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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대국의 빈(嬪): 악의 딸
작가 : 써니벨
작품등록일 : 2017.7.15

도덕심이든 윤리의식이든 단 1g도 없는 야만인의 아가씨, 야낙(여주)의 피말리는 궁중생존기와 위태로운 로맨스 스릴러! 살육과 약탈을 생업으로 삼는 야인족의 영애로서, 가벼운 마음으로 입궁한 대국의 내명부는 그야말로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세계였다. 그러나 얼마못가 궁에서 낙오되어 사라질 것 같았던 야만인 소녀는 정말 강하고 사악했는데?! 아름답고 가련한 '마왕(魔王)'과 그 마왕을 사랑하고 만 '대마왕(大魔王)'의 사극 로맨스 스릴러.(실제 역사와 아무런 상관없는 중세시대 사극물입니다. )

 
13.초야의 대위기(2)
작성일 : 17-07-16 01:23     조회 : 259     추천 : 0     분량 : 8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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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시 시간이 흘러.

 

 3시간 뒤. 이젠 완전한 밤이 된 자(子)시(새벽 12시) 무렵.

 

 숙비가 다스리는 연혜궁은 물론, 중궁마저 아우르는 제일 큰 규모의 궁궐 태화궁(太和宮)으로 등불하나 앞세운 상선영감을 선두로 ‘성상 폐하’의 행진이 이어지고 있었다.

 

 찬의성에 존재하는 모든 궁들 중에서도 제일 긴 역사를 자랑하는 성스러운 고궁이자, 대대로 ‘태후’가 거처하던 절대 권력의 중심지.

 

 “...........”

 

 오랜 세월 굳건히 찬의성에 존재해오며 여러 역사를 겪어 온 왕실의 상징을 보며 국왕을 수행하는 내관들이 허리를 숙이며 예를 갖추고 있었다. 지금은 여러 사화로 인해 그 권위가 많이 쇠락하긴 했지만 저 궁은 여전히 ‘권력가’의 처소였으니 말이다.

 

 이번 대에 태후가 존재하지 않는 목종에게는 그의 오래된 조강지처가 태화궁을 차지해 은둔생활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그 조강지처를 부르는 궁중의 명칭은

 

 온귀비(溫貴妃) 척 씨.

 

 통칭 귀비라 불리는 이 사람은 태화궁의 궁주이자, 저번 내명부의 다과회에 이유도 없이 당당하게 불참하여 왕후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린 주인공이었다. 그녀는 현재 제일 막강한 권세를 자랑하는 외척 가문인 ‘마 씨’와 유일하게 대적할 수 있는 세력을 가진 척 씨 가문을 친정으로 두고 있는 권세가였는데 거기에 겸해, 대대로 영웅과 명장을 배출한 척 씨가문의 실질적인 수장 노릇을 하고 있기까지했다.

 

 제 1왕녀, 천심공주 아이아라시 왕비의 생모이자 동맹국 군왕의 장모도 되는 그녀는 왕후마저 함부로 손댈 수 없는 막강한 위치에 있었지만... 귀비는 가진 권세를 거느리고 살기에 너무 많은 불행을 겪은 여인이었고 또한 몹시도 ‘잔악한’ 사람이기도 했다.

 

 “귀비에게서 아직도 기별이 없는 것이냐.”

 

 “송구하옵나이다. 그것이...”

 

 진연이 끝나고, 바로 태화궁부터 들른 왕이었다. 자신의 탄신일이기도 하겠고, 희소식도 있겠다... 오늘은 분명 귀비와 한 마디 대화라도 섞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폐하, 마, 망극하옵니다.”

 

 “.......”

 

 “귀비마마께선 어떤 말씀도 아니하신다고 하옵니다...... 밤이 깊어 시간도 벌써 자 시가 되었는데 이제 그만 영애 아씨에게 행차하는 것이 어떠신지요. 폐하, 가을의 밤공기는 옥체에 해롭사옵니다.”

 

 국왕이 행차했으니, 왕을 모실 수 없더라도 귀비는 마땅히 의복을 갖추고 마중을 나왔어야했다. 그러나, 직접 기별을 보내도 태화궁은 1시간 째 감감무소식이었으니.... 장장 3개월 만에 임금이 찾아온 거였지만, 귀비는 여전히 무서울 정도로 냉담했고 무례하기까지 했다.

 

 성상폐하의 행차를 문전박대하는 후궁의 태도는 모독죄로 엄히 처벌받을 수도 있는 대죄였지만, 귀비의 기별을 기다리는 왕의 용안에는 분노보다 초조함과 아쉬움이 가득했다. 끝내 그녀를 다시 만나지 못할 거라 생각이 들은 모양이었다.

 

 “아이아라시 왕비가 회임을 하였는데.... 귀비는 정말로 무정한 사람이도다.”

 

 시집간 장녀의 회임 소식은 아비 된 그로서도 무척이나 기쁜 소식이었다. 옛 일은 잊고 오늘만큼은 군주와 후궁이 아닌, 한 사람의 부모로서 자식의 경사를 잠깐이나마 같이 나누고 싶었는데.....

 

 새로 품어야할 영애도 중했지만, 8년 째 별거 중인 조강지처는 국왕인 그에게 있어 언제고 아픈 손가락이자, 마음속의 가시였다. 영애에게 승은을 내리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귀비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던 국왕이 이윽고 쓸쓸하게 고개를 저으며 단념한다.

 

 고집이 센 내자는 이번에도 자신을 만나지 않기로 아주 작정한 것 같았다. 여기서 계속 기다린다 해도 그녀는 자신을 결코 돌아봐주지 않을 것이리라.

 

 .............

 

 국왕으로서, 귀비를 불경죄로 다스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벌을 바라고 있을 테니말이다.

 

 “짐을 여전히 원망하는 구나. 여전히 원망해.”

 

 “....폐하.”

 

 “왕자들도, 선(先) 왕후도 짐의 곁을 떠난 지도 9년이 되어가거늘. 무능하고 부덕한 짐도 이리 변해버렸는데.... 귀비만은 어찌하여 그 옛날 그대로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냐. 저 가엾고도 무정한 사람, 정녕코 짐을 용서치 않을 작정이다.”

 

 허심탄회하게 옛일을 말하며 군주의 눈가에는 회한이 가득 차있었다. 입가에 씁쓸함만이 어리는 가운데, 그가 뒷짐을 지며 가마에 오른다.

 

 “귀비가 저러니 짐도 어쩔 수 없지, 이대로 갈마의 영애에게 가는 수밖에... 시간이 자 시라 하였느냐? 본의 아니게 짐이 그 아가씨를 오래 기다리게 했구나.”

 

 상심한 얼굴로 자리에 앉는 왕의 용안이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망극한 모습 앞에, 상선영감마저 몸 둘 바를 모르자 휘하 내관들과 궁녀들도 초조해하며 왕의 행차를 서둘러 모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싸늘하고 스산한 밤바람이 태화궁의 정원과 대문을 휩쓸고 지나가던 즈음.

 

 시간이 얼마나 더 흘렀을까.

 

 끼이걱.

 

 영애가 기다리는 전각을 향해, 왕의 행차가 저 멀리 지나가버리자, 비로소 태화궁의 대문으로 나이 지긋한 상궁하나 주변을 살피며 비죽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어휴.”

 

 귀비의 측근상궁으로 보이는 궁녀였는데, 그 상궁의 손에는 ‘굵은 소금’이 가득 담긴 조롱박이 하나 들어져 있었다.

 

 “후우욱!”

 

 웃전의 명령을 받고 계속 이 근처에 몸을 숨겼던 모양이었다. 국왕 폐하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는 지 드디어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상궁이 곧이어 숨을 거칠게 내쉬고는 왕이 서있던 자리와 행차가 지나간 자리를 향해 소금을 뿌리기 시작했다.

 

 촤악! 촤악!

 

 “훠이! 훠이!! 잡귀야 물러가라 훠이훠이!!!!”

 

 신들린 사람처럼, 있는 힘껏 소금을 쥐어들며 마구 마구 흩날리는 그녀였다. 그 덕분에 태화궁의 대문 앞으로 때 아닌 소금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3개월 전, 국왕이 행차했을 때와 똑같이 말이다....

 

 

 보글 보글 보글...

 

 가까운 거리에서, 무언가가 끓고 있었다. 근처로 술상을 차린 듯 기름진 음식 냄새가 났고.

 

 ‘....하, 실내인가?’

 

 끌려오는 내내 눈가림개를 하고 있었던 터라, 이 곳이 어디쯤 되는 곳인 지 잘 알 순 없었다. 다만, 최종적으로 끌려와 갇힌 곳의 공기는 따뜻했고, 반강제로 눕혀진 자리는 푹신푹신하고 부드러웠다.

 

 아아 답답해.

 

 두 손은 물론이고 온 몸이 이부자리에 둘둘 말려져 있어서, 야낙은 자신의 시야를 가리고 있는 천을 풀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의지할 수 있는 감각이라곤 청각과 후각, 그리고 몸이 뜨겁다 느껴지는 촉각 뿐. 최대한 신경을 곤두서며 긴장하는 그녀에게로 누군가 나직이 말을 걸고 있었다.

 

 “이제부터 아가씨께선 마음을 푸시고, 소인들이 하는 말을 들어주시기 바라옵니다.”

 

 “......누구지?”

 

 “소인들은 폐하를 모시는 자들입니다.”

 

 목소리와 어조를 미루어보건대, 저들은 궁녀가 아니었다. 알몸 상태로 이부자리만 두른 자신에게 궁녀가 아닌 다른 자들이 다가오다니.... 어찌보면 더럽게 수치스럽고 역겨운 상황이었으나, 마지막까지 평정심을 버리지 않은 야낙이 침착하게 저들이 하는 말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훗날을 기약하는 것도 복수를 하는 것도 결국엔 마지막까지 인내할 줄 알아야 이룰 수 있는 결실 중 하나라는 걸, 그녀는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서야 자신을 이렇게 만든 저들은 모두 죽여서 뼈까지 갈아먹고 싶었지만 어쨌든.

 

 “..........”

 

 “음.”

 

  영애를 전각까지 바래다 놓은 환관들도 그녀의 차분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 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여태 모신 아가씨들은 이런 상황에 처하면 발악을 하며 온갖 행패를 부리기 마련이었고 최악의 경우 기절까지 했는데, 이번 영애는 그러기는커녕 시종일관 침착함을 유지했으니 말이다.

 

 성상 폐하는 언제라도 행차하실 수 있었다, 그런 만큼, 양해와 사과를 구하는 과정은 과감하게 생략한 환관이 곧바로 예를 갖추며 조곤조곤 설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아가씨를 이리 모신 것은 무례하다 여길 수 있겠습니다만, 이 또한 엄연한 관례이고 왕실 대대로 이어지던 내명부의 절차이옵니다. 승은을 입을 아가씨들은 목욕을 재개하고 나면, 곧바로 소인들이 모시게 되어 있사옵니다. 만에 하나 아가씨들 중 반역의 마음을 갖고, 폐하에게 위해를 가할 물건을 소지함을 막기 위함이지요. 눈을 가리고 귀를 가린 것도 폐하가 행차하시는 전각과 그 지리를 파악치 못하게 함이오. 혼수 시녀들에게조차 기별을 주지 아니하고 아가씨를 데리고 간 것은.”

 

 “암살을 방지하고자 함이겠지. 내가 암살자가 아니더라도, 시녀들이 그럴 수도 있을 테니까.”

 

 “아.... 어음... 그렇사옵니다. 아가씨께선 영명하시군요.”

 

 얌전히 있으니 순진해보여도 받아치듯 말을 꺼내드는 야낙의 태도는 절대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환관들이 조금 놀란 듯 말을 아끼며 이만 자리에서 물러가려 하자, 그녀가 빈정대듯 질문을 던졌다.

 

 “내 선배들도 다 이런 과정을 거쳤습니까?”

 

 “.........?”

 

 “지금 내명부인지 뭔지 후궁이라고 앉아있는 전직 영애 아가씨들을 말하는 겁니다. 폐하의 안위와 안전을 위해서라니 이에 대해 항의하지는 않을 것이나. 취급 어려운 맹수도 아니고, 나를 이렇게까지 포박할 이유는 없을 텐데요. 내 기분 탓인가? 어째 나는 유독 짐짝 취급을 받는 것 같소.”

 

 거기에다, 이상한 약까지 쓰고 말이야. 하지만 약에 대해선 함구하는 그녀였다.

 

 “더 하실 말씀이 없으시다면, 소인들은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

 

 드르륵.

 

 짐짝 취급을 받는 것 같은 게 아니라, 이미 그런 취급인 듯했다. 자기 말 따위 아주 가볍게 무시하고 실내에서 나가는 내관들을 두며 야낙이 헛웃음을 들이킨다.

 

 ‘나는 결국 왕의 생일 선물이었군. 상궁에 나인들에 저 놈들까지 궁의 아랫것들은 전부 날 인간 이하로 알고 있을 만도 해.’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현재 상태부터, 마치 잘 포장된 선물처럼 포박되어 있었고 아랫것들은 자신을 무슨 다루기 쉬운 무식쟁이로 취급했었으니 말이다. 부루크에서 ‘여자’의 신분으로 겨우겨우 살아남아 이제 좀 다른 곳에서 새 삶을 살아가나 싶었더니.

 

 ‘누구 소행인지 몰라도, 환영인사 한 번 더럽게 거칠군.’

 

 유채기름에, 흥분제에.... 벌써부터 개수작을 피우는 흑막이 누군지 그 면상한 번 보고픈 그녀였다. 궁이라는 곳에 오자마자 ‘제거’해야 하는 상대가 생기다니 새삼 살의를 다지면서 야낙이 조용히 마음속의 증오를 가슴 깊이 다져간다.

 

 당장 이 상황을 타개할 만한 방책은 없었다. 밖에는 분명 다수의 사람이 경비를 서고 있을 테고, 자신은 주변의 도움을 바랄 수 없는 상황에서 감금된 상태였으니 말이다. 어쨌든 곧 초야였다. 국왕이 행차해, 자신을 직접 구하는 것 말고는 별 도리가 없어지자 야낙이 곧 포기하며 얌전하게 몸을 굳히기 시작했다.

 

 약기운 때문에 몸이 뜨거웠지만, 어떻게든 호흡으로 이를 진정시키면서.

 

 그러나, 유감이게도 곧 올것만 같았던 왕의 행차는 무슨 연유인지 자꾸 늦어지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가늠하기 힘들었으나 분명 몇 시간은 흘렀을 터. 약의 효과 때문에 갈수록 어지럽고 몽롱해지는 정신 속에서. 야낙이 어느 덧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악몽이 기다리는 그 무의식 속세계로 말이다.

 

 

 ***********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언젠가 작은 삼촌이 내게 말해준 적이 있었다.

 

 엄마는 처음부터 우리 일족 사람이 아닌, 타지 사람이라고 원래는 노예 시장에서 팔려지던 ‘노예’ 라고 했다. 대기근 때문에 농사를 망친 외할아버지가 당신 막내딸을 돈도 안 받고 노예상인에게 넘긴 거라 했는데... 엄마는 그 와중에도 못생기고 일까지 못해 팔리지도 않았단다.

 

 팔리지 못한 노예는 그 날 생매장을 당하는 데, 엄마는 곧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도 안 미치고 잘도 떠들어댔다고.... 그 정신력을 높게 봤다던 작은 삼촌은 그날 점심값을 털어 엄마를 구입했다고 했다.

 

 큰 삼촌의 몸종으로 쓰면 딱 좋겠다고 생각해서, 부루크에 데려왔다는 데 정작 엄마를 데려간 사람은 큰 삼촌이 아닌 아빠였다고... 당시에 많이 당황스러웠노라 삼촌이 말했었다.

 

 쓸데없이 수다스럽기만 하지 일도 못하는 몸종 같은 건 본인도 질색이라고 했는데 아빠만이 엄마를 좋게 봐서 집으로 데려가 나를 낳았다고.... 아빠만이 엄마의 발랄한 모습에 반했던 것 같다고 삼촌이 뭐라 설명했었지만 어렸던 나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는 나한테 있어 전혀 수다스럽지도, 활발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움직임도, 숨마저도 쉬지 않는 엄마의 어디를 아빠는 좋게 본 걸까?

 

 나는 자라면서 아빠보다 엄마를 더 많이 닮아간다며 삼촌이 웃으며 얘기했지만, 매번 거울로 내 얼굴을 봐도 어디에 어디가 엄마를 닮은 것인지 나는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의 머리는 빛바랜 붉은 색이었고 얼굴마저 심하게 말라비틀어져 있어 보기에도 흉했지만, 나는 아빠를 닮아 머리색마저 검었고 어디서든 귀엽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삼촌들도 아빠도 나를 엄마와 많이 닮았다고 했다. 나이를 먹어 가면 먹어갈수록 더더욱 그런다고.... 엄마를 많이 사랑하는 아빠는 내가 엄마를 닮아간다고 아주 좋아하셨지만 나는 그런 아빠가 두려웠다.

 

 6살이 되어 아빠는 딸인 내가 아닌 ‘엄마를 닮은 나’를 더 아꼈고 사랑해주었다. 엄마를 너무 닮아서 내 이름마저 헷갈리셔 했던 아빠... 아빠는 언젠가부터 엄마한테 할 말을 나한테 걸어주었고, 엄마가 입었던 옷을 나한테 입히며 너무도 즐거워하셨다.

 

 엄마 옷을 입은 나는 아빠의 ‘장난감’이 되었다. 싫다고 해도 나를 자꾸 만졌고, 말을 듣지 않으면 내가 울어도 때리셨으니까.

 

 하지만 그런 아빠도 집 밖으로 나가시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셨다. 바깥의 아빠는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나를 야낙이라 똑바로 불러주며 챙겨주셨고, 가족들을 생각해주는 착한 사람이었으니까.

 

 어른들은 특히나, 엄마에 대해 잘 모르는 아줌마들은 아빠를 의롭고 우직한 사람이라고.... 아빠더러 우두머리 형제들 중에서 제일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좋게 보셨지만, 나는... 나는 그런 아빠에게 있어 누구나 싫어하는 버르장머리 없는 딸아이였다.

 

 나는 단지 날 신경써주지 않고 귀찮아하는 어른들의 말 따위 듣고 싶지 않은 것뿐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런 나를 싫어하여 큰 삼촌과 에르구 삼촌 앞에서 내가 거짓말을 잘 한다고 헐뜯었고, 그 바람에 나는 거짓말까지 하는 싸가지 없는 애가 되어서 모두의 무시를 받게 되었다.

 

 ....할머니 말 따위 안 믿고 그나마 날 계속 보살펴주던 작은 삼촌마저 여자가 생기는 바람에, 더 이상 내 일에 관심을 주지도 않았고 에르구 삼촌도 할머니가 더더욱 편찮아지는 바람에 날 무시했고......

 

 “옷이 잘 어울리는 구나.”

 

 결국 나는 부쩍 아빠랑 있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었다. 종종 다른 어른들에게 맡겨지기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잠시 뿐. 엄마의 물건은 옷은 물론, 작은 장신구까지 모두 고이고이 간직했던 아빠는 집에 돌아와 나를 돌보는 대로 내게 엄마 옷을 입히고 화장까지 시키셨다.

 

 결코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목욕할 때도 나는 항상 아빠와 함께해야 했으니까. 그래도 아빠와 함께하는 건 즐거웠다. 나를 형편없이 취급하는 어른들과 같이 있느니, 그래도 아빠가 나았고 좋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감기약이라고 매번 이상한 가루약을 물과 밥에 타먹던 아빠는 나를 점점 더 엄마와 같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얻어맞기 싫으면 매일매일 엄마 옷을 어른들 몰래 집에서 입고 있어야했고.... 아빠는 그런 나를 계속 해서 만졌다.

 

 그런 나날들이 계속 되었고,

 

 이제 내가 6살에서 7살이 되던 첫 달에... 나는 이미 더 이상 아빠의 딸이라고 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와중에조차 바깥에서만큼은 여전히 아빠의 딸이었다.

 

 하지만 삼촌들도, 어른들도. 우리 집 안에 ‘나’라는 존재가 사라졌다는 걸 몰랐다. 우리 집에선 야낙이는 항상 삼촌이나 다른 어른들에게 맡겨져서 늘 집에 없는 아이였는데.... 다만 엄마만이 항상 아빠의 옆에 남아, 병든 몸으로나마 아빠를 ‘위로’해주었다.

 

 그렇게 엄마는...아니 엄마를 대신해야했던 나는

 

 일상처럼 매일을. 매일을. 매일을. 매일매일을...

 

  아빠를 위로해줘야만 했다.

 

 7살이 되던 새해 겨울날, 큰 싸움에 휘말려 한 쪽 눈과 다리 하나에 장애를 입었던 아빠는 늘 비통해하며 언제나 위로를 원했었다. 위로를 원했던 아빠에게 있어 나는 이미 딸아이가 아니었다. 단지 몸만이 어렸던 엄마였다.

 

 아빠가 그렇게 좋아해서 먹었던 가루약의 양은 더욱 더 많아져갔다. 그러더니 아빠... 결국엔 완전히 미쳐버려서 일족에게 해선 안 될 짓까지 벌였었다. 삼촌들은 아빠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빠는가셨다.

 

 “............”

 

 까악, 까악.

 

 아아.. 나는

 

 까마귀들이 냄새를 맡고 모여든 땅 위로, 거적때기에 덮여진 아빠의 시신을 들춰볼 용기는 없었다.

 

 까마귀들이 모여 들어 아빠의 시체를 노리고 있었지만, 나는 구태여 까마귀를 내쫓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았다. 아빠가 불에 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느니, 저대로 까마귀들에게 먹혀 지저분해도 그 흔적이라도 남겼으면 했으니까.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삼촌들을 친척으로 남기고 결국엔 고아가 되어버렸지만, 이상하게도 별다른 감정은 없었던 것 같았다. 슬프지도 않았고 기쁘지도 않았다. 아빠는 결국에 화염에 먹혀 잿더미가 되어버렸지만, 아빠를 잃었다 생각지는 않았으니까.

 

 아빠는 망령이 되어 여전히 나와 살았다.

 

 언제나 언제나 함께인 거다.

 

 아빠는 여전히 나를 엄마로 여기고 있었고, 그는 여전히 내 정신 속에서 존재하여 나를 지켜보고 있었으니 까.

 

 그 정신 나간 눈동자로, 그 병든 손길로 나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 때처럼. 오늘도 여전히.....

 

 

 **********

 

 

 “으..히윽!!!!!”

 

 꿈결처럼, 아버지의 손길이 뺨으로 느껴지자 결국 기겁을 하며 잠에서 깨어나는 그녀였다. 악몽이야 매일같이 꾸는 것이긴 했지만, 오늘 것은 제일 최악이었으다. 꿈 내용도 제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유년시절의 기억을 재현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개같은.’

 

 식은땀을 흘리며 정신을 차리는 야낙의 몸이 온통 땀으로 축축했다, 거기다 지금은 온 몸이 구속되어 있는지라 공포심까지 배가된 상태였다.

 

 

 “?!”

 

 “오, 깨어났군.”

 

 “꺄아아아악!!!!!!!!”

 

 일어나는 대로, 자신의 뺨으로 느껴지는 손길이 꿈결이 아닌 현실이라는 걸 깨달은 야낙이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상당히 날카로운 비명인지라, 전각으로 벌써부터 내관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아니!”

 

 그 바람에 영애와 대면하는 대로, 봉변부터 당하는 국왕이다. 덩달아 같이 놀란 듯, 잠시 영애의 얼굴을 쓰다듬던 그가 깜짝 놀라 손을 거두고 뒷걸음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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