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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내가 나를 죽였다
작가 : 휘닛
작품등록일 : 2017.7.9

 
7.호사
작성일 : 17-07-17 23:13     조회 : 366     추천 : 0     분량 : 3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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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머리를 다 자르고 나왔을 때 은아의 인상은 완전히 달라져있었다.

 

  길었던 생머리는 겨우 턱에 닿을 만큼 짧아져있었다.

 

  미용실에서처럼 잘 정돈되지는 않았지만 은아는 우선은 자신의 겉모습을 확연하게 바꾸었다는 데에 안도했다.

 

  “머리가 이게 뭐냐고... 잘 자르지도 못하면서 아니 젊은 아가씨 머리는 개업하고 처음 잘라본다면서... 돈은 남자들 보다 두 배나 달라는 게 어디 있냐고! 나중에 다시 미용실을 가서 다듬던지 해야지... 아 진짜 속상해 이게 뭐야”

 

  은아는 갓길에 주차된 차량의 사이드미러를 통해서 머리를 이리저리 손질했다.

 

  데뷔이래로 꾸준하게 고집하던 생머리가 짧아져 귀 밑으로 어색한 감촉을 주었고 은아의 눈에는 눈물이 핑 맺혔다.

 

  그러나 마냥 후회스럽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후련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제는 아무도 자신을 연예인으로 생각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머리를 자르는 동안 노인에게 어제의 사건에 대하여 물어보았지만 노인은 애초에 자신을 모르고 있었다.

 

  은아는 이 상태로 동네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가로수 길을 천천히 걸어 다녔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특별한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그녀로서는 연예계에 발을 담근 후로 처음 누려보는 생소한 호사였다.

 

  언제나 어디를 가더라도 휴대폰과 카메라를 마구 들이밀며 붐벼대는 탓에 한가하게 돌아다녀본 적이 없었다.

 

  은아는 공원의 벤치에 앉아 느긋하게 주변 풍경을 둘러보았다.

 

  하늘은 새파랗던 과거를 뒤로하고 황금빛으로 찬란한 현재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비록 끝은 어둡더라도 자신의 아름다운 시절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은아는 근처의 가게에서 스피커 빵빵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입으로 흥얼거렸다.

 

  오가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지만 각자가 각자의 일에 집중하며 일말의 관심조차 나눠주지 않았다.

 

  은아는 이런 상황들이 반갑기도 하면서 마음 한편에서는 조금의 섭섭함도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녀는 절대로지지 않을 듯이 강렬하게 자신을 뽐내던 하늘이 빨갛게 부끄러워질 때 까지 만감이 교차하는 스릴을 즐기다 일어섰다.

 

  제법 어둑어둑해진 거리는 이제 가로등과 네온사인 불빛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조금은 쌀쌀해진 밤공기를 마시며 걸어오던 은아의 눈에 아직 개장하지 않아 아무도 찾아올리 없는 건물 앞을 하염없이 서성이는 남자가 들어왔다.

 

  은아는 한눈에 동재임을 알아차리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음흉한 눈빛을 내비췄다.

 

  은아는 다시 선글라스를 끼고 그에게 다가갔다.

 

  “누구신데 제 가게 앞에 서 계시는 거죠?”

 

  “아. 안녕하세요. 여기 카페 주인이신가 봐요. 저는 여기 꼭대기 층에 볼일이 있어서요.”

 

  동재는 공손하게 대답하며 인사를 했다.

 

  그 순간 동재가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동재의 흔들리는 초점을 빤히 바라보며 은아는 얇게 웃었다.

 

  아무리 주위를 가득 메우던 네온사인 불빛들이 자신들을 피해서 지나가고 있다지만 자신이 바로 그를 알아보았듯 그도 자기를 이 거리에서 유일하게 그녀로서 알아보고 있음을 확신했다.

 

  “여기서 뭐하고 있...”

 

  은아는 선글라스를 벗으려고 손을 올리려던 차에 그가 양 어깨를 무겁게 누르는 탓에 몸도 말도 저지당했다.

 

  “네... 너 대체 무슨 일이야?”

 

  동재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물어왔다.

 

  예상치 못한 동재의 정색에 은아는 자신의 머리가 그렇게 못 봐줄 정도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네가 여긴 무슨 일로... 다연아!”

 

  그 순간 은아는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은 충격을 받았다.

 

  은아는 동재의 손이 몸에 닿기 무섭게 정강이를 냅다 걷어 차버렸다.

 

  “아욱”

 

  동재는 짧은 신음을 내며 아파했다.

 

  “지금 누구한테 그년이라는 거야!”

 

  은아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매서운 눈초리로 동재를 노려보았다.

 

  “은아? 네가 은아라고?”

 

  “머리 좀 잘랐거니와 뭐? 다연이? 네가 오늘 아주 죽고 싶어 환장했지!”

 

  은아는 다가가서 이번에는 반대쪽 정강이를 걷어찼다.

 

  “미안해 은아야 그런데 난 정말로 네가 다연이 인줄 알았어. 미안해 내가 착각 했어”

 

  동재의 사과에도 은아는 씩씩대며 몸을 획하니 돌려서 집으로 들어갔다.

 

  동재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는 은아의 뒤통수에다가 소리쳤다.

 

  “은아야! 내가 잘못한건 알겠는데 이것들은 가져가야지”

 

  동재는 머리위로 양손 가득한 짐들을 들어보였다.

 

  무심코 돌아본 은아의 입은 약간 벌어졌다.

 

  “놓고 가!”

 

  은아는 대뜸 소리를 질렀다.

 

  동재는 그 말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 짐을 두고는 돌아섰다.

 

  ‘뭘 저렇게 바리바리 싸왔어... 한 번에 다 못 옮길 것 같은데?’

 

  화가 나서 소리는 쳤지만 막상 짐을 보니 옮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야! 우... 우리 집에 놓고 가라고! 우리 집 보고 싶다고 했었잖아...”

 

  은아는 자기도 모르게 궁색한 집들이 권유를 내뱉었다.

 

  엘리베이터 안은 어색한 기운이 가득 맴돌았다.

 

  “너 혼자서 못 옮길 거 같으니까 그런 거지?”

 

  “아니거든! 네가 앞으로 일주일은 이쪽으로 출근해야하니까 언젠가는 들어올 일이 있을 거라서 미리 보여주는 건데”

 

  “뭐? 나보고 여기까지 출퇴근 하라고?”

 

  “그럼? 그게 네 일이잖아? 스타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건 케어를 해준다. 분명히 그렇게 회사랑 계약한 거 아냐?”

 

  “나 지금 근신중인데... 근신 중에는 모든 업무도 정지고 급여도 안 들어와서 그런 의무 하나도 없거든”

 

  “윽!”

 

  예상외로 동재의 대답은 논리정연해서 은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러면 내... 내가 휴대폰도 없는데 나 같은 톱스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해?”

 

  “이미 네가 죽었는데 그 이상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

 

  “너 지금 비꼬는 거야?”

 

  은아가 날카로운 눈초리로 동재를 향해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았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내려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네가 쉬는 동안은 내가 일을 하지 못하니까... 아니 딱 까놓고 말할게. 나는 지금 돈이 필요해. 그래서 당장에 단기알바라도 구해서 해야 할 실정이야... 미안한데 네 휴가놀이에 동참하는 건 여기까지만 할게. 대신에 언제든지 회사에 복귀할 마음이 들면 그때 다시 연락주면 내가 데리러 올게”

 

  말을 마친 동재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은아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래서. 결론은 돈이잖아? 그 돈 내가 주면 되잖아”

 

  “정말? 네가 줄 거야?”

 

  동재가 반색하며 물었다.

 

  “그래. 대신 지금까지보다 2배는 굴릴 거야. 내 돈 나가는 거니까”

 

  “오케이. 그건 상관없어. 이 이상 힘들어질 수 없으니까. 그보다 나중에 가서 딴말하기 없기다.”

 

  “참나. 겨우 그것 때문에 아까도 바로 돌아섰어? 진짜 정 없다.”

 

  “정 이전에 우리는 프로페셔널한 관계니까”

 

  동재는 이제야 환한 미소를 띠며 씨익 웃었다.

 

  그렇게 웃고 떠드는 사이 엘리베이터는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

 

  “그래서 이건 어디로 옮길까?”

 

  은아는 한발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서 동재에게서 짐을 빼앗으며 말했다.

 

  “이 카드 받고. 오른쪽으로 쭉 가면 마트가 보일 거거든. 가서 술이랑 주전부리 좀 사가지고 와. 참 컵이 없으니까 종이컵 꼭 사오고”

 

  “자 잠깐만 여기까지 왔는데 물이라도 한잔...”

 

  “아 그러네. 물도 없으니까 물도 꼭 사와. 그럼 안녕”

 

  은아는 생글생글 웃으며 닫힘 버튼을 꾹 눌렀다.

 

  닫힌 엘리베이터를 뒤로한 채 은아는 짐을 끌어서 집 현관에다가 던져 놨다.

 

  은아는 그대로 방으로 직행해서 침대위에 자신의 몸을 던졌다.

 

  “흐으음. 새 거 냄새. 오늘 하루 진짜 길다.”

 

  은아는 팔다리를 쭉 펴고 코를 벌름거리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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