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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싸우는 개와 과거의 소녀
작가 : Nine
작품등록일 : 2017.7.8

미신, 전설, 설화, 민담, 소설.
형체 없이 떠돌던 것들이 허구의 장막을 헤치고 인류 앞에 형상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점을 정확히 짚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인류의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던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은 분명했다. 과거였다면 ‘취객이나 광인의 횡설수설’ 정도로 여겨지고 소리 없이 사라지거나 잠깐 떠돌다 사라졌을 사건들이 명확한 증거와 함께 각국 국가기관에 제출되었다.
인류는 ‘점잖게’ 양립할 수 없는 존재들과 너무나도 오래, 거의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어왔고 그러면서도 그 사실을 억지로 외면해 왔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하지만 인류가 공포를 공포로, 경악을 경악으로 영원히 남겨두는 존재였다면 현재에 이르지 못했으리라.
잘 알려져 있지만 공포스러운 소설적 산물로 여겨지던 흡혈귀 정도에서, 기괴하게 비틀린 종교적 광신의 초현실적인 결과물, 생물학적으로 인간이지만 초인적인 능력을 갖추고 그 힘을 파괴와 혼란 조장에 사용하는 인간 등, 정확히 추산할 수 조차 없는 숫자와 종류의 위협요소들, 과거의 기준으로는 초현실적이지만 실제로 존재하고, 인간에게 위협적이기까지 한 수많은 것들이 ‘특이 위협체’라는 이름으로 통칭됐다. 그리고 인류는 이 새로 떠오른 위협에 질병, 스스로의 무지, 실패한 정치 및 경제체제 등과 같은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 방식이란, ‘해당 위협의 존재 말살 위한 노력의 경주’였다.

 
챕터2. 시크릿 서비스(5)
작성일 : 17-07-18 02:54     조회 : 265     추천 : 0     분량 : 7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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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순식간에 한글을 깨우친 청아와 잠들어 있는 지수를 옆집으로 돌려보내고, 매트리스가 얇은 침대 위에 누운 인호는 한참동안 천장을 바라보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금요일이었다. 예상치 못한 지수의 방문으로 본래의 일과 하나를 놓쳐버렸지만 나름대로 소득은 있었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막상 하고 나면 항상 잔류하는 고통 탓에 쉽게 잠들지는 못했지만.

  약간의 떨림이 담긴 길다란 한숨과 함께, 이미 감긴 눈과 머릿속에서 푸른 불꽃이 치솟았다.

 

  [채널링 시스템 가동]

  [가동 코드 MP4-15-7]

  [프로토콜 - 전술 회랑(Corridor of tactics)]

  [요청 수락 - 접속 개시]

 

  감긴 눈 안에서 현실의 시간을 무색하게 만들며 하얗게 점멸하던 시야가 이내 뚜렷해 졌다.

  “…….”

  변함없이 하얀 세계, 완벽하지 않은 현실감, 의자에 앉아 있는 구릿빛 피부, 루비색 눈동자, 금발 트윈 테일의 소녀.

  다만 하나의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수백 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 도 열린 적 없던 거대한 철문이 열려 있었다. 십여 년 전 단 한 번, 그나마도 손가락이 겨우 들어갈 만큼만 열렸던 문이 당연하다는 듯 열려있다는 데서 오는 놀라움이 가시기도 전.

  “안녕! 기다렸어!”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린 소녀가 전에 없이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삐친 머리카락 한 가닥 없는 얌전한 트윈 테일이 활기차게 찰랑거렸다.

  “기다려?”

  인호의 건조한 대답에 입술을 쌜쭉이 내민 소녀가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저었다.

  “여기, 사실 무진장 심심하니까. 찾아오는 사람도 너밖에 없다구? 말한 적 없지만, 조금 감사하고 있었어. 권한이 D급이었을 때야 느긋하게 이런 말 할 시간 없었고, 너도 두통 때문에 제정신 아니었잖아? 지금까지 내가 본 네 표정은… 내색은 안했지만 솔직히 무섭기만 했다고? 하는 말은 문을 열어 달라, 어떻게 하면 열리느냐 그런 것만 물어보구… 하지만 지금은 어때? 꽤 견딜 만 하지?”

  그러고 보니… 라고 할 만 한 감각으로 통증은 이전에 비해 확연히 덜했다. 빈말로도 편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심하면 사흘 동안 머리를 짓누르던 고통에 비하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신경을 긁어대는 경고음성도 들리지 않았다.

  “어째서……?”

  “어째서냐니? 당연히 네 접속권한을 상향했기 때문이지.”

  당연한 걸 묻는다는 투의 목소리에 인호의 미간이 소녀가 간신히 알아볼 만큼 찌푸려졌다. 그 속에 담긴 감정의 크기와는 별개로.

  “그렇게 쉽게 올리고 내릴 수 있는 거였나?” 짧고 낮게 묻는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다. 평소의 목소리는 건조할 지언정 날카롭지는 않았으므로.

  소녀는 그 감정을 읽었는지 황급히 두 손을 내저었다.

  “아, 아냐. 나도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어. 나는 말하자면… 방아쇠를 당기는 역할이야. 네가 장전을 해놓지 않는다면 내가 방아쇠를 아무리 당겨도 총알은 발사되지 않아.”

  화자인 소녀의 귀여운 외모와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비유였지만 인호에게는 쉽게 와닿는 설명이었다.

  “내가 무슨 장전을 했다는거지?”

  “저번에 만났을 때 짧게나마 얘기 했던 것 같은데? 이 경우 장전은 ‘기적’을 접하는 거였어.”

  “…… 확실히 그 지하실에서 살아서 나온 건 기적적인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선후가 뒤바뀌었는데.”

  소녀는 포오 한숨을 내뱉으며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어번 두드리더니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는 기적이 아니야. 말하자면 ‘신비(神祕)’다른 말로는 불가사의(不可思議)야. 네가 접했던 그 검이 기적의 산물이었다고.”

  “…….”

  조선시대의 검이 수백년의 세월을 무시하고 날카로움과 견고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설명이 충분치 않다고 느끼던 인호의 생각이 문득 청아에게로 향했다.

  “우선 알겠다. 하지만 그렇다면 청아… 아니, 그 검과 함께 나타난 여자 아이는?”

  인호의 질문에 다시 한 번 한숨을 내 쉰 소녀가 질문을 받았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뭐,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면 어쩔 수 없긴 했겠지만……. 설명하자면 조금 길어지는데.”

  뺨에 턱을 괴고 허공을 쳐다보던 소녀가 화제를 바꾸려는 듯 지척까지 다가와 커다랗고 붉은 눈을 깜빡였다.

  “그건 천천히 설명하기로 하고, 그나저나 그렇게 어렵게 얻은 권한인데 왜 저 문 안에 있는 것들은 안 썼어? 쓸 일이 없었어?”

  “쓴다고?”

  “아? 몰랐어? 하긴… 이것도 알려줄 수 있는 건 나 뿐 이니까. 나.뿐.이.니.까.”

  ‘득의만면’이나 ‘기고만장’같은 말이 떠오르는 얼굴로 작은 갈색 어깨를 으쓱 으쓱거린 소녀는 당당하게 뒤돌아서 척척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따라와. 보여줄게.”

  소녀를 따라 그다지 멀지 않은 문을 지나자 한 눈에 다 담을 수 없는 일종의― 무기고가 펼쳐졌다. 아니, 무기고라는 단어는 지나치게 협소했다. 천장도, 벽도 보이지 않는 그 공간은 어떤 단일한 단어로 설명될 수 없었다. 수백 수천 종의 검, 그만큼의 도끼, 또한 그만큼의 창, 또한 셀 수 없을 만큼의 다양한 무기들.

  따로 조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놀랄 만큼 선명하고, 놀랄 만큼 현실적이었다.

  인간의 정신을 압도하는, 감상에 따라선 장엄하다고도 할 수 있을 광경.

  새어 나오는 듯한 인호의 목소리에 금빛 머리카락이 세게 찰랑거리도록 뒤돌아서 그를 마주본 소녀는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인류가 살상을 가정하고 제작한 것들의 총합. 지금도 계속 팽창하고 있는 인류의 살상창고. 그게 이곳이야. 이전의 D급 권한으로는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된 ‘정보’와 그 정보에 대한 신속한 처리 능력, 연산된 행동의 육체적 수행에 필요한 만큼의 신체 능력에 접근할 수 있을 뿐이었겠지만 C급으로는 그걸 넘어서서 무기의 제작에 사용된 ‘사상’을 너희 세계에서 물질화 시킬 수 있어.”

  “…….”

  소녀는 작게 벌려진 입술 틈으로 공허한 호흡만을 취하고 있는 인호는 아랑곳 하지 않고 설명을 이었다.

  “물론 완전히 전부는 아냐. 뭐가 어쨌든 C급 권한으로도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니까. 가장 많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가장 작고, 복잡도도 낮은 물건들뿐이지. 네 세계에서 이곳의 도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연산 능력이 필요하고, 뇌에 가해지는 부담도 커지니까.”

  그 다운 침착함으로 충격을 일단 잠재운 인호는 소녀의 설명을 귀담아 들으며 ‘허공’에 ‘거치’된 러시아제 저격 소총을 살펴보고 있었다.

  VSSK.

  러시아 연방 보안국(FSB)의 요구로 생산된, 다른 공산품보다 수명이 긴 총기라는 카테고리에 한정한다면 최신형이라고 해도 좋을 대구경 소음 저격총 이었다. 특유의 거대한 소음기와 끝까지 채워진 다섯 발 들이 탄창, 매끄럽게 작동하는 스트레이트 풀 작동방식을 확인한 인호가 총기를 놓자 VSSK는 자석에 끌려가듯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속에 담긴 감정을 읽기 힘든 한숨을 내쉰 인호가 아직도 뿌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소녀를 돌아봤다. 느리지만 분명하게, 두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름은?”

  “에? 이름? 내 이름?”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다는 듯 화들짝 놀란 얼굴로 루비색 눈을 깜빡인 소녀가 작게 끄덕이는 인호를 확인하고는 시선을 이리저리 불안하게 흔들어 대다가 불현듯 화를 냈다.

  “바보! 자기 이름을 밝히지도 않고 숙녀에게 이름을 묻는 거야?”

  어느 모로 보나 숙녀라기엔 작은 소녀는 얇은 허리에 양 손을 얹은 채 진심으로 언짢은 듯 뺨을 부풀렸다.

  “영인호.”

  인호가 간결하게 말했다.

  “로레인. 로레인이라고 불러줘.”

  사심 없이, 그저 흘러나오는 미소를 참지 않았을 뿐인 인호에게 여전히 볼멘소리로 답한 로레인이 잠시 후,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기뻐. 처음으로 이름을 물어봐 줘서.”

  거기까지 말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손끝을 꼼지락 꼼지락. 잠시 뜸을 들이던 로레인이 작게 덧붙였다.

  “어떻게 할까나… 오빠라고 불러줄까……?”

  로레인이 인호보다 어린지, 그 이전에 전술 회랑의 시간이 의미가 있긴 한지조차 불분명 했다.

  “편할 대로.”

  무신경하게 대답하는 인호의 귓가에 사무적인 어조의 경고음이 울렸다.

  [안전 한계 대비 칠십 퍼센트 과열 확인. 사용자 보호를 위해 잔여 접속시간을 백 이십 초로 제한합니다]

  헐거워 진 듯 했지만 결코 빠져나갈 수는 없는 그물이었다. 천천히 들어 올린 왼손으로 이마를 짚은 인호가 쭉 마음에 걸려 있던 질문을 다시 건넸다.

  “청아… 아니, 청강검이라고 쓰인 검을 쥐고 나타난 그 아이는 어떻게 된 거지?”

  눈을 또르르 굴리며 무슨 이유에선지 뜸을 들이던 로레인은 대답을 주는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신경 쓰여?”

  “어떤 의미의 질문인지 명확히 모르겠지만 일종의…….”

  잔잔하던 물결에서 서서히 파도의 형상을 갖춰오는 고통의 한가운데였건만, 침착하고 신중하게 생각하던 인호는 덧붙였다.

  “책임감을 느낀다. 정황상 내 탓이라고밖에 볼 수 없으니까.”

  되새겨보면 불과 수십 분 전에 했던, 한글을 가르치는 등의 행동은 필요 이상의 친절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 지하실에, 양과 개와 늑대의 잔혹한 각축장에 청아를 떨어트린 것은 인호 그 자신이었다.

  책임.

  충분히 타당했다.

  ‘흐음~’하는 콧소리를 길게 뿜은 로레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재차 물었다.

  “그게 전부야?”

  잠시 생각하던 인호는,

  “……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고 대답했다.

  “하아.”

  귀여운 한숨을 내쉰 로레인은 누가 있을 리 없는 주변을, ‘슉슉’소리가 나면 어울릴 것 같은 모습으로 살피다가 까치발을 들어 인호의 귀에 대고 뭔가를 속삭였다.

  “사실은…….”

  “!”

  통증을 내비치고 있던 인호의 동공이 귓속으로 스며드는 목소리와 함께 커다랗게 확장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전술회랑과의 접속은 단절됐다.

 

 

 * * *

 

 

 “어후… 죽겠다. 이놈의 행정에는 융통성이 없어… 오른손잡이가 오른손이 나갔는데 무슨 서류 작업을 하란거야.”

  밤도 낮도 없는 행정의 지옥에서 툴툴거리며 깁스중인 오른손 대신 왼손 독수리 타법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청년은. 특수전 사령부, 줄여서 특전사라 불리는 한국 육군 최정예 부대의 중사 출신이며 현직은 SOG의 현장 요원인 하태웅이었다.

  정정.

  SOG행정 지원부서 2과 임시 서류 보조 파견인원, 하태웅이었다.

  “끄으으으―.”

  인질과 테러리스트를 선별해서 사격할 때나 발휘했을 법한 초유의 집중력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글자 열 개 중 하나는 오타가 나는 지지부진한 작업 와중, 또 하나 발생한 오타를 지우는 그의 뒷통수를 익숙한 목소리가 긁었다.

  “서류 하고 있으니까 기분이 어때? 막 부들부들 떨리고 그래?”

  “음?”

  태웅이 뒤돌아본 자리에 서있는 이는 SOG 동기이자 사석에서도 가끔 만나는 친구인 김진수였다. 종이컵에 담긴 커피 두 잔을 양손에 나눠들고 있던 그는 김이 피어오르는 컵을 키보드 옆에 놓고는 책상 위에 걸터앉았다.

  “어휴 아주 고생이 많아. 그래도 할만 하지? 현장에 비하면.”

  “놀리지 마라…….”

  현장의 프로페셔널인 하태웅이라도 장소가 따듯한 사무실이고 상대가 동기 동료라면 그 나이 또래의 청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너무 어린 나이에 가면을 쓰고, 그것을 벗는 방법을 잊어버린 인호가 특이한 케이스였다.

  “놀리는 거 아닌데. 겨우 일주일 전에 진짜로 죽을 뻔 한 놈이 벌써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은거냐?”

  뜨거운 커피를 한모금 홀짝인 진수의 지적에 태웅은 대답이 퍼뜩 떠오르지 않는 듯 괜스레 이마를 쓸어 넘겼다.

  “너처럼 행정보는 친구들 고생을 폄하할 생각은 없는데, 난 그냥 내 자리는 현장인 것 같다. 석고 깁스 책상에 두들겨서 깨버리고 도망가고싶어.”

  “허허…….”

  “죽을 뻔 했다고 하지만 그런 일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살아 있으니까.”

  “못말릴 놈일세.”

  헛헛한 목소리를 흘리는 동료에게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손가락을 마찰시켜 소리 낸 태웅이 종이컵을 들며 물었다.

  “그래서, 내가 죽을 뻔 했던 그 인천 사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데? ‘눈에 보이는 위협개체 죄다 도륙 냈으니 사건 종료!’ 이런 건 우리 스타일 아니잖아?”

  “아 그거 말야? 그게… 인근 CCTV녹화 자료 죄다 뽑아다가 ‘지나치게 자주 보이는 놈’, ‘거동이 수상한 놈’, ‘거기 있을 이유가 딱히 없는데 왠지 있는 놈’ 등등에다가 몇 가지 플러스 해서 여든 네 명쯤 되는데- 그 모든 놈들에게 감시가 붙었어. 거의 걸레쪼가리가 다 돼서도 꿈틀거리는 위협개체들은 연구소로 가져갔고. 그 특이 위협체들 말인데, 직접 본 놈 말로는 폐사한 돼지고기 일 톤 쯤 되는 줄 알았다더라. 과장이 좀 있겠지만.”

  쓸데없는 마지막 말을 빼면, 평소 경박한 인상을 풍기는 인물 치고는 꽤나 유창하게 늘어놓는 동료에게 어깨를 으쓱여 보인 태웅이 커피에 입김을 불고는 말을 받았다.

  “소모적이구만.”

  “조사 방법 말이야? 우리야 있는 게 인력이니까. 위협개체처럼 제각각에 뚱딴지같은 것들을 소위 ‘스마트’한 방법만 갖고는 상대가 잘 안 되잖아?”

  간단히 동의하고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자판기 커피의 단맛과 온기를 느끼며 천장을 올려다 본 태웅이 지나가는 듯한 어조로 물었다.

  “거기서 구조된 여자애는 별 거 모른대?”

  “여자애? 무지 예쁘고 좀 큰 여자애 말이냐, 아니면 그냥 작은 여자애 말이냐?”

  “무지하게 추잡스런 구별법 쓰네, 이 자식.”

  태웅의 조금 날 선 지적을 대충 넘기자는 듯 진수는 손을 내저었다.

  “아 그래서 어느 쪽.”

  “둘 다.”

  “그냥 작은 여자애는 시장에서 엄마를 잃어버리고 나서 엄마 찾아 골목을 헤매다가 왜인지 모르겠는데 무섭게 느껴지는 아저씨를 만났고, 그 이후 기억이 없대. 구조 될 때 탈수 증상 있었고, 눈 떠보니 병원이었단다.”

  “몽타주 같은 거 작성 안 돼?”

  “별로 의미 없대. 신뢰할만한 수준이 아니라더라 잘 기억은 못해도 충격이 좀 있었나봐. 최면치료 해주고 있다는데, 그래도 불쌍하지.”

  마지막 말에 배어있는 약간의 진심을 느끼며 태웅은 수염이 까끌까끌한 턱을 쓰다듬으며 마저 물었다.

  “다른 쪽은?”

  “무지 예쁘고 좀 큰 여자애는… 인천에 너랑 같이 갔던 윤지수씨, 그 사람이 붙었는데 여자애는 말을 전혀 못하는데다가 사건 당시 뿐 만 아니라 그 이전 기억도 아예, 아무것도 못한대. 단순한 기억상실증이 아니고 학술 명칭이… 다른 뭐였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듯 말끝을 흐리던 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태웅을 향해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은… 걔 외모에 혹해서 접근 해보려고 했는데 지수씨한테 막혔어. 진짜 권총 뽑을 기세더라. 현장요원은 무서워, 무서워 아이 무서워. 으앙 무셔어.”

  눈을 꼬옥 감고 양 주먹을 어깨 높이에서 오들오들 떨어대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던 태웅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 녀석의 말에 의하면 조금 과격한 듯 했지만 어쨌든 지수는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일단은 그 대견함을 눌러 두고. 눈앞의 경박한 놈에게 반성을 시켜야 했다.

  “욱, 커피가 역류한다. 네 셔츠에 뿜는다.”

  “으!”

  급히 두어 걸음 물러서는 진수를 비웃어준 태웅이 멀리 도망가 있던 주제를 잠시 잡아와 앉혔다.

  “그래서, 거동 수상자들한테 붙였다는 감시는 언제까지 계속 한대?”

  “유동적. ‘인천에서 진짜 그냥 끝장 난거였네.’할 때 까지지. 아니면 다른 큰 일이 또 터져서 인원 빼야 될 때 까지거나.”

  “…….”

  입술의 양 끝을 아래로 끌어내린 얼굴로 몇 차례 고개를 주억거린 태웅이 불현 듯 내뱉었다.

  “지금 한가하냐?”

  “이제 집에 가보려고. 벌써 밤 열 시다.”

  ‘흠’하는 표정으로 잠시 눈을 감고 있던 태웅이 부탁을 할 때 생길 법한 비굴한 기색이라고는 한 점도 없이 말했다.

  “가지 말고 이것 좀 도와줘.”

  “허?”

  지상에서 가장 뻔뻔한 날강도를 본 표정으로 상체를 뒤로 뺀 진수에게 아직 별로 설득력이 없는 말이 더 따라 붙었다.

  “두 손 멀쩡한 놈이면 한 시간 안에 끝난다. 너는 밥 먹고 하는 게 이거니까 삼십 분 안에 끝난다.”

  “그래서 뭐?”

  여전히 퉁명스러운 반응에 태웅은 멀쩡한 왼 손으로 핸드폰을 집었다.

  “업무상 요인에게 접근하는 비열하고 추잡한 놈아, 난 네 여자 친구가 누군지 안다. 이 땅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내가 오늘 모든 것을 폭로하겠다.”

  “도와 드려얍죠, 선생님. 저의 기쁨입니다.”

  신속한 태세변환이 진수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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