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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반전을 사랑한 남자
작가 : 샤뚜르
작품등록일 : 2017.7.5

강지원, 29살의 젊은 사장은 얼음 왕자라는 별명으로 직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직원들도 피해가는 그에게, 회사의 햇병아리가 어느 날 찾아와 태클을 건다. 그는 그녀가 만만했었다. 이세희, 24살의 인턴 사원. 상상 속 50대 사장과는 다른 조각미남이 나의 상사라니! 사랑 때문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 남자와 귀엽지만 반전 있는 그녀의 좌충우돌 연애 이야기.

 
제 50 화. 당분간은 우리 집에 있어
작성일 : 17-07-18 16:25     조회 : 44     추천 : 0     분량 : 7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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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전을 사랑한 남자

 

 

 

 

 

 제 50 화. 당분간은 우리 집에 있어

 

 

 

 세희와 지원이 사는 동네가 가까워졌을 즈음.

 

 지원은 신호 대기를 받는 동안 조수석에 앉아있는 세희의 여린 손에 깍지를 꼈다. 가느다란 손가락과 굵은 손가락이 서로 얽혀들었다.

 

 그가 세희를 돌아보았다. 어둠 속에 가려진 그의 눈은 그 깊이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가라앉아 있었다. 병원을 나와서도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에 좀처럼 얼굴을 필 줄 몰랐다.

 

 “좀 어때?”

 

 세희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거듭 물어오는 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마주잡은 단단한 손을 따뜻하게 그러쥐었다. 처음부터 불안했던 높이의 굽이었다. 게다가 자주 신지 않는 구두였던 탓에 발 상태도 좋지 않았고. 그러니 그가 이렇게까지 미안해 할 필요는 없다.

 

 “괜찮아요. 그러니까 너무 미안해하지 마요.”

 

 하지만 한 편으로는 좋았다. 이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그가 자신을 걱정해주며 살뜰히 챙기는 모습을 보니 사랑 받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녀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퍼졌다.

 

 

 

 

 아프니까 괜스레 어리광도 피우고 싶고, 자주 나오지 않던 애교도 쉽게 나왔다. 세희는 신호가 바뀌자 차를 출발 시키는 지원의 팔에 안기듯 매달렸다.

 

 “......”

 

 “아, 그래도 아프니까 좋다. 사장님이 걱정도 해주고.”

 

 팔에 보드라운 볼을 비비며 배시시 웃는 세희의 행동에 지원은 한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었다.

 

 세희의 행동에 무슨 바람이 분 탓인지. 지원의 차는 목적지로 향하고 있지 않았다.

 

 

 

 지원은 자신의 오피스텔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그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있던 세희는, 낯선 광경에 상체를 바로하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여기는 우리 집이 아닌데...

 

 “사장님, 잘못 오신 것 같은데...”

 

 “맞아.”

 

 그가 왜 이곳으로 왔는지 몰라 눈만 깜빡거리고 있던 세희의 위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지원이 세희를 배려해 차 안에 히터를 틀어놓았던 터라, 그녀의 하얀 코트는 뒷좌석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덕분에 여실히 드러난 부드러운 살결과 하얀 피부가 주차장의 하얀 조명과 어울려 지원의 눈을 끌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참 간사하다. 병원에 다녀올 때까지만 해도 세희의 고통에 어쩔 줄 몰라, 병원에 가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잡념마저 떨쳐버릴 수 있었는데.

 

 제 팔에 와락 안겨오는 그녀의 애교스러운 행동에 피식 웃으면서도 뜨거운 피를 가진 심장은 미친 듯이 펌프질을 해댔다. 보닛 위에서의 장면이 머릿속에 겹쳐지면서 그의 감각을 되살렸다.

 

 “?”

 

 

 

 그는 천천히 상체를 숙이며 세희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조심스러운 손길과는 달리 잡아먹을 것 같은 눈빛으로 그녀를 오롯이 제 눈에 가득 담았다.

 

 그러고서는 크고 맑은 눈에 비친 제 모습을 가득 담으며, 석류처럼 붉고 도톰한 입술에 제 입술을 겹쳤다. 집요하게 아랫입술을 괴롭히던 그는 고개를 틀며 그녀를 구석으로 몰아붙였다. 세희의 입에서 달짝지근한 향이 흘러나오는 듯했다.

 

 깍지 낀 두 손은 여전히 서로를 단단히 붙든 채 그들을 더욱 가깝게 만들었다.

 

 왜 매번 탐하면 탐할수록 달콤했다. 그는 점점 농밀해져 갔다. 세희는 봐주지 않고 밀려오는 그의 움직임에 시야가 아찔해졌다. 눈을 질끈 감았다.

 

 시야를 차단하니 느껴지는 것은 생생하게 살아나는 감각뿐이라. 그녀의 모든 신경이 한 쪽으로 쏠렸다. 얼굴 역시 붉게 달아올랐다.

 

 한참 뒤 그의 거친 숨결과 그녀의 참아왔던 숨이 얽혀들었다.

 

 

 

 그녀를 태울 듯이 바라보던 지원은.

 

 "오늘 정말 예뻤어."

 

 거친 숨을 내쉬며 아쉬운듯, 입술에 앙증맞은 도장을 남기고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이성을 배신한 심장을 따라가느냐, 소중한 그녀를 위해 제 한 몸 희생하느냐의 갈림길에서 그는 세희를 택했다.

 

 이 늑대는 언제 욕망에 눈을 뜨려나.

 

 

 

 조수석으로 넘어온 지원은 문을 열고 뒷좌석에 놔둔 코트를 세희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그러고서는 아까 그와 나누었던 입맞춤의 열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탓에 얼굴을 붉히고 있는 세희를 번쩍 안아들었다.

 

 제 목에 팔을 감으며 매달려 있는 세희의 얼굴은 보기 좋게 익어있었다. 그녀는 그와 키스를 나눈 후 매번 저런 얼굴로 그의 가슴을 간지럽게 한다. 사랑스러워 죽겠다. 큭큭. 아직도 그게 부끄러운가? 그녀에게 입을 짧게 맞춘 지원은 엘리베이터로 걸음을 옮기며 무심하게 말했다.

 

 “당분간은 우리 집에 있어.”

 

 사람들이 볼까, 불안하게 이리저리 흔들리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세희는 덤덤한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ㅇ.. 왜요?”

 

 그녀가 아무리 남자를 모른다지만, 눈치까지 없지는 않았다. 타이밍이 딱 그 타이밍이다.

 

 격렬한 키스를 나눈 두 남녀가 자연스레 숙소로 올라간다. 그럼 당연히 그 다음은?

 

 꼴깍.

 

 분위기에 홀딱 취한 세희는 혼자서 음흉한 상상(?)을 하기 바빴다. 홍조가 피어올라 달아올랐던 그녀의 뺨은 다른 이유로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끄러움에 눈도 못 마주치는 세희의 이상한 기대는 지원의 말 한 마디에, 혼자서 앙큼한 짓을 한 격이 되어버렸다.

 

 “집에 들어가서 혼자 씻다가 미끄러운 타일 위에서 넘어지면 더 크게 다치잖아. 내가 옆에서 너 씻는 모습 못 보면 안심이 안 될 것 같아.”

 

 “그럼 저희 집에 오셔서 씻는 거 잠깐 봐주시면 되잖아요.”

 

 지원은 순진한 얼굴로 물어오는 세희를 바라보며 딱 잘라 말했다.

 

 “안 돼. 나보고 매일 번거롭게 그러라고?"

 

 

 

 지원은 세희를 안고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는 지원의 집이 가까워질 때까지 세희를 품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세희의 발이 지면과 닿는 경우를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

 

 한동안 세희는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기댄 채, 말이 없었다.

 

 지원은 올라가는 층을 쳐다보며 툭 던지듯 말했다. 수없이 많은 참을 인(忍) 자를 되새기고 있는 그는 속으로 뜨거운 한숨을 삼켜야만 했다. 그런 그의 속마음과는 반대로,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하기만 했다.

 

 “세희야.”

 

 “...네?”

 

 “내가 너, 정말 많이 사랑해.”

 

 지원의 마음과는 달리, 앙큼한 상상을 하기 바빴던 세희는 그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지원의 시선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부끄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 그녀의 속내는 꿈에도 모른채, 정말 사랑하는 여자를 끝까지 아껴주고 싶은 그는 그녀의 가슴을 울려왔다. 그녀를 향한 애정이 물씬 풍겨나는 담백한 첫 말은 부드러웠다.

 

 “그래서, 아끼고 아껴줄 거야. 대신. ...너, 결혼하면 안 봐준다.”

 

 하지만, 그도 남자였기 때문에 본능 앞에서는 정말 많은 인내를 감내해야 했다. 덕분에 마지막 말은 으르렁거리듯, 맹수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지원이 씨익 웃으며 세희를 향한 시선을 가늘게 좁혔다. 그와 눈도 못 마주치는 세희가 귀여웠다.

 

 문득, 그녀를 놀려주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먹이를 향해 으르렁거리던 남자는 어디 가고, 장난기 많은 아이 같은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봤다. 그가 짓궂은 물음을 그녀에게 던졌다.

 

 “왜? 혼자서 무슨 상상을 한 거야?”

 

 뜨끔. 비스듬한 얼굴로 내려다보는 시선에 세희는 움직일 수 없었다. 저 눈빛. 마치 제 속마음을 다 꿰뚫고 있는 것 같다.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찔리는 마음에 혼자 얼굴을 붉히며 설레발을 치는 그녀였다.

 

 남들에게는 야릇한 순간이 될 수 있는 이 상황에서도 짓궂게 웃으며 장난을 걸어오는 그의 반짝거리는 눈빛은 세희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 남자가 너무 사랑스럽다.

 

 자신을 위해 배려해주는 모습이.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에 가득 담겨 있는 따뜻한 사랑이.

 

 현재에 충실한 사랑도 좋지만, 그를 더 사랑하고 싶다.

 

 뭉클한 감동이 벅차오르는 마음과는 달리, 그녀는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퉁명스러운 그녀의 물음에 지원의 웃음이 진해졌다.

 

 “ㅁ.. 뭘요?! 무슨 상상을 했다고...”

 

 “아니면 아닌 거지 왜 얼굴을 붉혀?”

 

 “아니거든요?!”

 

 “큭큭. 알았어. 환자는 환자답게 있어야지. 발 다 나을 때까지는 내가 볼 수 있는 공간 내에서 움직이도록 해. 기대해. 내가 부족하지 않게 옆에서 보살펴줄거니까.”

 

 “그럼, 어디 한 번 볼까요?”

 

 까르르 웃으며 지원의 자신감 넘치는 말투에 도도하게. 장난으로 맞받아 친 그녀였다.

 

 

 

 지원의 품에 안긴 채로 가볍게 뽀뽀도 하고 장난을 치며 집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그가 자신을 내려놓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 남자, 힘도 안 드는지 그녀의 눈빛은 사뿐히 무시하고 성큼성큼. 욕실로 직행한다.

 

 “내.. 내려줘요!”

 

 “안 돼. 씻어야지. 기대하라니까?”

 

 품 안에서 내려달라 사정하며 파닥거리는 그녀의 여린 힘은 소용없었다. 지원은 욕조 안에 세희를 내려놓은 채, 그대로 수도꼭지를 활짝 열었다.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이 적절히 섞여 들어차 오르고 있었다.

 

 그에 따라, 천천히 그녀의 몸이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사장님, 안 나가세요?”

 

 

 

 지원은 정말 끝까지 세희가 씻는 모습을 다 볼 생각인지, 욕실에서 나갈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는 그저 제 할 일을 다하기 위해 욕조에 물이 다 차기만을 기다릴 뿐.

 

 저 남자가 진심인가 싶은 세희의 마음만 바싹바싹 타 들어가기 시작했다. 세희의 눈이 지원과 점점 젖어들기 시작하는 제 몸을 번갈아보며 이리저리 흔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물이 가득 들어찰 것이다. 그를 빨리 쫒아내야 했다.

 

 꽥하고 다급하게 소리를 지르는 세희의 목소리에,

 

 “나가세요! 씻다가 못 움직이겠으면 사장님 부를게요.”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며 기다리던 지원은 움찔하며 그제야 그녀를 돌아보았다.

 

 

 

 점점 차오르기 시작하는 물 때문에 그녀의 몸에 착 달라붙은 드레스가 아찔한 곡선을 만들어내 그를 잡아끈다.

 

 꼴깍. 그 모습에 절로 향하는 남자의 시선은 어쩔 수 없는 지라. 지원은 뜨거운 한숨을 후우 내쉬며 한 손을 들어 마른세수를 했다. 세희의 반응이 워낙 강해서 자리를 피해줘야 할 듯 싶다.

 

 “알았어. 힘들면 꼭 불러. 따뜻한 차 끓여 놓을게.”

 

 달칵-

 

 

 

 지원은 욕실에서 나와 레온을 한 번 안아준 뒤, 부엌으로 향했다. 그가 막 전자레인지에 주전자 물을 올리려는 찰나, 문자가 왔다는 알림이 울렸다.

 

 멈칫.

 

 "?"

 

 웬만해서는 주말에 문자가 오는 일이 없었다. 가끔 도진이 주말에 술을 먹자고 그를 불러내는 일을 제외하면.

 

 하지만, 도진은 오늘 그가 파티에 참석하는 걸로 알고 있기 때문에 연락을 걸어올 확률이 없지. 게다가 그는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러 간다고 그랬다.

 

 왠지, 불길하다.

 

 그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소파 위에 벗어던져둔 재킷의 주머니 안쪽에서 휴대폰을 찾아내 꺼내들었다.

 

 [나와 약속했던 석 달이라는 시간이 끝났음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생각하지 못했던 여러 일정이 발목을 잡는 바람에 약속한 시간을 조금 넘기게 되었지만, 약속 날짜가 잡혔단다. 수요일 저녁 7시, M 호텔에서 식사 약속 잡아뒀다. 다녀오도록 해라.]

 

 강 회장이었다.

 

 “......”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기다리던 강 회장의 연락이 왔음에도 그는 좀처럼 얼굴을 필 수 없었다. 이 일을 잘 해결해야지만 세희를 지킬 수 있고, 강 회장의 고질적인 욕심도 더 이상 뿌리를 뻗어나가는 일이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강 회장과 정면으로 의견을 대립하여 제 뜻을 이룰 수 없을까봐 걱정도 되었다. 평생을 회사만 바라보고, 회사를 키우는 것에 큰 의의를 두고 살아온 이의 고집을 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여태껏 강 회장의 말에 순종하기만 했던 이가 처음으로 세상을 향한 걸음을 제 의지로 걷는 일은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답답함에 바람이라도 쐬고 올 겸, 그는 욕실에 있는 세희를 뒤로 하고 오피스텔 건물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 갔다 오기로 했다. 그 일은 흘러가는 바람에 잠시라도 날려버리고, 그녀와 함께 있는 이 순간에 집중하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세희가 쓸 수 있는 것들이 없었다.

 

 

 “휴...”

 

 세희는 지원이 나간 후에야 따뜻한 물에 온 몸을 맡기며 피로를 풀 수 있었다. 그녀는 욕조에 물을 받을 동안 옷을 벗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러고 보니 갈아입을 속옷이며 입을 옷이며. 챙겨온 게 없는데 어떡하나.

 

 지금 이 상황에서 뾰족한 수가 없어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었다. 집에 들려서 속옷이라도 가져올 걸 그랬나?

 

 이미 담군 거, 굳은 몸부터 풀고 봐야지. 세희는 거추장스러운 드레스를 벗고 화장을 지운 뒤 욕조에 몸을 담갔다.

 

 구두를 신은 다음에는 따뜻한 물로 족(足)욕을 하는 게 발 건강에 좋다더니. 붉게 부은 발 역시 따뜻한 온기에 스르륵 풀리는 느낌이었다.

 

 

 

 목욕을 마친 세희는 욕조 캐비닛에 비치되어 있는 커다란 타월로 젖은 몸을 감싸고,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말아 올린 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욕실에서 나왔다.

 

 그녀가 나옴과 동시에, 우연의 일치인지 현관문이 달칵 열리더니 지원이 검은 비닐 봉지를 들고 들어왔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

 

 이런 차림으로 그를 마주하기가 뻘쭘하여 입만 뻥끗거리는 세희였다.

 

 그런 그녀가 감기에 걸릴까 걱정된 지원은 현관에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욕실 앞에 섰다.

 

 “아... 저, 속옷이랑 입을 옷이 없......”

 

 동그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는 맑은 눈빛. 그녀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제 안에서 요동치던 파도가 잔잔하게 가라앉는다.

 

 그는 몸을 가득 지배하고 있던 긴장이 한순간에 빠져나감을 느끼며, 초점 없던 눈이 향하는 대로 그렇게. 세희의 옷차림을 훑었다.

 

 "......"

 

 정말이지, 지금은 그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뽀얗게 드러난 피부 위에 채 닦이지 않은 물방울들이 방울방울 맺혀 그의 시선을 끌었다.

 

 한 방울.

 

 두 방울.

 

 또르르.

 

 또르르.

 

 

 

 언제까지 그렇게 참을 수 있을까.

 

 그를 농락이라도 하려는 듯, 앙큼한 물방울들은 보란 듯이 그녀의 하얀 피부 위를 뛰놀고 있었다.

 

 숨이 턱하고 막혀왔다. 이 여자가 날 말려 죽이려고 작정했나 보다.

 

 그는 뜨거운 날숨을 내뱉으며 세희를 번쩍 들어 제 방으로 밀어 넣었다.

 

 '!!!!!!'

 

 뻗은 손에 느껴지는 것은 실크처럼 매끄럽고 부드럽기만 한 살결이라 그는 당황스럽기만 했다. 손을 어디가 둬야 할 지 모르겠다. 그의 얼굴이 화르륵. 붉게 달아올랐다.

 

 

 

 쾅!

 

 “속옷은 그 안에 거 꺼내 입고, 옷은 여자 옷이 없어서 내 티셔츠 꺼내뒀어.”

 

 낮게 울리는 경고 같은 목소리를 뒤로 하고 문이 닫혔다.

 

 그가 던져 주고 나간 검은 비닐봉지와 함께 그의 방에 홀로 남겨진 세희였다.

 

 

 

 세희를 방문 뒤로 감춘 지원은 밖에 서서 스르륵. 문에 기대 밑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를 두고 도망치다 시피했다. 참아왔던 숨이 한 번에 밀려나왔다. 아직도 그의 얼굴은 붉기만 했다.

 

 커다란 타월로 몸을 가리고자 했지만 그게 다 가려질 리가 있나. 지원은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본능적으로 그녀의 몸을 훑어 내리고 말았다. 가려져 있어도 그 속을 다 꿰뚫어 볼 수 있는 투시 능력이 있나 보다.

 

 그 안에 가려진 모습이 저도 모르게 상상이 되어 피가 뜨거워졌다.

 

 길고 매끈하게 잘 빠진 다리가 그의 시선을 먼저 끌었고, 그 선을 따라 올라가던 시선은 천천히. 아찔한 모든 것을 눈에 담아냈다. 시원하게 드러난 목선이며, 가슴골이며. 세희의 모습 어느 것 하나 그를 자극하지 못한 것이 없었다.

 

 

 그는 다시 한 번 마른 세수를 하며 수차례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주 길고 긴 밤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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