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한 집에서부터 학교까지 가는 길은 낯설었다. 사람이 미어터질 것 같았던 버스도 이제 타지 않아도 됐다.
“이 길 맞아요?”
“네 맞습니다.”
아침에 학교 갈 준비를 할 때 창밖을 보니 학교가 보였었다. 그리고 혼 아저씨가 어제 학교까지의 길을 다 조사해 놨다는 말을 했었다. 그래서 조금 더 느긋하게 준비 했었다. 그런데...
“아까 봤던 길인데?”
“아닙니다. 기분 탓입니다.”
“어?”
“왜 그러시죠?”
“우리 아파트가 내 방 쪽이 아닌 반대쪽으로 보이는데요?”
“네 잘 가고 있습니다.”
“아니 아까 내방에서 학교가 보였는데? 지금 반대로 가고 있잖아요!”
“아... 그럴 리가.”
혼 아저씨는 지독한 길치였다. 길치인 천사가 있는 줄 누가 알았을까?
“아저씨 학교까지 얼마나 걸렸어요?”
“음... 한 시간 정도 걸었던 것 같았습니다.”
“네? 한 시간 거리로는 안 보였는데?”
이건 너무 이상했다.
내 방에서 봤을 때 오래 걸려도 10분 정도의 거리였다. ‘신기루인가?’ 그리고 한 시간 걸리는 거리면 버스를 타고 다니기 충분했다. “버스를 타지 않아도 됩니다. 천천히 준비 하시죠”라고 말한 아저씨는 뭐지?
“학생 저기 있는 학교 교복을 입었는데 왜 이쪽으로 오고 있어?”
“네?”
“그 교복 학교는 반대로 가야해.”
갑자기 어떤 노인이 말을 걸어왔다. 커다란 리어카를 끌고 있는 후줄근한 노인은 내게 웃으며 말했다.
“하... 아! 감사합니다!”
난 그리고 지금까지 오던 반대로 무작정 뛰어갔다.
“아 진짜. 제대로 된 천사나 악마는 없는 거예요?”
“그 노인의 말을 믿는 겁니까? 지금 완전 잘못 가고 있습니다.”
아파트에 도착하고 내 방에서 봤던 학교 위치를 생각하며 그쪽으로 뛰었다.
“하... 오늘 지각이시군요.”
그리고 아파트 앞 골목을 돌자 바로 학교가 보였다.
“아저씨? 저게 뭐로 보이시죠?”
“아니 어떻게?”
“앞으로 아저씨 길 안내는 하지 말아주시죠?”
“그럴 리가 없는데.”
다행히 지각하지는 않았다. 터질 것 같은 심장도 멈추지 않았다.
“하... 나 이대로 죽으면 아저씨 때문이에요. 하늘로 올라가서 다 고발 할 거야. 민원 넣을 거라고요!”
“지선양? 하늘에는 그런 시스템이 없답니다.”
“아오! 진짜”
학교에 들어오니 등교하는 학생이 많아 일단 화를 참기로 했다. 나는 말을 못하는데 옆에서 계속 떠들고 있으니 미칠 것 같았다.
“가만 보면 윤 아저씨보다. 이 아저씨가 말이 더 많은 것 같아.”
“네?”
주변을 인식해 작게 말했는데 아저씨는 들렸나 보다.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와 반에 가까워질수록 반에 들어가서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고민됐다. 오랜만인 데다가 방금까지 다른 세계에 있다가 온 듯해서 학교가 어색해진 걸까?
“왜 안 들어가고 그러고 계십니까?”
“아니... 오랜만이라 어색해서.”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니 아저씨가 물었고, 나는 들어가기 위해 문고리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문을 열면서도 여러 생각이 가득했다. ‘밝게 웃을까? 차갑게 무표정으로 들어갈까? 그냥 울어버릴까?’ 그리고 문이 열렸고 교실 안 아이들 모두와 눈이 마주쳤다.
그 아이들은 다시 각자 할 일로 돌아갔다.
생각보다 반응이 없어 약간 무안해졌지만 오히려 다행이었다.
여기저기서 물어올 말들에 대해 준비된 말도 없었고, 또 말도 못하고 어버버 했을 것이 분명했다. 난 내 자리로 가서 앉았다.
“지선아!”
교실 문 밖에서 혜영이가 나를 부르며 다가왔다.
“응 혜영아.”
“괜찮아? 못가서 미안해 집에서 참견이 너무 심해서. 너 왔다는 소리 듣고 바로 왔어.”
“응?”
“아... 학교에 너희 얘기 많이 해.”
“너희라니?”
내 물음에 혜영은 약간 우물쭈물 했다.
“너랑... 소희”
“아...”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이름이 나왔다.
내 얼굴이 어두워지자. 혜영은 잠시 말을 안 했다.
“아! 나 어제 너 봤는데?”
“어디서?”
“저기 저 앞거리에서!”
내 얼굴이 어두워지자 혜영이 주제를 바꾸려 노력하는 것이 보였다. 아마 어제 아저씨들이랑 장을 보러갈 때 우리를 본 것 같았다.
어제 일을 생각하니 내 입에서 약간의 미소가 나왔다.
“그래서. 그 사람들 누구야?”
내 미소를 본 혜영이 주제를 잘 바꿨다고 생각한 듯 기쁜 듯이 이 주제를 이어가려 했다.
“그 사람들?”
“어제 그 세 명 키 크고 잘생겼던데.”
“아~ 나 도와주고 있는 아저씨들이야. 한 명은 저번에 봤잖아?”
그 날 아저씨가 거지꼴을 하고 있을 때 차에서 나에게 말을 걸었던 아이가 혜영이었다. 거지꼴이 그 중 한명이라는 소리를 듣고 당황했는지 혜영의 표정이 약간 오묘해졌다.
“헐... 그 거... 아니 그 아저씨? 엄청 잘생겼었구나.”
“그 중 누구라고 말은 안했었는데?”
“아니 거기 다 잘생겼었거든 한명도 예외 없이. 특히 그 안경 쓴 사람! 완전 내 스타일!”
“아~”
난 혼 아저씨를 슬쩍 봤다.
우리 넷 중 안경 쓴 사람은 혼 아저씨뿐이었으니 혜영이 말하는 사람은 이 아저씨 일 것이다.
혼 아저씨가 흐뭇해하는 게 보였다.
“그래? 그 아저씨가?”
“어떤 점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는지 물어봐주시죠.”
옆에서 듣고 있던 혼 아저씨가 물었다.
“어떤 점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어?”
“응? 뭔가 신비로운 분위기? 무심한 듯 보이고 세상은 다 자기 아래 있다는 그 자신감 넘치는 모습?”
“아... 그건 진짜 무심하고 세상을 다 무시하는게 맞는데?”
“크흠... 지선양?”
무심결에 나온 진심에 혼 아저씨가 헛기침을 하며 나를 막았다.
“진짜? 그런 싸가지 없는 사람이었어?”
“싸...싸가지?”
“아니 장난이야! 완전 좋은 사람 돈도 많아!”
혼 아저씨가 혜영의 말이 약간 움찔한 듯 보였다. 난 빠르게 중재를 했다.
“돈 많은 건 뭐. 상관없어! 지긋지긋해 돈이라면...”
“왜?”
“우리 집 돈 많은 건 알고 있지?”
“응. 유명하잖아 너희 집!”
“근데 어찌나 그렇게 욕심이 많은지 우리 엄마 아빠는 지금도 돈돈 해!”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더니 이 말이 딱 맞았다. 그때 수업을 알리는 종이 쳤다.
“종쳤다. 이따가 점심 같이 먹자!”
혜영은 서둘러 자신의 교실로 돌아갔다.
나도 수업을 준비해야 했다. 그러나 물어볼 것이 있는 듯 옆에서 계속 알짱거리는 혼 아저씨가 거슬렸다.
“아! 왜 그러시는데요!”
아무도 없는 곳을 보고 혼자 말하자. 주위가 나에게 집중 했다.
“아저씨... 때문이잖아요.”
난 다시 목소리를 줄여 아저씨만 들리게 말했다.
“아니 뭐. 제가 소리 지르라고 한 것도 아니고, 했다고 해도 제 말은 안 들으시잖아요?”
“그래서. 왜 그러시는데요?”
혼자 중얼중얼 거리는 나를 보고 이번엔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말하는 걸 그만하고 노트에 끄적이기로 했다.
“저 혜영이라는 아이 어떤 아이입니까?”
‘왜요? 관심 있어요?’
“아뇨 저는 천사입니다. 그냥 지선양 주변 인간의 성향을 알고 싶을 뿐.”
‘천사는 뭐 그런 거 없어요?’
“어떤 걸 말 하는 거죠?”
‘그러니까 누굴 좋아한다거나 그런 거?’
“당연하죠. 저희는 그런 맘을 키운 적이 없습니다.”
‘그렇구나. 그럼 순 아저씨도?’
“순씨도 일단은 천사이니. 설마... 지선양?”
‘아니에요! 그런 거 설마 그런 거지꼴 아저씨를!’
왠지 모르는 묘한 기분에 혼 아저씨와 대화하는 걸 그만두고 수업을 듣기로 했다. 이 기분이 실망인지 허탈함인지 나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