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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전하, 아니 되옵니다
작가 : 아범
작품등록일 : 2017.7.17

이벤트 당첨으로 일등석에 탑승한 담월. 그곳에서 한 남자와 크게 다투고 만다. 결국,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 그가 속삭인다. "두 번 다시 마주칠 일 없길 바라거라." 아니, 뭐 저런 싸가지가 다 있어?! 그렇게 끝날 줄 알았던 두 사람의 인연이 황궁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도망치려는 그녀와 잡으려는 그. 마침내 사로잡힌 그녀의 입에서 절망적인 신음이 터져나왔다.
"전하, 아니 되옵니다!"

 
황제 폐하 납시오
작성일 : 17-07-19 19:04     조회 : 282     추천 : 0     분량 : 7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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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담월이 긴장한 얼굴로 복도를 걷고 있다.

 옆에서 안내를 하던 궁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리 말씀 들으셨겠지만 간단하게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담월이 궁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잠시 후 황제 폐하를 알현하실 때는 허리를 굽히고 시선은 발끝에 두시면 됩니다. 따로 말씀이 있지 않는 한 절대 폐하를 쳐다보시면 안됩니다."

 

 "아, 네……."

 

 주의사항을 전해 듣자 자신이 지금 누굴 만나러 가는지 실감이 났다.

 담월의 긴장도가 조금 더 상승했다.

 

 "혹시나 폐하께서 가까이 오라 분부하시면 천천히 다가서되 보폭은 한 자를 넘지 않게 하십시오. 이때 발소리는 절대 내지 않습니다."

 

 세상에! 발소리까지 조심해야 한다니.

 행여나 작은 실수라도 했다간 인정사정없이 감옥에 던져질 것 같았다.

 담월의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여기서 잠시 대기하시면 됩니다."

 

 겁먹은 담월을 접견실 앞에 던져두고 궁녀가 물러갔다.

 담월이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상당히 넓은 공간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화려한 조명기구가 높은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한쪽 벽에는 역대 황제들의 사진과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중앙에는 큼지막한 테이블과 소파들이 질서 있게 놓여있었다.

 

 '역시, 황제의 접견실답구나.'

 

 담월이 커다란 눈으로 연신 두리번거렸다.

 때마침 먼저 도착해 있던 후보자들과 눈이 마주쳤다.

 도도한 눈빛의 여자가 먼저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오늘도 깔끔하게 정장을 입고 왔구나.'

 

 담월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섰다.

 옆에 서 있던 귀여운 인상의 여자가 반가운 얼굴로 아는 척했다.

 

 "또 보네요."

 

 "아, 네……."

 

 담월이 쭈뼛대며 그녀들 곁에 섰다.

 귀여운 얼굴의 여자가 상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직 제대로 인사도 못 했네요. 이렇게 된 것도 인연인데 우리 서로 인사나 해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네? 아, 전 한담월이라고 해요."

 

 "아, 한담월? 이름 이쁘다. 반가워요. 난 누군지 이미 알 테고. 저쪽은 무슨 회사에서 일하신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그녀가 자기소개는 스킵한 채 차가운 인상의 여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요, 나 너 누군지 모르거든요?!'

 

 황태자에 이어서 싸가지 2호를 막 발견한 것 같다.

 담월의 머릿속에 적색 불이 깜빡였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차가운 인상의 여자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흥미롭군요. 저희 회사 광고도 찍으신 분이 자신이 찍은 광고의 최종 승인권자 얼굴도 모른다니. 그렇게 허술해서야 어디 그쪽 판에서 발붙이고 살아남을 수 있겠어요?"

 

 그녀의 말에 싸가지 2호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갑자기 방 안의 온도가 뚝 떨어졌다.

 

 사실 그녀가 차가운 인상의 여자를 모른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됐다.

 그녀 역시 이미 굉장한 인지도를 지닌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이름 차영선.

 

 경제부총리 차명희의 맏딸로 재계 서열 1위의 명운 그룹 부회장 자리까지 맡고 있었다.

 굉장한 미모에 줄곧 엘리트 코스를 달려온 그녀.

 거기에 그룹 부회장까지.

 대중의 주목을 받을 모든 것을 갖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그녀의 회사 광고까지 찍어놓고 모른 척 시치미를 떼다니.

 

 어설픈 연기에 코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영선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 정도로 어설프다니 실망이군요. 아무래도 저희 회사 이미지와는 안 맞는 것 같은데 재계약은 없던 일로 하죠."

 

 영선의 말에 귀여운 인상의 여자가 금세 미소를 되찾으며 대꾸했다.

 

 "잘됐네요. 마침 저도 너무 질 낮은 제품의 광고는 앞으로 계약을 안 하려던 참이었거든요."

 

 두 사람이 태연한 얼굴로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날을 세웠다.

 

 '역시, 호락호락한 사람들이 아니구나.'

 

 중간에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던 담월이 긴장한 얼굴로 눈치를 살폈다.

 그런 담월을 향해 영선의 손이 내밀어졌다.

 

 "서로 인사를 나눌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기왕 이렇게 된 거 간단하게 이름이나 알고 지내도록 하죠. 전 차영선이라고 해요."

 

 "아, 네. 전 한담월이라고 해요."

 

 가볍게 악수를 끝낸 영선이 귀여운 인상의 여자를 향해 말했다.

 

 "아무래도 한담월씨는 그쪽을 모르는 눈치인 거 같은데. 직접 소개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에이, 설마. 날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호호호."

 

 그녀가 재미난 농담이라도 들은 사람처럼 손사래를 쳤다.

 담월이 어색하게 따라 웃자 그녀가 금세 놀란 얼굴을 했다.

 

 "헐. 정말 나 몰라요?"

 

 "아, 그게……. 제가 외국에서 너무 오래 생활하다 보니……."

 

 "세상에. 외국 어디에서 지냈길래 날 몰라? 무슨 이름도 없는 외딴 섬나라나 아프리카 오지에서 살다 왔어요?"

 

 아, 이 싸가지 2호.

 너야 말로 도대체 어떤 세상에서 살았길래 인성이 그 모양인 거니?!

 

 담월의 웃는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졌다.

 혹시라도 이 여자가 간택이 되면 아주 볼만 할 것 같다.

 싸가지 1호와 싸가지 2호가 얼마나 알콩달콩 서로를 헐뜯으며 사랑할지 너무도 궁금해졌다.

 

 담월의 표정이 좋지 않자 그녀가 슬쩍 물러섰다.

 

 "그래요. 믿기 힘들지만 일단 모른다고 치죠. 내 이름은 강미소예요. 자세한 소개는 나중에 직접 검색해 봐요. 온 천지에 내 얘기니깐."

 

 사실 담월이 제국 소식에 너무 둔감한 것도 문제였다.

 미소의 이런 자신감에는 분명한 근거가 있었다.

 이미 수년 전부터 국민 버프녀로 제국에 이름을 알린 그녀였으니까.

 

 아이돌로 데뷔를 해 단번에 정상에 오르더니 각종 CF를 독차지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녀.

 최근에는 배우로도 활동 영역을 넓혀 지상파 드라마에 주연을 꿰찰 만큼 그녀의 인기는 대단했다.

 

 미소의 당당한 소개에 담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쨌든 두 사람 모두 대단히 유명한 사람인가 보네.'

 

 역시, 그 말도 안 되는 호감도 수치는 인지도가 문제였다.

 두 사람에 비해 자신은 너무도 평범한 여자였던 것이다.

 

 아니지. 평범한 것보다도 못하지.

 

 줄곧 외국을 떠돌면서 지냈으니 오히려 이곳에서는 외국인에 가까웠다.

 그제야 납득이 된다는 듯 담월의 표정이 개운해졌다.

 6%의 호감도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요란하게 인사를 마친 그녀들이 소파에 앉았다.

 미소와 영선은 서로 멀찍이 떨어졌다.

 담월이 어디에 앉아야 좋을지 몰라 잠시 주춤거렸다.

 그런 담월의 눈에 이상한 게 들어왔다.

 

 소파들 옆에 놓여있는 커다란 안마 의자가 그것이었다.

 

 '생뚱맞게 이런 게 다 있네?'

 

 담월이 관심을 보이자 미소가 다가왔다.

 

 "어머, 이걸 여기서 보네? 내가 구하려고 그렇게 애를 쓸 때는 없더니."

 

 그녀가 반가운 얼굴로 안마 의자를 쓰다듬었다.

 

 '뭐, 얼마나 대단한 의자길래 그러지?'

 

 담월의 눈에 호기심이 비치자 미소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게 그렇게 시원하다고 그러더라고요. 국내에 몇 대 없다더니 이곳에 와서야 구경하네요, 호호호."

 

 "아, 네…….

 

 담월이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미소가 냉큼 의자에 앉았다.

 

 "와, 역시. 엄청 편하고 좋은데요?"

 

 그렇게 귀한 거라면 주인이 누구인지 뻔히 보이는데 그렇게 함부로 앉아도 되는 거야?!

 담월이 괜히 주변을 살폈다.

 미소가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담월을 향해 말했다.

 

 "뭐해요? 그쪽도 한 번 앉아 봐요."

 

 "네?! 아뇨. 전 괜찮아요……."

 

 "에이, 그러지 말고 한 번 앉아 봐요."

 

 "어? 난 정말 괜찮은데……."

 

 어허, 괜찮다는 데도 사람이 참.

 담월이 마지못해 앉는 것처럼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과연, 그녀의 말처럼 정말 편안했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또 이런 호사를 누려보겠어요."

 

 미소의 말에 담월이 어색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편한 것도 좋지만 역시 주인과 마주치는 건 무서웠다.

 그런 담월의 몸을 미소가 억지로 주저앉혔다.

 

 "기다려봐요. 내가 기가 막히게 좋은 경험을 시켜줄 테니까."

 

 "네?! 아니, 전 괜찮……."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묵직한 진동이 느껴졌다.

 곧이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시원한 느낌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아, 좋다.'

 

 담월이 자신도 모르게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긴장이 풀리면서 금세 몸이 나른해졌다.

 그 모습을 본 미소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그것 봐요. 느낌 있다니까. 호호호."

 

 "아으으, 그으러어게에요, 아아주우 조오으은데에요요?"

 

 담월이 엄지손가락을 척 올리며 말하자 미소가 배를 잡고 웃었다.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영선이 고개를 저었다.

 

 '한심할 정도로 단순한 여자들이네.'

 

 영선이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아직 만족하기에는 일러요. 이제부터가 진짜니깐."

 

 곧이어 미소가 리모컨을 조정하자 금세 담월의 몸이 단단한 무언가로 조여졌다.

 순식간에 꼼짝 못 하게 된 담월이 당황한 눈으로 미소를 쳐다봤다.

 

 순간 미소의 얼굴에 잔인한 웃음이 번지는 게 보였다.

 

 '아, 느낌이 안 좋은데?'

 

 담월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요동쳤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전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진동이 그녀의 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으으아아악!"

 

 담월이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걸 내려다보는 미소의 얼굴에 만족감이 어렸다.

 

 "어머, 그렇게 좋아요? 호호호."

 

 "아아니니, 그그게게 아아니니라라아아 머머머멈춰춰춰춰 주주주세세세요요요."

 

 "어? 멈추라고요? 왜요? 별로예요?"

 

 "네에에에에!"

 

 "알았어요. 잠깐만요."

 

 미소가 아쉬운 얼굴로 리모컨을 만지작댔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진동은 멈출 줄을 몰랐다.

 담월이 식은땀까지 흘리며 버둥거렸다.

 곧 미소의 엉뚱한 말이 들렸다.

 

 "어? 이게 왜 이러지?"

 

 "왜왜왜왜!"

 

 "이거 고장이 난 거 같은데. 버튼이 안 눌러져요. 어쩌죠?"

 

 그녀의 말에 담월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아무래도 그녀에게 제대로 당한 것 같았다.

 당황한 담월이 재빨리 영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저저저전 워워워원 조조조오오옴 뽀뽀뽀뽑 아아아아 주주주 세세세 요요요요!"

 

 절박한 구원 요청에 영선이 눈살을 찌푸리며 일어섰다.

 그런 영선의 시야에 안마 의자의 전원 코드가 들어왔다.

 못마땅한 얼굴의 영선이 전원 코드가 있는 곳으로 다가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갑자기 멈칫하더니 영선이 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네. 말씀하세요."

 

 어?! 잠깐만! 그럼 난 어쩌라고?!

 영선이 통화를 하며 등을 돌리자 담월의 얼굴이 난처하게 일그러졌다.

 옆에서는 미소가 리모컨을 손에 든 채 쩔쩔매는 연기를 하고 있었다.

 

 아, 아무래도 이거 대형 사고 각인데?!

 

 담월의 얼굴에 절망이 물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불길한 예감은 보기좋게 적중했다.

 

 "황제 폐하 납시오!"

 

 접견실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미소와 영선이 얼른 자세를 바로 하며 고개를 숙였다.

 

 난! 난 어쩌라고?!

 

 어느새 하얗게 질린 얼굴의 담월이 안마 의자에 갇힌 채 버둥거렸다.

 곧이어 황제의 모습이 보였다.

 덜컥 겁이 난 담월이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아, 몰라. 이제 다 끝났어!'

 

 이대로 안마 의자에 앉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운명이었나 보다.

 절망적인 그녀의 귓가로 황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다들 반갑……."

 

 갑자기 황제의 말이 뚝 끊겼다.

 방 안에는 안마 의자의 진동 소리만 요란하게 들렸다.

 

 아, 하필이면 황제의 안마 의자를 탐하다가 죽는 운명이라니!

 

 담월이 뜨거운 눈물 대신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곧이어 황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풉! 아니, 넌 어찌하여 풉! 그러고 있는 것이냐, 풉!"

 

 황제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말했다.

 당황한 담월이 냅다 큰소리로 외쳤다.

 

 "폐에에에하하하! 주주주죽여여여주주주주시시시시오오오옵소소소소서서서서!"

 

 그녀의 목소리에 진정성과 진동이 함께 담겼다.

 결국, 황제가 더는 참지 못하고 배를 움켜잡으며 웃었다.

 

 "푸하하하! 아이고, 아이고 배야!"

 

 담월도 망연자실한 웃음을 흘렸다.

 졸지에 황제를 웃겨서 암살하려는 자객이 된 기분이었다.

 뒤늦게 상선이 부리나케 달려와 안마 의자의 전원을 뽑았다.

 간신히 풀려난 담월이 냉큼 일어나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폐하!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안마 기능에 눈이 어두워……."

 

 "아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도 오늘 도착했다고 하더니 이게 여기 있었구나."

 

 "그냥 잠깐만 앉아 있는다는 게 그만……."

 

 "됐다. 이제 그만 일어나거라. 덕분에 모처럼 크게 웃을 수 있었으니 오히려 내가 고맙구나. 하하하."

 

 황제의 너그러운 용서에 담월이 얼른 일어나 다른 두 여자 옆에 섰다.

 황제가 그녀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들 고개를 들거라. 서로 얼굴을 보고 대화를 해야 정도 쌓이고 하지 않겠느냐."

 

 황제의 분부에 그녀들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담월 역시 슬쩍 고개를 들어 황제를 바라보았다.

 지난번엔 너무 경황이 없어 제대로 보지도 못했던 황제의 얼굴을 그제야 볼 수 있었다.

 

 인자한 듯 보이면서도 어쩐지 허술한 느낌도 있고.

 모든 걸 다 꿰뚫어 보는 듯한 눈동자지만 그 안에 개구쟁이의 웃음이 감춰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참 많은 걸 품고 있는 황제의 모습이었다.

 그런 황제가 담월과 눈을 맞췄다.

 

 "그래, 사용해 보니 어떻더냐? 쓸 만 하더냐?"

 

 "네?! 아, 저기……. 아주 시원하던데요?"

 

 "오, 그래? 이거 기대가 더욱 커지는구나. 하하하."

 

 어느 순간 황제의 관심이 담월에게 쏠리자 지켜보던 미소가 대뜸 끼어들었다.

 

 "폐하! 사실 저 역시 저 안마 의자를 구하려고 했었는데 도무지 구할 수가 없었사옵니다."

 

 "오, 그랬더냐?"

 

 "네. 그래서 말인데요, 나중에 저도 한 번 사용할 수 있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갑자기 미소가 몸을 배배 꼬며 애교를 부렸다.

 맙소사! 아무리 그래도 황제에게 저런 애교가 통할 리가…….

 

 "오호! 그래, 그래! 얼마든지, 얼마든지 써 보도록 하거라. 하하하."

 

 이럴 수가!

 황제가 단번에 넘어가 버렸다.

 

 "아이, 좋아라. 호호호. 그 대신 제가 조금 있다가 직접 안마를 해 드릴게요. 그래도 될까요, 폐하?"

 

 "응?! 되다 마다. 암, 되고말고. 아하하하!"

 

 황제가 미소의 애교에 살살 녹아내렸다.

 뒤이어 미소의 필살 눈웃음이 추가되었다.

 

 "그럼, 우리 조금 있다가 교대로 사용해 봐요, 호호호."

 

 "그러자꾸나. 하하하."

 

 미소의 공격에 황제가 성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녀를 바라보는 황제의 눈빛에 어느새 애정이 듬뿍 담겼다.

 

 "어찌 이렇게 귀여울꼬. 마치 아이처럼 맑고 순수하구나. 하하하."

 

 황제의 눈이 최면에 걸린 듯 흐느적거렸다.

 미소가 아이처럼 해맑게 웃어 보였다.

 

 그녀의 완벽한 승리였다.

 

 

 ***

 

 

 

 부드럽게 달리는 차 안으로 휘의 모습이 보였다.

 이동하면서도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쪽 동향은 어떻더냐?"

 

 문득 휘가 물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택원이 돌아보며 답했다.

 

 "아직 큰 변화는 관찰되지 않고 있사오나 조금씩 움직이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사옵니다."

 

 "다행이군."

 

 "아무래도 이번 언론 보도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럴 테지."

 

 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휘를 향해 택원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아주 적절한 시기에 묘안을 찾으셨습니다, 전하."

 

 "그게 다 누구 덕분이지."

 

 "네?!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지…….

 

 "그런 게 있다."

 

 휘가 시치미를 떼더니 곧장 물었다.

 

 "그 처자들은 어찌하고 있느냐?"

 

 "아, 그렇지 않아도 오늘 입궁하여 두 분 폐하를 알현할 것이라 하옵니다."

 

 "그래?!"

 

 휘가 귀를 쫑긋거리며 관심을 보였다.

 곧장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자 그의 한쪽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덕분에 안 풀리던 일도 조금씩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을 감시하던 눈길도 다소 허술해졌다.

 모두가 그녀 덕분이었다.

 

 "일정을 서두르는 게 좋겠군."

 

 휘의 눈빛이 모처럼 생기있게 반짝였다.

 

 마침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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