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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싸우는 개와 과거의 소녀
작가 : Nine
작품등록일 : 2017.7.8

미신, 전설, 설화, 민담, 소설.
형체 없이 떠돌던 것들이 허구의 장막을 헤치고 인류 앞에 형상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점을 정확히 짚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인류의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던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은 분명했다. 과거였다면 ‘취객이나 광인의 횡설수설’ 정도로 여겨지고 소리 없이 사라지거나 잠깐 떠돌다 사라졌을 사건들이 명확한 증거와 함께 각국 국가기관에 제출되었다.
인류는 ‘점잖게’ 양립할 수 없는 존재들과 너무나도 오래, 거의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어왔고 그러면서도 그 사실을 억지로 외면해 왔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하지만 인류가 공포를 공포로, 경악을 경악으로 영원히 남겨두는 존재였다면 현재에 이르지 못했으리라.
잘 알려져 있지만 공포스러운 소설적 산물로 여겨지던 흡혈귀 정도에서, 기괴하게 비틀린 종교적 광신의 초현실적인 결과물, 생물학적으로 인간이지만 초인적인 능력을 갖추고 그 힘을 파괴와 혼란 조장에 사용하는 인간 등, 정확히 추산할 수 조차 없는 숫자와 종류의 위협요소들, 과거의 기준으로는 초현실적이지만 실제로 존재하고, 인간에게 위협적이기까지 한 수많은 것들이 ‘특이 위협체’라는 이름으로 통칭됐다. 그리고 인류는 이 새로 떠오른 위협에 질병, 스스로의 무지, 실패한 정치 및 경제체제 등과 같은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 방식이란, ‘해당 위협의 존재 말살 위한 노력의 경주’였다.

 
챕터3. 리빙 데드(1)
작성일 : 17-07-19 01:31     조회 : 278     추천 : 0     분량 : 7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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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챕터 3. 리빙 데드

 

 

  적어도 외관만은 공장에서 출고된 그대로인 조그마한 경차가 그 크기에 어울리지 않는 박력 넘치는 엔진음을 터트리며 주말의 한적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2000CC 중형차 수준의 터보 터빈 심장을 작고 가벼운 차체에 이식한 대가로 얻은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시속 백 킬로미터 까지 가속되는 데 걸리는 시간) 5.8초와 최고시속 210킬로미터를 얻은 경차는, 경차에 터보 엔진을 장착하는 것이 과연 정말로 효과적인 일인가에 대한 이견(異見)의 여지를 무시한 채 힘차게 도로를 밟아 나가고 있었다.

  그 검은색 경차는 허세나 개인적 즐거움을 목적으로 튜닝 된 차는 아니었다. 오히려 철저히 실용적인 이유였다. 스티어링 휠(핸들)을 단단히 쥔 채 교과서적인 자세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 차주이자 운전자를 살펴보면… 인호였다.

  그리고 그 옆자리에 파랗게 질린 얼굴로 안전벨트를 꽉 쥐고 있는 이는 지수, 지수의 뒷자리에서 지수만큼은 아니지만 못내 불안한 표정으로 안전벨트를 멘 채 청강검을 끌어안고 있는 청아가 보였다.

  “으아아…! 괜히 따라왔어!”

  터보 엔진이 질러대는 기계적 비명과 함께 지수의 비명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변해 인호의 고막을 긁어댔다.

  “…… 동의합니다.”

  기분 탓인지 조금은 퉁명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목소리는 지수의 사고 심층까지 도달하진 못했다. 그녀는 거칠게 던져지듯 지나쳐 가는 창 밖의 풍경에 넋이 반 정도 나가 있었으므로.

  “차가! 차가 막 흔들리잖아!”

  “문제없습니다.”

  인호의 무신경한 대답에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반박을 생각해 낸 지수가 몸을 떨었다. 그저 자동차의 떨림에 일방적으로 휩쓸리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지만.

  “문제 있어! 애초에 이렇게 빨리 달릴 거면 더 큰 차를 사는 게 낫잖아! 대체 이게 뭐야! 모르긴 몰라도 DOGS 월급 많을 텐데!”

  “경차가 주차에 유리합니다.”

  “허어?” 터무니없이 현실적이고 소시민적이며 편리주의적인 이유에 잠시 수세에 몰려있던 지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이런 시덥지 않은 데라도 몰두하지 않으면 졸도할 것만 같았다. 스스로 심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또 실제로도 그런 그녀였지만 그녀가 지금 탄 차는 지나치게 불안했으며 인호의 운전은 지나치게 격렬했다. 분명히 롤러코스터 레벨이었다. 그것도 끝을 알 수 없는.

  “그, 그럼 오토바이라도 탔으면 좋았잖아! 맞아! 주차도 쉽고! 그랬으면 나랑 청아는 내 차 타고 왔겠지!”

  따라오지 않았을 거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인호는 시선을 전방에 고정한 채 무표정한 얼굴을 좌우로 저었다.

  “모터 싸이클은 신뢰할 수 없습니다. 얼어붙은 노면 위에서는 사용할 수 없거니와, 바퀴가 두 개 뿐이라는 건 아무래도 불안한 설계입니다. 정지 상태에서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습니다.”

  “끄이이…….”

  틀렸다. 머리에 피가 모자란 지 다른 문제가 있는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머리로는 장난 같은 언쟁조차 이길 수 없었다. 멀쩡한 상태였더라도 질 수 있다는 가정은 하지도 않았다.

  좌우지간 패배로 끝났다. 이제 뭘 해야 하나. 어디에 매달려야 하나. 나는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흐… 흐히히… 에헤헤…….”

  기어코 초점이 사라진 눈으로 실성한 사람의 웃음을 띄엄띄엄 흘리기 시작한 지수였다. 이제 침만 흘리면 완벽해질 듯한 그녀의 생각은 이 재앙이 시작됐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인호야, 인호야. 쉬는 날인데 뭐 해? 어제는 실례─(이 부분에서 지수는 말끝을 길게 늘였다)했어! 오늘에야 말로 뜨거운 밥 만들어 줄게. 카레? 짜장? 둘 다 재료 있어. 아, 그 전에 우선 문부터 열어줄래?”

  해가 슬금슬금 중천으로 떠올라 가는 시간, 좋게 말해 예스럽고 나쁘게 말하면 구닥다리 스러운 초인종 소리 직후 발코니 밖 만큼이나 밝은 목소리가 두꺼운 철문을 통렬히 관통하고 들어왔다.

  “…….”

  두어 시간 전에 깨어나긴 했지만 아직 감지 않아 부스스한 머리로 인호가 문을 열자 지수는 자기 집에 들어오는 듯 편하게 들어섰다. 복장도 간편한 트레이닝 복. 다만 편안함을 가장한 태도나 옷과는 달리 얼굴에는 약간의 화장기가 감돌았고 머리도 깔끔하게 빗은 어깨 높이의 단발머리 그대로였다. 그 노력은 정작 보여주고자 했던 인호는 의식하지도 못하는 서글픈 성격의 노력이었지만.

  “뭐… 딱히 무슨 기대를 한 건 아니야…….”

  조금 풀죽은 얼굴로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얼핏 들은 인호가 소리 없는 시선으로 의문을 표했지만 지수는 비어있는 왼 손을 맥없이 젓고는 부엌으로 향하며 소리쳤다.

  “청아야~ 오늘은 카레 만드는 거 가르쳐 줄게. 언니가 이래봬도 열여덟 살 때부터 시작해서 자취가 오 년 차다?”

  청아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첨병의 뒤를 따라가는 본대처럼 지수의 안전 확보가 있은 뒤에야 그림자처럼 들어왔다. 물론 본대와 첨병 운운은 그렇게 보인다는 뜻일 뿐, 청아가 그 반짝이는 색 머리카락 안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본인만이 알 일이었다.

 

  작게 썬 당근과 양파를 프라이팬에 볶고 있던 지수가 옆에서 삶은 돼지고기를 자르고 있는 청아의 손놀림을 깐깐한 교관의 눈으로 노려봤다. 역시 능숙해서 질책할 구석이 없었다. 지금까지에 한정한다면, 청아는 모든 일에 똑같았다. 그 연한 벽안으로 한 번 본 것은 무엇이든 능숙하게 해냈다.

  ‘언젠가 청아의 울상을 보고 말테다.’

  장난이 반쯤 섞인 심술의 불씨를 틔워 올리며 썰어놓은 당근을 냄비에 넣으려던 지수가 불현 듯 뭔가를 떠올리고는 방해 되니까 다른 곳에 가 있으라고 했던 인호와 바로 곁의 청아를 불렀다.

  “인호야, 청아야, 당근 안 싫어해?”

  당근 편식이라니, 조금 유아적인 느낌의 편식이었다.

  “요리 된 당근은 좋아합니다.”

  “…….”

  잘 모르겠지만 괜찮을 것 같다고 눈으로 표현하는 청아였다.

  “좋아.”

  당근과 양파를 몽땅 넣은 지수는 카레 가루까지 털어 넣고는 홀가분한 음색으로 입을 열었다.

  “자,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돼.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말끝을 음흉하게 늘이는 지수의, 마찬가지로 음흉한 시선은 거실 탁자 위에서 조신하게 덮여 있는 노트북으로 향했다. 뭔가를 재고 따지듯 한쪽에 앉은 인호와 노트북 사이를 번갈아 보던 지수가 호랑이처럼 내달렸다.

  “불법적인 영상물이 있는지 검문하겠습니다!”

  고함이라고 해도 좋을 소리를 빽 지르며 섬전처럼 달려들어 전원 버튼을 눌렀지만 예상했던 필사적인 저항이나 ‘영장 없이는 안 됩니다!’ 따위의 비명은 없었다. 근처에 앉은 인호는 잠시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책으로 꽂을 뿐이었다.

  그녀의 왜곡된 상식에 의하면, 발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 무슨 배짱이지? 인호야? 내가 지금 네 비밀을 낱낱이 파헤치려 하고 있는데?”

  “용무가 있으시다면 쓰셔도 좋습니다.”

  책을 읽으며 목소리만 지수를 향하는 대답은 사태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의심스러운 대답이었다.

  “…… 엥? 에엥?”

  상상과 현실의 불일치에 머리위로 무수한 노란색 물음표를 띄운 지수의 얼굴 앞에 부팅이 끝난 화면이 펼쳐졌다. 즉시 파일 검색창을 연 지수가 잘 알려진 영상 파일 확장자를 잽싸게 입력했다.

 

  .avi

  …………

  「지상 최대의 전차전 - 발지 전투.avi」

  「지산 최대의 전차전 - 골란고원 전투.avi」

  ………… 등등.

 

  “말도 안 돼!”

  뭐가 그렇게 말도 안되는지, 거의 비명을 지른 지수가 wmv와 mp4를 지나 심지어 mkv까지 순차적으로 입력했다.

 

  「미 육군 저격수 훈련소.wmv」

  「구출작전.mp4」

  「검색 결과 없음.」

 

  “…….”

  할 말을 잃고 ‘허, 허.’하는 의미가 불명확한 소리를 흘리던 지수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으로 들어가 지난 접속 목록에서 일련의 동영상 기록을 발견했지만 교육방송에서 제공하는 인터넷 강의 두어 개였다.

  그녀의 왜곡된(그러나 놀랍도록 현실에 가까운 방향으로 왜곡된) 상식 속에서 남자 고등학생이 혼자 쓰는 컴퓨터는 이렇게 깨끗할 수가 없었다. 온갖 추잡한 비밀과 음습한 살색의 격렬한 율동으로 가득 찬 것이 남자 고교생의 개인 컴퓨터라는 흉물(凶物), 인세에 달리 없을 마물(魔物)이었다.

  정말로 쓸모없지만, 두뇌를 풀가동해 원인을 찾던 지수가 비로소 정답(이라고 생각되는)에 도달해 납득했다.

  “보고 나서 다 지우는 구나… 이렇게 교활할 수가… 마치 소장 욕구 같은걸 전혀 못 느끼는 사람처럼…….”

  “…….”

  인호의 입장에서는 지수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별로 쓸모가 없는 소리라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대로 한 차례 시계를 확인한 인호는 옷걸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십 오 분 뒤에 저는 훈련 일과 때문에 나가봐야 겠습니다.”

  “응? 십 분 정도면 카레 다 되는데?”

  “두 분이서 드십시오.”

  단조롭지만 단 일 분도 양보할 수 없다는 듯 단호한 태도가 기저에 깔린 목소리였다.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다가도, 인호의 융통성 없음과 성실함을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이해의 여지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맥락에서 차분히 되돌아보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인호였다. 정말 야한 영상물을 보지 않는다고 해도 믿지 못할 건 아니었다.

  새어 나오는 한숨을 구태여 참지 않은 지수가 순발력 있게 하나의 타협안을 설계하고 입질을 시작했다.

  “무슨 훈련인데?”

  “사격입니다.”

  “실내? 실외?”

  “복합입니다.”

  “밖에는 나무도 좀 있고?”

  “예.”

  “가는데 시간은 얼마 정도 걸리는데?”

  “삼십 분 정도.”

  목소리로 하는 탁구처럼 군더더기 없이 쾌속하게 서로를 오가던 대화는 지수의 갑작스런 손뼉과 함께 끝을 맺었다.

  “청아야 도시락 싸자. 소풍 가는 거야. 아, 내 방에서 태블릿 컴퓨터 가져올게.”

  “…….”

  규정에 저촉되는 부분이 없는지 생각해보는 인호의 사고를 지수가 가로막았다.

  “나 DOGS본청까지 가볼 수 있는 고오오오급 요원이야. 보안 권한은 충분할걸.”

 

 

  가차 없이 브레이크를 밟는 소음과 가슴을 압박하는 안전벨트의 압력이 탁하게 풀어져 있던 지수의 눈에 어떤 필사적인 생존 의지의 불을 지폈다. 동물적인 움직임으로 문을 열고 거의 네발로 기듯이 뛰쳐나간 지수는 차와의 거리를 십 미터 정도 확보하고서야 간신히 뒤를 돌아 헥헥거렸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차에서 내리는 인호와, 확연히 나아진 표정으로 어깨를 늘어트리던 청아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됐다.

  “다시는! 다시는 네가 운전하는 차 안 타!”

  분노가 절반, 공포가 절반인 통렬한 선포에 인호는 지극히 타당한 의문으로 대답했다.

  “어떻게 돌아가실 겁니까.”

  주말인데도 지나다니는 차가 없는 이상한 도로였다. 오직 이 훈련장에 대한 접근만을 위해 국도에서 따로 뻗어 나온 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지수는 눈동자를 번뜩이고는 답했다.

  “내가 운전 할게!”

  “…….”

  긍정도 부정도 않은 채 작게 어깨를 으쓱인 인호가 훈련장 입구 방향으로 규칙적인 걸음을 옮기다 순간 멈칫거렸다. 인호의 차와 대비되는 커다란 SUV가 살벌한 철조망에 닿을 듯 가깝게 주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차량은 인호도 아는 사람의 소유였다.

  DOGS대원 중 총기를 주력으로 사용하는 대원은 인호 뿐이라 사실상 인호의 전용이라고 해도 좋을 훈련장이었지만 누구나 작은 변덕 정도는 부릴 수 있었고, SUV의 주인이 그런 경우이리라 추측해도 문제는 없었다.

  그새 감정이 진정됐는지 도시락을 들고 인호의 뒤로 슬금슬금 따라 온 지수가 적지에 침입한 침투요원처럼 작게 속삭였다. 그 내용은 별로 비장하지 않은 걱정이었지만.

  “누가 있나보네? 우리 쫓아내진 않겠지? 아, 그리고 다시 강조하는데, 진짜 내가 운전할거야.”

  “알겠습니다. 그리고 쫓아내진 않을 겁니다. SOG에 호의적인 대원입니다.”

  “우리에게? 호의적?”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사적으로 되물은 지수가 잠시 후 단정한 단발머리를 요염하게 쓸어 넘기며 거만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하하핫, 당연하지. SOG가 없으면 제 아무리 DOGS라도 특이 위협체가 어디 있는 줄 어떻게 알겠어? 자, 들어가자구!”

  SUV의 주인이 했던, ‘지옥에 떨어져도 할 일을 하는 친구들’ 이라는 SOG에 대한 평가를 떠올린 인호가 보무도 당당하게 앞장서는 지수와 그 평가를 비교했다.

  과연 정확한 평가였다. 가끔 이해가 가지 않는 언행을 보이긴 하지만, 지수는 분명 지옥 한 가운데에서 특이 위협체들의 머리에 정확히 총탄을 박아 넣던 여성이었다.

  “지문 인식인가? 아? 홍채 인가?”

  짧은 회상에 빠져 있던 인호의 의식을 현실로 잡아당긴 지수는 사각(死角)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감시 카메라들의 배열을 뒤늦게 발견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지수 역시 잘 아는 모델이었다. 전부 열화상 감시기능에 동작 감지 기능까지 갖춘 카메라들이었다.

  “와… 여긴 사격장 주제에 돈이 얼마나 든 거야? 저 비싼 걸…….”

  그 때 훈련장의 문이 안쪽에서 열리며 백구십 센티미터의 장신에 빈 틈 없이 붙은 근육이 옷 위로도 엿보이는 거구의 사내를 내뱉었다.

  “서류상 주요 국가시설인데 그 다운 보안을 유지하면서 무인화까지 구현 하려니 돈이 꽤 들었겠지.”

  굵직한 목소리로 신랄하게 말하며 걸어 나온 그가 인호를 알아보고는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DOGS 콜 싸인 고스트 컴퍼니(유령 중대) 김한철.

  폭발하는 듯한 증오로 공포를 짓밟으며 한 무리의 굶주린 짐승처럼 위협개체를 쫓고, 쏘고, 찌르고, 베어서 한 무더기의 육편으로 만들고 마는,

  아흔 아홉 명 유령 병사들의 유일한 지휘관.

  입이 조금 험하긴 하지만 성격 자체가 나쁘진 않은 듯한 그가 왜 특이 위협체 앞에만 서면 짐승이 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현재 작전 수행 가능한 DOGS대원 중에는, 다른 한 명과 함께 유이(有二)한 티어1 요원임은 분명했다.

  “가끔 올 때 마다 항상 보고 가는군. 인천에서의 일도 들었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예.”

  짧게 대답하는 인호를 쳐다보는 한철의 눈은 어리지만 성실한 조카를 보는 것 같은 대견함을 띄고 있었다. 실상 한철의 나이가 서른 하나에 인호의 나이가 열 여덟이니 삼촌 조카 정도의 나이 차이이기도 했다.

  인호가 몇 살 정도 더 어렸었다면 머리라도 쓰다듬어 줬을 법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가 화들짝 놀란 표정의 지수와, 지수가 검 집에 매달아준 멜빵을 어깨에 걸고 있는 청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쪽의 분들은…….”

  “아, 저는…….”

  “아니, 맞출 수 있을 것 같네. SOG겠지?”

  커다랗고 굳은 살 박힌 손을 들며 정확히 맞추자 지수는 자신의 목에 SOG출입증이라도 걸려 있는지 고개를 숙였지만, 있을 리가 없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는 사람이면서 우리 DOGS요원이 아니라면 남는 건 SOG뿐이지. 하지만 이쪽의 손님은 SOG의 요원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리고 어딘가…….”

  지수가 급히 대답했다.

  “아, 제가 SOG 요원 자격으로 보호하고 있는… 요인(VIP)예요.”

  “일 주일 전 인천의?”

  “네.”

  “그래. 그렇구만.”

  단정한 인형 같은 얼굴의 청아를, 실례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 쳐다보던 한철이 문득 지수의 손에서 달랑거리고 있는 도시락을 발견 하고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니 공원으로 쓰려고 해도 못 쓸 이유가 없을 곳이군. 큰 돈 들여 지었으니 써먹어야지.”

  뜨끔한 표정을 지으며 도시락을 엉덩이 뒤로 숨기는 지수를 지나쳐 인호에게 다가온 한철이 인호의 어깨를 툭 치고는 그에게만 겨우 들릴 만 한 목소리에 웃음을 섞어 말했다.

  “SOG에 굉장한 여성 편력가가 숨어 있었구만.”

  “……?”

  단어 자체의 사전적인 뜻은 인호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를 칭하는 건지, 왜 그런 얘기를 하는지 추측하는데 실패한 인호가 뒤를 돌아봤지만 한철은 자신의 SUV에 몸을 실으며 일동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있었다.

  “모쪼록 유익한 시간 보내게.”

  곧장 시동이 걸린 차량은 지체 없이 한산한 도로를 타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딘가 위압적인데 친절한 사람이었다.”

  공허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지수의 감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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