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봐. 나한테 관심 있냐?”
야누스가 모난 말을 내뱉었다. 멍청하게 생긴 게 제 책상에서 비킬 생각은 못하고 멍 때리고 있는 꼴이 한심했다. 사내와 말이 안 통한다 결론을 내린 야누스가 딴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뭔데. 새로 들인 능력자에요? 나 안 온다고? 와아, 이렇게 얄팍한 우정이 다 있나. 너무하네들.”
야누스는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칭얼댔다. 전혀 실망 안 한 얼굴을 하고선 입에 모터를 달았는지 쉴 새 없이 말을 뱉어냈다. 하지만 누구도 반응이 없자 야누스는 옆으로 째진 외까풀을 찡그렸다.
‘오오. 이대로 방치하시겠다.’
다들 이런 식으로 나온단 말이지, 야누스가 경식을 내려다봤다. 의자에 앉아 순진한 눈망울로 쳐다보는 게 5분이면 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보조개 패도록 볼 거죽을 깊숙이 빨아들였다. 무슨 독한 말을 쏘아줘야 얘가 울면서 다신 여기 찾지 않을까. 야누스는 고개를 갸웃하며 화살로 쓸 말을 신중하게 고르던 중이었다.
“야 범아. 저 새끼는 뭐로 보이냐?”
강명훈이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갸웃, 고개를 살짝 꺾던 야누스는 눈을 번뜩 뜨더니 경식이 앉은 의자 머리를 바싹 잡아끌었다.
“뭐야, 너 능력이 보여?”
예의바른 능력자는 세상이 없는 것일까. 그들의 격한 인사에 어느덧 익숙해진 경식은 눈을 껌벅대며 야누스 얼굴에 빨리 익숙해지려했다. 능력을 의식하지 않으려 집중하자 오른쪽 얼굴을 덮고있던 시꺼먼 그림자가 희미해졌다. 처음엔 오른쪽 얼굴이 아예 없는 줄 알고 식겁했는데 그냥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던 모양이다.
이제 보니 야누스라는 사내는 멀끔하게 생겼다. 가는 눈꼬리가 쳐진 게 살짝 비열해보였지만 염색한 갈색머리와 마른 몸에 딱 알맞은 옷이 세련돼보였다. 뭔가 명훈과는 다른 의미로 위험한 남자의 향기를 풍겼다.
그때 야누스가 경식의 어깨를 억세게 쥐었다.
“야, 능력이 보이냐고 묻잖아. 안 들려?”
흥분을 겨우 억누른 목소리였다. 마른 손으로 어깨뼈가 부서져라 조여오자 되려 범이가 당황했다.
“야 그만해라.”
명훈이 제자리에 일어서며 경고했다.
“범이 능력 보는 거 맞으니께 그만 하라고. 마, 니한테서 괴물이라도 봤나보네. 아 새파랗게 질린 것 좀 보소.”
명훈은 정작 필요할 땐 코빼기도 안 비추더니 이제야 나타난 직원을 향해 비아냥거렸다. 평소의 야누스라면 ‘근본도 없는 사투리 쓰고 있네.’라며 더 강력하게 비아냥대며 맞받아쳤겠지만 오늘따라 조용했다. 그는 숨을 한 번 고르곤 팔을 벌려보였다.
”그래서 뭐가 보이냐고, 응?”
마치 우리 한 번 이성적인 대화를 나눠보자는 제스처처럼 보였다. 입꼬리를 쓸어올리면서도 경식을 관찰하는 눈빛은 날카로웠다. 렌즈를 조였다 풀 듯 동공을 섬뜩하게 움직였다. 그리곤 뭔가 생각을 하듯 고개를 약하게 옆으로 기울이기도 했다. 그 집요한 눈빛이 부담스러웠지만 능력사무소에서 일 한지 한 달, 콩알 만했던 경식의 간도 이젠 꽤 성장을 이뤘다. 경식이 야누스의 오른쪽 얼굴을 가리켰다.
“야누스 씨는 얼굴 요쪽이 시꺼멓게 보이네요.”
“뭐 이딴,”
야누스가 어이없다는 듯 범이의 손가락을 쳐냈다. 그리고 특기인 빈정거림을 시작했다.
“뭐 얼굴에 석탄이라도 바른 것처럼 검은 게 내 능력이라는 거냐? 변장술이야 뭐야. 하이고 퍽이나 좋은 능력이네.”
야누스의 한껏 과장된 반응에도 경식은 고요했다.
‘이번 반응 오랜만이네.’
나름 다사다난한 유년시절을 보낸 경식이었다. 사실 구태의연했던 사무소 사람들이 더 신기했다. 도리어 지금 야누스의 태도가 경식에겐 더 익숙했다.
평범이는 정확하게 알려줘야겠다 싶었다, 그게 아니라.
“반쪽이 없는 것처럼 시커멓다고요.”
언제나처럼 아무도 말이 없었다. 허공에 대고 혀를 차던 야누스의 얼굴에서도 웃음이 사라졌다. 야누스가 돌아섰다. 경식과 마주한 그의 이마가 핏줄로 도드라졌다. 금방이라도 폭발한 것 같은 얼굴에 명훈이 벌떡 일어섰다.
야누스가 경식에게 얼굴을 바싹 들이밀었다. 아르가 뒤늦게 둘 사이로 끼어들려했지만 야누스는 그저 웃기만 할 뿐이다. 경식은 소름끼치는 웃음소리에 등받이에 막힌 상체를 한껏 뒤로 젖혔다. 코가 맞닿을 정도로의 거리에서 야누스는 순간 눈초리를 가늘게 아, 뭔가 깨달은 듯 가벼운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곤 삽시에 인상을 펴곤 씨익 웃어보였다.
“아아, 그래. 그러네. 앞으로 잘 해보자.”
그는 대놓고 선량한 척 연기를 하며 악수를 청했다. 쑤욱 사라지는 얼굴에 경식은 저도 모르게 그 손을 맞잡았다. 야누스는 말랑한 손등을 툭툭 치며 덧붙였다.
“우리 할 얘기가 많네. 자주 보자?”
괴롭힐 대상과 안면을 익혀두는 깡패처럼 느긋했다. 그는 으음, 대놓고 고민을 하더니 능숙하게 경식의 물건만 골라내선 양 손에 꾸러미를 실었다. 그리곤 손님용 테이블 위로 물건들을 쏟아냈다. 까르릉, 선전포고처럼 앙큼한 소리가 사무소에 울려 퍼졌다.
“미친 놈.”
“미친 새끼.”
모두의 환대를 받으며 야누스는 책상으로 돌아왔다. 그는 책꽂이에 꽂힌 국어사전을 소중히 꺼내들며 범이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리고 이제 내 자리에서 비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