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화장실과 도둑
우리는 인생 최대의 만찬을 즐기고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아니, 나는 앉았다. 잭 아저씨는 그의 자리에만 잔뜩 몰린 파리들을 쫒아내고 있었다. 파리는 똥을 알아본다더니, 딱 그 말이 정답이로구만 ! 다 도망가고 남은 한 마리가 약을 올리듯 잭 아저씨 머리 주의를 뱅뱅 돌다가... 그의 귀 속으로 들어갔다 . 잭 아저씨는 짧게 신음을 내질렀다.
[나가! 나가! 당장!]
[으...내가 빼줄까요?]
[그래. 그래줘.].
[잠깐만요.. 핀셋? 아님 손전등으로 유인할까요 ? 바로 옆에 구스 마켓에서 빌려줄 거에요 . 그 아저씨 생각보다 착해요. 언제 손전등으로 빼는 걸 광고에서 봤거든요. 완전 신기했다니까요? 진짜 해보고 싶었는데...]
아저씨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너무 오지랖을 떨었나요 ? 그럼..뭐..]
그 순간 파리가 저절로 나갔다. 아저씨는 아직도 인상을 쓰고 있었다. 난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아저씨를 톡톡 쳐서 말했다.
[나갔어요.]
난 아저씨의 탓도 아닌데 말투에서 퉁명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어딜?]
전혀 엉뚱한 대답이 나와 난 당황했다.
[ 어...파리..요.. ]
[알아.]
[헐..]
그때 아저씨가 방귀를 뿡 뀌었다.
[우웨에에에엑! 아저씨, 좀! 우리 서로 매너는 좀 지킵시다!]
[우리 사이에 뭐 그럴것까지야!]
[어, 예쁜 아가씨 지나간다!]
[야, 이렇게 아리따우신 숙녀 분 앞에서 방귀를 뀌면 어떡하니, 울프야.]
참, 이 아저씨는 좋다가도 싫다, 정말!
[화장실이나 가요.]
[알았어. 재촉하지마.]
[내가 언제 재촉했다고..]
그는 어기적거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아저씨는 새로 만든 크고 깨끗한 4번 화장실 대신 작고 더러운 3번 화장실로 가고 있었다. 많이 급한가..? 정말, 아주 조금 멀 뿐인데. 3번 화장실은 귀신이 나올 것 같단 말이야 .
[아저씨, 거기 더러워요! 4번으로 가요!]
[알거든! 아니, 몰랐어! 고마워!]
그러면서 발 돌리기도 귀찮은 건지, 그냥 그대로 갔다. 그때, 나도 신호가 왔다. 괄약근에 힘을 주지 않으면, 으아! 상상도 하기 싫다. 난 항상 이렇게 갑자기 마려운 타입이라니까. 난 잭 아저씨를 서둘러 따라갔다. 3번 화장실로. 더러워도 같이 가는게 나으니까. 화장실로 향하면서 든 생각은 두 가지. 찝찝, 찜찜. 뭔가... 잊은 것 같아, 찜찜하다고. 그 사이 잭 아저씨는 벌써 들어가고 없었다 . 화장실에는 잭 아저씨 말고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난 숨을 죽이고 입구벽에 밀착해서 그 소리를 들어보었다. 두 명이었다!
[...라면...반드시...그쪽은 멍청해...어린...죽이는....한번에 끝내버리는거야..승리는.....이외에 몇 군데. ..]
[25군데 입니다.]
[부족해... 부족해... 다른 곳...상황..]
[위더 73은 아직 전혀 진행이 안된다고 합니다. 타겟이 불신에 가득차서... 위더가 말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위더를 없애... 타겟도... 같이... 아니다... 그때 그 방법으로... 약을... 다시 시도한다...]
[네. 전달하겠습니다.]
[자네는 말 실수...]
[전 그런 것 하지 않습니다.]
[그래? 자네는 워퍼니 믿겠네.]
이게 무슨 소리지? 위더? 워퍼? 어린 아이를 죽인다고? 무슨 소리야... 한 목소리는 굵고 낮았고 한 목소리는 잭 아저씨와 비슷했다. 조금 더 낮고 진지한 목소리였다. 잭 아저씨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그만 가지.]
[예, 가십시오. 원스 님.]
아니다. 아무리 들어도 잭 아저씨는 아니야. 살짝 화장실 안을 들여다 보았다. 헉!
아무도 없었다. 아, 나 화장실 가고 싶어서 온 거였지. 터지기 일보직전! 내가 화장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잭 아저씨가 튀어나왔다.
[짜잔!]
[헉!]
난 뒤로 넘어질 뻔 했지만 잭 아저씨가 간신히 잡아주었다.
[왜 그래? 못 들을거라도 들은 사람처럼,]
잭 아저씨는 알고 있는게 틀림없다.
[아저씨도 들으셨어요?]
잭 아저씨는 잠깐 당황하는 듯 했다.
[뭐...뭘?]
[그...어떤 사람이 워퍼니... 위더니... 하던데... 어린 아이를 죽인대요! 이를 어째요! 경찰에 신고할까요?]
[안돼, 절대 안돼!]
난 물었다.
[왜요!]
[사실. 말이지...]
나는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그거 요즘 애들 장난이야.]
[에에에?]
난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악당 무리라던가 그런 류의 것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너같이 엿듣는 꼬마가 나타나면... 낮은 목소리로 암호를 말하는거지. 원래는 구스 마을 분수대에서 노는 더기 마을 아이들을 반쯤 죽도록 패버리려고 했었거든.]
[ 워퍼랑, 위더랑은 뭐에요?]
[자, 잘 들어. 워퍼는 '엿듣지마, 이 땅딸보야!' 라는 뜻이고, 위더는 '멍청이'라는 뜻이지.]
[아저씨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난 기습 질문을 했다.
[그야...]
그는 뜸을 들였다.
[아, 빨리 말해요. 현기증 나니까!]
[내가 상대역을 했기 때문이거든! 내 목소리 안 같았지? 그럼 정말 대박인데! 그 애가 얼마나 마음에 들었으면 다음에도 같이 해 달라 그러더라. 내가 진지하게 말하면 또 엄청 멋있거든. 물론 그 꼬마도 목소리가 끝내줬지만... 꼬마라고 하기엔 좀 크긴 했지. 그런데 정말 난 줄 몰랐단 말이야?]
[어... 사실은 잭 아저씨 같다고 생각했어요.]
[에라이, 똥이나 먹어라!]
[앗!]
갑자기 떠올랐다. 내가 여기 왔던 목적! 난 어리둥절해 하는 잭을 거칠게 밀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즐거운 시간 되길 바래!]
문 밖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가지 마요!]
[왜?]
[무... 무섭단 말...이에요.]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무섭다고? 천하의 울프씨가 고작 화장실 귀신 따위가 무섭단 말이야?]
내 붉어진 얼굴을 잭 아저씨가 보지 못한 걸 다행으로 생각했다. 갑자기 그가 소리를 질렀다.
[으, 으, 으악! 귀신이다!].
화장실 불이 꺼졌다! 나도 소리를 질렀다.
[ 으아아아아아악!]
'딸칵딸칵딸칵'
켜졌다, 꺼졌다, 켜졌다, 꺼졌다. 뭐야, 아저씨였잖아!
[야, 겁쟁이! 귀신 같은 건 없어. 나보고 여기 니 똥 냄새나 맡고 기다리라고? 차라리 귀신하고 싸우다 죽는 편을 택할게. 잘 있어라, 똥프!]
그의 발소리가 멀어져갔다. 으으으... 정말 무서운데... -내 나이는 모르지만- 이 나이에 고작 화장실 따위를 무서워하다니.. 난 얼른 물을 내리고 손을 이 화장실만큼이나 더러운 수건에 닦고 화장실을 뛰쳐나왔다. 다시 분수대 반대편의 내 자리로 돌아오자, 잭 아저씨가 또 머저리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엉덩이를 위로 쭉 빼고는 머리를 바닥에 딱 붙이고 있었다. 그 자세가 딱... 고양이 자세 같았다. 아, 맞다!
[블로어!]
난 소리쳤다. 몸을 일으키던 잭 아저씨는 화들짝 놀라 그만 코를 땅에 박고 말았다. 그는 코피를 흘리며 일어나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블로어가 어쩌라고!]
[없어졌어요!]
블로어를 묶어두었던 돌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그놈의 고양이는 또 왜 없어졌대니, 나만큼이나 고양이 고기를 좋아하는 누가 데려다가 끓여 먹었겠지.]
[아저씨!]
난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지나가던 나이 든 아저씨가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 가발이 벗겨지고 말았다. 미안해요, 그러려던 건 아니였어요. 어쨋든!
[이건 장난이 아니라구요!]
[그래, 그래. 미안.]
그는 건성으로 사과했다.
[이런 위더 녀석... 고작 고양이 하나 가지고.. 지 것도 아니면서.]
그는 중얼거렸다. 난 그냥 그를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귀엽던데, 누가 가져갔나 ?]
화가 났다.
[돌에 묶어두면 당연히 누가 가져가지 .]
더 화가 났다.
[주인이 가져갔겠지, 뭐.]
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아니면요? 아저씨처럼 야만적인 인간이 데려가서 잡아먹었으면요?]
난 눈물을 흘렸다. 왜 이렇게 잘 우니, 나.
[어...어?].
그는 예상치 못한 나의 눈물에 적잖이 당황한 듯 했다.
[어떡해요, 블로어...흐윽..흑..흑...]
그는 갑자기 나에게 장단을 맞추어주었다 .
[그러니까... 요즘 진짜 고양이가 얼마나 귀한데... 요즘 아무리 로봇을 동물이랑 똑같이 만든대도, 내가 봤을 땐 블로어는 진짜야. 내가 대학이란 걸 다녔거든. 거기서 애완동물 취향 감별사 자격증 특별 교육 강사였어. 그리고 애완로봇 회로 제작 전문가로 인정을 받았었어. .또...]
[또 원래 이야기보다 아저씨 헛소리를 더 많이 하게 되었으니까 그만하시죠.]
그래도 그의 말로 위로가 조금이나마 된 것 같다.
[어... 어... 어, 저기!].
그가 갑자기 호들갑을 떨었다. 또 뭐요. 난 그의 손가락 방향을 쳐다보았다.
[뭐...야!]
누군가 블로어를 돌에 묶어두었던 끈을 잡고 블로어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거...거기 서요!]
난 그 사람에게로 달려갔다 .
[울프! 울프! 멈춰!]
저... 도둑 녀석! 가만두지 않겠어 ! 난 그 도둑을 덮쳤다.
[당장 블로어를 내놓지 못해!]
그 도둑은 고개를 돌려 날 쳐다보았다 . 도둑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 그 도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