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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반전을 사랑한 남자
작가 : 샤뚜르
작품등록일 : 2017.7.5

강지원, 29살의 젊은 사장은 얼음 왕자라는 별명으로 직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직원들도 피해가는 그에게, 회사의 햇병아리가 어느 날 찾아와 태클을 건다. 그는 그녀가 만만했었다. 이세희, 24살의 인턴 사원. 상상 속 50대 사장과는 다른 조각미남이 나의 상사라니! 사랑 때문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 남자와 귀엽지만 반전 있는 그녀의 좌충우돌 연애 이야기.

 
제 51 화. 덮쳐, 말아?
작성일 : 17-07-19 13:39     조회 : 274     추천 : 0     분량 : 7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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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전을 사랑한 남자

 

 

 

 

 

 제 51 화. 덮쳐, 말아?

 

 

 

 잠시 후, 옷을 다 갈아입었다는 세희의 말과 함께 방문이 열렸다.

 

 한참을 홀로 방문 앞에 앉아 한숨만 푹푹 내쉬던 지원은 그런 그녀의 부름에, 살며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그를 맞이한 것은, 새하얀 다리를 훤히 드러내놓고 있는 세희였다.

 

 남자와 여자의 신체 차이로 인해 세희가 입고 있는 옷은 허리께까지 내려올 뿐이었다. 오, 맙소사. 그는 미처 제 셔츠가 그녀에게는 원피스 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이 남자, 몰라도 너무 몰라서 탈이다.

 

 그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한 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얼굴은 차갑기 그지없었지만, 속마음은 정반대였다. 자꾸 그쪽으로 쏠리는 제 시선에 또 다시 한숨이 흘러나왔다.

 

 “잠시만. 따뜻한 밀크 티 만들어뒀으니까 가져올게.”

 

 지원이 나간 방 안에는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세희는 다시 한 번 제 차림을 내려다보며 이게 그렇게 이상한가 싶었다. 한 번도 남자 옷을 빌려 입은 적이 없어 그것만으로도 어색해 죽겠는데, 지원의 시선마저 못 볼 걸 봤다는 듯 쌩하니 나가버리면 어쩌란 말인가.

 

 

 

 쭈뼛쭈뼛.

 

 세희는 애 궂은 머리카락만 손가락으로 빙빙 감으며 그의 침실을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넓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 정도의 방 안에는 역시나. 지원의 사무실과 거의 비슷한 베이지 톤의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다.

 

 순간, 세희는 멈칫했다. 세 곳 다 같은 인테리어. 게다가, 어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차가운 그의 이미지와는 달리 따뜻함이 넘쳐났다. 그녀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생각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누가 그랬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라고. 게다가, 그 불완전함을 기본적으로 가족. 특히, 부모님에게서 채울 수 없었다면. 어릴 적부터 ‘애정’, ‘사랑’에 대한 풍족함을 누릴 수 없었다면. 그 불완전함은 계속 그 깊이만 더해가, 갈증이 어느 정도 해갈될 때까지 다른 무언가로 보상 받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지원이 세희에게 속삭이던 진심이 떠올랐다. 게다가, 매번 키스를 나눌 때마다 갈증에 속이 타는 것처럼 애타게 움직이던 그의 모습도.

 

 항상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때로는 당당하게, 때로는 오만하게 웃던 그의 눈빛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던, 그녀가 어디로 가버릴까 초조해하던 그 모습도.

 

 세희는 침대에 앉아 그가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곳을 쓸었다. 차가웠다. 그는 매일 이런 곳에서 잠에 들겠지. 문득 그가 외롭게 보내왔을 수많은 시간들이 떠올라 그녀의 마음 한 구석을 죄어왔다. 체온이 떠나간 그 자리는 차갑게 식는 것이 당연했지만, 마음마저 식으면 안 되는 일이지.

 

 그녀는 수많은 베게들 중 하나를 품에 안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베게 사이로 숨이 스며든 탓에 따뜻했다.

 

 그와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

 

 내가, 같이. 그의 옆에 있어 줘야지.

 

 

 

 

 

 한편, 부엌으로 간 지원은 밀크 티가 담긴 유리잔 두 잔을 쟁반 위에 담은 뒤 싱크대 앞에서 넋이 나간 사람처럼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후우. 그녀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을 인식한 이후로 늘기만 하는 것이 한숨이다.

 

 젠장. 그렇게 섹시한 옷차림으로 있으면 어쩌라는 거야.

 

 잊으려고 노력해 봐도 잊을 수 없는 그 아찔한 선이 그를 괴롭혔다.

 

 본능적으로 옷 속의 가려진 구석구석을 상상하려는 엉큼한 뇌는 그의 체온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게다가, 이건 말이 안 된다.

 

 자신이 입었을 때는 그저 평범한 셔츠였을 뿐인데, 어째서 세희를 만나 유혹적으로 변한단 말인가.

 

 아아, 나 보고 어쩌라고.

 

 

 

 세희를 아끼고 싶은 마음과 내뱉은 말이 있는 지라, 그렇게는 못 하겠고.

 

 안 그러자니 먹이는 그런 그의 마음도 모른 채 코앞에서 보란 듯이 그를 자극한다.

 

 그는 가지런히 정리 되어 있는 머리를 거칠게 헝클었다.

 

 덮쳐, 말아?

 

 

 

 지원은 사악한 본능의 속삭임에 굴복하지 않고 끙끙거리며 흐트러져 있던 자세를 바로 했다. 남자가 한 번 뱉은 말은 끝까지 지켜야 직성이 풀리는 그였다. 참자. 이 정도 뭐 별거라고.

 

 그의 방으로 향하는 걸음 뒤로 한 걸음, 두 걸음. 발이 닿는 바닥마다 뜨거운 연기가 피어올라났다.

 

 

 

 

 

 “밀크 티야. 이거 마시고 자도록 해.”

 

 지원이 컵을 건네자, 세희가 침대에 앉은 채로 받아들었다. 호로록, 연갈색 액체를 맛 본 세희는 향긋하면서도 달달한 그 맛에 기분이 좋은지, 배시시 웃었다.

 

 지원은 세희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로 묵묵히 컵 속을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세희는 그런 그의 옆모습을 힐끔거리다, 컵에 담긴 내용물이 다 비워졌을 즈음 입을 열었다. 결심한 마음과는 달리, 이런 일은 처음이라 수줍음이 듬뿍 묻어있었다.

 

 “저기... 잘 수 있는 방은 여기뿐이에요?”

 

 맑은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묻는 그 물음에, 지원의 고개가 돌아갔다.

 

 “음... 아니? 여기 맞은편에 서재 방 하나 있어. 난 거기서 자면 되니까 걱정 마.”

 

 그는 세희가 저렇게 묻는 것이 자고 싶다는 간접 의사 표현으로 들려 자리를 비켜주기 위해 쟁반과 함께 아까 가져왔던 컵 두 잔을 들고 발걸음을 떼었다.

 

 

 

 그런 그의 뒤를 잡는 여린 손길.

 

 세희가 그의 옷자락을 살짝 쥐며 그의 걸음을 붙잡았다.

 

 “가지 마요. 그 방, 춥잖아요.”

 

 “......”

 

 얘가 지금 뭐라는 거야.

 

 지원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 세희에게 넘어가기 2분 전.

 

 방금 자신이 들은 말이 현실인지 구분이 되질 않아 눈만 깜빡거리는 지원이었고. 제 입으로 그에게 같은 방에서 자자는 말을 꺼내기 부끄러웠던 세희는 그런 그를 보며 다시 한 번 용기를 냈다. 붙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냥 같이 자요. 제가 잘 때 잘못 자면 회복 속도가 더뎌질 테니까 봐줄 겸 해서요.”

 

 세희는 센스를 발휘하여 지원을 배려했다. 그가 홀로 잠이 들 생각에 옆에 있어주고 싶은 제 마음과는 달리, 지원이 그녀의 잠자리가 불편하지 않게 배려해 거부할까 싶어서였다.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남자는 다 도둑놈이라던 성환의 말은 백 번 죽어도 옳은 말임이 틀림없었지만, 그녀는 그를 믿으니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버지께 죄송하지만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원의 약점을 건드렸다. 그가 제게 미안해하는 것. 그를 붙잡아야 했다.

 

 더 이상 외롭지 않게.

 

 

 

 그런 그녀의 속을 알 리 없는 지원은 감정 하나 내보이지 않는 차갑게 무장한 얼굴로 단번에 거절했다.

 

 “안 돼. 너 내일 출근해야 하는 거 알지? 오늘 힘들었을 텐데 푹 쉬어.”

 

 그렇게 나오신다 이거지?

 

 속으로, ‘이런 기회 잘 없는데 그냥 이번만큼은 넘어가주면 안 되나?’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평소답지 않게 좀처럼 얼굴을 펴질 않는 그를 보니 반항하는 아이처럼 곱게 그의 말을 듣기가 싫어졌다. 유치하지만 협박(?)으로라도 그를 이 방에 머무르게 할 수 있다면 그럴 것이다.

 

 잠들어 있던 승부욕마저 활활 타올랐다.

 

 “싫어요. 사장님 이 방 나가시면 제 발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거죠? 에휴, 불쌍한 내 발아. 넌 무슨 팔자 길래 붕대 속에 감겨 있어야 되는 거야.”

 

 세희는 일부러 과장된 행동을 하며 신세한탄(?)을 하다 휙, 지원으로부터 몸을 돌려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흥이다! 옆에 오든 말든, 서재에서 얼어 죽든 말든.

 

 “......”

 

 그의 눈이 미세한 떨림을 뒤로 하고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세희의 유치한 심술은 효과가 있었다. 그가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세희의 발목을 물고 넘어지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는 한참을 그녀의 발목과 상념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의 얼굴로 곤란한 기색이 완연하게 펼쳐졌다.

 

 

 

 - 넘어가기 30초 전

 

 “세희야, 자?”

 

 “......”

 

 지원의 세희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의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 일부러 연기한 것인데 저렇게 쩔쩔매는 모습을 보니 피식. 문득, 그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았어. 옆에 있어줄게. 그러니까 얼굴 좀 보여줘.”

 

 세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녀가 제 옆을 툭툭 치며 그에게 옆으로 오라 손짓했다.

 

 “졸려요.”

 

 분명 지원의 침대였지만, 세희의 침대인 것 마냥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손짓에 지원은 완전히 넘어가버렸다. 본능은 저 멀리 던져버리고, 세희의 옆자리가 유독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저 옆에 누우면 정말 따뜻할 것 같다.

 

 “나 아직 안 씻어서 더러워. 먼저 자고 있어. 돌아올게.”

 

 세희는 지원에게 끄덕여준 뒤, 정말 피곤한 지 눈을 비비며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누가 같은 침대 위에 있으면 본능 따위 상관없다고 그랬는가.

 

 ...이제부터 지원의 핫(Hot) 타임!

 

 

 

 샤워를 마친 지원은 집에서 입는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후, 세희가 잠들어 있는 제 방으로 돌아왔다.

 

 쌔근쌔근.

 

 어둠이 내려앉은 방 안을 조용히 적시는 고른 숨소리.

 

 세희가 깰 새라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지원은 그녀의 곁으로 걸어와 조심스레 곤히 잠들어 있는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처음이다.

 

 누군가가 제 집에 있는 것이.

 

 누군가가 제 침대에 누워 쌔근거리며 온기를 피워내는 것이.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하면서도 천천히. 온기가 퍼져나갔다.

 

 오늘 밤만큼은 혼자 보내지 않을 수 있게 된 그의 공간은 따뜻했다.

 

 결혼하면 매일 이런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계속 이렇게 있고 싶다.

 

 살며시 세희의 옆에 몸을 뉘었다.

 

 가까이서 들려오는 세희의 규칙적인 숨소리에 마치 엄마 배 속에 있는 것처럼 마음이 안정된다. 그는 손을 들어 자신이 누워있는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는 세희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귀 뒤로 넘겨주었다.

 

 옆에 누가 누워 있는 지도 모르고. 쌔근쌔근 잘도 잔다.

 

 잠이 오냐?

 

 자신은 음란마귀와 싸우느라 한껏 진지하게 그녀와 같이 한 공간에 있다는 것에 마음이 무거운데, 이 아가씨는 순진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같이 자자고 그런다.

 

 게다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보쌈 해 가도 모를 정도로 잠에 푹 빠져있는 것이. ...귀엽다.

 

 

 

 젠장. 아까는 섹시했다가도 이제는 또 귀엽기까지. 도대체 이 여자는 뭘 먹었길래 팜므파탈의 매력을 감출 수 없는 것인가.

 

 갑자기, 세희의 자는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지원의 곁으로 세희가 데굴데굴 굴러왔다. 그러더니, 얇은 옷을 입고 있어서 추웠는지 몸을 웅크리며 지원의 배와 허벅지에 각각 팔과 다리를 척하고 올려놓았다.

 

 쌔근쌔근. 잘도 잔다.

 

 “......”

 

 우리 순진한 양님께서는 불타는 늑대 맘도 몰라주시고 잘도 주무신다.

 

 잠결에는 일상을 꾸려나가면서 몸에 항상 지니고 있던 긴장이 일순간에 풀려버린다. 그렇기에 세희가 제정신이었다면 절대 하지 못할 과감한 행동들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단단한 몸 위로 느껴지는 부드럽고 말랑한 피부에 몸이 간질거린다. 게다가, 지원의 품에 안기는 자세로 누워있는 세희의 또 다른 말캉함이 겨우 가라앉혀 놓았던 남자의 피를 끓게 한다.

 

 지원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세희의 몸을 한 손으로 슬쩍 밀어냈다.

 

 후우. 안 밀린다. 안 밀려. 얇은 옷을 통해 느껴진 따뜻한 온기를 잠결 속에서도 느꼈는지, 나무에 딱 달라붙은 코알라처럼 떨어질 줄을 몰랐다.

 

 “세희야, 베개 베고 자자.”

 

 “우웅...”

 

 제발 들러붙지 좀 말라고.

 

 자꾸만 밀어내려는 그의 손길에, 눈살을 찌푸리면서 고집을 피우는 세희. 이럴 때는 영락없는 애 같다.

 

 

 

 지원은 이마에 손을 올렸다. 다시 고개를 내미는 사악한 본능의 속삭임. 덮쳐. 눈앞에 먹잇감을 두고 마다하는 맹수가 어디 있다고 그냥 보고만 있나.

 

 도리도리. 아니야, 안 될 일이지.

 

 뭐가 안 돼. 어차피 둘이 결혼할 거 아니야? 그게 조금 당겨진다 생각해. 어차피 참지도 못하면서.

 

 아니 돼. 참을 수 있어. 남자니까 못 참는 것도 당연하지만, 남자라서 참을 수 있어.

 

 후아후아. 심호흡을 여러 번 내쉰 지원은 본능 따위 사뿐히 밟아주고 세희의 여린 볼을 커다란 손으로 덮었다. 쪽. 짧게 볼 위에 이어진 굿나잇 뽀뽀.

 

 한참을 애틋한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던 지원은 그냥 다 내려놓고 세희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하기로 했다. 세희의 잠자리가 편하도록 팔베개를 해주며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그래, 넌 자라. 난 양이나 세면서 너와 함께 있으련다. 제 몸이 몇 번 불살라 없어지든, 그는 소중한 그녀를 위해 번뇌를 떨쳐버렸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ㅁ...

 

 

 

 지원의 머릿속에서 양들이 차례대로 폴짝폴짝 울타리를 뛰어넘으며 그의 셈을 도와준다. 어, 그런데 저 멀리서 참 순하게 생긴 양이 살랑살랑 걸어온다.

 

 그 양은 울타리를 넘지 아니하고 보란 듯이 더 다가와 수컷을 유혹하듯 섹시한 움직임을 선보인다. 꿈에서도 저 양이 세희처럼 보이니 제대로 미친 것이 틀림없다. 젠장, 발칙한 양 같으니라고!

 

 이제는 모든 양들이 그녀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헉!

 

 지원은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으아악!!

 

 막힐 대로 막혀버린 기의 흐름에 절로 소리 없는 절규가 새어나왔다.

 

 번뜩.

 

 세희를 휙 내려다보는 그의 눈이 빨갛게 충혈 되어 있었다.

 

 발칙한 양(羊) 아가씨, 내 기필코 널 잡고 말리라.

 

 

 

 지원이 세희를 안으려면 수많은 산들을 넘어야 한다. 그 중 더 넘을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어느 순간 넘어버린 무서운 산 하나. 들어는 봤나, 딸 사랑 지극한 아버지라는 이름의 산을.

 

 그는 다음 전투에서 이기고 말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전사처럼, 코에서 뜨거운 김을 뿜으며 터덜터덜.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한 뒤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가 아닌 곳으로.

 

 

 

 야속한 시간은 흐르고 흘러, 아침을 불러왔다.

 

 창문을 통해 스며든 햇살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ㅇ.. 으아아. 아흐, 잘 잤다.”

 

 비록, 어제 안 신던 힐을 신고 고생은 좀 했지만 단 잠을 잘 수 있었던 덕분에 몸 상태는 최고였다.

 

 세희는 기지개를 피다 말고 옆을 둘러보았다. 있어야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어디 갔지?

 

 

 

 지원을 찾기 위해 방을 나서려던 세희는 발밑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물체(?)에 걸음을 멈추었다. 지원이었다.

 

 “왜 침대에서 안 주무시고...”

 

 그가 고생한 것을 그녀가 안다면 좋을 텐데.

 

 세희는 지원의 곁에 앉아 잠이 든 지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든 지원의 눈 밑으로 다크써클이 퀭하게 내려와 있었다.

 

 판다 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지만, 세희의 눈에는 그런 지원이 잘생기기만 했다.

 

 세희는 그의 눈 밑에 자리 잡은 다크써클을 조심스레 매만진 뒤, 출근 준비를 위해 웅크렸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런 그녀를 단단하게 잡아 이끄는 손길.

 

 잠깐 눈을 붙일 수 있는 것이 전부였다. 선잠을 잔 터라, 제 피부 위로 느껴지는 세희의 손길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간질거리는 느낌에 그나마 있던 잠기운도 날아가 버렸다.

 

 세희를 품에 가둔 지원은 자신의 품에 들어온 양을 보며 나른하게 웃고 있었다. 잠에서 막 깨어난 탓에 눈가에 가득한 나른함은 그의 미소를 섹시하게 만들었다.

 

 “잘 잤어?”

 

 흐트러진 지원의 모습에, 세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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