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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더 포저(The Pauser)
작가 : 송지음
작품등록일 : 2017.6.1

[범죄·추리·미스터리·판타지·로맨스]
일시 정지된 시공간, 멈춰진 세상에서 범죄의 비밀을 쫓는다.
시간을 일시 정지할 수 있는 현이우. 특수범죄사무국의 영업팀 김수호.
이우에게 도착하는 의문의 메시지로 인해 스치게 된 두 사람의 특별한 인연과 시즌별로 이어지는 크고 작은 범죄 사건들.
각 사건을 관통하고 있는 거대한 범죄조직의 최종 목표를 파헤치는 과정과, 이를 통해 발현되는 서로를 위한 헌신과 희생.
수호의 헌신을 통해 잠재된 능력을 깨워가는 이우의 성장을 중심으로 주인공들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시즌제 소설.

 
{ 더 포저 시즌 Ⅳ } 종전일의 기적 ... 11
작성일 : 17-07-17 15:53     조회 : 292     추천 : 3     분량 : 8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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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는 걸음을 세웠다.

 둥둥 울리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멀리 보이는 공사 중인 건물을 응시했다.

 수호의 말이 맞았다. 연이어 오던 메시지는 도움 요청이 아니었다.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을 위험으로 부르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쫓아다녔던 자신 때문에, 수호가 다쳤다.

 이우는 뜨거워지는 눈을 부릅떴다. 심호흡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건물을 향해 걸음을 서둘렀다.

 

 일 층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 수호는 몸을 웅크리며 부러진 팔목을 감싸 쥐었다.

 “저 씨발 새끼 놓칠 뻔했네. 개 씹 새끼.”

 수호를 번쩍 들어다가 아래층에 내팽개친 남자가 욕지거리를 했다.

 “마취약 그렇게 처맞고 왜 안 잘까요? 씨발놈이?”

 “저 정도 되니까 노바디가 찾겠지. 저 새끼 몸 좀 봐라, 보통 새낀가.”

 수호는 이를 가만히 물며 실눈을 떴다. 노바디. 확실하다 기웅의 정보.

 매달아둔 작업용 전구의 밝은 빛에 남자 둘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였다.

 광대뼈가 불거진 얼굴, 심한 주걱턱. 백구십이 넘는 키. 우락부락한 몸. 백 퍼센트 포커스.

 수호의 부어터진 입술이 지그시 물렸다. 포커스가 있는, 노바디의 범죄 현장이 확실한 이곳으로 지금, 이우가 오고 있다.

 포커스 옆의 남자는 보통 체구에 날카로운 인상으로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아 빨리 묶어. 시간 없어 새꺄.”

 남자가 말을 더하자 포커스는 수호의 한쪽 발목을 잡아 질질 끌었다.

 수호는 발치로 시선을 내렸다. 굵기가 오 센티는 되어 보이는 쇠고랑 줄 끝으로 이어진 철갑 발찌가 수호의 왼쪽 발목에 채워졌다.

 쇠고랑 줄은 굳어진 콘크리트 바닥에 박혀있었다.

 수호는 턱을 악다물었다. 공사 시작부터 줄을 박아둔 걸까. 오늘의 일을 언제부터 준비했던 걸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

 “또 보네요?”

 갑작스러운 목소리가 수호의 시선을 붙잡았다. 까만 얼굴이 빙글거리며 수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수호는 멍해졌다. 눈을 끔뻑거리며 검은 얼굴을 멍하니 뜯어보았다.

 뱁새눈이 왜 여기.

 고양이 낚아채면 너 죽네 사네 할 거 아니야.

 문득 떠오른 기웅의 말에 수호의 입이 벌어졌다.

 웅크린 몸을 훑어보던 영인이 쪼그려 앉았다. 수호의 부러진 팔목을 잡아들었다.

 통증에 수호는 이를 꽉 물었다.

 “어이구, 부러졌네. 우리 이우 애인 팔.”

 영인의 입에서 이우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수호는 악다문 이를 드러냈다.

 “너 이 새끼. 너 누구야, 너 뭐 하는 놈이야.”

 마취약에 취한 입술이 어눌하게 움직였다. 흥, 웃은 영인이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누구긴요, 저 이우랑 친한 형이잖아요.”

 “닥쳐 이, 개새끼.”

 영인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개새끼지.”

 대꾸를 하며 일어선 영인은 바짓단을 툭툭 털며 말했다.

 “나는 개새끼고 너는 게이 새끼고.”

 영인은 비웃음을 흘리며 자리를 떴다. 어둠으로 사라진 영인의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들 잘 숨어라. 머리카락 보이면 죽는다.-

 수호는 이를 악물었다. 전영인.

 저번에 만나서 죽였어야 했다. 왜 그냥 보냈을까. 갑자기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이우가 왔다더니, 숨는다. 숨어서 이우를 기다린다. 무슨 짓을 하려고.

 이우는 여길 왜 오는 걸까. 나오지 말라는 말을 왜 그렇게 안 들어 먹을까.

 수호는 치미는 분노에 몸을 떨며 다리를 묶은 쇠고랑을 내려 보았다.

 묶인 다리를 힘껏 잡아 빼며 쇠고랑의 힘을 가늠해 보았다.

 꿈쩍도 안 했다.

 철갑 발찌와 쇠줄을 노려보았다. 몇 톤짜리 물건을 들어 올릴 때나 쓸 법한 두께, 장비 없이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뺄 수 없다.

 수호는 분노에 몸을 떨며 영인이 사라진 어둠을 노려보았다.

 이우가 오고 있다, 오지 말아야 할 곳으로 오고 있다.

 수호의 분노는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뒤엉켜진 분노와 두려움이 수호의 전신을 쥐어흔들었다.

 

 이우는 걸음을 세웠다. 멀리서 흘러나오는 흐릿한 빛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더 가까이 가면 지난번처럼 약이라도 마시게 될까봐 두려웠다.

 건물까지 뛰면, 대충 이 분, 혹은 삼 분. 시간이 충분할까. 최대한 뛰면 이 분이면 되지 않을까.

 잠시 고민하던 이우는 눈을 감았다 떴다. 스톱워치를 누르고 전속력으로 뛰었다.

 희미했던 불빛이 차츰 가까워졌다.

 숨을 참으며 내달린 이우는 건물을 가리고 있는 분진망을 걷어 올렸다.

 우뚝 자리에 굳어 섰다.

 곧 정신없이 뛰어 들어가 바닥에 누워있는 몸 앞으로 주저앉았다. 부어터진 얼굴과 피멍이 감긴 몸을 더듬어 확인하는 손이 덜덜 떨렸다.

 부어오른 오른팔목이 힘없이 꺾였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를 악물고 눈물을 문지르며 일어섰다. 발목을 묶은 쇠고랑 줄을 있는 힘껏 당겼다.

 콘크리트 바닥에 파묻힌 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급하게 주변을 살피다가 건물 밖으로 뛰어나갔다.

 삽자루 하나 보이는 것이 없었다. 급한 대로 바닥에 박힌 큰 돌을 빼내 들고 다시 안으로 뛰었다.

 두 손으로 돌을 꽉 틀어쥐고 쇠고랑과 발찌의 연결고리를 정신없이 내리쳤다.

 돌을 움켜쥔 손가락 뼈마디가 바닥에 짓찧어졌지만 이우는 느끼지 못했다. 이를 악물고 죽을힘을 다해 내리쳤다.

 스무 번… 서른 번… 쉰 번……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쇠고랑을 내리치던 움직임이 멈춰졌다. 덜덜 떨리던 고개가 수호의 몸 위로 고꾸라졌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끅끅 막힌 울음을 흐느끼던 이우는 억지로 고개를 가눠 세웠다.

 수호를 일으켜 앉히며 목에 팔을 둘러 끌어안았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눈물이 수호의 목덜미를 적셨다.

 시간이, 끝났을까.

 “듣기만 해. 아무 말도 하지 마.”

 갑작스러운 소곤거림에 이우는 퍼뜩 고개를 바로 세웠다. 다급하게 수호의 얼굴을 붙들었다. 부어터진 얼굴이 빙글 웃더니 어눌한 발음으로 소곤거렸다.

 “왜 형 말 안 들어. 나오지 말랬잖아.”

 “형”

 “쉬. 듣기만 해. 아무도 믿지 마. 이유는 모르겠는데 전영인이 너 잡으러 왔어.”

 이우의 젖은 눈이 멍해졌다.

 “아무도 믿지 마. 전영인도, 기웅이 형도, 나도. 믿지 마. 너만 믿어. 빨리 숨어. 시간 세워놓고 무조건 도망쳐. 뒤는 쳐다도 보지 마. 알았지?”

 “형, 형 같이”

 “쉿. 말하지 마. 가 얼른. 우리는 처음부터,”

 수호의 멍든 눈에 울컥 눈물이 고였다. 입술을 깨물며 왼팔을 들어 눈가를 쓱 문지르고는 말을 이었다.

 “우린 처음부터 만나면 안 되는 사람들이었어. 나 같은 놈 알게 돼서, 너 지금 이 고생하는 거야. 가 이제.”

 잦아들었던 이우의 눈물이 왈칵 터졌다.

 “빨리! 이 새끼들 나오기 전에 빨리!”

 눈물을 쏟으며 고개를 가로젓는 이우를 수호가 이 악물고 노려보았다.

 “빨리 가! 너 이러면 우리 둘 다 죽어!”

 이우의 고개가 수호의 무릎 위로 고꾸라졌다. 도리질을 하며 흐느꼈다.

 수호는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누르며 이우의 뒤통수에 왼손을 얹었다. 허리를 바짝 숙여 기울이며 소곤거렸다.

 “일단 가. 형 도망칠 수 있어. 너 있으면 형 못 해. 너부터 가. 형이, 너 꼭 따라갈게. 꼭 찾아갈게. 응? 이우야. 응?”

 이우가 고개를 들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새빨간 얼굴이 덜덜 떨렸다.

 수호는 씩 웃으며 말을 얹었다.

 “가 얼른.”

 수호의 입술 위로 젖은 입술이 포개졌다. 수호는 눈을 감으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우의 향기. 이우의 숨결. 입술.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우리 이우 왔어?”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이우가 다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영인이 벙글벙글 웃으며 들어섰다.

 입을 멍 벌린 이우가 천천히 일어섰다.

 영인이 자신을 잡으러 왔다니. 이게 무슨 일일까.

 

 “아….”

 기웅의 말문이 막혔다. 현이우를 또 놓쳤다니, 강 실장 도대체.

 치미는 분을 잠시 누르고 있던 기웅은 차 밖으로 내려서며 말했다.

 “전영인은요. 아직도요? 거기 들어간 게 한 시간인데, 다시 들어가서 확인하세요, 밖에서만 기다리지 마시고, 네 네. 저 지금 반석공원 초입이에요. 현이우 놓친 지점으로 바로 들어갑니다.”

 기웅은 인이어를 고쳐 끼우며 걸음을 서둘렀다.

 -그 몸으로 어딜 들어와. 그냥 차에 계세요.-

 강 실장의 목소리에 기웅은 대답하지 않았다. 눈앞의 언덕을 노려보며 걸음의 속도를 더 높였다.

 -차에 있으라고 좀.-

 “제 말은 맨 날 띄엄띄엄 들으십니까? 이번 일 잘못되면 실장님 저 못 본다고 했어요 안 했어요.”

 기웅은 차오르는 숨을 돌리고 말을 이었다.

 “그게 실장님 자른다는 말이 아니고, 제 목숨 걸었다는 소리에요. 못 찾으면 저 죽어요.”

 -너 진짜.-

 “그러니까, 나 좀 살게 빨리 찾아줘 형. 현이우, 김수호. 빨리 찾아줘요.”

 기웅은 주변을 빠르게 훑으며 계속 걷고 있었다.

 “특히 김수호는 다치면 절대 안 돼요. 꼭 좀 찾아줘 형. 부탁할게.”

 

 “놀랐지?”

 영인이 씩 웃으며 말했다. 이우는 멍한 정신이었다.

 “이우 너 형이랑 이제 나가야겠다.”

 “네?”

 “이 개새끼야, 너 이우한테 도대체.”

 어눌한 욕지거리에 힐끗 시선을 돌린 영인은 다시 이우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니 애인도 같이 갈 건데. 안 갈래?”

 “예?”

 “형이랑 사업하자.”

 이우는 떨리는 고개를 가누며 멍하게 입을 벌렸다.

 “형 사업하는데 니 기술이 좀 필요해서. 그거 좀 나눠 쓰자. 괜찮지?”

 수호는 턱을 악물었다. 기술. 그거였어. 그것 때문에 전영인이, 노바디가.

 “형이, 형이 이런 거예요? 수호 형?”

 뒤늦게 터진 이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영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에휴, 형 직원들한테 그냥 모셔만 두라고 했는데. 니 애인이 하도 사납게 굴어서 좀 그렇게 됐나 봐. 저번에 보니까.”

 영인은 수호를 돌아보며 피식 웃었다.

 “초면부터 좀 사납긴 하더라. 니 애인.”

 “이우야!”

 수호의 고함이 내질러졌다.

 “가라고! 할 수 있잖아! 빨리!”

 영인이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아직 아니죠. 오 분 남았잖아요. 성질 급하시네?”

 영인은 총을 꺼내며 수호의 옆으로 쪼그려 앉았다. 약실을 열어 한 발 남은 탄환수를 확인했다.

 “영업직이 아니라 순경이셨나 봐요? 어우 총 쓸 만하네.”

 수호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붙인 영인은 환한 표정으로 이우를 쳐다보았다.

 “이우 너 착한 줄 알았더니 거짓말 잘한다? 니 애인 영업사원이라며?”

 동상처럼 굳어 서 있기만 하던 이우의 시선이 수호의 머리에 겨눠진 총에 고정됐다. 아니면 죽인다. KSH를 죽인다. 김수호를, 죽인다.

 “왜, 왜 그러는 건데요? 네? 형이, 형이 저한테, 왜 이러는 건데요!”

 “가 이우야! 가!”

 수호가 시선을 맞추며 애원했다.

 “제발 응? 이우야! 제발 가라고! 제발.”

 “그래, 이우야. 가 그냥. 우리가 십칠 년 지긴데, 한 번은 기회를 줘야지.”

 웃으며 말한 영인이 시계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이제 삼사 분만 기다리면 되겠네. 해 봐 한 번. 너 펑 사라지는 거 찍으려고 캠까지 준비했는데 한 번은 봐야지. 니 애인은 사라지기 직전에 처리해줄게. 구경하고 가.”

 “영인이 형! 왜 그래요! 저한테, 형이 저한테 왜요!”

 악다구니가 내질러졌다. 덜덜 떨리는 새빨간 얼굴에서 눈물이 끝없이 쏟아졌다.

 “뭘 왜 그래? 그 능력 좀 같이 쓰자는데? 너야말로 너무하지. 형이 나가자고 같이 살 집까지 구해놨다고 그렇게 부탁했는데도 말 안 듣고. 우리 사이에 서로 얼굴 붉힐 일 만든 건 너지. 안 그래?”

 “이우야 가! 가 인마!”

 이우는 눈물이 쏟아지는 얼굴로 멍하게 도리질을 했다. 이를 악물고 이우를 노려보던 수호는 제 관자놀이에 붙은 총을 곁눈질하며 고함을 내질렀다.

 “가 이 새끼야! 너 이제 싫다고! 질린다고 새꺄! 가 좀! 가! 너 안 가면 형 죽어 인마!”

 정신없이 고개를 가로젓던 이우는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눈물을 쏟으며 수호의 얼굴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영인은 이우의 넋 나간 얼굴을 빤히 뜯어보았다. 수호가 다시 곁눈질로 방아쇠 위치를 확인하는 사이 피식, 웃음을 흘리고 말했다.

 “그래도 우리 이우, 사람은 제법 골랐네?”

 이우의 시선이 영인에게 옮겨졌다. 시선을 맞추며 영인은 환하게 웃었다.

 수호의 왼손이 총을 향해 움직였다.

 “니 애인이 사납긴 해도 의리는 조”

 -탕!

 수호의 손이 방아쇠를 누른 순간 수호는 나자빠졌다. 터진 머리통에서 뿜어진 피가 영인의 얼굴을 적셨다. 영인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깨진 수호의 머리를 쳐다보았다.

 눈과 입이 멍하게 벌어지던 이우의 심장이 문득 멎었다.

 “아, 아…”

 눈을 질끈 감은 이우의 비명이 폭발했다.

 “안, 돼!!”

 사자후처럼 쩌렁쩌렁하게 울린 공명이 회색 공사장을 휩쓸며 터져나갔다.

 허공으로 떠오른 이우의 몸이 하얀빛을 뿜으며 흩어져 사라졌다.

 

 

 

 

 

 

 

 

 수호가 영인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닥쳐 이 개새끼.”

 어눌한 발음으로 대꾸가 이어지자 영인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개새끼지.”

 가볍게 대답하고 일어선 영인은 바짓단을 툭툭 털며 말을 더했다.

 “나는 개새끼고 너는 게이 새끼고.”

 영인은 비웃음을 흘리며 자리를 떴다.

 -니들 잘 숨어라. 머리카락 보이면 죽는다.-

 수호는 입술을 악물었다. 치미는 분노에 몸을 떨며 다리를 묶은 쇠고랑을 내려 보았다. 묶인 다리를 힘껏 잡아 빼며 쇠고랑의 힘을 가늠해 보았다. 꿈쩍도 안 했다.

 분노에 몸을 떨며 영인이 사라진 어둠을 노려보았다.

 이우가 오고 있다, 오지 말아야 할 곳으로 오고 있다.

 수호의 분노는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뒤엉켜진 분노와 공포가 수호의 전신을 쥐고 덜덜 흔들었다.

 

 기웅은 잠행을 포기하고 드러내며 걸었다. 어깨 때문에 예민한 움직임이 나오지 않았다.

 현이우가 사라진 지점을 정밀지도로 확인하며 걸음의 속도를 높이던 기웅은 조용히 멈춰 섰다.

 땅바닥에 사람 형체가 쓰러져있었다. 물끄러미 훑어보다가 자세를 낮추고 소리 없이 다가섰다.

 기웅은 어리둥절해서 낮췄던 몸을 세웠다. 이우였다.

 서둘러 다가가 앉은 기웅의 숨이 절로 낮춰졌다. 흠뻑 젖은 눈가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흐느낌. 떨고 있는 몸.

 손가락을 세워 코끝에 댔다. 낮은 숨이 흘러나왔다. 맥박을 확인하고 안구의 흐름을 살폈다. 99퍼센트 수면 상태. 기면증.

 엉망으로 긁혀 피가 흐르는 손가락과 손등에 시선이 세워졌다. 무슨 일이 있던 걸까. 수호는.

 기웅은 초조해지는 속을 내리누르며 마이크 쪽으로 고개를 꺾었다.

 “현이우 분실 지점 근처에 있습니다. 세 명만 빨리 오세요. 현이우 그 자리에 있습니다.”

 기웅은 이우의 몸 위로 시선을 흘리며 엄습하는 불안을 가만히 다스렸다. 흥분하면 실수한다. 긴장하면 진다.

 쓰러진 듯 웅크려있는 이우를 바로 눕혀 심장에 귀를 대고 박동을 확인했다. 심장박동이 희미했다.

 목동맥에 손끝을 얹었다. 잠든 맥박이 뛰는 목덜미가 끓는 듯 뜨거웠다.

 가까워오는 인기척에 기웅이 일어섰다.

 “데리고 바로 올라가세요. 의료센터로 옮기고 기면증 환자라고 전달하세요. 가는 중에 잠 깨면 어떤 말도 발설 안 됩니다. 정신 들더라도 의료센터에 감금조치하세요.”

 업혀 내려가는 앙상한 등허리에 잠시 시선을 두었던 기웅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찬찬히 살폈다.

 어둠 속 멀리서 흐르는 흐린 빛을 잠시 쏘아보다가 마이크에 대고 소곤거렸다.

 “현이우 분실 지점에서 한 시 방향 사백여 미터 공사장, 수색 바랍니다. 지금 바로 진입합니다.”

 무전을 마친 기웅은 빠르게 걸음을 뗐다.

 

 수호는 분노와 두려움에 몸을 떨며 적막만 흐르는 주변에 귀를 세우고 있었다.

 적막이 길어지자 조용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약 기운인지 얻어맞아서인지 부들거리는 상체가 멋대로 휘적거리며 흔들렸다.

 발목을 묶어둔 쇠고랑을 노려보았다.

 도망은 불가능하다. 이우가 오고 있다.

 놈들은 자신을 여기에 전시하듯 던져두고 사라졌다. 이우가 이 상황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목적이 뭘까.

 뭔지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 꼴을 미끼로 이우까지 잡으려고 한다.

 이우가 이 꼴을 보면, 도망쳐줄까. 시간을 자기 자신 지키는 데에만 쓰기로 한 약속을 지켜줄까.

 갑자기 소란스러워진 바깥소리에 수호는 다급하게 몸을 뉘었다.

 실눈을 뜨고 분진망을 노려보았다. 심장이 방망이질을 쳤다. 이우가 온 걸까.

 분진망이 살며시 흔들렸다. 들이밀어지는 총부리가 보이자 부러진 오른팔이 저절로 얼굴을 가렸다.

 눈을 좁혀 초점을 모았다. 총구 하나, 둘. 분진망이 확 젖혀졌다.

 민첩하게 침투해 들어오는 검은 옷들에 순간 움찔했던 수호는 멍하게 눈을 키웠다.

 입까지 벌리고 굳어 서 있는 기웅을 쳐다보며 급하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참을 사이 없이 눈물이 터졌다.

 “형!”

 기웅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수호 앞으로 마주 앉아 피 터진 얼굴을 살폈다.

 “형 왜 왔어, 영업하러 왔어?”

 울면서 웃는 어눌한 말투를 들으며 기웅은 피멍에 휘감긴 몸을 찬찬히 훑었다.

 왼손으로 받쳐 쥐고 있는 오른팔에 시선이 세워졌다. 부러진 팔은 그사이 팽팽하게 부어올라있었다.

 기웅이 부러진 팔을 쥐어 올리자 수호는 왼팔로 눈물을 문지르고 말했다.

 “괜찮아. 지금 이우가 여기 오고 있대. 이우 좀 찾아 주라 형. 이우 좀 찾아 줘, 응?”

 마비된 입에서 계속 어눌하게 말이 흘렀다.

 터진 얼굴을 무덤덤하게 쳐다보던 기웅은 수호의 머리를 당겨 가슴에 붙였다.

 널뛰고 있는 기웅의 심장소리를 듣고 나서야 수호는 까무룩 정신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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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11 (완결) 2017 / 7 / 4 296 3 8147   
34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10 2017 / 7 / 3 289 3 7334   
33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9 2017 / 7 / 1 289 3 7110   
32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8 2017 / 6 / 30 292 3 6328   
31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7 2017 / 6 / 29 275 3 6536   
30 { 더 포저 시즌Ⅲ} 그들의 포커스 ... 6 2017 / 6 / 28 291 3 6688   
29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5 2017 / 6 / 26 329 3 4873   
28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4 2017 / 6 / 25 279 4 5613   
27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3 2017 / 6 / 24 280 4 5819   
26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2 (2) 2017 / 6 / 23 337 5 5239   
25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1 (2) 2017 / 6 / 22 405 5 5234   
24 { 더 포저 시즌 Ⅱ} 아담의 비밀 ... 9(완결) (2) 2017 / 6 / 21 324 5 6978   
23 { 더 포저 시즌 Ⅱ} 아담의 비밀 ... 8 (1) 2017 / 6 / 20 299 5 8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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