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나비는 무지개를 떠난다
작가 : 비맞은감쟈
작품등록일 : 2017.7.15

[마법소녀/시리어스/]

나비는 꽃을 즈려밟고 날아올라 무지개을 뚫고 지나갔다. 모든 걸 떠난 나비가 불나방처럼 타들어가는 태양아래 덧없는 존재라 할지라도 화려하게 타오르는 나비는, 분명 떨어지는 꽃잎보다 아름다우며 흩어지는 무지개보다 한참 더 기억에서 숨쉴테니
내 유일하게 바라는 것은 그저 손가락 뻗는다면 너는 잠시 앉아 쉬어가다오.

 
회전목마는 돌아간다 (1)
작성일 : 17-07-16 00:13     조회 : 356     추천 : 0     분량 : 7292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00

 회전목마는 돌아간다

 Written by. 녹슨감쟈 / 비

 

 

 부장은 시원시원한 동작으로 칠판에 글씨를 써 나갔다. 축제. 곡선보다는 직선 느낌의, 칠판의 반을 가득 채운 글씨에 부장은 몇 번이고 밑줄을 그었다. 새하얀 분필가루가 날렸다. 손에 묻은 분필가루를 탁탁 털어낸 부장이 교탁에 털썩 걸터앉았다.

 

 

 체육복과 교복 혼용. 감점 일 점. 학생의 신분에 맞지 않는 머리색. 감점 일 점 더. 학교에서 허용하지 않은 장신구 착용으로 감점. 총 감점 삼 점. 서희는 멍하니 펜을 까딱거리며 학생회 소속이자 선도부를 겸하고 있는 연극부 부장의 벌점을 매겨나갔다.

 

 

 부장은 가끔 보면 어떻게 아직 퇴학당하지 않았는지 궁금해지는 사람이었다. 스스럼없는 교복 혼용에다 염색이 풀려 투톤이 되어버린 검은색과 회색 머리, 반짝이는 은색 피어스까지. 그러면서 성적은 의외로 상위권이고, 선생님들한테 싹싹한 성격으로 예쁨받는다는 게 제일 신기한 일이었다. 어쩌면 선생님들에게 예쁨받아서 자유분방 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축제까지 한 달 남은 거 알지?"

 

 

 딴 생각을 날려버리겠다는 듯 손뼉을 쳐 주목을 시키며 부장이 다시 말을 꺼냈다. 저 마지막이라는 말,이미 여러번 쓰지 않았나? 펜뚜껑을 눌러 심지를 집어넣은 서희는 보고서를 클립으로 고정시켰다. 오랜 시간 같은 자세로 글씨를 쓰다 보니 뻐근한 목을 돌리자 우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던 회의가 세 시간만에 끝나고 있었다. 슬슬 끝을 보여가는 회의에 기지개를 펴고 짐을 정리하기 시작하는 부원들을 둘러본 부장이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다들 병든 닭처럼 골골거리는데 그녀 혼자서만 피곤하지도 않은 듯 멀쩡하게 회의를 진행해나가고 있었다.

 

 

 

 "학원, 과외 있는 애들은 한 달만 미루고. 연극부 그동안 많이 쉬었지? 솔직히 다른 동아리처럼 체육대회 참여하고 그러면 상관 없겠는데, 우리 연습기간 길어서 그렇게 못 하잖아. 솔직히 우리 축제 때 아니면 할 일 없지 않아?”

 

 

 그렇죠. 떨떠름하게 몇몇 학생들이 동의하는 기색을 보였다. 서희는 손으로 돌리던 펜을 멈추고 회의록을 마저 적어나갔다.

 

 

 “그러니까 그동안 놀았던 만큼 빡세게 하자고. 그리고 축제 준비 기간에는 매일 한 번씩은 얼굴 비추자. 알았지?"

 

 

 네에. 힘빠진 대답에 부장이 피식 웃어보였다. 그러니까 저희 평소에 연습 좀 하자니까요? 매년 이게 뭐야. 누군가의 투덜거림에 부장은 피식 웃으며 회색 종이를 집어들었다. 평소에 하면 나올 것처럼 얘기한다. 장난스럽게 덧붙이는 말에 키득거리는 소리가 잘게 터져나왔다.

 

 

 "그러면 오늘은 대본만 나눠주고..."

 

 

 콰앙. 선배는 말을 채 끝맺지 못했다. 상당히 가까이서 들려오는 폭음에 부원들이 창문으로 몰려들었다. 3층에서 내려다본 운동장은 아수라장이었다.

 

 

 야간자율학습을 하던 학생들이 난데없는 폭발음에 교실에서 뛰쳐나오는 것이 보였다. 폭발음과 비명소리가 섞여 난잡한 소음이 만들어졌다.

 

 삐-

 

 전자음? 서희는 부실 안을 돌아보았지만 소리의 원인은 없었다. 아. 이명.

 

 

 폭발의 근원지는 재건축 중인 체육관. 노란빛에 가까운 붉은 불꽃이 혀를 날름거리며 체육관을 삼켜대고 있었다.

 

 

 서희는 창문으로 다가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어두컴컴했던 교정을 체육관에 붙은 불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바람에 일렁거리는 불꽃이 주변에 옮겨붙으며 화재는 점점 커져갔다.

 

 

 야, 빨리 누가 신고해! 한 선배의 목소리에 그제야 정신이 든 서희는 떨리는 손으로 119를 눌렀다.

 

 

 119입니다. 무슨 일로 전화하셨나요? 사무적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중앙고등학교인데요, 지금 체육관에...

 

 

 서희의 말은 다시 들려온 거친 폭발음에 묻혔다. 비명소리가 뒤섞여 있는 혼란 가득한 모든 소리가 덮혀지며 먼지가 몰려왔다.

 

 이번에는 좀 더 가까운 곳에서였다. 천장에서 울리는 묵직한 진동으로 보아 옥상인 듯 했다. 천장에 미세하게 금이 갔다.

 

 

 갈라진 천장 사이에서 깨진 물탱크에서 샌 물이 뚝뚝 새어들어왔다. 꺄악! 비현실적인 상황에 이제야 정신이 든 것인지 학생들이 교실 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서희는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법한 천장 아래에서 다리가 풀린 듯 주저앉아 버렸다. 현재 위치 다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여보세요? 떨어뜨린 핸드폰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툭, 툭. 천장에서 하얀 석면가루가 떨어졌다. 불과 몇 분사이,눈 앞에서 흩날리는 하얀가루는 같은데 상황은 극으로 치달아갔다. 도망쳐야 하는데, 머리는 지금 당장 문 밖으로 도망가라고 말하고 있는데 다리는 이상하게 땅에 뿌리내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아,아, 하고 완결되지 못한 언어만을 뚝뚝 떨어트리는 제 목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서희는 무너지려 하는 천장을 볼 용기가 없어 눈을 감았다. 반쯤 금이 간 천장이 무너지기 전, 벽을 타고 자라난 장미 덩굴이 무너져내리려는 천장을 감쌌다. 빠르게 자라나던 덩굴은 천장을 꽉 붙잡고는 생장을 멈췄다.

 

 

 그와 동시에 붉은 머리카락을 장미덩굴로 묶은 마법소녀가 깨진 창문 사이로 날아들어왔다.

 

 

 체육관에 난 화려한 불꽃을 배경으로,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흰 오프숄더 드레스에 붉은 실로 수놓은 장미가 눈에 띄었다. 적안의 소녀가 붉은 귀걸이를 만지작거리자 등 뒤에 달려있던 날개가 꽃잎이 되어 우수수 떨어졌다. 천사같은 모습이었다. 구원자. 신. 아니면 그녀 자체로서 서희는 선망이 뒤섞인 눈으로 그 소녀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서희는 유연한 동작으로 창문 사이로 뛰어들어온 적안의 소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정부 소속 마법소녀, 지젤.

 

 

 

 지젤은 서희의 팔을 잡아 일으켜세웠다. 그 작은 체구에서 나오리라고는 믿기 힘든 힘에 서희는 풀려버린 다리에 안간힘을 주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빨리 건물 밖으로 나가야 해."

 

 

 몇 번이고 들어본 목소리였다. 당당하게 기자와 인터뷰를 하던, 정의를 소리치던, 자신이 예전부터 쭈욱 동경해왔던 그 목소리.

 

 

 "덩굴이 얼마나 버텨줄지 모르겠어. 아마 곧 무너질 거야.”

 

 

 "아... 네!"

 

 

 지젤은 머뭇거리는 서희의 등을 탁 쳤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비틀거리며 서희는 부실을 벗어나 옆의 계단을 향해 뛰어 내려갔다. 뛰어가는 순간에도 복도 곳곳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몇 번이나 발이 꼬여 넘어질 뻔했지만 멈추지 못했다. 벽에 조금씩 금이 가는 것을 보아 덩굴이 더이상 천장을 지탱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서희가 마지막 계단을 밟고 신발장을 지나 건물 밖으로 넘어지는 순간,

 

 

 건물이 무너졌다.

 

 

 도미노가 쓰러지듯 순식간에 무너져내린 건물을 보며 서희는 일순 숨이 턱 막히는 듯 했다. 긴장이 순식간에 풀리면서 다리에 힘이 빠졌다.

 

 

 털썩 주저앉은 서희의 주위에 부원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몰려들었다. 괜찮아? 어디 다친 덴 없지? 친구를, 후배를 챙기지 않고 혼자 빠져나온 사람들의 합리화 섞인 질문이었다. 서희는 대답하는 대신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쯤 정해져있는 답을 듣고 사람들은 하나 둘 운동장 밖으로 벗어나기 시작했다.

 

 

 문득 무릎이 따끔거렸다. 방금 건물을 빠져나올 때 넘어지며 생긴 상처인 듯 했다. 무릎에서 피가 배어나왔다.

 

  아무래도 괜찮았다. 어쨌거나 다치진 않았고, 무릎이 좀 까지고 스타킹의 올이 엉망으로 나가버렸대도 살아있었으니까. 숨을 이어 나가고 있으니까.

 

 

 운동장을 비추는 가로등 불빛이 잔망스럽게 깜빡거렸다. 이내 픽-하고 나가버린 그것을 무어라 향연할 수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던 몇몇 학생들 비명을 또다시 질러댔다.

 

 2차 폭발. 이번에는 건물이 아니라 후문 쪽이었다. 사람이 몰린 정문을 보고 머리를 써 후문으로 나가던 사람들이 폭발에 휘말려 넘어졌다. 비 현실적인 모든 장면들이 동 떨어져 있지 않기에 그제야 현실임을 받아드리게 되었다.

 

 

 흐린 초점을 버리고 힘을 준 서희의 눈에 체육관 앞 농구코트 쪽에서 무너진 잔해에 깔린 학생을 구조해내는 것이 들어왔다.

 

 

 교복을 흥건히 적신 피와, 잔해에 긁힌 듯 근육이 보일 정도로 찢어진 다리, 돌아간 관절의 끔찍한 모습. 허벅지에 길게 박힌 흉측한 무언가가 자아내는 비명에 저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아는 사람이었다. 친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같은 반에서 지내던 동급생이었다. 가끔 몇 마디 말을 나누던 사람이었다.

 

 

 무지했던 공포심이 불쑥 올라왔다.

 

 

 ‘괜찮을 리가 없잖아.’

 

 

 조금만 느렸더라도 자신은 지금 저 건물의 잔해 안에 있었을 것이다.그랬다면 관절은 흉측하게 뒤틀려 뼈는 살을 뚫고 나오고, 건물의 잔해에 깔려 얼굴은 알아 볼 수도 없이 짓이겨지지 않았을 까. 교복은 피 묻은 넝마가 되어 흙과 함께 뒹굴고, 이내 겨우 붙어있던 작은 숨은 부모님의 얼굴에 닿지도 못한 채 새벽공기에 흩어져서-

 

 

 문득 헛구역질이 났다. 먹은 것도 없는데도 솟아오르는 구토감을 참으려 서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누군가의 부축에 서희는 역겨움을 누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어디선가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서희는 바람이 향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람에 붉은 꽃잎들이 실려왔다. 붉은 물결의 종착지는 사람들이 거의 다 모두대피해 텅 비어버린 운동장이었다. 생명체는 자신을 부축하는 작은 몸의 동급생과 자신.. 그리고 소녀들.

 

 

 방금 자신을 구해주었던 마법소녀, 지젤이 누군가와 난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녀가 팔을 휘두르자 장미꽃잎이 사나운 벌떼처럼 웅웅거리며 상대에게 날아들었다. 느리게만 보이던 고통스럽던 사고현장이 비해 눈이 따라가기조차 힘든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반짝 반짝 공격들이 날아나녔다.

 

 

 그녀와 대치하고 있는 상대는 회색 후드를 푹 눌러쓰고 있어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얼굴의 반절을 가리는 검은 마스크를 쓴 마법소녀는 총알처럼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장미 꽃잎들을 깔끔한 동작으로 피해나갔다. 자꾸만 시야를 가리는 장미꽃이 거슬리는 듯 머리를 뒤로 대충 넘기며 달려가는 동작이 절도있었다.

 

 

 메리 고 라운드 소속이라는 증명인 가슴에 달린 금색 뱃지만이 육연발 리볼버만으로 지젤과 거의 대등하게 싸우고 있는 그녀의 신분을 알려주고 있었다.

 

 

 한 달에도 몇 번씩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현 정부 최악의 골칫덩이인 테러조직 ‘메리 고 라운드’ 안에서도 리더 역을 맡고 있는 마법소녀, 셸타.

 

 

 그녀가 하늘에서 쏟아지는 붉은 비를 피해 한 걸음씩 발을 내딛을 때마다 반바지 사이로 드러난 다리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금색 헤나가 반짝였다.

 

 뒤쪽에서 날아오는 장미 덩굴을 뒤돌아보지도 않고 피한 셸타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장미꽃잎들의 틈새로 덩굴을 밟고 도약했다.

 

 

 

 어디 한 군데 나무랄 데 없는 동작으로 셸타는 지젤의 명치를 가격했다. 순식간에 명치에 날아온 주먹을 피할 새도 없이 지젤은 비틀대며 잔기침을 했다.

 

 

 피가 조금 섞여나온 기침에 인상을 쓴 그녀는 조용히 마력으로 상처를 지혈했다. 내상에는 전혀 효과가 없지만 군데군데 베인 상처를 막아 둘 수는 있었다.

 

 그나마 마지막에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은 거리 때문에 스치듯이 맞아서 다행이었지, 제대로 맞았으면 최소 기절이었을 것이다.

 

 

 완벽한 자세로 착지한 셸타는 다시 육연발 리볼버를 장전했다.

 

 

 탕, 탕! 셸타는 땅바닥에 내리꽂히는 장미꽃잎들을 피해 상체를 낮춰 뛰어가며 공중에 떠 있는 지젤에게 총을 난사했다. 쉼없이 총을 재장전해가며, 시선은 하늘을 날고 있는 지젤에게 떼지 않고 침착하게 총을 목표물에 조준하는 그녀의 동작은 믿을 수 없이 매끄럽다.

 

 

 쉴새없이 발사되는 총알에 지젤이 잠시 멈칫했다. 열세였다.

 

 

 셸타가 마구잡이로 총을 난사하는 듯 보였지만 총알은 제법 정확하게 목표를 향하고 있었고, 그녀가 총을 장전하는 속도에 비해 지젤이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총알이 지젤의 어깨를 스쳤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섬유가 찢어졌다. 어께에서부터 올라오는 알싸한 통증에 지젤은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은 지젤이 될 터였다.

 

 

 하지만 셸타가 간과한 것은, 공격이 무조건 하늘에서만 날아 오지는 않는다는 것.

 

 

 

 확실히 체력적인 면에서는 밀려도 뛰어난 전략과 섬세한 마력운용이 지금의 지젤을 만들었다는 걸 셸타는 잊고 있었다.

 

 

 리듬에 맞추어 셸타가 다시 땅에 발을 내딛었을 때, 꽃잎이 방향을 틀었다. 그것을 허리를 숙여 가볍게 피한 셸타는 다시 가볍게 발을 떼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연달아 이어지던 공격이 성공하지 못했다.

 

 

 빠른 속도로 돋아난 장미덩굴이 셸타의 발목을 옥죄이고 있었다. 두껍고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난 덩굴이 가느다란 발목을 조이자 붉은 피가 천천히 넝쿨 사이로 배어나왔다. 검은 마스크에 가려져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아마 그녀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을 터였다. 셸타의 남은 한 쪽 발목도 어느샌가 자라난 두꺼운 넝쿨이 휘감아가고 있었다.

 

 

 덩굴은 빠른 속도로 자라나 발에서 다리로, 다리에서 허리로, 허리에서 팔로 옮겨가며 결국에는 목을 휘감았다. 또 다른 덩굴이 셀타의 얼굴 쪽으로 가고 있었다. 마스크를 벗길 속셈인가.

 

 

 덩굴로 상대를 붙잡는데 성공한 지젤은 끝을 내려는 것인지 동시에 더욱 강한 힘으로 덩굴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힘을 써서 벗어나려는 듯 버둥거리던 셸타는 이내 큰 소리로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마르텐-!”

 

 

 멀리서 창 하나가 날아와 셸타를 묶고 있던 장미 덩굴을 끊었다. 제 다리에서 고작 이삼 센치 정도의 거리를 두고 푹 박히는 창에도 겁내거나 놀란 기색도 않은 셸타는 축 늘어진 덩굴을 내던지고 창을 짚고 일어났다. 셸타는 다시 리볼버를 장전한 후 창을 날아온 곳을 향해 다시 던졌다.

 

 

 지젤은 당황한 듯 다시 덩굴을 피워냈지만 셸타는 그 짧은 틈을 놓치지 않고 무언가를 품에서 꺼내 던져 터트렸다. 아마 연막탄인 듯 검은 연기가 시야를 가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야. 바로 말하자면 당황한 붉은 머리카락의 소녀가 금은 연기 속에서 당황한 듯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모습만 보였다.

 

 

 셸타가 도망치는 중이다.

 

 

 상황이 파악되자 마자 지젤은 날개를 만들어내었다. 화려하고 또 화려한 그 날개에서 사람들은 신의 강림을 본 듯 시선을 떼지 못했다. 서희는 복잡한 감정이 섞인 눈을 감았다 떴다. 지젤은 셸타를 찾지 못할 게 뻔했다. 빛이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그림자는 더욱 어두운 곳으로 숨어버린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자신의 구원자를 서희는 오랜만의 씁쓰름한 미소를 담으며 달려나갔다.

 

 

 서희의 시야에서 사라지며 안개 장막을 발 아래에 두고 높이 날아간 지젤이 아름답게 장미 꽃잎을 흩뿌렸다. 서희는 머리카락에 붙은 꽃잎을 바닥에 버리고 지젤과 반대쪽 으로 장막을 덮은 듯 어두운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어째서?’

 

 

 왜 달려가는 거야? 누군가가 속삭이듯 의문을 제기했다.

 

 

 학교를 폭파시키고 수많은 부상자를, 저 또한 죽일 뻔 했던 범인을 잡기 위한다는 명분의 알량한 정의감 혹은 단순한 호기심.

 

 

 그것도 아니라면 단순한 자기만족이거나. 그래 어쩌면 모두에 해당되기에 지금 달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지금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서희에게 묻는다면 분명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말 그대로 충동적인 행동이었으니까.

 

 

 그저 모닥불에 날아들어 타들어갈 나방처럼 의식없이 달려갔다. 차마 따라오지 못하고 자신의 이름만 불러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 회전목마는 돌아간다 (1) 2017 / 7 / 16 357 0 729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