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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하트여왕의 황금시계
작가 : 주결아
작품등록일 : 2017.7.18

그 누가 보아도 우아하고 늠름하며 공정한 하얀여왕. 그녀에게 살해당한 붉은 머리의 하트여왕. 죽음의 순간, 시간에 경계에 떨어진 하트여왕에게 작은 회중시계가 말을 걸어왔다. 마치 운명처럼. "너의 운명을 바꿀 수 있게 내가 도와줄게. 대신, 잃어버린 내 본체를 찾게 도와줘." "좋아. 하지만 왜 본체가 원더랜드에 있을 거라 생각해?" "원더(wonder)랜드 잖아. 아무도 올 수 없는 이 시간의 경계에 네가 나타난 것 처럼, 놀라운 일이 생길 것 같으니까." 죽음을 넘어 다시 돌아온 하트여왕과 황금시계의 운명은?

 
하트여왕의 황금시계 03
작성일 : 17-07-18 10:40     조회 : 247     추천 : 0     분량 : 7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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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윽."

 눈을 뜨자 온몸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팠다. 높은 산 위에서 마차를 타고 굴러떨어진 듯한 고통이었다. 머리 한 쪽이 뜨겁고 욱신거렸으며, 어느 한 곳이라도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공주님! 정신이 드세요? 어서 폐하께 공주님이 깨어나셨다고 알려 드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

 울렁거리는 시야 너머로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차가운 물수건으로 이마를 닦아주는 여자가 보였다. 주근깨가 가득한 얼굴이지만 단정하고 짙은 갈색 눈썹과, 차분하게 정돈되어 두건 아래로 가려진 머리칼이 그녀의 단정한 성격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4살 때부터 날 키우다 시피한 시녀장의 딸 루이나였다.

 "공주님 정말 걱정 많이 했어요. 이러다…… 이러다 영영 깨어나지 못하실 까봐……."

 루이나가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소매로 훔치며 울먹였다.

 "루. 어떻게 된 거야?"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고 노력했지만, 끙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푹신한 베개 위로 머리가 떨어졌다.

 "제발 누워계세요!"

 루이나는 거의 비명을 지르듯이 말했다. 그녀는 포근한 이불을 목 끝까지 올려주면서도 행여나 이불의 무게에 내가 죽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는지 목 주변의 이불에 틈을 주려 노력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 루. 지금은 언제지? 난 왜 이러고 있는 거야."

 내 말에 루이나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대답했다. 그녀의 대답을 다 듣기도 전에 그녀가 카펫도 깔려있지 않은 맨바닥으로 기절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다신, 다시는 제발 비 오는 날 말을 타지 마세요. 애스콧의 목을 베어버린다는 폐하를 알리시아 공주님이 겨우 말리셨어요."

 알리시아의 이름이 나오자, 나는 나도 모르게 움찔 어깨를 떨었다. 그러자 루이나는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의사는 왜 이리 늦냐며 문 밖에 대기 중인 시녀에게 호통을 쳤다.

 "루이나, 제발 진정해. 깨어났으니 되었잖니."

 "제가 어떻게 진정을 하겠어요! 일주일이예요 공주님! 일주일동안 시름시름 앓기만 하셨다고요!"

 루이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눈물을 터트리며 내 옆구리에 얼굴을 파묻었다. 차분하기만 한 줄 알았던 루이나의 의외의 모습에 "그래. 일주일이면 참 길었구나. 내가 잘못했어."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울음을 터트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지금이 어느 때인가를 가늠하기 시작했다.

 살면서 말에서 떨어진 일은 단 한 번뿐이었다. 18살 생일을 맞이하기 열흘 전. 비가 오는 날이었지만 에릭의 마스터 승급 시험이 있던 중요한 날이었다. 꼭 보러 가겠노라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었다. 이번엔 에릭의 승급 시험 후 사실은 내가 원더랜드의 제2왕녀라고 말하려던 참이었지만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이번에도 내 생일에 그를 만나겠구나. 그 때처럼 실망스러운 얼굴을 하겠지.'

 거짓말쟁이 공주를 보는 듯한 표정. 에릭이 나를 왕궁의 기사로서 만날 때 지었던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다시 봐야만 하는 건 조금 서글펐지만, 정말로 크로노스는 나를 다시 살려주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숨을 크게 들이키자, 벅참과 슬픔 설렘…… 알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한꺼번에 폐부로 가득 들어찼다.

 '그땐 그저 가벼운 타박상이었는데. 이게 크로노스가 말한 후유증인가?'

 "아! 크로노스!"

 이제야 그의 부재를 깨닫다니!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치자 덩달아 루이나도 그 자리에서 펄쩍 뛰며 기함했다.

 "아야야야."

 "공주님!"

 루이나가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버둥거리는 나를 부축해주었다.

 "아직 일어나시는 건 무리예요. 이번엔 폐하께서 애스콧 대신 제 목을 자르신다고 하실지도 몰라요."

 "그럴 리가 없잖니."

 "그럴 리가 없지 않느냐."

 크로노스의 행방을 묻기 전, 울상을 지으며 말하는 루이나를 달래려 성의 없는 대답이 불쑥 튀어나오는데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그토록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멋대로 구불거리는 붉은 머리를 거칠게 쓸어올려 왕관을 쓴 나의 아버지, 아서 골드가 열린 문으로 걸어들어왔다.

 "아빠."

 나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이며 여덟 살 이후로는 불러본 적 없는 호칭으로 그를 불렀다.

 "오, 로즈. 사랑스러운 내 딸. 그건 반칙이란다."

 그의 미간에 깊게 패어있던 주름이 순식간에 펴졌다. 이글이글 타오르던 금색 눈도 언제 그랬냐는 듯 부드럽게 바뀌었다. 창가에 있는 의자를 손수 끌어다 앉은 아버지가 커다랗고 투박한 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뜨리며 웃었다.

 "네 어머니의 간절한 청대로 그 이름을 물려준 걸 후회할 뻔했다. 그 이름을 주어 너마저 내게서 떠나는 줄만 알았어."

 호탕하게 웃으며 말하고 있지만 주름이 가득한 그의 눈가는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마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펑펑 눈물을 흘리셨던 것 같다.

 "죄송해요."

 고개를 푹 숙이며 아버지의 커다란 손을 잡았다. 커다랗고 투박한 손 위에 얹어진 작은 손이 마치 날 더 어린아이처럼 만드는 것 같았다.

 "아니다. 깨어났으니 됐다. 메리언이 널 지켜준 모양이야."

 "그럼요. 어머니가 절 지켜주셨어요. 그런데 애꿎은 애스콧의 목을 자른다고 하셨다면서요?"

 "하하하. 결국 안 잘랐잖니. 알리시아가 말리지 않았더라면 네게 한참을 미움받을 뻔했구나."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언니의 이름은 부드럽고 사랑을 가득 담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아니, 실제로 그러했다. 언니는 왕가의 상징인 붉은 머리, 금색 눈 그 어떤 것도 물려받지 못했지만 아버지의 강한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었다.

 '결국 알리시아는 몰랐겠지만.'

 "참. 자 받거라. 말에서 떨어지면서도 꼭 쥐고 있었더구나. 그런데 뚜껑이 열리지 않아 수리를 맡겼다만…… 글쎄 시계 장인의 말이, 뚜껑을 일부러 붙여놓은 물건이라고 고칠 수 없다하질 않니."

 '크로노스!'

 아버지가 내민 노랗고 작은 시계를 보자 반가움에 비명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여기저기 움푹 파여 초라해진 시계를 받아들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딸의 모습에 아버지는 "그리도 좋으냐"라며 자상하게 손등을 토닥여주었다.

 "고마워요. 아버지! 잃어버린 줄만 알았어요!"

 몸을 일으킬 수 없어 그의 손등에 쪽 하고 입을 맞추자, 그는 커다란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고 이마에 툭! 내려앉듯 입을 맞추었다. 그러고는 헝클어진 머리칼을 정성스레 정리해주고는 문 밖에 대기하고 있던 의사와 따뜻한 수프, 그리고 말린 장미잎을 가득 넣은 커다란 나무 욕조를 들여왔다.

 "더 있고 싶지만 정무가 많이 밀렸구나. 약도 먹고 수프도 남김없이 먹으렴. 내일 다시 오마. 참, 당분간 애스콧은 외출 금지란다."

 그는 내 등을 받치고 있는 베개를 다시 한 번 정돈해 주고는 잔뜩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문을 나섰다.

 "아빠. 다시 만나서 기뻐요."

 그의 등을 바라보고 있자니, 묻혔던 그리움이 울컥울컥 차오르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조그맣게 속삭이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한 채 문 앞에 대기 중이던 압솔렘과 서쪽 땅의 잇따른 흉작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가 복도 너머로 점점 작아지는 게 아쉬워 눈을 감고 호탕하면서도 거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공주님. 오늘은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향유 마사지만 받으시고 주무세요."

 "루이나, 마치 오늘 향유 마사지가 처음인 것처럼 말하는구나……. 벌써 머리카락에 말린 장미를 갈아 넣은 특제 머드 팩도 했고, 손톱도 다듬었잖니. 참! 네가 들고 온 초록색 팩도 있었지. 이미 무리한 것 같은데 마사지는 내일 아침에 하자."

 "하지만 마사지는 해 질 무렵에 받는 게 효과가 가장 좋다고 하셨잖아요."

 "오늘만 봐주렴, 루. 머리가 욱신거려서 그래."

 며칠 남지 않은 내 생일 파티에서 날 가장 돋보이게 하려는 루이나의 노력은 감사했으나, 어서 크로노스와 해야 할 이야기가 있었기에 한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어머! 공주님.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아냐. 홍차를 한잔 준비해 주겠어? 그것만 마시고 바로 잘게."

 "네, 그럴게요."

 루이나는 화려하게 세공된 찻잔에 뜨거운 물을 붓고, 투명한 유리 주전자 안에 찻잎을 떨구었다. 투명했던 주전자가 금세 붉게 물들어갔다. 그녀는 손목에 찬 작은 시계로 시간을 재고는 찻잔의 물을 버리고 붉게 우러난 차를 채워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공주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걸로 우렸어요."

 "고마워, 루. 오늘 피곤했을 텐데 물러가도 좋아."

 "네."

 루이나는 소리도 내지 않고 물을 담았던 주전자를 정리하고는 조용히 물러갔다.

 호록. 입술을 적시며 들어오는 홍차의 향이 온몸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체인을 연결해 목에 걸고 있던 회중시계를 꺼내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크로노스."

 찻잔을 다시 들어 올리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달각. 하는 부드러운 소리가 들리며 회중시계의 뚜껑이 스르르 열렸다.

 [왜 이렇게 늦게 불렀어! 심심해 죽는 줄 알았다고. 어떤 인간은 날 망치로 두드리며 날 부수려고 했어!]

 크로노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투덜거렸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반가움이 가득했다.

 "어쩔 수 없었어. 난 돌아오자마자 일주일을 시체처럼 누워만 있었으니까."

 후루룩- 다시 차를 입에 머금었다.

 [어라? 근데 너 말이 짧아졌어.]

 "그래서 싫어?"

 [아니! 난 이게 더 좋아! 재밌잖아!]

 뭐가 재미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동등한 계약자의 관계를 요구했고, 그가 받아들였으니 일방적인 존대를 할 생각은 없었기에 잘 된 일이라며 나도 빙긋 웃어 보였다.

 "후유증은 생각보다 엄청나더라. 온몸이 아파서 고생했어."

 [어디 없어진 건 없고?]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전에 내가 시간 가지고 장난을 쳤다고 했잖아. 그때 엄청난 변화에 다들 하나씩 잃어버리더라고.]

 엄청나게 불길한 말이었다.

 "……예를 들면?"

 [음……. 팔이나 다리나…… 가끔은 머리를 잃어버린 인간도 있었고. 운이 좋으면 아무것도 안 잃어버리거나 손가락 정도로 끝나던데?]

 "……."

 그런 건 미리 말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던 걸까. 순간 화가 부글부글 끓어 쥐고 있던 찻잔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아뜨뜨!]

 출렁이던 찻물이 넘쳐 흘렀는지 크로노스는 호들갑을 떨며 조심 좀 하라고 날 타박했다. 그를 만난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는 밤이었다.

 

 다음 날, 침대에서 내려오는 몸이 찌뿌둥했다. 차가 식고 목이 아파질 때까지 크로노스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탓이었다.

 침대 옆 작은 협탁에 올려져 있는 회중시계를 들어 올렸다. 처음보다 조금 작아졌고, 아무것도 없던 뚜껑엔 장미 덩굴 모양의 양각이 동그란 모양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 안에는 구불거리는 머리칼을 한 소녀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고, 소녀의 머리 위에는 작은 왕관이 올려져 있었다. 소녀의 머리 위에 있는 작은 리본에는 'HEART'라고 새겨져 있었는데, 그 섬세함에 작게 감탄했다.

 "대단해."

 공주의 신분으로 가지고 다니기에 크로노스의 모습이 너무도 투박하여 세공을 해도 되는지를 묻자, 크로노스는 펄쩍 뛰며 기함하며 자신이 스스로 바꿔보겠노라 선언했었다.

 -[뭐? 싫어! 아플 것 같단 말야.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내가 해볼게!]

 내가 이야기해주었던 '하트 여왕' 즉, 나의 삶을 토대로 열심히 구상한 모양이었다. 사실 크로노스의 예술적 감각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시계 옆면에 살짝 튀어나온 부분을 누르자 시계 뚜껑이 스르륵 열렸다. 태엽만이 가득했던 처음의 모습과는 다르게정교하게 세공된 숫자판과, 아름다운 화살 모양의 시곗바늘이 있었다.

 "와, 아름다워라."

 [크흠! 더 칭찬해도 좋아!]

 나의 솔직한 감탄에 숨죽이며 기다리던 크로노스가 밝은 목소리도 말했다.

 "참, 어제 얘기하지 못했는데, 사람들이 있는 곳에선 대답을 하지 못할 거야."

 [알아. 내 목소리는 계약자에게만 들리니까. 좀 외롭겠지만, 세상 구경은 늘 신나니까!]

 그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해해줘서 고마워."

 나는 시계 뚜껑을 닫으며 살짝 미소 지어 보였다. 크로노스의 눈이 어느 부분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가 작은 목소리로 [히히]하고 웃는 것을 보니, 미소 짓는 모습을 보았으리라 생각했다.

 침대에서 내려오자 일주일간 걷지 않아 힘이 빠진 다리가 살짝 휘청거렸다. 발가락에 힘을 주며 몇 걸음 걷자 원래의 걸음걸이로 돌아왔다. 물론 갓 태어난 아기사슴의 다리처럼 후들거리긴 했지만.

 "자, 어떡할까."

 후들거리는 다리를 살짝 벌려 똑바로 선 후, 크로노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뭘?]

 협탁위의 시계는 어슴푸레한 새벽의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제 네가 그랬잖아. 새로운 현재를 사는 거라고."

 -[넌 과거로 돌아와 과거를 살고 있는 게 아니야! 새로운 현재를 살고 있는 거라고! 운명을 바꾸고 네가 원하는 결말을 볼 거 아니었어? 그럼 새롭게 살아!]

 그가 내가 해준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과거로 돌아왔으니, 나는 일전의 삶의 궤적에서 많이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여기는 과거의 잔상이 아니었다. 나의 새로운 삶, 새로운 현재였다.

 "오늘은 원래 머리카락을 갈색으로 물들이고 에릭을 찾아간 날이야."

 나는 품에서 둘둘 말린 두루마리를 펼치며 말했다. 본디 기억력이 좋았던 터라, 어느 날 누구와 만나고 무엇을 했는지 대부분 상세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많은 날들이 궁을 빠져나가 숲이나 마을에 갔다고 쓰여있었지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리고 틈틈이 내 본체 찾기도 힘써줘!]

 아, 그래. 이 부분이 문제였다. 크로노스는 본체에 대한 대부분의 기억이 없는 상태라 생김새나 성별, 나이대도 모르고 있었다. 아는 거라곤 단 하나. '자연계의 법칙을 벗어난 자'라는 것뿐이었다.

 [아마 과거의 기억이 남아있을 수도 있어. 아니, 본체 입장에선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이지만.]

 "흠. 넌 어쨌든 내 주변의 사람일 거라 생각하고 있지?"

 [응? 어, 어째서?]

 "생각해 봤는데…… 새롭게 살라는 거. 맞는 말이지. 하지만 네 본체가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알고 있고, 내 주변의 사람이라면 자신의 기억과 다르게 흘러가는 '현재'를 이상하게 생각할 거 아냐. 그렇다면 그 중심에 있는 날 찾아올 거라고 생각한 거 아니야?"

 […….]

 꽤나 날카로운 지적이었는지, 크로노스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 맞아. 지금의 내 지능에서 최선의 방법은 그거야. 하지만 네가 새로운 삶을 살았으면 한 건 거짓이 아니야!]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조금은 풀이 죽은 목소리였다.

 "알아. 하지만 난 이다음의 일도 예측할 수 있어야 해. 그래서 난 약간의 변화만 줄 생각이야. 정말 네 본체가 내 주위에 있다면 알아챌 수 있는 정도의 변화니 걱정 마. 네 본체를 찾는 일, 나도 최선을 다할 거야."

 내가 열심히 본체를 찾는 일에 뛰어들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는지, 크로노스는 한참을 훌쩍이며 고맙다는 말만 계속하였다. 어쩌면 그는 지금 이 순간까지 날 믿지 못했던 건 아닐까. 그저 너무 외로워서 경계 밖으로만 나갈 수 있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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