를 향해 소리쳤다. 아라는 내 말에 즉각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발이 멈춘 아라를

  본 그녀는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었다.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에서 그녀의 미소는 이질적인 여유가 느껴졌다. 나는 나루를 다시 꺼내기 위해 조수석 문을 열려 했다. 하지만 이미 문은 잠겨 있었다.

 "우리, 지금이는... 정말 평범한 애가 아니구나?"

 아라는 화들짝 놀라 나와 그녀를 번갈아 쳐다봤다. 뒷문은 자동으로 '쾅' 닫혔고, 아라는 또다시 놀라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 당신 누구야. 왜 나루 양을 데려가려고 하는 거야."

 그녀는 백만 마리의 벌레를 삼킬 듯이 입을 벌리며 천박하게 웃었다. 소름 끼치는 그녀의 웃음 속에 몇십 마리의 벌레가 튀어나와 내 몸에 찰싹 달라붙은 것만 같았다.

 "나, 나? 하하! 나루 엄마라니까? 왜 믿지를 않지? 자기 딸, 자기 엄마가 데려간다잖아!"

 "거짓말하지 마! 저 괴한도, 카페 주인도 다 당신이 저지른 짓이지?"

 그녀는 웃음을 멈추더니 핸들을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그리고 해야할 말이 생각났는지 고개를 살짝 들며 입을 열었다.

 "그러면 안 돼? 애초에 나는 경고했잖니, 지금아. 친구로서 말할 테니, 다시는 얼씬거리지 말라고."

 "뭐, 뭐야. 쪽지의 범인도 당신이었어?"

 그녀는 내 말이 너무나 뻔했는지 더 이상 듣지 않고 차를 공중으로 띄우기 위해 엔진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아라는 그 소리를 듣자 곧바로 차 보닛으로 뛰어들었다.

 "어디가! 나루 양을 놔두고 가!"

 그녀는 차 몸체를 바이킹처럼 앞뒤로 자유자재로 흔들어 아라를 손쉽게 떼어냈다. 아라는 반동에 이기지 못해 흙바닥에 그대로 나뒹굴더니 시름시름 앓는 소리를 냈다.

 "잘 지내! 내 딸을 로봇한테 구해줘서 고마워! 친구 엄마로서, 친구로서 뭐라도 보답해야 하는데 말이야."

 "어서 차 내려!"

 소란스러운 그 틈에 하늘에서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위로 올리려 하자 무언가가 그녀의 차 보닛에 '쾅' 하며 떨어졌다. 그녀의 차는 충격을 이기지 못해 비상 착륙과 함께 지상에 '쿵' 떨어졌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

  갑작스러운 추락에 가만히 그 광경을 지켜봤다. 보닛 사이로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왔고, 그녀는 황급히 운전석 창문을 올렸다. 연기 사이로 반짝이는 글자와 함께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기록된 위험인물 감지, 즉각적 대응."

 모모는 눈동자에서 붉은빛을 내뿜으며 운전석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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