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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대국의 빈(嬪): 악의 딸
작가 : 써니벨
작품등록일 : 2017.7.15

도덕심이든 윤리의식이든 단 1g도 없는 야만인의 아가씨, 야낙(여주)의 피말리는 궁중생존기와 위태로운 로맨스 스릴러! 살육과 약탈을 생업으로 삼는 야인족의 영애로서, 가벼운 마음으로 입궁한 대국의 내명부는 그야말로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세계였다. 그러나 얼마못가 궁에서 낙오되어 사라질 것 같았던 야만인 소녀는 정말 강하고 사악했는데?! 아름답고 가련한 '마왕(魔王)'과 그 마왕을 사랑하고 만 '대마왕(大魔王)'의 사극 로맨스 스릴러.(실제 역사와 아무런 상관없는 중세시대 사극물입니다. )

 
15.이 놈이고 저 놈이고....
작성일 : 17-07-17 20:41     조회 : 243     추천 : 0     분량 : 8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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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뒤로부터, 이틀 뒤.

 

 “하사받은 성씨까지 해서 이름은 갈마 야낙.”

 

 최근 심각한 재정문제로 새로 내명부에 입성하는 후궁에 대한 하례식 같은 건 깔끔하게 생략하기로 정한 듯했다.

 

 국왕이 품계를 정하여, 왕후가 봉하기를.

 

 초야가 치러지고 난 다음 날, 몽혜당 앞뜰에서.

 

  조용하고 시시한 분위기 속... 예정대로 부루크에서 온 영애 갈마 씨에게 내명부의 삼부인 중 하나이자 정 5품에 해당하는 ‘미인(美人)’이라는 첩지가 내려졌다. 처소 또한 숙비가 궁주로 있는 연혜궁으로 확정되어 오늘 안으로 영애의 일행이 몽혜당을 떠난다는 얘기가 궁중에서 떠도는 중이었고.

 

 “아니, 아니지 이제는 미인 갈마 씨이로군. 첩지를 받았으니까.”

 

 그것은 은행나무의 정원으로 유명한 금가원을 후원으로 한 ‘동궁(東宮)’에서도 자자했다. 특히 동궁은 몽혜당과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으니, 그 덕에 태자의 사람들은 바삐 움직이는 궁인들의 세세한 움직임까지 모조리 다 파악할 수 있었다.

 

 “첫 승은도 받았고, 초야도 무사히 끝났고. 그 아가씨는 이젠 정녕코 빠져나갈 길이 없게 돼버렸구나. 가엾게도 거미줄에 또 하나의 어리석은 나비가 걸려들었어. 더군다나 연혜궁이라니... 거기엔 배고픈 암거미가 하나 살지 않느냐.”

 

 길 가다 고운 단풍잎 하나를 주어들며 그것을 코끝으로 대보던 태자 홍염이 낮게 혀를 찼다. 지금은 측근과 사적인 용무로 산책하는 중인 모양이었다. 머리까지 풀어헤치고서 활동하기 편한 차림새를 하고 있는 그의 곁으로, 날카로운 눈빛을 한 환관 한 명이 조용히 뒤따르고 있었다. 얼마 전, 진연에 태자를 따라 개를 끌고 나타났던 ‘구완’이라는 자였다.

 

 “역시 전하의 말씀대로, 몽혜당에 관련된 모든 상궁들이 ‘은퇴’를 하였더군요. 그리고 그들 모두가 ‘그 쪽’과 관련된 자들이었습니다.”

 

 “음.”

 

 “폐비 번 씨의 옛 하인들이 어째서 지금까지 제거되지 않고 잔재하나 싶었더니.... 그렇다 해도 그 수발상궁은 온전히 자기 쪽 사람이었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싶습니다.”

  내명부에 극도로 은밀히 벌어진 일이었지만, 열 명이 넘는 상궁들이 갑작스럽게 대거 ‘소멸’되어버렸는데 누가 눈치를 못 챌까 싶었다. 다만, 사건의 배후가 누군 지 다들 잘 알기 때문에 모두가 단지 모른 척 함구할 뿐이다.

 

 “구완, 암거미는 교미가 끝나면 지아비조차 잡아먹는 미물이다. 그에 비하면 연혜궁의 암거미는 대단히 순한 편이지.”

 

 “그렇다 해도, 그녀들도 본인의 최후정돈 예견했겠지요, 대가를 바라고 암거미에게 접근한 그 순간부터 본인들은 결코 오래 살 수 없음을 알았을 테니 말이옵니다. 단풍만 못한 존재들. 아름답게 죽지도 못했고 양분도 되질 못했습니다.”

 

 “.............”

 

 

 주었던 단풍잎이 퍽 마음에 들었는지 소매 속에 고이 넣어두던 그가 후원 너머, 바삐 지나가는 궁인들을 두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지나가는 방향으로 보건대, 저들은 분명 몽혜당 쪽에서 오는 사람들일 것이다. 필시 새로이 미인이 된 아가씨를 모시러 온 거겠지.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되질 않아 그러질 못했어. 그것 참 유감이게 되었구나.”

 

 조용히 웅얼대는 그의 표정이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

 

 “새로운 미인 낭랑을 말씀하시는 건지.”

 

 “그래.”

 

 “물망에 올려놓긴 하셨습니다만, 그 여자는 전하께서 이번에 그냥 신경을 끊기로 한 사람이 아닙니까. 어차피 한 달도 못 넘기고 죽을 테니까요.”

 

 “아니면 쫓겨나게 되든지. 한 달씩이라니 사람을 너무 기다리게 하는 구나.”

 

 바로 어제, 진연이 끝나고 야낙에 대한 모든 조사를 끝마친 그였다. 여자에 대한 정보 같은 건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으니까. 금가원에서 나무 사이를 두고 처음 존재를 확인했을 때부터, 그는 오랜 감으로 무언가를 느꼈었다.

 

 그리고 대대적인 조사 끝에, 새로이 후궁이 된 여인은 자신이 찾는 후보요건에 여러모로 맞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는 그 날 오랜 만에 제대로 된 흥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누구의 무엇이 되었든 중요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 여자가 당장 자신의 손아귀에 없다는 게 것이었다.

 

 “저 여자가 아니더라도, 후보는 많으니 상관은 없지만. 후보 얼굴만큼은 일일이 확인했는데... , 구완. 이것은 아름답지 못한 행태야. 이번 후보는 사람을 짜증나게 만드는 구나. 누구든 과인을 기다리게 하는 건 용서할 수 없어.”

 

 “............”

 

 아까만 해도 고이 미소 짓던 태자의 얼굴로 순간 그늘이 지고 있었다. 무언가 불만족스러울 때 생기는 증상으로, 거기다 그의 손이 약하게 떨리면서 힘줄마저 돋보이기 시작하자.

 

 “아아.”

 

 아까까지만 해도, 표정하나 없는 얼굴로 내내 태자의 뒤만 따르던 환관이 바로 황홀하다는 듯 얼굴에 홍조를 띄고 있었다. 저런 식으로 분노한 주인은 언제고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구완.”

 

 “네...네, 전하.”

 

 “과인은 분명 후원에 산책을 나올 때, 항상 ‘개’를 대동했는데 오늘은 어째선지 개가 보이질 않는구나.”

 

 “...성은이...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능숙하게 소매에서 개목걸이를 꺼내드는 환관의 손길이 기쁨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것을 스스로의 목에 채우던 그가 곧 줄을 주인에게 넘겨주며 개처럼 ‘헥헥’ 대기 시작한다.

 

 “아아.”

 

 안색하나 바뀌는 법 없이, 측근을 매도하는 태자의 표정이 너무도 부드럽고 자상했다. 하지만 줄을 거칠게 잡아당기는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혹시 있을 주변의 눈 같은 건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훈련도 안 된 멍청한 개 때문에 과인이 요즘 남색가니, 호모 소리를 듣는 거다. 주인을 곤란하게 하는 암캐는 벌을 받아야지.”

 

 “머, 멍멍.”

 

 배려도 안하고 줄만 잡아당기는 바람에 숨도 못 쉬는 와중인데도 환관은 얼굴까지 붉히며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좀 더 고통을 느끼고 싶다는 듯 측근이 배까지 보이며 애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올려다보자 그가 질린 듯 혀를 찬다.

 

 “잡견을 조교시키는 것만으론 만족스럽지 않아. 오늘은 ‘사냥’을 해야겠다, 구완. 도착하는 대로 준비해라!”

 

 “켁!”

 

 정말 측근을 개처럼 끌고 갈 작정인지, 명령도 없이 줄을 쥔 상태로 등을 돌리는 그의 뒷모습이 지독히도 싸늘했다.

 

 *************

 

 

 

 여주인이 무사히 초야를 치르고, 내명부의 정식 일원이 되던 날.

 

 야낙을 따라 혼수시녀로 딸려 온 몸종 둘도 정식으로 ‘항아님’이 되어 있었다. 주인을 따라 입궁한 후궁의 하녀들은 내명부의 법도대로 ‘본방나인’이라는 궁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궁녀라고 해봐야, 본방나인은 일반 나인들과 달리 상궁으로 승진할 수도 없었고, 녹봉 또한 주인의 가문에서 받아야하는 신세였지만 어쨌든 자신들도 정말 ‘궁중의 사람’이 되었으므로.

 

 “.............”

 

 부루크에서부터 입고 온 사복을 벗고 단정하게 머리를 땋아 궁녀의 의상을 차려입는 마나의 표정이 새삼 비장했다.

 

 “개 같은 년. 처음 봤을 때부터 일 저지를 것처럼 생겼더니 기어이....”

 

 엊그제, 주인을 기다리는 자신들의 밥에 수면제를 탔던 수발상궁을 떠올리며 어지간히 분했는지 마나가 충혈 된 눈으로 이를 부드득 갈고 있었다. 목욕을 마친 여주인이 갑자기 납치되었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잠에 빠져버렸었다. 이 얼마나 큰 실책인지.

 

 첩지를 받은 직후라 주인은 수면제에 당한 일가지고 무어라 책망치는 않았지만 그게 더더욱 괴롭고 죄스러운 그녀였다. 초야라는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수발상궁이라는 사람이 그런 눈에 띄는 방법을 쓸 줄이야. 그런 의외의 상황도 예견 못한 자신의 식견이 실망스러웠지만 무엇보다도.....

 

 

 “...........”

 

 저 이방인과 나란히 당했다는 게 더더욱 자존심상한 마나였다. 그토록 하대하고 무시하던 란초이와 사이좋게 약으로 당하다니..... 란초이는 그 이후로 말을 극도로 아끼고 있었지만 마나는 저 이방인이 자신을 깔보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는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란초이를 공격하여 탓하는 우는 저지르지 않았다.

 

 ......자신이 적으로 여기며 증오해야할 상대는 어디까지나 수발상궁과 그 상궁을 조종했을 흑막이었으니까.

 

 ‘감히 날 이렇게 만들어...? 날 우습게 만들어? 야낙 님을 위해 일해 줄 기회마저 박탈하다니.... 아하... 아하하하!!!! 절대로 용서 못해... 지옥 끝까지 따라가 갈가리 찢어 죽여 버리겠어. 반드시 죽여 없애버리겠어!!!!!!!!’

 

 자존심과 스스로의 위신. 모시는 주인에 대한 충성.

 

 자신이 자신일 수 있게 하는 저 ‘세 가지’에 흠집이 생기면 마나는 무서울 정도로 극단적인 존재가 되었다. 피해망상 따위는 그 초기에 불과했는데, 복수심의 정도가 지나쳐 광기에 빠진 마나는 ‘사람이 해선 안 될 짓’까지 태연하게 저지르곤 했다.

 

 한 번 적이 된 상대는 그 어떤 수를 써서라도 ‘소멸’시킨다.

 

 “..........후후후...우후후..아하하하.....”

 

 ‘미친년.’

 

 수면제에 한 번 당한 것 가지고, 벌써부터 광기에 절인 얼굴을 하는 마나를 보며 란초이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주인을 지키지 못한 죄가 있으니 본인도 면목 없고 진심으로 죄스럽긴 했지만, 저건 아니다싶었으니까.

 

 텃세가 심하고 자기 위신을 중하게 생각한다는 건 이제 보니 단점 축에도 끼지 않았다. 저런 식으로 웃고 미쳐가는 모습을 하루 종일 옆에서 보고 있자니, 덩달아 자신도 맛이 가는 기분이었으니까. 심지어, 마나는 어제부터 정신상태가 저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일과를 수행해오고 있었으니.... 어떤 의미에선 참 대단한 동료가 아닐 수 없었다.

 

 어쨌든,

 

 드르륵.

 

 채비를 모두 끝나고, 몽혜당을 나설 준비를 하는 그들 앞으로

 

 “!”

 내방에서 단장을 마친 주인이 등장하고 있었다. 좌우지간 얼른 무릎을 꿇어 예를 다하는 두 사람. 엊그제 일이야 어쨌든, 이 순간만큼은 마나도 란초이도 감격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몰라볼 정도로 달라진 여주인의 모습이 너무도 화려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야낙은 이젠 정말 소녀 같지 않았다. 허리 아래까지 내려왔던 긴 머리를 틀어 올리는 바람에 인상이 달라졌으니까.

 

 옷차림 또한 무리 없이 수수했다. 당의라 불리는 긴 저고리 위에 무늬 없는 분홍색의 배자를 걸쳐 입고, 장치마를 입은 것이 이제 막 혼례를 치룬 귀부인 같은 느낌을 주었고. 다른 후궁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간단하게 꾸밀 거라더니.... 화장까지 곱게 한 여주인은 정말 부루크 야인족 출신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우아하고 산뜻해보였다. 물론 곱게 꾸몄다 해서, 사람 본바탕까지 달라진 건 아니었지만. 달라도 너무 달라진 자신을 두고 두 시녀가 멍한 표정을 짓자, 그녀가 쌀쌀맞게 입을 열었다.

 

 “나의 채비는 끝났다, 가자.”

 

 “야낙 님... 아니지, 미인 낭랑!”

 

 내명부 품계에 관한 지식이 부족해, ‘미인’이라는 첩지가 어느 정도 높은 건 지 감이 잘 오지 않았지만 미미하게 미소를 짓는 란초이 옆으로, 지극한 감동에 광기마저 거둔 마나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세상에 너무 너무 예쁘십니다, 낭랑. 내가 살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니.... 이렇게 잘 차려입은 야낙 님을 보자니... 진짜 고생한 보람이... 아우.. 진짜... 내가 정말....저는 정말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서.. 어흑.. 끄으윽.”

 

 아까는 분노와 복수심에 길길이 날뛰더니 이젠 감격에 겨워 목까지 매는 듯했다. 아까만 해도 누구 하나 죽일 듯이 굴더니만....

 

 “감상할 시간은 나중에 갖도록 하지. 오늘의 일정은 빠듯하다.”

 

 야낙은 시녀들에게 감정을 추스를 여지조차 주지 않았다. 여유는 용서치 않겠다는 주인의 엄한 어조에, 마나가 얼른 눈물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주인의 일정은 수석 시녀인 자신이 더 잘 알았다. 계속 울며 감동하고 싶었지만 야낙을 위해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던 그녀가 곧,

 

 ‘.....쳇.’

 

 마지막까지, 수발 상궁을 찾을 수 없자 결국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

 

 내방에 나와, 궁녀들과 내관들이 기다리고 있는 자리까지 서서히 걸어가면서. 초야 이후 처음으로 마나가 귓속말로 야낙에게 상황을 보고 하기 시작했다. 곁의 동료조차 들을 수 없게 지극히 작은 소리로. 냉정을 되찾은 마나의 표정은 지극히 진지하고 차가웠다.

 

 “상궁과 방각시가 사라졌습니다.”

 

 “!”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만을 바라보던 야낙의 눈썹이 순간 동요를 일으키며 움찔하고 있었다. 마나가 더더욱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저와 란초이가 약에 당한 이후로부터 자취를 감췄더군요.”

 

 “네가 처리한 것이냐?”

 

 “아아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야낙 님.”

 

 “도둑고양이는....?”

 

 속옷을 훔친 방각시에 대한 것이었다. 마나가 대답대신 눈을 아래로 내리깐다. 그 눈빛에 사악함을 가득 채우고서. 그 건에 대해서, 아직도 무엇 하나 알아챈 것이 없는 란초이가 호기심을 품고 시선을 돌리자 마나가 얼른 모른 척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방각시에 대한 건 은밀하게 해결해야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미인 낭랑, 기다리고 있었사옵니다.”

 

 “.........”

 

 그리 오래 보고하지도 못했다. 멀지 않은 거리, 몽혜당의 출구 밖으로 가마를 대동한 채 궁인들이 새로운 후궁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상궁들을 통솔하는 제조상궁을 선두로 비빈들을 전담하는 모든 궁녀들이 미인의 일행이 등장하는 대로 일제히 고개와 허리를 숙이며 예를 갖추기 시작한다.

 

 “...하, 거 참.”

 

 처음 입궁했을 땐, 왕성 입구에서 몽혜당까지 몸소 걸어갔었는데.... 거기다 마중 나와 주던 궁녀들까지 수준이하의 예의를 보여주며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했었다.

 

 이 얼마나 달라진 대접이냐! 흐뭇하게 웃는 마나의 앞으로, 야낙이 차갑게 선두의 제조상궁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첫 날처럼, 남자 못지않은 큰 키로 우두머리 상궁을 내려다보던 그녀가 곧 가마로 시선을 옮긴다. 마치 트집이라도 잡을 것처럼.

 

 “첫 날엔 걸어 다녔는데 첩지를 받기 무섭게 가마를 대령하다니.... 달라진 대접에 황송할 따름이군.”

 

 상대의 기량을 재볼 심산이었는지, 일부로 찌르듯 빈정대는 그녀였다. 하지만 상궁의 안색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상대가 더더욱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자신을 가마로 인도하려 하자 야낙이 곧 시선을 거두며 비릿하게 조소를 짓는다.

 

 

 

 “나는 이제 막 첩지를 받은 사람이오. 폐하와 마마께서 계시는 이 지엄하고 지엄한 왕궁에 어찌 나 같은 자가 가마를 타오리까. 무릇 사람은 높은 자리에 오를 수록 겸허할 줄 알아야 하오. 그러니, 나는 연혜궁까지 걸어가겠소.”

 

 “네? 하오나, 낭랑.... 입궁할 때엔 첩지를 아니 받으신 터라 가마를 대령하지 않았을 뿐, 이젠 미인 낭랑이시니 가마를 타셔도 되옵니다.”

 

 “어느 분께서 내게 가마를 하사였느냐. 왕후 폐하신가? 아니면 어느 비빈마마신가?”

 

 “!”

 

 인형처럼 표정하나 없던 제조상궁의 얼굴로 비로소 동요가 일고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뿐, 상궁이 다시 평정을 되찾자 그녀를 똑바로 노려보며 야낙이 웃으며 살벌하게 말을 잇는다.

 

 “예법에 따르면, 분명 비빈 아래의 후궁은 분명 가마를 웃전으로부터 ‘하사’를 받는다고 배웠소. 대령이 아니라! 미인에 봉해진 나는 오늘 가마를 하사받았단 얘기를 듣지도 못했는데 이건 대체 무슨 경우이지? 하사받지도 않은 가마를 나더러 타라고 자네 지금 안내하는 건가? 첩지를 받는 첫 날부터 내게 불경을 범하라고?”

 

 “.........아니...그”

 

 승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미 출구 밖으로 발을 내민 그 순간부터, 이미 상황판단을 전부 마쳤기 때문이다. 첩지를 받은 첫 날부터, 같은 방식의 수를 쓰다니.... 흑막이란 작자는 악행을 공모하는 데도 창의성이 필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인 게 분명했다.

 

 아니면,

 

 정식으로 후궁 첩지를 받은 직후이니 자신이 방심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 걸지도.

 

 “낭랑, 그것은 오해이옵니다.”

 

 “오해라.... 그럼 이것도 오해인지 설명해주시겠나?”

 

 시종일관 태연한 태도로 일관하려했던 제조상궁이 드디어 당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절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필사적으로 키워왔던 통찰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제조 상궁을 궁지로 몰아가는 야낙의 행동이 더없이 신랄했다.

 

 “나인들은 젊지 않군. 그런 저들에게서 귀부인들이 쓰는 비싼 향료 냄새가 미미하게나마 나고 있어. 수발 나인인지 본방나인인지 알 길은 없지만, 웃전마마를 바로 ‘곁’에서 모시는 자들인 건 맞겠지. 보나마나 지금의 내 행동을 웃전 마마께 아뢰기 위해 온 걸 거야. 내가 등장한 그 순간부터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 시선을 두며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가마가 있는 자리 뒤편에 서있던 나인들에게로 술렁임이 일고 있었다. 통솔하는 상궁들이 바로 제지에 나서고 있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저들은 내명부 웃전을 모시는 상궁들.... 그들의 선두에 서있는 자네는 궁녀들을 통솔하는 최고의 우두머리겠지. 비빈마마들의 수발 상궁이 절대 아냐, 자네는. 그리고 그런 그대를 파견할 정도의 지위가 되는 사람이라면 비빈을 능가하는 왕실의 권위자일 터야. 아니, 그런가?”

 

 “.............”

 

 “그래 왕후폐.....”

 

 “그토록 영명하신지 소인이 미처 몰랐사옵니다. 대단히 송구하옵니다, 낭랑. 이 가마는 성상 폐하께서 하사하신 것이옵니다.”

 

 그녀의 입에서 기어이 왕후가 언급되려하자, 결국 백기를 들며 황급하게 사실대로 고하는 제조상궁이었다.

 

 “!”

 “일정이 빠듯하여 미처 아랫것들을 시켜 언질을 하지 못하였나이다. 부디 소인의 죄를 용서하여주시옵소서.”

 

 뜻 밖의 사람이 배후로 지목되자 야낙이 순간 할 말을 잃고 멈칫하고 말았다.

 

 “성상 폐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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